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는 연중무휴, 밤 12시까지 영업을 하는 마트가 있다. 늦은 밤 갑자기 뭔가가 필요할 때, 난 편의점보다는 그 마트로 달려간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그 곳은 물건의 종류도 다양하고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시다. 그날은 밤늦게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집에서 입는 옷 그대로에 패딩과 마스크만 걸치고 잽싸게 내려갔다. 많은 종류의 맥주가 있는 진열대 앞에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은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는 내 옆으로 와서(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난 그 노인에게서 진한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패트병에 든 소주 두 병과 막걸리를 집어 들고는 얼른 계산을 하고 나갔다. 캔맥주 하나와 과자를 고른 내가 카운트로 가서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께 이렇게 말했다.
“방금 그 노인분은 이미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또 저렇게 술을 사 가시네요”
내 말을 듣자마자 평소 말수가 없는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트의 고객 중에 세 명 정도 저렇게 술을 많이 사 간다고 했다. 그들은 항상 술에 절어 있으며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라고. 그 중 한 사람은 젊은 남자인데 얼마 전 그의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셨다고 했다. 사장님은 그들에게 술을 팔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진다고 말했다. 그냥 모른 채 하며 그들에게 술을 파는 게 옳은지, 아니면 자기가 나서서 술을 그만 마시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항상 헷갈린다고 했다. 봇물 터지듯 나에게 쏟아내는 그의 말들에서 그동안 사장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중 ‘봄밤’에서 영경과 수환 부부는 중증 알코올 중독자로, 류머티스 환자로 같은 요양 병원에 입원해 있다. 금단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영경에게 수환은 외출하고 오라고 한다. 그녀가 바깥에 나가는 것은 술을 마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벚꽃이 핀 봄밤에 한 잔만 마시리라고 다짐한 영경은 며칠 동안 술을 마시고 의식 불명인 채 다시 요양 병원으로 실려 온다. 그동안 수환은 숨을 거두고 기억을 완전히 상실한 영경은 남편의 죽음도 알지 못한다.
[몸을 지탱하려면 하루에 적어도 반 리터의 독주가 필요했다. -p170
그는 속을 달래주는 해장술을 마신 후에야 간신히 다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p171
쿠포에게는 오직 한 가지 특효약밖엔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에 반 리터의 독주는 배를 몽둥이로 후려치듯 강렬한 자극을 주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p255
그러는 동안 쿠포는 웅얼거리듯 신음을 했다. 전날보다 고통이 심한 듯 보였다. 이따금 끊어지는 신음은 그가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수천 개의 바늘이 몸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또한 묵직한 무언가가 몸 곳곳을 짓눌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차갑고 축축한 짐승이 허벅지 위를 기어 다니면서 송곳니로 살을 물어뜯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짐승들은 그의 어깨에 매달려 발톱으로 등 거죽을 벗겨냈다. -324]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2권에서 제르베즈와 쿠포는 빠르게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들을 끝없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은 ‘술’이다. 멈출 줄 모르고 갈 데까지 가는 ‘술의 향연’으로 폭력이 난무하고 가족과의 불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점점 포기하고 기대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기력한 삶이 이어진다. 쿠포가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랑티에를 집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고, 나나는 거리의 여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 직전의 섬망 상태에 빠진 환자(친척)를 본 적이 있다. 평생 알코올 의존증으로 여러 병을 앓다가 마지막을 앞둔 분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헛소리를 하며 며칠 동안 괴로워 입술을 깨물어서 입술 전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분의 그런 모습을 본 순간 난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 모습에 무너져버렸다. 설사 그 사람이 살인자였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 그냥 울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이기에 수환은 영경을 밖으로 내 보냈고, 제르베즈는 어쩔 수 없이 쿠포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며 나 역시 점점 그들을 체념의 상태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도 그들에게 무기력해졌다.
열쇠업자 ‘비자르’역시 술을 마시는 사람이고, 술만 마셨다하면 폭력적인 짐승이 된다. 그의 폭력으로 비자르 부인이 죽었고, 여덟 살인 딸 랄리에게도 채찍을 휘두른다. 그는 결국 랄리마저도 죽음으로 내몬다.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도 랄리는 성녀와 가시관을 쓰고 수많은 채찍질을 견딘 예수의 모습을 보인다. 한 번씩 이런 글을 읽을 때, 난 남자 작가들을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들은 여성에게 극도의 고통을 이겨내면서도 선하고 천사 같은 성녀의 역할을 맡길까? 그것도 그 어린 어린아이를 통해서. 그런 건 가능하지 않다.
에밀 졸라는 ‘결혼, 죽음’에서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농부의 결혼과 죽음을 비교하며 서술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은 중요하고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각자의 환경에서 사람의 삶은 비슷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클레망스는 이제 서른 살이다. 그동안 아이 세 명을 기르느라 금발 머리는 누렇게 변했고 얼굴도 많이 상했다. 발랑탕은 술에 절어 생활했다...봉급날이면 목수는 술에 잔뜩 취했고 호주머니는 비었다...아내는 남편을 찾으러 술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다 자신도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 탁자에 걸터앉아 술을 홀짝거렸다.
-‘결혼, 죽음’, 서민의 결혼 중에서, p60~61
가난이 장롱을 온통 비워버렸다. 옷이라는 옷은 모두 싸구려 전당포에 맡겼다...요새는 부부가 구석에서 돗자리를 깔고 자는데 개도 마다할 돗자리다....모든 것이 모자랐고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빈민 구제소는 항상 기차가 떠나버려야 도착한다면서 모리소는 허탈하게 웃었다....비참함과 초상으로 덮인 들판, 파리 외곽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가득 찬 시체들 때문에 힘겹게 땀 흘리고 질질 끌리며 황량해진 들판.
-‘결혼, 죽음’, 서민의 죽음 중에서, p106~114]
모든 것을 잃은 제르베즈는 자신이 사는 초라한 공통주택을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서부터 추락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빈곤한 노동자들끼리 살아가는 초라한 곳에서 콜레라와 같은 가난은 전염되고 만다(p308)’ 고 믿는다. 결국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목로주점의 서문에서 작가는 ‘내 소설 속 인물들은 본디 성정이 나약한 것이 아니라,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것뿐이다. 부디 나 자신과 내 작품들에 터무니없는 끔찍한 혹평을 퍼붓기 전에, 무엇보다 전부를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기를 바란다.(p8~9)'고 당부한다. 그들을 보며 포기하고 체념하는 나 자신에게 작가가 보내는 이 강렬한 당부가 다시 나를, 일으키고 일깨웠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희망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족속들이라 넘겨짚지 말고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서사시에서는 신과 사람의 이름 앞에 의미가 있는 단어를 붙인다. 보통 신의 이름 앞에는 ‘행복한’이란 단어가 붙는다. 신들에게는 고통이 없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사람의 이름 앞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따른다. 가령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같이 표현된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하고 트로이아의 유민을 이끌어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하는 의무를 지닌 ‘아이네아스’의 이름 앞에는 ‘경건’, ‘성실’, ‘정직’, ‘아버지’라는 단어가 붙여져 있다. 여기에서 ‘경건’이라는 것은 ‘신들 특히 조국의 신들과 부모 형제, 친척 및 조국에 애정을 갖고 책무를 다하는 것으로 이상적인 영웅이나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아이네이스, 숲출판사, p442) 지금 현재 너무나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이름 앞에 어떤 단어가 붙는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가? 그저 이 사람이 미우니 그냥 무조건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안일한 발상이다. 난 적어도 새로운 대통령이 제르베즈 같은 노동자와 랄리 같은 어린이를 유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날 것 그대로, 사실적으로 사회와 인물을 묘사한 작가 에밀 졸라는 민중을 처음으로 묘사한 소설을 썼다는 것으로 이미 대단하다. 그 시대, 그가 어떤 비판을 받았더라도 난 그의 이런 위대한 소설을 읽는 것 자체로 그를 존경한다.
[죽음은 제르베즈가 자초한 비참한 삶 속에서 마지막까지 조금씩 그녀를 침범해왔다. 심지어 제르베즈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위 때문에 얼어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빈곤함과 불결함 그리고 삶의 고단함으로 인한 것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복도에서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은 이틀 전부터 제르베즈가 보이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계단 밑 골방에서 이미 시퍼렇게 변해버린 제르베즈의 시신을 발견했다. -p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