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 고난과 구원의 도시, 빛과 어둠의 도시
W. 브루스 링컨 지음, 허승철 옮김 / 삼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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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으로 나가는 항로에 근접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네바 강 삼각주의 늪지에 있는 곳이었다. 궂은 날씨, 나쁜 수질의 물, 저지대의 습한 토양은 새로운 수도의 입지에 걸맞지 않았으나, 러시아의 근대화를 원하는 차르 표트르 1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낙후된, 아직 중세적인 것에 머물러 있는 조국의 근대화와 진보를 위해 유럽으로 난 창이 필요했다. 러시아의 모든 것을 바꾸고, 유럽의 발전된 나라로부터 과학과 기술, 선진 지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새로운 방향으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온전히 위로부터 계획된 도시 건설은, 근대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밟으며 화려한 번영과 지독한 어둠이 공존했고, 그것은 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나치에 의해 900일 동안 봉쇄되었지만 이 도시는 견뎌냈고, 러시아 정신의 힘을 보여 주었다.(프롤로그 중에서)



 

 

 W.브루스 링컨의 열두 번째 저작이자 유작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이 도시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건축, 역사, 예술, 사회, 사상, 혁명 등 방대한 내용이 입체적이고 치밀하게 서술되어 있다. 한국어판의 부제는 고난과 구원의 도시, 빛과 어둠의 도시이다. 이 표현대로 눈부신 발전에 의한 구원과 그에 따른 어둠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나타내어 책에 대한 몰입도가 최상이었다. 바뀌는 챕터마다 새로운 내용이 가득 했고, 연대기적 서술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한 도시를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경우는 쉽지 않고, 평범한 독자에게 불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 발목이 잡혀 계속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고골과 도스토옙스키 작가가 묘사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알고 싶어 읽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넘어 러시아 역사의 한복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독재정치가 자행(恣行)되던 때의 거의 끝 무렵이었다. 약간 어정쩡한 시대와 세대였지만, 선배들은 우리에게 확고한 신념과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광주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세미나를 통한 학습을 시켰다. 뚜렷한 의지가 있어서라기보다 신입생들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참여했다. 여러 책들을 읽고 토론을 했는데, 그 중에 러시아 작가의 책도 많았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이 책에도 언급되어 있는 니꼴라이 체르니세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같은 책이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 가슴이 뛰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그 어떤 고난에도 단결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테제가 너무 당연했고, 마땅히 정치와 사회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가르침과 사상의 주입에 모순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그때는 러시아의 유일하고 명백했던 혁명이 참담하게 실패한 것을 분명히 알고 있던 때였다. 그 어디에도 민중을 위한 것은 없었다. 스탈린의 수많은 결정과 폭정, 중국의 문화혁명에서 이미 민중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고, 니콜라이 1세보다 더 지독한 차르가 등장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그 사상(러시아적인 것이 아닌 순수한 마르크스적인 것일 수도 있다)을 배우고 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에 적용시키고 있었다. 학문은 다양하고 이론은 많은 것 같아도 사실 인간 사회에 필요하고 실제적으로 투입시킬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그러한 혼란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가 그때 배운 것, 인이 박혀 지금까지 뼛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약자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며, 그들은 언제나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이고, 그들을 포기하는 순간 사회는 다시 전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책을 읽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귀족의 화려한 삶이나 건축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그들의 끈질긴 삶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 이 도시를 건설할 때부터 이미 고역은 시작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매년 1만에서 3만 명의 농노, 전쟁포로, 범죄자들을 네바강삼각주로 보내 늪지대를 건조 시키고, 말뚝을 박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 건물을 짓게 했다. 이들은 수천 명씩 죽어가는 험난한 상황에서 가장 원시적인 도구만으로 건설 작업을 했다. 일부는 맨손으로 흙을 파 자신의 셔츠와 겉옷으로 만든 보따리에 날라야 했고, 일부는 조악하게 만든 꼬챙이와 나무 삽을 가지고 습한 땅을 파내야 했다. -p37]

 

도시가 형성되고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온갖 사치와 향락을 누릴 때에도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은 그들의 뒤에서 힘들게 살아야 했다. 중공업의 발달과 농노 해방으로 도시는 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했다.

 

[19세기 중반이 되자 노동자들은 넓이가 2미터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을 잠자리로 할당받는 일이 흔해졌다. 이러한 잠자리도 부족해지자 교대로 잠자리를 임대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널빤지로 만든 막사 침상을 열두 시간씩 교대로 이용해야 했다. 다음 교대 팀이 들어오면 첫 팀은 아프거나 건강하거나를 불문하고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p198]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학교에 갈 수 있는 인구가 많아지자 사회변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그러한 것들로 도시는 혁명의 요람이 될 수 있었고, 브라디미르 일리치 울랴노프, 레닌이라고 불리는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혁명 후, 모스크바로 수도가 옮겨지고 시민들은 식량과 연료부족에 시달렸다. 그 뒤 러시아는 우리가 아는 대로 스탈린이란 한 사람의 망령으로 인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Zachem)?

무엇을 위해(Dlia chego)?

무슨 이유로(Kchemu)?

어째서(Otcchego)?

(Pochemu)?

모든 사람이 계속해서

?”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물었다.

사람들은 NKVD의 처형실로 끌려 들어갈 때, 등 뒤에서 감방 문이 꽝 닫힐 때, 시베리아로 가는 긴 여행을 위해 가축운반용 화물차에 밀어 넣어질 때, 한밤중에 친구나 친지들이 끌려 나갈 때 이런 질문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굶기고 고문하는 이들에게 이 질문을 했고, 영원히 사라질 편지, 일기, 출간되지 않은 원고 뭉치를 두 팔 가득 들고 나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p357]

 

근대의 형성을 똑같이 답습했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사람들의 삶은 훨씬 더 고통스러웠고 힘들었다. 이 책에는 역사의 쳇바퀴 속에서 기억해야 할 문장이 너무 많이 들어있다, 특히 4영웅 도시에서 나치에 의해 900일 동안 봉쇄되는 과정에서는 전율을 일으키게 했다. 그 촘촘한 내용을 다 옮길 수가 없어 아쉽다.

 

[1941년에서 194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식량과 연료를 기다리는 동안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책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의 작품을 읽었고, 그보다 수천 명 더 많이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었다.....책을 읽을 힘이 없는 사람은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 낭독이 포위 상태의 단조로움을 깨주었다. 이들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들은 인간 정신의 회복력, 기억의 힘, 이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의무에 대해 말했다. -p385]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프롤로그와 끝부분의 함께 보조를 맞추어’, ‘과거와 현재만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끝의 두 짧은 글들은 본문의 내용을 충실히 요약해 놓은 것이라 그것만으로도 이 도시와 러시아 근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책이 저자의 사후 출간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러시아는 짤막하게 한국 출판사 편집부에서 부록으로 첨가해주어 유익했다. 책에 들어있는 도판은 모두 옮긴이가 내용에 맞추어 검색, 수집한 것이라 한다. 좋은 책을 훌륭하게 번역하고, 자료까지 첨가해준 번역자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다만 첫머리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도에서 4번과 6번은 책의 두 쪽 사이의 경계를 거의 찢다시피 펼쳐야 볼 수 있었다. 두 개의 숨겨진 번호를 찾느라 고생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읽는 도중에 스탈린을 닮은 듯한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들었다. 푸틴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배출한 정치인이다. 역사는 돌고 돌며, 똑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권력 지향적이고 반미치광이 정치인들의 결정 한 방에 의해 수많은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는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며, 강한 자들은 언제나 건재하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나치에 의해 고통을 받았듯이 우크라이나 주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나간 역사적 사실은 그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와 씁쓸함을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리든, 페트로그라드로 불리든, 레닌그라드로 불리든, 이 도시는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에게는 피테르로 남아 있었다......이곳은 여전히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알렉산드르 블로크, 쇼스타비치, 아흐마토바, 브로드스키의 도시였다. 동시에 외롭고, 친밀하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압제적이고, 낭만적이고, 덧없고, 고립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도시였다. 이곳은 부와 가난의 도시이고, 죄와 벌의 도시이며, 저주와 구원의 도시였다. -p454]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콜라이 고골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안나 아흐마토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블라디미르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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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2022-03-01 00: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려다, 망할 푸틴 꼴보기 싫어서 잠시 보류 했어요. 푸틴 사후에나 사볼까합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2-03-01 00:42   좋아요 4 | URL
저도 읽는 도중에 화가 나더라고요~~
두 마음이 있었지만 저자의 노고가 너무 돋보여 끝까지 읽었어요^^

대장정 2022-03-01 00:44   좋아요 4 | URL
네~~~☆ 근데 저도 읽고 싶어요 😂

새파랑 2022-03-01 07: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그래도 적절한 시기에 이 책을 읽으셨군요. 푸틴이 왜 그런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네요 ㅜㅜ 문학작품속에서 보던 쌍뜨페테르부르그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진들 얼굴이 다 익숙하니 신기하네요 ^^

페넬로페 2022-03-01 09:26   좋아요 6 | URL
네, 저도 막연히 생각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어요~~제 리뷰에 적은 것 말고도 다양한 것들이 들어 있어 책을 읽으시면 또다른 느낌이 드실거예요^^

청아 2022-03-01 10:4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볼래요! ‘스탈린이란 망령‘ 너무 적절한 표현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침략 반대시위를 했다고 뉴스에서 봤어요. 차에 시민들을 실어가더군요ㅠ 왜 저런 인간을 뽑았을까 궁금한게 많은데 이 책이 도움될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2-03-01 14:49   좋아요 3 | URL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이 책이 정말 좋더라고요. 푹 빠져 읽었어요.
시민들이 반대시위를 벌였다니 가슴 뭉클하네요 ㅠㅠ
푸틴은 어떤 선택사항에서 의리를 지키는 쪽을 택해 그것이 기회가 되어 모스크바로 정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해요. 전직 KGB 출신이라 음~~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서 끝나게 서방이 빨리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어요^^

그레이스 2022-03-01 22: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상트페페르부르그가 있는 노브고로드 공국은 옛날부터 민주적인 곳이었다고 러시아사에서 봤어요.
모스크바 공국과는 역사와 분위기가 다른듯요
뭔가 내용이 겹치고 있어서 반갑네요^^

페넬로페 2022-03-01 23:52   좋아요 4 | URL
아! 그렇군요.
좀 더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생각들을 지닌 곳이군요.
근데 자연적인 조건은 엄청 나빴더라고요^^

서니데이 2022-03-02 17: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래되고 유명한 장소라서 이 도시의 유명인도 상당히 많겠네요.
잘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2-03-03 00:45   좋아요 4 | URL
네, 유명인이 정말 많더라고요.
여러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요^^
한 번 가보고 싶어요
푸틴은 밉지만요 ㅎㅎ
서니데이님, 행복한 꿈 꾸세요^^

희선 2022-03-05 0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해도 안 좋은 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텐데, 스탈린과 비슷한 푸틴이라니... 러시아 사람도 편하지 않겠습니다 전쟁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을 텐데, 군인도 마찬가지일 텐데... 예전에 힘들 때 책을 보고 그 시간을 보냈군요 우크라이나에 성경이 모자라다는 말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우크라이나에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2-03-05 21:21   좋아요 2 | URL
정말요.
세상이 더 좋아지고 선해져야 하는데 나쁜것만 되풀이되고 있어요. 정치가 개인의 독단으로 나라의 중요한 일들이 결정되는것 같아요.
우크라이나가 어서 평화를 되찾으면 좋겠어요^^

coolcat329 2022-07-28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제가 놓쳤었네요. 페테르부르크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은 책이군요. 푸틴이 이 도시 출신인걸 몰랐네요. 저 인물들하고 안 어울립니다. 저는 이 도시 참 가보고 싶은데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책으로 미리 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러시아는 서유럽에 비해 후진국이었지만 예술에 있어서 만큼은 아닌거같아요. 레닌그라드는 그런 의미에서 큰 상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페넬로페 2022-07-28 12:17   좋아요 1 | URL
정말 강추합니다.
여러 영역에 걸쳐 다양하게 이 도시에 대해 소개했고,
가장 좋은 건 가독성이 엄청 좋아요~~
 

기후, 안락함, 편리함은 표트르 대제가 네바강 삼각주의 진흙 늪지에 새로운수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을 때 염두에 둔 요소들이 아니었다. 그가 선택한 지역은 자신의 통치영역의 북서쪽 외진 귀퉁이였고, 이곳을 놓고 오랜 기간 치열한 쟁탈전을 벌여온 스웨덴이 여전히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곳이었다.
북극권에서 겨우 8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핀란드만에서 흘러드는 역류로 바닷물이 자주 범람하는 곳이었으며, 이르면 9월부터 내리는 눈을 이듬해 5월까지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궂은 날씨, 나쁜 수질의 물, 저지대의 습한 토양은 삼중으로 이 지역의 매력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전설적인 전 러시아 차르 (Tsar ofAll the Russias)‘의 상상에 따르면 1703년 자신이 상크트 피에테르 부르흐SanktPieter Burkh‘ 라고 명명한 곳은 ‘낙원이 될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후계자들은 이곳을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라고 부르게 될 터였다.  - P13

러시아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표트르는 이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러시아는과학과 기술을 필요로 했다. 러시아 군대는 근대식 전쟁 무기가 필요했고, 정치가들은 유럽인들의 물리적 세계를 축소시키고 지적 지평선을 넓히고 있던 지식의 형태가 필요했다. - P14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영혼은 시적 요소와 자연적 현상들의 결합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표트르의 도시를 만든 것은 인간 영혼들의 집단 정신이며, 이것은 지난 3백년 동안 이 도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생을 살아냈으며, 이것을 위해 죽었다. 도시 외곽의 피스카렙스코예 공동묘지 만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집단 정신을 잘드러내는 곳은 없다. 이곳에는 나치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봉쇄했을 때 사망한50만 명쯤 되는 남성, 여성, 아이들의 시신이 묻힌 거대한 봉분 스무 개 정도가평화롭게 놓여 있는데, 이들은 죽기를 거부했던 한 도시의 한때 단호하고 완강했던 주민들이었다.
거의 9백 일간 이어진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봉쇄는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형성한 힘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야기의 많은 장 가운데 하나이다. 초인적인 의지와 러시아인의 불굴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이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빌려오고 동화되고 변용시키고 창조하는 것이 근대 시대에 한 국가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 도시의 전기가보여준다. 러시아 작가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이면서 동시에 러시아가아니라는 것, 그리고 유럽이 러시아가 되고 러시아가 유럽이 되는 신비스럽고 불가해한 지점으로서, 이 도시가 서방에서 뭔가 빌려오려는 러시아의 최고의 노력과 러시아가 지향 가능한 비전을 둘 다 보여준다는 것을 지적해왔다. - P17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유럽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가난이 제국의 장엄함과나란히 존재했다. 넵스키 대로에서 1킬로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있던 센나야 광장(CeRHAT ITOMAIE) 시장에서는 가난한 주민들이 넝마 같은 천조각, 장작, 훔쳐온 물건들을 팔았다. 그러나 도시의 모든 구역은 짐마차꾼과 청소부와 초라한 점원들이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운이 전혀 없는 이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계층을 구성했다. 소유재산과 생활 수준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이 도시의 상류층과 부딪쳤으며, 이는 도시의 최고 지역에서조차 억압받고 멸시받는 사람들이 부와 명성을 지닌 사람들과 자신들의 마당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 P21

살아 있는 사람들은 레닌그라드의 공동묘지에서 각 묘지당 2만~2만 5천 명의 시신을 담는 거대한 구덩이 묘지에 먼저 죽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묻었다. 그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버터냈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영웅 도시들 중 가장 위대한 이 도시는 한때 자신이 통치하던 국가의 투쟁 정신을 상징하는 기념비가 되었다. 시인들과 선전가들은 레닌그라드에서 부활된 러시아 정신의 힘을 보았고, 그들의 나라가 나치의 봉쇄를 견뎌낸사람들과 같은 사람을 계속 탄생시키는 한 이 국가는 늘 강한 국가가 되리라는것을 기약했다. - P24

표트르 대제 시기부터 현재까지 살았던 남녀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심리적힘과 지적 비전, 그리고 러시아의 다른 모든 것이 가늠되는 생활방식이었다. 이말은 이 도시가 항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경외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그러나 지난 3백 년 동안 어떤 러시아인도 감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상을 무시할 수 없었음을 뜻한다. 고골과 도스토옙스키도 이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자신들이 지닌 이중적 이미지를 포용하는 데 주저했다. 러시아 역사에서 이 도시가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해보려 한 다른 많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청동기마상은 이 도시가 솟아오른 발판이 된 늪지대의 비전을 극복할수 있었는가? 인간의 의지는 러시아 전통의 부담과 자연이 제공해주지 않은 선물을 계속 보상할 수 있었는가? - P25

역사의 여러 다른 시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힘, 영웅주의, 불굴의 용기를 묘사했다. 이 도시는 러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이들이 원했던 것의 대부분을 아울었다. 이곳은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의 도시이고,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러시아를 승리로 이끈 미하일 쿠투조프원수가영면한 곳이다.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와 동화 같은 그녀의 파트너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한때 마린스키 제국극장의 무대를 가로지르며 춤을 추었고, 20세기 초 러시아 발레를 파리에 소개한 발레 감독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는 이곳에서 빌레 뤼스Ballets Russes를 조직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의 감옥에서 보낸 시간을 빼고 성인기의 대부분을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냈고, 작곡가 글린카,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도 마찬가지였다.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자신의 주기율표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완성했고, 이반 파블로프는 1904년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조건반사 연구를 이곳에서 했다. 이 도시의뒷골목과 샛길에서 미국 최초의 외국 태생 노벨상 수상자가 된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10대 때 자신의 독학 과정을 형성해준 책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녔다.
모든 러시아인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최상의 도시였고, 현재도 그렇다.  - P26

귀족적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하층민들의 빈곤이 점점 절망스러워지는상황에서도 과시적 소비를 높이 평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장에서 일하는 숙련노동자는 몇 번의 생을 반복해 살면서 일해도 그런 달걀 하나를 살 돈을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질곡을 덜어주거나 생활여건을 개선해줄 조치는 거의 취해지지 않았다. 자신들의 조상이 넘겨준 권력을 영구화하는 데 골몰한 로마노프왕가는 페테르부르크 시민 대부분이 영위하고, 러시아인 대부분이 견뎌내고 있는 절망적 삶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내부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1917년 혁명이 다가오면서 점차 암울해지고 위협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반영했다.
가난, 고통, 기념비적 규모의 영웅주의 이미지들과 혼합되어 풍족함, 적나라한정치권력, 예술적 탁월함은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역사적 페르소나를 이룬다. - P27

표트르 대제는 매년 1만에서 3만 명의 농도, 전쟁포로, 범죄자들을 네바강삼각주로 보내 늪지대를 건조시키고, 말뚝을 박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 건물을 짓게 했다. 이들은 수천 명씩 죽어가는 험난한 상황에서 가장 원시적인 도구만으로 건설 작업을 했다. 일부는 맨손으로 흙을 파 자신의 셔츠와 겉옷으로 만는 보따리에 날라야 했고, 일부는 조악하게 만든 꼬챙이와 나무 삽을 가지고 습한 땅을 파내야 했다. 콜레라와 지아르디아증은 이 지역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협했다. 이러한 질병을 유발하는 수질이 나쁜 물은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민들에게 내내 저주와도 같았다. - P37

1727년 예카테리나 1세가갑자기 사망하자, 열세 살 먹은 표트르의 손자인 표트르 2세는 바로 다음 해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 옮겼다. 모스크바는 러시아가 잊기를 원하는 과거를 다시불러왔지만, 마지못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조상이 살며 신앙생활을 했던 모스크바로 기꺼이 되돌아갔다. 1728년 이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지난 40여 년간 이들을 뒤덮었던 근대화의 경솔한 물결이 모스크바의 구불구불한 옛 거리에서 그 힘을 잃기를 바랐다. - P55

표트르 2세가 1730년 초 갑자기 천연두로 죽었을 때, 그가 권좌에 오른 초기보다 더 많은 상품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두와 창고를 통해 들어왔다. 새여황제 안나 이바노브나는 자신의 정적들을 그들의 오랜 정치·경제적 권력의 근거지인 모스크바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성장을 지속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경제적 힘을 이용하여 1732년 궁정과 수도를 다시 네바강변의 도시로 옮겼다. - P55

그러나천직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부유층과 구분하는 것은 이런 하층민 첫 주거지역이생겨난 것만큼 엄격하지 않았다. 귀족들의 일상생활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며살아온 수천 명의 농노들은 주인의 집에 계속 거주하며 허드렛일을 맡아, 18세기 중반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 집안에는 50~200명에 이르는 집안 일꾼들을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신들의 공간을 갖지 못한 이 하인들은 도시의 짐마차꾼이나 노점상들보다 못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들이 일하는저택의 귀퉁이를 할당받은 이 하인들은 계단 뒤쪽 공간이나 후미진 구석과 현관에서 잠을 자야 할 때도 많았다. 이렇게 이들은 부자들과 함께 도시의 한 공간을공유하는 전례를 만들어냈고, 이것은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 P75

예카테리나 여제 재위 중반 궁정의 연 지출이 약 150만 루블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매일 두 번씩 약 2백 개의 식탁이 차려졌다" 라고투크는 예카테리나가 여제가 사망하고 얼마 안 지나 발간한 러시아 제국의 삶에 대한 상세한 서술에서 설명했다. "궁정에서의 낭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올 정도다. 모든 사람이 도둑질하고, 모든 구입 품목과 용역 가격을 부풀렸다. 매일 1천2백 개의 초가 근위병들에게 지급되었는데, 이들은 그중 1백 개도 소비하지 않았다"라고 그는 책의 각주에서 독자들에게 털어놓았다. 궁정의 기록을 보면 매달 145톤의 소금이 소비되고, 근위대 장교들의 저녁 식사 비용으로 하루에75루블이 지출되었는데, 농민 가족은 이 비용의 매년 10분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정부에 내지 못해 쩔쩔맬 정도였다.  - P122

군주에 대한 찬양에서 비판으로 돌아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인들 중에서가장 앞선 이는 1820년대 러시아 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한 알렉산드르 푸시킨이었다. 농노제의 야만성을 비난하는 신랄한 시를 쓰고, 폭압자를 몰아낼 것을설파한 푸시킨은 1823년 러시아 남부 지방으로 유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그의 찬양은 이전의 시인들이 하지 못한 방식으로 페테르부르크의 청년들의 마음에 영감을 일으켰다. 푸시킨의 시는 "처녀들은 무정한 악당들의 변덕을 만족시키기 위해 꽃을 피우러 온다"라고 읊었고, 모든 힘이 고갈될 때까지 일해야 하는 자신의 농노에 아무런 연민이 없는 야만적인 지주들을 저주했다. 러시아 농노들이 감내해온 비참한 생활을 언급하며 푸시킨은 황제가 이들에게 자유를 줄시기를 고대했다. 그는 또 대중을 억압해본 지도중에게 이들이 짊어진 멍에를 가법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푸시킨의 시를 암송하지 못한 사람 가운데서는 문학적 깃발을 찾을 수 없었다. 푸시킨은 그 세대의 목소리였고, 러시아가 처음 만나는 진정한 국민시인이었다" - P178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는 자연이 어떻게 표트르 대제의 계획에 반기를 들었는지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거의 매년 네바강은 강둑을 넘어 범람했고,
병원균이 가득한 물은 수천 명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에게 장티푸스와 편모충증을 일으켰다. 1831년 초여름 콜레라가 창궐해 매일 6백여 명의 시민들이사망했고, 6월 23일 절망에 빠진 하층민들은 센나야 광장 시장에서 폭동을 일으켜 차르 니콜라이 1세가 직접 나서서 이들을 진정시켜야 했다.1848년 더막강한 위력의 콜레라가 발생하여 시민 20명 중 한 명이 감염되었고, 36명 중한 명이 사망했다." 아무도 무사하지 못했다. 여름 내내 시민들은 공포에 떨어야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 증언했다. 몇 주 만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령 도시가 되어 기리는 텅텅 비고, 부두에는 배가 닿지 않았다. ‘‘도시는 비었다." - P181

러시아 제국의 비전의 깊이와 넓이를 표상하는 수도라는 사실 외에도 러시아인들은 제국의 수도를 대조와 모순의 도시로 보았다. 상상할 수 없는 부와 찢어지는 가난, 우아함과 지저분함, 차가움과 크리스털 같은 조화와 역겹고 정신없는무질서가 대조를 이루며 공존했다. 또한 자신의 권력이 이르는 데가 지금 서 있는 방과 지금 말을 건네는 사람을 넘어선다는 것을 늘 확인해야 하는 군주의 거주지였다. 궁전과 대귀족들의 저택을 제외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의 모든집들은 앞쪽의 높고 넓은 집에 사는 부자와 세습 귀족, 그리고 뒤쪽의 다닥다닥붙은 집에 몰려 사는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 사이의 대조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푸시킨 이후 러시아 작가들은 이 모든 이중성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난받은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니콜라이 고골보다 이것을 더 탁월하게 또는 긴박하게 포착한 작가는 아무도 없었다. - P184

먹고살기 위해 투쟁해야 했던 많은 남녀의 진정한 적으로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표트르 대제의 부하들이 늪지를 메우기 위해 수많은 불행한 노역자를 처음 동원했던 때 그랬듯 적대적이었다. 무심한 방문자에게는 따뜻하고 매력적인 도시로 보일지 몰라도, 고골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위를 지닌 기괴한 매력이 모든 인간의 감정보다 무게감을 지니는 현실과 동떨어진 장소였다. 이곳은출구 없는 끝없는 광장들이 이어지고 시간의 의미가 사라지는 익명의 도시였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이 도시의 모든 모순 중 가장 큰 모순을 형성하는 넵스키 대로가 있었다. 넵스키 대로는 사람의 마음을 끌면서 동시에 역겹게 하는 거리였다. "오, 이 넵스키 대로를 믿지 마라. 이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내 몸을 외투로더 단단히 감싸고, 마주치는 것들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든 것이 환상이고, 모든 것이 꿈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 라고 고골은 독자들에게경고했다.  - P187

아직 고귀한 자리에 오르지 못한 4만 명이 넘는 가난한 공무원의 대부분을이루는 하급관리들은 이처럼 궁핍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받는 월급을 거의 식료품과 하숙비에 다 썼다. 혼자서 온전한 식권 한 장을 사는 것이 부담되어 두세 사람이 시내에서 가장 값싼 식당의 식권을 공유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새 외투를 사거나 장화를 사기 위해서는 몇 달간 신경을 써서 저축하고 희생해야 했기에,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의 주인공이 자신의 새 외투를 도둑맞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읽고서 놀란 독자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도스토옙스키와 고골이 자신들의 작품에서 밤에 계단 밑에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오는 가난한 주인공에 대해 쓴 것은 사실 그대로였다. 그런 공간은 1840년대에 교육은 좀 받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일상적인 주거지였다. 19세기 중반에 다가가면서 상트페트르부르크 식잦등의 최고 계층과 밑바닥 계층의 격차는 이 도시의 귀족과 하층민을 나누는 격차만큼 커졌다. - P196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혁명 운동 지도자들은 공장 노동자들에게서 나왔다. 이들은 1840년대와 1850년대에 정부의 가장 가난한 하급관리들이 사는 환경조차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살았다. 1840년대가 되기 전까지는 공장 노동자들이 도시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숫자는 10년만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나 1만 2천 명에 달했다. 그러다가 비보르크 지역과 오히타 지역, 폰탄카강과 그 외곽 옵보드니 운하 사이의 몇 구역에 면직공장과 금속공장이 늘어나면서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막사와 공동주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P197

19세기 중반이 되자 노동자들은 넓이가 2미터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을 잠자리로 할당받는 일이 흔해졌다. 
이러한 잠자리도 부족해지자교대로 잠자리를 임대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널빤지로만든 막사 침상을 열두 시간씩 교대로 이용해야 했다. 다음 교대팀이 들어오면 첫 팀은 아프거나 건강하거나를 불문하고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1850년 이후 추한 가축우리 같은 공간과 더러운 공동주택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저렴한 주거지와 적절한 위생시설 설립은 늘어나는 프롤레타리아 숫자를 따라가지 못했다. 1860년대 후반에 공공보건의는 3만 톤 이상의 배설물이 건물 뒷마당이나 시내 빈민가에 방치되어 있다고 추산했다. 탐옥스러운 집주인들은 우천시 배설물 섞인 물이 흘러들어오는 악취 나는 방도 노동자들에게 세를 놓았다. 콜레라, 장티푸스, 폐병이 빈민가를 휩쓸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음주 문제는 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알코올 중독 사망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심지어 14세, 15세 아이들에게도 이런사고가 일어난다" 라고 도시의 하층민을 휩쓴 사회적, 도덕적 질병에 대해 한 시민이 한탄하며 일기에 적었다. - P198

1860년 이후 러시아의 다른 지역보다 급박하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이 두 세대 전에 당면했던 
모든 근대화의 딜레마와 마주쳤다. 
1861년 시행된 농노해방은 이후 30년간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량 이주를 발생시켰다.,,,,,,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도시"라고 말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1860년부터 1917년 사이 근대
성의 모든 힘에 굴복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변형된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 P210

1856년 크림 전쟁 종전 이후부터 1918년 볼셰비키가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내버릴 때까지 이 도시는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이 62년 동안 리시아 제국은 약 5천만 명에 딜하는 농도와 국가 농도를 해방시켰고, 산업혁명의영향을 고스란히 받았고, 외국과의 세 번의 전쟁과 세 번의 혁명을 겪어야 했다.
삶의 속도는 말이 끄는 마차에서 기관차로 바뀌었고, 전화와 전보는 제국의 거대한 차원을 이전 크기의 한 조각으로 줄였다. 이런 근대 시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대칭과 제국적 규칙성의 도시에서 현저한 대조를 지닌 대도시로 바뀌었다.
- P214

"정교회, 전제정, 민족성(Ipa B OCT&Eme, CAMOTEP xa Bite, Ha pouHOCTb.)은 니콜라이 1세가 내세운 통치 이념으로 그는 정교회 신앙과 차르의 절대 권력 아래 국가적 통합을 유지하고, 이 통합을 해치는 진보적 자유주의 사상은 탄압했다. 이 단어들은 1833년 반동적인 교육장관인 세르게이 우바로프가 교사들에게 회람한 서한에 처음 등장했는데, 니콜라이 1세가 이를 바로 채용하여 통치 이념의 근간으로 삼았고, 미하일 포고딘, 표도르 추체프 같은당대 지식인들이 이를 적극 지지했다.
- P216

1800년대에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1900년이 되자 40년 전에 비해 인구가 세 배로 늘어났다. 이 시기페테르부르크 시민 세 명 중 두 명은 이 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 출신이었다. 시민 세 명 중 한 명이 도시의 상점, 공장, 작업장에서 일했고 이들 여섯 명 중 한명은 여성이었다. 공장 감독관이 출산 휴가를 주지 않았기에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 마룻바닥에서 출산해야 했다. 모든 곳에서 근로 조건이 산업혁명 초기 10년간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을 닮았다. 긴 작업시간, 낮은 임금, 잦은 해고, 작업 태만이나 사고나 결근에 대한 높은 벌금 등 모든 여건이 노동자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고, 특히 임금이 간신히 20퍼센트 오른 데 반해 빵, 육류, 어류,
등유, 의복 물가는 두 배 이상 올랐던 1890년부터 1900년 사이에는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 P220

한 세기 전 러시아 전체에서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사람 수보다 많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20세기 초 교육을 받게 되었고, 이것은 사회와 정부 사이 대
화의 내용과 초점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이전 시기에는 소수의 식자층만 진보,근대, 사회 변화에 대해 토론했고, 그것도 정부가 허용하는 가장 좁은 틀 안에서만 가능했다.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자신들의 삶에 스스로 책임져야했고, 이는 미래에 대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와 미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1906년까지 전제정이 국가 입법 과정의 어떤 부분도 논제화하는 것을 계속 막아왔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 논제화는서구에서는 이미 삶의 큰 부분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에서 러시아인들은 공동체와 자기 자신들에 대한 책임을 떠맡기 시작했다. - P234

니콜라이 체르니셉스키Nikolay Gavrilovich Chernyshevsky(1828~1889)는 문예 및 사회 비평가, 소설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러시아 허무주의의 이론가로 꼽힌다. 오랜 유형 생활에도 불구하고 1860년대 러시아 혁명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았고, 1860년대와1870년대 러시아 민중주의자들과 플레하노프, 레닌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드르 게르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그는 러시아의 전통적 농민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사회를 꿈꾸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 P236

카라코조프의 총성은 러시아의 혁명가들과 보안 기관 사이의 목숨을 건 투쟁의 시작을 알렸다. 당연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삼은 이 운동은 전에는테러나 불안이 포함되지 않았던 이 도시의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버렸다. 

드미트리 카라코조프 - P238

니콜라이 1세와 측근들이 1백 명이 넘는 장교들을 시베리아로 유형 보내고 다섯 명을 교수형에 처하면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는 러시아의 가장 핵심적인압제의 상징이 되었다. 요새의 감방은 정부에 반기를 드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가두었고, 나중에 페테르부르크의 다른 감옥들이 범죄자들을 수용하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압제와 고문의 상징으로 건재했다. 일단 그 문 안에 들어가면 수감자들은 목숨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세계에들어서게 되었다. 이곳은 밤에는 심문, 그리고 종종 철저한 위협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그 외의 시간에 그들은 혼자였다. 성대를 사용하지 못해 약해지고 위축되고 있다. 낮은 알토 톤이었던 내 목소리가 가늘어지고, 갈라지고, 떨렸다.  - P244

때때로 이들은 유럽의 도시들을 혁명의 온상으로 만드는 경제적 상처에 대한 처방으로 사회주의를 내세웠고, 일부는 이런 제도가 러시아에서 가능할지를 질문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유토피아적 비전을 논의하는 서구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대화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국이 사상과 실제 행동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는 러시아에서 이것은 반란의 행위였고, 1849년 헌병들은 페트라셉스키의 집을 급습하여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을 체포하여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감옥으로 보냈다. 이 중에는 육군 공병에서 작가로 변신하여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저명한 문학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바있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 끼어 있었다. - P245

10년을 징역과 전방 사병으로 지낸 경험은 도스토옙스키를 러시아 전제정부를 옹호하는 데 헌신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다른 러시아인들의 생각은 반대로 움직여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만 갔다. 186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생들은 "여론, 문학, 교수들, 수를 셀수 없는 자유사상 집단이 우리와 함께한다.  - P246

표트르 크로폿킨Pyotr Alexeyevich Kropotkin, I Tp Anekeeemy KponOTKIE(1842~1921)은 러시아의 대표적 무정부주의자로 혁명적 사상으로 인해 1874년 체포되어수감되었으나, 2년 후 감옥을 탈출하여 41년간 스위스 프랑스 영국에서 무정부주의와 지리학에 대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며 지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러시아로 귀국했으나 이후 정권에 실망했다. 그는 중앙정부로부터 자유롭고, 자치적 공동체와 노동자들이운영하는 기업으로 이루어진 분권적 공산주의를 꿈꾸었다.
- P247

광장에서 죄수들은 교수대로 끌려 올라갔고 처형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십자가에 입을 맞추었다. 러시아식 교수대는 바닥이 아래로 떨어지게 만들어지지 않은 탓에 그들은 서서히 목이 조여오는 고통 속에 죽어갔다. 이런 무시무시한 사실 때문에 러시아에서 교수형을 집행하는 일이 기피되어 교수형 집행자는러시아 제국 전체에 한 명뿐이었다. 보통 보드카 큰 병을 다 마시고 끔찍한 직무수행을 준비했던 집행자 프롤로프는 4월 3일 여느 때보다 더 취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 명의 죄수는 사고 없이 바로 처형을 집행했지만, 미하일로프와 젤라보프의 올가미는 잘못 매고 말았다. 미하일로프의 올가미가 두 번이나 풀려 프롤로프가 세 번째로 그에게 올가미를 씌우자, 격분한 군중은 그를 살리기 위해처형대로 몰려들었다. 평정을 잃고 만취한 프롤로프는 젤라보프에게 만일을 위해 이중으로 묶은 올가미를 씌웠지만, 결과적으로 그를 더 천천히 죽게 만들었다. 마침내 감옥 의사가 죄수 다섯 명의 사망을 선언했다. 그러나 젤랴보와 미하일로프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몇 분이 더 걸렸다.  - P256

 189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을 선동할 두 젊은이가 이 도시에 도착했다.24세에 이미 머리가 벗겨지고 키가 165 센티미터도 안 되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랴노프는 친구들 사이에 ‘일리치‘또는 ‘늙은이‘라고 알려졌다. 엄격한 규율의 남자인 그는 자신의 행동을 위해 열정을 조절할 줄알았다. 한때 지방에서 법률가로 활동한 바 있는 그는 변호사로 익힌 귀납적 사고방식을 러시아의 노동자들을 정치적 광장으로 끌어내는 전술을 개발할 때 사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초기 시절 울라노프는 혁명 이론을 행동으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 그는 도시에 흩어져 있는 마르크시즘 연구 모임들이 단결하여 노동시간 단축, 높은 임금, 안전한 노동 여건을 주장하도록 설득했다. 후에 레닌이라는 혁명가의 이름을 얻은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첫발을 들이고 24년후에 라스트리가 건축한 스몰니 수녀원 계단에서 러시아의 통제권을 장악하게 된다.


율리 체데르바움(마르토프)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투쟁연합‘

보안대(Okhrana) ㅡ보안경찰 - P260

노동자의 삶을 경험한 이들을 결집시켜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투쟁연합(Union ofsiruggle for the Liberation of the Working Class)을 결성했다. 이 조직에 가담한노동자의 상당수는 대규모 면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로, 하루 열네 시간씩일하며 덜렁거리는 방직기와 다틀 방적기 사이에서 13킬로미터 거리를 매일 오 가야 했다. 이들이 짜내고 감아낸 면사는 따뜻하고 습기가 있어야 유연해지기에 이들은 덥고 습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당시 작성된 정부 보고서는 이들이 수척하고 초췌하고 늘 지쳐 보이며 가슴이 움푹 들어가 마치 병원에서 막 나온 환자 같았다"라고 기록했다. 너무 지쳐 식사하기조차 어려웠던 노동자들은 하루동이 끝나면 간신히 몸을 끌고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궁핍한 환경으로 귀가했다.  이들은 2주만 일하지 않으면 기아에 직면했다.
- P261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1월 9일의 비극은 황제의 모친인 마리야 페도로 브나Mariia Fedorovna의 말대로 ‘악몽과 같은 한 해를 불러왔다.위기에 위기가 꼬리를 물고, 비극 다음으로 또 다른 비극이 덮쳤다. 피의일요일 며칠 뒤 대공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알렉산드르 2세를 공격한 것과 같은 수류탄에 맞아 사망했다. 그런 다음 묵덴Mukden(선양)과 쓰시마 해협에서 러시아의 패배 소식이 극동으로부터 전해졌다. 병사와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수많은 파업과 농민 봉기가 발생해 니콜라이 2세와 신하들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224문의 대포와 124문의 기관총과 함께 수천 명의 보병과 기병을 상시 배치해야 했다.
- P268

1917년 봄, 여름, 이른 가을 동안 페트로그라드 시민들은 몇 차레나 바뀐 임시정부와 타협점에 이르려 노력했지만, 계속되는 전쟁과 혁명의 파도는 그해 10월폭발하여 레닌과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10월 26일 새벽 2시 소수의혁명전위대가 임시정부 각료들이 모여 있던 겨울 궁전의 회의실에 침입하여 이들을 체포했다. 러시아를 노동자의 혁명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노력했던 이들은몇 시간 뒤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들의 운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제국 러시아의 역사에서 마지막 아이러니의 한순간으로 남았다. "새벽 5시 5분 나는 베트로파블롭스크 감옥의] 54번 감방에 수감되었다" 라고 한 각료가 일기에 기록했다. - P273

아방가르드 화가인 유리 안넨코프lurii Annenkov는 1918년부터 1920년까지의 겨울을 ‘썩고, 얼어붙은 고기, 곰팡이 핀 딱딱한 빵조각, 먹을 수 없는 대용식품들의 역사적 시기"로 기억했다. 굶주린 사람들은 개, 고양이, 쥐를 잡아먹었고,
거리에서 발견한 죽은 동물들 시체를 뜯어갔다. 남자들은 발기 불능이 되었고,
여자들은 월경을 멈췄다. 모든 이들이 무엇이든 태울 수 있는 것은 다 태웠다. 안넨코프는 가구, 책장, 책을 태웠다. "만일 나무로 된 손발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그것도 태웠을 것이다"라고 그는 고백했다. 사람들은 버려진 아파트의 문을뜯어 난로에 태웠다. 그다음으로 버려진 건물을 뜯어냈다. "이것은 정기적인 대학살의 축제였다. 큰 건물들은 작은 건물들을 집어삼켰다"라고 그는 썼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물건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이때는 "사람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장작 한 개비였다"라고 안넨코프는 회상했다.  - P332

볼셰비키 정권이 1918년 봄 모스크바로 수도를 옮기자, 제국의 수도에서 소련제2의 도시로 격하된 페트로그라드 시민들의 고통은 더 커졌다. 이 시기에 모스크바에서의 삶도 힘들었지만, 페트로그라드에서의 삶은 더 힘들었다. 볼셰비키가 새 수도가 된 모스크바에 자신들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생필품을 우선적으로 배당했기 때문이다. 새 정권으로부터 호의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모스크바에 청원했다. 식량과 연료 부족으로 거의 파멸의 문턱에 이른페트로그라드 주민들은 수만 명씩 도시를 버리고, 생명을 이어갈 길을 찾아 자신이나 부모들이 떠나온 시골 지역으로 돌아갔다.  - P342

무엇 때문에 Zachem)?" "무엇을 위해 (Dlia chego)? ‘무슨 이유로 (K) chemu?" "어째서 Otchego?" "왜(Pochemu)?" 모든 사람이 계속해서 "왜?"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물었다. 사람들은 NKVD의 처형실로 끌려 들어갈 때, 등뒤에서 감방 문이 쾅 닫힐 때, 시베리아로 가는 긴 여행을 위해 가축운반용 화문하에 밀어 넣어질 때, 한밤중에 친구나 친지들이 끌려나갈 때 이런 질문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굶기고 고문하는 이들에게 이 질문을 했고, 영원히 사라질편지, 일기, 출간되지 않은 원고 뭉치를 두 팔 가득 들고 나가는 이들에게 이렇게물었다. 이들은 감방 벽에 이렇게 썼고, 화물칸 문에 손톱으로 이렇게 썼다. 이들은 수백만 번도 더 이 질문을 던졌으나 결코 답을 듣지 못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라는 말로 뭘 말하려는 건가? 사람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체포된다는 것을이해해야 할 때가 되었다"라고 아흐마토바는 분노에 차서 말했다.그때 즈음그녀의 아들이 다시 체포되어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남편은 무덤에, 아들은 감옥에 라고 그녀는 썼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오. "수십만의 레닌그라드 사람들이 사라졌고, 수백만의 러시아인들이 사라졌다.
처음에 대숙청은 인텔리겐치아와 독자적인 창의적 사고가 가능해 보이는 이들을 쓸어가버렸다. 그러나 그런 다음 숙청의 범위는 아흐마토바가 말한 대로 ‘아무 이유 없이 체포되는 사람들로 확대되었다. 도처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고,
레닌그라드에서 가족 중 누군가를 잃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 P357

1941년 숙청은 훨씬 더 큰 비극에 함몰되었다. 그해 여름 나치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봉쇄하면서 무서운 포위가 시작되었다. 이 봉쇄는 거의 9백 일 동안 지속되었고, 이 기간 동안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수백만 발의 포탄과 폭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얼어 죽고, 굶어 죽어갔다. 어떤 때는 레닌그라드의 운명이 가늘디가는 실 끝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작가 일리야 에렌부르크lia Ehrenburg가 쓴 것처럼 이 도시는 영원한 도시였고, 결국 살아남았다. 러시아 민담의 불새처럼 레닌그라드는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이 도시의 철저한 파괴와 부활은 페테르부르크의 긴 역사에서 가장 영웅적인 순간이 되었다.
- P358

그때 다차의 주인인 여자가 뛰어와 라디오에서 독일군이 러시아를침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알렸다. 핀란드와의 전쟁이 끝난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래서 엘레나는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았다. "내 나이 서른넷인데,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전쟁이야"라고 그녀는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에 더해, 레닌그라드 사람들에게 전쟁은 식량 부족, 연료 부족, 그리고 생필품을 찾는 데 극도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뜻했다. 그날 오후 주부들은 설탕, 유지, 버터, 소시지, 카사, 성냥 등 쌓아둘 수있는 물건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 P361

레닌그라드 사람 중 일부도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 중밤에 잠을 자다가, 낮에 직장에서 일하다가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수만 명을어떻게 잊겠는가? 대숙청에서 사라진 푸틸로프와 오부호프 노동자들은 어떻게되었는가? 교수들은 어떻게 되고, 시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발레와 오페라 쪽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당과 공산주의 이상을 위해 생을 바쳤음에도 ‘인민의 적‘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한때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사람들도 독일군이 진군해 오자, 이렇게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일부는 나치가 스탈린의 굴레에서 해방될 기회를 주지 않을지 질문했다. 러시아에 히틀러는스탈린보다 더 재앙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스탈린의 실각을 고대하던 레닌그라드의 많은 지식인들도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들은 스탈린의 실각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도시의 죽음보다.
더 중요한가를 생각해야 했다. 여름이 끝나기 전 모든 사람이 독일군 최고사령부가 7월 초에 발표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깨달았다. 레닌그라드를 갈아엎고, [.…]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 총통의 뜻이다.  - P363

수만의 시민들이 자신의 일과에서 시간을 내어 곡괭이와 삽을 들고 매일 작업했다. "하루 열두 시간씩 18일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 곡괭이를 들고 부지런히일해야 했다. 단단하게 굳은 땅은 바위 같았다"라고 57세의 여성이 신문사에 써보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여름 땡볕 아래서, 또는 비를 맞으며 작업했다. 어떤 때는 먹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일했다. 얼마나 많은 식량을 갖고 나가야 하는지, 얼마나 오래 들판에 나가 있어야 하는지 얘기해주는 이들이 없었다. 독일 공군기는 매일 공격해 왔다. 급강하하고,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소사했다. 엘레나코치나도 거의 총알에 맞을 뻔했다. 독일 공군기의 기관포 총알이 "작은 금속 도마뱀처럼" 자기 옆의 땅에 박혔다고 그녀는 후에 회고했다.
9월 1일이 되기 전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2만 6천 킬로미터의 참호와 550킬로미터의 대전차 호를 팠고, 640킬로미터 길이의 철조망을 설치했다. 이들은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 쌓아 올려서 3백 킬로미터의 장애물을 만들었고, 5천 곳의 나무 또는 콘크리트 사격 진지를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소련군은 뒤로 후퇴했다. "우리는 땅을 충분히 팠는데, 당신들은 제대로 못 싸운다"라고 그해 여름 한 나이 든 여자가 한 적군 장군에게 말하기도 했다." 소련군은 탱크와 야포가 부족했고 항공지원도 모자랐다.  - P365

독일군의 철저한 옥죔에 3백만 명의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경악했다. 한 사람도 탈출할수 없게 포위망을 만드는 작전이 전개되었다. "나는 한 사람도 전선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 보고서를 썼다"라고 전쟁 후 독일의 한 영양학 전문가가 한 러시아 장교에게 털어놓았다. "이들이 [레닌그라드에] 더 오래갇혀 지내면 결국 죽게 될 것이고, 우리는 단 한 명의 독일 병사도 희생하지 않고[... ] 시내로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라고 그는 진술했다.  - P369

그러나 어떤 것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그럴 수 없는 것보다 선호되었다. 1941년 말까지 도시의 거의 모든 애완동물, 가금류, 쥐가 사라졌고 주민들은 벽지의 밀가루 풀, 책 장정의 접착제를 긁어내 수프를 만들었다. 곧 그들은 점점 더 자포자기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너무 허기져[…] [벽난로 옆의 소나무] 통나무 조각을 집어 […] 갉아먹기 시작했다. [….] 거기서 송진이 나왔다"라고 한 여성이 세월이 흐른 뒤에 회고했다. 송진 향기가 내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 P375

사람들이 너무 약해진 나머지 어떤 질병도 이들을 죽음으로 이끌 수있었다. 1941년에서 1942년으로 넘어가는 거울에 레닌그라드에서는 감기, 독감, 궤양 등 어떤 가벼운 질병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않아 있다가죽기도 하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기도 했다. 어떤 때는 일터로 걸어가다가 죽기도 하고, 죽은 가족의 시신을 묘지로 끌고 가다가 본인이 죽기도 하고,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서 있다가 죽기도 했다. 많은 시체가 눈에 띄었다. 죽음은 […] 항시 살아 있는 사람들 주변에 넘쳤다. 사람들은 쉽게, 힘들이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고 죽었다. 죽은 이들은 전
천에 말리고 줄로 묶여 묘지로운반되었고, 묘지에는 시신들이 겹겹이 쌓였다. […] 모두 공동묘지에 묻혔다‘라고 코치나는 1941년 12월 말에 기록했다.흰 천에 쌓여 묶인 시신들은 이집트미라 같았고, 썰매에 실려 눈이나 얼음 위로 운반되었다. - P379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고난을 겪는 여주인공들처럼 1941년 말 여성들은힘을 모아 레닌그라드를 지켜냈다. 전투 초기에 남성들이 전선으로 나가자 여성들은 공장 일자리를 대신 채웠고, 도시의 방어선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참호를 팠다. 또한 집안일을 하고, 땔나무를 찾아오고, 물을 길어 나르고, 아이들을돌보고, 빨래와 다림질을 하고, 소량의 빵과 벽지의 풀과 평소엔 식용 불가능이지만 그 끔찍한 시절엔 먹어야 했던 온갖 재료들을 가지고 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봉쇄된 레닌그라드의 일상이 된 끝없는 줄 서기도 여성들의 몫이 되었다. 남성들은 줄 서는 것을 싫어했고, 여성들이 해주기를 바랐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시간은 소중하다는 생각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줄서서 기다리는 일을 잘 못 했다"라고 리디아 긴즈부르크는 지적했다. 남성들은줄 서서 기다리는 데 필요한 참을성을 지니지 못했다. "남자들은 일과 후에는 쉬거나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긴즈부르크는 설명했다. [그러나 일하는 여자들은 집에 돌아와도 계속 일한다." - P381

1941년에서 194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식량과 연료를 기다리는 동안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책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의작품을 읽었고, 그보다 수천 명 더 많이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었다. "책을일을 만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포위된 도시에서 『전쟁과 평화를 읽었다"라고긴즈부르크는 회고했다. 톨스토이는 용기에 대해, 민중의 전쟁에서 자기 몫을하는 사람들에 대해 결정적인 말을 남겼다. 아무도 생명에 대한 톨스토이의 태도의 타당성에 의심이 없었다. 독자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맞아. 나는 이에 대해 바른 생각을 갖게 됐어. 
그렇다면 이렇게 되어야 해"라고 그녀는덧붙였다. 책을 읽을 힘이 없는 사람은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작가와시인들의 작품 낭독이 포위 상태의 단조로움을 깨주었다. 이들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들은 인간 정신의 회복력, 기억의 힘, 이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의무에 대해 말했다. 그해 겨울, 사람들은 봉쇄 시대를 기록한 책을 준비했고, 일기를 썼고, 이에 대한 시와 소설을 썼다. 이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갈 미래의 지향점이필요했다. 라디오에서 더 이상 작품 낭독이 없을 때엔 메트로놈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고 정확한 간격으로 울렸다. 너무도 강해 죽을 수 없는한 도시의 쉼 없는 맥박이었다. 봉쇄 기간 내내 그 소리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항상 그곳에 있었다. 삶이 더 지속되지 못할 것처럼 보인 순간에도 그 소리는계속 울렸다. - P385

독일 공군의 폭탄이 상인 아케이드에 떨어진 9월 19일 밤, .
쇼스타코비치는 가장 가까운 친구 몇 명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청했다. 친구들이 왔을 때 쇼스타코비치는 이제 막 끝낸 교향곡의 첫 세 악장을 그린 악보에 둘러싸여 있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친구들은 놀랐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자 쇼스타코비치는 자기 부인과 아이들을 방공호로 보내고는연주를 계속했다. 폭탄이 천둥을 울리고 사이렌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대공포가쿵쿵거리는 와중에 그의 음악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소리의수준을 지닌 강력하고 날카롭게 울부짖는 클라이맥스라고 한 평론가가 나중에 표현한 것에 도달했다. 그의 친구들은 러시아의 문화에서, 그리고 전 세계 문화에서 진귀한 순간을 목격했음을 깨달았다. 쇼스타코비치와 더 높은 어떤 힘이합쳐져 그들이 사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할 수 있을 듯했다.
얼마 후 쇼스타코비치는 가족과 함께 항공편으로 볼가강변의 쿠이비셰프" 로 이송되었다.
 이 도시에는 그해 가을 후방으로 철수한 많은 예술가, 작가, 음악가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쇼스타코비치는 7번 교향곡을 완성하고 표지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위하여"라고 썼다. 후에 그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고향곡에 표현한 고뇌와 분노는 히틀러뿐만 아니라 스탈린에게도 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공포 정치, 노예제, 영혼의 압제에 대한 음악이다"라고 그가 말한것을 한 친구는 회고했다. "[이것은 단지 파시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대한 것, 그리고 압제와 전체주의 전반에 대한 것이다. - P386

아주 오랫동안 생각을 내부로 돌려왔던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이 보였다" 라고 파벨 루크니츠키는 7월 15일 일기에 적었다. "광장, 정원, 공원, 거리의 벤치에 앉아 채을 읽었다. 의자를 가져와 책을 읽는 이들도 있었고, 자신이 살던 폭탄 맞은 건물에서 안락의자를 마당으로 내와 거기 앉아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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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2-25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톨스토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모스크바보다 조금 더 따뜻한 지역 같아요. 백야도 있다고 하고, 제정 러시아 시대라서 그런지 낯선 느낌이었어요. 잘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페넬로페 2022-02-25 23:59   좋아요 1 | URL
저는 도스토옙스키 작가때문에 이 책을 시작했어요~~
여러가지 의미가 있어 좋게 읽고 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백야가 유명한가봐요.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금욜이라 그런지 아파트 주차장도 한산하네요
서니데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정선(삼천)은 백정의 딸이다. ‘백정이라는 표식 때문에 누구나 그녀를 무시하고 천대할 수 있다. 아버지는 일찍 죽고, 어머니마저 병들어 누워있는 딱한 처지의 열일곱 살 정선을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고 가려는 인간들도 접근한다. 그런 그녀를, 역전에서 옥수수를 팔고 있는 그녀를 한 남자가 바라본다. 첫 눈에 반한 것일 수도 있고, 약하고 가련한 것에 막연히 눈길이 갔을 수도 있다. 심한 박해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집안에서 자란 박희수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정선을 데려오는 것이야말로 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버려 천주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p60]

 

사실 그것은 허영심이었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신의 말씀을 실천할 정도의 신앙심이 강한 것도 아니었고, 부모를 떠날 만큼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한 순간의 충동이었다, 그는 정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정선이 자신에게 평생 빚을 지고 있다고 여긴다. 정선은 자신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고마워해야 하며, 남편을 떠받들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 하겠다...

박희수가 정선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분명 정선은 일본의 위안부로 끌려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선은 그 고마움으로 숨을 죽이고, 주인 노릇하는 남편을 받들고, 희수가 자신의 딸을 아내가 있는 사람에게 시집보내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김사량의 소설 빛 속으로에서 야마다 하루오의 아버지인, 노름꾼에다 사람도 아닌 한베에(모자란 놈)역시 조선의 요릿집에서 하루오의 엄마를 데리고 나온다. 자신이 그녀를 그런 곳에서 데리고나와 주었다는 이유로, 그는 그녀에게 왕으로 군림하고, 결국 그녀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한다.

 

[“.....하지만 그 사람, 저를 자유로운 몸으로 만들어 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는, 조선 여자입니다.....”

 

지금도 이런 노예 같은 감사의 마음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니! ...비겁하고 잔인한 한베에가 이 의지할 곳 없는 조선 여인에게 눈독을 들였다가 자기 여자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녀는 처음부터 그의 희생양으로 선택된 데 지나지 않는다. 폭력적인 반푼이 한베에에 비하면 이 사람은 얼마나 애처로운 여자인가....그녀는 매일 괴롭힘을 당했겠지. 무일푼으로 견디며 두 손 모아 그를 숭배했겠지....그녀 입장에서는 또 어쩌면, 자신이 일본인과 결혼했다는 것을 일종의 긍지로 여기고 이 역경을 살아내고 있거나 최소한의 위안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p53]

 

4대에 걸친 여인들의 이야기인 최은영의 소설, 밝은 밤은 작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여인들의 불행한 삶이 연속적으로 서술된다. 그 모든 이야기는 정선으로부터 시작된다. 공평하지 못한 제도와 관습, 가혹한 조선의 신분제도와 일제 강점기, 전쟁 등 지금의 우리 세대는 전혀 겪지 못한 고통스런 시기가 있었고, 그 한가운데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남녀차별이 있다. 슬프고 괴롭고 억울해도 그저 저항하지 말고, 포기하고 체념하고 살라고만 엄마가 딸에게 가르친다. 사위가 바람피워 딸이 이혼하는데도 엄마는 사위의 행복을 빌어준다.

 

밝은 밤과 김사량의 소설을 읽으며, 체한 것 같은 답답함과 슬픔이 느껴졌다. 항상 왜 그렇게 사람은, 특히 여자들은 힘들고 척박하게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누군가의 욕망과 이기심에 희생당한다.

 

작가 최은영은 삼천이라는 인물의 힘에 끌려 작품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삼천을 지탱해준 것은 새비라는 친구이다. 다정하고 따뜻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단호해질 수 있는 사람인 새비가 없었다면 삼천의 삶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희령에서 지연은 영옥 할머니를 만나며, 하루오는 미나미 선생님의 따뜻한 공감으로 변화되고 치유된다. 소설이 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은 결국 이런 단순하고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머나먼 곳에서부터 시작된 이 말들이 돌고 돌아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서럽다는 기 무슨 말이간. 슬프믄 슬프구 화가 나믄 화가 나지. 서럽다는 기 뭐야. 나 기말 싫구만. 너레 화가 난다구 말을 하라요. 나한테 기런 말두 못하믄 내가 너이 동문가. 그래서 마당에 앉아 내 가만히 생각해보니 서럽다는 말이 거짓 같았어. 서럽긴 뭐가 서럽나. 화가 나지.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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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2-24 03: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밝은 밤 보면서는 정말 울화가 치밀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새비와 삼천의 여성으로서의 연대의식, 우정이 소설을 끌어가는 힘이었던거 같은데 그들의 후손이 주인공의 어머니는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거 치고는 너무 또 봉건적 의식에 갇혀있다는게 저는 좀 작위적으로 느껴졋어요.
김사량의 저 소설도 조만간 찾아봐야겠네요.

페넬로페 2022-02-24 13:14   좋아요 3 | URL
네, 이 소설을 읽으며 4대째 내려오면서 이 여자들이 꼭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근데 시대적인 것이 컸기에 나중에는 이해가 되더라고요. 여성끼리의 연대가 없었으면 버텨내기 힘들었을것 같아요. 김사량의 소설로 그 시대를 좀 더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새파랑 2022-02-24 07: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의 이방인의 삶은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거 같아요. 그래도 새비나 미나미 선생님 같이 한 사람이라도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위로가 될거 같아요~! 저도 위의 두 책 다 너무 좋았어요 ^^

페넬로페 2022-02-24 13:17   좋아요 4 | URL
두 편의 소설로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시기를 볼 수 있었고 그 시대를 통해야만 인물들의 힘든 삶을 더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정말 나를 위로하고 품어줄 수 있는 친구가 중요해요^^
새파랑님과 같은 책 읽어 좋아요**

coolcat329 2022-02-24 09: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금 밝은 밤 4장까지 읽고 잠시 중단 상태인데 부지런히 읽어야겠네요. 저 시대 약자들의 삶은 참...현대를 사는 저희로선 알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했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02-24 13:20   좋아요 5 | URL
지금도 힘들다고 하지만 저 시대에 비해 여성의 삶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근데 한편으로 전 밝은 밤에서 지연의 엄마, 미선이 잘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쿨캣님의 감상 기대합니다^^

coolcat329 2022-02-24 14:24   좋아요 2 | URL
네 그 엄마 이상하더라구요. 아니 그 상황에서 어떻게 사위를 두둔하는지...위에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저도 좀 작위적인게 아닌가 싶었네요.

청아 2022-02-24 12: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의 글을 읽으니 울컥하네요. 공감이란것은 상대를 나와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따뜻한 울림과 치유가 있고, 차별과 타자화는 그런 공감이 없기에 비인간적이고 아파서 고통을 만들어 내는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페넬로페 2022-02-24 13:25   좋아요 3 | URL
울컥하고 속상하고 화도 났어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는 것이 어렵지만 또 한다면 해볼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시도와 노력조차 하지 않는것이 안타까워요.
아마 그것도 저절로는 안되고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미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책읽는나무 2022-02-24 13: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책을 냈던 시점의 인터뷰를 들었었는데, 페넬로페님의 밝은 밤 리뷰를 읽으니 또 반갑네요^^
최은영 작가는 좀 천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2-02-24 13:28   좋아요 4 | URL
저도 최은영 작가님 인터뷰를 들어봐야겠어요.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무척 힘들었다고 하는데 소설 속 내용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작가의 소설에 있는 그 따뜻함을 좋아해요^^

희선 2022-02-25 0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금이라고 아주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더 여성이 살기 힘들었네요 김사량 소설에서는 일본 사람이 조선 여자를 구해줬다고 생각하다니... 사람과 사람 사이는 대등한 게 좋겠습니다 누가 누굴 구해줬다가 아니고 조금 도와줬다 생각하고 그런 건 잊어야 할 텐데... 글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해도 막상 그런 일이 있으면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지 않으려고 해야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2-02-25 10:54   좋아요 4 | URL
사람과 사람이 대등하면 좋은데 모든 관계에서 그것이 쉽지 않으니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 어떤것이라도 이해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요. 시대를 뛰어넘기가 힘든 것 같아요^^

2022-02-25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5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3-08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2관왕 ! 당선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2-03-08 20:2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thkang1001 2022-03-08 18: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2관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2-03-08 20:26   좋아요 1 | URL
thkang님
이렇게 축하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새파랑 2022-03-08 1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책 페이퍼로 당선되셨네요 ^^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2-03-08 20:27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밝은 밤과 빛 속으로, 두 작품 다 넘 좋았어요**

2022-03-08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08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3-08 1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2-03-08 20:28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3-08 1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페넬로페 2022-03-08 20:28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드려용**

책읽는나무 2022-03-08 1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제가 좋아하는 책, 작가로~~^^
또 부럽습니다ㅋㅋㅋ

페넬로페 2022-03-08 20:30   좋아요 3 | URL
책읽는나무님, 감사합니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들, 넘 좋죠!
같이 읽어 나가며 공감할 수 있어 이 곳이 정말 좋아요**

청아 2022-03-08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려요 페넬로페님~😍👍👍

페넬로페 2022-03-08 20:30   좋아요 3 | URL
미미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2관왕 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

bookholic 2022-03-08 2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2관왕 두배로 축하합니다~~^^

페넬로페 2022-03-09 01:18   좋아요 1 | URL
북홀릭님, 2배로 감사드려요**
딸아이가 불홀릭님 닉네임을 보고 직관적이면서 잘 어울린다고 하네요**
찐사랑 아빠라고 전했습니다^^

희선 2022-03-09 0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또 축하합니다 두 권을 함께 이야기해서 더 좋았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2-03-09 01:19   좋아요 2 | URL
희선님, 또 감사드립니다.
읽으면서 이 두 권이 연결되어 글을 써 봤어요**
 
빛 속으로 -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진 이름. 평생을 방랑자로 산 작가 김사량의 작품집
김사량 지음, 김석희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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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동안의 일제 강점기를 경험해보지 않아도, 그 시대가 비극적이었으며 지극히 암울했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고 불행했었다는 것도, 그들은 우리들에게, 우리들은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시간과 시간이, 사람과 사람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영원히 끊어질 수 없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일본이 아시아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에 치가 떨린다. 그리고 조선과 대한 제국 사람들의 민낯도 보인다. 그 모습은 지금의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민낯이 보기 싫어 그때를 애써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버린다.

 

알라딘 서재 친구(새파랑님, 미미님)를 통해 작가 김사량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1914년 출생으로, 도쿄대에 입학하여 일본어로 소설을 썼고, 제국의 펜 부대로, 항일 운동가로, 한국 전쟁 때는 북의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1950년에 사망했다(역자 해설에서). 혼란의 시대를 산 사람답게 그의 이력은 파란만장하다. 일본어로 써진 소설을 번역된 문장으로 읽었지만, 그의 소설 전반에서 식민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조선인의 슬픔과 고뇌, 무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모두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데도, 누군가는 지식인의 사명으로, 항일 운동가로, 또 누군가는 일본의 앞잡이, 밀정으로,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김사량의 소설집, 빛 속으로는 도쿄, 서울, 강원도 산골, 베이징을 배경으로 하는 세 개의 단편 소설과 한 개의 기행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표제작인 빛 속으로는 도쿄 제국 대학에 재학 중인 미나미()’선생이 일본인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를 둔 야마다 하루오라는 소년에게 다가가는 이야기이다. S협회는 도쿄제국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일종의 빈민구제사업 단체로,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교육, 구매조합, 의료봉사활동을 한다(p25). (미나미)은 협회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남이 아닌 미나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조선인 이름을 고수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는 고민하지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는 변명을 한다. 사람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차림새가 지저분하며 음울한 아이, 하루오는 계속 미나미선생을 조선인으로 의심하며 주위를 맴돈다. 남은 이 아이의 처지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대하고 하루오 역시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내보인다.

 

[“조센징 따위 우리 엄마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구!”....

 

나는 조센징이 아니야. 나는 조센징이 아니라고! 그렇죠, 선생님?”

 

나는 그의 몸을 꼭 안았다. 내 눈가에 뜨거운 것이 울컥 솟는 것을 느꼈다. 이 군의 시퍼렇게 독이 올라 흐트러진 모습도, 이 소년의 아픈 울부짖음도 책망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p30]

 

조선인으로 일본에 살면서 그들이 겪는 정체성의 고민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무조건 부정하려는 사람과 조선인의 고유성을 지키려는 사람들 틈에서 남은 고뇌한다. 머리색이 다른 터키인의 아이조차 이 곳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무시당하고 차별 당한다. 자꾸 무기력해지고 지쳐가지만, 남은 하루오를 포기하지 않는다.

 

풀이 깊다는 도쿄대 의예과 유학생인 박인식이 고향인 강원도 산골의 화전민을 대상으로 그들의 생활을 조사하여 도움을 주고자 그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고향인 그곳에는 색의 장려 운동(조선 총독부가 흰 옷이 생산력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백색 옷의 착용을 금지했던 정책)’이 한창이다. 거의 대다수가 문맹인 주민들에게 군수인 작은 아버지는 통역을 대동한 채 일본어로 색의 장려를 위한 연설을 한다. 군청에서는 자기 관할에서만큼은 화전민을 살게 할 수 없다며 그들을 추방한다.

 

화전민들은 점점 깊숙한 산골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들을 도우러 간 인식을 거부한다. 세상의 제일 끝까지 내몰린 그들에게 여러 사이비 종교가 들어와 무지한 산민들의 비참한 생활에 빌붙어(p180)’ 그들의 얼마 남지 않은 것마저 뜯어낸다. 일제의 '색의 장려'와 사이비 종교의 '백의 숭배'가 맞부딪히며 민초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한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인식은 자신의 행동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기심을 구원받고자 하는 감상이 아니었나를 생각한다.

 

[여긴 아무래도 자신이 올만한 곳이 아니다. 정말이지 어째서 이런 여행을 나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이거야말로 자신의 감상벽을 적당히 채우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을까? 비참하다, 비참하다, 스스로 외치며 돌아다녔던 것이, 그것이 대체 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다는 말인가? -p175]

 

작가 김사량은 박인식을 통해 성경 마태오 복음 6장의 구절을 인용한다. 하늘의 새와 들의 꽃들은 뿌리지도 거두어들이지 않고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먹을 것을 얻는다. 하지만 그보다 못한 조선의 백성들이 있다. 그들의 생명과 생활조차 무도한 자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 신약 성경에는 4개의 공관복음서가 있다. 그 중 마태오 복음은 가장 예수의 말씀과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다. 작가는 빛 속으로의 남과 풀이 깊다의 인식을 통해 헐벗고 굶주린 자를 구원하려 한다. 그 당시 동경으로 유학 갈 정도로 선택된 지식인의 역할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안일한 유토피아이다. 소수의 의식 있는 사람이 못 배우고 가난한, 힘없는 사람들 전체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변화될 수 있는 약간의 희망은 가질 수 있지만 민중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은 지속적이고 강해야만 한다. 이 소설 속의 지식인은 나약하고 감상적이다.

 

천마1940년 전후의 서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미 모든 행정 구역과 상호들이 일본어로 되어있고, 조선인 역시 내선일체 한 몸의 모습이다. 오랫동안 나라 잃은 채로 산 덕분에 뻔뻔하고 유들유들하며 교활한 소설가 현룡과 같은 사람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 당시 문인들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지만 어느 조직이든 탁상공론만을 일삼으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일본인에 빌붙어 잘 살 수 있는가만 생각한다. 신사로 향하는 행렬은 끝이 없다. 일본인이 되고 싶고 인정받기 위해 같은 조선 사람을 헐뜯고 비굴하게 행동한다. 그런 거울 같은 모습들을 보며 조선인들은 지쳐가고 무기력해진다.

 

노마만리는 작가가 아내도 자식도 버리고 항일 전선으로 떠나는 과정을 담은 탈출기이다. 북경의 북경반점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다. 다들 정체를 숨기고 있지만 그곳에는 항일 운동가, 장개석의 테러단, 아편장수, 갈보장수, 공산당원, 밀정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시대가 하도 수상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어쩔 수없이 하나 선택해야만 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는 장부들의 삶이 눈물겹다.

 

뮤지컬 영웅에서 사형을 앞두고 있는 안중근은 간수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그가 꿈꾸고 바란 세상은 누구나 평범하고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저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원대하고 거창한 것이 아닌 소박한 행복을 위해 그는 목숨까지 바친다. 왜냐하면 그 소박하고 조그만 행복도 사실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전혀 몰랐던 김사량 작가의 소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저 깊은 곳에서, 나의 뿌리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하고 암울한 슬픔에 마음이 무겁다. 그 시대를 통해 지금, 뭔가 딱히 달라진 것도 없는 세상과 마주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로 그에게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느낌이다. 김사량이 지금 어떤 평가를 받든 그의 소설은 좋고 마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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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2-22 23: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별5개~♡ㅎㅎ
각 작품이 색달라서 김사량의 천재성을 실감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해설까지 너무 좋았던 책 😄 사진은 드림캐쳐 모양이네요? 직접 그리신건가요?!!

페넬로페 2022-02-23 00:49   좋아요 4 | URL
책을 읽으며 마음이 무겁고 울적했어요. 생각보다 김사량의 문장이 좋더라고요.
미미님 덕분에 좋은 책, 잘 읽었어요.
드림캐쳐 모양에 사진을 넣었어요 ㅎㅎ
그림 그리는 재주는 1도 없어요 ㅠㅠ

scott 2022-02-23 16:32   좋아요 3 | URL
그리셨다고 믿을래요 ㅎㅎㅎ

희선 2022-02-23 01: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일제 강점기는 누구나 살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글쓰는 사람은 더 괴로움에 빠졌을 듯합니다 그런 게 여기 담긴 소설에 잘 나타났을 듯합니다 오래 버틴 사람도 있겠지만, 쉽게 마음을 바꾼 사람도 많겠지요 전쟁에 나가라는 글을 아무렇지 않게 쓴 문인도 있었더군요 자기 나라 말도 못 쓰면 힘들겠습니다 한글이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때 한글을 지키려고 애쓴 사람도 많군요


희선

페넬로페 2022-02-23 08:25   좋아요 4 | URL
네, 희선님 말씀처럼 소설속에 그 고민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어요.
김사량 작가가 친일파 작가로, 저항작가로 평가가 엇갈리는데
여기 있는 소설들에서만큼은 그런 평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것이 있었어요~~
한국인이면서 일본어로 작품을 쓰려면 그 고통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고요^^

2022-02-23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3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2-23 07: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리뷰에 제 닉네임이 언급되다니 영광입니다~!! 아침부터 운이 따르네요 ^^ 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졌어요. 저도 좋았는데 페넬로페님도 좋으셨다니 기쁩니다~!!

페넬로페 2022-02-23 08:31   좋아요 4 | URL
아유,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새파랑님 덕분에 좋은 책 잘 읽었어요. 서재에 리뷰 올라오지 않았다면 제가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처럼 그 시대의 글을 읽었고 역시나 암울했습니다^^

mini74 2022-02-23 15: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문장들이 넘 슬픈데요 ㅠㅠ 페넬로페님도 별 다섯개라니 ~ 매번 읽어야지 하고 놔둔 책들. 읽고 싶은 책들이 왜 이리 많은지 ㅠㅠ

페넬로페 2022-02-23 17:00   좋아요 3 | URL
미니님, 저도 마찬가지예요.
올라오는 책마다 캡쳐해 두는데 한가득 입니다~~
미니님께서도 읽을 책을 증가시키는 제공자이십니다^^

책읽는나무 2022-02-23 15: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지~~찜해둔 책 중 하나이긴한데...언제 읽을지??^^

페넬로페 2022-02-23 17:02   좋아요 4 | URL
저도 찜해둔 책이 넘 많아요.
그러면서 책을 사고,
도서관에서 또 빌려오고가 반복입니다.
죽을때까지 이러고 살 것 같아요 ㅋㅋ

2022-02-23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3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3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3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2-23 1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본 성으로 미나미(南)도 희소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남이라고 쓰면 한국 이름 같기도 하네요.
임(林)도 하야시 라고 쓰면 일본 성 같고요.
잘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2-23 22:28   좋아요 1 | URL
전 일본어 전혀 모르는데 서니데이님께서는 잘 아시네요~~
하야시가 임이군요.
외국어도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니데이 2022-02-23 22:30   좋아요 1 | URL
저도 잘 몰라요. 그런데 일본 소설 보다보면, 비슷한 한자를 쓰는 경우가 조금 있긴 한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일본어는 요즘 좋은 교재가 많이 나와있어서 공부하기 좋을 거예요.^^
 
살림 비용 데버라 리비 자전적 에세이 3부작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백수린 후기 / 플레이타임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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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 가운데에서 오랫동안 잠영을 하다
물 위로 올라왔을 때 예상하지 못한 폭풍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안전한 배로 다시 돌아가거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폭풍 속의 혼돈에
그냥 자신을 머물게 할 수도 있다.‘ (p2)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20년의 결혼 생활을 접고 다시 혼자로 돌아간 사람이
자신의 ‘살림비용‘을 들려주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특히 그것이 책이라는 매체로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한 듯 하다.
책이 줄 수 있는 의미와 기능이 아쉽다.
난 이 책에서 어떤 감동을 받지 못했고
불끈 의지가 솟지도 않았다.
내 시간을 투자해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자신의 얘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지인이나
이웃의 재미없는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방해받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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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2-21 14: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 페넬로페님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군요.^^* 만약 귀에 들어간다면 마지막에 써주신 비유가 작가에게 아프게 닿을 것 같아요!ㅎㅎ

페넬로페 2022-02-21 16:56   좋아요 4 | URL
왠지 저는 좀 그랬어요~~
사람의 얘기들이 처음에는 사적으로 시작하는데 이 책은 계속 거기서 머문 느낌이라 조금 실망했어요.
넘 기대했나봐요^^

mini74 2022-02-21 14:4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미없는 할머니에서 빵 터졌어요. 친구들은 좋다는 책이 제겐 별로였던 적 다들 그런 경험 있지요 ㅠㅠ 근데 페넬로페님 속상하신 거 같은데 전 글이 넘 재미있어요. 페넬로페님 글👍

페넬로페 2022-02-21 16:58   좋아요 5 | URL
네, 제가 별점 다섯 개 준 책들도 어떤 분은 별점을 두 개나 세개를 주시니까요~~
미니님, 저 속상하지 않아요 ㅎㅎ

바람돌이 2022-02-21 16:0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이 책 딱히 안와닿더라구요. 내가 이상한가 해서 이 다음 책 알고싶지 않은 것들도 읽었지만 딱히....

페넬로페 2022-02-21 17:00   좋아요 5 | URL
다른 책이 상을 받은거죠?
담 기회에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새파랑 2022-02-21 16: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표지색감은 좋은데 글은 좀 안맞으셨군요? ㅋ 페넬로페님에게 안맞으면 저에게도 안맞겠군요 ^^

페넬로페 2022-02-21 17:02   좋아요 6 | URL
저한테는 약간 별로였는데
mini 74님, 다락방님은 별 다섯을 준 책이니 새파랑님께는 이 책이 좋을수도 있겠어요^^

서니데이 2022-02-21 21: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은 평이 많은 책이지만 잘 맞지 않는 경우는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각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다르니까요.
페넬로페님, 주말 지나고 나니, 2월이 조금 남았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페넬로페 2022-02-21 22:06   좋아요 5 | URL
네, 요즘 좋은 평이 많은 책 중 몇 권 은 저한테 맞지 않더라고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죠~~
바람이 엄청 불어요
서니데이님, 좋은 밤 되세요^^

2022-02-21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2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2-02-22 0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평이 갈리니 더 궁금해지는 책이네요^^ 모두가 엄지를 치켜드는 책은 정말 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2-02-22 00:59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 이런 경우에 읽고 싶은 맘이 더 생기시죠~~ㅎㅎ
감상평 기대할께요^^

희선 2022-02-22 0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다르게 여기기도 하겠지요 똑같이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2-02-22 10:34   좋아요 3 | URL
네, 사람마다 책에 대한 감상은 다 다르니, 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