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투병 소식을 들은 건, 친구가 대장암을 선고받고 2년이나 지난 후였다.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아 몸의 여러 장기를 부분적으로 떼어냈고, 12번이나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서울의 동쪽 끝에 사는 나는 일산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야했다. 가는 도중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친구를 대할지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라는 말로 모든 것이 대체되고 핑계가 되어 무심함을 가려주지만, 그것으로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었다.
살이 많이 빠졌지만 생각보다 친구는 씩씩하고 밝았다. 서로 안아주고 병세에 대한 근황을 주고받고는 친구는 곧바로 자신이 1년 전에 이혼했다고 말해 주었다. 이유를 묻자 ‘성격차이‘라고 했다. 성격차이가 크지만 아마 맏며느리로 살아 온 세월도 작용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잘 맞지 않는 성격이었고 이혼하고 나니 너무 편하다고 해서 그러면 더 일찍 이혼하지 왜 여태까지 살았냐고 했더니 친구는 ’그러게 말이야‘라고 응수했다. 그녀는 자신의 발병의 원인을 스트레스로 규정했고 나에게도 절대 스트레스 받으며 살지 말라고 했다.
서로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아내가 암 선고를 받고 두 번의 수술을 해야 했는데도 그녀를 떠나간 친구의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사랑이 없고 미움만 남았어도 아픈 사람을 두고 떠난다는 것은 같이 한 세월 전부를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어 씁쓸했다.
오래전부터 한석규 배우의 팬이라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꼭 본다. 왔챠에서 상영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도 한석규 배우가 출연해서 시청했다. 이혼서류에 도장까지 찍은 창욱과 다정이지만, 다정이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자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창욱은 수락하고 매일 다정에게 먹일 정성스런 요리를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친구가 생각났다. 원작도 읽고 싶어 눈이 오는데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왔다. 이 책은 실제 아내의 암 투병을 옆에서 도운 강창래 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책은 조금 밋밋했다.(그 밋밋함을 한석규 배우가 너무 잘 살렸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특히 환자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먹이는 것이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에는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라면 말고 음식을 거의 해보지 않은 사람이 암 투병을 하는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 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아내는 자신이 죽고 나서도 남편이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잘 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주고 떠난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왜 어떤 사람은 떠나야 하고, 어떤 사람은 남아 있게 될까? 창욱은 다정이 아프고 난 이후부터 그녀를 인간으로, 암 투병을 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친구의 남편은 끝까지 친구와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병이 난 친구를 안쓰럽게 여기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았겠지만, 자유로운 인생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허울뿐인 관계라는 것에 집착하고 친구를 구속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묻게 되었다. 너는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나? 그즈음 우연히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를 조금 보았다.(전편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잘 안 되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왜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두려 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어 영원히 남겨두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p.13]
다정하고 착한, 무엇보다 스스로 권위를 없앤(한편으로 이런 현상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남편의 별명은 맥가이버이다. 집안 구석구석 내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면 그 무엇이라도 해결해준다. 그런데 이 사람은 유달리 부엌일에 약하다. 음식에 대한 관심도 없고 당연히 그 어떤 음식이라도 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집안일을 배분한다. 나는 남편에게 음식을 해주면서, 남편은 다른 나의 부탁을 해결해주며 서로에게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라는 말을 한다. 사실이 그렇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살고 있다.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아프면 난 이 남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얻어먹지 못 하겠구나!’ 남편은 절대 강창래 작가처럼은 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먼저 죽어서도 이 남자는 최대한 간소하게 먹거리를 해결하겠지....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심란해지고 걱정되지만 그냥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자.
무엇보다 건강을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