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17일엔 누구의 소행인지(양쪽 다 상대방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자 지구의 한 병원이 공습을 당해 500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들 사이의 반목은 워낙 뿌리가 깊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을 벌이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제는 누가 옳고 그른지도 잘 모를 정도로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폭력적인 복수만 되풀이되고 있다. 어느 한 편이 그 땅을 떠나야만 약간의 평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이 암울한 소식을 들으며, 마침 잠자냥님의 소개로 읽고 있는 하워드 진역사의 힘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소제목이 홀로코스트를 기리며인데, ‘프로그레시브에 실린 이 글에 엄청난 반응(긍정과 비판)이 일어났다고 한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저자는 유대인 모임의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에 관한 강연 요청을 받았다. 그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 강의를 했지만 정작 강의의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유대인 600만 명의 대량 학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하워드 진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에서 죽어 간, 미국 정책의 희생자들인 수십만 소작농들에 관해 그날 강의를 했다.


[내 요점은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철조망에 둘러싸이거나 도덕적으로 게토화돼서역사 속의 다른 대량 학살과 고립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그 기억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잔혹함에 맞선 의분분노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유대인들이 겪은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p.84]

 

이 강의로 저자는 다른 유대인 교수의 항의를 받는다. 그 유대인 교수는 홀로코스트는 신성한 기억이며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서 다른 사건과 비교할 수 없다며 격분했다.


[다른 민족과의 결혼과 동화 탓에 고유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 일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일환으로 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 1967년 전쟁 이래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팔레스타인까지 확장하려는 계획과 사면초가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그리고 비유대계 정치인들은 수는 적지만 영향력 있는 유대인 유권자들한테서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홀로코스트를 이용했다분노로 가득 찬 유대인 유권자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려고 대통령들이 야물카(유대인 남성들이 머리에 쓰는 원형 모자)를 쓴 채 엄숙하게 연설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라-p.85]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유대인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고통과 역사에만 몰입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고, 보상만을 받으려 한다면 그건 이기적인 행동이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가 조금이라도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민족에게 저지르는 그들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비판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의 영향력이 워낙 큰 탓에 그들은 막강한 힘으로 로비를 벌이고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특별함 주위에 장벽을 두르는 것은 인류가 하나이고 우리 모두 피부색국적종교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행복추구의 권리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일이다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일은 세부적으로는 특별할지 몰라도 인류 역사의 다른 많은 사건들즉 대서양 노예무역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인간의 생명을 앞에 놓고도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주의 정신의 희생자가 된 수백만 노동자들의 부상과 죽음 등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을 공유한다.-p.86]

 

어쩌면 하워드 진의 말들이 오해를 불러 올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을 사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하려는 말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분쟁의 이유에는 분명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보상심리도 들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그것에 대한 댓글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양쪽으로 나뉜다.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을, 누군가는 팔레스타인을 나쁘게 보고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하워드 진의 말처럼 그 어떤 것도 게토화 내지는 고립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대한민국은 심하게 양 진영으로 나눠져 있고 각자의 영역에서만 생각하고 인식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이다. 이쯤에서 하워드 진이 한 말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새겨들으면 어떨까? ‘인류는 하나이고,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행복추구의 권리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것’,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야만 한다는 것(이것은 나의 말).....폴스타프님께서 무척이나 낭만적이라고 말씀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맥락이 있고, 납득된다면 인간은 언제나 낭만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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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19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홀로코스트는 잊지 않아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그 일만 중요하게 여기면 안 되겠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도 억압받고 죽임 당하기도 했는데...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생각하지 않는지...


희선

페넬로페 2023-10-19 08:42   좋아요 2 | URL
이런 이슈가 엄청 민감한 사항인데,
저는 이 글이 주는 메시지가 좋더라고요. 제가 항상 지향하는 생각이기도 하고요.
종교를 앞세운 전쟁이 다 그런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 더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면이 더 많겠죠.ㅠㅠ

독서괭 2023-10-19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일은 세부적으로는 특별할지 몰라도 인류 역사의 다른 많은 사건들, 즉 대서양 노예무역,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인간의 생명을 앞에 놓고도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주의 정신의 희생자가 된 수백만 노동자들의 부상과 죽음 등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을 공유한다˝ => 아, 이 부분 참 좋네요. 피해자가 언제까지 피해자이기만 하진 않는 것.. 단발님의 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고요.

페넬로페 2023-10-19 09:49   좋아요 2 | URL
인용한 문장 외에도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많았어요. 이 부분 전체를 인용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우리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아니기에 또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되는 부분인것도 같았어요.

그저 평화만을 바랄 뿐입니다 ㅠㅠ

새파랑 2023-10-19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홀로코스트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네요. 저는 저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어서 놀랍습니다~!

어떻게든 피해없이 분쟁이 잘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ㅜㅜ

페넬로페 2023-10-19 14:31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정말 색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얼른 빨리 평화를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청아 2023-10-19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며칠 전에 중고로 구입했어요.^^ 하워드 진의 말은 너무 당연해 보이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쉽지 않은 시각인가 봅니다. 지켜보는 다른 나라의 시민들까지 편이 갈리는걸 보면 해결의 실마리는 더 요원해보이고요. 그나마 최근에는 인근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대체로 받아들이는 분이기였다는데(경제 협력도 코앞이었던..)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란측이 테러의 배후라는 설도 힘을 얻고 있더군요.

페넬로페 2023-10-19 17:44   좋아요 1 | URL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홀로코스트가 천추의 한이겠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또 어이없는 일이기도 했구요. 쉽지 않겠지만 뭔가 공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과격단체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옆에서 들쑤시니까 그게 또 문제가 되고~~이란이라는 나라도 참 그렇죠?

이 상황에서 하워드 진의 생각이 무척 참신했어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23-10-20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워드 진의 책을 갖고 있는데 어디 숨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이래서 알라딘 서재를 좋아합니다. 저를 공부하게 만들거든요. 저는 노란색 표지의 책이에요.
평화롭게 살기에도 삶이 만만치 않은데 모든 전쟁이 빨리 종식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페넬로페 2023-10-20 19:1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알라딘 서재를 통해 계속 좋은 책을 알게 됩니다, 이 책도 그렇고요.
전쟁을 겪는 사람들이 엄청 고통스러울 것이고, 특히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이 걱정되네요. 빨리 분쟁이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그림들 -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
SUN 도슨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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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된, 우리가 거의 아는 작가들의 그림을 쉽게 소개한 책!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약간의 에피소드와 짤막한 설명들이 재미있게 읽힌다. 고흐, 피카소, 마티스, 샤갈, 마그리트, 호퍼, 리히텐슈타인, 키스 해링..언젠가 한번은 이들을 보기 위해 뉴욕 모마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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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논픽션의 페르소나는 대리인이 아니다. 논픽션 작가는소설가나 시인이라면 거리를 둘 수 있는 변명과 낭패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소파에 드러눕는 거나매한가지다. 설령 작가가 자발적으로 그리 한다 해도 이런 전략은 대개 잘 먹히지도 않는다. 대체 몇 년이나 소파에 누워 있어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넋두리와 푸념, 자기혐오와자기변명만 늘어놨다간, 작가 자신 말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루해할 텐데 말이다. - P11

작가의 대리인이 아닌 서술자는 자신의 사소한 관심사를 널리 공감할 수 있는 초연한 이야기로바꾸어, 무관심한 독자에게도 가치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엄청난 과제를 떠맡는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에세이나 회고록을 쓸 때는 그런 페르소니를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조명 도구나 마찬가지다. 이게 없으면, 주제도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회고록이나에세이를 쓰는 작가는 그런 페르소나를 빚어내기 위해 소설가나 시인처럼 자기 성찰이라는 견습 기간을 거치며, 왜 말하는가.
누가 말하는가를 동시에 알아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 P12

모든 문학 작품에는 상황과 이야기가 있다. 상황이란 맥락이나 주변 환경, (가끔은 플롯을 의미하며, 이야기란 작가의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감정적 경험, 혹은 통찰과 지혜, 혹은작가가 전하고픈 말이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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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5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보통 두 가지 경우가 생긴다. 책의 내용에 푹 빠져 작가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와 작가를 계속 의식하며 책을 읽는 경우이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 독서를 많이 하는데(주로 소설을 읽어 그럴 것이다), 백래시를 읽으면서는 계속 작가 수전 팔루디가 의식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너무 촘촘하게 서술된 내용에 한 번씩 지치기도 했지만, 마지막 부분쯤 갔을 때,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대 담론이나 무슨 주의(主義)보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팔루디가 했을 고민과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러 반격에 대한 부당함을 따지고, 세세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고, 법원의 판례와 책이나 연설문을 읽었는지가 보였다. 또한 그것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내 전달하고자 하는 절실함도 있었다. 너무 고생했다고 작가를 한번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저자가 피곤할 정도로 쪼개어 자세히 나열한 사례들은, 이 사회의 거대하고 부당한, 치졸하기까지 한 여성을 향한 반격에 대한 반박이었다. 설득력 있는 저자의 말들은 분명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사람들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백래시의 백미는 팔루디가 반페미니스트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을 논파할 때 드러나는 깊은 냉소와 서늘한 유머 감각이다. “페미니스트는 재미를 깨는 프로불편러라는 세간의 편견과 달리팔루디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때때로 낄낄거리게 한다책을 읽다 보면 고도로 직조된 빈정거림이 아니라면 페미니즘을 둘러싼 현실을 포착하고 설명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한국어판 해제 중에서]

 

책을 읽으며 어이없고 기가 차서 나도 낄낄거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백래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2016년에 출간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를 보고 나서이다. 이 소설과 영화에 대한 수많은 논란은 다 제외하고(페미니즘이든, 백래시든),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김지영이 왜 나도 살지 않았던 삶을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너희들만 그렇게 힘드냐?”고 말하며 시작된 젊은 세대의 남성들이 보인 여성에 대한 혐오의 원인이었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면, 더구나 골수보수정부가 집권하고 뉴라이트가 기승을 부리는 이 즈음에 198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지금과 상황이 비슷한 이 책이 어떤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전 팔루디가 밝힌 반격의 이유와 움직임은

 

-평등에 대한 남성들의 반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저항

-남성들의 경제적사회적 안녕을 위협한다는 불쾌감

-여성들이 거둔 대체로 소소한 성과(혹은 그저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인식)에 발끈

-여성들의 근근한 진보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잉 반응

-여성들의 정치적 발언을 막아 버림

-반페미니즘이라는 트렌드를 미디어가 교묘하게 주도함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성들의 삶의 역설반격에서 핵심으로 자리하게 될 그 역설을 처음으로 주류 청중들에게 제시하고 해설한 집단이 바로 언론이었다는 점이다그 역설이란 바로 여성은 많은 성과를 손에 넣었지만 대단히 불만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반격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대신 이를 유포하는 쪽을 택했다.]

 

-헐리우드의 합류(소심하게 체제 순응주의를 택함)

-반격의 출생지인 뉴라이트 집단의 혹독한 응징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믿음

-여성들이 학대를 좋아한다는 주장(구타당하는 여성들을 가정폭력을 자초하는 마조히스트로 취급

 

이러한 반격은 여성을 공격하기 위해 여성을 이용하고, 미스아메리카대회나 미용 산업으로 여성의 관심을 돌리려고 했다. 페미니즘을 옹호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입장을 뒤집어 반격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여성의 신비를 쓴 베티 프리던도 자기가 직접 쌓은 탑에 흠집을 내는페미니스트였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13일터14장의 부분이다. 여성들이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생각과 여성은 태생적으로 저소득 일자리를 선호한다는 편견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특히 블루컬러계층에서의 직장에서의 차별은 심각했다. 저소득층 남성들은 아내가 일하는 것을 원치 않음에도 그들의 수입 없이는 생활을 지탱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술을 마셨으며 일하러 나가는 것을 방해했다. 어떤 남성은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아내가 다니는 직장에 취업해 그녀를 괴롭히고 폭력을 가했다. 여성들은 같은 직장의 남성들로부터 성희롱과 폭력, 성폭행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일하는 여성의 가장 큰 적은 직장 내 남성 동료들과 남편이었다. 언론계에서 일하는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사방이 온통 바리케이트로 막혀 있다는 기분만 들어요노란 불빛이 번쩍이는 바리케이트요그리고 한 발짝 떼려고 할 때마다 그들은 또 다른 바리케이트를 내 앞에 던져 놓죠.” 하지만 법적인 싸움에서 패하고공포를 통해 군림하던 남편은 비참하게 죽고설거지나 하는 굴욕적인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자 했던 자신의 결심은 절대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 우린 이걸 바꿔야 해하고 말했다가 해고당했다면 그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가정사를 결정할 가부장의 능력이 퇴색된 데 대한 억울함은 여성 스스로가 출산을 통제할 기회를 빼앗았다. 여성들의 성적인 자유도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유타에서는 입법가들이 낙태 시술자들을 최고 5년까지 징역에 구형할 수 있게 만들려 했다루이지애나에서는 입법부가 10년의 강제 노동을 요구했고매사추세츠에서는 전기의자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안이 두 차례 제출되었다]

 

1800년대도 아닌 198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낙태 반대와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낙태 비용 지원 보조금이 줄어들자 여성들은 불법시술을 받았고 멕시코까지 가야만 했다. 거기서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는 여성도 많았다. 복지 수급자였던 아이다호에 사는 열세 살 소녀 스프링 애덤스는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을 하였다. 그녀의 엄마는 낙태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포틀랜드의 저렴한 클리닉으로 딸을 데려가려고 했지만, 스프링은 낙태에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총을 맞고 죽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1980년대에 낙태 반대의 상징은 아기 엄마가 아니라 태아였다.

태아는 산전 수술실에서는 주요 환자가법률 서적에서는 완전한 시민이법정에서는 핵심 원고가 될 판이었다실제로 1980년대 말경 태아는 어떤 영역에서는 살아 있는 아이보다 법적 권리를 더 많이 가졌다.]

 

임신한 여성의 건강보다 태아의 권리가 더 우선시 되었다. 하지만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인체에 유해한 환경의 작업장에선 여성 노동자들에게 불임수술을 강요했다. 산업 독성 물질 접촉이 남성에게도 똑같이 영향을 주는 것임에도 여성들만 일자리와 자궁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반격이 직장 여성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행위를 은밀히 진행했음에도 시어스 소송이 있었고,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근 10년간의 전투를 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한 다이앤 조이스, 팻 로랜스, 잔 킹의 사례를 읽는 동안 대학 1학년 때의 은사가 생각났다. 이 여성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지만 그 선생님도 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내 전공이 아닌 교양수업의 시간강사였던 선생님은 강의 도중에 한 번씩 자신의 처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곤 했다. 가족 수가 많은 시댁에서 살고 있었던 그녀는 어린 아이가 있음에도 공부를 하며 강의를 나온다고 했다. 시댁에서 해야 할 집안일이 많아 보통 와이셔츠를 두벌씩 겹쳐 다린다고 했다. 시집살이가 녹록지 않지만 그녀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말함으로써, 힘들지만 계속 해 나가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던 건 아닌지... 겨울이 되고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어스름 속에 뛰듯이 종종걸음치며 교문을 나서고 있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수업을 마친 우리들은 맥주를 마시러 갈 예정이었고 선생님은 급하게 시댁으로 달려가야 했을 것이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불쑥 선생님에게 자아실현 하세요!”라고 외쳤다. 선생님은 자신 앞에 있는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아실현 하셨을까? 아님 잔 킹의 말처럼 지더라도 시도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의 에필로그에서 단도직입적인 의제와 대중행동, 그리고 완전한 물리적 저항이 결합되어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단언한다. 어떤 여성들은 착한 인내심을 가지고 소심하게 도전했다. 하지만 이런 저항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적극적이며 당당하게 전략을 구사하며, 여성들이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해결책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책이다.


읽기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분량이 많고 도중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해서 거의 세 달에 걸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가 이 책에 여러 사례를 집어넣고 그것에 대해 끈질긴 반박을 했기에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읽기는 쉽지 않았다. 집 안에서, 카페에서,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KTX에서도 읽었다. 변화와 실천은 정확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계속 되새겼다.

 

-[ ]표시는 책의 내용을 인용했으며 페이지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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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10-09 14: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한 책이라는 말씀에 아프게 공감합니다. ‘변화와 실천에는 정확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도요. 저는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엄두를 내지 못해 미루고 있었는데 페넬로페님, 읽는 제가 후련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 이 책 저도 ..무거운 내용임에도 많이 웃었어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10-09 17:47   좋아요 3 | URL
이 책에 나오는 사례마다 할 말이 많았는데 그걸 다 적으려니 끝이 없을 것 같아 적당히 정리했습니다. 와, 정말 졸렬하고 비열하고~~아직 멀었지만 또 하나의 인식을 한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3-10-09 1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멋진 리뷰입니다.
저도 중간부분까지는 낄낄거리며 웃었어요. 뒷부분으로 갈수록 좀 마음이 안좋았었는데 인용해주신 부분들을 읽으니 기억이 새록합니다.
‘적극적이며 당당하게 전략을 구사하며 실천하기‘가 저항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말씀 꼭 기억해야 할 명언이네요.
e북으로 읽기! 페이지 수가 많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고생많으셨어요.^^

페넬로페 2023-10-09 17:52   좋아요 3 | URL
정말 기가 차서 웃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으리라 믿으려고요.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연대하며 움직이라는 팔루디의 말을 새겨 넣었어요. e북이 어디 다니기는 확실히 편했어요^^그리고 저에게 주는 칭찬, great도 슬쩍 넣었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3-10-09 18: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겨우 완독하고 리뷰는 못 쓰고 있는데 페넬로페님 넘 잘 정리해주셨네요!! 저도 작가의 노력이 참 고맙더라고요.
그 강사님… 시집살이에서의 도주에 성공하셨기를 ㅠㅠㅠㅠ

페넬로페 2023-10-09 18:10   좋아요 2 | URL
책은 잘 읽었는데 넘 내용이 많아 정리를 잘 못했어요. 작가가 저널리스트라 그런지 확실히 논리적으로 반박을 잘 하더라고요~^

저는 그 강사님이 자아실현 하셨을거라 믿고 있습니다^^

은하수 2023-10-09 1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페넬로페 님 리뷰와 모든 댓글에 좋아요 남기는 것으로 응원 대신합니다.
저도 곧 읽기에 동참해 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3-10-09 19: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은하수님께도 유익한 독서되시면 좋겠습니다^^

얄라알라 2023-10-11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페넬로페님, 멋지세요.

˝자아실현 하세요.˝
와이셔츠를 두 장씩 다리시던 그 선생님께 오래 기억될 응원이었을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3-10-11 11:57   좋아요 0 | URL
그때 ‘자아실현‘이란 말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아요. 그 말의 뜻을 잘 모르면서도 마치 궁극적인 목적인 듯 남발했어요 ㅎㅎ 그것이 무슨 의미든 간에 아마 그 강사님은 제가 열심히 응원한다는 것을 아셨겠지요!

yamoo 2023-10-14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페넬로페 님 시계에 눈이 가네요..
잘 어울리십니다요!!ㅎㅎ

페넬로페 2023-10-14 12:24   좋아요 0 | URL
아주 오래된 시계인데요.
제가 시계를 좋아해요~~
요즘 나오는 스마트워치보다 저는 그냥 시계가 좋더라고요.
yamoo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2023-10-17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7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7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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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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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을이 한창인 줄 알았는데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따뜻한 커피가 좋아지는 계절이다. 코스타리카 원두의 라 알퀴미아는 산미가 거의 없는, 무뚝뚝한 직진의 맛이다. 디저트와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다. 맛이 약간 아쉽지만, 남은 가을을 채워 넣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늘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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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0-06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무뚝뚝한 직진의 맛 ㅎㅎ 저는 쌀쌀해지니 커피보다는 슬슬 차가 더 땡기려고 합니다 감기조심하시고 금요일 저녁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10-06 22:11   좋아요 1 | URL
차가 몸에 좋은데 이상하게 잘 안 먹게 되네요. 그저 커피만 마시게 돼요.
서곡님,
주말 건강하게 잘 보내십시오^^

은오 2023-10-06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뚝뚝한 직진의 맛.. 맛이 아쉽지만 남은 가을을 채워 넣으면 괜찮지 않을까.. 크.. 100자평이 예술입니다 페넬로페님!! 😆

페넬로페 2023-10-06 22:13   좋아요 0 | URL
제가 사실 커피맛을 잘 몰라서 커피 리뷰에 계절을 많이 넣는 것 같아요. ㅎㅎ

독서괭 2023-10-06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뚝뚝한 직진의 맛이라니.. 어떻게 이런 감상을!!👍👍👍

페넬로페 2023-10-06 22:14   좋아요 1 | URL
가을이라 커피마시며 감상적으로 되는 걸까요!!
직진의 맛에 토스트 해 먹었어요^^

서니데이 2023-10-0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 있는데 산미가 없다고 하시니 한번 시음해봐야겠어요.
이제 날씨가 차가워져서 따뜻한 커피가 좋은 시기가 되었네요.
페넬로페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10-07 09:04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커피에 물을 많이 넣어 연하게 마시고 있어요.
서니데이님!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3-10-07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코스타리카 예전에 마셔보고 깜놀해서 그 후론 피했습니다. 넘 진해서요.^^;;
그집 커피가 진하게 로스팅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코스타리카만 내려 마시면 카페인 덕분에 잠도 잘 안 왔고...ㅜ
그래서 페넬로페 님의 ‘무뚝뚝한 직진의 맛!‘이라고 하신 구절이 무슨 말인지 확 와닿네요.^^
이 드립백은 #2번으로 로스팅을 해서 덜 진하려나? 좀 기대가 되긴 합니다.

페넬로페 2023-10-07 09:06   좋아요 2 | URL
이 커피가 미디엄 로스팅인데도 무뚝뚝해 약간 진하게 느껴집니다.
컬럼비아커피보다 더 무뚝뚝한 맛 같아요.
요즘 15000원을 넘겨야 무료배송이 되니 책 한권에 커피드립백을 넣으면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