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넬로페의 엄마,
엄마와는 같이 산 세월과
떨어져 사는 세월이 거의 맞먹는다.
자주 보지 못하기에 엄마랑 거의 매일 전화를 하는 편이다.
평생을 자식 먹이는 것에 과잉집착을 보이시는
엄마이기에 전화통화의 내용은 먹는 얘기뿐이다.
건강이 최고이니 잘 먹어야 한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잘 먹어야 한다.
고기도 먹고, 생선도 먹고, 과일도 먹고......
먹고 먹고 먹고 계속 먹어야 한다.
그렇게 먹는 얘기만을 하다가 오래간만에
엄마를 만나면 공유할 얘깃거리가 많지 않다.
그럴땐 고향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소식을 전해달라 한다.
그분은??
당숙모는?
사촌 오빠는?
엄마는 차근차근 그들의 근황을 나에게 말씀해주신다.
미처 챙기지 못했던 죽은 이들의 얘기와 함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 바턴‘도
엄마가 들려주는 고향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9주동안 병원에 입원해야했던 루시 바턴에게
엄마가 찾아 온다.
자발적인건 아니고 남편이 부탁해서이다.
엄마는 꼬박 5일을 의자에 앉은 채로만 있다.
결코 눕지 않는다.
어린 시절 지독히도 가난하고 부모에게 학대받은
루시 바턴.
그리고 가족을 떠나 삶을 살아나가는 루시 바턴.

그 시절 어려운 삶을 살아야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루시 바턴은 엄마로 부터
어린 시절에 대한 해명을 듣고 싶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지만
끝내 그녀의 부모님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자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닐 것이다.
환경에 의해서, 그저 그렇게 살아왔기에
넘을 수 없는 한계일뿐이다.

루시 바턴은
자신이 견뎌 온 힘들었던 삶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그 담담함으로 오히려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마음 한구석에 있는 슬픔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순간순간 울컥하는 느낌이 있었다.
내 아픔과 고통을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는건
거기에 그만큼의
성숙과 따뜻함이 있어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느끼며
루시 바턴은 자신의 삶을 다독여간다.
그런 그녀로 부터 인생의 소중함이 뭔지를 배운다.

그 따뜻함과 이해로
변하지 않는 엄마가
전화로 잘 먹어야한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알겠다고,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9-09-23 0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모님과 비교적 근처에 살아서 전화를 자주 안드리지만, 그래도 한동안 전화를 못 드리면 서운해 하시는게 부모 마음인 듯 합니다. 막상 전화를 드려도 특별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지만, 그저 목소리만이라도 듣길 원하는 것이 부모 마음임을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느끼게 됩니다^^:)

페넬로페 2019-09-23 08:55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처럼 저도 엄마가 가까이 계시면 좋겠어요. 전화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약간 추운 월요일 아침이네요 감기 조심 하시고 이번주도 화이팅 입니다**
 
이솝 우화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솝‘ 은 그리스어 이름 ‘아이소포스‘ 의 영어식 이름이며 노예 출신이다.
우화는 냉혹한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경향이 강한 까닭에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쉬워 예부터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애호되던 문학 장르이다.
삶과 결부된 직접적인 교훈과 신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솝 우화‘는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의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된 것 같다.
ㅡ옮긴이 서문 중에서

어릴 적 부모님께서 사주신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닳고 닳도록 읽었는데 거기에 ‘이솝 우화‘ 가 있었다.
그 짧은 얘기는 일단 재미있었다.
그때 그 글들을 읽으며 그 글에 담겨있는 교훈을
생각하지는 않았을거다.
그저 동물들이 엮어내는 에피소드의 기발함에
감탄했고 선하지 않거나 욕심부리는 동물들은 가차없이 불행에 빠지는게 무지 통쾌했다.
그래서 읽고 또 읽었다
재미있었다.

원전으로 읽는 ‘이솝 우화‘ 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대가
천병희씨의 번역이고 짧은 이야기마다 교훈이 담겨 있다. 이 교훈 역시 빠짐없이 그리스 원전에서 옮겼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는 ‘이솝 우화‘
왜이리 재미가 없지??
그 어떤 것을 봐도 가슴이 잘 뛰지 않고
권선징악을 믿고 싶지만 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미 속물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일단 탓해본다.
책은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것 하나라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그래도 요즘의 세상살이를 돌아보면
다시 힘이 빠진다.

‘이솝 우화‘ 는 다양한 카테고리로 구분되는데
내 마음에 든 것을 몇 개로 묶어보았다.

*위트있는 반전이 있는 문장;
ㅡ14(고양이와 닭들), 52(반 백의 남자와 작은 마누라들), 87(노파와 의사), 96(웅변가 데마데스)
97(디오게네스와 대머리)

*인간사 새옹지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쾌청한 날씨 뒤에는
반드시 폭풍이 분다는 것을 명심하자;
ㅡ23(돌을 잡는 어부들), 142(말과 전사)

*내로남불 하지 말자.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면서 내 허물은 보지 못한다.
겸손 하자;
ㅡ48(개미에게 물린 남자와 헤르메스), 124(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와 아테나와 비난), 232(램프)
329(두 개의 자루)

*자포자기 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며
그런 다음에 신에게 구원을 청해야 한다;
ㅡ53(난파당한 사람), 72(소몰이꾼과 헤라클레스)

*화를 내지 말고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한다;
ㅡ58(사람과 여우), 89(여주인과 하녀들)
234(벌들과 제우스)

*정의와 공정;
195(사자의 왕권)

*진실:
230(배부른 늑대와 양), 259(나그네와 참말)

*대다수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
앗!!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였어;
73(북풍과 해), 86(농부의 자식들이 반목하다)
318(장난치는 목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 라이프 - 내 삶을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난 확실하게 대답을 못할것 같다.
행복하기도 하고
행복하지 않기도 하고.

행복!!
하루에도 수 십 번 되뇌이는 이 말.
생일축하카드에도, sns 안부에도 행복하시라는
덕담을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행복을 체크하는데는
무심하고 게으르다.

최인철교수의 ‘굿라이프‘ 는
행복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굿라이프를 위한 삶의 기술,
의미있고 품격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여러가지 연구와 실험을 토대로 얘기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행복에 대한 정리를 해볼 수 있어 좋았다.
행복은 조건보다는 행복의 경험자체가 더 중요하며,
어디선가 파랑새가 나타나 나에게 행복을 거져다주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은 2가지이다.
1.심리주의자 기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의 기술
2.환경주의자의 기술; 마음의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애초부터 쉽게 행복을 경험할 수있는
‘상황‘ 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때껏 난 1번으로 산 것 같다.
자기통제와 당위로 이루어진 삶.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잡고 강한 정신으로
흔들리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살자고 다짐했다.
나의 멘탈이 흔들리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다시 마음 다잡고 자존감 높이려고 발버둥치고.
그러나 그런 삶은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걸
요즘에 와서 깨닫는다.
나의 마음은 강철이 아니라
상처받기 싶고 주위의 것들에 초월하기 어렵고
어느정도는 물질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2번으로 살고싶다.
부정적인 사건과 경험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사건과 경험을 늘이고자 한다.
작가는 애초부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처음부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처음부터
즐거운 일을 하라고 한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배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한다.

이기적이지 않은
지혜롭고 영리한 나의 행복 찾기를 시작하며
굿라이프를 위해 삶의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자 한다.
행복만을 따로 누리려고 하지 않고
기쁨,고통,보람,의미,즐거움,발전과 함께 있는
일상의 행복 만들기를 하겠다.

*행복의 본질을 쾌족으로 이해하자
쾌족이란 남의 시선과 기대에 연연하지 않고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삶의 자세이다.

*행복한 감정이란 외따로 존재하는 개별적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기분좋게 하는 다양한 감정 모두를
지칭한다.

*행복은 철저히 일상적이다.

*행복은 내 안에 무엇인가가 있는 상태,
관심 있는 것 하나쯤 담고 사는 삶이다.

*행복은 고통의 완벽한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려는 자세이다.

* [행복을 위한 11가지 활동]
명상하기
운동하기
친절 베풀기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 추구하기
감사 표현 하기
낙관적 마음 갖기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기
스트레스를 이기는 효과적 전략들을 사용하기
타인과 비교하지 않기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 행복을 향한 노력.
제자리로 돌아온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긍정할 줄 아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의 기술은 ‘비교‘다.
번면에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은 ‘관계‘다.

* [품격 있는 삶]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여행의 가치를 아는 삶
인생의 맞바람과 뒷바람을 모두 아는 삶
냉소적이지 않는 삶
질투하지 않는 삶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내 그럴줄 알았지" 라는 유혹을 이겨내는 삶
가정이 아름다운 삶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삶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굿라이프는 의미가 가득한 삶이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준다.

굿라이프란 쾌락과 의미를
균형있게 추구하는 삶이다.

굿라이프란 좋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다.
좋은 일이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는 일이다.

* [굿라이프 10계명]
좋은 기분
좋은 펑가
좋은 의미

좋은 사람
좋은 돈
좋은 일
좋은 시간
좋은 건강
좋은 자기
좋은 프레임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9-11 1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 갖고 읽은 책입니다. 실험과 연구의 결과가 나와 있는 책이 저는 흥미롭더군요.

페넬로페 2019-09-11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자신의 데이터로 쓴 글이라 더 신뢰가 갔습니다.
페크님!!
오늘 하루도 굿라이프를 위해**

카알벨루치 2019-09-1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다가 반납했는데 다시 빌릴까요 ㅎㅎ

페넬로페 2019-09-11 15:15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빌려읽기 딱입니다.
저도 빌려 읽었어요**

카알벨루치 2019-09-11 15:17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생각나면 빌려읽지요 명절연휴 잘 쉬시길 바랍니다 ^^

서니데이 2019-09-11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기분 좋은 연휴 되세요.^^

페넬로페 2019-09-11 20:2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께서도 어머니와 함께(항상 엄마를 언급하셔서요) 즐겁고 행복한 추석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초딩 2019-09-12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펠로님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페넬로페 2019-09-12 19:29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초딩님께서도 풍성하고 기쁜 추석연휴 보내세요**
 
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빛의 제국‘은
21년간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와 또 그 만큼을
산 남자,간첩 김기영이 북으로부터 귀환하라는 호출명령을 받고 하루동안 벌어지는 일을 나타낸 소설이다.

정확하게 몇년도인지는 모르지만 출간된 당시에
이 소설을 읽었고 이번에 다시 읽었다.
그때 난 무엇을 느꼈을까?
그 당시 김영하의 소설은 나오는대로 거의 다 읽었다.
빛의 제국은 하루동안 일어나는 일을 서술한 설정에
흥미를 가지고 그냥 읽었던 것 같다.
인물에 대한 이해나 깊이가 없는 상태로 말이다.

그리고 다시 읽은 ‘빛의 제국‘!!
일단은
유키 구라모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모던 타임즈
동방불패
LA폭동
아마츄어 무선통신ㅡHAM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비틀즈,휴거,Y2k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
영웅본색
9.11테러
이러한 단어들에 향수를 느끼며 그때의 상황들이
생각나며 세월의 흐름을 인식한다.

자신이 뭔가를 많이 안다는 듯
여기저기에 이러저러한 것을 갖다 붙인
작가의 문장에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김영하이기에 표현할 수 있는
영특한 기지에 감탄도 한다.

한번도 두통을 앓아본 적이 없는 주인공,김기영이
두통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듯이
이제부터 주어지는 기영의 삶이 두통없이는
살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트루먼 쇼보다 더 불행한 그가
왜이리 나에게 빙의되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삶이
행복과 환희보다는
그저 그렇게 펼쳐질 것 같다는 느낌이
김기영의 삶과 닮아있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신산하고 허무함에 슬픔을 느낀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에
모티브를 둔 이 소설은
빛과 어둠에 바탕을 둔 인간의 삶을 표현하며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를 섬뜩하게 나타낸다.
이 빛의 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생각해봐야겠다.

*‘너무 일찍 도착한 향수‘

*그는 ‘옮겨다 심은 사람‘ 이었으므로 적응이야말로
최우선의 과제였다. 변화를 가부하거나 방기할
자신감과 베짱이 있을리 없었다. 그것은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원주민들의 특권이었다.

*모든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연료통 밑바닥에
가라앉은 몇 방울의 냉소를 연료삼아 겨우 굴러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권태가 걸음걸음 바짓자락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그는 운명을
잊고 있었지만 운명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돼.
그 선택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된 거야.
그게 인간이 시간 여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야.
과거로 돌아가 아주 사소한 거 하나만 바꿔도
이 세상은,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거야.

*끔찍했던 어떤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것.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 혹시 그런게 인생이 아닐까.

*지금까지 난 인간들이 상당히 추상적인 고민들을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인생, 운명, 정치 뭐 이런 것......
그런데 오늘 보니 다들 살아남기 위해,
오직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들 사는 것 같아.
왜 나만 그걸 몰랐을까?

*몸 속의 피가 걸쭉한 죽처럼 천천히 흐르는 환상에
잠깐 사로잡혔다. 심한 무력감이 젖은 옷처럼
살갗에 들러붙었다. 성을 찾아나서는 측량기사
K처럼, 도대체 어디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 종착역이 어디일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시작일 것이다.
여기서 한 번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카프카의 인물들처럼 그 어떤
복잡한 폐쇄회로로 속을 분주히, 그러나 반복적으로
오가면서, 자신에게는 절박한 비극이 타인에게는
우스꽝스런 희극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계속 겪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였다. 이들은 동물 행동학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처럼 자신의 행동들을 무심히
내려다보리라.
짝짓기와 양육, 일과 놀이를 관찰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잊기 좋은 이름‘ ㅡ김애란 산문집

소설가나 평론가들의 산문을 읽다 보면
그들은 세상을 한없이 ‘들여다 보는 사람‘ 같다.
동시대를 살며 똑같은 사건과 슬픔과 억울함을 보지만
그들은 내가 보는 것과 달리 본다.
달리 보지 않는다면
그런 엄청난 문장들이 나올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이 보고 새겨보고 다져보면
이렇게나 시린듯 명료하고 절제되고 먹먹한
글을 쓸 수 있냔 말이다.
김애란 작가의 문장 역시 그렇다.
작가의 소박하면서도 번뜩이는 문장에 공감하고
그 탁월한 표현에 정말 적절하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소설가는 소설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의 말을 들으며 한번씩 아니 항상
난 그들 자체가 궁금하다.
그들이 살아가는 삶이 진하게 궁금해진다.
김애란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은
그 궁금증을 조금 풀어준다.

처음에 작가의 어머니가 운영한 ‘맛나당‘ 이라는 칼국수집부터 소개된다.
이 ‘맛나당‘은 작가의 단편소설인 ‘칼자국‘에서도
소개되었는데 그 작품에
˝어머니는 국수를 눈 감고도 썰 수 있었다. 오른손이
칼질을 하는 동안 왼 손 손가락 두 개는 칼 박자에 맞춰
아장아장 뒷걸음쳤다.˝ㅡ‘침이 고인다‘ p155
식구들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시작한 칼국수집, 맛나당에서의 반복된 노동으로 인한
어머니의 칼솜씨의 경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족들,학창시절에 들은 듀스의 노래,
고향의 풍경들을 발판삼아 성장해왔고
그것이 김애란이란 소설가의 토양이 되었다.
김연수,편혜영,윤성희등 동료작가들에 대한 글들과
언제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세월호와 쌍용 자동차해고자들의 얘기속에 이 사회와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다짐이 보이기도 한다.

나와 너와 우리를 부르는 이름들은 잊기 좋지만
그 잊음의 무심함에, 편안함에 슬쩍 기대고 싶진 않다.
정신차리고 세상을 들여다보며 이 모든 이름들을
기억하고 불러야겠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ㅡp124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 보고,조금 더 자세히 봐 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ㅡp133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ㅡp141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중요한 질문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ㅡp181

˝어떤 문장 아래 선을 그으면 그 문장과 스킨십하는 기분이 든다.˝ ㅡp238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ㅡp252

˝그 이름에 담긴 한 사람의 역사가.시간이, 그 누구도 요약할 수 없는 개별적인 세계가 팽목항 어둠 속에서 밤마다 쩌렁쩌렁 울렸다.˝ ㅡp258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ㅡp262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ㅡp269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르리라.˝ ㅡp298

이렇게 작가의 문장들이 그렇게 하라고 일러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니데이 2019-08-30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은 소설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에세이도 잘 쓰는 것 같아요.
글로 쓴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점이 많을 것 같은데도요.
페넬로페님, 여름이 지나가고 있어요.
시원하고 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페넬로페 2019-08-30 22:19   좋아요 2 | URL

네,저녁엔 바람이 차다는 느낌까지 들어요^^
금요일 저녁이라 행복하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