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사람의 살아온 모습을 상상하고, 그가 나타낸 말과 행동의 배경과 사연들이 궁금하다. 잔잔하고 단아한 김금희 작가의 문장은 사람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그것이 김금희 문장의 큰 힘이다.

 

배경의 묘사가 좋은 소설 복자에게는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우리는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보다 어느 순간에 맞닥뜨리는 특별한 이유로 관계 맺기를 더 많이 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깨질 확률이 더 크다. 돌아갈 수 없고, 돌이키기가 힘들지만 나는 나이기에, 나의 관계를 결정한다.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사건과 그 소송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의 주된 배경은 제주이다. 제주의 방언과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그러나 모티프로 사용한 소송의 과정은 자세히 서술되지 않았다. 난 그것이 더 좋았다. 힘없는 피해자들이 거대한 공룡과 싸우는 어렵고 끝없는 과정은 말 안해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작가는 그 과정 중에 도움을 주고 싶지만 오히려 빠져주어야만 그것에 도움이 되는 자의 상실과 억울함을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질투와 어리석음은 많은 후회를 낳고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 돌고 돌아 먼발치에서 바라본 과거는 아무것도 아니며, 많은 것이 이해될 수 있지만 그땐 어쩔 수 없는 내가, 순수하지만 덜 익은 아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어른이 된 우리들은 얼마나 또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영초롱이 돌아본 자신과 복자에게는, 이미 상처받은 유년의 아이들이 서로 기댈 곳을 찾는 동시에, 더 이상 자신의 것을 잃기 싫어하는 관계의 맺음과 끊어짐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만난 그들이 그 아무것도 아닌것을 넘기려고 하지만 또다른 난관에 부딪혀 두사람은 튕겨진다. 그런 두사람의 얼룩짐은 회복될 수 없는 듯 하지만, 복자에게 부치지 않는 편지를 쓰는 영초롱에게서 조금은 다가가려는 여지가 보인다. 나의 주체성으로 선택한 어떤 단호한 결정이라도 일말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먹먹하고 감동적이다.

 

두 번 이나 연달아 읽었는데도 이 소설에 대한 글쓰기가 어려운 건 복자에게가 쉽게 읽히면서도 그만큼 깊이가 있다는 뜻이 될 수 있겠다. 평범한 듯한 소재로, 사람과 사건들을 잘 묶어놓았다. 영초롱과 복자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순수하면서도 심지가 있는 청년 고오세가 난 좋았다. 주인공 영초롱의 직업이 판사라서, 판사의 일에 대한 것도 많이 서술되어있다. 잠시 그곳에 다녀와 그 세계도 들여다봤다. 영초롱의 상사인 이영춘 부장판사가 그녀에게 읽으라고 했던 볼테르의 관용론의 어느 한 부분도 이 소설을 형성하는데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에서 작가는 이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고 한다. 사표를 낸 영초롱과 더이상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하지 않는 영초롱의 동생 영웅은 이러한 것을 실패가 아니라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한다는 자세 아닐까?' 라고 한다. 이 구절이 내가 선택한 이 소설의 한 문장이다. 앞으로 실패라는 감정을 느낄 때 이 문장을 생각한다면 힘이 날 것 같다. 

어쩌면 그 말을 들었던 그 순간에 나는 슬픔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지 않았을까.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묵직한 추가 달린 듯 몸이 어딘가로 기우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으로? 여태껏 가늠하지 못한, 그럴 필요가 없었던 세상 편으로. - P15

내가 아빠를 미워했어. 아빠가 실패해서 아빠를 미워했어. 그런데 그러면 나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를 미워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빠를 안 미워했어.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 P61

그리고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도 했다. - P81

생선을 토막 내고 오징어를 손질하는 주인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파리떼가 그의 유일한 아우라 같았다고 고모는 적었다. 오직 그것만이 토막 난 생선처럼 종결되지도 않고 차양 아래 오징어처럼 다 물러지지도 않은 채 생이 계속된다고 증언하는 듯했다. 그 비린것에 달라붙는 파리떼처럼 칼과 도마와 고무장갑에 내려앉았다가도 공기 중으로 와락 떠오르며 우리도 산다고. 우리가 이렇게 구차하고 끈질기게 기꺼이 산다고. - P143

내게 놀라웠던 건 볼테르의 마지막 물음이었다. "이렇듯 가장 거룩한 신앙심도 지나치면 범죄를 낳는다, 해서 어떤 이들은 자비나 관용, 그리고 신앙의 자유란 사실상 기만이라고 냉소하지만, 그러나 진정으로 반문하건대 자비나 관용, 신앙의 자유 자체가 과연 그같은 재앙을 초래한 적이 있었던가? - P23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1-28 1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넬로페님이 밑줄 쫘악 하신 문장들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말 속에 작가에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네요.
이분에 작품은 ‘편혜영이 수상한 김유정 작품집에서 처음 읽었었는데 그때 느낌이 수상작보다 잘썼다고 생각했는데,,,

종교라는게 늘 그랬듯이 버텨내는 자들에게 기꺼이 삶에 복을 약속하지만 사람에 앞날이라는게 약속한데로 흘러가는게 아니라는것을...
복자에게 읽고나면 스쳐지난간 몇몇 사람들 모습이 떠오를것 같네요

페넬로페 2021-01-28 20:23   좋아요 3 | URL
네, 이 책엔 깊이 들여다봐야 할 좋은 문장들이 많아요~~
scott 님의 말씀대로 지나간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어요^^

붕붕툐툐 2021-01-29 1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마트 도서관에 「복자에게」가 5권 있기에 요즘 유행하는 책인가 난 전혀 정보가 없는데... 하던 차에 페넬로페님의 리뷰를 읽게 되니 너무 좋으네요~ 완전 나이스 타이밍
!!^^😄

페넬로페 2021-01-29 13:57   좋아요 2 | URL
쉽게 읽히면서도 깊이가 있는 책이예요~~
제주에 대한 묘사도 많아 가고 싶더라구요^^
 

알라딘 서재 친구인 scott 님이 요즘 매일 올려주시는 음악들이 참 좋다. 유튜브로 음악을 연결해주시어 듣기 수월하고, 그 음악의 유래와 거기에 딸린 시도 적어주시고 해서 하루 하루 종합선물세트를 받는 기분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시대이지만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그 정보를 충분히 활용하지를 못한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주는 좋은 것을 덥석 받아먹는 염치는 빠른 것 같다. 알라딘 친구분들이 해주시는 책, 영화, 커피얘기는 물론이고 각자 살아온 사연들, 현재 삶을 살아내고 있는 생생한 이야기들도 좋고 감동적이다.

 

scott 님이 올려주신 오늘,1월 25일의 음악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축제일인 '반스 나이트'에 대한 것인데 이 날은 '로버트 레비 번스'의 시를 읽고 전통 음식인 '해기스'를 먹는다고 한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인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의 한 구절을 올려 주셨는데 그 글이 너무 좋았다.(궁금하시면 scott 님의 페이퍼를 읽어 보세요)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그 '위스키' 라는 단어에 25일 오늘, 난 지난 시절 생각에 내내 발목이 잡혀버렸다.

 

나는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의 대학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대학 1학년부터 3학년때까지는 친척집과 기숙사를 전전했고 4학년때는 학교앞에서 하숙을 했다. 내가 하숙을 한 집엔 나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 동창인 L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L이 이웃에 있는 다른 하숙집에 사는 같은 고등학교 동창인 J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L과 J는 학교 다닐때 친했지만 난 J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그래도 같은 고향 출신이라 처음엔 서먹했지만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J의 하숙집엔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불문과 학생인 A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이 크고 얼굴도 상당히 예뻤다. 불문과에 어울리는 우아하고 좋은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였다. 그런 그 친구의 말에 사투리가 조금 섞여 있어서 소탈하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떤 술을 마시는지 몰라도 우리 때는 맥주, 소주, 동동주를 주로 마셨다. 우리 하숙집과 J의 하숙집 멤버들은 자주 모여 술을 마셨다. 집에서 용돈이 올라오는 날이면 돌아가며 한잔씩 술을 샀다. 다들 각박한 서울살이에 용돈이 모자라 허덕였지만 함께 술 한잔 마시며 얘기나누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누구나 그 자리를 좋아했고 인심좋게 한 턱씩 냈다. 이웃 하숙집의 J와 A는 둘다 주당인데다 유머가 풍부해 우리를 많이 웃겼다.

 

그런 우리들에게 한번씩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있었다. 광주 친구인 A가 집에만 다녀오면 '시바스 리갈' 한 병씩을 가져오는 거였다. 집에 쟁여져있는 위스키를 자기 아버지 몰래 가져온다고 했다. 그렇게 예쁘고 우아한 친구가 술 한병씩을 슬쩍 해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위스키를 가져오는 날이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소환되었다. 그땐 A의 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하지가 않았다. 그저 같이 만나 놀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약간 고급스럽게 보일 수 있는 위스키를 마신다는 것이 좋아 그 시간만을 즐긴 것 같다. 맛도 잘 모르면서 우리는 그 위스키를 마시며 시국에 대해 얘기하고, 친구의 연애사를 들어주고, 그 누군가의 뒷담화를 했다.

 

대학 생활 중 4학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자신의 진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데도 우리는 그렇게 놀았으니 지금 사회지도층 인사가 되어 있지 못한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의 하숙집 친구들은 평범하게 제 밥벌이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다들 지방 출신들이라 고향으로 내려간 친구들이 많아 거의 만나지는 못하고 소식만 가끔씩 주고 받는다. '위스키' 덕분에 오늘 그 시절을 생각했고 기분 좋았다. 그때만 생각하면 난 활짝 웃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처럼 우리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러 넣기만 하면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피곤함도 없었고 거리를 잴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그 시절이 빛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무라카미 하루키

 

하루 종일 수레를 몰아 달리지만

나루터 묻는 사람 보이질 않는다.

만약에 다시 통쾌하게 마시지 않으면

머리 위의 두건을 헛되게 하는 것이리라.

단지 잘못한 말 많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대는 마땅히 이 술 취한 사람을 용서하시라.

-도연명,'음주' 20수 중에서 20수의 일부분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01-25 23: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바스 리갈 너무 고급진거 아닌가요. 껌 하나를 세 등분해서 씹으며 친구들과 소주 마시던 생각이 나네요 *^^*페넬로페님의 대학생활이 참 따뜻하게 와닿습니다.

페넬로페 2021-01-25 23:28   좋아요 4 | URL
그니까요~~친구 덕분에 그런 엉뚱한 경험을 해봤어요 ㅎㅎ

scott 2021-01-25 23: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넬로페님 이페이퍼 쵝오 쵝오!!페넬로페님에 대학시절에 친구들과 나누던 언어는 바로 ! 위스키 ㅋㅋㅋ[사람과의 관계에서 피곤함도 없었고 거리를 잴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그 시절이 빛난다] 대학시절 에피소드 정말 위스키 에 톡쏘는 향처럼 솔직 담백하게~
하루키는 고딩때 처음 친구들과 바닷가에 모여서 집에서 몰래 가져온 위스키를 마셨는데 첫 모금 맛이 지푸라기 태우는 냄새 같은 맛이였데요 ㅋㅋ 그때 그시절 회고하면서 쓴 단편이 ‘헛간을 태우다‘

페넬로페님 칭찬에 기분 업 됨 내일(12시땡!) 음악도 기대하세요 (*˘︶˘*).。.:*

페넬로페 2021-01-25 23:53   좋아요 4 | URL
이 페이퍼에 적힌 대로 추억을 소환해 준 scott님께 감사드려요~~
덕분에 음악도 듣고 친구들도 생각했어요^^

cyrus 2021-01-26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생 때 술이라면 가리지 않고 마셨어요. 역시 제일 좋았던 술자리는 친구 하숙집에 모여서 같이 마셨던 일이에요. ^^

페넬로페 2021-01-26 10:25   좋아요 2 | URL
하숙집이라는데가 사실 그렇게 모이기가 좋은 곳이었어요 ㅎㅎ^^

붕붕툐툐 2021-01-26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추억 소환 페이퍼 넘 좋네요~ 하숙방을 경험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저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참 따뜻해지는 1인입니당~~

페넬로페 2021-01-26 23:33   좋아요 0 | URL
네, 위스키 덕분에 그때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갔다 왔어요~~
좋은 추억은 지금 현재를 살아갈 힘을 주는것 같아요~~
모처럼 즐거웠어요^^

han22598 2021-01-27 0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숙방의 좋은 추억이 있으시네요 ^^ 저 하숙방 추억은. 큰 개를 키우는 주인은 개를 무서워하는 저를 신경쓰지 않고 개를 마당에 매일 풀어놓으셨셔서 너무 무서웠던 기억의 하숙방1.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나도 추웠던 하숙방2. ㅠㅠ

페넬로페 2021-01-27 09:03   좋아요 1 | URL
han님의 추억엔 그런 사연이 있으시군요~~
타향살이를 하다보면 여러 힘든 일을 많이 만나죠^^
언젠가 han님의 얘기도 들려주세요**

라로 2021-01-28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숙을 해본적이 없어서 이 글이, 아니 페님의 경험이 무지 부럽네요!!
암튼, 위스키,,,제가 간호사 시험 보고 합격한 다음에 직장을 찾으려고 초조해하던 어느 날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고 (그 글은 얼음과 위스키에 대한 글이었어요) 좋은 위스키 검색해서 (비싼 것 어마무시 많지만) 저렴하면서 괜찮은 위스키를 두가지 사가지고 와서 꽐라가 됐다는.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하루키가 아주 위스키를 부른다니까요!!ㅋ

페넬로페 2021-01-28 18:17   좋아요 1 | URL
ㅎㅎ~~
하루키의 글이 우리를 위스키의 세계로 이끌어냈네요^^
항상 열심히 사시는 라로님을 응원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2-10 1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너무 좋네요!!!!!!!!

‘시바스 리갈‘ 같은 글이네요^^!

페넬로페 2021-02-10 14:5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고양이 라디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도연명 전집 대산세계문학총서 38
도연명 지음, 이치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기 불편하게 구성된 책은 저자와 독자와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이 책은 한자 원어를 읽을 수 있는 독자에게만 친절하다. 한자어에 대한 풀이와 주석만 있다. 한글로 번역된 글을 이해하지 못했을 땐, 그 부분에 대한 한자어를 찾아 거기에 따른 해설을 읽어야 한다. 시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1-23 2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번역?역주를 달으신 분이 이치수 교수님이라고 경북대 중문과 교수(전에는 영남대 계셨음) 원래 루쉰. 마오둔 중국 근현대문 전공이세요 도연명은 중국동진-남조 송대 초기까지 살았던 시인인데,,한글로 번역된것도 이해하기 힘들정도라면 담당 편집자들은 이해 하고 출판 했을까요?

페넬로페 2021-01-23 21:07   좋아요 3 | URL
한글로 된 글이라도 완전 이해하려면 힘들잖아요~~
더군다나 한자어는 고사성어와 여러 인물이 나오는데 한글로 바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한글로 번역된 글은 일단 한글에 대한 주석이 바로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레이스 2021-01-23 21: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주해는 중국 학자들이 해놓은 것을 인용하는것이죠
뒷부분398~408p의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래서 시마다 있는 각주도 다른 책과 거의 같습니다.
일단 번역된 시어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저도 어느정도 동의!
번역과 한시가 나란히 있어서 보기 좋았구요.
어떤 의미라는 것을 안 후에는 번역된 문장에 구애받지 않고 의미를 새길 수 있었습니다
다른 책과 비교했을 때 또 하나 장점은 사언시 오언시 사 부를 구분해 놓았다는 것!
번역은 최근에 나온 책도 마찬가지!
어차피 한시로 읽지 않으면 그 맛은 살리기 힘들듯요

페넬로페 2021-01-23 21:14   좋아요 2 | URL
의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1-23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전공때문이 아니라 번역자의 시어가 문제인듯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의역이냐 직역이냐의 고민인듯 합니다

붕붕툐툐 2021-01-25 0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이 잘못했네~ 페넬로페님 몰입을 방해하다닛!!😠

페넬로페 2021-01-25 10:01   좋아요 1 | URL
ㅎㅎ~~
네 저한테는 읽기 불편한 구성이었어요^^
 
도연명을 그리다 - 문학과 회화의 경계
위안싱페이 지음, 김수연 옮김 / 태학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도연명을 그리다》는 중국 동진 시대의 시인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도화원기'를 소재로 한 시와 그림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도연명' 그 자체보다 그의 글이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세하고 전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도서관의 '클래식' 동아리에서 선정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생각보다 많이 학술적이라 당황했다. 대충 책장을 넘겨보며 내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도 들었다. 그러나 동아리에서 선정된 책이고 랜선 모임을 앞두고 있었기에 책을 펼쳐들고 공부하듯 다시 읽어 나갔다. 각 페이지에 나오는 시를 읽고 그에 따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점점 책이 편안해지고, 도연명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여기서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음주' 20수 중 5수가 자주 나오는데, 도연명 전집을 따로 준비해 음주 20수를 비롯해 다른 시들과 산문들도 같이 읽었다. 여러가지 한자어와 고사성어를 찾아서 기록해가며 자세히 이 책을 읽어 나갔다. '도연명을 그리다' 는 이렇게 음미하듯 천천히 읽어야 빛이 나는 책이다. 

그냥 책장만 넘겨가며 이 책을 읽는다면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도연명은 동진 말에서 송나라 초 시대의 사람이다.

 

도연명은 이처럼 사회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고통을 겪으며,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기에 살았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과 이상의 괴리속에서 출사(出仕)와 퇴은(退隱)의 문제를 고민하는 도연명의 문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도연명은 8월에 팽택령이 되었다가 11월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이때 관리 생활에서의 괴로운 심경과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적은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 이다.-도연명 전집, 이치수, 문학과 지성사, p382~p383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는 그를 대표하는 시이다. 그는 80일 정도의 벼슬을 하였으나 독우(지방의 감찰관)의 방문을 앞두고 그들에게 구차하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만두고 그 유명한 귀거래사를 짓고는 표표히 고향으로 떠난다. 

 

'도화원기(桃花源記)' 는 도연명이 지은 유기(遊記)이다. 무릉지방의 복사꽃이 만발한 도화원에 세상을 등지고 모여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보통 유토피아를 표현할 때 자주 인용하는 '무릉도원'이 바로 이 '도화원기' 에서 나온 것이다.

 

 도화원기는 도연명의 이상을 표현했고 그 이상이 인간의 보편적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p147

 

'화도시(和陶詩)' 는 도연명의 시를 차운(次韻)하여 지은 '추화시(追和詩)'-옛사람을 추모하여, 그 사람이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지은 시-이다.

 

 후대 시인들은 적막하게 지낸 도연명의 삶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다투어 화도시를 지었다. 화도시는 내용도 다채롭고 그 양도 방대하다. .....중국의 수많은 시인 가운데 도연명처럼 국경을 초월하여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도연명은 중국 문화를 읽는 키워드이며, 특정한 이상적 삶을 상징한다.-p212

 

위안 싱페이의 '도연명을 그리다' 는 도연명 자체를 다루었다기보다 그가 남긴 시와 산문이 시대가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콘텐츠화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귀거래사와 도화원기는 수많은 후대 화가들의 그림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채국(국화를 따다)', '녹주(술을 거르다)', '호계삼소(호계에서 세 사람이 웃다)'등 도연명과 관련된 일화도 주요 제재가 된다. 그의 시의 운자를 따서 짓는 화도시도 유행처럼 번져갔다. 도연명처럼 속세를 떠난 은사, 망한 왕조의 유민, 높은 관직의 관료와 제왕(건륭제)까지도 화도시를 짓는다. 심지어 도연명의 삶과는 전혀 다르게 권력에 아첨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도 이 시류에 합류한다.

 

송대 이전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소개된 그림과 화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인간이란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보편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그림들을 보며 시대와 언어가 달라도 거기에 표현된 것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과는 맞지 않는 삶을 거부하며 갈건을 쓰고 옷자락 휘날리며 표표히 걸어가는 도연명의 모습에서 결연함을 본다. 마음 맞는 벗을 만나 고개를 크게 뒤로 젖히며 한바탕 웃는다. 자신이 쓰고 있던 갈건을 벗어 펼치어 술을 거른다. 공부에 뜻을 두지 않고 놀고 있는 자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술 취한 사람과 취하지 않는 사람은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국화를 따다가 먼곳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이와같은 소재들을 바탕으로 화가들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채롭고 멋있는 그림들을 그려낸다.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는 각 시대의 화가에게로 가서 그들 각자의 사연과 생각으로 개별화된 모습으로 완성된다. 도연명의 삶을  평가할 필요도 없고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의 삶의 모습들을 역사의 흐름에 실어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귀거래사에 화운하다. 음주 스무수에 화운하다. 빈사에 화운하다. 귀원전거에 화운하다등 그 무수한 것들의 연결로 도연명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 책은 그림 도록처럼 글과 그림이 짜임새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원문을 같이 실은 시의 해석도 좋다. 오언시와 사(辭)의 원문을 그 느낌에 맞게 잘 번역한 것 같다. 다만 본문의 내용에 대한 주석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지금 이 시대에 사는 내가 도연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의 태도나 행동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표현인지 아니면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숨은 안일함으로 치부해야하는지 갈등했다. 그러다 그 모든 것을 떠나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억지로 뭔가를 하지 못하는 인간 도연명을 만났다. 남들이 답답해하고 왜 저렇게 사느냐고 손가락질을 해도 할 수 없으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그런 사람이고 나에게도 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가지 않으랴

이미 마음이 몸에 부려졌다고

어찌 구슬프게 홀로 서러워하리오.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이 없고

다가올 일 뒤좇아야 하리.

실로 길을 헤맸어도 멀리 가지 않았거니와

지난날이 그르고 지금이 옳음을 깨달았네.

-도연명, '귀거래사' 중에서, p30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1-21 00: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귀거래사, 안빈낙도에 삶을꿈꾸며 노래 했던 도연명[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가지 않으랴 이미 마음이 몸에 부려졌다고 어찌 구슬프게 홀로 서러워하리오.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이 없고 다가올 일 뒤좇아야 하리. 실로 길을 헤맸어도 멀리 가지 않았거니와 지난날이 그르고 지금이 옳음을 깨달았네]이시 코로나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를 향해 말하는것 같네요 아파트 숲 벗어나 무릉도원에서 복숭아꽃나무 키우며 살고 싶은 1人

페넬로페 2021-01-21 01:00   좋아요 4 | URL
역시~~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scott님이 말씀하신 것과 똑같아요**

그레이스 2021-01-21 0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는 그분?
여기서 만나니 반갑네요^^

페넬로페 2021-01-21 10:14   좋아요 1 | URL
앗! 네, 반갑습니다**

미미 2021-01-21 08: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이 이 책에 빠져들었다는 과정이 인상적이네요.👍

페넬로페 2021-01-21 09:07   좋아요 4 | URL
리뷰쓰기전에 그 과정이 꼭 필요할것 같아 적었어요 ㅎㅎ

붕붕툐툐 2021-01-21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술적 책과 학구적 독자가 만났군요~ 페이퍼에 생각할 거리가 그득해서 넘 좋네욤~😍

페넬로페 2021-01-21 10:15   좋아요 2 | URL
붕붕툐툐님의 말씀이 화도시같아요^^
너무 좋은 해석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scott 2021-02-10 15: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 2관왕 !!
👏👏

페넬로페 2021-02-10 17: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송구스럽네요 ㅎㅎ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 가 나에게 왔을 때, 소문으로 이 책의 분량이 적다는 걸 알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기와 페이지 수가 훨씬 더 적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난 이 책을 남쪽 바닷가에 접한 소도시에 사시는 엄마를 뵈러가는 기차안에서 읽을 예정이었다. 번거롭게 다른 책을 한 권 더 가방에 넣어야 하는지 잠깐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이 책은 얇았다.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적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난 두 가지가 궁금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라는 것과 그 아버지의 세대가 저지른 일본의 만행들을 작가는 어느정도까지 언급했을지의 여부였다.

 

70세가 넘은 작가는 잔잔하고 담담한 문체로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얽힌 일화를 얘기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 어느 여름 날 오후 아버지와 해변에 암고양이를 버리러 간 일상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버려진 그 고양이는 자신들보다 더 먼저 집에 와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 대목에서 나도 한참 읽기를 멈추고 생각해보았다. 고양이가 어떻게 그들보다 먼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지 참 의아했다.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에도 고양이를 등장시킨다. 가족이란 이 믿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을 공유하며, 그 무한한 집적으로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첫부분과 끝부분을 이렇게 연결시키는 작가의 절묘함에 감탄했다. 짧고 압축적인 글에서 많은 것을 얘기할 수 능력이 있기에 이 작가에게 글은 길게 늘일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1917년에 태어난 작가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씨는 사립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사이며 학문과 문학을 좋아하고 하이쿠를 열심히 짓는 분이셨다. 그러한 배경이 하루키옹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청년이 된 지아키씨에게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된다. 길지는 않지만 세 번이나 징집되는 그 시대의 청년은 불행할 수도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침략과 잔인함의 전쟁을 거시적이기 보다는 미시적으로 한 청년에 초점을 맞춘다. 문학과 학문을 좋아했던 청년에게 그 전쟁은 힘들고 많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것이라고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결국 아버지도 사람을 죽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렇게 추측의 문장들로 아버지를 얘기한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전쟁에 참여한 그 쳥년들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를.

똑같이 잔잔하고 담담한 하루키의 문체가 전쟁을 얘기할 땐 굉장히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읽히는 건 단지 나의 느낌때문일까?

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전쟁이 한 인간-아주 평범한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다- 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를 말한다. 그리고 역사는 흐르고 연결되지만 그것을 메시지로 쓰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다. 아마 하루키는 역사의 한가운데에 선 지아키씨가 아닌, 지아키씨의 본연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으로.

다만 그것은 리얼하게 표현될 수 없기에 작가의 추측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다.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키옹은 20년 이상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겨우 화해 비숫한 것을 한다. 그 갈등이 뭔지는 모르지만 가족이란 우연의 결과로 필연을 짊어지고 사는 존재들이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에 난 그 두 사람이 안타까웠다.

 

예상치 못한 폭설과 한파, 코로나로 인한 걱정으로 난 결국 노모를 보러 가지 못했다. 기차가 아닌 집에서 '고양이를 버리다' 를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좋은 문장들을 읽으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고향에 계신 엄마를 생각했다. 정말 한 번 씩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너무 당신을 잊고 사는 딸이 원망스러워 아버지가 나타나는 것 같다. 그는 내가 여기 이곳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중요하고 신비로운 것을 계승할 수 있는 경이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자꾸 잊게되어 미안하다. 

 

세계적인 거장의 문장으로 표현되는 무라카미 지아키씨의 생애가 부럽다. 

불초한 난 이 밤에 잊혀진 내 아버지를 추억하는 걸로  미안함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 P51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p63~64 - P62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P87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 P93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 P97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고양이에 얽힌 또 하나의 인상적인 추억이다. 그리고 그 추억은 아직 어린 내게 생생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훨씬 어렵다‘ 하는 것이다. 보다 일반화하면 이렇게 된다.-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고양이를 죽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도 죽인다. - P92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1-10 10: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아버지가 오랜투병(엄청난 고통속에서 암,당뇨 합병증으로 고통받다가)을 지켜보면서 화해는 했지만 아버지에 과거를 아들이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솔직하게 세상밖으로 끄집어내서 사과를 해야할지 오랜세월동안 고민했었데요.
60세를 넘기고 부터 중국 난징일대를 돌아다니며 당시 일본이 점령했을때 자료들 수집하고 신문기사 아버지가 다녔던 학교들 샅샅히 뒤져서 조사를 했는데 서류를 펼쳐볼때마다 식은땀을 흘리고 손끝을 떨었을정도로 자신에 아버지가 잔혹한 만행에 주동자중 한명이였는지 아버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랬다고 하더군요.
주동자 명단에 하루키 아버지 이름이 있었다면 중국정부에서 내버려두지 않았을거고 중국내 하루키 책은 금서가 되었을겁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소속된 부대 지원부대에 물량공급이 늦어져서 행군을 못한 채 접정지역에서 몇주를 흘려보냈다고 하더군요.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한 원고를 5-6년동안 붙들고 있어서 담당 편집자들이 속이 바짝 타들어갔었다고 이글이 실렸던 문예춘추 잡지에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원했던 길로 갔던 아들이 아니였고 소설을 썼다고 아버지 한테 말했을때 아버지에 기묘한 표정을 잊을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하루키 아버지는 주지 스님에 아들이였지만 다른절에 입양될뻔했고 건강때문에 다시 가족품으로 돌아왔지만 가족품에서 아들로 사랑받고 자라지못했다고 합니다. 입양-파양-전쟁-투병 이런 삶을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하루키 자신이 70을 넘겨서 깨닫았다고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에서 작년초에 밝혔어요.
이런저런식으로 돌려서 말하던 하루키가 요즘은 대놓고 일본 정치인들 아베 스가 마구 비판해요
라디오 진행자 하루키옹은 수다쟁이 옆집 아저씨더군요 ^.^

페넬로페 2021-01-11 07:02   좋아요 4 | URL
네, 책에서도 작가의 아버지가
난징함락 그 후에 중국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하루키옹은 아버지가 난징의 주역이었을까봐서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었던 것 같아요^^
그의 아버지의 나이가 그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전쟁에 대한것을 빠뜨릴수가 없으니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여요~~
작가 후기에 역사의 흐름에 대한 썼지만 그걸 메시지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했어요**
scott님!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일어는 진짜 하나도 몰라요~~

바람돌이 2021-01-10 12: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역사적 범죄의 일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저 불안감. 그럼에도 그것을 묻는것이 아니라 불안에 떨면서도 찾아내고 일아내는 작가적 양심이 인상적입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지도 않는데 이런 에세이는 한번도 읽어보지 않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페넬로페님이랑 scott님덕분에 하루키의 새 매력을 알았습니다.

페넬로페 2021-01-10 14:51   좋아요 2 | URL
저도 바람돌이님과 마찬가지로
하루키 소설 매니아는 아니예요~~
근데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가 글은 잘 쓴다는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책도 짧은 분량에 많은것을
담고있어 역시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붕붕툐툐 2021-01-10 14: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부지도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화해를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러기에 제가 어린 나이에 황망히 가버리셔서..ㅠㅠ

페넬로페 2021-01-10 14:54   좋아요 3 | URL
붕붕툐툐님께서 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시겠어요~~
사람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그저 사랑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이런말 제가 하지만 저도 사실
실천이 잘 안돼요**
미움받고 미워하고 ㅎㅎ~~

붕붕툐툐 2021-01-10 15:07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저 사랑하며 사는게 답인데~진짜 그게 왜이렇게 실천이 어려운건지요?ㅎㅎ 다정하신 페넬로페님도 그러시다니 괜히 더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헤헷~ 우리 더 열심히 사랑해 보아요!!^^

서니데이 2021-01-15 2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도착했을때 생각보다 페이지가 작아서 놀라기도 했지만 내용은 좋았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글일것 같기도 하고요.
페넬로페님 좋은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1-15 21:59   좋아요 1 | URL
네, 분량은 적어도 거기에 있는
내용은 충분한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것 같은데
또 주말이 왔네요~~
서니데이님!
주말 잘 보내세요**


scott 2021-02-10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하루키옹에 고양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힘
(*´﹀`*) 축!!카 ㅋㅋ

페넬로페 2021-02-10 17:1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