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고 있다. 읽기 어렵다고 소문이 난 책답게 정말 읽기가 어렵다. ’율리시스가 어려운 건, 조이스가 어지럽게 펼쳐놓은 많은 상징과 실험에 대한 의미를 퍼즐 맞추듯 찾아야 한다는 데 있다. 영어원서로 읽는 것이 아닌, 단지 한글로 번역된 문장만으로는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가 개인이 가진 배경과 함께 신화, 역사, 철학, 아일랜드의 현실이 뒤섞인 문장들을 모국어로 읽는다고 해서 바로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영어와 고어를 사용한 언어유희는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율리시스책 자체를 읽어 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조이스가 이 책에서 다양한 문체 실험을 하고, 워낙 에피소드가 많아 경쾌한 느낌이 들고 재미있는 부분도 많다. 책의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잘 설명되어 있고, 책 하단에 주석이 상세하게 달려있어 그것을 참고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보다는 율리시스가 더 읽기 쉬웠다.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은 특별하다. 생각의 흐름대로 써 내려갔다는 작가의 의식에는 엄청난 사유와 집요한 관찰이 존재한다. 그 방대한 지식들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율리시스인간 의식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이유 이 책에서 그대로 알 수 있다. 그러한 것을 인식하고 이해해야 하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재미있기도 하다. 텍스트 자체로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공부하듯 읽어나가는 독서도 나름 매력적이다.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책을 읽어나가니, 책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들을 수 있어 좋다. 율리시스에 대한 주석서가 많이 있지만, 김종건 교수의 율리시즈 연구(硏究)’가 제일 도움이 된다는 그레이스님의 말을 들었다. 이 책은 가까운 도서관에서는 구할 수 없어 딸아이가 다니는 대학 도서관에 검색해보았다. 대학 도서관은 거의 모든 책이 구비되어 있으니 책도 빌리고 딸아이와 점심도 함께 먹기 위해 학교로 갔다. 소설을 읽으며 연구(硏究)’라는 단어가 들어간 주석서를 읽다니, 우리들의 열성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율리시즈가 담고 있는 성서의 내용과 사상, Homer의 오딧세이, Shakespeare의 햄릿을 비롯한 다른 작품들, Milton의 시, Thomas Aquinas의 신학, Aristotle의 철학, Dante의 신곡, Nietzsche의 철학, Goethe의 파우스트, Mozart의 돈 지오바니, Wagner의 오페라, 아일랜드의 민속과 음악, 카톨릭 종교의 지식, 신화의 전설, 유럽의 역사 등 그 예를 이루 다 들 수 없거니와, 이들 기존의 작품들은 그의 작품의 난해하고 다양한 소재의 바탕을 이룬다. 이러한 지식의 축적이 주인공들의 의식을 형성하는 바, 이는 조이스가 평소 동서고금의 문학, 철학, 역사, 신학, 예술 등의 고전에서 얻은 지식을 말해 준다. 율리시즈를 족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식원(知識源)과 그 전거(典據)를 파악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여기 그의 작품을 가리켜, ‘인간 의식의 백과 사전(encyclopedia of human consciousness)'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율리시즈 硏究의 서장에 나오는 율리시스에 대한 전반적 소개이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 담고 있는 이 많은 것들로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히 다가오지 않는다. 이 책에서 내가 어떤 것을 느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주석서의 도움을 받아 여러 번 더 읽어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조이스의 어려운 책 덕분에 딸아이와 좋은 시간을 가졌다. 학교안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율리시스 硏究라는 오래된 고전적인 책과 대학이라는 공간덕분에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공부가 하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硏究라는 글자가 들어간 제목의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시기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대학 내 카페의 커피가 싸고 맛있어서 더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현재 엄청 좋은 나이의 한가운데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딸아이는 알고 있을까?

 

[시간은 그들에게 낙인을 찍어 그들을 구속했다. 그들이 파기한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 안에 그들은 갇혀 있다. 그러한 가능성이 결코 실현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러한 일들은 과연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일어난 일만이 유일한 가능이었던가? 파란을 일으키는 말들이여. 허풍을 다루는 자들이여. -‘율리시스 1,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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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2-04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잃시찾보다 율리시스가 읽기 더 쉽다구요? 정말입니까??^^
전 넘 어렵던데요? 하고 책장을 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일리아스였네요ㅋㅋㅋ
독서 동아리에서 같이 읽기 하시면 도움 많이 되실 것 같아요^^
그 덕분에 따님과의 데이트!!
이 책은 페넬로페 님께 더없이 소중한 책이 되시겠어요.
그리고 따님을 바라보며 좋은 나이의 한가운데 자신이 서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하고 생각하시는 페넬로페님!!!! 그 말씀 왜 이리 와 닿습니까???ㅋㅋㅋ 저도 페넬로페님 따님이 부럽습니다^^

페넬로페 2022-12-04 15:12   좋아요 2 | URL
네, 어려운 책은 혼자서는 정말 읽기 힘들어요. 율리시스는 화요일마다 줌으로 같이 낭독하고 있어요. 읽을 분량이 정해지니 숙제하는 기분으로 목표달성이 되어요.
그래서 조금씩 읽어가고 있습니다 ㅎㅎ

저도 좋은 시절을 인식 못하고 넘어갔는데 아마 딸아이도 그럴 것 같아요. 우리는 그걸 아니까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것도 같고요.
항상 열심히 살고 계시는 책나무님과 함께 더 화이팅하고 싶어요^^

새파랑 2022-12-04 1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이 어려운 대신 딸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으시셔 다행입니다 ㅋ

<율리시스>를 읽으면 뭔가 논문을 읽는 기분이 들거 같아요 ㅋ 어려운 책도 척척딱딱 역시 페넬로페님은 천재 ~!!

페넬로페 2022-12-04 18:03   좋아요 2 | URL
제가 새파랑님께 매번 천재소리를 들어 송구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ㅎㅎ
율리시스가 어렵기도 하기만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요~~

stella.K 2022-12-04 2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사판으로 읽으셨다니 급호감입니다.
쌓아 놓은 책이 많아 많이는 소장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나름 애정하고 있죠. 일단 가성비가 좋잖아요.
이리 쓰시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람이 어려운 책에도 도전하고 그래야 하는데 말입니다.ㅋ

페넬로페 2022-12-04 21:57   좋아요 2 | URL
동서문화사판의 번역에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줄거리 요약이 잘 되어있고 주석이 하단에 달려있어 잘 읽히더라고요.
이 소설은 작가가 워낙 어렵게 쓰고 장난치듯 가볍게 쓴 부분도 있어 맘 편히 읽어도 괜찮을 듯 싶어요. 책의 두께에 비해 가성비가 정말 좋습니다^^

바람돌이 2022-12-04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즈, 잃사찾..... ㅠ.ㅠ
이렇게 읽으시는 분들 보면 그저 존경을 보낼 따름입니다. 저는 아직 꼭 읽어야 할 이유를 못찾았다고 계속 우기고 있을뿐입니다. ㅎㅎ
따님과의 대학 데이트 보기 좋네요. ^^

페넬로페 2022-12-04 22:00   좋아요 2 | URL
우연한 기회에, 때가 되어 등 여러 이유로 올해 두 소설을 한꺼번에 읽게 되었어요. 이 책은 한 번으로는 그 의미를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기회있으면 계속 재독해야겠더라고요.
읽어도 잘 모르니 그저 이 책을 읽은 사람으로 분류되고 싶어요 ㅎㅎ

coolcat329 2022-12-05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페넬로페님 독서모임하시는군요.
이 어렵다는 책을~~
공부한다 생각하고 읽어야 할 책인가 보네요.
따님과 대학 도서관이라니 부럽습니다 👍

페넬로페 2022-12-05 08:53   좋아요 2 | URL
정말 쉽지 않은 책인데 같이 읽으니 그나마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 같아요.
독서모임은 5년쯤 되었는데 확실히 책 읽고 난 후에 많이 남아 좋아요^^

서니데이 2022-12-05 2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서 이번에는 율리시스를 읽는 거군요. 따님과 함께 학교에서 좋은 시간 보내고 사진 찍으셨나봐요. 학생 시절에는 학교 수업 듣고 과제물 쓰고 그런 것들 하느라 바쁘니까, 좋은 시기인 걸 잘 알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언제든 공부하던 시기는 좋은 시기 같아요.
페넬로페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12-06 08:24   좋아요 2 | URL
네, 정말요. 학기중에는 수업듣고 계속 과제 제츨하고 시험 준비해야해서 많이 바쁘더라고요.
그래서 본인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입장에서는 항상 모자람이 보여서 ㅎㅎ
율리시스 덕분에 같이 점심 먹고 커피 마셨어요. 그동안 커피 잘 안마시더니 요즘 커피맛을 알아가네요^^

미미 2022-12-10 1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메일을 확인하다가 이제야 이 글을 읽었네요!! 저는<잃.시.찾>이 그나마 읽기에 더
수월했는데 페넬로페님 <율리시스>도 잘 맞으시나봅니다^^*
모임에서 함께 읽으시는 모습 어느때보다 부럽네요. 달려가고 싶은ㅎㅎㅎ
저 고등학교땐가 버스에서 어떤 중년여성이 ˝참 좋을 때야~˝하고 말해주었던거 갑자기 생각나요. 그때로 가고 싶어요(>.<)

2022-12-10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0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12-13 0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먼저 보셔서 율리시스 보기가 좀 괜찮은 거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율리시스 여러 사람과 읽어서 다른 책도 알게 되셨군요 그걸 찾아서 보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율리시스에도 여러 가지가 많이 들어 있군요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이 아는 걸 글에 잘 담아냈나 봅니다 그것도 쉽지 않은 듯해요 그것보다 저는 아는 게 별로 없군요


희선

페넬로페 2022-12-19 15:08   좋아요 2 | URL
생각보다 율리시스가 좀 특이한 구석이 많고 어려워 바로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여러 해설서를 참고하기는 하는데 문학을 이렇게 공부하듯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게됩니다.
그래도 읽었으니 율리시스에 대해 어떤 것이 나오더라고 제 나름의 판단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희선님
우리 다 마찬가지일거예요
아는 것이 별로 없는거요 ㅎㅎ
 
율리시스 1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37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성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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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언어유희, 신조어로 이루어진 조이스의 문장들! 작가를 둘러 싼 모든 배경이 미로처럼 얽혀있지만, 치밀하고 입체적인 설계가 놀랍다. 많은 주석서의 도움으로, 난해하고 복잡한 그의 글을 석호필처럼 천천히 정복해간다. 거기서 발견되는 특별함과 보편성의 공존! 천재 작가 조이스, 멋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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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28 16: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석호필
구글에서 급 검색 !

최근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ㅎㅎㅎ

페넬로페 2022-11-28 17:24   좋아요 3 | URL
저도 검색해보니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고 있다고 하다라고요.
근데 한국인 석호필씨도 있어요 ㅎㅎ

미미 2022-11-28 19: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역시 페넬로페님!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페넬로페 2022-11-28 20:40   좋아요 4 | URL
책으로 바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지만 공부하듯 읽어가며 책 속으로 한발한발 들어가고 있어요^^

mini74 2022-11-30 14: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과 뭔가 벽이 느껴집니다 넘사벽 ! ㅎㅎㅎㅎ 어딘가 책이 있을텐데 말이지요 ㅋㅋ 페넬로페님 백자평 읽다가 석호필에 순간 반가운 *^^*

페넬로페 2022-11-30 15:45   좋아요 3 | URL
미니님의 벽은 더 높고 두터운 철옹성입니다~~
석호필, 반갑죠!
이 이름도 아는 사람만 알텐데요 ㅎㅎ

서니데이 2022-11-30 19: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달라진 프로필 사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북마크 모음인가요.
색감이 예뻐서 시집인 줄 알았어요.
오늘날씨가 많이 추워서인지, 갑자기 겨울 된 것 같습니다.
오늘까지 11월, 내일부터 12월이예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2-11-30 23:57   좋아요 4 | URL
네, 마지막 13권 구입하면서 굿즈 샀어요. 책 표지 그림과 좋은 문장이 들어있어 좋았어요.
오늘 갑자기 날씨가 너무 추워졌어요 ㅠㅠ
이 계절에 추운게 맞지만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당황스럽기까지 해요 ㅎㅎ
서니데이님!
12월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래요^^

희선 2022-12-01 01: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스를 읽으시는군요 어렵다고 하던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두껍기도 하군요 1권 보신 소감이 멋지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2-12-01 19:20   좋아요 3 | URL
네, 확실히 어려워요. 텍스트 자체로는 이해가 어려워 여러 다른 해설서를 참조하고 있어요^^
멋지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2-12-02 10: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천재 작가들이 있어서 우리가 덕을 봅니다.^^

페넬로페 2022-12-02 23:32   좋아요 2 | URL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타고난 능력도 있고 많은 다른 글을 읽은 결과인 것 같아요.
백과사전처럼 많이 알고 있는 조이스씨 입니다^^ㅎㅎ

서니데이 2022-12-03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12월이 되면서 날씨가 너무 추워졌어요. 오늘은 어제보다 기온이 조금 올라갔지만, 한주 전을 생각하면 눈도 오고 날씨가 좋지 않네요. 내일은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고 하니,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12월이 되면서부터 연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하루하루 날짜가 더 빨리 가고 있어요.
매일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12-03 21:18   좋아요 2 | URL
12월 들어서면서 넘 추웠는데 오늘은 기온이 많이 올랐어요.
내일부터 또 추워진다고 하네요.
정말 12월이라서 그런지 날짜가 엄청 빨리 달리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 알차게 올 한해 마무리해야겠어요^^
 

엘리만은 그의 밤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미련 없이 태양과 작별한 엘리만에 매료되었다. 
승천한 그의 그림자에 매료되었다. 그의 운명의 신비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엘리만은 해야 할 많은 말을 두고 왜 침묵했을까? 나는 무엇보다 엘리만처럼 할 수 없어서 괴롭다. 침묵하는 사람, 진정으로 침묵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늘 자신의 말의 의미 - 그 필연성-를 묻게 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말이 어줍잖은 객설은 아닐까, 
혹시 언어의 진흙탕이 아닐까 생각하게된다. - P16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 희망 없이 그래도 쉽게 체념하지 않으면서, 집념과 탈진과기쁨을 맛보며 세상을 더 낫게 만들겠다는 한 가지 목표로 쓴다. 눈을 부릅뜨고 전부 보고 하나도 놓치지 말 것. 눈을 깜빡이지 말고, 눈까풀 아래서 쉬지도 말고, 모든 것을 보려다가 자칫 눈이 망가질 수있다는 위험까지 감수할 것. 하지만 증인이나 예언자와는 다르다. 그렇다. 그렇게는 아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가련하게 혼자 서서 떨고있는 보초, 자신의 죽음과 도시국가의 종말을 알리는 섬광이 솟아오를 어둠을 지켜보고 있는 보초처럼 보아야 한다. - P62

아마도 모든 작가들이 그럴 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고뇌 때문이었을것이다. 우리가 비판한 것은 사실상 우리 자신이었고, 우리가 표현한것은 무능한 우리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출구 없는 동굴안에서 쥐들처럼 그 동굴 속에 갇힌 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P67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게 바로우리 삶이야. 문학을 하려고 애쓰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학에대해 말하는 것. 말하는 것 역시 살아 있게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이니까. 문학이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아무리 무용하고 아무리 비극적인 희극이고 무의미할지언정 그래도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닐 수있지. 우리는 문학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듯 굴 수밖에 없어. 이따금, 아주 드물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끔 정말로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우리가 바로 그 증인이야, 파이.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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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16 18: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프랑스에서 최근 등장한 신인인 모양이네요.
표지는 여러번 보았지만, 이름이 낯선 것을 보면 앞으로 조금 더 소개될 수도 있겠어요.
페넬로페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11-18 00:55   좋아요 3 | URL
네, 저도 처음 들어 본 작가예요.
이 책으로 콩쿠르상을 받은 작가이니 궁금하더라고요. 최근에 읽은 압둘자자크 구르나 작가도 아프리카인이라 세네갈 출신의 이 작가와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았어요^^

파이버 2022-11-19 2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프로필 사진 바꾸셨네요! 잃시찾에 대한 페넬로페님의 애정이 돋보입니다~

페넬로페 2022-11-20 00:25   좋아요 3 | URL
네, 파이버님!
올해는 잃시찾 읽느라 다른 책을 많이 못 읽었어요. 근데 내년에 다시 읽어야해서 잃시찾 책갈피로 1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2-11-25 2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번주도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낮에는 따뜻하고 좋았는데, 벌써 11월이 많이 지나고 마지막 주말이 되었어요.
날씨가 이제 더 추워진다고 하니,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11-26 22:31   좋아요 3 | URL
요즘 좀 바빠 댓글이 매번 늦어지네요 ㅠㅠ
11월의 날씨가 넘 좋았는데 오늘부터 추워지네요.
이제 겨울을 준비해야겠어요.
서니데이님!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레삭매냐 2022-12-01 19: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어제 이 책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다른 책을 샀더라는.

결국은 사게 되지 않을까요...

페넬로페 2022-12-01 21:28   좋아요 3 | URL
초반에 약간 중구난방이라 몰입하지 못하고 잠시 멈추어 있는데 곧 잘 읽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문장과 순간
박웅현 지음 / 인티N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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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이런 책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박웅현이라는, 이름만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사람이 왜 이런 책을 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독자의 성원을 많이 받아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이 책은 왼손으로 책의 겉표지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나머지 부분을 잡고 그냥 휘리릭 넘기며 읽어도 되는 책이다. 양장본, 많은 여백, 두꺼운 재질의 종이, 거기에 저자가 좋아하는 여러 작가의 문장들... 그리고 저자의 감상과 느낌이 조금 적혀있을 뿐이다.

 

[“나의 조건을 벗어나는 의미가 존재한들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오직 인간적인 언어로 된 것만을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하고 말한 카뮈를 다시 생각한다. 그것은 곧 도스토예프스키보다 품 안의 고양이가 더 중요하다라고 했던 장 그르니에를 떠올리게 하며,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던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기억하게 한다.

-p18]

 

나는 책을 읽을 때, 이런 문장을 만나면 가장 짜증이 난다. 카뮈와 도스토옙스키, 카잔차키스는 그냥 그들의 책에서 읽으면 된다.


이 빨간 글씨!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말하고 싶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더라도 이 문장을 인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루스트의 그 많은 아름다운 문장 중에 이 문장을? 저자는 결국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을 인용했을 뿐이다.

 

 

이 책은 출간된 지 한 달 후쯤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 받게 되었는데 벌써 14쇄이다. 그만큼 저자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기대한 만큼 나의 실망도 크다. 이 정도의 책은 칠순잔치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돌릴 문집 정도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무엇이든지 활자가 된다.

재료가 고갈된 계절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동서문화사, p.125)’에 나온 구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료가 부족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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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11-03 19: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여러 소설에 나온 문장들 짜깁기해서 거기에 감상적 문구 곁들어 놓은 책 저도 별로에요.
캘리그라피 책으로 분류해도 좋을 거 같은데요...

페넬로페 2022-11-03 19:24   좋아요 4 | URL
그니까요.
그냥 일반인도 아니고 ㅠㅠ
책값도 18000원으로 책정되어 있어요.
캘리그라피책 맞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11-03 19: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덟단어 인가?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저자의 책 패턴에서 새로운 것을 얻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2-11-03 19:26   좋아요 3 | URL
여덟단어까지 좋게 읽었는데 실망이 크네요.
이 책에서 자신의 책인 책은 도끼다와 여덟단어도 언급해서 더 기분이 좀 별로였어요.
제가 많이 꼬인건지 모르겠지만요^^

레삭매냐 2022-11-03 1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로먹기 아닌가요?

왜 타인의 글을 마치 자신의
글인양 책으로 내는지 모르
겠네요.

그 패기에 다시 한 번 경의
를 표하는 바입니다.

페넬로페 2022-11-03 20:04   좋아요 3 | URL
정말 날로먹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있는 저의 감상적인 독서노트를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서곡 2022-11-03 19: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칠순잔치 ㅋㅋㅋ

페넬로페 2022-11-03 20:06   좋아요 3 | URL
제가 넘 실망해서~~
좀 더 생각해서 책을 출간했다면 어떨까 했어요^^

새파랑 2022-11-03 2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ㅋ 페넬로페님 열받으셨군요 ㅜㅜ 가끔 안맞는 책이 걸리기도 하더라구요 ^^

페넬로페 2022-11-03 21:47   좋아요 4 | URL
제 느낌만 그런건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열이 좀 받네요 ㅎㅎ

Falstaff 2022-11-03 2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이 박웅현을 읽으셨다는 게 믿기지 않는 건 왜일까요. 열 받을 사람한테 열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걍 맥주 한 캔 따시는 걸로 고정하심이 좋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11-03 21:49   좋아요 4 | URL
그니까요.
맥주 한 잔 마시며 이제 좋은 책만 읽기로 결심합니다^^

잠자냥 2022-11-03 23:07   좋아요 3 | URL
박웅현 페넬로페 님의 길티플레져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2-11-03 23:26   좋아요 4 | URL
잠자냥님, 제가 마음이 좀 약한 사람입니다 ㅎㅎ

alummii 2022-11-04 0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오래전.. 이분 도끼책에... 짜집기에 대해 백자평 남겼던 기억이 ㅋㅋ...

페넬로페 2022-11-04 00:52   좋아요 4 | URL
아, alummii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군요.~~
책을 너무 쉽게 내는 것 같아요^^

독서괭 2022-11-04 0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오.. 절대 안 사고 싶은 책이네요. 책이 추구하는 바가 여백의 미인 걸까요..? 책은 도끼다는 독서욕 자극한다는 점에서 괜찮았는데 너무 쉽게 가려하시네요^^

페넬로페 2022-11-04 09:12   좋아요 4 | URL
저도 책은 도끼다에서 더 깊게 책을 읽어야겠다고 자극 받았는데 정말 이 책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의 생각도 그냥 지금 현재를 살아라는 매번 하는 소리의 되풀이더라고요^^

희선 2022-11-06 0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름 보고 책을 보셨을 텐데, 실망하셨군요 벌써 4쇄라니... 책 제목이 문장과 순간이니 다른 책에 나온 문장 썼겠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희선

페넬로페 2022-11-06 11:43   좋아요 6 | URL
벌써 4쇄에 정말 놀랐어요.
작가들이 얼마나 힘들게 글 써서 책을 냅니까. 요즘 너무 쉽게 가려는 사람이 많아요 ㅠㅠ

서니데이 2022-11-06 2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좋은 평을 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하나의 상품에 대한 솔직한 후기는 소비자가 구매하는데 있어서는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잘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11-06 23:40   좋아요 6 | URL
제가 전반적으로 별점을 굉장히 후하게 주는 사람인데 이 책은 제가 몇 번을 들쳐봤거든요.
근데 정말 이 가격에 넘 아닌 것 같아요. 이 책은 우리가 누구나 갖고 있는 독서노트 수준입니다^^

모모 2022-11-06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웅현의 ‘여덟단어‘가 좋아서 이 책도 사야겠다 했었는데....장바구니에서 지워버렀어요 ㅎㅎ

페넬로페 2022-11-06 23:42   좋아요 5 | URL
모모님
이 책 궁금하시면 일단 도서관에서 한 번 보시고 결정하시기 바래요.
돈 주고 사기에는 좀 너무한 구석이 많아요 ㅠㅠ

서니데이 2022-11-11 20: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주 따뜻한 편이었는데, 공기가 좋지 않네요.
내일 비가 오고 나면 다음주는 다시 추워진다고 합니다.
요즘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11-11 23:43   좋아요 4 | URL
요 며칠 계속 공기가 좋지 않네요.
그대신 날씨가 따뜻하고 좋아서 괜찮았는데요.
이제 11월 중순이니 추워지는것이 당연한데도 더 추워지는건 싫으네요.
서니데이님, 주말 행복하게 잘 보내시길 바래요^^

mini74 2022-11-14 17: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냥 그들의 책에서 읽으면 된다 ㅎㅎㅎ 넘 멋집니다 페넬로페님 *^^*

페넬로페 2022-11-14 17:56   좋아요 3 | URL
우리 그냥 훌륭한 작가의 본 책에서 좋은 문장 읽어요^^

2022-11-25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8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사라진 알베르틴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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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틴 양이 떠났어요!”

고통은 우리 마음속을 심리학보다 얼마나 더 깊이 탐색하게 하는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던 것이 실은 나의 온 삶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모르는 걸까.

-p.15]

 

알베르틴의 고모라적(여성 동성애) 습관을 막기 위해 시작된 화자와 그녀의 동거는, 알베르틴이 편지 한 장만 남겨둔 채 떠나버림으로써 끝이 난다. 알베르틴에 대한 일관적이지 못했던 화자의 사랑과 권태에 그녀는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헤어질 결심도 하고, 그녀가 스스로 떠나주기를 바라기도 했었지만 막상 그녀가 떠나자 화자는 충격을 받는다.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사랑은 나와 타자의 관계로 시작하지만 사실 사랑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충동의 결과이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도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그녀를 지켜주고, 그녀가 하는 일을 알고, 뱅퇴유 양과의 습관을 다시 시작하지 못하도록 막기(p.39)' 위한 화자의 사랑에 알베르틴의 생각은 들어있지 않다. 그것은 질투에 갇힌 화자의 욕망일 뿐이다. 알베르틴 역시 화자의 집으로 같이 왔다는 것이 화자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화자의 질베르트와의 사랑에도, 스완의 오데트에 대한 사랑에도 질베르트와 오데트의 마음은 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계속 읽어 오며 질베르트, 오데트, 알베르틴의 입장도 궁금했지만 프루스트는 화자와 스완의 마음과 생각만을 집요하게 표현한다. 이런 프루스트의 서술 방식에 약간의 불만도 있었지만, 이 글이 과거를 회상하며 써 내려 간 글이라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나를 불러내어 그때 난 왜 그랬을까?‘라는 분석을 한다. 내가 한 행동이나 말에 대한 후회와 회한이 많지만, 그럼에도 만 볼 수밖에 없다. 나를 통해 타자를 보고, 타자의 생각을 추측해 낼 수 있을 뿐이다. 알베르틴이 떠나고 화자는 그녀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생루를 그녀에게 보낸다. 그녀의 죽음 후 화자는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알베르틴의 행적을 궁금해 하고 캐낸다.(어떨 땐 정말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원한 답이 아닌 알베르틴의 고모라적 성향을 확인할 뿐이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앙투안 콩파뇽 외, p.97


알베르틴의 모델이 된 사람은 프루스트의 운전사로 일했던 알프레드 아고스티넬리이다’. 프루스트는 그를 사랑하게 되어 자신의 비서로 일해 줄 것을 제안했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기거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아고스티넬리는 프루스트 몰래 비행을 하다 추락해서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을 프루스트는 알베르틴을 통해 표현한다. 화자는 알베르틴을 잃은 고통과 상실을 사랑이란 것에 대한 깊은 생각과 그녀를 알아가는 것으로 애도한다. 그러면서 점점 알베르틴을 망각해간다.

 

르 몽드지에 보냈던 화자의 글이 신문에 실리고 그의 기쁨은 사교계가 아닌 문학 속에 존재하기 시작한다.(p.264) 스완이 죽고 오데트와 그의 딸 질베르트는 스완의 이름을 지우고 귀족의 지위를 얻기를 열망한다. 질베르트는 생루와 결혼해 귀족의 신분으로 올라서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 후 그녀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인간의 욕망은 각자 다르다. 합리적이지 못한 욕망도 많다. 욕망의 성취가 꼭 좋거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고, 그 결과에 타격을 받는다. 화자, 알베르틴, 질베르트의 욕망은 다 다르며, 그것은 타인과 함께 할 수 없고 이해시키지도 못한다. 내 속에 서툴게 들어있는 나, 아집, 습관이 기대하는 욕망을 엉뚱하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데려가 버린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진정한 질베르트, 진정한 알베르틴은 어쩌면 첫 순간 자신들의 시선 속에 자신을 내맡기던 바로 그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소녀는 분홍빛 산사나무 울타리 앞에서, 다른 한 소녀는 바닷가에서.

-p.46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분량이 많은 책이라 연속적으로 읽기가 힘들다. 지루하기도 하고, 그 사이 다른 책을 읽고 싶기도 하다. 다른 책을 읽다가 다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돌아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물론 어려운 건 여전하지만 어느새 내가 프루스트의 문장에 익숙해지고 젖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프루스트가 서술하는 것들 중에 이해할 수 없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그가 서술하는 문장만큼은 아름답다.

 

이제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인 되찾은 시간만 남겨두고 있다. 이 소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확실히 알지는 못하겠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이미지와 프루스트가 마음 깊이 들어가 만들어 낸 문장만으로도 읽는 의미가 충분하다.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옥에 내려가 그녀를 만나지만,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아내를 데려나오지 못한다. 오르페우스의 슬픔을 작곡가 글룩은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에우리디체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표현했다. 애타게 에우리디케를 찾는 오르페우스의 마음이 알베르틴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마음과 닮았다. 그리고 수많은 젊음을 순식간에 앗아간 이태원에도 간절하고 비통한 이 마음이 있다

삶은 무척이나 허무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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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1-01 23: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에 외도했다가 다시 돌아오면 프루스트 문체에 편안함을 느끼신다니....진정한 잃시찾 애독자십니다♡

페넬로페 2022-11-02 01:20   좋아요 3 | URL
편안함은 조금 익숙해서 그렇고 .여전히 어려워요. 시작했으니 끝내자는 심정으로 주먹 불끈 쥐고 있습니다^^

새파랑 2022-11-01 23: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끼야 벌써 11권 완독 하셨군요~! 저는 도대체 언제쯤 읽을지 걱정입니다 ㅜㅜ

잃시찾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지는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11-02 01:22   좋아요 4 | URL
어느새 11권까지 왔네요.
12권이 1일에 출간된다고 했는데 18일로 연기되었더라고요.
마지막을 어떻게 끝맺었을지 궁금하네요^^

mini74 2022-11-02 00:0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넬로페님 마지막 부분만 남겨두고 계시는군요. 제가 왜 이렇게 주책스랍게 뿌듯한지 ㅎㅎ 아는 분이 에베레스트 등정한 기분 *^^* 멋집니다 💕

페넬로페 2022-11-02 01:24   좋아요 4 | URL
미니님, 같이 감동 느껴주셔서 감사해요. 에베레스트를 한발한발 올라 간 것이 아니라 그저 휙 지나간 느낌입니다. 내년에 같이 읽어요^^

그레이스 2022-11-02 18:24   좋아요 4 | URL
저도 그 주책스러움에 동참! ㅎㅎ

레삭매냐 2022-11-02 1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맨 밑의 마리아 칼라스
사진을 보니 오래 전
파리의 페르 라셰즈에서
애써 그녀의 납골당을
찾아 헌화한 추억이...

역시나 대단하십니다.
이제 대단원의 막이 -

페넬로페 2022-11-02 19:40   좋아요 4 | URL
마리아 칼라스의 납골당이 파리에 있군요. 친애하는 사람의 묘지에 가서 헌화하는 느낌, 좋을 것 같아요.

네, 허접한 리뷰의 막이 이제 끝나가고 있습니다 ㅎㅈㅎ

coolcat329 2022-11-02 1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을 읽다가 다시 프루스트로 돌아오면 마음 편하지신다니...오 작가의 문장에 같이 호흡하고 계신 거 같아요. 1권 시작부터 지금 여기까지 대단하시고 아름답습니다.

페넬로페 2022-11-03 09:33   좋아요 2 | URL
이 책의 분량이 워낙 많다보니 프루스트의 문장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나봐요.
11월에 마지막 두 권 출간된다기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클로드 2022-11-04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페넬로페님 덕분에 이 책 제목을 외웠습니다. 몇일 전 서점에 갔을 때도 이 책을 찾아보았지만 책을 읽으면 마지막 장을 덮어야 하는 성격으로 이런 장편은 감히 손을 댈 수가 없더군요. 올려주시는 글을 보며 먼발치에서 응원하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11-04 09:17   좋아요 2 | URL
클로드님, 응원 감사합니다.
이 책이 너무 길어 저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리뷰를 올리다보니 이렇게 계속 가게 되었습니다. 깊이있게 읽어야 하는데 그것도 생각만큼 쉽지도 않아 그저 끝까지 읽는다는 생각만입니다 ㅎㅎ

희선 2022-11-06 0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이 책을 보다 다른 책을 보다 돌아오면 편안하기도 하다니... 다른 사람 마음은 다 알기 어렵겠지요 자기 마음도 잘 모르기도 하는데... 이 책을 보고 프루스트를 아시고 좋아하게 되셨네요 저는 프루스트 하나도 모릅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2-11-06 11:46   좋아요 3 | URL
이제 두 권 남았습니다.
저도 프루스트를 잘 몰라요 ㅎㅎ
시작했으니 끝을 내자는 맘 뿐입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고 번역본으로 읽고 있기에 이해되지 않는 것도 많아 아직 정리가 잘 되지 않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