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어느 더블린 사람에 대한 일대기 (만화평전)
알폰소 자피코 지음, 장성진 옮김 / 어문학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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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의 좋은 점이 많지만 그래도 가장 큰 장점은 책을 완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잘 읽든 아님 힘들게 꾸역꾸역 대충 읽어내던, 어쨌든 모임 날까지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 무조건 완독해야 한다는 각오와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독서모임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었고, 그 덕분에 율리시스까지 읽을 수 있었다. 모임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두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좋은 문장도 많았지만 대다수 글들의 맥락과 작가의 여성관, 등장인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어려웠다.

 

독서모임의 회원 중 한 분은 책을 읽을 때, 그 책에 나오는 배경지식이나 작가에 대해 아주 열심히 공부하며 읽으신다. 영문학 전공자라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동시에 읽는다. 율리시스의 문장이 굉장히 음악적이라 영어 원문으로 읽으면 훨씬 더 소설 이해가 좋을 것이다. 그 분의 열정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지만(도움도 많이 받았다) 한편으로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의도하는 소설의 배경을 그 정도까지 낱낱이 파헤치며 읽어야 하는가?’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소설에는 분명 글을 쓰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어디까지 그것을 참조해야하는지도 고민이 된다. 나는 작가의 이력이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실제적인 것을 조금만 참조하고, 작가의 글에서 내 나름의 느낌을 받거나 상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소설을 읽으며 그 내용이나 출처에 대해 너무 많이 고민하고 알고자 한다면 한 번씩 이런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p172

 

알폰소 자피코의 그래픽 노블 제임스 조이스는 글과 그림이 많은 책이다. 조이스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충실히 서술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조상부터 시작해 역사적인 사실들과 주변 인물 등을 상세하게 묘사했으며 그림도 정갈하다. 조이스에 대해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리해 놓았다. 조금 가볍고 쉽게 읽히는 그래픽 노블의 특성도 잘 살렸고 만화가 주는 유머러스한 느낌도 상당히 좋다. 원제목인 ‘Portrait Of A Dubliner’에 맞게 제임스 조이스의 인생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잘 꿰뚫어 놓았다.

 

자피코는 그의 만화평전을 통해서 조이스의 작품을 어려워하거나 사전처럼 두꺼운 조이스의 자서전을 선뜻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으며, 아일랜드의 거장인 조이스의 삶과 그의 예술가적 기질을 가감 없이 표현해 냈다.(p7)”라는 커커스의 평에 걸맞다.

 

 

제임스 조이스의 삶은 소설 율리시스의 문장과 닮아 있었다. 그는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하며, 술주정뱅이에다 낭비벽이 심한 사람이었다. 평생 가난에 시달려 여러 군데를 전전해야 했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삶을 산다.



-p.43

 

자신감이 대단하다.


-p.116

 

밥맛없는 말투도.


-p.166~167

 

마르셀 프루스트와 만난 일화가 재미있다.

그렇지!

프루스트씨라면 당연히 이렇게 가차 없이 떠나갔을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인상과 성격 파악에 탁월한 프루스트씨가 본 조이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청 궁금하다.

 

조이스는 아첨하기 않고 기분대로 살아가는 대책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율리시스의 출판이 어려웠을 때, 그의 책을 처음으로 출판해 주고 10년 동안이나 도와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실비아 비치여사에게도 나중에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p.161

 

친구 버전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조이스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 준 것 같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앞과 뒤를 생각하지 않고 뭐든지 했던 사람의 글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고, ‘인생 이렇게 한 번 살아봐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p.170

 

조이스는 녹내장으로 눈이 좋지 않아 여러 번 수술도 하고 통증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만은 대단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글을 썼다.

 

 

 

이 책으로 조이스의 인생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의 삶에 대해 몰랐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한 부분도 많지만, 결국 그러한 것이 바탕이 되어 젊은 예술가의 초상’, ‘더블린 사람들’, ‘율리시스라는 걸작이 탄생했으니 조이스라는 인간을 만날 수밖에 없다. 조이스는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았다. 딸 루치아의 정신병으로 고통도 받았다. 그렇지만 조이스가 겪은 불행은 그 자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많으니 그의 삶이 불행보다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성, 그리고 그가 쓴 소설속의 문장으로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으니 그의 인생은 성공한 셈이다.



순전히 율리시스때문에 방문했던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서점.

 

 

조이스는 자발적으로 아일랜드를 떠났지만 그의 글은 아일랜드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밖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조국을 들여다보며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밖에서 본 아일랜드가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힘들 때 영국에서 주는 후원금을 받아 쓴 적도 있다. 그런 정체성의 혼란이 평생 조이스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그런 인간의 불완전함을 본다. 누구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내 인생에서도 불완전함은 존재한다.

 

그것으로 조이스는 소설을 썼고, 우리는 그의 글을 읽으며 불완전함의 보편성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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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12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아숩게도 그래픽 노블 평전
은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비치되
어 있지 않네요 흠 -

파리에 두 번이나 갔지만, 그 시절
에는 지금처럼 책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인지 <셰익스피어> 캄퍼니
는 가보질 못했네요.

다시 가게 된다면 일빠로 찾을 곳
인데 말이죠 ㅋㅋ 뭐 인생이 그런
거죠.

페넬로페 2023-06-12 19:12   좋아요 1 | URL
이 책이 그래픽 노블이지만 조이스에 대해 잘 서술되어 있어 만족했어요.
도서관에는 왜 그래픽 노블을 희망도서로 받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내부는 사진 찍지 말라해서 조금 빈정 상했어요~~ ㅎㅎ

새파랑 2023-06-12 1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일랜드는 문화강국! 저는 무서워서 율리시스 시작도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조금은 도움이 되겠군요? ^^ 사서 읽어야 겠습니다~!!

저도 독서모임 같은거 해보고 싶네요 ㅋ

페넬로페 2023-06-12 19:14   좋아요 3 | URL
아일랜드가 처한 역사적 배경이 글을 쓰게 만드나봐요.

독서모임이 좋은데 그 구성원도 중요하더라고요.
새파랑님은 영입순서 1순위가 될 것입니다^^

그레이스 2023-06-13 22:13   좋아요 2 | URL
환영합니다 ~~♡

서니데이 2023-06-13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같이 읽으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
페넬로페님, 날씨가 많이 더워졌어요.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06-14 16:25   좋아요 1 | URL
네, 네~~
외국어 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거 후회하고 있어요.
날씨가 은근히 더워요.
서니데이님께서도 건강 조심 하세요^^

희선 2023-06-14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은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이 더 거기에 뭐가 담겼을까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작가가 담으려고 한 게 있기는 하겠지만... 여러 가지 참고해서 보는 것도 괜찮고 자기대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6-14 16:27   좋아요 0 | URL
네, 책 읽는 방식은 각자의 취향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며 그래도 조금의 의미라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미미 2023-06-15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불완전함의 보편성! 저도 페넬로페님과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 있어요. 어떤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너무 많이 쌓다 보면 오히려 나의 독자적인 작품해석의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은 아닌가?하고요.
다만 그리 많이 공부할 자신도 없고 기억력도 나빠서 큰 걱정은 안됩니다ㅋㅋㅋ
이 책 저도 찜해두었었는데 궁금하네요^^

페넬로페 2023-06-15 22:43   좋아요 1 | URL
책을 읽으며 언제나 고민하는 포인트인데~~
일단 게으르기도 하고, 빨리 끝내고 다른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강해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ㅎㅎ
미미님 말씀이 맞아요
뭔가 검색을 해도 돌아서면 까먹어요~~ㅠㅠ
이 책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 잘 서술해 놓았더라고요.
금방 다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이 엄청 알차요^^
 

클로드모네는 자기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마디 설명보다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보는 게 낫다고 말한 바 있다. - P7

"순간적으로 스쳐간장면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장점이다." 모네는 오랜 기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목표는 자연에서받은 느낌에 구체적인 형식을 부여하여 표현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다.

빛의 움직임 속에서 포착한 자연의 ‘일상들‘을 화폭에 담아내려 했다. - P8

정원 회화에 대한 모네의 관심은 현대의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파리에 있는 튈르리 궁전의 잘 손질된 정원, 고모 집을 방문했을 때들렀던 노르망디의 휴양지 생타드레스의 격조 높은 조경은 화려하게 차려입은남녀가 등장하는 현대적 작품의 세련된 배경이 되었다. 에밀 졸라는 이처럼 도시를 우아하게 묘사한 그림을 보고 "정확하고 솔직한 눈을 통해 "실제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작품에 대한 관점을 세우려 하는 화가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에 모네는 힘겨운 시간을 겪는 동안 정원 덕분에 안정을 찾았다고 회상했다. 정원은 그에게 식물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고 자연과 예술에 대한 애정을 조화시킬 수 있는 피난처였다. - P13

예리한 비평가들은 정원에 쏟는 모네의 열정이 화가로서의 정체성의 일부이며 이를 통해 예술적인 감각을 키웠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모네의 작품을 두고 현실과 동떨어진 황홀한 ‘동화의 나라‘를 묘사했다고 평가했을 때 모네는 화를 냈다. 그는 "정원을 그리는 것은 믿음과 사랑, 겸손에서 나오는 행위로서, 정원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발견하여 작품과 나를 동일시하고 작품속으로 흡수될 수 있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현상에서 조화를 발견한 사람은현실로부터, 적어도 인식 기능한 현실로부터 동떨어질 수 없다"라고 확신했고,
자신의 정원이야말로 현실에 가장 단단하게 뿌리내린 존재라고 생각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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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6-11 1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정원까페 가려고 벼르다가, 하필 찜한데가 일요일 휴무여서 못가고 있는데 페넬로페님 페이퍼 보니까 갑자기 정원에 너무 가고 싶어졌어요

페넬로페 2023-06-11 12:07   좋아요 2 | URL
정원카페가면 눈도 호강하고 책 읽는 것도 운치 있고요~~
이왕 마음 먹었으니 다른 정원카페 검색해 보셔서 다녀오심이 어떨지요 ㅎㅎ
얄라알라님, 행복한 일요일 보내시길요^^
 

매달 월초에는 알라딘 셀럽들의 한 달 동안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이 올라온다. 책을 읽은 권수도 많지만, 책 내용의 다양성에 놀란다. 다들 직장 다니고, 육아도 하고 고양이와 화초를 키우면서도 언제 시간이 나서 저렇게 많은 책을 읽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한다. 책을 읽는 양과 속도의 빈약함을 나이가 들어 집중력이 없는 탓으로, 일 때문에 시간이 없는 탓으로 돌리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매번 반성하고는 주먹을 꽉 쥐고 이 달부터는 정말 잘해보자고 결심하지만 역시나 한 달 뒤의 빈약함은 반복된다. 같이 읽자고 약속한 2의 성.....뒷말은 생략

그래도 무조건 완독 하겠다!!!

 

5월은 여행 때문에 좋은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패드에 전자책을 몇 개 다운받아 갔지만, 글보다는 풍경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패드는 숙소의 금고 안에 잘 보관했었다. 짧고 편한 독서 기록으로 5월을 정리하고, 6월부터는 마음잡고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읽은 책>



 

 

 

 

 

 

 







요즘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썰을 잘 푼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일단 말을 잘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시험을 볼 때나 페이퍼를 써서 낼 때도 썰을 잘 풀면 좋은 학점을 받기도 했다.

 

작가 김영하의 에세이나 그가 방송에 나와서 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썰을 잘 푼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지식을 잘 연결시켜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소설가는 당연 썰을 잘 푸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써 내는 허구적 스토리텔링에 일단 독자가 푹 빠지도록 해야 하는 거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사람을 크게 웃게 한다. 비자가 필요한 중국에 비자 없이 입국하려다가 공항에서 바로 추방되었다는 이야기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은 누구나 뭔가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든 내가 가고자 하는 장소가 나를 받아주지 않을 때도 있고, 눈앞에서 포기해야 할 경우도 있다. 김영하는 자신의 여행담과 읽은 책, 영화 등을 통해 소소하게 여행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기대한 것보다 소박해서 약간 실망도 했지만 그가 풀어내는 썰이 나쁘지는 않았다. ‘길가메시 서사시오디세이아에 대한 생각이 나와 비슷해서 좋았다.

 

여행의 이유는 도서관에서 빌려 여행가는 배낭에 넣어간 책이다(책이 가벼워 좋다). 파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해 하루정도 전대를 차고 다녔지만 불편했다. 그렇다고 여행자가 여권과 돈을 놓고 다닐 수는 없었다. 여행지에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여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낭 제일 밑에 전대를 넣고 그 위를 이 책으로 덮었다. 책 위로 스카프와 생수병, 우산, 휴대용 매트 등을 잔뜩 쌓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소매치기라도 이렇게 하면 제일 밑에 깔려있는 전대를 빼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 책은 내 여권을 지켜준 책이기도 하다.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p.185]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제목이 좋았다.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이라는 부제도 괜찮았다. 책 읽는 사람들에게 많이 언급되는 정혜윤이라는 글 쓰는 사람도, 9가지 질문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대답했을지도 궁금했다. 이 책 속에는 저자가 언급하는 100권의 책이 들어 있다. 251페이지 안에 100권의 책이 들어 있다는 건, 문장의 많은 부분을 100권의 책 속에 들어 있는 문장으로 채웠다는 뻔한 결과가 나온다. 기대한 것에 비해 많이 실망했다.

 

저자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100권의 좋은 책을 적시적소에 배치했다고 해서 독자는 저자의 글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100권의 책을 원하는 것이 아닌 저자의 살아있는 글과 질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다. 질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잘 모르겠고 반복되는 의문문이 거슬렸다. 의문문은 질문하기 위해 사용되거나, 문장을 강조할 때 또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모호할 때 은근슬쩍 넘어가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남용된 의문문으로, 자신의 확실하지 못한 답을 은폐한 것은 아닌가라는 오해가 생긴다. 아닐 거라 믿으며.....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나 그의 그림에 대한 책을 읽지 않아도 고흐의 삶이나 그림에 대해서 웬만큼은 알고 있다.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확실히 모르지만 반 고흐만큼 많이 알려진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압생트, 동생 테오, 고갱, 자신의 귀를 자름, 권총 자살이라는 키워드가 고흐를 대표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반 고흐×유경희는 고흐가 그림을 그려내는 과정보다 고흐의 삶에 치중한 책이다. 특히 고흐가 말년을 보냈던 프랑스의 아를, 생레미드프로방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3년 동안의 삶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흐의 정신적인 병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한다.

 

고흐는 평생 불우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목자의 길을 가는데도 실패했다. 외가로부터 받은 유전적 정신병도 그를 괴롭혔고, 수많은 좌절과 압생트가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불안과 격한 감정은 사람들, 특히 고갱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으며 고독한 삶을 살아야 했다.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게 증명된 것이 없다.

 

한국에서 반 고흐 전시회를 할 때,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도 반 고흐의 작품을 여러 미술관에서 많이 보았다. 고흐의 그림 앞에 서서 그 작품을 감상할 때, 고흐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 고흐의 그림은 그림 자체로 좋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평생 좌절하고 괴로움 속에서 보낸 화가가 그린 그림이 나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가까이 다가가 그림의 표면을 보았을 때, 숱하게 덧칠해진 붓 자국에 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도 같았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이 맨 마지막으로 고흐의 그림을 많이 보러 온다고 한다. 자살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으며 마음을 바꾸라는 의미의 안내문이 있다.


반 고흐 미술관에서 마침 오베르 쉬르 우아즈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그곳을 다녀왔기에 더 반가웠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그림은 초록색이 많다.



본래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그림을 반 고흐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의사 가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고흐가 많이 의지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고흐가 그의 딸 마르그리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고흐가 총상을 당했을 때도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반대했다. 고흐의 장례식을 치른 후 가셰는 고흐의 그림을 30점이나 차지했다(p. 294/356)



 

 

 

 

 

 

 





파리에 있는 12개의 미술관을 소개한 책이다. 미술관 주변에 가 볼 만한 장소나 카페, 미술관으로 가는 교통편도 안내되어 있다. 가볍게 파리의 미술관 전반에 대해 살짝 맛 볼 수 있는 책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국가가 나서서 건물을 짓고 미술품을 매입하고 개인이 소장한 작품을 기증해야만 한다. 유럽의 미술관 어디를 가더라도 엄청나게 소장된 미술품들을 보면 부럽다.

 

이런 책들을 미술관에 가기 전에 읽어 본다. 그러나 집중이 되지는 않는다. 내 눈에 비슷하게 보이는 미술 작품들의 자세한 설명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역시 그림은 책보다는 직접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대충 넘겨본다. 그러나 막상 미술관에 가면 엄청난 수의 작품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도 없고 두 세 시간이 지나면 피곤해진다. 많이 알려진 유명한 작품이 아니고는 나중에 내가 무엇을 봤는지 헷갈린다. 그림을 보면서 나중에 다시 책을 읽으며 찬찬히 공부 하리라 결심한다. 집에 와 다시 책을 펼쳐 내가 본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땐 정작 그림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책에 있는 그림 중 내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과 단편 소설을 처음으로 읽어 본다. 다른 러시아 작가와는 다른 느낌이다. 그리스 비극작가들과 셰익스피어의 직접적이고 끈질긴 파멸과 고통은 볼 수 없다. 밋밋하기도 하고 유머러스하기도 하는데 거기에 엄청난 비극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체호프의 세계에 쉽게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읽어갈수록 작가의 매력에 빠진다. 이 책에는 체호프의 유명한 희곡 갈매기’, ‘바냐 삼촌’, ‘세 자매’, ‘벚나무 동산이 있다.

 

체호프의 희곡에는 어쩔 수 없이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무기력과 허황된 희망이 담겨 있다. 시골에서의 삶을 지겨워하며 도시로 떠나기를 원한다. 새로운 형식을 원하며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 더 이상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해 버린다. 무위도식하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남녀는 서로 엇갈린 사랑만을 한다.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이러한 것을 느꼈지만 아직 정확하게 체호프의 희곡의 내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완전히 알지는 못하겠다. 재독해야겠다.



배우 백지원TV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처음 만났다.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갑질을 서슴지 않는 드라마작가로 나온다. 내가 그녀의 연기에 반한 건 술 취한 연기를 할 때였다. 만취한 상태로 토끼를 외치며 거리를 활보하던 그녀의 연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연극 벚꽃 동산의 주인공인 류보피 안드레예브나 라네프스카야의 역할을 백지원 배우가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고 꼭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극은 원작에 너무 충실해 약간 지겨웠다. 체호프가 글 속에 남긴 극적인 의미들을 연극의 대사만으로는 나타낼 수 없다. 그 역할을 배우의 말투나 표정, 몸짓이 해주어야 한다. 백지원 배우가 연기는 잘했지만 감정의 변화나 행동의 날카로운 맛이 없어 아쉬웠다. 좀 더 화려하거나 카리스마 있는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읽고 있는 책>



 

 

 

 

 

 








체호프의 단편소설은 내용이 완전 짧다. 희곡보다 단편소설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체호프라는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다. 새롭고 현대적인 비극과 슬픔, 인간의 욕망이 절절이 느껴진다. 작가 체호프를 더 알기 위해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도 함께 읽고 있다.



학기를 일찍 마친 딸아이가 시간이 많아 오늘 같이 창경궁에 다녀왔다. 작년 11월에 혼자 다녀왔는데 그때와는 달리 궁은 온통 초록으로 덮여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아침에 산책하기에 고궁은 너무 좋았다. 고즈넉한 운치가 있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HOT의 캔디 옷, 근대의 신여성 복장, 한복 등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졸업 사진을 찍는 것 같았는데 재미있어 보였다.


작년 11월의 창경궁의 모습


대학로에서 먹은 냉면, 튀김 만두, 밀크 팥빙수...

 

6월이다. 많이 더워질 것이고 비도 많이 올 것이다.

 

서재 친구들, 다들 건강하기를 기원하며

이번 달도 열심히 책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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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3-06-03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의의 이유‘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 입니다. 그리고 창경궁과 대학로는 이번 연휴에 아내랑 가볼까해서 맛집 검색도 해놨는데 아내가 다른데 가자고 하네요^^

페넬로페 2023-06-03 01:02   좋아요 1 | URL
초록의 창경궁도 좋았는데 저는 단풍이 들 때의 창경궁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가을에 아내분과 함께 다녀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Conan님, 연휴 즐겁게 잘 보내시길 바래요**

새파랑 2023-06-03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페넬로페님도 체호프에 빠지셨군요~!! 여행도 하시면서 그래도 책을 많이 읽으셨네요 ^^ 페넬로페님이야말로 북플의 셀럽이십니다~!!

페넬로페 2023-06-03 14:45   좋아요 1 | URL
체호프의 새롭고 매력적인 세계에 빠졌습니다.
여행에 도움이 될까하고 선택한 책이었어요~~
저는 그저 북플에 묻어갈 뿐이예요 ㅎㅎ

자목련 2023-06-03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지원의 연극 정말 멋졌을 것 같아요. 드라마 연기도 넘 잘하니까요.
창경궁의 산딸나무 근사하네요!

페넬로페 2023-06-03 23:29   좋아요 0 | URL
네, 연기 잘하는 배우라 좋았어요~~
자목련님께서는 바로 나무이름을 아시네요, 역시^^

호시우행 2023-06-03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독서생활, 응원할게요^^

페넬로페 2023-06-03 23:30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의 6월의 즐거운 독서, 응원드립니다^^

은오 2023-06-03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2의 성.... 저도 뒷말 생략....
“썰 푼다” 이게 옛날부터 있던 말이었구나.... 요즘도 씁니다!! ㅋㅋㅋㅋㅋ
6월도 화이팅입니다 페넬로페님~! 😆💕

페넬로페 2023-06-03 23:31   좋아요 0 | URL
읽는다 하면서도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ㅠㅠ
‘지금도 썰 푼다‘는 말을 사용하는군요,
반갑네요^^

페크pek0501 2023-06-04 14: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행의 이유. 저도 가지고 있는데 왜 저는 읽지 않았을까요? 그러고 보니 김영하의 다른 책도 갖고 있는데 읽지 않았음을 여기서 확인하네요. 하하~~ 문제는 읽는 양에 비해 너무 많은 책을 사 왔다는 것.
책 구매 욕심을 줄여야겠어요.
님의 글이 긴 것이었는데도 금방 읽고 내려온 느낌입니다. 제 관심을 끄는 페이퍼라서 그런가 봅니다. 사진도 역시나 좋습니다. 냉면에는 튀김만두. 꼭 먹겠습니다. 눈요기 잘하고 갑니다.^^

페넬로페 2023-06-04 17:29   좋아요 2 | URL
집에 책이 많은데 저도 안 읽은 책이 많아요.
작년 가을부터 책 구매를 많이 안하고 있어요.
집에 있는 책부터 읽기 위해서요~~

넹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ㅎㅎ

희선 2023-06-05 0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뿐 아니라 연극도 보셨군요 체호프 소설 못 보고 희곡 조금 보기는 했는데... 짧은 희곡도 있더군요 저는 유머는 모르겠고 밋밋한 느낌은 들었습니다

고흐를 병원에 옮기지 마라고 한 사람이 있었군요 총에 맞았는데 왜 병원에 안 가고 오랫동안 있었을까 했던 것 같아요 테오가 오기까지 기다렸나 하는 생각을 했군요 병원에 가도 살지 못할 거다 여긴 건지... 고흐가 살았을 때 그림이 많이 팔리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림은 마음대로 그렸잖아요 그렇게 한 것도 어딘가 싶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6-05 07:01   좋아요 1 | URL
벚꽃 동산이 워낙 유명해 연극도 보고 싶더라고요. 비극적인데 셰익스피어처럼 그렇게 다 죽이는 건 아니었어요 비극속에 약간의 긍정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빈센트의 동생 테오도 빈센트를 병원에 옮기자고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상처가 워낙 치명적이었는지, 아니면 고흐를 편하게 해주려고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르게 생각해보면 희선님의 말이 맞네요. 고흐가 그림은 많이 그리고 남겼으니 그건 행복했던 사실이겠죠!

서곡 2023-06-05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튜브에 예수정 배우가 주연한 벚꽃 동산 전막 공연 영상이 있어요 멜로는 체질에서 백지원 배우 그 장면 기억납니다 ㅎㅎㅎ 그나저나 저 팥빙수 너무나 맛있어 보입니다!

페넬로페 2023-06-06 03:56   좋아요 1 | URL
예수정 배우는 벚꽃동산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한데요.
찾아서 보겠습니다.

팥빙수는 처음에는 맛있는데 찬 거를 계속 먹기에는 추워서 나중에는 억지로 먹게 되더라고요 ㅎㅎ

2023-06-07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7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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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 독서동아리에서 올해에 읽을 책을 선정했다. 한 사람이 두 권의 책을 추천하고 순서를 정해 그 책들을 읽는다. 그런 시스템으로 진행하다 보니 다른 회원이 선정한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읽을 수밖에 없다. 내가 추천한 책이 다른 사람의 기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독서모임을 해왔지만 책 읽기의 성향은 사람마다 다르고 여러 가지 변수도 생겨 같이 해온 세월에 비례해 발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동아리 회원 중 독서의 열정이 식어 평소에 책을 거의 읽지 않고, 필독서만을 겨우 읽어 오는 분이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그 회원이 추천한 책이다. 의무적으로 책을 추천해야 기에 아마 급하게 검색을 해 결정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번 달 독서동아리 필독서이지만 돈 주고 사기는 싫었다. 책을 빌리려고 했지만 주변의 모든 도서관에서 대여되거나 상호대차 중이었다. 마침 밀리의 서재에 있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휘리릭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가독성이 좋다는 것과는 좀 더 다른 의미이다. 그리고 계속 궁금했다.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일까?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도, 막장도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힘내서 한 걸음 나아가 보자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꿈을 소재로 여러 에피소드만을 나열한 소설이었다.

 

이번 모임에는 추천자가 몸이 안 좋아 참석하지 않았다. 그 회원이 없어 나머지 우리는 솔직할 수 있었다. 10년 동안 독서모임을 해오면서 이렇게 완벽한 의견일치를 본 것이 처음일 것이다. 다들 책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만약 추천자가 모임에 참석했다면 그 분이 상처받거나 기분 나쁠까봐 두루뭉술하게 말했을 것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이 사실은 꿈 백화점에 가서 구매하는 것이라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인 페니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취업하고, 여러 꿈 제작자와 백화점을 방문하여 꿈을 사가는 사람들에 얽힌 내용으로 진행된다. 꿈을 사 간 사람들이 꿈을 꾸며 설렘, 호기심, 자신감, 자부심 등을 느끼고, 그 꿈들로 고난을 극복하고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 설정으로 진행되는 내용에 맥락이 없었다. 환타지 소설이나 SF 소설의 설정과 내용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획기적인 것이 많지만 결국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를 이해시키고 감동을 줄 수 있어야만 한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기이한 이야기로만은 좋은 소설이 될 수 없다. 드라마나 다른 매체에서 본 듯한 기시감도 이 소설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 푹 자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든, 여기 이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꿈을 꾸든, 저마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든 시간도 더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

-p.36/354]

 

새벽 두, 세시 쯤 내가 사는 복도식 아파트 복도에 센스등이 켜지며 누군가 뛰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 배송을 위한 택배 기사들이 뛰는 소리이다. 그들은 많은 물량을 시간 내에 배달해야하기에 뛰어다니며 물건을 현관문 앞에 던져 놓는다.

 

언젠가부터 잠은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게  되었다. 현실의 고달픔과 육체적 아픔도 잠이 든 순간만큼은 잊고, 황당한 꿈이라도 한번 꾸고 싶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 각박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환상은 우리에게 잠깐의 여유와 망각을 주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는 현실을 잊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중독성 강한 각성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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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5-31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그분 안오셔서 다행입니다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독서모임도 힘드네요. 저는 남이 추천해도 안 땡기는 책은 읽기 싫어서 독서모임은 못할 것 같은데 가끔 너무 좋은 책 읽으면 진짜 누구 붙잡고 같이 얘기하고 싶잖아요?! 그럴때만 누가 저랑 독서모임 해줬으면 좋겠는데.... 불가능한 일 ㅠㅠ

독서괭 2023-05-31 19:27   좋아요 2 | URL
그래서 자꾸 육고집사님께 가려고 하시는 거군요!!

은오 2023-05-31 19:40   좋아요 2 | URL
게다가 육고집사님이랑 결혼하면 20년정도는 더이상 책을 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엄청난 서재가!! (속닥속닥)

페넬로페 2023-05-31 19:50   좋아요 2 | URL
네, 내년부터 책 선정 방식을 좀 달리 해보자는 결의도 했어요 ㅎㅎ

좋은 책 읽으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분들과 교감 나누고 싶더라고요~~

은오님!
육고집사님과의 결혼, 응원합니다!
빠샤^^

책읽는나무 2023-05-31 20:16   좋아요 3 | URL
아니..은오 님!
육고집사 님의 책장이 탐나서??
ㅋㅋㅋㅋ
CD장도 보셨나요?
음악도 무한 플레이 들을 수도 있겠던데요.^^

잠자냥 2023-05-31 21:12   좋아요 3 | URL

coolcat329 2023-05-31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청소년 소설로 알고 있어서 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잠깐의 여유와 망각‘을 주는 데서 그쳤군요.
페넬로페님은 무슨 책을 선정하셨을지 궁금하네요~

페넬로페 2023-06-01 00:07   좋아요 0 | URL
저는 알라딘 서재 친구분들이 좋다고 한 책을 추천했어요.
읽었던 책보다 읽고 싶은 책을 추천했는데 혹시 제가 없을 때 한소리 들은 건 아니겠지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3-05-31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밀리의 서재 한 달 무료 듣기할 때 궁금해서 클릭했다가 성우의 목소리에 뿅!!!!
했었던 책이었네요.^^
한 달 무료 끝나기 전에 다 못들어서 뒤의 내용은 잘 모르겠네요. 근데 이 책도 2권까지 나오지 않았던가요?
성우의 목소리 연기는 참 좋던데....
엄청나게 팔릴만큼의 내용은 아녔던 것 같기도 합니다. 차라리 <불편한 편의점>이 더 나은 것도 같구요. 편의점 이야기는 인간미가 있잖아요.^^

페넬로페 2023-06-01 00:11   좋아요 1 | URL
저도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 듣는데 성우분들 목소리와 딕션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 책 엄청나게 팔렸다고 하더라고요.ㅠㅠ
더 잘 쓰고 좋은 책들은 잘 팔리지 않으니 안타까워요~~

저도 이 책보다는 불편한 편의점이 훨씬 좋았어요^^

독서괭 2023-05-31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이 책 읽었는데요, 그냥 가볍게 잘 읽히고 설정도 이해가 쉬워서 인기있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독서모임 구성원들도 취향이 안 맞으면 힘들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3-06-01 00:13   좋아요 1 | URL
독서모임 회원들이 다들 착해 웬만하면 비판 잘 안하는 분들인데 이번에는 다들 이 책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설정은 괜찮았는데 그것을 연결시키고 확장시키지 못한 거 같아 별로였어요^^

새파랑 2023-06-01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만 보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느낌이 나네요 ㅋ 독서모임하다보면 안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하는 고충이 생기는군요 ㅎㅎ 저랑 이런 분위기의 책은 잘 안맞더라구요 ㅜㅜ

페넬로페 2023-06-01 22:21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독서모임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책 얘기도 나왔어요.
그 책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나미야가 극적 재미도 있었고 내용도 좋았다고요~~
이 책 좋다는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요, ㅎㅎ

그레이스 2023-06-01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별로였어요
비슷한 이유로 읽었는데, 광고의 힘으로 잘 팔린듯요
이제는 내용도 기억 안나요 ㅋ

페넬로페 2023-06-01 22:27   좋아요 1 | URL
광고 마케팅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알겠네요.
설정은 좋았는데 더 이상 이끌 힘이 작가에게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성공이 작가에게 도움이 됐을 것 같지 않아요^^

2023-06-01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3-06-02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벌써 상반기 마지막달이 시작되었네요 시간의 흐름을 새삼 또 느끼게 됩니다 이 달 건강하게 잘 보내시고 즐독 응원합니다!

페넬로페 2023-06-02 14:54   좋아요 1 | URL
네, 세월이 정말 빨리 가네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어요.
서곡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래요.
감사합니다^^
 

딸아이가 교환학생으로 간 학교의 학기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5월에 여행일정을 정하고, 1월에 파리로 가는 직항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경유해서 가는 좀 더 싼 비행기 표를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혼자 가는 초행길이라 중간에 갈아타는 것이 불안했고, 힘든 경로로 인해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과감히 질러 버렸다.

 

여행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중에 가슴 한 켠에 한 가지 걱정이 계속 맴돌았다. 박완서 작가의 표현대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거 없는(확실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양가의 노모가 여행 직전이나 여행 중에 혹시라도 위독하시거나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라는 우려였다. 2주 동안이나 일을 쉬어야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라 마음이 계속 불안한 상태였다. 그러다 엉뚱한 곳에서 큰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4월 중순에 학기를 마친 딸아이는 2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다녀오고, 그 후 나와 합류할 계획을 세웠다. 누구나 한번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로망이 있다. 나는 가톨릭교도이기에 그 길에 대한 더 큰 기대가 있다. 하지만 딸아이가 혼자 그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전에 제주 올레길을 혼자 걷다가 살해당한 여성이 떠오를 정도였다.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내 말을 들을 딸아이가 아니었다. 배낭, 신발 등 순례길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커뮤니티에도 가입해서 같은 날 출발하는 한국 사람들과 그곳에서 식사까지 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지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마침 투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 와 여행기를 연재하는 작가가 있어 그 분에게 문의도 해 보았다. 너무 늦게 혼자서 걷지 않는 한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약간 안심이 되었다.

 

순례길을 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고 포르투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딸아이는 그동안 사용한 물건을 넣어 둔 캐리어를 짐을 보관해주는 호스텔에 맡겨야만 했다. 캐리어를 끌고 길을 걷는데(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맨 채로) 갑자기 쏟아진 비로 길이 미끄러워 그만 캐리어가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그 반동으로 딸아이까지 길에 미끄러져 왼쪽 발목이 완전 접질려졌다.

 

통증으로 빗길에 한참 쓰러져있던 아이를 자전거를 타고 가던 프랑스 여성이 자전거에서 내려 아이를 도와 약국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약국에서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고 급하게 병원에 예약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론이고 포르투갈 행 비행기 표도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달리 아프면 일단 1차 병원에 먼저 가야한다. 그곳에서 진료를 받고 의사의 결정에 따라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있는데 그것도 많이 기다려야 한다. 한국처럼 1차로 갈 수 있는 병원이 종류별로 나눠져 있지 않고, 응급실은 정말 위급할 때만 갈 수 있다고 한다. 어떤 한국인이 응급실에 갔다가 병원비가 천만 원이 나왔다는 얘기도 있다.

 

X-ray 판독결과로 뼈에 골절이 있지는 않아 움직이지 말라는 것과 발목 보호대와 진통제 한 알만을 병원에서 처방받았다. 딸아이는 급하게 숙소를 잡았지만 그곳에서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기는 무리였다. 일단 통증이 너무 심했고, 좀 더 세밀한 치료가 필요했다. 다리가 불편해 세끼를 챙겨먹는 것도 힘들었다. 멀리 있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속만 태워야했다. 오죽하면 일면식도 없는 알라딘 서재의 난티나무님께 비밀댓글로 문의를 했다. 난티나무님께서도 병원의 처방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글을 통해 난티나무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전한다.

 

딸아이는 귀국을 해야 했고 나는 여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딸아이는 통증과 함께 나에게 미안해했고, 나는 딸아이에 대한 걱정과 여행에 대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파리에서 딸아이가 이에 대해 고민을 했고, 귀국과 여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냈다. 만약 내가 갈 때까지 파리에서 체류해도 어차피 돈이 많이 들 것이니 그 체류비로 왕복 비행기티켓을 끊어 한국에서 치료받고 다시 나와 여행을 하자고 했다. 여행을 포기해도 손해가 많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표의 날짜를 한 번 바꾸었기에 딸아이의 비행기는 환불받을 수 없었고, 나의 비행기도 30만 원정도 수수료를 내어야하고, 유로스타를 비롯해 숙소 등 다른 예약한 곳에도 100% 환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예매할 수 있는 비행기중 가장 싼 것을 선택하다보니 딸아이는 아픈 다리로 바르샤바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야했으며 돌아갈 때도 나보다 하루 먼저 출발해야 했다. 딸아이가 돌아온 그 다음날 바로 병원에 데려갔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이 있는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는 합쳐서 5군데 정도 된다. 그 중 평소에 다니던 곳으로 갔다. 뼈가 골절이 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실금이 있을 수 있다는 소견과 함께 그동안 반 깁스를 하자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쨌든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이렇게나 좋을 수가!

 

다시 출국하기 위해 딸아이는 반 깁스를 풀었지만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었다. 전에 언니도 호주여행을 갔을 때 다리를 접질려 그곳에서 지팡이를 구매해 사용했었는데, 그 지팡이를 보내주었다. 딸아이는 발목보호대를 찬 채로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만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전화위복!

지팡이를 짚고, 여전히 통증이 있어 거동이 불편한 딸아이를 옆에서 부축하며 다니기 힘들었지만, 어디에서나 배려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은 예약을 해도 줄을 길게 서야 하는데, 딸아이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줄을 서지 않고도 입장할 수 있었다.


특히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볼 때가 압권이었다. 모나리자는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고, 관람객들은 먼 발치에서 여러 사람에 둘러싸여 그 유명한 그림을 감상해야만 한다. 그러나 딸아이는 장애인으로, 나는 보호자로 모나리자 바로 앞에서 직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아무런 시야의 방해도, 시간제약도 받지 않고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모나리자는 나에게 웅숭깊은 말을 걸어왔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다. 이 그림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잘 표현하지는 못해도 이유를 알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숙소가 좁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곳이라(그래도 하루에 20만원이다) 힘들었고, 여행에 조금 지친 상태라 새로운 도시로 이동해 45일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파리에서는 거의 매일 비가 오고 날이 개기를 반복했고, 네덜란드의 쾨켄호프에서도 비가 내려 계속 우산이 필요했다. 비가 오면 또 다른 도시의 풍경을 만날 수 있어 낭만적이고 운치가 있지만 다리가 불편한 딸아이에게는 위험해 긴장해야만 했다. 반 곱슬머리인 나에게도 비와 습기는 치명적이다. 아침에 드라이기와 고데기로 잘 정리한 내 머리는 조금의 물기를 만나도 제 본성으로 돌아가 버린다.


런던은 한국의 초봄 기온과 비슷해 쌀쌀했지만 우리가 머무는 내내 날씨가 맑아 좋았다. 날씨 안 좋기로 소문난 런던이라 걱정했는데 오히려 세 도시 중 날씨가 최상이었다. 런던은 생각보다 현대적이었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어디를 가든지 버스킹을 하는 뮤지션을 만날 수 있었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양편에 뮤지컬 공연 포스터가 빽빽이 들어 차 있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에 비해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적었고, no-smoking지역도 많았다. 일단 영어로 모든 것이 소통 가능해 마음이 놓였다. 숙소비용이 가장 저렴했지만, 제일 만족스러웠다. 런던의 지하철은 파리에 비해 훨씬 이용하기 편했고, 한 라인에 여러 노선이 다니는 것이 한국과 달랐다.


노팅 힐 서점1999년에 개봉한 영화 노팅 힐덕분에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곳에 관심이 많았다. 실력이 부족해 영어 원서를 잘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떠나 책 구경 자체는 언제나 흥미롭다. ‘더 노팅힐 북샵은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서점이었다. 전시된 책의 표지들이 정말 예뻤다.


노팅힐 북샵에서 사고 싶은 책이 많았지만 딱 한 권만 골랐다. 호머의 ‘The Odyssey’이다. 나를 그리스 고전의 세계로 인도해준 책이고, 여행자에게 이만큼 어울리는 책은 없을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영웅이기보다 인간적이라 매력적이며,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는 그것을 통한 경험, 고통으로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노팅 힐을 방문한 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포토벨로 거리에 굉장히 큰 로드 마켓(Portobello Road Market)이 열려 있었다. 규모가 엄청났다. 여러 가지 물건과 길거리 음식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켓을 구경하며, 물건을 전시하는 방법은 한국의 남대문 시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노팅 힐에서 딸아이와 티 타임!


러시아 출신의 금융계의 거목인 존 줄리어스 앵거스테인이 사망하자 그의 소장품 38점이 미술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영국 정부가 그것을 매입하고 1824년 앵거스테인의 개인 저택에 내셔널 갤러리를 개장한다. 1838년 트라팔가 광장 인근에 웅장한 고전 스타일로 지은 새 건물로 이전한다. 내셔널 갤러리는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초기의 작품부터 19세기 말 작품까지 회화작품만을 전시하고 있다.(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p.100)

 

파리와 달리 런던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거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미술 전시를 관람하곤 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볼 때, 그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면 좋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전문가의 설명을 그대로 그림에 적용시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림 앞에 서서, 그 그림을 내 눈에 담고 나름의 느낌을 간직하면 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보다 다른 그림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의 거리의 화가와 버스킹


뮤지컬 위키드,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

 

런던은 단연 뮤지컬의 도시라고 할만하다. 한 작품을 전용극장에서 장기 공연할 정도로 인프라가 풍부하다. 상연되는 여러 뮤지컬 중 어떤 것을 볼 것인지 고민했는데, 영어 듣기가 잘 되지 않는 나를 위해 딸아이는 위키드와 레미제라블을 선택했다. 이 두 뮤지컬은 다른 뮤지컬에 비해 저렴했고, 한국에서 관람한 적이 있어 내용과 넘버가 익숙했다.

 

한국에서는 뮤지컬을 볼 때, 기침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민폐에 속한다. 심지어 공연이 끝난 후 몇 열 어느 좌석에 앉은 누군가가 기침을 해서 관람에 방해가 되었다고 공연 후기에 지적할 정도이다. 위키드를 상연하는 극장에 조금 빨리 도착한 딸아이와 나는 그곳에서 한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뮤지컬을 보면서 음식과 음료를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좌석 앞에 있는 QR코드에 접속해 음식을 시키면 직원이 좌석까지 직접 배달해주었다. 인터 미션때는 아이스크림을 관람석에 가져와 팔기까지 했다. 관객들은 다들 먹을 것을 들고 왔다. 와인 병을 통째로, 와인글라스까지 들고 왔다.

 

이런 문화가 뮤지컬 관람에만 집중하고자 하는 관객에게 방해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공연과 관객들의 즐길 권리가 너무 잘 어우러졌다. 위키드의 내용이 약간 즐기면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관객들은 공연에 방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잘 즐길 줄 알았다. 뮤지컬만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가족, 연인들이 함께 와서 몇 시간동안 충분히 잘 놀다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문화적 차이가 충격으로 다가 올 만큼 신선했고, 우리도 한 번 시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Sondheim Theatre

 

레미제라블은 위키드만큼의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음료 정도는 마실 수 있었다. 딸아이와 나도 미리 맥주를 준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이 레미제라블인데 역시나 좋았다. 레미제라블의 넘버는 언제나 좋고 자베르역을 맡은 배우가 너무 멋있었다. 그가 부르는 ‘Stars’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개조해 개관한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을 전시해 놓고 있다. 여러 분야의 현대미술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는 테이트 모던은 나에게는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었다. 전시 목적과 설명을 잘 읽으면 어느 정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역부족이라 그 이미지만을 느끼고 나와야 해서 아쉬웠다.


12시에 문을 여는 테이트 모던 6층에 있는 테라스 바(Tate Modern Terrace Bar)’는 템즈강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맞은편에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입장료가 20파운드가 넘어 그냥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테라스 바 아래로는 밀레니엄 브리지가 있다. 템즈강이 별로 넓지 않아 밀레니엄 브리지로 금방 건널 수 있지만 역시나 보기만 했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 가까이에 버러 마켓(Borough Market)이 있어 이곳에서 빠에야 한 접시와 생과일 쥬스로 점심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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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30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급실에 갔다가 병원비가 천만원 정도가 나오다니... 다른 나라는 병원 가기 쉽지 않은 듯해요 거기 사는 사람도 쉽지 않은 듯하더군요 못 갈 뻔했는데 파리와 영국 런던에 가셨군요 그 시간은 꿈처럼 흘러 갔을 것 같네요 모나리자를 바로 앞에서 보다니, 언젠가 모나리자 보려면 힘들다는 말 들었는데... 사람이 아주 많다는 말도, 그 둘레에 있는 그림은 잘 안 보고 모나리자 둘레에만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다른 그림도 괜찮을 텐데... 뮤지컬도 보셨군요 나라마다 뮤지컬 보는 게 조금씩 다른 듯해요


희선

페넬로페 2023-05-30 06:54   좋아요 0 | URL
그 나라의 국민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일상을 잘 살아가겠지만 외국인은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해요. 우리나라는 동네마다 병원을 진료과별로 갈 수 있어 좋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모나리자를 보통은 꽤 멀리서 봐야하는데 바로 앞에서 직관할 수 있어 좋았어요^^

2023-05-30 0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30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3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30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05-30 1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디세이!
탁월한 선택입니다.
지금이라도 비행기 타고 싶네요 ~♡

페넬로페 2023-05-30 15:20   좋아요 2 | URL
그렇죠! 우리의 출발점이니까요.
다가오는 그레이스님의 여행이 미리 부러운데요^^

2023-05-30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30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3-05-30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라 노모가 항상 걱정이긴해요. 아직 건강한 편이긴 하시지만. 그래도 따님 그만하길 다행이어요.
우리나라 관객수준이 높긴하죠. 연주실황 들어보면 관객들 기침소리 안 나온적이 거의 없던데. ㅋ
사진 멋지네요. 특히 저 탐스러운 책들은.🥹

페넬로페 2023-05-30 15:27   좋아요 2 | URL
여행중에 시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좋아지셨어요.
공연이나 연주회에서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하지만 위키드 보면서 영국의 문화도 좋았어요.
우리나라도 조금 활용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3-05-30 1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들이 외국 여행을 가자는 걸 친정어머니가 안심이 되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면 빨리 돌아올 수 있는 제주도만 가게 되더라고요.ㅋ
다쳐도 전화위복으로 생각하기, 바람직합니다.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죠. 따님이 빨리 회복되시길...
글도 좋지만 사진도 좋습니다. 암스테르담 페이퍼만큼 좋습니다. 최고 최고!!!

페넬로페 2023-05-30 15:31   좋아요 1 | URL
노부모님이 계셔서 언제나 마음이 무거워요.

네, 딸아이가 다쳐서 걱정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행운도 얻었어요 ㅎㅎ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여행기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레삭매냐 2023-05-30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에서 고저 아프면
안됩니다.

다시 한 번 울나라의
내셔널 헬스 플랜의
위대함에 감사합니다.
이걸 고치려는 놈들
은 모두 악당이라는.

플리마켓의 알록달록
사발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빠에야 맛도 보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3-05-30 15:34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도 그렇고 다른 여러가지 시스템도 좋고 합리적이라는 걸 많이 실감했어요.
이런 걸 유지해야하는데 요즘은 자꾸 퇴보해간다는 느낌에 우울해져요.

마켓의 규모가 엄청나더라고요.

빠에야, 조금 짰지만 맛이 괜찮았습니다^^

서곡 2023-05-30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택에 (간접) 구경 잘 했습니다 모나리자 감동입니다!

페넬로페 2023-05-30 19:17   좋아요 1 | URL
생각지도 않게 모나리자를 앞에서 감상할 기회가 생겨 얼떨떨했어요 ㅎㅎ

새파랑 2023-05-30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끝이 행복해서 다행입니다~!! 페넬로페님 딸도 페넬로페님을 닮아서 용감한거 같아요~! 노팅힐 서점도 멋지고 모나리자 직관도 좋고너무 부럽습니다~!!

페넬로페 2023-05-30 19:28   좋아요 1 | URL
네, 끝이 좋아 그나마 다행이었고 무사히 여행 다녀올 수 있었어요.
노팅힐도 그렇지만 런던의 서점들이 다 아기자기하게 예뻤어요.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3-05-30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여행 가고싶게 만드는 페이퍼입니다! 그래도 일정 변경해서 잘 여행하셔서 다행이에요!

페넬로페 2023-05-30 21:49   좋아요 1 | URL
여행 포기할뻔 했는데 이렇게 다녀와서 저도 넘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또 가고 싶어요 ㅎㅎ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5-31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된 글인데 글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읽으면서 마치 런던에 잠깐 다녀온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도 다시금 느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3-05-31 07:31   좋아요 1 | URL
저에게 런던이 무척 생생하게 다가와 여행 내내 행복했고 감동적이었어요.
아마 그래서 제 글도 그렇게 표현되었나 봅니다.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