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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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던 조카가 불임클리닉을 다닌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시험관아기 시술도 여러 번 했지만 실패했었다. 작년엔 아예 1년간 직장을 휴직하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고 올해 다시 회사에 복직을 해야만 했다. 그런 조카에게 최근 아이가 찾아왔고 그것도 자연임신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지만 아직 조카에게 축하를 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가 너무 소중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말을 꺼낼 생각이다.

 

반면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집의 냉동고에 유아시신 2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기를 안고 15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아빠도 있다. 누군가에게 아이는 기다려도 쉽게 오지 않는 존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버거울 정도로 아이가 넘쳐난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 속하든 분명 아이에 대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다만, 사랑보다 더 끈질기고 오래 붙들려 있어야 하는 책임이라는 부분에서 세상 부모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100페이지도 되지 않은 클레어 키건의 짧은 소설의 제목인 맡겨진 소녀, 특히 맡겨진이라는 부분에서 이미 우리는 소설의 반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아이, 그것도 소녀를 맡겨야하는 상황은 말을 안 해도 뻔하다. 부모의 상황이 좋지 않기에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거기에서 레미제라블의 코제트나, 아니면 그 반대로 아이의 집보다 훨씬 좋은 가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원제목은 아이를 맡아 기르다의 뜻인 ’foster’이다. 압축되고 절제된 문장에서 소녀를 위탁 양육하는 킨셀라 부부의 인성과 생각이 느껴져 작가가 제목을 붙인 이유를 이해했다. ‘조성하다, 발전시키다의 의미와도 잘 맞다. 하지만 이 소설의 화자가 소녀이고 그녀의 마음과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기에 맡겨진 소녀도 그리 나쁘지 않다.

 

아이를 기르고, 버터 만들기, 저녁 식사 준비, 송아지 이유식 먹이기, 밭을 갈고 일굴 일꾼 부르기, 돈 아껴 쓰기, 알람 맞추기(p.19) 등 하루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소녀의 엄마가 또 임신을 했다. 당연히 이 집의 경제적 사정도 좋지 않다. 엄마의 수고와 한창 먹성 좋은 아이들 중 한 입을 줄이고자 소녀는 친척집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소녀는 자신의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과 인격적 대우를 받는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소녀의 외가 쪽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아픔이 있었다. 하룻밤 만에 두 사람의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그들에게는 고통이었고, 그것은 현재 그들의 삶에까지 무거움을 주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그리고 다시 아이를 데려간다는 것은 소녀의 부모에게 녹록지 않은 현실과 파렴치함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 밤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항상 거기에 있던 바다로 걸어가서, 그것을 보고 그것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아저씨가 바다에서 발견되는 말들에 대해서, 누구를 믿으면 안 되는지 알아내려고 사람을 믿는 자기 부인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다.

-p.73]

 

존과 에드나 킨셀라는 소녀에게 사랑이 있는 세계를 보여주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다. 삶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힘들지만 침묵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소녀에게 심어준다. 소녀는 우물에 빠질 뻔한 사실을 끝내 자신의 부모에게 말하지 않음으로 배움을 실천하고 그들과의 의리를 지킨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래 전 딸아이와 함께 읽었던 신시아 라일런트그리운 메이 아줌마가 생각났다. 어릴 때 엄마를 잃어, 엄마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을 맡아 길러준 메이와 오브 아저씨의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분명 자신을 듬뿍 사랑했을 것이라고 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렇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보면서 둘 사이에 흐르던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그리고 그 때 받은 넉넉한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p.9, ‘그리운 메이 아줌마’, 사계절]

 

맡겨진 소녀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킨셀라 부부에게 받은 사랑으로 성숙해지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게 된다. 존과 에드나 역시 이 소녀와 함께 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고통을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준 사랑은 아이가 자신을 업어준 것 같은, 없던 불빛이 생긴 것 같은(p.74~75)’ 희망으로 돌아온다.

 

그리움으로 절절할 그들에게 여전히 현실의 두꺼운 벽이 남겠지만, 소녀가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결정한 아빠라는 말로 소통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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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6-26 0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초반부를 읽으면서 ‘킨셀라 부부 왠지 수상한데? 범죄이야기인가?‘ 하고 의심했었습니다 ㅋ 제 마음이 좀 삐뚤어졌나 봅니다. 이 작품은 괜찮았지만 단편 딱 하나만 수록하고 있어서 종
좀 그랬습니다. 단편집이라면 10편정도는 수록되어야 하는 편견이 있어서 ㅎㅎ

페넬로페 2023-06-26 09:41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예상대로 이 소설이 전개되었으면 더 재미 있었을 것 같아요 ㅎㅎ
이 소설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저한테는 완전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이 훨씬 좋아요^^

새파랑 2023-06-26 10:02   좋아요 2 | URL
저도 윌리엄 트레버 단편이 훨씬 좋았습니다~!!

미미 2023-06-26 1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식을 소유로 보는 심리가 동반자살이나 영아살해와 관련이 있다는데 차라리 고아원 같은데 맡겨주면 좋겠어요. 특히 동반자살의 경우 그 아이가 느낄, 믿었던 부모에 대한 극한 공포와 절망이 어떤 것일지ㅠㅠ... 신만이 짐작하겠죠. 저도 윌리엄 트레버를 읽어야겠어요^^

페넬로페 2023-06-26 10:59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잘 키우지도 못하면서 자기 옆에 꼭 두려는 심리가 있어요.
이 소설에서도 저는 소녀를 킨셀라부부의 딸로 입양시켜주는 건 어떤가도 생각했거든요.
트레버의 단편엔 여운이 많이 남아 좋았어요^^

책읽는나무 2023-06-26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큰 올케와 남동생도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데...지켜보면 좀 안타까웠어요. 굳이 아이가 생기지 않음 둘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있지 않겠냐고 넌지시 얘길 하긴 했는데 이 말도 상처가 되려나? 싶어 조심되더군요. 그러면서 저출산이라고 큰일 났다고 뉴스를 볼 때면 이게 뭔가? 싶어요.
더군다나 아동 학대, 영아 살해 뉴스는 더욱....ㅜㅜ
이 책은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읽어야 할까요? 읽으면서 마음이 좀 편치 않겠단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3-06-26 17:18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내용은 뉴스에 나오는 사건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그냥 ‘맡겨진‘의 평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따뜻함도 있고 감동도 있는데 다시 돌아간 소녀가 행복하지는 않을듯한, 떠나보낸 사람의 마음도 아플 것 같아요.

저는 아이를 한 명밖에 키우지 않았지만 아이 키우기가 매번 버거운 느낌이라 아이없이 사는 부부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매번 해요.
참 자식이라는 존재는 어렵네요.
있으면 행복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희선 2023-06-27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바라는 사람한테는 아이가 생기지 않고 아이를 바라지 않는 사람한테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딱 맞게 아이가 가면 좋을 텐데... 집안 사전이 어려워서 집을 떠났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네요 아이는 그 시간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걸로 아주 끝은 아니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6-27 08:56   좋아요 2 | URL
세상이 참 공평하지 않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다 잘 기를 수 있는것도 아니고요.
이 책의 소녀가 경험한 좋은 감정이 그녀에게 평생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어요. 어쩌면 그것으로 삶을 비교하며 괴로울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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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라는 신세계를 영접했다. 이 담담하고도 현대적인 글이 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한다. 황당하게 크게 웃고, 기가 차고, 슬프고, 아프고, 먹먹한 사랑에 안타까워하고...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인간의 실제적 삶을 작가는 여과없이 보여준다. 러시아인에게 사모바르와 보드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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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6-14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홉♡

페넬로페 2023-06-14 22:38   좋아요 2 | URL
정말 ♡♡이예요.

새파랑 2023-06-15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보드카 ㅋ 드디어 체호프를 만나셨군요~!! 완전 강추입니다~!!

페넬로페 2023-06-15 19:13   좋아요 1 | URL
러시아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더라고요.
이 책 좋은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3-06-16 2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전에 보았던 것과 표지가 다른 것 같은데요.
이전 표지의 책이 새로 나왔을 수도 있겠어요.
페넬로페님,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06-16 23:59   좋아요 2 | URL
아, 그렇군요.
이 소설을 표제작으로 하는 책이 많이 있더라고요.
이번 주말에 엄청 덥다고 하네요!
서니데이님
더위 잘 이기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6-19 1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체홉의 광팬이라 단편집을 두 권 읽었죠. 민음사 것과 펭귄 클래식 것으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은 펭귄 클래식의 <사랑에 관하여>에 수록되어 있어요.^^

페넬로페 2023-06-19 22:07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도 읽어 보고 싶어요.

서니데이 2023-06-21 2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 무척 더웠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기온은 내려갔지만, 그래도 습도 때문에 꽤 덥네요.
주말되면 다시 더워진다고 합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06-22 17:01   좋아요 2 | URL
네, 기온이 조금 내려갔지만 여전히 더운 느낌이예요.
에어컨 안 켜고 견디다가 한 번 켜기 시작하니 조금만 더워도 견딜수가 없어요 ㅠㅠ
서니데이님!
더운 여름, 건강하게 지내세요^^

han22598 2023-06-27 0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하하하하!! 체호프 영접하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죠?

페넬로페 2023-06-27 08:50   좋아요 0 | URL
네, 완전요^^
계속 여운이 남아 있어요~~
 

모리아 난민수용소는 튀르키예에 바짝 붙어 있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산 중턱에 있으며, 동에서 서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세계 난민 위기의 중심지인 곳이다. 서로 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지역에서 일어난전쟁과 기근, 불황과 박해가 공통의 산물을 통해 이곳에서 만난다. 그산물이란 안전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다. 이 수천 제곱미터 크기 땅에서 보이지 않는 연결망이 뻗어 나와 지중해와 사하라사막, 유프라테스강, 캅카스산맥을 아우르며 서로 다른 크고 작은 혼돈을 잇는다. 모리아 난민수용소는 연결망의 노드node다. - P7

피드는 호러 장르의 문법을 빌리면서 호러 장르가 저지르는 전형적인 왜곡까지 따라 했다. 피드는 괴물을 이야기의 주역이자 경이로운 힘을 가진 물질적 존재로 부풀리며, 우리는괴물이 저지르는 파괴를 그의 무시무시한 생물학적·심리적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보여주는 행위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 속 괴물들은초인이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괴물의 힘은 그들이 거주하는 구조체에서 나온다. 구조물은 괴물을 제약하는 동시에 그에게 힘을 준다. 그리고 그 구조물의 벽은 2010년대를 거치며 점차 허물어졌다. 괴물이 갇혀 있던 우리의 빗장이 풀렸다.
나는 이 구조물이 신비하지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도 않음을 알게 되었다. 구조물은 혼돈을 단순화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재료로 지어진다. 그 재료란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벌이는 상호작용을하나의 숫자로 압축하는 사회적 장치다. 괴물이 사는 미로는 가격으로 지어져 있었다. - P13

나는 날갯짓하는 나비, 즉 연쇄 위기를 촉발한 하나의 계기를 가격에서 찾았다. 나비는 혼돈에 휩싸였던 2010년대에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날개를 퍼덕였다. 나비의 날갯짓은 필수 원자재 (식량, 원유 같은기초 물자)의 가격이 격하게 출렁일 때마다 원자재 시장에서 일어났다.
지난 10년간 원자재 시장에는 수차례의 가격 충격이 있었고, 그 충격은 매번 세상에 혼돈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벌어진 혼돈은 일종의 전쟁이었으며, 사람들을 굶기고살던 곳에서 쫓아내고 목숨을 빼앗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김으로써 사회 조직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리고 이 모든 전쟁의 원인은가격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가격 전쟁이다. - P15

원자재 가격은 2010년대에 들어 고삐 풀린 듯 날뛰기 시작했는데, 이는 현실 세계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의 기초 여건을 거스르는 움직임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가격이 그처럼 요동친 원인을금융 투기자들이 벌인 소리 없는 전쟁에서 찾았다. 은행과 헤지펀드는 물론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주체라면 누구나 이 전쟁에 뛰어들 수 있었다.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에서도 날로 군비 경쟁이 심해졌고, 매년 새로운 혁신과 전략 전술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발명은 늘 같은 결과를 낳았다. 바로 가격의 혼돈이다. - P16

질서를 세우려던 포퓰리스트들의 시도는 새로운 혼돈을 낳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난민 위기의 진짜원인을 해결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바로 그 위기를이용해 권력을 손에 쥐었다.  - P27

나비 효과에 관한 대중적인 설명에서는 주로 우연한 접촉이 연쇄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로렌츠가 말하고자한 요지는 따로 있었다. 민감성은 인과율이 작동하는 계의 보편적 특징이 아니다. 작은 계기를 큰 사건으로 만드는 증폭기가 계의 중심에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다.
나는 아랍의 봄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건에 연쇄적인 인과관계가있다고 보았고, 이를 조사하면서 몇 개의 증폭기가 함께 작동하며 사건을 키웠다는 것을 알아냈다. 시리아에서는 정권의 폭력이 증폭기역할을 했다. 시리아 정부는 아랍의 봄 시위를 처음부터 과격하게 진압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시위가 발생해도 강경 진압을 이어갔다.  - P34

이처럼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피드를 가득 채우는 광경을 보면, 이모든 일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기 쉽다. 포퓰리즘의 폭발과 세계 난민 위기, 내전, 아랍의 봄은 서로 무관한 사건으로 여겨지며, 언론은 이들을 별개의 비극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의 모래사태에서함께 굴러떨어진 모래알이다. 그리고 이 모래사태를 촉발한 요인은 가격이라는 하나의 단순한 숫자였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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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14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나온 책이로군요.
저희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긴 한데, 대출 중이네요.

목차를 훑어 보니 저는
<베네수엘라의 프랙털 재앙>
이라는 챕터가 가장 궁금합
니다.

페넬로페 2023-06-14 22:37   좋아요 1 | URL
딸아이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인데 흥미로워 제가 먼저 읽고 있어요.
어느정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인데 최신작이라 요즘의 정세를 더 잘 알 수 있을것 같더라고요^^
 
제임스 조이스, 어느 더블린 사람에 대한 일대기 (만화평전)
알폰소 자피코 지음, 장성진 옮김 / 어문학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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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의 좋은 점이 많지만 그래도 가장 큰 장점은 책을 완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잘 읽든 아님 힘들게 꾸역꾸역 대충 읽어내던, 어쨌든 모임 날까지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 무조건 완독해야 한다는 각오와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독서모임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었고, 그 덕분에 율리시스까지 읽을 수 있었다. 모임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두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좋은 문장도 많았지만 대다수 글들의 맥락과 작가의 여성관, 등장인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어려웠다.

 

독서모임의 회원 중 한 분은 책을 읽을 때, 그 책에 나오는 배경지식이나 작가에 대해 아주 열심히 공부하며 읽으신다. 영문학 전공자라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동시에 읽는다. 율리시스의 문장이 굉장히 음악적이라 영어 원문으로 읽으면 훨씬 더 소설 이해가 좋을 것이다. 그 분의 열정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지만(도움도 많이 받았다) 한편으로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의도하는 소설의 배경을 그 정도까지 낱낱이 파헤치며 읽어야 하는가?’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소설에는 분명 글을 쓰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어디까지 그것을 참조해야하는지도 고민이 된다. 나는 작가의 이력이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실제적인 것을 조금만 참조하고, 작가의 글에서 내 나름의 느낌을 받거나 상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소설을 읽으며 그 내용이나 출처에 대해 너무 많이 고민하고 알고자 한다면 한 번씩 이런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p172

 

알폰소 자피코의 그래픽 노블 제임스 조이스는 글과 그림이 많은 책이다. 조이스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충실히 서술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조상부터 시작해 역사적인 사실들과 주변 인물 등을 상세하게 묘사했으며 그림도 정갈하다. 조이스에 대해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리해 놓았다. 조금 가볍고 쉽게 읽히는 그래픽 노블의 특성도 잘 살렸고 만화가 주는 유머러스한 느낌도 상당히 좋다. 원제목인 ‘Portrait Of A Dubliner’에 맞게 제임스 조이스의 인생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잘 꿰뚫어 놓았다.

 

자피코는 그의 만화평전을 통해서 조이스의 작품을 어려워하거나 사전처럼 두꺼운 조이스의 자서전을 선뜻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으며, 아일랜드의 거장인 조이스의 삶과 그의 예술가적 기질을 가감 없이 표현해 냈다.(p7)”라는 커커스의 평에 걸맞다.

 

 

제임스 조이스의 삶은 소설 율리시스의 문장과 닮아 있었다. 그는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하며, 술주정뱅이에다 낭비벽이 심한 사람이었다. 평생 가난에 시달려 여러 군데를 전전해야 했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삶을 산다.



-p.43

 

자신감이 대단하다.


-p.116

 

밥맛없는 말투도.


-p.166~167

 

마르셀 프루스트와 만난 일화가 재미있다.

그렇지!

프루스트씨라면 당연히 이렇게 가차 없이 떠나갔을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인상과 성격 파악에 탁월한 프루스트씨가 본 조이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청 궁금하다.

 

조이스는 아첨하기 않고 기분대로 살아가는 대책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율리시스의 출판이 어려웠을 때, 그의 책을 처음으로 출판해 주고 10년 동안이나 도와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실비아 비치여사에게도 나중에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p.161

 

친구 버전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조이스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 준 것 같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앞과 뒤를 생각하지 않고 뭐든지 했던 사람의 글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고, ‘인생 이렇게 한 번 살아봐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p.170

 

조이스는 녹내장으로 눈이 좋지 않아 여러 번 수술도 하고 통증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만은 대단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글을 썼다.

 

 

 

이 책으로 조이스의 인생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의 삶에 대해 몰랐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한 부분도 많지만, 결국 그러한 것이 바탕이 되어 젊은 예술가의 초상’, ‘더블린 사람들’, ‘율리시스라는 걸작이 탄생했으니 조이스라는 인간을 만날 수밖에 없다. 조이스는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았다. 딸 루치아의 정신병으로 고통도 받았다. 그렇지만 조이스가 겪은 불행은 그 자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많으니 그의 삶이 불행보다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성, 그리고 그가 쓴 소설속의 문장으로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으니 그의 인생은 성공한 셈이다.



순전히 율리시스때문에 방문했던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서점.

 

 

조이스는 자발적으로 아일랜드를 떠났지만 그의 글은 아일랜드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밖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조국을 들여다보며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밖에서 본 아일랜드가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힘들 때 영국에서 주는 후원금을 받아 쓴 적도 있다. 그런 정체성의 혼란이 평생 조이스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그런 인간의 불완전함을 본다. 누구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내 인생에서도 불완전함은 존재한다.

 

그것으로 조이스는 소설을 썼고, 우리는 그의 글을 읽으며 불완전함의 보편성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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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12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아숩게도 그래픽 노블 평전
은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비치되
어 있지 않네요 흠 -

파리에 두 번이나 갔지만, 그 시절
에는 지금처럼 책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인지 <셰익스피어> 캄퍼니
는 가보질 못했네요.

다시 가게 된다면 일빠로 찾을 곳
인데 말이죠 ㅋㅋ 뭐 인생이 그런
거죠.

페넬로페 2023-06-12 19:12   좋아요 1 | URL
이 책이 그래픽 노블이지만 조이스에 대해 잘 서술되어 있어 만족했어요.
도서관에는 왜 그래픽 노블을 희망도서로 받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내부는 사진 찍지 말라해서 조금 빈정 상했어요~~ ㅎㅎ

새파랑 2023-06-12 1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일랜드는 문화강국! 저는 무서워서 율리시스 시작도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조금은 도움이 되겠군요? ^^ 사서 읽어야 겠습니다~!!

저도 독서모임 같은거 해보고 싶네요 ㅋ

페넬로페 2023-06-12 19:14   좋아요 3 | URL
아일랜드가 처한 역사적 배경이 글을 쓰게 만드나봐요.

독서모임이 좋은데 그 구성원도 중요하더라고요.
새파랑님은 영입순서 1순위가 될 것입니다^^

그레이스 2023-06-13 22:13   좋아요 2 | URL
환영합니다 ~~♡

서니데이 2023-06-13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같이 읽으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
페넬로페님, 날씨가 많이 더워졌어요.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06-14 16:25   좋아요 1 | URL
네, 네~~
외국어 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거 후회하고 있어요.
날씨가 은근히 더워요.
서니데이님께서도 건강 조심 하세요^^

희선 2023-06-14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은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이 더 거기에 뭐가 담겼을까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작가가 담으려고 한 게 있기는 하겠지만... 여러 가지 참고해서 보는 것도 괜찮고 자기대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6-14 16:27   좋아요 0 | URL
네, 책 읽는 방식은 각자의 취향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며 그래도 조금의 의미라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미미 2023-06-15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불완전함의 보편성! 저도 페넬로페님과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 있어요. 어떤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너무 많이 쌓다 보면 오히려 나의 독자적인 작품해석의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은 아닌가?하고요.
다만 그리 많이 공부할 자신도 없고 기억력도 나빠서 큰 걱정은 안됩니다ㅋㅋㅋ
이 책 저도 찜해두었었는데 궁금하네요^^

페넬로페 2023-06-15 22:43   좋아요 1 | URL
책을 읽으며 언제나 고민하는 포인트인데~~
일단 게으르기도 하고, 빨리 끝내고 다른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강해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ㅎㅎ
미미님 말씀이 맞아요
뭔가 검색을 해도 돌아서면 까먹어요~~ㅠㅠ
이 책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 잘 서술해 놓았더라고요.
금방 다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이 엄청 알차요^^
 

클로드모네는 자기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마디 설명보다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보는 게 낫다고 말한 바 있다. - P7

"순간적으로 스쳐간장면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장점이다." 모네는 오랜 기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목표는 자연에서받은 느낌에 구체적인 형식을 부여하여 표현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다.

빛의 움직임 속에서 포착한 자연의 ‘일상들‘을 화폭에 담아내려 했다. - P8

정원 회화에 대한 모네의 관심은 현대의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파리에 있는 튈르리 궁전의 잘 손질된 정원, 고모 집을 방문했을 때들렀던 노르망디의 휴양지 생타드레스의 격조 높은 조경은 화려하게 차려입은남녀가 등장하는 현대적 작품의 세련된 배경이 되었다. 에밀 졸라는 이처럼 도시를 우아하게 묘사한 그림을 보고 "정확하고 솔직한 눈을 통해 "실제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작품에 대한 관점을 세우려 하는 화가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에 모네는 힘겨운 시간을 겪는 동안 정원 덕분에 안정을 찾았다고 회상했다. 정원은 그에게 식물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고 자연과 예술에 대한 애정을 조화시킬 수 있는 피난처였다. - P13

예리한 비평가들은 정원에 쏟는 모네의 열정이 화가로서의 정체성의 일부이며 이를 통해 예술적인 감각을 키웠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모네의 작품을 두고 현실과 동떨어진 황홀한 ‘동화의 나라‘를 묘사했다고 평가했을 때 모네는 화를 냈다. 그는 "정원을 그리는 것은 믿음과 사랑, 겸손에서 나오는 행위로서, 정원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발견하여 작품과 나를 동일시하고 작품속으로 흡수될 수 있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현상에서 조화를 발견한 사람은현실로부터, 적어도 인식 기능한 현실로부터 동떨어질 수 없다"라고 확신했고,
자신의 정원이야말로 현실에 가장 단단하게 뿌리내린 존재라고 생각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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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6-11 1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정원까페 가려고 벼르다가, 하필 찜한데가 일요일 휴무여서 못가고 있는데 페넬로페님 페이퍼 보니까 갑자기 정원에 너무 가고 싶어졌어요

페넬로페 2023-06-11 12:07   좋아요 2 | URL
정원카페가면 눈도 호강하고 책 읽는 것도 운치 있고요~~
이왕 마음 먹었으니 다른 정원카페 검색해 보셔서 다녀오심이 어떨지요 ㅎㅎ
얄라알라님, 행복한 일요일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