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있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하루가 터무니없이 빨리 지나가 버린다.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또다른 하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잠에서 깨서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직선으로 그냥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하루의 오후에는 가슴이 텅 비고 나를 둘러싼 공기에 주눅들고  허무해져 울어버리고 싶어진다. 연암 박지원이 끝없이 넓게 펼쳐진 요동벌판을 지나며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 이라며 그곳이 훌륭한 울음터라고 했듯이 한번씩 나에게도 통곡할 울음터가 필요하다.

 

 지난 가을엔 책은 많이 읽었는데 거의 정리를 하지 못했다. 시간은 가고 기억은 사라져 가서 안타까웠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정신이 좀 돌아와 그동안 읽은 책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정리를 해야겠다. 이 해가 가고 있고 내년엔 또 새 책을 읽어야 하기에 어서 내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들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이 두 문장가는 우리들에게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광활한 우주의 한 점 초록별에 사는 지구인들에게, 벌써 망해버린 명나라의 유령들을 여전히 붙잡고 살아가는 답답한 이들에게 편협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새롭고 합리적인 곳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바깥세상이 어떠한지 알아내는 것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코스모스중에서, p386

 

오랑캐라고 하는 청나라는 중국의 제도에서 이익이 될 만하고 오래 향유할 만한 것들을 가로채 가지고는 마치 본래부터 자기 것이었던 양한다.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만 한다.-열하일기 상 중에서, p240~241

 

연암 박지원과 칼 세이건은 같은 것을 다르고 다양하게 말하고 있다.

 

엮은이 고미숙은 '열하일기는 이국적 풍물과 기이한 체험을 지리하게 나열하는 흔해 빠진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뜨거운 '접속' 의 과정이고, 침묵하고 있던 '말과 사물' 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굴' 의 현장이며, 예기치 않은 담론들이 범람하는 '생성' 의 장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열하일기』를 통해 아주 낯설고 새로운 여행의 배치를 만나게 된다.'

고 했듯이 우리는 사람, 환경, 우주 모두를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만나야 할 듯 하다.

 

 

 

 

 

 

 

 

 

 

 

 

 

 

 

 

 

 

 

한 번씩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 내가 눈이 멀게 된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불편해질 것이고 결국 나 혼자서는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생각만으로도 암담하고 비참한 기분이 든다.

빽빽하게 채워진 글들과 쉼표와 마침표의 문장부호만으로 서술되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나의 상상으로 예상되는 눈멂의 세계를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해준다. 실명은 눈을 뜬 채 행해지는 온갖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경고이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을 실명을 통해 보게 하고 일깨우려는 것 같다.

 

여기서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명은 또 이런 것, 모든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p294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 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여기에 이 지도를 세우기 위해, 운명이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왔는지는 운명 자신밖에 모를 것이다.-p330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인간이 겪는 비극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위의 4작품은 개인의 욕망과 욕심, 잘못된 판단. 질투로 인해 끝이 불행하다. 과실, 성격적 결함, 단순한 판단 착오나 실수라는 뜻의 '하마르티아' 로 인해 그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자초한다. 그것이 자기자신 한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아고와 멕베스 부인과 같은 주위의 사람때문에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이 작품들을 읽어 갈 때 이미 우리는 주인공들이 앞으로 불행해지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단지 나약하고 본성에 따르는 인간일 뿐인지라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많은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은 딸들이 배반한다는 것을 리어왕은 인정하지 못했고, 당신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땐 이미 멕베스는 왕이 된 것이다. 사랑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사랑에 빠져버렸기에 안토니는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비극이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의 모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중에서

 

무대에 올려진 작품을 감상하며 배우들은 앞날을 모르는 것 처럼 연기하지만 관객들은 어느정도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며 '나'를 생각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내가 똑같이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나역시 비극적인 삶을 살거라는 공포를 느끼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상황에 막닥뜨린다면 나도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는(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소극적 긍정을 하며 주인공들이 마치 나인양 불쌍해진다.

 

내일과 또 내일과, 내일과 또 내일이

이렇게 쩨쩨한 걸음으로, 하루, 하루,

기록된 시간의 최후까지 기어가고

우리 모든 지난날은 죽음 향한 바보들의

흙 되는 길 밝혀 줬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고

잠시 동안 무대에서 활개치고 안달하다

더 이상 소식 없는 불쌍한 배우이며

소음, 광기 가득한데 의미는 전혀 없는

백치의 이야기다.

-멕베스, 5막 5장, p459

 

 

 

 

 

 

 

 

 

 

 

 

 

 

 

 

 

 

 

 

'햄릿' 이라는 인물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전에 읽었던 '아이스퀼로스 비극' 중 오레스테이아(오레스테스 이야기)에서 오레스테스는 그의 모친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녀의 정부가 부친 아가멤논을 죽였음을 알 때 아무 망설임없이 복수를 감행한다. 그에 비해 햄릿은 망설이고 고뇌한다. 오레스테스와 다르게 햄릿은 르네상스의 인물이기 때문일까?

 

복수를 하는 자는 이유가 있고,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복수의 서사' 는 '고통의 등가교환' 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서사이며 거의 실현 불가능한 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사가 어떻게 창조적으로 실패하는가가 그 성패에 달려있다.-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억울하게 죽어 유령으로 나타난 선왕을 위해 햄릿은 아들로써 뭔가를 해야 한다. 당연히 아버지를 위해 어서 나서야 하겠지만 햄릿은 자신의. 자신만의 존재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햄릿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거의 죽게된다. 우유부단한 햄릿이다. 그러나 그 망설임속에 있는 이유와 슬픔을 알기에 우리는 햄릿을 이해한다. 햄릿의 우유부단함 속에 존재가 있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아,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햄릿, 3막 1장. p94~95

 

'To be, or not to be.'

햄릿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이 문장은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또는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등 여러가지로 번역되는데 내 생각엔 햄릿의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나름 둘 다 맞는 것 같다.

 

 

 

 

 

 

 

 

 

 

 

 

 

 

 

 

 

 

 

 

 

 

직접 읽지 않아도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고귀하고 애절한 사랑의 대명사가 아닌가.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냥 덤덤히 책을 읽었다. 그 덤덤함의 이유는 뭘까.

 

캐플렛가의 딸인 줄리엣은 아버지가 정해준 결혼 상대를 거부한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대놓고 말한다.

 

뭐 뭐, 어쨌다고? 말을 돌려! 이게 뭐지?

"반갑다." "고맙다" 하다가 "고맙잖다."

게다가 "반갑잖다?" 버릇없는 것 같으니.

고맙다 반갑다 다 집어치우고

그 잘난 몸이나 추슬러 이번 주 목요일에

성 베드로 성당으로 파리스와 함께 가.

안 그러면 틀에 묶어 내가 끌고 가겠다.

나가, 누렇게 썩을 년아! 나가, 이 못난 것아!

허연 상판하고는! -로미오와 줄리엣, 3막 5장 p113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지배하는 시절에 자유연애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올리비아 핫세' 로 연상되는 나의 줄리엣이 아버지에게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셰익스피어는 극을 쓸 때 '약강 오보격 무운시' 라는 형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모든 운문 형식 가운데 이 '약강 오보격 무운시' 가 영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에 가장 가까우며 셰익스피어가 그 대표적인 사용자이다라고 〈민음사판〉의 번역자는 말한다. 그래서 번역자도 그 형식으로 번역을 했다고 하셨는데 우리말이 영어와는 달라서인지 책을 읽는데 사실 많이 불편했다. 역자의 노력은 가상하나 앞 뒤가 맞지 않고 억지스러운 데도 많은 것 같아 유감이다.

 

〈열린 책들〉 판은 그러한 형식에 완전히 얽매이지는 않은 것 같아 읽기는 민음사판보다 좀 쉬웠다. 그러나 너무 산문적인 느낌이 강해서 아쉬웠다.

 

 

 

 

그 밖에 읽은 책들.....

 

 

 

 

 

 

 

 

 

 

 

 

 

 

 

 

 

 

 

 

 

 

 

 

 

 

 

 

 

 

 

 

그리고

 

 

 

 

 

 

 

 

 

 

 

 

 

 

 

 

 

 

 

 

박상영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사랑에 관한 얘기인데 그 대상이 동성이다. 여자사람친구 재희와 엄마도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그냥 즐기려고 만나기도 한다. 아닌 것 같은데도 마음을 제어할 수 없어 그 사람을 만나야 하고, 진짜 사랑하는데 또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이성을 사랑하든 동성을 사랑하든 사랑이란 비슷비슷한 유형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그 불편한 진실을 나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며 깨달았다.-p169

 

반짝,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나는 감히 규호를 따라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설렘도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밤이 끝나는 시점과 해가 뜨는 시점은 이어져 있으니까.-p248

 

그래,그래 맞는 말이다. 어쩌면 그 절절한 사랑들은 한여름밤의 꿈들일지도 모른다. 훼방꾼 큐피드의 화살에 맞아 휘청거리며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결국엔 만신창이가 된 자기자신만 남는다.  

 

사랑의 정체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부모들은 그 현상을 인정하기 보다 병으로 여기고 치료되기를 원한다. '대도시의 사랑법' 의 주인공 영의 엄마도 그랬다.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영은 상처를 받고 엄마와 소원해지지만 그 엄마는 암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엄마를 용서할 수 없지만 엄마이기에 영은 엄마를 돌본다.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 있잖아

단 한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때 내마음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 나를 이런 형테로 낳아놓고, 이런 방식으로 길러 놓고, 그런 나를 밀어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 무지의 세계에 놔두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제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엄마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알지만, 나는 엄마를,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정말, 미안한데, 아마도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영은 엄마를 용서할 수 없지만 엄마 역시 아들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와 똑같이 외동딸을 두고 있는 어떤 분이 소설. '딸에 대하여' 를 읽고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대상이 누구든 딸과 함께 있어 준다면  내가 가고 없을 때 홀로 남겨질 딸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러면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도시의 사랑법' 엔 올림픽 공원이 자주 나온다. 우리집에서 산책길을 따라 45분쯤 가면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는 지라 좀 반가웠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실내에서 운동을 할 수 없어서 올해는 자주 올림픽 공원까지 걸어갔다. 걷다보니 걷는 것의 매력에 푹 빠졌고 시간이 날 때마다 걸어갔다.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면 생수나 커피를 사서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 곳의 벤치에 않아 그저 멍하니 있다 온다.  이 소설을 읽고 그 벤치에 않아 영을 생각하기도 했다. 무서운 병에 걸려버린 영!

내내 영이 한 말이 걸린다. 영이 좀 편안히 잘 살면 좋겠다.

 

지난 시절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결국 나의 몸과 나의 마음과 내 일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더 열심히 깨달을 따름이었다. 공허하고 의미 없는 낱말들이 다 흩어져 오직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만이 남는다.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미간에 짙은 주름을 짓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의 호흡만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세상.-P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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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13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읽으셨는데요!!!!! 더구나 제가 오래 벼르던 [코스모스]!! 저도 책을 받았으니 조만간 따라서 읽을게요~~!!^^

페넬로페 2020-12-13 16:59   좋아요 1 | URL
이번에 읽은 책들은 워낙에 유명한 책들이라 글쓰기가 조심스러웠어요 ㅎㅎ
코스모스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읽기가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유튜브에 칼 세이건이 만든 영상도 있는데 옛날거라 좀 그렇더라구요^^

scott 2020-12-13 1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페이퍼 한글자 한글자 음미하면서 읽어야할 구절이 많네요 연암박지원에 책을 제외하고 코스모스부터 셰익스피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까지 2020년에 제가 읽었던 책들의 흔적과 똑같네요 지금은 이덕무 산문과 도끼선생에 죽음의 집을 그리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마무리짓지 못하는 2020년이네요

페넬로페 2020-12-13 20:04   좋아요 2 | URL
scott님과 읽었던 책이 겹치는게 많아서 영광입니다^^
2021년도엔 어떤 책들을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파이버 2020-12-13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성애에 대한 인식도 최근에서야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영이 엄마한테 느끼는 감정도 이해가고 아들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도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가을 동안 다독하셨네요! 이제 연말에 읽은 책들 페이퍼를 기다리겠습니다~

페넬로페 2020-12-13 20:30   좋아요 2 | URL
네, 저도 파이버님과 같은 생각이었어요~~
영과 그의 엄마의 입장이 둘 다 이해되더라구요^^

모모 2020-12-14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그동안 글소식이 뜸하여 바쁘신가 아님 슬럼프이신가 했는데...역시나 였네요! 좋습니다^^

페넬로페 2020-12-14 23:03   좋아요 2 | URL
조금 바빴고 많이 슬럼프였습니다~~
모모님!
안부 물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조심 하세요**

scott 2021-01-09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어제보다 덜춥다고 해도 밖은 꽁꽁
건강 잘챙기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1-09 11:5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아직 몰랐어요^^
살며시 얼굴에 미소 한모금!
기분 좋네요**

초딩 2021-01-09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피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 추카드려요~~~!!!

페넬로페 2021-01-09 11:53   좋아요 1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서재에 오셔서 축하해 주셔서요^^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고 있다. 처음엔 사기의 형식에 익숙하지 않아 읽기가 많이 힘들었지만, 읽어 갈수록 익숙해져서 책장이 잘 넘어가기는 한다. 하지만 내 손안에 쥐어진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다음 장으로 가면 그 전의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 등장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인것도 같지만 절대적인 배경지식의 부족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지도도 찾이보았다. 유튜브와 네이버 열린 연단의 '사기열전' 강의도 들었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 도 그런 이유로 같이 읽기 시작하였다.

 

문득 중학교 시절, 한국사와 세계사 선생님이 떠오른다.

두 분 다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국사 선생님은 수업을 하실 때, 그 넓은 칠판에 한 번 빽빽히 판서를 하시고, 그것을 지우고 두 번째 판서를 하시면서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항상 그 전 시간 수업 내용을 물어보시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순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 날의 날짜와 같은 번호가 될 수도 있었고 그 날짜의 그 다음 번호가 될 수도 있었다. 복불복으로 한 사람이 지목되면 그 다음에 앉은 사람, 또는 대각선으로, 그 옆으로 순서대로 죽 질문하셨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학생은 세워두었다가 마지막에 등짝이나 목덜미를 한 대씩 때리셨고-그것도 당신의 손바닥으로- 그렇게 맞고서야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요즘엔 상상할 수도 없는 선생님의 폭력이었지만 그땐 그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힘들었지만 오히려 좀 재미있었다. 가르치는게 엉망인 것이 아니라 훌륭히 수업을 하시는 분이 그런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는 국사를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다들 선생님을 존경했었다.

 

국사 선생님과는 다른 스타일의 세계사 선생님은 무척 유머가 있으셨다. 항상 우리를 웃겨주시면서 직접적인 세계사의 내용과 더불어 그 배경에 대한 얘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셔서 언제나 세계사 시간은 재미있었다. 그 두 분 선생님 덕분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역사를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했었다. 다시 중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니 그때가 생각나 잠시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은 중학교 시절의 세계사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같다. 책 내용 곳곳에 '사기'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사기를 바탕으로 여러 자료를 가지고 소설을 구성한 듯 싶다. 소설이지만 역사에 대한 것이기에 다큐멘터리나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재연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 같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떤 것이 작가의 상상력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고, 작가의 사관도 궁금하지만 일단은 그냥 읽었다.

 

'항우와 유방' 1은 진시황 '정' 이 중원 6개국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한 시기부터 시작되고 있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로 전국시대는 끝을 맺고 각 나라는 진의 행정조직으로 재편된다.

 

그 전까지 중국 대륙은 수많은 왕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통일이란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그가 중국 통일이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자 사람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p15

 

각 나라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유민이 되어버렸고 권력은 오로지 황제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었다. 시황제는 중앙집권과 법치주의를 내세워 폭정을 일삼았다. 형벌을 내리고 세금을 거두며 각종 토목공사의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노역을 강제했다. 그로 인해 유민들의 불만이 많아졌고 이것은 언제라도 반란의 싹이 될 수 있었다.

 

'진시황의 결정적 패착은 모든 백성을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역의 현장으로 내 몰았다는데 있었다.-p68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황당하게도 온량거를 타고 순행하던 수레안에서 죽고, 환관 조고가 황제의 막내아들 호해를 내세워 권력을 잡는다.

 

양자강 이남의 강남은 중국의 변방지대이고 황하지역의 중원과 언어와 풍속도 달랐다. 진정한 한족이라 인정도 못받을 정도로 그들은 그들 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항우는 BC223년에 멸망한 초나라 사람이었다. 초의 유명한 장군 향연의 후손으로 항우의 숙부인 항량에 의해 교육받았다. 항우는 강남 사람을 일컫는 형만이었지만 중원 문화를 배운 집안의 자손으로 키가 8척이나 되어 일단 외모에서 압도적인 인상을 주었다. 육체적으로 초인에 가까운 조건을 가졌고 민첩하고 직관력이 뛰어났으며 힘도 무척 셌다. 항우는 희대의 명장이었다.

 

항우보다 15세가 많은 유방은 패현 중앙리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유방의 '방'은 형 또는 언니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로 그는 이름조차 변변치 못했다. 거의 문맹 수준이었던 유방은 아는 것은 별로 없었고 허풍쟁이였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작가는 이것을 '귀여움' 또는 '애교'라고 표현했다.

 

그 감탄하는 모습에는 애교가 넘쳤고, 그 애교는 그냥 그대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덕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유방이 나아가는 곳마다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이 서로 신하가 되겠다고 자청하는 것이었다.-p256

 

그 시대는 '종횡가' 라 불리는 책사 또는 유세가들의 활약이 많았고 필수적 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그리고 공적으로는 천하의 쟁패를 위해 의견을 제시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떤 유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승패가 결정되었다. 유방은 그들을 보는 선구안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능력있는 관리를 찾아내는 눈과 그들을 크게 대우해줄 수 있는 배포를 가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진나라의 횡포가 심해져 초나라의 농민 출신인 진승은 우연히 진나라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고 그것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시작된다.

 

'진승은 거대한 진 제국을 향하여 돌팔매질을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돌팔매질이 걷잡을 수 없는 눈사태를 일으키고 있었다.'-p163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서로 뭉쳤다가 배반을 거듭한 끝에 결국 초나라의 후예인 항우의 주력군은 거록성으로, 유방의 별동대는 관중으로 향한다. 거록성에는 연승을 거듭한 진나라 '장한' 의 20만 부대가 버티고 있었다. 항우의 7만 부대는 그들과 대적할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경포의 선공과 항우의 용맹함으로 초는 거록에서 승리하고 장한은 항우에게 투항한다.

 

한자 '坑' 은 '구덩이' 또는 '구덩이에 묻다' 라는 뜻이다. '분서갱유' 에서의 갱은 유교를 금지하고 법가주의 사상을 지향한 진시황이 유학자 460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버린 것을 뜻한다. 항우도 갱을 좋아했다. 숙부 항량과 같이 활동하던 시기에 그는 몇 천 명에 달하는 항복군을 포박하여 성 밖 구덩이에 산 채로 묻어버린다. 거록성 전투에서의 승리후에도 진나라 병사와 초나라 병사간의 반목이 시작되자 진나라 병사 20만을 갱해버린다.

 

보통 대학살은 병기를 사용하는 법인데, 그럴 때는 살륙이 중노동이 된다. 항우는 피학살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주 교활한 방법을 구사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대학살극이었다.-p355

이 일로 항우는 민심을 잃는다. 원한에 사무친 그들의 가족은 유방에게 기울어진다.

 

몇 만의 사람들이 움직이려면 먹어야 하고 잠잘 곳이 있어야 한다. 그것의 대부분은 백성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조달한다. 식량을 빼앗긴 백성들은 유민이 되고, 유민이 갈구하는 것은 오로지 식량이었다. 대소 영웅호걸들은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줌으로써 그 자리를 보장받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우리들에겐 먹거리와 잠잘 곳이 필요하다.

 

역사의 결말을 이미 알지만, 유방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2권에서 기대해본다.

 

 

***아!

컴퓨터 절전모드 상태에서 로그아웃된 것도 모르고 다시 돌아와 신나게 써서 등록했지만 내 글을 찾을 수 없어 중간부터 다시 썼다. 포기할까 하다가 아까워 그냥 썼다. 허탈감과 피로가 몰려온다.

글을 찾는 다른 방법이 있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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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없는 것 같아요.ㅠㅠ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알라딘 임시저장 기능을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렇고, 그래도 다시 쓰신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페넬로페 2020-11-30 13:09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글이 날아갔을때의 암담함이 다시 떠오르네요 ㅠㅠ
그곳에서도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겅하시기 바랍니다^^
 

 

 

 

 

 

 

 

 

 

 

 

 

 

 

소설가, '김금희' 가 쓴 산문들은 조용하다. 직접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세상과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게 한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완성해가는 과정들에 많은 생각들과 느낌들이 교차하는 것 같다. 작가의 가족과 어린 시절의 얘기들, 책과 영화,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을 담담하면서도 살짝 아프게 드러내 놓았다.

 

아픈 기억을 버리거나 덮지 않고 꼭 쥔 채 어른이 되고 마흔이 된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손에서 놓았다면 나는 결국 지금보다 스스로를 더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삶의 그늘과 그 밖을 구분할 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서문에서

 

아픈 것들을 손에 꼭 쥐고 그것들을 글로 써주는 사람이 소설가가 아닌가 한다. 드러내지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것, 쉽게 이해할 순 없지만 그 사람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어떤 진실 같은것을 소설가들은 서술해준다. 치열하고 힘들게 새겨진 글자들은 나에게 편견없이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나쁨' 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울어야 할 일과 절대 울고 싶지 않은 일, 되돌려주고 싶은 모욕과 부끄러움, 한순간 광포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환멸과 후회들이 차창 밖처럼 연속된다. 나는 누구나 아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소설은 어느 나쁘지 않은 오후에 누군가의 문상을 가듯 읽어 주었으면. 우리는 언젠가 이 세계에서 지워져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이 되겠지만 아직 우리는 내가 나빴습니까, 하고 더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므로 문상을 가는 우리의 얼굴이란 다 젖었다가도 마르고 어두워졌다가도 다시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p152

 

저렇게 절절한 소설가의 바램을 들으며,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먼저 경외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남에게 내보이는 글은 그 치부를 드러내며 발가벗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곁을 떠나간 글들은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쓴 글은 영원히 자신의 것이다.

 

알라딘의 북플에서 1년 전 쓴 나의 글들이 올라온다. 공개적인 매체에 글을 쓴 지 벌써 1년이 됐나보다. 그동안 책을 읽고, 특히 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으며 '나쁨'에 대해 지겹도록 알았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책이 나에게 많은 행동의 변화를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책을 읽느라 가족과 사람들에게 소홀해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을 읽으며 가난에 대해 몸서리치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상대적이겠지만 나의 가난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 는 건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쁘지 않게 살아가야하는 것인데 한번씩 책이 나를 좀먹게 하고 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도 더 착하고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는 것에 좀 더 책임을 가지고, 글을 쓴 분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글을 허투루 읽지 않기 위해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힘들게 힘들게 조금씩 채우고 있고 더디지만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나의 지인중에-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다- 뜨개질을 잘 하는 분이 있다. 그녀는 힘들게 뜨개질을 해서 만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준다. 내가 지금 들고 다니는 숄더백과 사용하고 있는 카드 지갑과 파우치는 그녀가 나에게 만들어준 것이다. 귀한 것을 받기만 해서 송구스런 나에게 그녀는 자기가 그것을 좋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에는 '흥성스러운'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러 사람이 활기차게 떠들며 계속 흥겹고 번성한 분위기라는 뜻인데 내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라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한 단어를 익히며 갑자기 알라딘 서재가 떠올랐다. 흥성스럽게 책들을 읽고 글들을 써내며 활기차게 떠드는 곳이 알라딘 서재가 아닐까 한다. 손재주가 없어 뜨개질을 할 수 없는 내가 위로받을 수 있고, 더 많이 읽어라고 흥성스럽게 자극하는 곳이 이곳이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예단하지 않고 내가 여기까지 해주겠다 미리 선 긋지 않는 선의. 그러한 선의가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올 수 있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가. 이러니 매순간 배워나갈 수 밖에 없다.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에 다행스러워 하면서. 그런 마음들을 기꺼이 배우겠다 다짐해보면서.-p79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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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07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1인입니다.

2020-08-0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4-03-2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2020 이젠 꽤 오래 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안남은 이달 잘보내시길요!!

페넬로페 2024-03-29 18:06   좋아요 1 | URL
2020년이 정말 아득하게 느껴지네요.ㅎㅎ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탓인 것 같아요. 서곡님께서도 남은 3월, 잘 지내시길 바래요^^
 

 

 

 

 

 

 

 

 

 

 

 

 

 

회사 다니면서 열심히 책을 읽고 읽은 것에 대해 글을 쓰며 책까지 내는 성수선작가가 이번에는 먹을 것을 들고 왔다. 작가의 책인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를 읽으며 그녀의 책에 대한 글쓰기와 느낌이 좋았다. 이번에 출간한 책의 내용은 작가가 평소에 잘 다니는 식당과 여행 갔을 때 먹었던 음식에 대한 것이다.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는 여지껏 먹은 것에 대해 누구나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음식과 관련된 내 얘기도 수없이 많고, 다른 사람과의 추억도 끝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너무 식상하고 평범한 느낌이 든다.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별로 없는 나에게는 세상 음식이 그저 비슷하다. 보통 정도의 음식이면 맛있게 먹는 편이다. 먹는 것에 목숨 걸지 않으며 tv의 먹방 프로그램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먹는다는 행위의 소중함과 중요함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조금 부족한 것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먹는다는 것과 내가 먹은 수많은 음식을 생각해봤다.

 

그렇게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어떤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가 나에게 해 주신 많은 음식들이 생각났다. 요즘같이 더울 때는 장어국이 먹고 싶다. 삶아 으깬 장어살에 여러가지 야채를 넣어 끓이고 마지막에 방아잎을 넣은 장어국 한 그릇을 먹으면 속이 든든해진다. 바닷가 도시에서 자란 나는 그런 장어국이 비리지 않다. 장어는 몸보신으로 좋은데 숯불에 그냥 굽거나 양념장을 발라 구워도 괜찮다. 몸이 부실하고 아플때 엄마는 장어곰국을 만들어 주셨다. 하루에 두 번 정도 탕약을 먹듯이 그냥 한사발 마시면 몸에서 흡수되는 느낌이 생생하다. 살이 통통한 가자미를 넣은 미역국도 맛있고, 머위잎을 쪄서 멸치 젓갈로 만든 양념장을 곁들여 갓한 밥을 싸먹어도 좋다. 기력이 약해지는 여름에 그 음식들을 먹으면 힘이 난다.

 

엄마가 해준 음식을 맛나게 먹으며 자라났고, 지금은 엄마가 직접 만들어 보내주신 된장, 고추장, 국간장, 멸치 액젓으로 음식을 해서 식구들을 먹이고 있다. 된장, 고추장, 국간장만 맛있으면 웬만한 한국 음식은 무조건 맛있다. 그 베이스에 재료만 달리해서 조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베이스가 소진되어 가고 있고 더이상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치매라는 병에 걸린 엄마는 음식 만드는 순서도 잊어버리고 이제는 힘에 겨워 뭔가를 잘 하지도 못하신다. 나와 전화할때마다 나에게 어떤 반찬을 하는지 물으신다. 그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나도 난감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해드린다. 해먹지 않아도 마치 내가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음식의 종류를 나열한다. 엄마에게 요리만드는 방법에 대해 질문도 한다. 그러면 엄마는 아주 자세히 대답해 주시지만 직접 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다. 지금 가지고 있는 된장, 고추장, 국간장이 떨어지면 어떡해야 하나?

 

요리에 관심도 재주도 없는 나라는 엄마를 가진 21살된 딸아이는 그냥 포기하고 자신이 직접 요리를 많이 한다. 밀푀유나베같은 정성이 많이 가는 음식도 곧잘 만들고 수제비도 잘 끓인다. 딸아이는 주로 일품 요리를 하는데 항상 기름에 뭔가를 볶아서 만들어 낸다. 올리브유와 버터, 피자 치즈가  많이 사용된다. 스파게티나 새우나 쇠고기를 곁들인 감바스, 오무라이스같은 것인데 맛은 있다. 하지만 걱정이 된다. 저런 것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거나 건강에 좋지 않을것 같다.

 

엄마가 나에게 차려주신 그득하고 윤기있는 밥상, 딸이 나에게 해준 접시 하나에 담겨있는 음식이 차려진 밥상......

서로 대조되지만 그 나름의 특징과 먹는 재미가 있다. 거기에 모녀간의 대화가 있고 추억이 있다. 먹으면서 얘기한다는 건 친해야 가능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건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따뜻한 음식들을 먹으며 모두가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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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작품뿐 아니라 여러 러시아 문학은 읽어 내기가 어렵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부터가 외우기 힘들고,  자세하게 서술되는 사건과 배경에 대한 설명의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 중간중간 작가의 사상을 주인공의 입을 빌어 장황하게 밝히기도 한다. 글의 분량도 많다 보니 맥락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일단 읽어낸다는 것에 의의를 둘 때가 많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는 접근하기 어려운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문장과 인물들을 경쾌하고 발칙하게 삶에 접목시킨다. 인물들의 캐릭터가 까다롭고 이해 안되는 곳에서도 그 의미를 찾아낸다. 일단은 가볍게 이 책을 읽으며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벽을 넘을 수 있도록 해준다. 도작가의 도작가(도스토옙스키)에 대한 해석이 옳다, 그럴듯 하다, 또는 영 아니다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 도제희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말을 통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을 품위있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하루를 놓치지 않으려 바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오랜만에 나의 젋은 시절을 되돌아 불 수 있게 해주었다. 서투름과 치기와 어리석음에 대한 나와 비슷한 작가의 경험이 있었다. 한번씩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을 붉힐 때가 있는데, 그 미숙함에 대해 두 명의 도작가가 날 위로해주었다. 책을 통해 그런 것들에 대한 고해성사를 했으며, 그래도 그것이 날 지켜줄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변명도 해보았다.  작가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 중에서 이반이 알렉세이에게 해주는 말을 인용한다.

 

"이봐,수도사 나리, 어리석음이란 이 지상에 너무나 필요한 것이야. 세상은 어리석음 위에 세워져 있고 그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는 거라고! " -p50

 

미숙하고 어리석은 젋은 시절은 지났지만 여전히 난 부족하고 세상에 주눅든다. 이만큼 살았으면 나라는 사람이 더이상 흔들리지 않고 당당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도작가는 도작가 소설의 인물들을 계속해서 등장시킨다. '백치'의 레프 니꼴라예비치 미쉬낀 공작의 솔직함을, '노름꾼' 에 등장하는 가정교사의 당당함을 배우라고 한다.

 

그렇다고해서 삶의 주도권까지 내어 줄수는 없는 노릇이다.....누군가 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 삶까지 좌우하려 할 때, 즉 내 삶의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는 양 굴려할 때 거절할 만한 지혜와 배짱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내 인생의 모든 행운과 불운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감당하겠다는 주인 의식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p214

 

이러니 도스토옙스키를 읽지 않을 수가 없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는 우리를 부담없이 도작가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고전문학이 지금도 권장되는 이유는 '고전' 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고아한 이야기와 좋은 문장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 지금 나의 삶과 매우 닮은 이야기가 대단히 설득력 있는 인물과 서사로 살아 숨 쉬기 때문일 것이다.-p284

 

나도 같은 생각이다.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의 우리를 얘기해주고 있다.

전에 '죄와 벌' 과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을 읽을 때는 그냥 이 벽돌책들을 묵묵히 읽어내자는데 의의를 두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버전으로 다시 한번 읽고 싶다.  7월에는 난데없는 알라딘의 도스토옙스키 읽기에 동참해보고자 꼭 도작가의 책을 한 권 읽어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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