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책소개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떤 유명한 드라마 작가는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소개하며, 이 책을 읽는 순간 저자가 딱 자신의 남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가볍고 얇은 것이 닮았다고....그녀의 얘기를 듣고 부담없는 마음으로 많은 재미를 기대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가벼운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진중했다. 유머 코드가 없는건 아니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대해 다양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거시적인 개념서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드라마 작가는 책의 어느 부분에서 자신의 남편을 연상했는지 모르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으며 표현된 빌 브라이슨의 말들은 결코 가볍고 얇지 않았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국의 대표적인 3대 장거리트레일 중 하나로, 애팔래치아 산맥이 뻗어있는 모양대로 미국 동부의 남북을 길게 가로질러 있으며, 걷는 거리가 총 3500km 에 이르는 산길이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살다 미국으로 돌아온 빌 브라이슨은 뉴햄프셔의 작은 마을로 이사했는데 자신이 사는 마을의 길이 애팔래치아 트레일로 연결되는 것을 발견한다. 곧 그는 트레일을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25년 동안 거의 만나지도 않았던 친구 카츠와 함께 걷기를 시작한다.

 

이 책에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유래, 시초와 함께 저자가 지나간 구간에 대한 특별하고 슬프기도 한 역사와 트레일에 접해있는 마을의 특징도 실려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인디언의 트레일이나 식민지 개척의 길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길과 편의 시설을 건설하고, 여러 천연자원을 채굴, 나무를 벌목하는 과정에서 많은 야생동물과 숲이 사라지고, 환경이 파괴되었음을 저자는 아쉬워한다.

 

트레일을 걸으며 느끼는 감상도 풍부하다. 힘든 트레일 걷기를 하며 숲, 고독, 매일 똑같이 걷기, 저체온증에 대해 얘기한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중 가장 문학적인 산인 그레이록(이곳에서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집필했다)’에 대해, 일이 가장 암울하거나 꼬여 있을 때 뭔가 운수 좋은 일이 일어나 당신이 순항하도록 돕는 산길의 마법에 대해서도 그는 아름답게 표현한다.

 

친구 카츠와 함께 한 여정도 무척 인간적이다. 등산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카츠가 같이 트레일을 걷기를 원했을 때 브라이슨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한 번씩 마음이 맞지 않고, 걷는 속도도 다르지만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주는 동지가 된다. 몇 개월 걷기를 쉬고 다시 그들이 만났을 때, 친구 카츠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걸 브라이슨은 알게 된다. 카츠는 약물과 알콜중독의 전력이 있어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안된다. 브라이슨은 격분하지만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카츠의 고독과 힘듦을 이해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인간 카츠를 통해 삶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힘든 카츠를 위해 빌 브라이슨은 과감히 트레일 걷기를 포기한다. 난 이 부분이 이 책에서 제일 좋았다. 뭔가를 꼭 끝까지 하며 성취해내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를 위해 그만둔다는 용기도 아름답다. 겨우 트레일의 39.5%를 걸었어도 그들은 그 길 위에 있었다. 그러면 된거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텐트 칠 줄도 알게 되었고, 별빛 아래서 자는 법도 배웠다.....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나는 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내게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3520킬로미터를 다 걷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것이다.

p389

 

 

 

 

 

 

 

 

 

 

 

 

 

 

 

 

나를 부르는 숲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는 책이라면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147일 동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종주하며 걷는 경험과 느낌을 세세하게 서술한 책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식도 따로 하지 않고 신혼여행으로 자전거와 걸어서 하는 세계여행을 선택한 부부의 이야기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자는 인생 모토를 가지고 이들은 길을 걷는다. 보통 사람들이 거의 매일 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특별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거기엔 분명 우리가 체험하지 못하는 좋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다 다를 거지만 각자의 삶에 행복이라는 단어는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난 행복한가?

 

트레일매직(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하이커들을 위해 음식, 비상약품, 숙식등을 제공해주는 것)’이라는 것이 있다. 계속 걷는 사람들은 배낭에 최소한의 음식만을 넣고 다녀야 하는데 그들은 매번 배가 고프다. 그럴 때 누군가가 놓아둔 트레일매직을 만나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울지 이해가 된다. 트레일매직 뿐만 아니라 하이커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돈을 써가며 도와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이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세상은 그래도 이런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해본다. ‘트레일매직’,산길의 마법을 브라이슨과 이하늘은 이렇게 다르게 표현했지만 그것은 하나다.

 

트레일을 걷다 보면 하이커들은 비를 자주 만난다. 온 몸이 축축한 채로 걷다가 마을을 만나면 그곳에서 몸을 말리고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감사의 대상이 된다. 그러고보면 감사란 큰 것이 아닌 작은 것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지만 매번 까먹는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항상 행복한 건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순간순간 불안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이 맞는지를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특별한 길을 가기로 선택한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내가 가지 못하는 길을 과감히 들어선 그들이 보내는 행복의 메시지가 많았으면 한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워낙 많이 알려진 책(이제야 읽었다)이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좀 더 알고자 아무 기대없이 선택한 이하늘의 책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두 부부가 가고 있는 특별한 길과 그 길에서의 느낌을 진솔하게 표현해 감동적이었다. 그들이 계속 행복하기를...

 

앞서가던 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잠시 멈추면, 이내 그도 멈춰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걷기 시작하면 그 역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재촉하거나 추월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고 함께 호흡하고 발걸음을 맞춰 가는 것, 그 순간 이것이 바로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p36

 

"Hike on your way(너만의 길을 가)-p54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걷기를 시작했다. 나의 두 발로 걸으면 걸을수록 걷기라는 것의 매력에 빠졌고, ‘걷기에 중독되었다. 걷기 시작하니 이젠 웬만한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요즘은 동네의 산책길뿐만 아니라 전국의 유명한 곳엔 거의 데크길을 설치해 걷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걷기를 위해 사람의 손길이 꾸준히 필요해졌으며 그것을 계속 관리하기 위해서도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을 위해 설치한 인공적인 길 때문에 또 그만큼의 자연이 훼손될 것이다. 하지만 나이드신 엄마와 함께 걷는 그 편안한 길이 고맙기도 하다. 엄마가 그 길을 걸으며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실 때 그 길은 엄마에게 트레일 매직이 된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사람과 자연에게 다 좋은지 그 선택은 무척 힘들 것 같다. 그 방향이 탁월하고 센스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4-06 13: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곰들의 길 ㅎㅎ 아파팰래치아 트레일 인간들에게는 일생의 한번! 크게 마음먹고 가야할길 같습니다. 엄마와 함께 산책 하시는 페넬로페님!! 엄마와 보폭을 맞춰가며 함께 걷는 모습, 역쉬 딸이 쵝오!!!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는 지하철 두정거장은 걷고 있는데 공원속 꽃길에 감탄! 감탄 페넬로페님 4월은 많이 걷기!!

페넬로페 2021-04-06 16:06   좋아요 3 | URL
어떤 길이든 유명한 길을 꼭 한번 걷고 싶어요. 그래도 저의 최고의 로망은 산티아고 순례길이예요 ㅎㅎ
요즘 걷기에 참 좋은 계절이죠?
많이 걷자구요 ^^

미미 2021-04-06 14: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글이예요~♡ 저도 들은것보다는 막상 읽을때 여러모로 무게감을 느끼며 읽었어요. 자연에 관해서도 우정에 관해서도 질문하게 하는 좋은 책.저도 옆에 공원과 산이있어 즐겨 걷고 있어용. 걷기도 책읽기도 너무너무 좋아요!😄

페넬로페 2021-04-06 16:09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이 책을 생각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잘 읽었어요~~어떤 경험에 대해 작가들은 왜이리 글을 잘 쓰는지^^집 주변에 공원과 산이 있으면 너무 좋죠. 미미님의 걷기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1-04-06 1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유럽이라는 프로가 있나보군요~작년부터 만보걷기 챌린지 같은거 하는데 ‘걷기‘ 정말 좋은거 같아요^^ (최근에는 달성율이 저조하지만...)

페넬로페 2021-04-06 16:11   좋아요 2 | URL
이 프로를 좀 보다 이제는 안보는데요, 유명한 셀럽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다양하더라고요^^
하루에 만보걷기는 작정하고 걸어야하는데 대단하시네요^^
날씨 좋고 꽃이 만발한 4월에 새파랑님의 걷기를 응원합니다**

초딩 2021-05-08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페넬로페 2021-05-08 19:47   좋아요 1 | URL
초딩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5-08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페넬로페 2021-05-08 19:47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5-08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5-08 22:5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용^^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별다른 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잘 할 수 있는게 있다. 그건 다정함이다. 사람, 자연, 그리고 나에게도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주고, 웃으며 바라보며, 얘기를 들어주면 된다. ‘다정함은 못난 얼굴을 예뻐보이게 한다. 밑바닥으로 한없이 가라앉으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끌어올려준다. 치미는 슬픔을 멈추게 하며 애써 웃게 만든다. 누구라도 할 수 있어 다정(多情)은 공평하다.

 

거기에 곁들여 맛있는 빵과 차 한 잔이 있으면 그 다정함은 더할 나위 없다.

 

백수린 산문, 다정한 매일매일은 작가의 일상과 자신이 읽었던 책에 대한 감상을 여러 가지 빵으로 연결시킨 에세이이다. 이 책은 책 굽는 오븐이라는 제목으로 한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단행본인데, 여러 소제목에 책과 빵에 대한 짧은 글들이 있다. 작가는 어릴때부터 베이킹에 관심이 많았다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엔 빵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볼 수 있다. 책의 감상과 빵의 특징을 절묘하게 조화시켰고, 일러스트도 좋았다. 책에 대한 백수린 작가의 감상은 책이 책으로서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책이 들어있는 듯 하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갖는지가 항상 궁금하다. 매번 그렇듯 여러 책에 대한 글을 싣고 있는 책을 읽으면 내가 읽은 것은 별로 없다. 이 세상에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작가와 책들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책에서 소개된 책을 다 읽어보겠다고 결심하지만 지켜지는 경우도 없었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여기에 나온 책을 읽고 싶다는 욕심이 또 생긴다. 다 읽어내지 못할게 뻔한지라 몇 권만이라도 선택해 읽어야겠다.

 

4월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 하지 않는 다정함을 4월의 햇살만큼이나 환하게 뿜어내기를.

당신과 나에게 기대해본다.

 

 

 

 

 

 

 

 

 

 

 

 

 

 

 

 

 

 

 

 

 

 

 

 

 

 

 

 

 

 

 

 

 

 

 

 

 

 

 

 

 

 

 

 

 

 

작가의 말-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읽고 쓰는 나날을 기록한 소박한 글들이 온기,라는 단어와 어울렸으면 하는 것이다......이상하고 슬픈 일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이의 매일매일 또한 다정해지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를 지녔으면...우리의 매일매일이 다정하다고 섣부르게 믿고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다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P6

생일 케이크,레이먼드 카버,‘대성당‘-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나는 삶이 고통스럽거나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무기력한 마음이 들 때 이 소설 속 빵집 주인이 건넨 한 덩이의 빵을 떠올리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 P22

트로페지엔,베른하르트 슐링크,‘여름 거짓말‘-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상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휴가가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때로 진실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거짓말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하지만 여름의 끝을 알리는 폭우마저 그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트렁크를 창고 깊숙이 넣어두어야만 한다. 틀림없이 쓸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일이지만, 계절은 바뀌고,괄호 안에 넣어두었던 것들과 대면해야 하는 시간은 우리를 어김없이 찾아오니까. - P42

브라우니즈 쿠키,김희경,‘마음의 집‘-올해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처럼 억지로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어떨까? 마치 내일이면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모든 일을 당장의 손해와 이익으로 계산하지도 말고. 싫어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들이 부른다고 해서 억지로 따라 부르지 않는다면, 고통을 쉽게 외면하거나 누군가의 상처에 대해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면. 새해에 당신과 내가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것은 오직 마음. - P58

멜론빵,기시 마사히코,‘단편적인 것의 사회학‘-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속으로 몇번이나 중얼거린다. 당신은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판단을 마지막 순간까지 유보하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만 가지고 손쉽게 누군가에게 선이나 악으로 꼬리표를 붙이려 하는 순간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세상 어딘가에 나와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많은 작가들과 이런 식의 특별한 우정을 남몰래 쌓아왔다. - P88

슈크림빵,캐서린 맨스필드,‘가든파티‘-"인생이란 게..."...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나는 어떤 단어로도 포착할 수 없으나 분명 거기에 존재하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때로는 우리를 압도하고, 송두리째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키기까지 하는데도 타인에게는 결코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감정에 대해서. 그런 감정은 밤의 들판에 버려진 아이처럼 인간을 서럽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한밤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가르쳐주는 소설들이 있는 한, 우리는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 P94

떠나보내는 여름-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끊임없이 살아내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은 결코 온전히 극복되지 않는 상실이다.....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매번 처음처럼 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죽음은 하나의 세계가 문을 닫는 일이고, 아무리 목 놓아 소리 질러도 열리지 않는 문의 이쪽 편에서 무력함을 확인하는 일이니까. - P186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4-01 06: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정하고 따듯한 사람. 곁에 두고 달달한 빵이랑 함께 커피 한잔하고 싶어지네요. ^^

페넬로페 2021-04-01 09:21   좋아요 2 | URL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과 먹는 커피와 빵은 더 좋을것 같아요, han님! 잘 도착하셨죠?
그곳에서 건강하시고 알라딘에서 자주 봬요^^

새파랑 2021-04-01 06: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4월의 첫날 시작하시길 바랍니다^^(사랑의 역사 책 보니까 반갑네요. 올해 읽은 책중 제일 좋았던 책인데 ㅎㅎ)

페넬로페 2021-04-01 09:23   좋아요 3 | URL
네, ‘사랑의 역사‘가 이 책에 소개되어 있어 꼭 읽고 싶더라고요.
새파랑님께서 제일 좋았던 책이라고 하시니 밀린 책 밀어내고 어서 읽어야겠어요**

미미 2021-04-01 07:5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다정한 페넬로페님~♡ 올려주신 글이랑 밑줄, 빵이름으로 맛있는 냄새랑 온기가
고스란히 전달돼요!ㅋㅋㅋ4월도 따뜻하게, 다정하게 함께 읽어요!
♡( ´・֊・` )フッ♡

페넬로페 2021-04-01 09:28   좋아요 5 | URL
다정한 미미님♡♡
책도 4월처럼 따뜻하고 다정하게^^
넘 좋으네요~~
네, 꽃향기 맡으며 열심히 책 읽어요^^

coolcat329 2021-04-01 07: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빵~하면 떠오르는 이야기는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에요.
오늘 점심은 빵으로 결정했습니다. 😊

페넬로페 2021-04-01 09:32   좋아요 4 | URL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읽은지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 책 읽고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coolcat님!
저도 오늘 점심은 빵과 커피로 정했어요. 제가 사는 동네의 빵집은 종류가 한정되어 있어 아쉬워요^^

scott 2021-04-01 08: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브라우니즈 쿠키-멜론 빵-슈크림 빵~ㅋ*
4월은 빵!빵! 빵!
먹으며 페넬레페님이 올려주신 책들 골라 읽어야겠네요.
4월의 꽃 받으세요 ~*
⠀ ᕱ⠀⠀⠀ᕱ⠀ ⠀🌸🌸⠀
⠀(๑◕ܫ◕๑) 🌸⠀⠀⠀ 🌸⠀🌸⠀

⠀૮⠀⠀⑅ ⠀づ ⠀⠀⠀⠀⠀⠀⠀🌸

페넬로페 2021-04-01 09: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4월의 첫 날에 주신 꽂선물!
기분좋고 행복합니다.
항상 다정하게 선물 주시는 scott님도
멋진 4월 보내시기를~~
 

《오늘의 한 문장》

책벌레나 활자 중독자에게 책이 없다면?
그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꽃이 피어 있듯
내 주위에 책이 널려있음에 감사하다.






나흘째 되던 날, 유일하게 가져온 책을 다 읽고 나서 초저녁에 잠을 청하거나 카츠의 코 고는 소리를 듣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우울해졌다. 그런데 먼저 대피소를 사용한 사람이 그레이엄 그린의 페이퍼백 책을 두고 간 것을 발견하고 나는 뛸 듯이 기뻤으며, 정말로 감읍했다. 애팔레치아 트레일이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 P187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3-11 23: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새롭네용ㅋㅋㅋ😊

페넬로페 2021-03-11 23:40   좋아요 4 | URL
재미있고 깊이가 있어 생각보다 더 좋아요^^

scott 2021-03-12 0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활자 중독자들에게 책탑 쌓는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일 ~*산을 무서워 하는 1人 숲보다 생태 공원 ^.^ ,

페넬로페 2021-03-12 08:53   좋아요 3 | URL
저도 scott님과 같아요.
산에는 좀처럼 안가게 되네요~~
숲은 좋은데 그곳까지 가는게 영~~

라로 2021-03-12 0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초 번역판으로 한국에서 읽었었는데 재밌었어요. 그런데 빌 브라이슨의 몸집을 상상하고는,,,아무튼,,,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에요. 책 읽고 따라하고 싶었으나 뱀 무서워하는 일인으로,,,마음만;;;

페넬로페 2021-03-12 08:55   좋아요 2 | URL
뱀뿐만 아니라 미국에는 곰들이 많으니 더 위험할것 같아요.
이 책 처음에 곰에 대한 것들이 나오는데 무시무시하더라구요^^

다락방 2021-03-12 0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오만년전에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나오던가요? 너무 좋네요 ㅋㅋㅋ 공감이 뽝!! 저 이 책 집에 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후훗

페넬로페 2021-03-12 21:28   좋아요 3 | URL
이 책 군데군데 좋은 구절이 많아 플래그를 많이 붙여놨어요~~
어렵게 산행하고 텐트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멋있더라구요^^

han22598 2021-03-23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저 구절. 기억나요 ^^ 저는 활자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항상 읽을 거리를 가지도 다니는 사람이라 (읽는 것과는 상관없이).. 혹시 책을 빠트릴 경우에는..불안증세를 보이거나, 그냥 아무 책이나 사 버리거든요. ...그래서 빌 아저씨랑 비슷하다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

페넬로페 2021-03-23 22:28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모두 이 구절에 공감하셨을것 같아요.
han님 아직 한국에 계신건가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래요^^
 

 

 

 

 

 

 

 

 

 

 

 

 

 

 

1, 태사공은 말하였다........

처음 책공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에는 빈객들이 문을 가득 매웠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자 대문 밖에서 작라(雀羅)를 쳐도 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책공이 다시 정위가 되자 빈객들이 교제하려 하였는데, 책공은 이에 그의 대문에다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명은 죽고 한 명이 살아 있으면 비로소 우정의 진심을 알게 되고, 한 명은 가난하고 한 명이 부유하면 비로소 우정의 태도를 알게 되고, 한 명은 출세하고 한 명이 천해지면 비로소 우정의 진심을 알게 된다라고 하였다. 급암과 정당시 역시 이와 같으니, 슬프도다!”

-사기열전, 120, ‘급정열전중에서, p1008

 

 

2, 중국 전국시대 말에 제나라 재상을 역임한 맹상군(孟嘗君)은 자신의 재산으로 빈객들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의 식객의 수가 무려 3000명이나 되어서 봉읍의 세금만으로는 그들을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제나라 왕이 맹상군의 명성이 그의 군주보다도 높고 제나라의 권력을 제마음대로 휘두른다고 여겨 그를 쫒아낼 때, 모든 빈객들이 맹상군이 파면되는 것을 보고 다 떠나버렸다. 뒤에 제나라 왕이 맹상군을 복권시키니, 풍환은 다시 빈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맹상군은 그에게 이렇게 탄식한다.

 

식객들은 내가 하루 만에 파직되는 것을 보고 다 나를 저버리고 가서 나를 돌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선생에 의해서 다시 그 지위를 얻었지만, 식객들은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만약 다시 나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고 그를 크게 욕보일 것입니다.”

 

그러자 풍환이 말하였다.

 

무릇 물건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는 도리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사물의 필연적 결과이며, 부유하고 귀하면 선비가 많고 가난하고 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은 일의 당연한 면모입니다. 선생께서는 아침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날이 밝으면 어깨를 비비고 다투며 문으로 들어가는데, 날이 저문 뒤에는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는 물건이 그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중에서, p213~227

 

3, ‘책공의 말처럼 우정은 그렇게나 명료하고, 맹상군을 찾아오고 떠나가는 빈객들의 행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행하는 자연적인 이치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만 한다.

 

4, 8년간 참여한 독서 동아리가 반토막이 났다. 멤버중 한 사람이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하겠다며 동아리를 떠난다고 했다. 다른 것을 추구하느라 책읽기가 시큰둥한 다른 멤버가 거기에 나쁘게 편승해, 사람이 중요하니 모임에 책을 없애자고 했다. 책이 없어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힐링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독서 동아리에 책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나는 심하게 반대했고, 모임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중요시하지 않는 인정머리없고 책만 읽는 나쁜 사람이 되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할 수 없다. 조기 축구회에는 축구가, 독서 동아리에는 책이 있어야 한다. 결국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만 남았다. 그것도 2달에 한 권을 읽는 걸로 결정됐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수용했다.

 

5, 하루 아침에 몇 억씩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책, 특히 문학이나 고전은 읽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락했는지도 모른다. 책을 바탕으로 한 우정은 날이 밝으면 어깨를 비비고 다투며 들어갈 필요가 없는 하찮고 쓸모없는 문이 되었다.

 

 

 

 

 

 

 

 

 

 

 

 

 

 

 

 

6, 봄볕이 따스한 날  30분 정도를 걸어서 구립 도서관에 갔다. 얼마 전 리모델링을 한 그곳은 산뜻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책을 빌리고 잠깐 쉬기 위해 휴게실로 갔다. 도서관 휴게실에는 거의 남자 노인들만 계셨다. 책이나 신문을 읽으시는 분도 계셨지만 의자에 앉아 잠을 자고 있는 분이 많았다. 내 노년의 버킷리스트중의 하나가 매일 도서관에 가는 것인데 도서관에 왜 여자할머니는 안보이는지 모르겠다. 여자들은 나이 들어도 여전히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고 손주를 키워야해 시간이 없어서 도서관에 오지 못하는 것일까? 도서관에서 만나는 젊은 여자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 열람실로 향하는 엄마들이다. 세상이 많이 변한 듯 하지만 들여다보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7, 도서관 휴게실에서 북플을 열었는데 SYO님이 쓴 이주윤 작가를 향한 연서(戀書)가 있었다. 그 글을 읽고 이주윤 작가의 책이 읽고 싶어 내친김에 빌려와 내쳐 다 읽어버렸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에게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는 작가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들에 간간이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나는 책의 1부 보다는 2부인 전기장판 위의 사색이라는 생활 에세이가 더 좋았다. 세상을 살면서 부대끼며 얻은 여러 가지 경험과 생각들을 유머있게 그 본질을 잘 표현해 주었다.

 

8, 잠깐 책 속으로-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못했다. 상대방이 언짢을까봐. 그런 그가 우리를 헐뜯을까 봐. 결국에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서 말이다. 그런데 세상을 좀 살아보니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하는 대신,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 것뿐.

아뇨,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렵겠어요.” 요즘 내가 열심히 연습하는 말이다. 꽁하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말로 표현하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이다.

-p94

 

정말? 그렇단 말이야?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지? 미안하지만, 정말로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의 고민에 관심이 없다. 어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냐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기울지 않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 내 한 몸 어르고 달래 살아가기도 힘에 부치는 마당에 다른 이의 불안까지 보듬을 여력 따위 내게는 없다. 너에게는 세상 가장 심각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하찮은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음을. 본인이 가진 문제를 진지하게 염려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너임을.-p205

 

무엇이든 네가 느끼는 대로 하면 되는 거다. 남의 말을 너무 따라갈 필요는 없다. 너만의 방식대로 해서 누군가가 알아주면 좋은 거고 만약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의 것이 남으니 그것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느냐. 그러니 누가 시키는대로 하지 말고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라.-p284

 

9, 내가 독서 동아리에서 강력하게 책을 남기자고 주장한 것은 독서 동아리에 책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솔직히 남의 징징거림을 듣기 싫어서이다. 그나마 책 얘기로 그것을 덮기 위해서이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읽으며 내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10,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책에는 4개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다. ‘책읽는 고양이출판사의 얼리퍼플오키드 시리즈중 하나이다. 이 시리즈는 이전 세기를 산 여성 작가가 여성의 시각으로 쓴 여성들의 이야기를 묶은 단편집 모음이다. 프리먼의 작품들은 1880년대와 1890년대에 집필되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생각과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관습과 인습에 얽매여 살았던 시절에,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고 품위있게 말하며 행동에 옮기는 여성들의 삶이 너무 좋았다. 그 품위에 반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당연히 쉽지 않을테고 고단한 것인데도, 자기자신으로 살기 위해 댓가를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진취적이고 그 뒤에 누리는 편안함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또 받는다.

 

목사님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만, 사람 간에도 서로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지요. 저는 수십 년 간 교회를 다닌 사람입니다. 저도 심신이 멀쩡한 사람이니 나름의 방식으로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저는 신을 믿고 살 테니, 신이 아닌 분들은 제게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으셨음 합니다”-p34, '엄마의 반란중에서

 

루이자 엘리스가 자기만의 권리를 팔아버렸거나 자기가 누리는 유일한 만족이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됐다면, 지금도 그것의 가치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평온과 평안은 이제 그 자체로 루이자의 특권이 되어 버렸다. 루이자는 하루하루가 묵주 알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부드럽고 흠 없고 순수하게 오랬동안 계속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감사함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p96, '뉴잉글랜드 수녀중에서

 

 

 

11,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죽는 날까지 꾸역꾸역 살아감에 있어 매번 힘들고 신산스럽지만 그래도 어디선가에서 한줄기 빛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날이 있다. 이 영화가 그런 것 같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엄마의 반란에서 단호히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고 정했지만, 이 영화가 나를 흔들며 혼란스럽게 한다. 또다시 묵직함과 답답함이 시작되었지만 한 줄기 빛 같은건 분명 느꼈다. 그거면 됐다.

 

12, 독서 동아리가 반토막이 나면서 단호히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나라도 더 열심히 책을 읽기로 했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3-07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미나리 영화 보셨군요. 독서모임을 8년동안 하셨다는것도 대단하시지만 책을 읽겠다는 사람만 남은 두달에 한권씩 읽더라도 읽어야하는 사람은 읽어야한다는것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책을 손에 놓지 않으신 페넬로페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책한권만 손에 쥐고 있다면 바닷속에 빠져버려도 좋다고 ,,,우리 함께 책의 바다 속으로 풍덩 ~*

페넬로페 2021-03-07 17:14   좋아요 1 | URL
그렇죠, scott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읽어야하니까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명문장을 인용해 용기주시는 scott님께 감사드려요. 함께 열심히 책 읽어요^^

미미 2021-03-07 16: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4. 헉..지금 눈이 아파 겨우 글 올리고 쉬다가 이 부분 읽고 너무 놀랐어요. 아니 그게 무슨 일이랍니까. 사람이 중한것과 독서모임의 존폐 여부가 어떻게 그렇게 갈리는지 참 이상한 일이네요. 😳

페넬로페 2021-03-07 17:16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다른 일 하면서도 한달에 책 한권 못 읽는다는게 이해가 안돼요.
그것도 그렇지만 자신의 취향으로 모임의 목적을 바꾸려는 태도가 더 이상하더라구요**

파이버 2021-03-07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마음고생 하셨겠어요.... 8년이었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셨을텐데..ㅜㅜ 제가 참여하는 독서모임도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점점 예전만큼 책을 읽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12번 글에서 페넬로페님의 곧은 결심이 느껴져서 멋져요!

페넬로페 2021-03-07 21:27   좋아요 1 | URL
네,파이버님 말씀대로 오랜 시간을 같이 했기에 아쉬움이 남아요.
코로나때문에 만나지 못해 아무래도 소통이 잘되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온것 같기도 하구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2021-03-08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03-08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로님!!!👍
미나리 보셨군요!!! 저는 스티븐 연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어찌나 말을 조리있고 똑똑하게 잘 하던지,,,넘 자랑스럽더군요.
저도 빨리 보고싶네요.
저는 독서모임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오래 함께 했던 모임이 반토막이 났을 때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은데, 더 많은 책을 읽겠다고 (이미 그러고 계시지만) 결심하시는 단호한 모습이 멋지십니다!!! 로님을 응원해요!!! 아자아자~~~!!!

페넬로페 2021-03-08 23:09   좋아요 0 | URL
미나리 영화를 저 혼자봤는데 저는 너무 좋았어요.
한예리, 윤여정 배우는 본래 좋아해요.
스티브 연은 버닝에서 너무 리얼하게 연기해 이미지가 좀 도회적이었는데 이번에 잘 소화하더라구요~~
독서모임때문에 그동안 맘이 좀 그랬는데 이제 편안해졌어요^^
저 혼자 열심히 읽으면 돼죠 뭐**
라로님의 응원 받으며 열심히 책 읽겠습니다.감사합니다**

2021-03-0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있는 놀이터를 지나올 때, 한 번씩 어떤 초등학생을 본다. 그는 매번 긴 벤치를 책상으로 삼

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수학 문제지를 풀고 있다. 아마 학원에 가기 전, 급하게 숙제를 하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불편한 곳에서 공부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는 않는다. 오늘도 지나다가 그 학생을 봤는데, 그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계산기를 사용하며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초,,고에서 계산기를 사용하는 수학 문제 풀이가 통용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계산기를 사용하는 그 초등학생의 수학공부는 완전한 것이 못되는 것일까? 어른이 되면 수학이란 학문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지금 왜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불평하는 학생도 많다. 어른이 되면 우리는 수학을 하지 않을까?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접하는 통계나 수치가 계산기를 사용한 정확한 값보다는 추정값이나 어림값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어림짐작한 근삿값이 정확한 참값보다 훨씬 쓸모 있고, 더욱 믿을 만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한다.

 

계산이 필요할 때 우리는 무심결에 계산기에 의존하지만, 영업이나 의사결정을 할 때 순간적인 어림 계산 능력이 훨씬 더 성공으로 가는 길을 보장해 줄 지도 모른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같은 굴지의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에게 엉뚱한 수학 문제를 낼 때가 많다. 그럴 때 역시 추정과 어림의 능력은 면접관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좋다. 그 능력은 자신의 두뇌가 뛰어나고 창의적이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림 계산법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삶의 지혜다.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장점은 아니다. 어림 계산법은 그 자체로 두뇌를 자극하는, 예리하고 흥미로운 훈련이다.(p10)

 

 

어림 계산을 잘하기 위해서는 산술 능력이 당연히 필요하다. 산출이란 사칙연산뿐만 아니라 양이나 비율등을 계산해내는 것(좁은 의미)인데, 단순한 계산이란 측면에서 수학이란 학문에 비해 폄하되기가 쉽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산술 능력을 위한 공부 역시 상당히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고, 두뇌 회전과 정확성, 논리적인 사고에 도움이 된다.

 

수학과 산술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 매우 많다. 수많은 산술적 기법과 지름길은 깊은 수학적 사고로 연결되며, 학교를 떠날 때까지 공부하는 수학에는 대부분 산술이 필요하다.(p50)

 

 

이처럼 한국에서도 고등학교까지는 산술능력이 바탕이 되는 수학을 하기 때문에 놀이터 벤치에서 계산기를 사용해 수학 공부를 했던 학생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사용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나중에 학교 정규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 것이다. 또한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없다.

 

그러면 그 학생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본인은 나중에 수학이 필요없는 일을 하겠다고....소위 말하는 일머리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단순한 노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생각을 요구한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노동은 자신에게 유용할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수학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회 생활의 바탕이 되는 사고력과 정확성은 스스로 해낸 수학공부에서 길러진다. 또한 지금 이 시점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추세를 알기 위해서도 기본적인 산술 능력과 수학적인 사고는 필요하다.

 

이 책에는 각 장마다 몸풀기 연산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생활에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나와 있다. 마지막 장에는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의 추정법을 소개한다. 충분한 데이터 없이 수행하는 계산을 페르미 문제하고 한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두뇌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고 피곤하지만, 문제해결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 수학이 필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쉽게 살기 위해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재산이나 주식 시세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정부의 정책이나 실업률, 빈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수학에는 눈감아버리는 어른은 아닌지....

 

살다 보면 수학머리가 꼭 필요한 순간이 온다. 이 책은 그 순간을 위해 쓰였다.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숫자에는 함정이 있고 우리는 올바른 숫자를 찾아 답을 빨리 구해야 한다. 마트에 나열된 물건값을 비교하고, 얼마나 저축해야 1억을 모을 수 있을지, 뉴스가 말하는 취업률 수치가 정말인지 알고 싶을 때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일상의 수학이 필요하다.-책의 뒷표지에서.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2-28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졸업 전에는 그렇게 싫던 수학, 쓸모없게만 여겨지던 수학이 여러모로 유용하고 은근히 많이 활용되는구나 느껴요. 가끔 재..재미도 좀 있구요ㅋㅋ😳👉👈

페넬로페 2021-02-28 20:56   좋아요 1 | URL
네, 사실 수학을 시간내서 열심히 하면 재미있는 학문이거든요~~
활용도 많이 되구요^^

scott 2021-02-28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페넬로페님 살다보면 수학머리가 꼭 필요한 순간이 와요.

졸업하고 나면 수학 끝인 줄 알았는데 정말 면접 때 통계수치 내놓고 ppt해야하고,,,
일상생활이 전부 숫자,,,,
성적이 아닌 숫자가 아닌 일상의 수학적 언어 사고가 정말 정말 필요합니다.


페넬로페 2021-02-28 20:57   좋아요 2 | URL
심지어 수학머리는 집안 살림에도 필요해요 ㅋㅋ
수학을 공부하는것이 성적에도 중요하지만 논리적 사고를 갖게 하는것이 더 큰것 같아요**

파이버 2021-03-01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하게 수학숙제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네요ㅎㅎㅎ 페넬로페님 말씀대로 수학적논리적 사고를 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다만 어릴땐 그걸 깨닫기 어려운 것 같아요ㅜㅜ

페넬로페 2021-03-01 00:4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 학생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더라구요~~
파이버님 말씀대로 고등학교까지 배운 것들이 우리가 사용하는 지식들의 거의 모든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그걸 학창시절에는 깨닫기가 어려운것 같아요^^

라로 2021-03-01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은 제 유전자 때문인지 애들이 다 수학못알못(이라고 하나요?ㅎㅎ)입니다.ㅠㅠ

페넬로페 2021-03-01 09:27   좋아요 0 | URL
수학공부가 사실 쉽지 않죠~~공부할 양도 많고 계단식으로 쌓여야 그 다음개념을 받아들일수 있으니 ㅜㅜ
모든 사람들의 고민이예요

psyche 2021-03-0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는 무슨 수업을 듣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중학교 정도부터 계산기를 사용하고요 고등학교때는 공학용계산기를 써요. SAT 시험 같은 대학입시시험때도 계산기를 가지고 들어간답니다. 물론 시험에 따라 허용이 되는 계산기와 안되는 계산기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계산기를 쓴다고 보면 될 거 같아요.
처음에 미국와서 수학시간에 계산기를 쓰는 걸 보고 이래서 미국애들이 산수를 못하는구나 했었네요.ㅎㅎ
근데 학창시절에는 수학 좀 했던 저... 지금은 계산기 없으면 간단한 더하기 빼기도 못해요. ㅜㅜ

페넬로페 2021-03-01 10:27   좋아요 0 | URL
네, 사실 이 문제에 많은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아요. 이 책의 저자도 계산기와 병행을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단 어려운 수학에 있어서요.
계산기 병행을 해야하는데 우리가 계산기를 사용하는 순간 간단한 것도 계산기에 의존하게 되는게 문제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