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빌려줄래?’의 내용 중에 내 책장의 책들이란 제목의 글과 일러스트가 있다. 여기엔 그동안 만나온 책 중에서 고를 수 있는 여러 질문이 나와 있다, 그 유형을 재미있게 읽다가, 이런 경우에 나는 어떤 책을 떠올릴까?’를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거의 최근에 읽은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저 재미삼아 한 번 적어 본다.

 

작가의 말을 빌어,

한 가지만 부탁할게.

이 책들을 보고 날 판단하지 말아줘. 어쨌든 난 책 읽느라 바쁘고, 진정한 독서가이니까

 

1,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던 책-너무 많은데.....

‘7년의 밤’-책을 펼쳐들고 마음 졸이며, 무서워하면서 쉬지 않고 끝까지 완독했다.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의 스토리도 좋았지만 주인공 현수에 마음을 주면서 읽었다. 난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고, 책임감있게 아이를 잘 키워내야한다는 강박이 심했다. 아이의 어린시절부터 초등학교까지 내가 보고 느낀것들은 거의 모두 아이와 연관된 것이었다.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며 사는 현수가 안타까웠고, 내 자식에게는 저런 트라우마를 안기지 말아야겠다는 약간의 교훈적이고 신파적인 결심을 하면서 읽은 소설이다.

 

키다리 아저씨’-어릴 때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반복해서 읽은 책이 많다. ‘키다리 아저씨뿐만 아니라 소공녀’ ‘빨간 머리 앤’ ‘15소년 표류기등 소년소녀명작동화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교육열이 높으셨던 엄마가 언니, 오빠의 입시에 온통 신경을 쓰는 바람에 난 늘 외톨이였다. 그런 내가 선택한 것이 책이었고, 책을 읽으며 마구 상상했다. 반드시 나의 친엄마가 나타날거야, 또는 나에게 키다리아저씨가 있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언니, 오빠의 입시가 끝나자 엄마는 막내인 나의 공부와 입시로 눈을 돌리셨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원하는 친엄마가 나타났다.

 

 

 

 

 

 

 

 

 

 

 

 

 

 

 

 

2,펴볼 엄두가 안 난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민음사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권을 사모으는 중이고, 1권을 몇 번이나 읽기 시작했는데 언제나 덮어버렸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동명왕의 노래’-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나 역시 그때 교육열이 높은 엄마여서 그 책을 읽었고, 거기서 소개된 책을 거의 다 사놓았다. 아이는 아마 그 중 한 두 권 정도는 읽었을 것이다. 나머지는 지금도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져있다. 언젠가는 내가 읽어야 할 책이다.(아이에 대한 나의 교육열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간 시점에 끝났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에게까지 힘을 쏟고 싶지 않아 둘이 합의해 내가 손을 놓고 아이는 자유를 얻었다. 자신이 원하는 학과를 아이는 선택했고, 대학 등록금은 스스로 해결한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지금까지 그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다. 아이가 고 3이었을 때 난 오히려 시간이 많아 책을 제일 많이 읽었던 것 같다.)

 

 

 

 

 

 

 

 

 

 

 

 

 

 

 

 

3,친구가 준 책

에우리피데스 비극’-고전 읽기를 시작한 나에게 친구가 선물해 준 책이다.

 

반지의 제왕’-이미 절판된 황금가지의 6권세트이다. 이 책은 아이 친구 엄마에게 빌렸다. 책을 빌린 지 거의 5년이 넘었고 그 사이 그녀는 멀리 이사를 가버렸다.

 

이 두 책 다 아직 읽지 못했다. 역시 언젠가는 읽을 것이다.

 

 

 

 

 

 

 

 

 

 

 

 

 

 

 

4,읽으려고 무진 애썼던 책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사기열전’-,서양의 고전을 대표하는 책들 중의 하나이다. 이 책들을 읽는데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끝까지 완독했다. 이 고전들은 그 내용을 떠나, 읽고 나면 굉장히 유용하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에피소드를 후세대의 많은 작가들이 무수히 인용했다. 똑같은 내용을 다른 버전으로 읽는 것이 재미있고, 각자 만들어내는 고전의 재해석이 흥미롭다. 읽기는 힘들지만, 읽어내면 다른 책을 읽기에 편하다.

 

 

 

 

 

 

 

 

 

 

 

 

 

 

 

 

5,어째서인지 두 권이 있는 책(본 책에는 세 권)

댈러웨이 부인’ ‘어린 왕자’-정말 어째서인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명백하다. ‘댈러웨이 부인은 집에 있는지 몰랐고, ‘어린 왕자는 표지가 예뻐서 딸아이가 다시 구입했다.

 

 

 

 

 

 

 

 

 

 

 

 

 

 

 

 

 

 

 

 

 

 

 

 

 

 

 

 

 

 

6, 내 생명을 구해준 책

쇼코의 미소미카엘라’-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낀 시기가 있었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나 혼자 남편과의 갈등이 심했다. 그때 미카엘라가 나에게 왔다. 그 단편소설을 읽으며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 느꼈다. 남편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나의 생각과 모습을 그 소설이 고쳐주었다. 이기적이고 아집에 차 있었던 나의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주었고,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한 생각의 전환으로 내 마음이 편해졌고 풍부해졌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에 이 책은 내 생명을 구해주었다. 남편은 책을 거의 읽지 않지만 나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이다. 나는 남편을 보면서 한 번 씩 책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책을 읽지 않아도 남편은 항상 생각이 깊고, 행동이 신중하며, 나를 웃게 한다. 그런 반면 책읽는 나는 언제나 미숙하고, 감정적이고, 직선적이다. 그래도 그 미숙함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것이 책 때문인지, 남편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을 읽는 만큼 지행합일하며 사는 것이 내 목표인데 아직까지 잘 지켜지지 않아 고민이다.

 

 

 

 

 

 

 

 

 

 

 

 

 

 

 

7,친구에게 빌려준 책

증언들’-책을 배송받자마자 바로 빌려주었는데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친구야, 좀 돌려줄래?

친구는 나에게

내가 빌려준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먼저 돌려줄래?

미안해...

 

 

 

 

 

 

 

 

 

 

 

 

 

 

 

 

8,매일 밤 읽다가 잠드는 책

노인과 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요즘 눈이 너무 안좋아져 밤늦게 책을 읽기 힘들다. 그래서 가끔식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유튜브의 오디오북을 듣는다. ‘노인과 바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읽다가 잠드는 책이 아니라 듣다가 잠드는 책이다.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깨면, 여전히 책의 한 구절을 읽어주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쯤 그것을 끄고 잠을 청하면 또다시 깊게 잠든다. 이 두 책은 내 머리 속에 그 내용이 조각조각 들어 있다.

 

 

 

 

 

 

 

 

 

 

 

 

 

 

 

 

 

 

9,내가 쓰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홍승은 작가의 이 책을 좋게 읽었는데 도무지 어떤 글로 리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를 쥐어짜도 적당한 단어가 튀어나오지 않는다. 이미 알라딘친구인 ‘syo'님의 훌륭한 리뷰도 있고 해서 아마 난 이 책에 대해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설겆이하다 실마리를 풀어 줄 단어 하나가 떠오를 수도 있기에 포기하지는 말고 유보해두기로 하자.

앞치마를 집어던지고 유레카를 외칠 수 있기를 기대하며...

 

 

 

 

 

 

 

 

 

 

 

 

 

 

 

 

10,내 인생을 바꾼 모든 책-너무 많지만 딱 한 권만 정하자

죄와 벌’-중학교 시절, 집에 있는 책장을 보다가 그냥 꺼내 읽은 책이다.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누군가가 권유한 것도 아닌 내가 운명처럼 선택해서 읽은 책이다. 몰입해서 책을 읽으며 라스콜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 사회의 악을 제거해야한다는 주장에 넘어가버렸고 그때의 생각과 느낌이 오랫동안 나의 뇌리에 박혀있었다. ‘죄와 벌을 읽고 나의 성향은 반골적이 되었고, 세상을 쉽게 살아내지 못했다. 작년에 다시 재독한 죄와 벌은 중학교때 읽었던 내용과는 많이 달랐다. 그때 읽은 건 완역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해내지 못한 내용들이 많았다. 이번엔 라스콜니코프의 광기에 대해 더 주목했고, 사회악을 없애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폭력적이어서는 안되며, 그 누구도 그것을 행하도록 허락된 적은 없다는 생각을 해봤다. 너무 나의 생각이 도덕적으로 변한 것인가?

 

 

 

 

 

 

 

 

 

 

 

 

 

 

 

 

시간이 많이 지나 내가 70살쯤 되었을 때, 나의 독서리스트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그때쯤되면 난 새 책을 거의 읽지 않을 예정이다. 그동안 좋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며 그 느낌과 생각의 변화를 적을 것이다. 좋지 않게 평가했던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생각이 바뀌어 그 책이 좋아질수도 있고, 내 인생 최고의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변에 가져갔던 책내가 모자로 착각한 책은 다음 기회에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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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14 17:47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이렇게도 재미있게 리스트를 만들수 있네요!ㅎ 즐거운 저녁시간 되십시요!

페넬로페 2021-02-14 20:39   좋아요 4 | URL
‘책 좀 빌려줄래‘ 이 책이 재미있고 기발해요~
막시무스님!
건강하고 행복한 연휴의 마지막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1-02-14 19:44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있는 줄 모르고 구입해서 두권 있는 책. 완전 제 얘기! ^^
‘그래도 우리의 나날‘ 발췌해놓은 독서기록 보고 좋았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 구매했습니다.
내일 도착!
제 주위에 두고 바라만 봐도 좋을 책이 너무 많아서 걱정! 장서가들의 고민을 보면 100퍼센트 공감하게 돼요.^^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

페넬로페 2021-02-14 20:42   좋아요 4 | URL
‘그래도 우리의 나날‘ 은 약간 호불호가 나뉘는 책 같아요~~
그레이스님은 장서가이니 당연히 두 권 구입한 책이 더 많을 듯 해요^^

미미 2021-02-14 18:2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오 너무 흥미롭고 즐겁게 잘 읽었어요! 페넬로페님 저도 인생책 한권 고르라면 <죄와벌 >이고요, 유튭으로 요즘 해리포터 듣고있는데 영국발음 어렵고 빨라 눈동자 넘 아파요. 그리고 <잃시찾>은 다 구입하셨으면 10권을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당!(어색하지 않아요) 헤헷

페넬로페 2021-02-14 20:45   좋아요 4 | URL
네 안그래도 미미님 말씀처럼 잃사찾 10권을 먼저 읽어보려구요~~
미미님의 인생책도 ‘죄와벌‘ 이라 반가워요^^이 책을 사랑하는 독서가들이 꽤 많을것 같아요**

초딩 2021-02-14 18: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펴볼 엄두, 두 권, 준 책 ㅎㅎㅎㅎ
저도 리스트를 막 추가하고 싶네요 :-)
소크라테스 제 인생의 책이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1-02-14 20:46   좋아요 3 | URL
초딩님의 리스트 너무 궁금해요~~
기회되시면 빨리 들려주세요**
저는 아직 소크라테스는 시작하지 못했는데 초딩님의 인생책이라 용기내서 도전해보겠습니다**

Falstaff 2021-02-14 18:4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참 잘 읽었습니다. 세월이 다 그런가 봐요.
페이퍼 읽고 한 권 선택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1-02-14 20:48   좋아요 4 | URL
제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책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언제나 좋은 리뷰 올려주시니 조만간 읽을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붕붕툐툐 2021-02-14 19: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오~ 너무 좋은 시도예요~ 페넬로페님의 인생과 책이 고스라니 들어있는 페이퍼네영~ 즐겁게 읽었어용~👍😍😊

페넬로페 2021-02-14 20:49   좋아요 3 | URL
이 모든게 붕붕님으로부터~~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이 페이퍼까지 작성했어요^^
감사드려요♡♡

scott 2021-02-14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이페이퍼는 아끼면서 읽어야함
페넬로페님 책장에 꼽아둔 책들에 얽힌 에피소드 넘 감동~*

전 ,책장 앞에 서면 햄릿이 되어버리는데 ㅋㅋㅋ
[ 언제나 미숙하고, 감정적이고, 직선적인]
이거슨 나!!

연휴 마지막날에 멋진 페이퍼 써주신 페넬로페님
진정한 독서人!

페넬로페님 친구야 ! 어서 책좀 돌려주렴 ^.~

페넬로페 2021-02-14 21:35   좋아요 2 | URL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많이 아쉽네요^^
저도 사실 책장 앞에선 햄릿이예요 ㅎㅎ
친구한테 책 받기는 좀 틀렸고 다시 사야겠어요**

mini74 2021-02-14 2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쇼코의 미소 너무 좋아요 ㅎㅎ 죄와 벌도. 이렇게 겹치는 책 보면 막 동지를 만난 기분 ㅎㅎ

페넬로페 2021-02-15 00:22   좋아요 4 | URL
책동지 너무 좋죠!
특히 같은책을 읽고 감명받는 느낌이 참 좋은것 같아요^^

다락방 2021-02-15 0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양질의 페이퍼가 아닙니까. 동시에 이 질문들 가져와서 고스란히 답해보고 싶어졌어요.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저도 해봐야겠어요. 그렇지만 ‘생명을 구해준 책‘은 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은 처음이에요...

페넬로페 2021-02-15 11:3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넘 궁금하네요^^
‘생명을 구해준 책‘은 각자의 해석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han22598 2021-02-18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도 같은 질문들로 답하고 싶게 만드는 페이퍼네요. 지금 머리 속에 떠오르는건, 빌려준 책들.....3명이 총 20권정도 빌려간 책들이 있는데......왜 안 주는건지 ㅠㅠ 어떻게 달라고 해야할지 고민인데. 빌려준 책들이 대부분 제가 아끼는 책들이라...잉 ㅠ 고민입니다.

페넬로페 2021-02-18 15:43   좋아요 0 | URL
책을 너무 많이 빌려주셨어요,han님!
그정도면 꼭 돌려받으세요~~
han님의 답도 꼭 알고 싶어요^^

라로 2021-02-19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를 쓰셨네요!! 저도 언젠가 로님처럼 책을 많이 읽게 되면 해보고 싶네요. ^^

라로 2021-02-19 17:05   좋아요 1 | URL
앗! 우리 둘 다 닉네임에 ‘로‘가 들어가요!!!!>.<

페넬로페 2021-02-19 17:37   좋아요 0 | URL
에이 라로님이 저보다 책 더 많이 읽으시잖아요.
‘로‘란 이름 좋네요~~
요즘 애들 이름에 로자가 들어가는게 많더라구요^^

감은빛 2021-02-21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질문과 답변 너무 멋져요!
잘 읽었습니다!

고등학교에 간 이후 아이와 합의했다는 내용이 제게는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공부하라고 말한 적이 없거든요.
숙제를 안 했다고 울상을 짓는 아이에게 밤 늦게까지 숙제를 해서
잠을 포기하고 혼나지 않는 걸 선택하거나,
잠을 선택하고 선생님께 혼나는 걸 선택하거나 네가 좋을대로 알아서 하라고 말하곤 했어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90점을 받았다고 말해도, 30점을 받았다고 말해도
저는 그저 웃으며 시험이라는 평가잣대는 완벽하지 않아서
잘 받았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고, 못 받았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요.
그저 시험 공부하느라 애썼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말아요.

그런데 요즘은 글을 쓰고 싶다고 예고 문창과에 입학할 예정인 큰 아이가
써가지고 온 글들을 보고 자꾸만 잔소리를 하려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하네요.
한번은 아이가 쓴 시를 제가 마음대로 고쳐서 보여줬다가 곧바로 엄청난 후회를 했어요.
자꾸 아이에게 글 쓰려면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무한 반복하려고 해요.

페넬로페 2021-02-21 11:16   좋아요 0 | URL
부모로서 감은빛님의 잔소리는 너무 당연한것 같아요. 특히 아이의 진로와 관련된 것이니까 도와줄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진로를 정하고 그곳을 향해 갈수있어 자제분이 행복할것 같아요.
요즘에는 자신이 뭘해야좋을지 정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많이 안타까워요^^

noomy 2021-02-23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죄와 벌‘은 저에게도 인생의 책 중 하나고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여태 1권을 못 펼치고 있어요 ^^;; 책 많이 읽는 것과 인격은 정말 큰 연관이 없는 거 같아요. 제 주위에도 책은 별로 안 읽고 심지어 티비만 보는데도 많은 정보와 훌륭한 지혜를 가진 분도 있고요, 책 열심히 읽는데도 편협한 분도 많아요. 새길만한 이야긴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1-02-23 19:34   좋아요 0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에 대한 경험은 각자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부분도 많은것 같아 기쁘네요.
다음에 noomy님의 책장의 책 얘기도 들려주세요^^
 

 

 

 

 

 

 

 

 

 

 

 

 

 

 

사기(史記)-열전(列傳) 126권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동방삭'은 재치있는 말과 글로 한무제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항상 황제의 측근이었고 어전에서 말을 하면 황제가 기뻐하였다. 황제가 내린 돈과 재물을 모두 여자에게 써버리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반미치광이라고 여겼는데, 이에 동방삭은 '나와 같은 사람은, 이른바 조정에서 세상을 피하는 사람이네' 라고 말한다. 건장궁 후각에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을 때, 황제가 동방삭에게 조사하게하니 그는 '신에게 술과 기름진 쌀밥을 내리시어 실컷 먹게 하옵소서. 그러면 신이 곧 말하겠습니다' 라고 했고 왕은 음식을 내렸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말과 행동하나에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가는 강력한 군주의 시대에 능청스럽게 왕에게 먹을 것을 먼저 달라고 하는 동방삭은 가늘고 길게 사는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물론 그에게는 많은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한 번씩 왕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능력이 있다고 다 왕의 총애를 받는 것은 아니다. 동방삭은 익살스럽고 재치있는 변설에 능해 왕을 웃게 하였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양하지만, 사람을 즐겁고 유쾌하게 만드는 유머를 가진 것이 가장 큰 능력이자 기술이 아닐까한다. 동방삭은 그런 재주가 있었기에 길고도 오래 남을 수 있었다.

 

동방삭은 자기만의 처세술과 유머 감각으로 살벌한 궁중 정치를 비켜갔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회피나 외면이 아니었다. 그만의 지혜로운 방식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동방삭을 장수의 대명사이자 도교의 신으로 받들었다. ‘삼천갑자동방삭이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사기를 읽다, 쓰다‘, 김영수, p217

 

 

'골계(滑稽)'라는 말의 뜻은 말을 잘하고, 유창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며, 후에는 해학, 유머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태사공은 말하였다.

 

"천도(天道)는 넓고도 넓다. 어찌 위대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말도 은미(隱微)함 속에도 이치에 맞아서, 또한 이것으로써 일의 얽힌 것을 풀 수 있다."-p1101

 

84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에 나오는 초나라의 애국지사 굴원은 초 회왕의 좌도(左徒)였다. 그는 견문이 넓고 의지가 굳세었으며, 치란(국가의 흥망성쇠)에 밝았고, 문사(교제하며 주고받는 언사)에도 능숙하였다. 그러나 상관대부의 모함과 회왕의 배척으로 굴원은 파면되고 유배를 간다. 안색은 초췌하고, 야윈 모습의 굴원이 강가에 나타나자 그를 알아본 어부가 이렇게 말한다.

 

대저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되지 않고 능히 세속의 변화를 따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미련한 자존심만을 움켜잡고 추방을 자초하셨습니까?”

이에 굴원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으로서 또한 누가 자신의 깨끗함에 더러운 오물을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지라도, 또 어찌 희디흰 결백함으로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겠소!” 라고 한다.-p359

 

그리고 나서 굴원은 회사(懷沙)라는 부()를 짓고는 바위를 품고 멱라강에 빠져 죽는다.

 

시류에 편승하고, 좋은게 좋은것이라는 생각에 편하고 쉽게 사는 사람은 굴원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유별나고 피곤하게 세상을 산다고 비난하고 조롱하지만, 바른 길로 가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강직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죽음의 길로 간다.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을 이 더러운 세상에서는 풀 수 없다.

 

온 세상이 혼탁하나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취해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어.”-p359

 

사기-열전의 마지막인 제 130권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저자인사마천, 사기를 지은 이유를 여러 가지 설명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이릉의 화에서 연유한다. 어쩔 수 없이 흉노에 항복한 이릉을 사마천은 변호하고 이에 화가 난 한무제는 그를 옥에 가두고 사형을 선고한다. 이때 사마천은 일생일대의 선택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 사마담이 죽기 전에 아들에게 유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이 못다한 사기저술을 끝까지 완성하고, ’태사의 직분을 이으라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소자 비록 불민하오나 선조대대로 편열해놓은 구문(舊聞)을 어느것 하나 빠뜨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p1210

 

만약 부당함에 항거해 자결로서 생을 마감해 버린다면,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스스로 남자의 성기를 절단하는 궁형(宮刑)을 자처하며 목숨을 구한다. 대의를 위해 치욕을 감수한 사마천은 그렇게 희대의 걸작을 완성한다. 그때 죽음을 선택했다면 사마천의 사기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릇 에서 뜻이 은미하고 언사가 간략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였던 것이었다. 옛날 서백은 유리에 억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역을 추연하였고, 공자는 진과 채에서 액난을 겪고 나서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추방된 뒤에 이소를 지었으며.........300편도 대체로 현성들이 자기의 비분을 촉발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이 맺혀 있으되 그것을 시원하게 풀어버릴 방법이 따로 없어서 이에 지난날을 서술하여 미래에다 희망을 걸어본 것이었다.-p1215~1216

 

사마천의 시대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사는 모습은 그때와 다르지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살 것인가의 경우의 수는 비슷하다.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마천이 기술한 전국시대와 진, 한의 시대역시 극변의 장소였다. 그런 세상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우리가 갈 길의 방향을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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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2-12 14:47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설음식하다가 칼에 손가락 깊게 베어 피를 많이 흘리고~~
손가락 칭칭 싸매고도 글을 몇시간 썼는데 다 날아가고ㅡ알라딘서재에 다시는 직접 쓰지 않으렵니다ㅠㅠ
힘들었던 그믐날의 페넬로페였습니다^^
그래도 다 액땜했다치고
더 착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2021년의 설을 기쁘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cyrus 2021-02-12 19:37   좋아요 4 | URL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스콧님 말씀대로 병원에 한 번 가보세요.

페넬로페 2021-02-12 19:41   좋아요 3 | URL
네, 가봐야할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2-12 15: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페넬로페님 손가락 ㅠ.ㅠ 깊게 베이셨다면 휴일 끝나는대로 병원에 가보셔야 합니다. 특히 손은! 저는 몇년동안 알라딘 이용을 거의 안했던(100자평만 줄창 씀) 이유가 사이트가 불안정하고 여러번 해킹당해도 그다음에도 나아지지 않아서였어요 특히 일주일전부터 사이트 장애가 심했고 오류로 (그동안 페이퍼 왕창 여러번 날림) 글이 저장이 안됐고 사진도 올라가지 않아서 애를 먹었네요. 유툽을 시작해서 용량이 커야 하는데 대용량 서버는 그대로 두나봐요 보통 긴연휴 기간에 다른 넷몰들은 6-8시간 임시 사용중지 해놓고 사이트 오류 버그 잡아내는데 짠돌이 알라딘은 이런데 신경 안써요. 힘든날에도 더 착하게 살기로 마음먹으신 페넬로페님 신축년 흰소가 행운을 가져다 줄겁니다. ٩(●‘▿‘●)۶

페넬로페 2021-02-12 19:43   좋아요 3 | URL
네, 정말 황당했어요 ㅠㅠ
분명 리뷰와 페이퍼설정을 5분간격 저장 해놓았는데 그 기능이 말을 듣지 않는것 같아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안그래도 연휴기간이라 끝나면 병원에 가볼께요**

붕붕툐툐 2021-02-12 2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고에고~ 펠레로페님~ 사기 읽으신거 넘 존경스럽다 말씀 드리려고 댓글 쓰러 가다보니, 손을 다치시고, 정성스레 쓴 글마저 날아가고.. 그럼에도 긍정 마인드로 설을 맞이하는 모습에 감동받고 갑니다~ 상처는 잘 회복될 거예요~ 그래도 생활하기 불편하니 얼른 잘 나으시기를..🙏🙏

페넬로페 2021-02-13 00:49   좋아요 0 | URL
생활하기 불편한데 또 금방 적응되네요 ㅎㅎ
염려해주셔서 감사해요, 붕붕님!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 가 나에게 왔을 때, 소문으로 이 책의 분량이 적다는 걸 알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기와 페이지 수가 훨씬 더 적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난 이 책을 남쪽 바닷가에 접한 소도시에 사시는 엄마를 뵈러가는 기차안에서 읽을 예정이었다. 번거롭게 다른 책을 한 권 더 가방에 넣어야 하는지 잠깐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이 책은 얇았다.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적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난 두 가지가 궁금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라는 것과 그 아버지의 세대가 저지른 일본의 만행들을 작가는 어느정도까지 언급했을지의 여부였다.

 

70세가 넘은 작가는 잔잔하고 담담한 문체로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얽힌 일화를 얘기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 어느 여름 날 오후 아버지와 해변에 암고양이를 버리러 간 일상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버려진 그 고양이는 자신들보다 더 먼저 집에 와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 대목에서 나도 한참 읽기를 멈추고 생각해보았다. 고양이가 어떻게 그들보다 먼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지 참 의아했다.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에도 고양이를 등장시킨다. 가족이란 이 믿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을 공유하며, 그 무한한 집적으로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첫부분과 끝부분을 이렇게 연결시키는 작가의 절묘함에 감탄했다. 짧고 압축적인 글에서 많은 것을 얘기할 수 능력이 있기에 이 작가에게 글은 길게 늘일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1917년에 태어난 작가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씨는 사립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사이며 학문과 문학을 좋아하고 하이쿠를 열심히 짓는 분이셨다. 그러한 배경이 하루키옹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청년이 된 지아키씨에게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된다. 길지는 않지만 세 번이나 징집되는 그 시대의 청년은 불행할 수도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침략과 잔인함의 전쟁을 거시적이기 보다는 미시적으로 한 청년에 초점을 맞춘다. 문학과 학문을 좋아했던 청년에게 그 전쟁은 힘들고 많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것이라고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결국 아버지도 사람을 죽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렇게 추측의 문장들로 아버지를 얘기한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전쟁에 참여한 그 쳥년들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를.

똑같이 잔잔하고 담담한 하루키의 문체가 전쟁을 얘기할 땐 굉장히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읽히는 건 단지 나의 느낌때문일까?

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전쟁이 한 인간-아주 평범한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다- 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를 말한다. 그리고 역사는 흐르고 연결되지만 그것을 메시지로 쓰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다. 아마 하루키는 역사의 한가운데에 선 지아키씨가 아닌, 지아키씨의 본연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으로.

다만 그것은 리얼하게 표현될 수 없기에 작가의 추측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다.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키옹은 20년 이상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겨우 화해 비숫한 것을 한다. 그 갈등이 뭔지는 모르지만 가족이란 우연의 결과로 필연을 짊어지고 사는 존재들이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에 난 그 두 사람이 안타까웠다.

 

예상치 못한 폭설과 한파, 코로나로 인한 걱정으로 난 결국 노모를 보러 가지 못했다. 기차가 아닌 집에서 '고양이를 버리다' 를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좋은 문장들을 읽으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고향에 계신 엄마를 생각했다. 정말 한 번 씩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너무 당신을 잊고 사는 딸이 원망스러워 아버지가 나타나는 것 같다. 그는 내가 여기 이곳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중요하고 신비로운 것을 계승할 수 있는 경이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자꾸 잊게되어 미안하다. 

 

세계적인 거장의 문장으로 표현되는 무라카미 지아키씨의 생애가 부럽다. 

불초한 난 이 밤에 잊혀진 내 아버지를 추억하는 걸로  미안함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 P51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p63~64 - P62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P87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 P93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 P97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고양이에 얽힌 또 하나의 인상적인 추억이다. 그리고 그 추억은 아직 어린 내게 생생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훨씬 어렵다‘ 하는 것이다. 보다 일반화하면 이렇게 된다.-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고양이를 죽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도 죽인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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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0 10: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아버지가 오랜투병(엄청난 고통속에서 암,당뇨 합병증으로 고통받다가)을 지켜보면서 화해는 했지만 아버지에 과거를 아들이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솔직하게 세상밖으로 끄집어내서 사과를 해야할지 오랜세월동안 고민했었데요.
60세를 넘기고 부터 중국 난징일대를 돌아다니며 당시 일본이 점령했을때 자료들 수집하고 신문기사 아버지가 다녔던 학교들 샅샅히 뒤져서 조사를 했는데 서류를 펼쳐볼때마다 식은땀을 흘리고 손끝을 떨었을정도로 자신에 아버지가 잔혹한 만행에 주동자중 한명이였는지 아버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랬다고 하더군요.
주동자 명단에 하루키 아버지 이름이 있었다면 중국정부에서 내버려두지 않았을거고 중국내 하루키 책은 금서가 되었을겁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소속된 부대 지원부대에 물량공급이 늦어져서 행군을 못한 채 접정지역에서 몇주를 흘려보냈다고 하더군요.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한 원고를 5-6년동안 붙들고 있어서 담당 편집자들이 속이 바짝 타들어갔었다고 이글이 실렸던 문예춘추 잡지에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원했던 길로 갔던 아들이 아니였고 소설을 썼다고 아버지 한테 말했을때 아버지에 기묘한 표정을 잊을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하루키 아버지는 주지 스님에 아들이였지만 다른절에 입양될뻔했고 건강때문에 다시 가족품으로 돌아왔지만 가족품에서 아들로 사랑받고 자라지못했다고 합니다. 입양-파양-전쟁-투병 이런 삶을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하루키 자신이 70을 넘겨서 깨닫았다고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에서 작년초에 밝혔어요.
이런저런식으로 돌려서 말하던 하루키가 요즘은 대놓고 일본 정치인들 아베 스가 마구 비판해요
라디오 진행자 하루키옹은 수다쟁이 옆집 아저씨더군요 ^.^

페넬로페 2021-01-11 07:02   좋아요 4 | URL
네, 책에서도 작가의 아버지가
난징함락 그 후에 중국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하루키옹은 아버지가 난징의 주역이었을까봐서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었던 것 같아요^^
그의 아버지의 나이가 그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전쟁에 대한것을 빠뜨릴수가 없으니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여요~~
작가 후기에 역사의 흐름에 대한 썼지만 그걸 메시지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했어요**
scott님!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일어는 진짜 하나도 몰라요~~

바람돌이 2021-01-10 12: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역사적 범죄의 일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저 불안감. 그럼에도 그것을 묻는것이 아니라 불안에 떨면서도 찾아내고 일아내는 작가적 양심이 인상적입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지도 않는데 이런 에세이는 한번도 읽어보지 않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페넬로페님이랑 scott님덕분에 하루키의 새 매력을 알았습니다.

페넬로페 2021-01-10 14:51   좋아요 2 | URL
저도 바람돌이님과 마찬가지로
하루키 소설 매니아는 아니예요~~
근데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가 글은 잘 쓴다는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책도 짧은 분량에 많은것을
담고있어 역시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붕붕툐툐 2021-01-10 14: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부지도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화해를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러기에 제가 어린 나이에 황망히 가버리셔서..ㅠㅠ

페넬로페 2021-01-10 14:54   좋아요 3 | URL
붕붕툐툐님께서 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시겠어요~~
사람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그저 사랑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이런말 제가 하지만 저도 사실
실천이 잘 안돼요**
미움받고 미워하고 ㅎㅎ~~

붕붕툐툐 2021-01-10 15:07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저 사랑하며 사는게 답인데~진짜 그게 왜이렇게 실천이 어려운건지요?ㅎㅎ 다정하신 페넬로페님도 그러시다니 괜히 더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헤헷~ 우리 더 열심히 사랑해 보아요!!^^

서니데이 2021-01-15 2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도착했을때 생각보다 페이지가 작아서 놀라기도 했지만 내용은 좋았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글일것 같기도 하고요.
페넬로페님 좋은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1-15 21:59   좋아요 1 | URL
네, 분량은 적어도 거기에 있는
내용은 충분한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것 같은데
또 주말이 왔네요~~
서니데이님!
주말 잘 보내세요**


scott 2021-02-10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하루키옹에 고양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힘
(*´﹀`*) 축!!카 ㅋㅋ

페넬로페 2021-02-10 17:1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나에겐 철학이 너무 어렵다. 재미도 없다. 그래서 읽을 책을 살 때도 철학에 관련된 책은 항상 뒤로 밀린다. 내가 철학을 싫어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자면(그 모든게 나의 역량부족이지만), 고등학교때 들은 철학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그때 질려버렸고, 심지어 그 선생님을 미워했다. 대학 1학년때 교양으로 들은 철학수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잘생긴 얼굴에 검정색 한복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강의를 하시던 강사분은(도올 선생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땅찮아 하셨다. 어릴 때부터 받은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들에게 휘몰아치는 질문들은, 우리를 더 주눅들게 하고 심지어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어떻게 철학을 좋아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철학은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 도전해 보고 싶은 오기일 수도 있겠다.

철학 조금 모른다고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겠지만 무슨 강박인지는 몰라도 꼭 알고 싶고, 그 세계를 느끼고 싶다.

그래서 2021년엔 일단 철학에 대한 가벼운 책들을 읽어 보기로 했다.

 

'소르본 철학 수업' 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빌린 책이다. '희망 도서' 는 책에 대한 나의 안목이 들어있는 것이다. 내가 신청한 책이 도서관에 계속 소장되고, 다른 사람들도 읽는 것이기 때문에 신청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낸 세금이 그 책에 들어있기에 내 돈으로 산 책은 던져두고라도(사실 처박아놓고) 웬만하면 희망도서는 꼭 다 읽고 반납하려 한다.

 

 '바칼로레아' 라는 단어만 들어도 존경스러운 프랑스, 그것도 소르본에서 작가가 철학을 전공한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고 모든 것이 철학적일 것 같은데, 이 책은 그 좋은 재료로 너무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 낸 듯하다. 내가 철학 이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경험에 철학적인 것을 입힐 때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인용도 틀렸다. 새 책을 처음으로 받아 읽을 수 있는 희망 도서에 대한 사랑으로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사실 별로 좋지는 않았다.

 

좋은 재료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지인의 냉장고는 언제나 거의 비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요술처럼 나에게 뚝딱 아주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다. 좋은 재료를 가진 사람은 그것으로 언제나 좋은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은 수년간의 경험과 연마와 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음식을 해주시면서 "뜨끈하게 먹고 속이 일어나도록 해라"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책을 낸다는 것도 그런게 아닐까?

'정성스럽게 연마해서 독자들의 속을 일으키게 하는 것' 말이다. 

 

책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난 그저 나만의 느낌을 적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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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1-05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저에게도 먼가 숙제같은 것인데, 막상 시작이 잘 안되네요. ㅠㅠ

페넬로페 2021-01-05 08:51   좋아요 0 | URL
철학은 어렵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책이 있어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도 고민이 돼요~~
쉬운 입문서부터 차근차근 읽어볼까 합니다^^

다락방 2021-01-05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문 만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저는 어딘가에서 이 책 인용문 보고 이 책은 안읽기로 생각했는데 페넬로페 님의 이 글을 보니 역시 패쓰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이럴 때 제가 읽은 좋고 또 쉬운 철학책을 똭- 권해드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제가 철학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안타깝네요 ㅠㅠ

페넬로페 2021-01-05 08:58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별점을 많이 주셨더라구요~~
근데 솔직히 안읽으셔도 됩니다 ㅎㅎ
세상엔 읽을 책이 많고 좋은 책들을
읽을 시간도 부족하니까요~~

라로 2021-01-05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관심 갔는데 페넬로페 님의 글을 읽으니 예전에 읽었던 밑줄이 다였나?? 싶네요. 😅 철학책은 아니지만 혹시 아직 안 읽으셨다면 <코스모스> 강추해요!!! 우주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게 아니라 철학적인 (제 생각에) 얘기도 많이 나와요!! 저는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왜 이제 만나게 되었는지...다 인연이겠지만 이 책은 정말 대단해요!!!👍👍👍👍👍 철학책 읽으시기 전에 읽으심 좋을 듯요!😊

페넬로페 2021-01-05 08:57   좋아요 0 | URL
작년에 코스모스를 읽었어요~~
저도 미루고 미루다가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라로님! 바쁘신데 책도 열심히 읽으시는 모습에 늘 배우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1-01-05 09:02   좋아요 1 | URL
저는 요즘 라로님의 코스모스 독서를 보면서 내년에 코스모스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해봅니다. 2021년에는 성경, 2022년에는 코스모스!!

scott 2021-01-05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르본 철학수업
책제목만으로 봤을때 프랑스 입학시험에 철학문제를 다루는 내용이라고 추측만 ㅎㅎ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그리스 로마 철학을 다룬 인용이 틀렸다면
이책에 저자는 철학을 제대로 학습한것 같지 않아 ㅎㅎ 보이네요^.^

페넬로페 2021-01-05 11:07   좋아요 1 | URL
저도 제목만 보고 철학에 대해 좀 배울 수 있을줄 알았는데
저자의 개인적인 것들이 많았어요~~
 

요즘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있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하루가 터무니없이 빨리 지나가 버린다.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또다른 하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잠에서 깨서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직선으로 그냥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하루의 오후에는 가슴이 텅 비고 나를 둘러싼 공기에 주눅들고  허무해져 울어버리고 싶어진다. 연암 박지원이 끝없이 넓게 펼쳐진 요동벌판을 지나며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 이라며 그곳이 훌륭한 울음터라고 했듯이 한번씩 나에게도 통곡할 울음터가 필요하다.

 

 지난 가을엔 책은 많이 읽었는데 거의 정리를 하지 못했다. 시간은 가고 기억은 사라져 가서 안타까웠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정신이 좀 돌아와 그동안 읽은 책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정리를 해야겠다. 이 해가 가고 있고 내년엔 또 새 책을 읽어야 하기에 어서 내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들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이 두 문장가는 우리들에게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광활한 우주의 한 점 초록별에 사는 지구인들에게, 벌써 망해버린 명나라의 유령들을 여전히 붙잡고 살아가는 답답한 이들에게 편협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새롭고 합리적인 곳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바깥세상이 어떠한지 알아내는 것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코스모스중에서, p386

 

오랑캐라고 하는 청나라는 중국의 제도에서 이익이 될 만하고 오래 향유할 만한 것들을 가로채 가지고는 마치 본래부터 자기 것이었던 양한다.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만 한다.-열하일기 상 중에서, p240~241

 

연암 박지원과 칼 세이건은 같은 것을 다르고 다양하게 말하고 있다.

 

엮은이 고미숙은 '열하일기는 이국적 풍물과 기이한 체험을 지리하게 나열하는 흔해 빠진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뜨거운 '접속' 의 과정이고, 침묵하고 있던 '말과 사물' 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굴' 의 현장이며, 예기치 않은 담론들이 범람하는 '생성' 의 장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열하일기』를 통해 아주 낯설고 새로운 여행의 배치를 만나게 된다.'

고 했듯이 우리는 사람, 환경, 우주 모두를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만나야 할 듯 하다.

 

 

 

 

 

 

 

 

 

 

 

 

 

 

 

 

 

 

 

한 번씩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 내가 눈이 멀게 된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불편해질 것이고 결국 나 혼자서는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생각만으로도 암담하고 비참한 기분이 든다.

빽빽하게 채워진 글들과 쉼표와 마침표의 문장부호만으로 서술되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나의 상상으로 예상되는 눈멂의 세계를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해준다. 실명은 눈을 뜬 채 행해지는 온갖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경고이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을 실명을 통해 보게 하고 일깨우려는 것 같다.

 

여기서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명은 또 이런 것, 모든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p294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 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여기에 이 지도를 세우기 위해, 운명이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왔는지는 운명 자신밖에 모를 것이다.-p330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인간이 겪는 비극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위의 4작품은 개인의 욕망과 욕심, 잘못된 판단. 질투로 인해 끝이 불행하다. 과실, 성격적 결함, 단순한 판단 착오나 실수라는 뜻의 '하마르티아' 로 인해 그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자초한다. 그것이 자기자신 한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아고와 멕베스 부인과 같은 주위의 사람때문에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이 작품들을 읽어 갈 때 이미 우리는 주인공들이 앞으로 불행해지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단지 나약하고 본성에 따르는 인간일 뿐인지라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많은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은 딸들이 배반한다는 것을 리어왕은 인정하지 못했고, 당신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땐 이미 멕베스는 왕이 된 것이다. 사랑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사랑에 빠져버렸기에 안토니는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비극이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의 모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중에서

 

무대에 올려진 작품을 감상하며 배우들은 앞날을 모르는 것 처럼 연기하지만 관객들은 어느정도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며 '나'를 생각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내가 똑같이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나역시 비극적인 삶을 살거라는 공포를 느끼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상황에 막닥뜨린다면 나도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는(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소극적 긍정을 하며 주인공들이 마치 나인양 불쌍해진다.

 

내일과 또 내일과, 내일과 또 내일이

이렇게 쩨쩨한 걸음으로, 하루, 하루,

기록된 시간의 최후까지 기어가고

우리 모든 지난날은 죽음 향한 바보들의

흙 되는 길 밝혀 줬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고

잠시 동안 무대에서 활개치고 안달하다

더 이상 소식 없는 불쌍한 배우이며

소음, 광기 가득한데 의미는 전혀 없는

백치의 이야기다.

-멕베스, 5막 5장, p459

 

 

 

 

 

 

 

 

 

 

 

 

 

 

 

 

 

 

 

 

'햄릿' 이라는 인물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전에 읽었던 '아이스퀼로스 비극' 중 오레스테이아(오레스테스 이야기)에서 오레스테스는 그의 모친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녀의 정부가 부친 아가멤논을 죽였음을 알 때 아무 망설임없이 복수를 감행한다. 그에 비해 햄릿은 망설이고 고뇌한다. 오레스테스와 다르게 햄릿은 르네상스의 인물이기 때문일까?

 

복수를 하는 자는 이유가 있고,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복수의 서사' 는 '고통의 등가교환' 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서사이며 거의 실현 불가능한 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사가 어떻게 창조적으로 실패하는가가 그 성패에 달려있다.-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억울하게 죽어 유령으로 나타난 선왕을 위해 햄릿은 아들로써 뭔가를 해야 한다. 당연히 아버지를 위해 어서 나서야 하겠지만 햄릿은 자신의. 자신만의 존재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햄릿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거의 죽게된다. 우유부단한 햄릿이다. 그러나 그 망설임속에 있는 이유와 슬픔을 알기에 우리는 햄릿을 이해한다. 햄릿의 우유부단함 속에 존재가 있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아,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햄릿, 3막 1장. p94~95

 

'To be, or not to be.'

햄릿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이 문장은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또는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등 여러가지로 번역되는데 내 생각엔 햄릿의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나름 둘 다 맞는 것 같다.

 

 

 

 

 

 

 

 

 

 

 

 

 

 

 

 

 

 

 

 

 

 

직접 읽지 않아도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고귀하고 애절한 사랑의 대명사가 아닌가.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냥 덤덤히 책을 읽었다. 그 덤덤함의 이유는 뭘까.

 

캐플렛가의 딸인 줄리엣은 아버지가 정해준 결혼 상대를 거부한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대놓고 말한다.

 

뭐 뭐, 어쨌다고? 말을 돌려! 이게 뭐지?

"반갑다." "고맙다" 하다가 "고맙잖다."

게다가 "반갑잖다?" 버릇없는 것 같으니.

고맙다 반갑다 다 집어치우고

그 잘난 몸이나 추슬러 이번 주 목요일에

성 베드로 성당으로 파리스와 함께 가.

안 그러면 틀에 묶어 내가 끌고 가겠다.

나가, 누렇게 썩을 년아! 나가, 이 못난 것아!

허연 상판하고는! -로미오와 줄리엣, 3막 5장 p113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지배하는 시절에 자유연애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올리비아 핫세' 로 연상되는 나의 줄리엣이 아버지에게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셰익스피어는 극을 쓸 때 '약강 오보격 무운시' 라는 형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모든 운문 형식 가운데 이 '약강 오보격 무운시' 가 영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에 가장 가까우며 셰익스피어가 그 대표적인 사용자이다라고 〈민음사판〉의 번역자는 말한다. 그래서 번역자도 그 형식으로 번역을 했다고 하셨는데 우리말이 영어와는 달라서인지 책을 읽는데 사실 많이 불편했다. 역자의 노력은 가상하나 앞 뒤가 맞지 않고 억지스러운 데도 많은 것 같아 유감이다.

 

〈열린 책들〉 판은 그러한 형식에 완전히 얽매이지는 않은 것 같아 읽기는 민음사판보다 좀 쉬웠다. 그러나 너무 산문적인 느낌이 강해서 아쉬웠다.

 

 

 

 

그 밖에 읽은 책들.....

 

 

 

 

 

 

 

 

 

 

 

 

 

 

 

 

 

 

 

 

 

 

 

 

 

 

 

 

 

 

 

 

그리고

 

 

 

 

 

 

 

 

 

 

 

 

 

 

 

 

 

 

 

 

박상영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사랑에 관한 얘기인데 그 대상이 동성이다. 여자사람친구 재희와 엄마도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그냥 즐기려고 만나기도 한다. 아닌 것 같은데도 마음을 제어할 수 없어 그 사람을 만나야 하고, 진짜 사랑하는데 또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이성을 사랑하든 동성을 사랑하든 사랑이란 비슷비슷한 유형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그 불편한 진실을 나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며 깨달았다.-p169

 

반짝,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나는 감히 규호를 따라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설렘도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밤이 끝나는 시점과 해가 뜨는 시점은 이어져 있으니까.-p248

 

그래,그래 맞는 말이다. 어쩌면 그 절절한 사랑들은 한여름밤의 꿈들일지도 모른다. 훼방꾼 큐피드의 화살에 맞아 휘청거리며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결국엔 만신창이가 된 자기자신만 남는다.  

 

사랑의 정체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부모들은 그 현상을 인정하기 보다 병으로 여기고 치료되기를 원한다. '대도시의 사랑법' 의 주인공 영의 엄마도 그랬다.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영은 상처를 받고 엄마와 소원해지지만 그 엄마는 암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엄마를 용서할 수 없지만 엄마이기에 영은 엄마를 돌본다.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 있잖아

단 한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때 내마음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 나를 이런 형테로 낳아놓고, 이런 방식으로 길러 놓고, 그런 나를 밀어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 무지의 세계에 놔두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제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엄마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알지만, 나는 엄마를,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정말, 미안한데, 아마도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영은 엄마를 용서할 수 없지만 엄마 역시 아들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와 똑같이 외동딸을 두고 있는 어떤 분이 소설. '딸에 대하여' 를 읽고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대상이 누구든 딸과 함께 있어 준다면  내가 가고 없을 때 홀로 남겨질 딸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러면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도시의 사랑법' 엔 올림픽 공원이 자주 나온다. 우리집에서 산책길을 따라 45분쯤 가면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는 지라 좀 반가웠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실내에서 운동을 할 수 없어서 올해는 자주 올림픽 공원까지 걸어갔다. 걷다보니 걷는 것의 매력에 푹 빠졌고 시간이 날 때마다 걸어갔다.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면 생수나 커피를 사서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 곳의 벤치에 않아 그저 멍하니 있다 온다.  이 소설을 읽고 그 벤치에 않아 영을 생각하기도 했다. 무서운 병에 걸려버린 영!

내내 영이 한 말이 걸린다. 영이 좀 편안히 잘 살면 좋겠다.

 

지난 시절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결국 나의 몸과 나의 마음과 내 일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더 열심히 깨달을 따름이었다. 공허하고 의미 없는 낱말들이 다 흩어져 오직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만이 남는다.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미간에 짙은 주름을 짓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의 호흡만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세상.-P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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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13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읽으셨는데요!!!!! 더구나 제가 오래 벼르던 [코스모스]!! 저도 책을 받았으니 조만간 따라서 읽을게요~~!!^^

페넬로페 2020-12-13 16:59   좋아요 1 | URL
이번에 읽은 책들은 워낙에 유명한 책들이라 글쓰기가 조심스러웠어요 ㅎㅎ
코스모스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읽기가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유튜브에 칼 세이건이 만든 영상도 있는데 옛날거라 좀 그렇더라구요^^

scott 2020-12-13 1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페이퍼 한글자 한글자 음미하면서 읽어야할 구절이 많네요 연암박지원에 책을 제외하고 코스모스부터 셰익스피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까지 2020년에 제가 읽었던 책들의 흔적과 똑같네요 지금은 이덕무 산문과 도끼선생에 죽음의 집을 그리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마무리짓지 못하는 2020년이네요

페넬로페 2020-12-13 20:04   좋아요 2 | URL
scott님과 읽었던 책이 겹치는게 많아서 영광입니다^^
2021년도엔 어떤 책들을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파이버 2020-12-13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성애에 대한 인식도 최근에서야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영이 엄마한테 느끼는 감정도 이해가고 아들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도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가을 동안 다독하셨네요! 이제 연말에 읽은 책들 페이퍼를 기다리겠습니다~

페넬로페 2020-12-13 20:30   좋아요 2 | URL
네, 저도 파이버님과 같은 생각이었어요~~
영과 그의 엄마의 입장이 둘 다 이해되더라구요^^

모모 2020-12-14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그동안 글소식이 뜸하여 바쁘신가 아님 슬럼프이신가 했는데...역시나 였네요! 좋습니다^^

페넬로페 2020-12-14 23:03   좋아요 2 | URL
조금 바빴고 많이 슬럼프였습니다~~
모모님!
안부 물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조심 하세요**

scott 2021-01-09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어제보다 덜춥다고 해도 밖은 꽁꽁
건강 잘챙기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1-09 11:5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아직 몰랐어요^^
살며시 얼굴에 미소 한모금!
기분 좋네요**

초딩 2021-01-09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피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 추카드려요~~~!!!

페넬로페 2021-01-09 11:53   좋아요 1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서재에 오셔서 축하해 주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