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박홍규.박지원 지음 / 사이드웨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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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다가 늙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으로써, 일단 이 책의 제목이 나를 강력하게 불렀다. 부제목으로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도 마음에 들었다. 박홍규와 박지원의 이름을 처음 들어 보아서 그분들에 대해 알고 싶기도 했다. 이 책은 평생을 내내 읽으며 살아온 학자 박홍규의 삶과 생각에 대해 박지원이 묻고, 박홍규가 답하는 대담집이다. 많이 읽으며 살아왔기에 여기엔 당연히 책얘기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책을 통해 발견한 지혜를 세상을 향해 내던지는 담론이 더 많다.

 

한평생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 학교를 오가는 사람, 오늘도 가방에 도시락을 싸든 채 홀로 도서관에 틀어박히는 사람, 노동법을 전공하고 법대 교수를 지내며 한국 사회와 노동 현실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40년간 150권이 넘는 책을 쓰고 옮겼던 사람....

책머리에 박홍규옹에 대해 이렇게 쓰여져 있다. 자발적인 단독자의 길을 택하고 좌우를 떠나 모든 진영과 집단의 패거리 문화를 진심으로 싫어한 사람으로 아나키스트적인 계몽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는 분이다.

 

70을 눈앞에 둔 분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수출신으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모든 권위와 가족주의를 해체하고, 불합리, 억압과 편견을 버리자는 주장은 쉽지 않다. 상당히 진보적인 시각으로 지금의 현실을 비판한다. 학자이기에 누구나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담집을 읽어가며 이 분은 사회적인 실천도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지향하는 노년의 삶과 생각들에 많은 구심점이 되어 주어 좋았다.

 

읽는다는 것은 고독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다. 더 많이 읽기 위해 삶의 잔가지들을 제거하고 집중하고 몰두해야 한다. 읽으면서 거기에 있는 것들을 모아가며 정리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어렵다. 얼마만큼 많이 읽어야 박홍규옹처럼 막힘없는 답변이 술술 나올수 있는지 나로서는 참 아득하다.

 

대담의 형식으로 된 책을 읽다보면, 두 대담자의 언어가 너무 어려워 읽어내기가 힘든 것도 있고, 지루할 때도 많다.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는 이러한 면에서 읽기가 편하다. 여러 분야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다양한 얘기를 풀어나간다. 작가인 박지원씨는 단지 질문만이 아닌 내용에 대한 정리도 잘 해준다. 다만 이런 책은 내용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데 참 힘들고 귀찮은 것도 사실이다. 무조건적이지 않게, 좋고 옳은 것만 받아들여야겠다.

 

이 책은 461페이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는 내내 양손으로 책을 눌러서 읽어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잘 펴지지가 않는다. 책의 마지막 부분의 박홍규옹의 아내분과의 인터뷰는 별로 필요없을 것 같다.

 

내내 읽으며 늙어 갈 수 있고, 도시락까지 싸주시는 아내분의 노고로,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교수님이 부럽다. 내내 분주하게 살아가며 잠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삶과 비교된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시지만 여자를 위하는 것과 여자와 똑같이 일을 하는 것은 다르다. 밥벌이와 고마움으로 모든 것이 상쇄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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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6-02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 종일 책 한 권 읽고 글을 쓰고 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는 걸 느껴요. 코로나 때문에 한 달 동안 집에서 생활했어요. 제가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놀이가 독서에요. 그렇게 책만 읽고 글 쓰는 일상을 보내니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페넬로페 2020-06-02 17:39   좋아요 0 | URL
그러한 독서로 항상 좋은 글 남기시는 것 같아요~~
독서를 하면 항상 행복하지만 시간이 여의치않아 아쉬워요^^

transient-guest 2020-06-04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문가처럼 책을 읽고 잘 쓰고 혹은 스스로 책을 낼 수는 없겠지만 읽는 다는 건 저에게 거의 유일한 취미 같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페넬로페 2020-06-04 12:25   좋아요 1 | URL
저는 일도 하고 주부의 역할도 해야하다보니 항상 책읽을 시간을 확보하는게 힘이 들어요~~그래도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해요 ㅎㅎ

cjfdms5607 2020-06-06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안내 감사합니다.
분주한 중에 책에대한 관심을 다시 갖게하는 글...

페넬로페 2020-06-06 16: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cjfdms5607님!
글을 쓰는게 너무 힘든데, 이렇게 저에게 용기를 주셔서요^^
남은 토요일 오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래요**

마쯔 2020-06-08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든도 어머니가 빨래도 해주고 식사도 가져다 줬다고 하던데요. 글에서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페넬로페 2020-06-08 12:16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아주 오래전부터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인데 아직 못읽어 봤어요~~
조만간 읽어보고 싶네요^^
마쯔님,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6-08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를 위하는 것과 여자와 똑같이 하는 것이 다른 것은 ‘위민동락 爲民同樂‘과 ‘여민동락 與民同樂‘만큼의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마 남자로서 여자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함께 나아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페넬로페님의 글을 읽으며 해봅니다...^^:)

페넬로페 2020-06-08 20:29   좋아요 1 | URL
네, 같이 더 발전해가는것이 중요할것 같아요~~
책읽기의 열망과 주부의 삶과의 조화를 꿈꿔봅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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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 서술된 SF의 정의는 미래의 과학과 기술, 우주 여행, 시간 여행, 초광속 여행, 평행 우주, 외계 생명체 등을 소재로 하는 장르이다.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과학 소설이다. 사실 판타지와 SF 를 잘 구분하지도 못하고 많이 즐기기도 못하는 사람으로써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은 7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 가볍게 읽어 나갔는데, 갈수록 흥미롭고 기발한 내용이 서술되어 점점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읽어 갈수록 생각할 것도 많았다.

 

이 소설들은 나처럼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별 무리없이 읽어낼 수 있다. 과학 소설을 읽다 보면 거기에 나오는 이론적인 단어가 실제의 것인지, 아님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인지 잘 구분이 안되는데, 여기에서는 실제의 과학 지식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그 단어를 입력하면 거의 설명되는 단어가 많았다.

 

김초엽의 소설에서는 미래의 세계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그 상상력이 기발하다. 지성을 가진 외계인을 만나고, 지구와 생태가 비슷한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한다.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물건도 있고, 죽고 나서도 그 사람의 특징이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는 도서관도 있다. 그 시대의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마인드를 보관하는 곳이다. 종이책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그러한 과학 지식을 동원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가 대단해 보인다.

 

과학 소설을 읽으며 한 번씩 나 자신을 미래의 세계에 놓아 본다. 그런 세계에 살게되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며, 과연 행복할 것인가를 상상하며.......늙고 병들지 않는 세상도 좋고, 특히 태어날 아이에게 가장 좋은 특성들을 세팅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렇게 된다면 행복하고 기분 좋을 것도 같은데 내가 그런 세상을 진정으로 원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과학이라는 것이 적용되는 모든 것은 양가적인 것이라 결론이 쉽게 나진 않는데, 문제는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나의 선택이 아닌 주어지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무시되고 탈락되어진 나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암울하다.

 

'멋진 신세계'나 '1984'에서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렸는데 김초엽도 비슷한 것 같다. 뭔가가 어둡고 씁쓸하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미래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지금과 비슷하다. 환경이 변하면 분명히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변하든 사람이란 존재는 잘 안바뀌는 건지 아니면 미래의 세계를 동원해 지금의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세계에서 오히려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더 잘 보인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세상의 변화는 너무나 당연하고 우리에게 바로 직면해 있다.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하겠지만 다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안나의 말처럼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좋겠다. 빛보다 빠르게 달리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p19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p54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동결은 대가 없는 불멸이나 영생이 아니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을 뜨는 순간이 있어야하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수명을 지불하는 기분이 들지-p179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 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p180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p18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마인드들은 우리가 생전에 맺었던 관계들, 우리가 공유했던 것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뇌에 남기는 흔적들과 세상에 남기는 흔적들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억한다는 것이죠. 마인드와 자아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영원히 미해결로 남는다고 해도 우리는 마인드를 통해 그들의 삶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p257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p264 (관내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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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외 11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
윌리엄 포크너 지음, 하창수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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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의 장편 소설인 '소리와 분노' 를 너무나 힘들게 읽어 걱정스레 단편집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읽혔다. '의식의 흐름'의 기법으로 쓰여진 '소리와 분노' 와는 달리 단편집은 간결한 문체의 직설적인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12편의 글이 실려있고, 그 편 수 만큼 다양한 에피소드가 서술되어 있다. 잘 알려진 '곰'은 중편 소설에 가까운 데, 문학동네판에서는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와 있다. 단편집을 읽어 가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미국 남부인의 삶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먼저 읽었던 '소리와 분노' 에 나오는 콤슨 일가와 그 당시 흑인 노예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노예해방이 시행되고 북부의 자본이 서서히 침투해 들어오는 남부에는 예전의 명성과는 달리 서서히 몰락해가는 귀족들과 지주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남부인 특유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꼿꼿하고 강하게 견딘다.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여왕이 있었네),(브로치)의 에밀리와 버지니아같은 여인들은 평생 권위와 인습에 갇혀 살며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사고방식을 젊은 여인들에게 강요한다. 사랑을 거부당하고 남자의 시체와 함께 평생 갇혀사는 삶을 선택한 에밀리는 측은하지만, 사람들은 쓰러진 기념비에 대한 존경 가득한 애정을 품고서 그 시대의 마지막 세대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흑인 노예-소설에서는 '깜뚱이'라고 표현된다- 가 없으면 그들은 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다.

 

막상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흑인 노예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들은 마을의 빈민촌에 모여 살며 노동을 하거나 백인의 집으로 출퇴근 하며 허드렛 일을 해주며 살아간다. 오죽하면 '소리와 분노'에서 제이슨이 내가 저 깜둥이들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고 푸념할 정도로 그들은 지긋지긋한 백인의 곁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또한 극심한 인종 차별로 인해 항상 두려움에 싸여 있고 억울하게 희생양이 된다. (메마른 9월)에서 흑인은 백인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어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지목받고 그를 도우려는 백인은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국 도움을 포기한다.  (붉은 나뭇잎)에서는 인디언 족장의 노예였다는 이유로 그들의 풍습에 의해 그 족장이 죽은 후 같이 순장되어져야만 한다. 말이 안되지만 그들은 힘이 없어 어쩔수 없이 그렇게 죽어 간다.

 

살기가 어려운 쪽은 백인 하층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내몰리는 그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불을 지른다. (헛간 타오르다),(신전의 지붕널)이 그렇다. (와시)에서의 서트펜은 자기 집에 불을 질러 놓고 자신을 멸시한 사람들에게 돌진한다. 성경이 신의 저주로 태어난 짐승이자 노예라고 가르쳤던 깜둥이들이 자신보다 더 좋은 집에 살며 더 좋은 옷을 입고 있는 현실 또한 그들을 분노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그 어떤 종류라도 폭력이라는 것은 두렵지만 뭔가에 '불을 지른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서늘하고 섬뜩하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죽어야만 하는 흑인과 다르게 백인들은 그래도 분노는 표출한다.

 

그 드넓은 광활한 대지에,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그 땅에 어느 날 부터 말뚝이 박히기 시작하고 주인이 생긴다. 인가받지 못했지만 서류가 생기고 그 곳은 팔고 팔리고 대대로 상속된다. 본래 살던 인디언들과 팔려 온 노예들은 백인 농장주들에게 노동을 제공한다. 알다시피 그 노동의 댓가는 너무나 열악했다. 상속자인 소년은 인디언인 샘 파더스에게 사냥을 배우고 오래된 크고 울창한 숲에는 난공불락의 커다란 곰 올드벤이 살고 있다. 해마다 여러 사람들이 이 소년을 데리고 곰사냥을 나서지만 계속 실패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드디어 많이 늙은 올드벤의 사냥에 성공한다. 황야와 숲을 사랑하고 자연의 이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소년과 샘 파더스는 올드벤의 바로 앞에서 총을 겨눌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용감한 사냥개 라이언에게 맡긴다. 여기까지가 (곰)의 1부에 해당되는 얘기라면 그 다음 이야기는 21살이 된 소년의 상속 거부에 대한 것이다. 먼 옛날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부터도 그 누군가의 것이 아니었던 땅에 대해 소년은 상속을 포기한다.

 

난 이 땅을 거부하는 게 아니야. 내 것이 아닌데 거부하고 말고가 어딨어.-p227

 

하느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그 권리는, 땅을 쪼개서 각자 대대손손 영원히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라는 소유권이 아니야. 형제애로 땅을 공동으로 가지고 보존하라는 권리야. 그 대가로 하느님이 요구하신건 연민과 겸손, 관용과 인내, 그리고 빵을 얻기 위해 흘리는 땀이 전부였어.-p228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 땅의 불우하고 미천한 사람들은 성경을 가슴으로 읽을 수밖에 없어. 하느님을 위해 성경을 쓴 사람들은 진리만을 썼을 뿐이고, 진리는 하나이며, 그것은 가슴을 울리는 것이야-p231

 

연민과 겸손과 용서와 인내를 실천하라고....

이 말들은 숭고하다. 그 어떤 설명도 필요없이 숙연해진다.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집엔 너무나 많은 내용과 의미가 담겨 있어 내가 이 책에 대한 글을 쓴다는게 역부족이다. 링컨에 의한 노예 해방과 그에 대한 남부인들의 반대, 흑인 노예에 대해 가해진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단지 그러한 사실로만 남부를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포크너의 소설로 깨달았다. 남부인에 처해진 환경과 그들의 기질, 경제 활동의 영역등 다채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아야 할 것 같다. 직접적인 수치와 사실적인 사건으로 읽는 책보다 소설로 읽는 미국 남부인들의 삶이 흥미롭고 격정적이고 재미있었다. 내가 자세히 모르던 세계를 다녀와 기쁘다.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표지가 예쁘다. 이 전집의 수집에 욕심이 나는 이유이다.

 

저는 인간은 인내하는 존재이기에 불멸의 존재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최후의 격전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붉게 물든 마지막 저녁, 쓸모없는 최후의 바윗덩어리가 내던져진 바다 위로 썰물이 빠져나갈 때, 그때에도 그곳에는 여전히 하나의 음향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목소리, 여전히 뭔가를 끊임없이 읊조리고 있는, 왜소하지만 지칠줄 모르는 목소리입니다.-노벨문학상 수락 연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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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5-16 14: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좋은 주말이예요. 즐거운 토요일 오후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페넬로페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0-05-16 16:51   좋아요 2 | URL
네 한적한 주말을 편하게 보내고 있어요^^
서니데이님!
안부 물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셔요**
 
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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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랑시에 죽은 쥐가 발견되기 시작하고 그 후 사람들에게 이상한 징후가 생기며 죽어간다. 전문가들이 페스트라고 짐작하고, 나중엔 확신하지만 그것을 공표하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 따른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하고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복잡한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더 많이 죽어나가고서야 페스트라고 인정하고, 그때부터 오랑시는 폐쇄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락조차 힘든 상황이 되고 죽음에 대한 애도조차 하지 못하며  단지 살아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행정이 이루어진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p55

 

작년 겨울 중국 우한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감염과 죽음의 소식이 순식간에 전세계적인 불행으로 연결되고 있다. 불안과 공포와 함께 일상이 파괴되고 경제적으로 힘들며 미국의 로버트 라이시교수의 '코로나 시대의 4 계급' 이라는 말도 나온다. 매일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를 언론으로 접하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주변 사람들이 감염되지 않았기에 사실 나는 '추상의 상태'에 더 많이 머무르고 있다. 단절되고 막혀진 상태에서 숫자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이 사태의 무거움과 벗어남을 알 수 있기에 오히려 추상적이다.

 

잠시 후, 의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신문기자의 행복에 대한 조바심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리유에 대한 그의 비난은 정당했던가? '선생님은 추상적입니다.' 페스트가 더욱 성해져서 일주일에 사망 환자 수가 평균 오백 명에 달하고 있는 병원에서 보낸 그날들이 정말로 추상적이었을까? 그렇다. 불행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추상과 대결해야 한다.-p120

 

그런 추상의 상황에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의 연대기는 나를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인도한다. 페스트의 시작부터 길고도 힘든 투쟁과 함께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이 자세하게 담겨있다. 작가의 위대함은 단지 이 감염병을 연대적으로 서술하는 것만이 아닌 각 인물의 상황과 고뇌를 나타내고 인간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리유, 타루, 랑베르, 그랑, 코타르,리샤르등 각자의 인물들이 대처하는 페스트는 지금 우리와 다를바 없다. 파눌루 신부의 두차례의 강론이 이해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가 신부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감염의 징후로부터 그것을 인정하고 대처하기까지 194X년 오랑시와  2020년, 이 세계는 큰 차이가 없다. 과학의 급속한 발달로 당연히 많은 변화가 있어야함에도 오히려 그때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더 들며 부조리한 인간의 삶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한다는 걸 절실하게 알 수 있다. 부조리함에 놓여져 있는 인간의 삶을 얘기하면서도 결국 인간들의 고뇌와 희생, 견딤으로 페스트를 이겨냄을 이 연대기에는 나타내고 있다.

 

페스트가 물러간 오랑시는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지만 코로나19가 끝나가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것은 분명 축제가 아닐거라는 것은 확실하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힘든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가을이나 겨울에 다시 이 감염병이 확산될거라는 우려만이 남는다. 실존의 댓가는 날로 커지며 죽음까지 가는 여정이 더 힘들어지는 이 부조리함에 몸서리치지만 살아간다는 것에 조그만 희망을 가지고 우리 모두 축제의 장으로 뛰어나갈 수 있을 그날을 기대해본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지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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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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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유명한 소설을 이제서야 읽었다. 왠지 선뜻 다가서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잘 읽혔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을 가게 된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그 전 며칠 동안 자신의 행적을 얘기해주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명문 고등학교 펜시에서 퇴학당한 홀든은 반항아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홀든은 사실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아이이다. 영어나 글쓰기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여겨지고 엉뚱한 생각과 질문으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그게 서러워 펑펑 우는 순수한 아이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고 허세를 부리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거짓말을 늘어놓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솔직함이 드러나 미움을 받는다.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익명의 삶을 살고자 서부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홀든은 마지막으로 동생 피비를 찾아간다. 그런 그에게 피비는 묻는다.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고?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 이 되고 싶다고 한다.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원작엔 욕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아퍘다. 홀든이 너무 안되보였기 때문이다. 홀든이 공부를 못하고 좀 엉뚱한건 맞지만 아무도 홀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어주지 않기에 많이 안타까웠다. 홀든은 센트럴 파크의 연못이 얼면 거기에 살던 오리들이 어디로 갈까를 궁금해한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대답을 못해도 '글쎄, 어디로 갈까요?' 라고 같이 고민이라도 했으면 그 아이가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엉뚱하고 순수하며 나와 생각이 다른것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쁘다는 판단을 많이 한다. 그런 것을 인정해버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내 삶이 불편하고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편해지고 고통받지 않기 위해 애써 그런 것을 외면하고 보편타당성이 있는 규범을 내세우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홀든을 이해하지 않으려하고 그를 반항아로만 치부하는지도 모른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주기 보다  허구의 얘기로 더 진실되고 이해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소설이기에-J.D.샐린저의 - 난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더 넓은 곳으로 독서의 지평을 넓히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홀든은 동생 피비를 통해 아마 일상으로 돌아올 것 같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다. 홀든이 지키려는 호밀밭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호밀밭을 지키며 어른이 되고 더 단단해 질거라 믿는다.

 

-'집에서 잠자고 있는 책' 읽기 2

 

 

 

 

때때로 이런 것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처음 말했을 때 인정했는데도 똑같은 말을 두 번씩 하는 것 말이다. 그걸로도 모자라는지 선생은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했다.-p22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p32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p22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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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4-04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지인이 참 좋아하는 소설
이라고 해서 읽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

언제고 다시 읽어야지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0-04-04 10:45   좋아요 0 | URL
저도 되새기며 다시한번 읽고 싶어서 다른 출판사책을 구입했습니다^^
호밀밭이 의미하는게 무엇인지 더 생각해보고 싶기도 하구요^^

후애(厚愛) 2020-04-10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주말되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0-04-10 20: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후애님!
후애님께서도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