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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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길을 떠나는 이유와 방법들은 아주 많다. 변변한 가방 하나 없이 비닐 쇼핑백 두 개를 들고 집을 나서는 펠리시아에게도 여정(旅程)의 목적은 있다. 축복받기는커녕 적어도 허가된 것도 아닌 그녀의 떠남은, 낯선 곳에 도착하고도 또다시 800m, 40Km, 두 시간 거리의 도시들을 헤매는 것으로 결과가 예상된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 <펠리시아의 여정>은 처음에 펠리시아의 시각을 통해 세밀하고 주도면밀하게 배경이 묘사된다. 나열된 배경은, 이미지로 변해 머릿속에서 계속 영상으로 재생되는 것 같다. 그것은 어떤 자세한 설명보다 시대적 상황이나 펠리시아에게 놓인 현실을 더 잘 이해시켜준다. 그리고 소설의 중간부분부터 작가의 문장과 내용에 점점 빠져 소설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칠푼이’, ‘나사 빠진 인간으로 불리어지며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백 살이 다 된 증조할머니까지 돌보는 펠리시아는 순수한 소녀이다. 외모에 자신이 없고, 첫사랑인 남자에게 고백도 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접근한 조니 라이서트를 사랑하게 되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외롭고 힘들었던 그녀에게 누가 봐도 새파란 건달이며 교활한 그가 한 행동을 펠리시아는 사랑이라 여긴다. 그 어이없는 사랑과 믿음은 그가 있는 영국의 버밍엄 북부를 향해 그녀를 아일랜드의 집에서 떠나게 만든다. 펠리시아가 아는 건, 조니가 영국의 버밍엄 북부에 있는 한 도시에서, 잔디깎이를 만드는 공장의 부품창고에서 관리인으로 일한다는 그것 하나뿐이다. 무모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펠리시아는 출발한다.

 

힘듦은 지금 사는 곳에서 사람을 살게 하지 못하고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펠리시아뿐만 아니라 재키, 베스, 엘시 커빙턴, 샤론, 게이, 보비역시 그 힘듦으로부터 탈출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듀크 오브 웰링턴 로드 3번지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조용하고도 집요하게 달려드는 선량함과 도움으로 가장한 진짜 악의 모습들이다. 그것은 진실인 듯 보여도 거짓말투성이고, ‘힘듦에서 떠난 사람들이 덥석 잡을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먹이를 가지고 있다.

 

한 번씩 소설에 나오는 인물을 이해하기 힘든 때가 있다. 소설가 켄 리우종이 동물원서문에서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이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떠올렸던 생각과 똑같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다르고, 우리가 지닌 의식의 특질도 우주 양 끝의 두 별만큼이나 서로 다르다고 했다.(‘종이 동물원’, 켄 리우,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서문에서 인용) 우리는 생각과, 살아온 만큼의 배경지식이 다 다르므로 어떤 사람을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작가가 서술한 힐디치는 누구인지, 작가의 의도대로 내가 그를 이해했는지 궁금했다. 그가 나쁜 사람인지, 아니면 충분히 그에게도 어떤 정상 참작의 이유가 있는지 이 힐디치라는 인물에서 계속 멈추어 있어야 했다.

 

힐디치에 대해 어떤 평가와 단정을 내리려 할 때마다 윌리엄 트레버작가는 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하나씩 던져주며 우리들의 판단을 유보시킨다. 작가는 힐디치로 대변되는 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은 모호하고 혼란스럽고,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키워진 것일 수도 있다. 힐디치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그의 엄마는 아무 남자에게나 추파를 던지며, 그들을 집에 끌어들이는 여자이다. 자신이 꿈꾸던 군인의 모습도 신체적인 결함으로 이루지 못한다. 어쩌면 듀크 오브 웰링턴 로드 3번지는 그에게 외로움과 지켜지지 않는 약속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키워지고 점점 부풀려지는 내면의 불만들은 왜곡되고 뒤틀린 모습으로 외부로 향해간다. 힐디치가 우정이라 규정하며 행하는 것들은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집요하다. 갈 곳 없는 어린 소녀들의 약점을 이용해, 멀리서부터 촘촘히 거미줄을 쳐오며, 마지막엔 그들이 꼼짝할 수 없게 만든다.

 

힐디치는 펠리시아의 돈을 훔치며,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락시키고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영국에 대해 뼛속깊이 적대적인 감정만을 가지고 있는 펠리시아의 아버지는, 조니를 거부한다. ‘모임의 집광신도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따르며 같이 행동할 사람들만 받아들인다. 그녀가 사랑했던 그 건달은 끝내 그녀에게 주소를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조니 라이서트는 펠리시아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유가 있고, 그들 역시 힘들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쁜 사람은 나쁘다. 그들이 아이들을 떠나게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녀는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안다. 가을날 결혼식 신부 들러리도 아니고 자동차 뒷자석에서 담요를 뒤집어썼던 아이도 아니다. 한때 그녀의 것이던 순수함은 시간이 흐르며 이제 어리석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남아 있고, 상실을 경험한 예전의 그녀는 지금의 자신으로 이끈 사람이기에 소중하다. 또다른 아침, 눅눅한 밤을 보내고 맞는 화창한 아침에 길을 걸으며, 그녀는 자신을 감싸는 평온함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새로이 깃든 그 평온함을 기뻐한다. -p312]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펠리시아의 순수함은 결국 힐디치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노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펠리시아를 살리는 것인 동시에 죽이는 것이다.

 

캘리거리같은 광신도가 외치는 기도는 공허하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지상 낙원은 죽고 난 뒤에 갈 수 있는 곳이고, 현실에서는 사슴과 사자가 같이 뛰어놀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뭔가가 아주 조금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도 있는 이들에겐 먼 훗날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죽음으로, 노숙자의 삶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처음 읽은 윌리엄 트레버의 글에서 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힐디치는 흐릿하다. 그의 글을 계속 읽어나가며, 조금은 뚜렷한 힐디치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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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7-31 01:3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것참 <종이 동물원>도 읽어야하네요!! 😉 제가 요즘 꽂히는 주제가 계속 눈에 들어와 신기합니다ㅎㅎ페넬로페님 즐거운 주말 되시길요~♡♡

페넬로페 2021-07-31 08:24   좋아요 4 | URL
제가 생각하는 고민들과 미미님께서 생각하시는 주제가 비슷할듯 해요~~
비오는 주말이 좀 시원해지면 좋겠어요^^

페넬로페 2021-07-31 08:36   좋아요 5 | URL
날씨가 쨍쨍~~
비는 밤에만 오는건가봐요.
미미님, 더위 잘 이기는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1-07-31 01: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펠리시아 처럼 도시로 올라오는 순수한 영혼을 짓밞는 이들이 존재 한다는 것!최근에 읽은 명상 살인에 독일에서 온갖 범죄짓을 저지르는 일당등이 일자리를 찾아 독일로 밀입국한 소녀들에게 힐디치 같은 짓을 하고 이런 범죄를 은닉하고 변호해주는 변호사들로 넘쳐 난다고 ㅜ.ㅜ 이런 악인을 키운 사회의 법망이 너무 허술 합니다.

페넬로페 2021-07-31 08:28   좋아요 5 | URL
어찌 그런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 참 슬프고 암담합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의 모순이 점차 더 이 사회를 흔드는것 같아요 ㅠㅠ

바람돌이 2021-07-31 02: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종이동물원은 좋나요? 저는 뒤에 나온 어딘가 상상도 못할곳에 수많은 순록떼가 읽었는데 살짝 취향이 아니어서 제껴두었는데요. 그런데 켄 리우 하면 다들 종이동물원 얘기하시더라구요.

페넬로페 2021-07-31 08:30   좋아요 5 | URL
요즘 읽고 있는 책인데 쉽지는 않은것 같아요. 일단 다 읽고 글을 쓰도록 해보겠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1-07-31 07:3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읽을 책이라 줄거리는 조금 맛만 봤습니다.
<종이 동물원>저도 읽었는데 서문에 저런 말이 있었군요. 기억이...😟

이 소설은 힐디치라는 인물이 문제적인가보네요. 아 더욱 기대됩니다.

페넬로페 2021-07-31 08:33   좋아요 6 | URL
이 소설의 주인공이 분명 펠리시아인데 저에겐 이 힐디치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할 것이 더 많았어요. 이 인물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내릴수도 있는데 좀 더 많은 생각을 해볼수 있을것 같더라고요^^

Falstaff 2021-07-31 10:47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ㅋ 저도 다 읽고 독후감까지 써놓았습니다. 목요일에 올릴 계획이고요.
읽기 전에 많이 올라왔던 독자서평, 하나도 안 읽었습니다.
얼마나 잘한 일인지 말입니다. ㅋㅋㅋ 다 읽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전 힐디치, 이 양반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습죠. ㅋㅋㅋ (자랑!)

페넬로페 2021-07-31 13:04   좋아요 5 | URL
폴스타프님
네,저도 리뷰 쓰기 전에는 다른 분들이 쓴 리뷰 읽지 않았는데 이제 읽어보려합니다
목요일에 예고하신 리뷰, 기대합니다^^

han22598 2021-08-04 01:28   좋아요 1 | URL
저도 읽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1-07-31 10: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읽으셨군요😄 저에게 힐디치는 나쁜놈이지만 불쌍하다면 조니는 그냥 나쁜놈이었어요 ㅋ

페넬로페 2021-07-31 13:06   좋아요 4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의 엄마도 똑같았어요
펠리시아가 임신한줄 알면서도 어찌 그렇게 무책임한지 참 화가 났어요^^

서니데이 2021-08-01 00: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오늘부터 8월입니다.
8월엔 더 좋은 시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8-01 00:41   좋아요 5 | URL
벌써 8월이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아마 계속 무더울 것 같아요.
서니데이님, 8월 한달도 잘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mini74 2021-08-01 14: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종이 동물원의 서문 ㅠㅠ 저도 기억이 전혀 ㅠㅠ 힐디치편만 따로 장편소설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했었어요 ㅎㅎ 페널로페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페넬로페 2021-08-01 17:18   좋아요 1 | URL
책을 펼치면 처음부터 읽는 버릇이 있어서요~~저 서문에서 위로를 좀 받았어요. 펠리시아의 여정에서는 펠리시아가 주인공이지만 그 서사가 우리가 예상가능하잖아요. 그래서 힐디치에 대한 생각들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8-03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캘리거리가 외치는 종교가 전혀
펠리시아의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이 참...

누구를 위한 믿음이었는지 캘리
거리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악당 힐디치는 마지막 순간에 과
연 회개했을까요...

페넬로페 2021-08-03 19:10   좋아요 0 | URL
캘리거리가 저는 이 책에서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봤어요. 힐디치는 끝까지 자기연민과 자괴감때문에 회개하지 않았을것 같았어요~~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많이 쓰셨는데 다들 너무 훌륭하십니다^^
 
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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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있어 며칠 앓은 적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병원으로 바로 갔겠지만, 요즘은 열이 나면 병원 문턱에도 갈 수 없으니 일단 해열제로 버텨보기로 했다. 그런데 해열제를 먹어도 열은 내리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지속되었다. 혹시 암에 걸린 건 아닌지, 몸에 다른 지병이 시작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만으로도 많이 힘들고 두려웠다. 만약 내가 아프면 육체의 고통도 견뎌내기 힘들겠지만, 난 아직까지 죽는 것이 두렵다. 알려진 사후의 세계로 가는 것도 그렇고, 그런 세계가 없더라도 갑자기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이 허무하다. 시몬의 어머니인 프랑수아즈 여사의 말처럼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섭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아주 편안한 죽음이란 것이 인간에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누구나 겪어야 할 당연한 거지만, 죽음은 불안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에게 치명적인 것은 넘어지는 것이다. 특히 욕실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거동이 힘들어진다. 시몬의 어머니 역시 욕실에서 넘어져 2시간을 기어 겨우 전화기 있는 곳으로 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퇴골 골절인줄 알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암이 발견되었고, 수술한 후 고통스럽게 겨우 30일을 더 살고는 죽는다.

 

아주 편안한 죽음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30일간의 엄마의 병상일지와 더불어 엄마와 자신간의 애증의 관계와 추억, 딸이 바라본 엄마의 삶, 생명연장을 위한 연명치료의 불필요성 등이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다. 한국인의 정서로 봤을 때, 이 담담함은 얼핏 냉정하게 비춰질 수도 있지만 난 그것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지금 나에겐-이 책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것이 사실인 두 분의 노모가 있고, 딸아이가 한 명 있어서인지 보부아르의 표현이나 생각에 많이 공감되었다.

 

보부아르가 추억하고 판단하는 엄마의 모습은 별로 일관적이지 못하다. 고집스럽다 싶을 만큼 낙천적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신경질적이면서도 걱정이 많은 사람으로 표현된 그녀의 엄마는 딸에게 상처를 많이 준 사람이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점점 나빠지면서 그에 따른 보상을 딸에게 바랬다.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 당연히 그렇듯이 자식에게 집착한다. 두 딸이 친한 것도 싫어할 정도로 자신감도 없었다.

 

"내게는 권리가 있다"

이런 가혹한 말로 자식을 짜증나게 하고 얽어매었다(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부모로서 조금은 이러한 보상을 딸에게 원하기도 한다.) 보부아르는 엄마와의 갈등으로 일찌감치 집에서 나온다. 엄마와의 관계가 그렇게 계속 나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경제적으로 자식들에게 의지해야 했을 때, 시몬의 어머니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했다.

 

한 번씩, 나는 언니 두 명과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때 각자가 표현하는 엄마는 다 다르다. 그리고 엄마의 단점과 그녀에 대한 원망의 내용도 다르다. 엄마는 우리들에게 엄마의 모습으로만 각인되고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엄마를 본다. 여자로서의 엄마, 남편의 아내로서의 엄마는 잘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보부아르 역시 그럴 것이다. 엄마라는 인간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부아르가 추억하는 엄마의 모습과 행동에 대한 느낌은 시몬의 자의적 해석일 수밖에 없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p146]

 

보부아르는 자신의 엄마를 장례미사에서 호명되는 이름으로 다시 주체적으로 생각한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겸허해지고, 엄마의 투병과 죽음을 치르며 엄마와 화해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보부아르가 원하는 여성의 삶으로 살아주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영위해나갈 삶이 있고, 그것은 주체적인 것으로 인정받아야하는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치르는 과정에서 보부아르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고 그렇게 엄마와 화해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와 더불어 시간 역시 소멸한다. 그리고 나이 들어 갈수록 나의 과거는 점점 쪼그라든다. 그 결과, 내 나이 열 살 때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엄마는 나의 청소년 시절을 억압하던 적대적인 그 여자와 더 이상 구별되지 않기에 이른다.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 때면 나는 두 여자 모두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 -P148]

 

친정엄마가 당신의 수의를 미리 맞추어 두신건 거의 30년 전이다. 작년에 친정집이 이사를 했는데, 치매를 앓으시는 엄마는 당신의 수의를 가져왔는지 계속 물으신다. 인간이 죽고 나면 곧 모든 것이 타고 없어지는데 잠시 입을 그 옷이 뭐가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저승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꼭 믿으시기에 그러실 것이다. 난 가톨릭교도이지만 영생이나 천국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무조건 믿고 따라야하는 건 알지만 그냥 난 그렇다. 죽음이 두렵지만 죽은 후엔 모든 것이 소멸되었음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프랑수아즈 여사는 독실한 신자였지만 병상에 있을 때 병자성사를 거부한다. 마사 경본이나 십자고상, 묵주를 서랍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남들에게 신앙에 대한 의심도 받는다. 하지만 그녀에겐 종교가 삶의 버팀목이자 핵심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참된 가르침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위한 신앙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기계적이고 마음에도 없는 기도를 거부한 것이다. 내가 아는 자매님은 묵주를 돌리며 남을 험담한다. 같은 신앙인이지만 난 그런 모습에 질겁한다. 병원에서 지독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 뜻대로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솔직하지 못하다. 그냥 살려달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그것이 기도의 형식에 맞지 않으니 그녀는 그 거짓된 기도를 거부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오늘 하루를 살지 못했구나. 며칠을 버리게 된 셈이잖니.”라고 말하며 병원에서도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고, 하루를 충실히 보내려 한다. 죽음 앞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삶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죽기 전 하루라도 더 성실하고 열심히 살려는 집념이며, 생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병원.

육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지만 병원에 들어서면, 우리는 더 이상 주체적 인간이 될 수가 없다. 본의 아니게 성기를 드러내 보일 수도 있고, 화장실에 가지 못해 침대에서 배변을 해결할 수도 있다. 고통으로 인해 모든 것이 상관없어지고 그저 지금 고통이 없어지기를 바랄뿐이다. 인간적인 최소한의 체면조차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보부아르는 불필요한 생명연장을 강력하게 거부한다. 그것에 대한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이 이 책에는 무수히 많다. 그 문장들을 읽으며 난 슬펐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사는 것에 대한 신산함도 느꼈다. 어찌 그 가혹하고 모진 고통들이 몇 자의 글로 다 표현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의 두 노모는 예전에는 잘 하지 않으시던 말씀을 요즘 많이 하신다. 내가 전화를 걸 때나, 맛있는 음식을 해 드렸을 때, 항상, ‘전화해주어 고맙다.’, ‘너무 맛있게 먹었다’, ‘고맙다’, ‘고맙다’.....그렇게 나의 두 어머니는 나와 화해하고, 순수해지시고, 너무나도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저 그 분들에게 아주 편안한 죽음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장례식 예행연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던 셈이다. 불행한 점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이 일을 각기 혼자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엄마는 회복기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임종에 이르는 과정에 해당했던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엄마와 근본적으로 갈라져 있었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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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22 01:4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늙으신 어머님들이 고맙다라는 말을 더 자주 하시게 되는게 일반적인건가봐요. 저희 시어머님께서도 요즘 부쩍 그러시던데..... 친정어머니야 원래 그러셧던 분이지만요.
얼마전에 친정 어머니가 혹시 아프더라도 연명치료를 안하고 싶다며 저에게 어떻게 그거 신청하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친정아버지까지 같이 가서 해드렸어요. 하는김에 저도 하구요. 그날 기분이 참 야릇하더군요. 보부아르가 살던 시대의 어머니나 지금 여기 우리 세대의 어머니나 다들 비슷한 삶을 사셨던 분들이었을듯 해서 아마 이 책이 공감이 많이 갈 거 같아요. 저도 조만간 읽어야겠네요.

페넬로페 2021-07-22 10:00   좋아요 5 | URL
‘고맙다‘는 말을 하시는 어머니들의 옆모습을 뵈면 아이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저도 연명치료를 반대하는데 이 책에는 그 부분이 많이 나와 있어 공감했어요. 죽음이라는 것과 그와 연관된 것들을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듯 해요^^

새파랑 2021-07-22 09:06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아프신건 다 나은건가요?
전 종교가 없긴 하지만, 사후에 천국이 있다고 확신이 들더라도 그래도 사는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이런 편안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데 왠지 그럴때마다 슬퍼지더라구요 ㅜㅜ
그래서 오늘도 즐겁게 보내기로 😊

페넬로페 2021-07-22 10:05   좋아요 8 | URL
네, 새파랑님 말씀이 맞아요.
지금 현재 잘 사는게 정답인것 같아요. 누구나 편안한 죽음을 바라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는 사람이 더 많아 슬퍼요 ㅠㅠ
그저 오늘 하루 잘 보내기로 해요.
날씨가 덥네요
새파랑님.
건강 유의하세요^^

미미 2021-07-22 10:27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죽음은 사실 삶을 에워싸고 있는데 일상에서 대부분 그 점을 망각하고 살아가죠. 또 그래야 하고요. 그러면서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한 번씩 그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가 되기도 하니 인생은 참 놀랍습니다. 이 책 요즘 인기네요~♡ 저도 준비되어 있는데 저에겐 또 어떨지 궁금해요.😊

페넬로페 2021-07-22 11:34   좋아요 6 | URL
죽음에 대한 미미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실 잊고 사는 경우가 더 많은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엔 곁에 지금 어떤 탄생보다는 죽음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는것 같은데 그 죽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암담해요~~이 책 읽고난 후의 미미님의 느낌 정말 궁금합니다^^

2021-07-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2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1-07-23 05: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철 없을 때는 양육의 핑계로 나를 컨츄럴하는 존재로 엄마를 인식했었는데 말이죠 ㅠㅠ 엄마가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엄마와의 대화가 더 편해지고 관계가 좋아졌어요. 이제는 엄마의 삶과 인생이 잘 가꾸어지길 소망하게 되더라고요.

페넬로페 2021-07-23 09:55   좋아요 5 | URL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게 참 그렇죠. 저는 너무 늦게 엄마의 삶을 생각해본것이 후회가 되요. 그래서 더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데 사는게 바빠 잘 안되고 있어 아쉬워요^^

페크pek0501 2021-07-27 16: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요를 이미 눌렀었지만 좋아요 수가 49라니...
제가 도달해 보지 못한 숫자이옵니다. ^^**

페넬로페 2021-07-27 17:43   좋아요 4 | URL
아마 이 책이 죽음에 관한것이고 누구나 부모님 생각이 나서 공감했던것 같아요 ㅎㅎ
페크님, 좋아요 눌러 주셔서 감사해요^^

독서괭 2021-08-06 15: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다시 읽어도 멋진 리뷰예요^^

페넬로페 2021-08-06 18:03   좋아요 2 | URL
저의 글을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 2021-08-06 15: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멋진 리뷰 당선 추카 합니다

8월의 무더위 안무셔움 ^ㅅ^

페넬로페 2021-08-06 18:04   좋아요 3 | URL
네, 이런 기쁨으로 더위를 이길 수 있어 더 기분 좋은데요, ㅎㅎ
감사합니다**

mini74 2021-08-06 15: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저도 페넬로페님 글 읽고 이 책 찜했어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1-08-06 18:05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좋았어요^^

미미 2021-08-06 15: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2관왕 축하드려요~저도 이 책 샀어요!!(엄지척)♥

페넬로페 2021-08-06 18:0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미미님!
외동딸인 미미님의 감상 기다려집니다^^

scott 2021-08-06 18:23   좋아요 3 | URL
저도 기대 .🖐 합니다 ^ᆞ^

새파랑 2021-08-06 16: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완전 👍👍 축하축하 드려요~!!

페넬로페 2021-08-06 18:07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너무 감사드려요^^

그레이스 2021-08-06 17: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08-06 18:07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초딩 2021-08-06 17: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8-06 18:07   좋아요 3 | URL
초딩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08-06 18: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8-06 18:26   좋아요 3 | URL
thkang1001님,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8-06 20:39   좋아요 2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드려용^^

bookholic 2021-08-07 0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다음 달에도 기대하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08-07 10:06   좋아요 1 | URL
네, 감사드려요^^
열심히 읽겠습니다**

하나의책장 2021-08-14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8-14 09:25   좋아요 1 | URL
하나의책장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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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저씨의 옷장에 잘 개켜진 티셔츠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무라카미 하루키작가의 문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것을 보고, 읽고, 먹더라도 작가들이 쓴 글은 다르다. 약간의 위트와 담백함, 울림, 그리고 관조하는 인생을 노작가의 문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그런 건 이 책에 전혀 없다.

 

무라카미 T'라는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하루키가 어떤 계기로 티셔츠를 갖게 되었는가만 나열되어 있다. 서문에서 작가의 말대로 값싸고 재미있는 티셔츠가 눈에 띄면 이내 사게 된다고 했는데, 단지 그렇게 모인 티셔츠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티셔츠의 사진들이 있다. 사진이야 예술가인 사진작가가 찍으면 다 그럴싸하다. 이 책에 있는 티셔츠의 사진들도 하나하나 놓고 보면 멋지다. 하지만 이솝 우화에서 나와 있듯 아무리 재주를 잘 부리고 잘난척하는 원숭이도 그저 원숭이가 아닌가? 티셔츠도 그냥 티셔츠에 불과하다마치 화보집이나 사진집 같은 책의 재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서관의 희망 도서로 신청한 이 책을 읽는데 사실 5분 정도 걸렸다. 그 정도로 내용은 빈약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광팬으로서 그의 모든 것을 수집하는 독자에게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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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6 08: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넬로페님과 비슷한 생각이 들어요. 하루키는 에세이파랑 소설파로 나뉘거 같은데 전 소설파 ^^ 작가에 대한 애정 없이는 읽기 힘든 작품 같아요~전 그래도 나름 수집중 😆

페넬로페 2021-06-26 09:47   좋아요 5 | URL
저도 소설파인것 같아요~~
새파랑님 말씀처럼 작가에 대한 애정이 있는 분들은 이 책 좋아할것 같아요 티셔츠의 사진 만으로도 멋있더라고요^^

미미 2021-06-26 09:0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앗! 페넬로페님의 실망이 전해지네요!! 😭 게다가 5분이라니!저는 광팬까진 아니니 안보는걸로? 아님 도서관가서 5분만 볼까요. 그래도 구매하고 실망한것 보다는 훨 나은데요. 헤헷😳😊

페넬로페 2021-06-26 09:48   좋아요 5 | URL
제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봐요. 일단 도서관 가셔서 이 책 한 번 보시고 그때 구매하셔도 좋을듯 해요
사람마다 다 책 취향이 다르니까요^^

레삭매냐 2021-06-26 09:0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서 긴가민가하는 책들은
일단 도서관 희망도서로 갑니다.

마음에 안 드는 책들은 패쑤,
하지만 읽었는데 갠춘한 책들은
또 이미 읽었는데라는 이유로
잘 안 사게 되더라구요...

붕붕툐툐 2021-06-26 10:09   좋아요 3 | URL
ㅋㅋㅋ저의 딜레마와 정확히 일치하시네용!ㅎㅎ

페넬로페 2021-06-26 10:16   좋아요 5 | URL
저도 일단 애매한 첵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요^^
도서관 책은 웬만해서는 다 읽는데 그러다보니 제가 산 책은 집에 쌓이고 있다는게 문제예요^^

붕붕툐툐 2021-06-26 10: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 싶었지만‘의 반전에서 빵터졌습니다. 하루키가 벌써 노작가군요~ 제 머릿속에선 처음 알았을 때 그 모습 그대로여서..(상실의 시대가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라..ㅎㅎ) 세월의 흐름 느끼고 갑니다~ㅎㅎ

페넬로페 2021-06-26 10:21   좋아요 4 | URL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49년생이시니 우리나이로 벌써 73세가 되었어요. 근데 이 책에 나오는 티셔츠처럼 젊은 이미지로 저한테도 계속 남아 있어요^^

2021-06-26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6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1-06-26 13: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5분!!!! 중요한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1-06-26 14:07   좋아요 3 | URL
네~~ㅎㅎ^^

파이버 2021-06-27 14: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방금 예쁜 티셔츠 없나 인터넷 서핑을 하다 왔는데, ˝티셔츠도 그냥 티셔츠에 불과하다˝는 말씀이 너무 멋있는 명언처럼 느껴졌어요~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하셔서 그나마 다행^^;;

페넬로페 2021-06-27 15:08   좋아요 2 | URL
혹시 제 글로 파이버님의 예쁜 티셔츠 득템의 기회를 막은 건 아니겠죠 ㅎㅎ
티셔츠가 일단 편하다는 장점이 있는것 같아요.
도서관 희망도서 제도도 이래저래 장점이 많아 많이 애용하는 중이예요**
 
















<티끌 같은 나>

 

한 때, 대기업의 입사시험과 TV의 퀴즈 프로그램에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라는 단어가 단골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개혁이라는 단어로 소련의 변화를 온 세계에 알렸고, 그것의 다른 이름은 자유라고도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이없게 보리스 옐친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만다. 옐친은 소련연방을 해체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경제정책의 실패로 국민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었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소설집, ‘티끌 같은 나페레스트로이카이후 러시아에서 신흥부자가 늘어나고, 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자들의 삶엔 모든 것이 넘쳐나고 안나 카레니나처럼 할 일이 없어 무료함에 지배당한다. 자기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일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들의 삶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수가 되고 싶어 무작정 모스크바로 상경한 <티끌 같은 나>안젤라는 그 모든 것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지금의 안젤라는 노래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학 한 마리를 잡겠다며 남이 싸 놓은 똥을 치우고 끊임없이 닦고 청소하느라 세월을 낭비하고 있었다. -p75]

 

물론 돈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런 그녀가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킬리만자로의 눈이란 말이 좋아 그녀의 꿈도 킬리만자로의 눈처럼 빛나기를 바랬지만, 이 세상의 티끌 같은 그녀, 또는 우리들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쉽게 반짝이지 않는다.

 

소련 연방의 해체로 민족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여러 민족들이 어우려져 사는 곳에서 묵은 감정의 결과로 폭력이 발생하고,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야 하는 러시아 사람도 있다. 중편소설 <이유>에서 마리나 이바노브나 구시코는 다양한 민족이 모여서 사이좋고 평화롭게 사는 다민족 도시인 바쿠에서 산다. 교사인 그녀에겐 떠난 남편과 남매와 애인인 아제르바이잔 사람인 루스탐이 있다. 루스탐은 그 후 결혼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숨긴 채 여전히 마리나를 사랑한다. 그렇게, 그냥 그렇게 살아도 별로 나쁘지 않은 삶이었지만, 페레스트로이카 이후로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아르메니아인을 죽이고 러시아인들에게도 폭력을 가한다.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 애인을 떠나 모스크바로 온 마리나의 삶 역시 녹록치 않다. 그녀 역시 안젤라와 마찬가지로 부잣집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돈을 벌 수 밖에 없다. 자식들 역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다들 힘들게 산다. 돈을 가진 쪽은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골라 쓰면 그만이다. 스탈린의 폭정의 희생양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스탈린의 시대를 그리워한다.

 

[왜 다른 이들은 사람답게 사는데 그녀의 자식들만 그 모양일까? ...도대체 그녀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러시아 지식인들이 자주 하는 질문인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떠올랐다....클라스의 유해가 틸 오일렌슈피겔의 가슴을 두드리듯이 불공평이 그녀의 가슴을 두드렸다....그녀는 1917년 볼셰비키 당원들이 국민들을 혁명으로 내몬 이유를 이해했다. 당시 레닌은 약탈자들을 약탈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금 새로운 레닌이 나타나서 함께 힘을 합치자고 한다면 그녀가 선두에 설 것 같았다.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소련이여,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p269~275]

 

2편의 중편과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는 사건과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여러 소설들에 나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친근하다. 우리나라의 주말드라마나 일일연속극에서 다루어지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영상들의 내용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빅토리아 토카레바 작가의 말들이다. 인물들의 대화나 생각에 은근슬쩍 붙어있는 그 말들에서 이 소설의 매력이 발산된다. 작가의 설명으로, 소설속의 인물들이 도덕적이고 보편적인 것에서 벗어나더라도 이해된다. ‘위대한 개츠비의 첫 구절이 연상될 만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평가할 때 그 어떤 잣대를 들이밀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어떤 말엔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하고, 결국 한숨짓게 만들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를 권력에서 밀어낸 옐친에 대한 감정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다. 어느 날 주책없이 내 친구의 데이트에 끼인 적이 있다. 그때 내 친구의 남자 친구는, 남자들 사이에서 그냥 시시한 농담처럼 옐친 같은 놈이라는 욕을 한다고 그랬다. 그들은 그 후 결혼했고, 암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내 친구 곁에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그녀의 남편은 없었다. ‘옐친 같은 놈이라는 말을 가르쳐 준 그 사람은 옐친 같은 놈이 되어 있었다. 내 친구는 마라처럼 저세상에 가 있다.

 

<첫 번째 시도>의 라리사는 마라 앞에만 가면 한없이 약해지고, 초라해진다. 나 역시 그런 경우가 있다. 그래서 모질게 다짐하며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나면 이상하게 씁쓸함도 느껴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냥 죄책감도 들고 미안함도 있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 사는 모습들은 거의 비슷하다. 가진 것이 없어 티끌 같고 재만 남은 삶일지라도 안젤라와 마리나는 결국 자신의 삶을 산다. 남들이 뭐라 해도 사랑을 선택하고, 과거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 킬리만자로의 눈은 다시 빛날 수도, 영원히 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안티포바는 바다가 거대한 슬픔의 접시라고 상상해 보았다. 저마다 자기 숟가락을 들고 자기 몸의 슬픔을 떠 마시면 된다. 몸싸움은 없다. 자리도 충분하고 슬픔도 충분하다. 접시는 크기 때문이다.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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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6-19 23: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잘 쟁여 놓았습니다.

읽던 책들이 정리가 좀 되면
그 때 읽어야지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1-06-19 23:49   좋아요 6 | URL
서재 친구분들이 좋은책이라고 소개한 것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재미가 참 좋아요^^
레삭매냐님께서 올려주신 책들도 열심히 천천히 잘 따라가고 있어요~~
감사해요^^

미미 2021-06-19 23: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반짝반짝~♡ 고르바초프 머리에 마치 지도같은
점? 흉터? 있었잖아요. 인상적이었는데, 페넬로페님 리뷰보고 찾아보니 올해 90세네요. 이 작품 읽으면 그 시기의 일면도 읽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친구분 얘기 너무 슬퍼요. 힘들때 그러는거 아닌데ㅠㅇㅠ

페넬로페 2021-06-19 23:51   좋아요 5 | URL
네 맞아요~~ 머리에 있는 점이 트레이드 마크였죠.
이 책의 배경이 낯설지 않아 읽기에 좋았어요. 유머도 있어요~~
내친구를 생각하면 저도 항상 마음이 아파요 ㅠㅠ

새파랑 2021-06-20 0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페넬로페님 리뷰 읽으니 새롭네요 ㅎㅎ 한번 더 읽고 싶어지네요~!! 주인공들 성격이 너무 맘에 들었던 책이었어요. ˝엘친 같은 놈˝ 표현은 너무 재미있네요 😄

페넬로페 2021-06-20 00:07   좋아요 5 | URL
저도 재미있게 읽다가 또 살짝 울기도 했네요. 여자들 삶이 너무 힘들어보여서요. 그런것들 다 쓰려니 너무 양이 많아져 그냥 줄였어요~~
이 책이 뜬금없이 추억도 불러 주네요 ㅎㅎ

2021-06-20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0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1-06-20 08: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이 책 꼭 읽을 책으로 담아뒀네요. 사는게 너무 힘들어 스탈린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었군요. 러시아 여성들은 참 강인한거 같아요. 더욱 기대가 됩니다.

페넬로페 2021-06-20 09:08   좋아요 3 | URL
그당시에 러시아 경제 사정이 안좋아 아마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슬라브 민족들은 강인하고 알콜 중독자도 많고 정열적인거 같아요. 쿨캣님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han22598 2021-06-20 12:0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티끌 같고 재만 남은 삶일지라도 안젤라와 마리나는 결국 자신의 삶을 산다˝ ..이 문장을 보니. 요즘 저도 참 그런 생각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이 우리의 삶인 것 같은데. 그런 삶이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것 같다는..으흐흐흐. 그래서 조금 알 것 같아요. 하찮은 삶이어도 괜찮다는 거.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 이책은 이미 제 장바구니에 있더라고요 ㅋㅋ

페넬로페 2021-06-20 13:04   좋아요 3 | URL
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가 티끌 같은데, 그럴지라도 자기 길을 가며 자기 식대로 살아야 할것 같아요. 어렵지만 힘내서요 ㅎㅎ

초딩 2021-06-20 12: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비슷한 이야기에 정수를 수 놓을 것 같은 말이 있다니 몹시 저도 쟁여 놓고 싶네요. 표지가 예뻐서 몇 분 눈이 갔던 책인데 :-)
그리고 친구분은 안타깝고 그 남편은 참 밉네요 ㅜㅜ

페넬로페 2021-06-20 13:08   좋아요 4 | URL
그 말들에 피식 웃고 안타까워 한숨짓곤 했어요. 그나저나 친구의 남편은 지금 아들래미 데리고 살고 있을텐데 잘 있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다락방 2021-06-26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취향이란 것이 있어 저마다 좋고 싫은 책이 갈리긴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저를 포함해서 다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리뷰 잘 읽었어요, 페넬로페 님. 페넬로페 님 글은 엄청 지적이에요. 전부터 그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

페넬로페 2021-06-26 13:52   좋아요 0 | URL
정말 모두다 이 책을 좋아하시는것 같아요. ‘티끌 같은 나‘라는 제목도 좋구요. 오늘 다락방님의 말씀에 너무 기분이 좋아요 ㅎㅎ
매번 글 쓸때 글쓰기 힘의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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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는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난 후,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신은 그들에게 복을 내렸고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참 좋았다. 창조주는 자신이 만든 것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자연적이고 신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긴 생명의 창조는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육신에서 질병을 추방하고, 그 무엇보다 폭력적인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영원히 해방시키고자 생명 창조의 연구를 시작했고,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야말로 이상적인 목표였다. 내가 최초로 돌파해 어두운 세상에 폭포수처럼 빛이 흘러들게 만들었기에. 새로운 종()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 헤아릴 수도 없는 행복하고 탁월한 본성들이 내 대에 탄생하리라. 나만큼 자식의 감사를 받아 마땅한 아버지는 이 세상에 다시없으리라.] -p66

 

무수한 좌절과 고단한 작업의 연속이었지만, 멈출 줄 모르는 열정으로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무한한 수고와 정성을 들여 빚어낸 결과물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괴물이었다.

 

[사지는 비율을 맞추어 제작되었고, 생김생김 역시 아름다운 것으로 선택했다. 아름다움이라니! 하느님, 맙소사! 그 누런 살갗은 그 아래 비치는 근육과 혈관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발은 출렁거렸고 이빨은 진주처럼 희었지만, 이런 화려한 외모는 허여멀건 눈구멍과 별로 색깔 차이가 없는 희번득거리는 두 눈,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 그리고 일자로 다문 시커먼 입술과 대조되어 오히려 더 끔찍해 보일 뿐이었다.] -p71~72

 

예상과 달리 괴물처럼 생긴 것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은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줄행랑을 친다. 그에게 남은 건 후회와 회한, 괴물에 대한 저주뿐이었다. 창조자로서의 사랑과 책임은 끝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메리 셸리가 19세에 쓴 놀라운 소설, <프랑켄슈타인>3(월턴,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화자로 서술되지만,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반목과 복수, 그에 따른 심리적인 변화의 자세한 묘사이다. 또한 프랑켄슈타인과 펠릭스 가족이 보여주는 지극한 가족 간의 사랑과, 그에 반해 철저히 혼자 고립되고 공감 받지 못한 괴물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고하고 추론하는 동물로 창조되어진 괴물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공감 받고 그들과 유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끔찍하게 생겼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인간들과 창조주에게까지 소외되는 그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복수 3부작에서, 오레스테스에게는 복수에 대한 당위성이 있다. 자신의 아버지인 아가멤논을 죽인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처음에 그는 갈등하지만 행한자는 반드시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우스의 법칙이기에라고 말하며, 복수를 결심하고, 그들을 죽인다. 그 행위가 오레스테스에게는 정당했지만 그는 복수에 대한 복수로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딜레마에 빠진다. 정작 나쁜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있을 때, 과연 그 사람의 분노와 고통은 어디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만약 그 분노의 표출이 폭력이나 살인으로 이어진다면 그 순간 그도 가해자가 되며, 그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생기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에서의 괴물역시 자신의 분노로 인해 여러 무고한 사람을 죽인다. 탄생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창조주로 인해 그는 진짜 괴물이 된다. 결국 괴물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그 누구도 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끝가지 괴물의 이름이 없다. 그것은 괴물을 만들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프랑켄슈타인 역시 괴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비겁하고, 악랄한 괴물의 다른 이름이다.

 

[아담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기존의 어떤 존재와도 무관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그의 상황은 모든 면에서 나와 달랐다. 신의 손에서 나온 아담은 완벽한 피조물이었다. 조물주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 행복하고 번영을 누리는 존재였다. -p173

 

나는 혼자였다. 아담이 조물주에게 했던 청원이 기억났다. 그러나 내 조물주는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나를 저버렸고, 억울한 심정으로 나는 그를 저주했다.] -p176

 

과학소설로도 분류되는 <프랑켄슈타인>이지만 정작 과학적인 부분에서는 내용의 흐름에 미흡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이 소설이 주는 강력한 메시지만으로도 그 모자란 부분들은 상쇄된다. 18세기, 과학이 빠르게 발달하는 현실에서 그저 지루한 우기의 밤을 흥미롭게 해줄 괴담을 하나씩 창작하기로 한 데서 시작한 이 소설이 먼 훗날, 후대의 사람들의 현실과 당면한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사실을 정작 작가, 메리 셸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울분을 토하는 괴물의 말은 울림이 크다

그에게 친절과 연민, 공감만 주었더라면....

 

[그런데 이것이 부당하지 않은가? 전 인류가 내게 죄를 지었는데, 나만 유일한 범죄자라는 멍에를 써야 하는가?]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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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12 00:0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마어마한 소설이죠? 저도 몇 년전에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어떤 분야나 천재는 있나봅니다. 이런 작품을 19 세에 쓰다뇨!! ㅠㅠ

페넬로페 2021-06-12 00:11   좋아요 5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소설 읽으며 얼마나 생각할 것들이 많았는지요^^
리뷰에 거의 다 못 쓴것 같아요^^

미미 2021-06-12 00:0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스토리는 다르지만 저에겐 자꾸만 폭풍의 언덕이 떠올랐던^^*

페넬로페 2021-06-12 00:13   좋아요 5 | URL
아! 그래요?
얼른 폭풍의 언덕도 읽어봐야겠어요~~
전혀 상상이 안가는데 너무 흥미롭네요^^

scott 2021-06-12 00:25   좋아요 5 | URL
저도!🖐
에밀 브론테의
천재의 광기
시대를 앞선 필력을 느꼈삼 3333

scott 2021-06-12 00: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저도 이책 재독 할려고
꺼내 놨는뎅 ㅎㅎㅎ

ヽ(๑╹▽╹๑)ノ

페넬로페 2021-06-12 00:55   좋아요 5 | URL
아! 그러셨군요~~
기대되네요^^

bookholic 2021-06-12 07: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메리 셸리가 불우한 삶을 살지 않았다면 더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을 텐데, 안타까워요...

페넬로페 2021-06-12 09:15   좋아요 5 | URL
네, 메리 셸리가 독학으로 공부해 저 정도의 글을 썼다는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 시대의 여성들은 왜그리 힘들게 살았는지 안타까워요**

새파랑 2021-06-12 07: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뷰랑 댓글보면 안읽을수 없는 책이군요. 장바구니에 있는데 왜 안샀는지 후회가 되네요. 이번 주말에 서점가야 겠어요 ^^ (언제는 안간것처럼 ㅋ)

페넬로페 2021-06-12 09:17   좋아요 5 | URL
새파랑님께서는 아마 이 책을 금방 읽으실것 같아요~~서점 가셔서 좋은 책 많이 만나고 주말 잘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06-12 09:27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로 프로메테우스와 니체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죠?!
과학보다는 철학으로 풀어내는 게 맞을 듯요.
현대지성사에서는 이 책 표지그림으로 아놀드 뵈클린의 <죽음의 섬>을 사용하고 있어요.
의미가 무엇일까를 한참 생각했어요...!
생각한 의미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페넬로페 2021-06-12 10:22   좋아요 5 | URL
이 소설의 좋은 점이 아주 많은것으로의 확장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일거예요.과학으로 출발해 철학으로의 사유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들까지 다 아우를 수 있거든요^^이 책을 읽을때 사람마다 각자의 관점에서 자신이 가장 관심있는 부분이 제일 인상 깊을것 같아요^^
그 모든것이 다 철학적인 접근일듯 해요~~

coolcat329 2021-06-12 09: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을 올해는 꼭 읽어아겠습니다. 미래를 예측한 소설

페넬로페 2021-06-12 10:25   좋아요 7 | URL
이 책은 가독성도 좋아요^^
소설의 짜임새는 조금 허술할수 있어도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저는 좋았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6-12 10: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기억이 새록새록. 저는 어찌나 분노해 읽었는지 몰라요. 이 개~~프랑켄슈타인 하면서요^^;; 메리 셸리는 몰랐겠죠. 이 소설이 후대에 얼마나 큰 나비 효과를 부를지를요. 고전 중 고전이고 영원히 남을 소설이라 봅니다. 마지막 말씀. 공감 백퍼. 친절. 연민. 공감.

페넬로페 2021-06-12 12:02   좋아요 5 | URL
정말 그렇죠! 저도 엄청 열받았어요~~한 번이라도 책임을 가지고 자신이 창조한것을 보살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정말 이해가 안가더라고요^^

바람돌이 2021-06-12 13: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2부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것에 저는 속이 시원하더라구요. ^^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도 어쩌면 프랑켄슈타인의 변주인 것 같은데 거기엔 다섯째 아이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잔인한 폭력성을 더 부각 시킨다는 차이는 있지만요.

페넬로페 2021-06-12 14:19   좋아요 5 | URL
네, 저도 그랬습니다. 2권과 함께 마지막 괴물의 말도 인상적이더라고요. 도리스 레싱의 소설은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다섯째 아이>도 기회되면 읽어 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1-06-12 15: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에게 친절과 연민, 공감만 주었더라면....˝ - 쾅쾅... 제 가슴에 꽂히는 말이네요.

여러 책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음은 알라딘 서재의 장점... 이 장점을 저는 잘 활용하고 있고요. ㅋㅋ



페넬로페 2021-06-12 18:01   좋아요 5 | URL
정말 똑같은 책을 읽어도 그 감상이 다 다르죠.
그래서 저도 이 서재가 너무 좋아요^^

붕붕툐툐 2021-06-13 00: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며 괴물이 불쌍해서.. 생긴 것만으로 판단하고 치부해 버리는 이 사회에 커다란 경종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저 조차도 거기서 완전 자유롭지 못하다는게 함정.. 이 책 정말 좋았어요~👍

페넬로페 2021-06-13 09:16   좋아요 4 | URL
툐툐님 말씀처럼 단지 생긴것만으로 그 어떤 것들도 고려하지 않고 괴물로 취급해버리는 것이 참 안타까웠어요. 책에서 항상, 매번 많이 배워요

서니데이 2021-06-18 2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영국 작가가 쓴 만들어진 괴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고대그리스시대 어느 집안의 비극을 듣는 것도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6-18 23:15   좋아요 4 | URL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비극과 인간들의 슬픔과 고난은 항상 있어온 것 같아요.
서니데이님, 즐거운 금욜밤입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1-07-07 16: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 축!!
프랑켄슈타인이 선물 주쉼 ^ㅅ^

새파랑 2021-07-07 16:38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 리뷰 보고 이 책 읽었어요 ^^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1-07-07 23:2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정말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감사를 보내야겠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07 16: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페넬로페 2021-07-07 23:28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당♡♡

mini74 2021-07-07 16: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07-07 23:29   좋아요 2 | URL
미니님, 감사해요♡♡

서니데이 2021-07-07 16: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7-07 23:30   좋아요 4 | URL
서니데이님, 항상 제 서재에 오셔서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미미 2021-07-07 18: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당선 축하드려요!!^0^*(엄지척,하트뿅뿅)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7-07 23:30   좋아요 3 | URL
미미님, 고맙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7-07 18: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지두 축하드려요. ~~~~ 바쁜일 끝나셨다니 다시 리뷰 올라오겠네요^^

페넬로페 2021-07-07 23:31   좋아요 3 | URL
행복한 책읽기님!
감사해요~~
이제 열심히 책 읽겠습니다^^

초딩 2021-07-07 20: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기쁜 날이네요~

페넬로페 2021-07-07 23:32   좋아요 4 | URL
초딩님, 감사해요^^
정말 기쁘네요 ㅎㅎ

bookholic 2021-07-08 04: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소설로 당선되셔서 더욱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7-08 09:34   좋아요 2 | URL
북홀릭님, 감사합니다. 이 명작을 제가 너무 늦게 읽은 것 같아요. ㅎㅎ

독서괭 2021-07-08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7-08 14:29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