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만화입니다. 

제가 볼 땐 아주 무섭습니다.^^;;


어린이,노약자,심장약한사람이

              보는것을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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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 무명옷을 입었으나 윗도리는 없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신발은 신지 않았고 맨발로 돌아다닌다. - 더벅머리에 주근깨가 난 넓적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살찐 몸을 가지고 있다. - 항상 침을 흘리고 다니며, 밥을 먹을 때 눈물을 흘리곤 한다. 

특징 
- 매우 왕성한 식탐을 보인다. -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다만 사람들의 식욕을 왕성하게 하는 정도이다. 

출몰지역 
전국적이다. 

배경설화 
이 귀신은 이승에서 거지처럼 음식을 빌어먹다가 죽어서 된 것이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굶어 죽은 사람의 혼령이 귀신으로 화한 것인데, 이들은 악행을 하지는 않고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숙주가 된 사람이 계속해서 허기를 느끼게 하고 식욕을 왕성하게 하는 행동을 한다. 이들은 아귀(餓鬼)와는 성격이 다른데, 저승에서 악행의 결과로 쫓겨나 구천을 떠돌며 먹을 것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아귀와 구걸귀(求乞鬼)는 생긴 모양도 다른데, 아귀들이 보통 비쩍 마른 형상임에 비해 체구가 비대하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숙주의 식욕을 돋구어 배가 불러 더 이상 식욕을 느끼지 못할 때 까지 먹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들의 한이 풀려 숙주의 몸에서 떠나게 된다. 

기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구걸귀처럼 욕심이 지나침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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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애달픈 개비거리

 

엄정면 추평리「가래산」서쪽에「개비거리」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조말엽 이곳 가래올」마을에 방씨성을 가진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농부의 집에서는 유난히 짐승을 많이 기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집에는 소는 물론 개, 닭 같은 동물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특히 검은 개는 방씨를 잘 따르고 방씨는 그 개를 유난히 사랑했다

 

그래서 주인이 들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동구밖 까지 마중도 나오고 아침에 들로 나 갈 때면 밭까지 배웅까지도 하는 개였다.

어느해 봄날 방씨는 이웃마을 잔치집에 갔다가 술을 잔뜩 마시고 기분 좋게 고갯길을 돌아오고 있었는데 주인을 마중이나 나온 듯이 검은 개가 어디서 보고 쫓아왔다

 

방씨는 술김에 하도 반가와서 개와 같이 앉아서 쓰다듬어 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방씨는 술이 좀 과했던지 누워서 눈을 감자 마자 가벼운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개도 주인 옆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산 기슭에 바싹 마른 잔디밭에 어디서부터 번진 불길이 방씨쪽으로 봄바람을 타고 치닫고 있었다. 

개는 앞발로 방씨를 깨우며 짖어댔으나 술이 워낙 과한듯 아무것도 모르고 여전히 코만 골고 있었다.

 

그러자 불길은 달아오고 있었는데 개는 산을 내려가「원곡천」냇물로 뛰어들어 털을 적시더니 산으로 뛰어가서 방씨 옆으로 오는 불길을 막느라고 대골대골 굴러댔다. 

물기가 마르자 또 다시 적시어 가지고 올라와서 같은 행동으로 불을 끄고 있었다. 

취중에도 불길에 잠이 깨인듯 눈을 뜬 방씨는 깜짝 놀랐다. 

사방은 불꽃이요, 검은 개는 자기 옷에 엉겨 붙은 불을 끄느라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부벼대고 있는 것이었다.

 

방씨는 옷에 불 붇기 직전 그 장소를 뛰쳐 나왔다. 그리고 개를 불렀으나 개는 불 속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개가 자기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것을 안 방씨는 개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명주 한필을 준비하고 석수를 찾아 비석에다 방씨네 충견의 무덤이라는 글씨를 새겨서「가래산」기슭에다 무덤을 만들어 주고 비석도 세워 주었 다고 한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그 무덤도 비도 없어졌으나 충견의 이야기와「개비거리」란 지명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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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네 많던 계명산

 

충주시 북방에 우뚝 솟은 775m의 거산이 있는데 계명산이라고 부른다. 원명은 오동산, 심항산 등으로 불리워 왔다.

 

충주가 삼국시대 백제 영토로 있을 때였다. 왕족은 자칭하는 성주가 마고성의 성주도 겸하며 충주읍성(예성) 내관과의 왕래가 잦았다. 그 당시 심항산 기슭에 지네가 많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고성주의 딸이 심항산 밑에 지나가다가 지네에게 물린 일이 있었다. 지네독으로 몸이 부어 오르며 통증이 심하여 졌으므로 시종들을 시켜 원근에 있는 의생들을 불러 갖은 약을 써 봤으나 날이 갈수록 악화가 되더니 마침내는 죽고 말았다.

 

그날부터 성주는 관민들에게 지네를 모두 잡아치우라고 퇴치령을 내렸다. 그렇지만 지네는 근절되지 않고 그 피해는 날로 더해갔다. 그러므로 성주는 이제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산신의 힘을 빌리기로 하였다.

 

그래서 심항산마루에 제단을 설치하고 성주 스스로 매일 정심기도를 올렸다. 이렇게 치성을 다하여 지네퇴치에 부심을 하던 어느날 밤 꿈에 용두백발을 한 노선이 나타나서「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많은 닭을 산에다 방목하라. 그러면 근절시킬 수 있을 것이다.」하고 일러주고 사라져 버렸다.

 

성주가 그 노선이 시키는대로 많은 닭을 방목하니 과연 지네가 근절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지네가 번성할까 두려워 계속 닭을 놓아 기르니 이 산의 곳곳에 닭이 밟지않은 데가 없다하여 계족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풍수설에 의하면 충주에 큰 부자가 안나는 것은 계족산이 있어 닭발의 형상이고 이름조차 계족이니 분산을 뜻한 이름이라고 하므로 충주지역 인사들의 의견과 충주시 의회를 거쳐 1958년에 여명을 알린다는 뜻으로 계명산이라고 개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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