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만찬회
신진오.전건우 지음 / 텍스티(TXTY)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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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르가 '미스터리 호러'일 것이다. 어릴 때는 '내 다리 내놔라~'하는 대사 하나만으로도 더운 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섬뜩한 공포에 시달렸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공포에 무뎌져 갔다.

그랬는데…그랬었는데… 이번에 정말 제대로 된 공포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호러만찬회』.

이 책은 신진오 작가님의 단편 4편과 전건우 작가님의 단편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님의 죽음 이후 오랜만에 만난 형이 밝힌 어린 시절 이야기로부터 뜻밖의 무서운 진실을 알게 되는 「헤이, 마몬스」, 엄마가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사이 너무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엄마가 출입을 금한 안방에 들어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무서운 진실 「얼룩」, 친구들과 함께 자극적 재미를 찾아 유행하는 챌린지에 도전했다가 목숨을 위협받는 위기에 처하는 「딩동 챌린지」, 성적을 중시하는 엄마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행하는 주술을 행했다가 거기에 빠져들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여고생 이야기 「네발 달린 짐승」.

우연히 젊은 무당이 하는 하숙집에 들어갔다가 목숨을 위협받는 남자의 이야기 「신딸」, 하나뿐이었던 친구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여자의 최후 「추락」, 연쇄 실종사건에 배치되면서 실종자들 간의 연관성을 조사하던 중 본인도 사건에 연루되는 여형사 이야기 「만성활력」, 귀신불이 돌아다닌다고 알려진 집안 선산과 그 선산을 지킬 의무를 부여받은 집안 남자들과 선산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 「반딧불의 산」 등 어느 것 하나 섬뜩하지 않은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는 단편이라는 장점을 잘 살려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면서 진행 속도가 빨랐고, 작가님들의 매끄럽고 가독성 있는 문체는 단편 하나가 끝나도 숨을 고르며 쉬어갈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다음 이야기로 끌어들여 빠져들게 할 만큼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야기의 소재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기에, 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실제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며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각 단편의 마지막에는 QR코드가 있어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바로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테이스츠 오브 호러》의 각 이야기로 연결되어 원작을 읽어볼 수 있다.

나는 소설을 전부 읽은 다음 카카오페이지의 《테이스츠 오브 호러》를 봤는데, 이야기들이 소설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달라 소설과 웹툰을 비교하며 읽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재미였다. '우와, 이 이야기가 이렇게 각색이 되었다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다른 이야기들 전부 무서웠지만 특히 개인적으로 「얼룩」과 「신딸」을 통해 끈끈하면서도 섬뜩하고 소름 끼치며 제대로 된 호러를 맛보았다. 웹툰 원작으로도 이 두 이야기가 정말 무시무시하고 끔찍할 정도로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편 「얼룩」같은 경우는 섬찟함과 동시에 가슴을 울리는 먹먹함도 주는 이야기였다.

8가지 색다른 호러의 늪에 푹 빠져 허우적대며 심장이 말라붙을 정도로 짜릿한 무서움을 실컷 경험한 시간이었다. 내 심장 돌리도~!!! 😱

올여름 무더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텍스티의 『호러만찬회』와 함께 하길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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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먼 멜빌 지음, 박경서 옮김 / 새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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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월스트리트에 사무소가 있는 형평법법원 주사의 일을 겸한 부동산양도 전문 및 소유권 관련 변호사이다.

그는 터키와 니퍼스라는 필경사 둘과 심부름과 청소를 겸하며 틈틈이 법률 공부를 배우는 열두 살 가량의 소년 급사 진저넛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터키는 변호사와 비슷한 예순 살에 가까운 사람으로 매일 낮 12시를 기점으로 업무 능력에 심각한 장애를 보였고 토요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그래서 변호사는 12시가 지나면 근무를 하지 말 것을 권했으나 터키는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 노년을 존중해 달라며 동료 의식을 내세워 계속 근무할 것을 호소했다.

니퍼스는 필경사임에도 법률 문서 초안 작성 같은 전문적 일에 나서거나, 때로는 지역 정치꾼 행세를 하고, 이따금 법원에도 들락거리며 약간의 거래를 하는 등 야심 있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소화불량에 따른 흥분과 신경과민증을 겪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터키와 니퍼스의 발작은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교대로 일어나 업무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업무가 바빠지며 필경사를 더 고용할 필요가 생겼다. 그때 신문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바로 바틀비였다. 그는 예의가 바르고 외로워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수수한 용모의 젊은이였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마음에 들어 하여 고용했고, 그에게 자질구레한 일들을 쉽게 시키기 위해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정해주었다.


바틀비는 처음엔 밤낮으로 아무 말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아주 많이 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기 위해 변호사가 바틀비를 불렀을 때 바틀비는 변호사의 예상과는 달리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부드럽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놀란 변호사가 몇 번이나 다시 업무를 지시했으나 바틀비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바틀비가 필사한 진술을 직원들과 함께 대조하고자 했으나 직원들 중 바틀비는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다. 여러 번의 채근 후에 돌아온 대답은,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바틀비는 대체 왜 거부하는 것일까?



「필경사 바틀비」는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이 쓴 최초의 단편으로 두 차례에 걸쳐 잡지에 연재되었다.

소설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스트리트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화자로 등장하여 그가 알고 있는 필경사 바틀비의 생애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을 토대로 전개된다.


바틀비는 고용된 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어느 순간 변호사의 업무 지시를 단호히 전부 거절한다. 그리하여 기계적으로 아무 말 없이 일을 많이 했을 땐 그를 신뢰하고 좋아했던 고용주 변호사는 그를 철저히 배제하고 고립시킨다. 바틀비의 노동 거부는 그를 불능의 쓸모없는 사람으로 분류되게 하였고, 모든 것에서 소외된 바틀비는 결국은 무기력하게 죽음에 이른다.


바틀비는 왜 업무 지시를 거부했을까?

바틀비의 행위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거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읽는 내내 공감이 가지 않는 행위들이었다. 의미와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을 앞으로 돌아가 읽었지만 역시나….

드는 생각은 현실에서 만약 채용한지 사흘 만에 업무를 계속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해고되고 심지어는 소송까지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거기다가 무단으로 사무실 기거라니. 자본가 계급의 하수인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 인물이라는 변호사가 아무리 봐도 보살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너무 저항감 없이 자본주의에 찌들고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나 보다.


이 책에는 「필경사 바틀비」 외에 단편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와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이 실려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세 작품들은 자본주의의 비극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단편이라 호기롭게 읽어 나갔으나 상징주의 문학의 대표인 『모비 딕』보다도 의미를 부여하기 더 난해한 작품들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이 작품에 대해 토론해 보고 의미를 찾아가고 싶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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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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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일곱 살의 평범한 샐러리맨 스즈키 하지메는 특별히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20여 년간 만들어 놓은 평범하면서도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전부이고 행복인 사내였다. 특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하루카의 행복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리라 여겼던 스즈키의 행복한 일상은 어느 한순간 무너져 내리고 만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도착한 스즈키는 여느 때와 똑같지 않은 불 꺼진 캄캄한 자신의 집 모습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루카가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는 아내 유코의 메모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길로 병원에 달려간 스즈키는 심하게 폭행당한 처참한 몰골의 딸 하루카를 봤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스즈키에게 담당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하루카의 부상이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고, 폭행 가해자의 학교 교감과 선생이라는 남자들 역시 하루카가 하교 후 폭행 가해자를 따라갔다가 사랑싸움이 일어났던 것뿐이라며, 가해자는 미래가 창창한 학생이니 문제를 확대시켜 앞길을 망치지 말라며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또한 사과를 하는 가해 학생 이시하라에게서도 진정한 반성의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 후 겨우 일상의 모습만 유지하고 있던 스즈키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일이 발생했다. 점심시간 식사를 하러 간 가게에서 우연히 이시하라가 3연승에 도전하는 고교 복싱 챔피언이라는 뉴스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온 이시하라는 운동밖에 모르는 순진무구한 학생을 연기하고 있었다.

스즈키는 분노를 느끼고 이시하라를 단죄하리라 결심했다.


다음날 스즈키는 즉시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부엌에서 칼을 하나 챙겨들고 이시하라의 학교로 찾아갔던 것이다. 한참을 헤매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학교에서 스즈키는 우연히 한무리의 남학생들과 맞닥뜨렸고, 예상치 않은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그들을 향해 칼을 꺼내들며 이시하라를 데려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에게 제압당하며 기절한 스즈키는 정신을 차린 후 자신이 학교를 잘못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고, 이시하라를 찾는 이유를 묻는 남학생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남학생들은 딸을 위해 살인이 아닌 진정한 복수를 하지 않겠냐며, 스즈키에게 그들의 무리 중에서 싸움의 달인이라는 박순신에게 트레이닝을 받을 것을 제안하는데….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교포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총련계 초·중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스즈키의 스승이 되는 학생 박순신은 한국인이 아닌 재일조선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야기는 문체가 간결하여 가독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7월 9일부터 9월 1일까지 약 두 달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 날짜별로 전개되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쉬웠다.



소설은 평범하고 어찌 보면 무기력하기까지 한 중년 가장 스즈키가 딸의 폭행 사건을 계기로 우연히 만난 『레벌루션 No.3』에 나왔던 '더 좀비스'의 도움을 받아 변화하고 성장하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고 복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폭력과 복수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청소년 소설이라 그런지 너무 무겁거나 암울하지 않은, 어찌 보면 다소 유쾌하고 통쾌한 분위기와 전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때론 유머러스한 장면 묘사와 대사가 등장해 정말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그런데 너무 의아했던 것이 폭력 사건인데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아무리 무기력한 가장이라도 딸의 몰골을 보고도 그것을 그냥 아이들 사이의 흔히 있는 다툼의 결과로 받아들여 그냥 넘어가려 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경찰이 뇌물을 받아 사건을 허술하게 무마하려 해서 아빠가 복수에 나선다는 전개였으면 조금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긴 그렇게 되었다면 이야기가 좀 더 무거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스즈키가 싸움의 고수 박순신의 도움을 받아 단기간에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성장과 변화는 스즈키뿐만 아니라 스즈키를 훈련시키는 박순신에게도 일어난다. 스즈키와 함께 하는 동안 재일조선인으로 받았을 차별 때문에 날을 세우던 박순신은 마음을 여는 긍정적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동안 삼류 학교에 다닌다지만 '더 좀비스' 자체는 누구보다 일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갈 만큼 통쾌한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짜릿하고 재미있는 소설인 동시에 유쾌한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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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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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화려한 축제 분위기의 도쿄의 밤.

경시청 도쓰카 경찰서의 분위기는 한 통의 신고 전화로 소란해졌다. 바로 경찰서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빈 건물 1층에서 50세에서 60세로 추정되는 여자가 죽어 있다는 신고였다. 여자는 누군가 옷을 벗기다 만 것 같았고 두부엔 타박상이 있었다. 여자의 신원을 알아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쇼핑카트와 담요로 보아 가출인이거나 노숙인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수사본부가 설치되며 수사는 도쓰카 경찰서의 신입 형사 다도코로 가쿠토와 순간 기억 능력을 가진 경시청 수사 1과 베테랑 괴짜 형사 미쓰야 슈헤이가 파트너가 되어 담당하게 된다. 시신의 신원을 알아낼 길 없어 잠시 막혔던 수사는 시신의 지문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는 것이 확인되며 활기를 띠게 되었다.


시신의 지문은 1년 4개월 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의 서류 가방에서 채취한 지문 중 하나와 일치했고, 가쿠토와 미쓰야는 관할이 아님에도 탐문 수사 차 히가시야마의 집에 방문한다. 미망인 히가시야마 리사는 여전히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듯 보였지만, 집안에서 풍기는 미묘한 위화감을 캐치한 미쓰야는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밝혀낸다.

거기다 요시하루와 죽은 노숙인 여자 사이의 접점이 발견되며 그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요시하루 살인사건과 노숙인 여자 살인사건의 충격적인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는데….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은 노숙인 마쓰나미 이쿠코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중에 드러나는 또 다른 살인 사건의 진실과 치정, 더러운 욕망, 질투, 거짓 등 인간 본연에 있을 수 있는 추악한 민낯과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연이어 드러나는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악연과 그들이 감추고자 했던 비밀은 그들 자신에게도 배신감을 주는 충격적 진실로 드러나기도 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드러나는 외견상으로는 가장 비루하게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가장 고귀하고 희생적인 인물의 삶에는 한없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 듯 너무나 잘 어울리는 두 형사의 케미와 더불어 독자가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완벽한 완급 조절과 생각지도 못한 요소들이 사건 해결의 단서들이 되며 짜릿한 긴장감과 충격을 안겨다 주는 소설이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충격적이고 감동적이며 기억에 깊이 남는 장면은 그녀의 마지막이 아닐까.

전편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가 무척 궁금해지게 만들며, 추리소설의 재미는 물론이고 인간적 감동까지 느낄 수 있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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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헤르츠 고래들
마치다 소노코 지음, 전화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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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오이타현의 작은 바닷가 마을로 홀로 이사 온 키코에 대해 주민들은 그녀가 유흥업소 여자고 야쿠자에게 쫓기고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억측을 진실처럼 이야기했고, 마침 키코의 집 마룻바닥을 수리하러 온 집수리 업자 무라나카는 키코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그 소문에 대해 물어본다. 이에 화가 난 키코는 무라나카가 바닥을 고치고 있는 동안 나가 있기로 하고 집을 뛰쳐나온다. 그러고는 평소 힘들 때 그랬던 것처럼 안상을 생각하며 그를 떠올린다.


주인공 키코의 엄마는 게이샤이자 첩이었던 할머니를 원망했고 자신은 번듯한 남자와 결혼해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거라 다짐하며 살았지만 키코를 낳은 후 결혼은 실패로 끝났다. 엄마는 자신의 우울한 삶에 대한 분풀이를 키코에게 했고, 그렇게 어린 키코에게 폭력을 휘두른 후에는 안아주는 것을 반복했다.

엄마의 감정의 결핍은 의붓아버지와 재혼함으로써 채워졌지만, 키코에 대한 학대는 의붓아버지의 폭력까지 더해졌을 뿐만 아니라 강도도 더욱 심해져 어린 키코를 항상 외롭고 힘들게 했었다.


키코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독립할 계획을 세웠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의붓아버지가 루게릭병으로 쓰러지며 그 계획이 좌절되고 만다. 엄마는 키코에게 키워준 보은을 강요하며 다른 전문가의 손길은 거부한 채 의붓아버지의 간병을 오롯이 키코에게 떠맡겼다.

자신의 삶은 포기한 채 3년간 의붓아버지의 간병에 헌신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한 폭력과 욕설과 원망뿐이었고, 이에 완전히 지쳐버린 키코가 삶의 끈을 놓으려 할 때 기적처럼 키코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쳐졌다. 그리하여 키코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새로운 삶을 시작한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사 간 마을에서 키코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저 예쁘장한 중학생인 줄 알았던 아이와 우연한 만남을 거듭하는 동안, 그 아이가 지독한 신체적·정신적 학대와 방임의 환경에 처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심지어 아이의 보호자는 번듯한 이름 대신 아이를 벌레라고 불렀다.

이에 키코는 아이에게 '52헤르츠 고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의 진짜 이름을 알기 전까지 '52'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러고는 아이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아 아이와 함께 아이가 이전에 살았던 곳을 찾아가는데….




이 소설은 작가 마치다 소노코의 첫 장편소설로 2021년 일본 서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2024년 영화화가 결정된 작품이다. 작가 이름이 다소 생소하여 찾아봤더니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인기를 끌었던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의 작가이다.


소설 제목 '52헤르츠 고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 한다.

원래 고래는 주로 10에서 39헤르츠 높이로 노래하는데, 52헤르츠 고래는 소리가 높아서 그 노랫소리가 다른 고래한테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무리를 지은 동료들이 아무리 가까이에 있어도 52헤르츠 고래의 소리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아 다른 고래들은 그 고래를 그냥 지나친다고 하니 얼마나 외로울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52헤르츠 고래처럼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실은 사회 속에서 고립되어 있다.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자신을 도와 달라고, 그들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신호를 계속 보내지만 누구도 들을 수 없고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면 누구에게나 들릴 수 있는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52헤르츠의 소리를 내는 이들에게만 구원이 아닌 그 소리를 듣고 구원의 손을 내민 이들에게도 또 다른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 키코가 학대받은 아이 52를 만나며 52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간중간 키코의 서사와 교차하며 보여준다. 또한 학대를 당한 그들뿐만이 아닌 다른 형태의 52헤르츠 소리를 내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하여 언뜻 보면 흔한 학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 듯하지만 내용은 결코 식상하지 않은 탄탄하고 신선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전개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그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 52의 진짜 이름이 알고 싶으면 소설을 읽어 보시길. 그따위로 학대해 놓고 이름은 또 왜 그리 예뻐서 눈물 나게 하는지….


일방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닌 구원하고 구원받기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변화하는 모습들이 큰 감동이었다. 우리 모두가 주변 어딘가에 있을 52헤르츠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한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될 때는 52헤르츠 소리라 할지라도 용기를 가지고 내어보는 것이 어떨까?

너무나 묵직한 감동과 따뜻함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이야기였다.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은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꼭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





*내돈내산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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