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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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화려한 축제 분위기의 도쿄의 밤.

경시청 도쓰카 경찰서의 분위기는 한 통의 신고 전화로 소란해졌다. 바로 경찰서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빈 건물 1층에서 50세에서 60세로 추정되는 여자가 죽어 있다는 신고였다. 여자는 누군가 옷을 벗기다 만 것 같았고 두부엔 타박상이 있었다. 여자의 신원을 알아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쇼핑카트와 담요로 보아 가출인이거나 노숙인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수사본부가 설치되며 수사는 도쓰카 경찰서의 신입 형사 다도코로 가쿠토와 순간 기억 능력을 가진 경시청 수사 1과 베테랑 괴짜 형사 미쓰야 슈헤이가 파트너가 되어 담당하게 된다. 시신의 신원을 알아낼 길 없어 잠시 막혔던 수사는 시신의 지문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는 것이 확인되며 활기를 띠게 되었다.


시신의 지문은 1년 4개월 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의 서류 가방에서 채취한 지문 중 하나와 일치했고, 가쿠토와 미쓰야는 관할이 아님에도 탐문 수사 차 히가시야마의 집에 방문한다. 미망인 히가시야마 리사는 여전히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듯 보였지만, 집안에서 풍기는 미묘한 위화감을 캐치한 미쓰야는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밝혀낸다.

거기다 요시하루와 죽은 노숙인 여자 사이의 접점이 발견되며 그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요시하루 살인사건과 노숙인 여자 살인사건의 충격적인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는데….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은 노숙인 마쓰나미 이쿠코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중에 드러나는 또 다른 살인 사건의 진실과 치정, 더러운 욕망, 질투, 거짓 등 인간 본연에 있을 수 있는 추악한 민낯과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연이어 드러나는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악연과 그들이 감추고자 했던 비밀은 그들 자신에게도 배신감을 주는 충격적 진실로 드러나기도 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드러나는 외견상으로는 가장 비루하게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가장 고귀하고 희생적인 인물의 삶에는 한없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 듯 너무나 잘 어울리는 두 형사의 케미와 더불어 독자가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완벽한 완급 조절과 생각지도 못한 요소들이 사건 해결의 단서들이 되며 짜릿한 긴장감과 충격을 안겨다 주는 소설이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충격적이고 감동적이며 기억에 깊이 남는 장면은 그녀의 마지막이 아닐까.

전편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가 무척 궁금해지게 만들며, 추리소설의 재미는 물론이고 인간적 감동까지 느낄 수 있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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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헤르츠 고래들
마치다 소노코 지음, 전화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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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오이타현의 작은 바닷가 마을로 홀로 이사 온 키코에 대해 주민들은 그녀가 유흥업소 여자고 야쿠자에게 쫓기고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억측을 진실처럼 이야기했고, 마침 키코의 집 마룻바닥을 수리하러 온 집수리 업자 무라나카는 키코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그 소문에 대해 물어본다. 이에 화가 난 키코는 무라나카가 바닥을 고치고 있는 동안 나가 있기로 하고 집을 뛰쳐나온다. 그러고는 평소 힘들 때 그랬던 것처럼 안상을 생각하며 그를 떠올린다.


주인공 키코의 엄마는 게이샤이자 첩이었던 할머니를 원망했고 자신은 번듯한 남자와 결혼해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거라 다짐하며 살았지만 키코를 낳은 후 결혼은 실패로 끝났다. 엄마는 자신의 우울한 삶에 대한 분풀이를 키코에게 했고, 그렇게 어린 키코에게 폭력을 휘두른 후에는 안아주는 것을 반복했다.

엄마의 감정의 결핍은 의붓아버지와 재혼함으로써 채워졌지만, 키코에 대한 학대는 의붓아버지의 폭력까지 더해졌을 뿐만 아니라 강도도 더욱 심해져 어린 키코를 항상 외롭고 힘들게 했었다.


키코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독립할 계획을 세웠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의붓아버지가 루게릭병으로 쓰러지며 그 계획이 좌절되고 만다. 엄마는 키코에게 키워준 보은을 강요하며 다른 전문가의 손길은 거부한 채 의붓아버지의 간병을 오롯이 키코에게 떠맡겼다.

자신의 삶은 포기한 채 3년간 의붓아버지의 간병에 헌신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한 폭력과 욕설과 원망뿐이었고, 이에 완전히 지쳐버린 키코가 삶의 끈을 놓으려 할 때 기적처럼 키코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쳐졌다. 그리하여 키코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새로운 삶을 시작한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사 간 마을에서 키코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저 예쁘장한 중학생인 줄 알았던 아이와 우연한 만남을 거듭하는 동안, 그 아이가 지독한 신체적·정신적 학대와 방임의 환경에 처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심지어 아이의 보호자는 번듯한 이름 대신 아이를 벌레라고 불렀다.

이에 키코는 아이에게 '52헤르츠 고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의 진짜 이름을 알기 전까지 '52'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러고는 아이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아 아이와 함께 아이가 이전에 살았던 곳을 찾아가는데….




이 소설은 작가 마치다 소노코의 첫 장편소설로 2021년 일본 서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2024년 영화화가 결정된 작품이다. 작가 이름이 다소 생소하여 찾아봤더니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인기를 끌었던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의 작가이다.


소설 제목 '52헤르츠 고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 한다.

원래 고래는 주로 10에서 39헤르츠 높이로 노래하는데, 52헤르츠 고래는 소리가 높아서 그 노랫소리가 다른 고래한테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무리를 지은 동료들이 아무리 가까이에 있어도 52헤르츠 고래의 소리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아 다른 고래들은 그 고래를 그냥 지나친다고 하니 얼마나 외로울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52헤르츠 고래처럼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실은 사회 속에서 고립되어 있다.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자신을 도와 달라고, 그들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신호를 계속 보내지만 누구도 들을 수 없고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면 누구에게나 들릴 수 있는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52헤르츠의 소리를 내는 이들에게만 구원이 아닌 그 소리를 듣고 구원의 손을 내민 이들에게도 또 다른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 키코가 학대받은 아이 52를 만나며 52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간중간 키코의 서사와 교차하며 보여준다. 또한 학대를 당한 그들뿐만이 아닌 다른 형태의 52헤르츠 소리를 내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하여 언뜻 보면 흔한 학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 듯하지만 내용은 결코 식상하지 않은 탄탄하고 신선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전개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그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 52의 진짜 이름이 알고 싶으면 소설을 읽어 보시길. 그따위로 학대해 놓고 이름은 또 왜 그리 예뻐서 눈물 나게 하는지….


일방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닌 구원하고 구원받기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변화하는 모습들이 큰 감동이었다. 우리 모두가 주변 어딘가에 있을 52헤르츠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한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될 때는 52헤르츠 소리라 할지라도 용기를 가지고 내어보는 것이 어떨까?

너무나 묵직한 감동과 따뜻함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이야기였다.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은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꼭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





*내돈내산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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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 : 야 1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메타노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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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황야.

그곳에 각자의 스승의 명을 받들어 천하를 돌아다니고 있는 눈부신 젊은이 세 명이 작은 나무 아래 모여 수십 장 떨어져 있는 땅 위에 선명히 드러난 검은색 골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여태껏 명왕은 전설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그들 앞에 홀연 나타나 그 범위를 넓히며 천지를 뒤덮기 시작한 어둠.

그들은 전설에 의해 인간 세상에 내려왔을지도 모를 명왕의 자녀 중 하나를 찾아 각자의 길을 다시 떠난다.


대당 천계 원년.

장안성 내 선위 장군 임광원의 집에서는 일족과 사용인들의 피가 대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임광원은 무슨 연유에선지 대장군 하후의 미움을 산 뒤 적국과 내통한다는 혐의를 받고 가차없는 처벌을 받게 되었다.

멸문지화.

우림군들은 끝끝내 네다섯 살 된 아이까지 모조리 죽이고서야 살육을 멈췄다.


대당 천계 13년.

초원 만족 금장 부족 선우가 급사하며 3년 전 그에게 시집갔던 대당 공주 이어가 신임 선우로부터 암살 위협을 받으며 장안으로 향하던 중 제국의 서북쪽 끝에 위치한 변경 위성 군영에 들러 길잡이를 청했다. 이에 장군 마사양은 군영에서 제일 어린 군졸 녕결을 길잡이로 추천한다.

하지만 공주의 시녀는 대낮부터 군영에서 술을 마시며 더럽고 음탕한 말을 내뱉으며 내기를 하고, 작고 어린 시녀에게 모든 힘든 일을 떠맡긴 채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녕결을 탐탁지 않게 본다. 그러나 우연히 보게 된 녕결의 글씨에 마음이 움직였고, 마사양으로부터 녕결이 시체 더미에서 상상이란 어린 여자아이를 구해내 시녀로 삼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일을 잘하며 똑똑하여 서원 시험에 응시할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그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하여 녕결은 길잡이로 상상과 함께 공주의 행렬을 이끌게 된다.


그런데 녕결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개인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하후에 의해 억울하게 멸문지화 당했던 임광원의 가솔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였고,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후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하후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인데….



이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중국 소설 중 하나인 『경여년』의 작가 묘니의 작품으로 『경여년』처럼 평범하지 않은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그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초반 프롤로그 부분의 어둠이 찾아오는 부분은 몇 번을 읽어도 왜 그 이야기가 소설에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그 부분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와 이해가 되니 처음엔 그냥 넘겨도 상관없을 것 같다.


주인공 녕결은 열여섯의 변방의 어린 군졸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흉악하고 잔인하게 초원의 마적들을 죽이며 소벽호 장작꾼으로 악명(?)을 떨치며 어린 시녀 상상을 데리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비록 용맹한 장군의 살아남은 자식이라고는 하지만 네댓 살의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었는데 어떻게 따로 스승 없이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큼 글씨도 잘 쓰고 하후의 정예 암살조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무예도 뛰어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주인공에게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수행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공 사전에 좌절이란 없다. 수행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뿐. 황제가 되지 못한다면 서예 대가가 될 것이고, 장군이 되지 못한다면 대학사가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생에 한 우물만 파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간다.

그런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니, 진피피가 돕는다고 해야 하나? 녕결의 걸림돌이었던 막힌 기해설산혈에 변화가 생기는 중대한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과연 녕결은 자신의 복수를 하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수행자가 되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2권까지 빠르게 진행됐지만 여전히 궁금하고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책을 읽는 내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하기에 비중이 크고, 시녀인데 시녀 같지 않은 상상의 존재가 무척 궁금했다. 아직까지 상상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서사가 없어 앞으로 진행될 상상의 이야기가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녕결을 생각해 주는 진피피와의 이야기도.


『장야』는 판타지적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친근한 동양적인 배경에 거침없고 기발한 전개가 어느새 소설 속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뛰어난 가독성을 기본으로 신선한 재미와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인물들의 성장을 통해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무협 판타지 오락 소설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녕결의 목표를 향한 또 다른 성장을 기대하며 3권이 빨리 나오길 바라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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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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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타는 유년 시절부터 그녀의 남편인 톰이자 토마스 네빈슨을 알았다. 영국인이자 스페인인이었던 톰은 영국인 학교에서 정해진 중등과정 4년을 이수한 후 나머지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가까운 거리에 있던 베르타가 다니던 현지 학교로 넘어왔다. 베르타와 톰은 그때부터 서로 결혼했다는 상상에 빠질 정도로 금방 사랑에 빠졌다.


베르타는 눈에 띄는 특징은 없었지만 균형이 잘 잡힌 갈색 미인으로 원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줄 아는 의식이 있는 여성이었다.

톰은 언어를 배우는 데 남다른 재능 즉, 탁월한 외국어 습득력과 새로운 말을 모방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구사했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잠시만 들어도 말투, 억양, 단어, 악센트까지 완벽하게 흉내 낼 줄 아는 재주를 가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계가 결코 불장난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육체적인 관계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며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그리하여 둘은 엉뚱하게도 서로 사랑하고 헤어질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각자 다른 사람과 첫 경험을 하게 된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회색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베르타는 도주 중 자신을 도와준 반데리예로인 에스테반 야네스와 한 번의 첫 관계를 맺은 후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하진 않고 그저 결혼 기간 내내 가끔 그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톰의 경우는 옥스퍼드에 진학한 후 '성의 해방'이라 부르짖는 당시 영국의 흔한 방식으로 첫 경험을 했고, 그 후 두 번째 여인인 중고 책방 점원 재닛과 별다른 교류 없이 가끔 만나 잠자리만 같이 하는 관계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능력과 아버지의 지위 덕분에 어렵지 않게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한 톰은 영어와 스페인어 외에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를 능숙하게 다루었고 그 외 폴란드어, 체코어 등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의 지역 방언을 잘 알게 되었다. 그의 뛰어난 언어 능력을 눈여겨 본 지도교수들 중 예비역 피터 휠러 중령이 있었고, 그는 톰에게 비밀정보부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는다. 하지만 톰은 자신은 그런 조직에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제의를 거절한다.

그러나 얼마 후 톰과 관계를 맺던 재닛이 살해되며 톰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어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이때 휠러 교수와 그가 속한 조직은 토마스가 조직에 들어온다면 사건을 그대로 종결시키고 토마스를 확실하게 보호해 주겠다고 제안하는데….



평범한 행복을 바랐을 뿐인데 남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을 바쳐야 했던 불운한 남자, 토마스.

그런 남자를 사랑하여 결혼하고 기나긴 기다림의 삶을 이어가는 여자, 베르타.


헤어 나올 수 없는 삶이라면 그 삶에서 가치를 찾고 멋진 삶이 되게끔 노력했지만, 거짓과 음모 위에 설계된 국가의 도구로서의 삶에서 점차 본연의 자신은 희미해지고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토마스를 보면서 그가 투프라의 정보부 가입을 강요당할 때 떠올렸던 '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가 자꾸 머리에서 떠올랐다.

그렇다, 토마스는 더 이상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없었기에 그의 순수한 의지에 의한 진정한 토마스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났을 지도 모른다.


목적을 위해 어떠한 수단도 정당시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토마스의 모습, 그러면서 어떠한 주관도 없이 맹목적으로 영국이라는 나라에 충성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그저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베르타는 그런 남편을 하염없이 인내하고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토마스가 죽었다고 여겨졌을 때는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는 했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잃어가고 절대 완성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그들 삶의 종점은 과연 어디일까?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서로의 삶을 각자 살아가는 베르타와 토마스를 보면서 또 다른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국가가 전체를 위해 개인의 삶의 희생과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는 상황을 보며 국가의 존재의 이유를 되새겨 보았으며, 목적을 위해 과연 어디까지 수단이 정당시 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모든 내용들이 단순한 사건 서술이 아닌 베르타와 토마스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함께 의미를 더하며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일반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마냥 화려하고 멋지게만 그려진 허구의 스파이가 아닌 현실에서의 실제 스파이의 삶의 애환과 정체성의 혼란, 그 주변인들의 고통 등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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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지존 에디션)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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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한 번쯤은 읽거나 제목을 들어봤을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이 국내 판매 40만 부를 돌파하며 인기 캐릭터 지존(ZIZONE)과 콜라보 하여 새로운 '지존 에디션'으로 찾아왔다. 나답게 살아가는 일상의 유쾌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핑고, 지지, 식빵새의 캐릭터 이미지가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과 관련된 일에 신경을 쓰고 걱정하며 살아간다. 그 일이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사소한 일일 수도 있고 심각하고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조차 신경 쓸 때도 있다.

그렇게 정신력을 소모하며 고민하다 보면 어떨 때는 지쳐 좌절하고 심할 경우에는 엉망진창이 되어 어느 순간 삶의 방향과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신경 끄기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게 해주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 신경을 덜 쓰는 기술 혹은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명심해야 될 것은 '신경 끄기'라는 것은 전부 다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하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뼈 때리는 팩트를 날리고 있다. 바로 '우리 모두가 특별하며,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헛소리라는 것이다.

유명인들은 방송에서 "여러분은 특별해요"라고 강조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울 때 "너는 특별해"라고 말한다. 이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특별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평범함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말이 사람들에게 돋보이고 특별한 삶만이 가치 있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편협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어 자칫 위험한 사고방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간혹 누군가 뭔가에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 데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핫했던 말이 바로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고 말한다.

No!

"넌 틀렸어, 물론 나도 틀렸고."

사람들은 항상 틀린다. 예전에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틀렸다.


어느 과학 잡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2%는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으며 그들 중에는 유명 운동선수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진실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자신들의 믿음을 고수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옳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해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감히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틀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틀렸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삶이란 정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각자 옳은 것을 향해 나아갈 뿐인 것이다. 단, 경험을 통해 얻는 것도 어느 정도 틀릴 것이다. 저자는 틀리면 변화할 수 있고, 조금 덜 틀린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책은 어렵지 않게 여러 현실적인 조언을 하며 개인에게는 자칫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것도 실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하며, 진짜로 가치 있는 것에 신경을 써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충고하고 있다. 쓸데없는 것은 치우고 중요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비로소 삶은 여유롭고 가치 있고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유쾌하고 초긍정적면서 현실적인 작가의 이야기에 엄지 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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