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풍물패 강화 훈련 1

 

 

  풍물패 강화 훈련이 시작되는 첫 날이었다. 회원들이 모이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자 1학년 5명, 2학년 5명, 3학년 8명 4학년 7명 총25명의 회원들이 모두 동아리방에 모였다.

“자, 그럼 다들 모인거지? 출발하자고.”

“예.”

회원들은 모두 각자의 악기를 챙겨 가지고는 동아리방을 나갔다.

 

 

  25명의 회원들은 모두 기차에 앉아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시원한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유진, 희연, 재수, 민이, 준석, 다섯 명은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심심한데 우리 포커나 하는 게 어때?”

민이가 트럼프를 꺼냈다.

“너 이젠 아주 도박꾼으로 나설 작정이냐?”

재수가 또 트집을 잡았다.

“넌 하기 싫으면 관 둬라. 너 말고도 할 사람은 많으니까.”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내가 빠져? 그럴 수는 없지.”

“자, 그럼 다들 하는 거지?”

민이가 트럼프를 썩으면서 말했다.

“난 빠질게. 포커 칠 줄 몰라.”

희연이가 말했다.

“그래? 그럼 하는 수 없지. 또 안 칠 사람 없지?”

민이는 카드를 다 썩고 나서 카드를 한 장 씩 돌렸다.

첫 판은 민이가 돈을 따 갔다.

“오늘은 잘 풀리는데.”

민이가 카드를 다시 썩으며 말했다. 판이 두 번 더 이어졌는데 두 번 다 민이가 돈을 땄다.

“난 그만 해야겠다.”

유진이가 말했다.

“벌써? 이제 시작인데.”

민이가 말했다.

“내 전 재산 다 털렸어.”

“사내 녀석이 왜 그렇게 담이 작냐? 고작 2,000원 털린 거 가지고 빠지려고 하고.”

“그런 게 아냐. 정말 있는 돈 다 날린 거라고.”

“너도 참 불쌍하다. 금하건설 회장 아들이 주머니에 2,000원밖에 없다니 말야.”

준석이 말했다.

“더 하고 싶어? 더 하고 싶으면 내가 돈 꿔 줄까?”

희연이가 물었다.

“아냐, 됐어.”

“자, 그럼 한 사람 떨어져 나갔고 계속하자구.”

민이가 카드를 썩었다.

“준석아, 근데 이러다가 우리 돈도 몽땅 저 깡패한테 뜯기는 거 아냐?”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준석은 뜻 모를 웃음을 가볍게 흘리면서 말했다.

세 명의 아이는 다시 포커를 시작했다.

 

 

  “스트레이트야.”

민이가 카드를 보여주며 말했다.

“난 풀 하우스라고.”

준석이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처음에 민이에게 모여들었던 돈은 시간이 흐르면서 묘하게 준석이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길래 첫 끝발은 개 끝발이라고 하잖아.”

준석이가 웃으며 말했다.

“야, 깡패 얼마나 잃었냐?”

재수가 물었다.

“본전은 이미 잃은 지 오래고 만원이나 더 잃었어. 아무래도 이번 판만 하고 말아야 할 거 같애.”

“왜 더 하지 그래?”

준석이가 물었다.

“야, 나도 쓸 돈은 남겨 둬야 할 꺼 아냐? 너한테 이미 만원이나 잃었다고.”

“나도 만 오천원이나 뜯겼어.”

“그래, 완전 도박꾼이 따로 없다니까.”

마지막 판도 준석이가 판돈을 걷어갔다.

“오늘은 제법 수입이 짭짤한데.”

준석이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니 돈 안 꾸기를 잘했다. 꿔서 계속 했다면 저 플레이보이한테 니 돈 다 뜯길 뻔 했어.”

유진이가 희연이를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기차는 광주에 도착했다. 풍물패 회원들은 기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서 ㅈ대로 향했다. ㅈ대에 도착한 회원들은 강의실에 들어가서 짐을 풀어놓은 후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자 이제 그만 연습하러 가야지. 우린 놀러 여기 온 게 아니잖아.”

회원들이 휴식을 취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회장이 말했다. 회원들은 회장의 말을 듣자 모두 악기를 챙겼다.

“드디어 1년 전의 악몽이 또 시작되는군.”

민이가 투덜거렸다.

“넌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냐?”

재수가 민이한테 쏘아댔다.

“넌 1년 전에 나보다 더 가관이었으면서 왜 사사건건 시비야?”

풍물패 회원들은 모두 잔디밭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앉았다. 회장인 경철이 연주하는 꽹꽈리 소리에 맞춰 그들은 장단을 연주했다.

새로운 장단을 배우는 회원들의 연습은 계속되었다. 조금만 서 있어도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릴 것 같은 무더위에서 그들은 최선의 연습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비오듯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한참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잠시 동안의 휴식이 주어졌다.

“아, 정말 더는 못 하겠다.”

민이가 말하며 잔디밭에 누웠다. 대부분의 회원들도 악기를 놓고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들을 빨아들일 것 같은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10분 정도의 꿀 같은 달콤한 시간이 흘러가자 경철이 말했다.

“자, 다시 연습해야지.”

“벌써 시작해요? 얼마 쉬지도 못했는데요?”

민이가 말했다.

“그래요. 좀 더 쉬었다가 하자고요.”

회원들은 민이의 의견에 동의했다.

“벌써부터 그렇게 퍼지면 어떡해? 이제 겨우 첫 날인데. 자 다들 힘내고 다시 시작하자고.”

회원들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일어섰다. 그들은 다시 각자 악기를 부여잡고 장단을 연주하였다. 신명이 담긴 풍물 소리가 다시 온 세상을 향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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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내기 커플

 

 

  민이는 학과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학이라서 그런지 학과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민이는 소파에 앉은 후 소파 앞에 놓인 탁자에 놓여 있던 신문을 펼쳐 들었다. 어제 신문이었지만 할 일 도 없고 해서 신문을 펼쳐 사설란을 읽고 있었는데 재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학인데 웬 일이야? 학교에를 다 나오고 말야.”

민이가 재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난 매일 나왔다고. 니가 오랜만에 나온 거지.”

재수는 집에 있는 것이 싫어서 방학 동안에도 학교에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래? 어쨌든 잘 됐다. 우리 농구나 하자.”

민이는 신문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 더운 날에 무슨 농구야?”

“그러니까 땀을 빼야 될 거 아냐? 땀을 빼고 나면 시원하다고. 자 가자.”

민이는 학과실에 굴러 다니고 있는 농구공을 주워 재수에게 던졌다.

재수가 두 손으로 공을 받았다.

 

 

  날이 덥고 방학이라서 그런지 농구코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15점 내기야. 오늘 점심은 지는 사람이 내는 거라고.”

민이가 말했다.

“또 내기야? 넌 어째 내기밖에 모르냐? 자, 너 먼저 시작해라.”

재수가 공을 민이에게 던져주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걱정 마. 아무렴 내가 여자한테 지겠냐?”

“그럼 시작한다.”

민이는 드리볼을 하다가 페인트로 재수를 가볍게 속이고는 레이업 슛을 했다. 공은 가볍게 링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인데.”

재수는 공을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봐 주지 않을 거라고.”

 

 

  점수는 14대 14였다. 두 학생의 몸은 이미 땀으로 가득 젖었다. 재수가 공을 잡고 드리볼을 하고 있었다. 수비를 하고 있는 민이를 제치더니 중거리 슛을 던졌다. 공은 림을 두어 바퀴 돌더니 밖으로 떨어졌다. 민이가 리바운드를 한 후 드리볼을 하며 밖으로 빠져 나왔다. 기회를 보던 민이가 재수를 돌파하려는 순간 재수가 민이의 손목을 쳐서 민이의 손에서 공이 빠져 나갔다.

“파울이야.”

재수가 공을 주워 가지고 민이에게 던졌다.

“너 아주 신사적이다. 그러다 지면 어떡할려고?”

민이가 공을 받으며 말했다.

“걱정 마. 너한테 지지는 않는다고. 아무렴 내가 여자한테 지겠냐?”

재수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민이의 공으로 게임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민이가 재수의 앞에서 중거리 슛을 던졌다. 공은 보기좋게 림속으로 빨려들었다.

“내가 이겼어. 오늘 점심도 니가 사야 한다고.”

“또 돈 뜯겼군. 하는 수 없지 뭐. 우선 씻으러나 가자고.”

재수가 공을 잡으며 말했다.

둘은 수돗가로 가서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깨끗이 씻고 나왔다.

“여자한테 진 소감이 어때?”

“난 여자한텐 안 졌어. 너한테 졌지.”

“야, 나도 여자야.”

“그럼 증명해 봐.”

“뭐?”

“옷을 벗어보면 확실히 알 수가 있어.”

“하여튼 매를 벌어요.”

민이는 주먹으로 재수의 배를 때리며 말했다.

“내가 단언하건데 이건 절대 여자 주먹이 아니야.”

재수가 찡그렸던 얼굴을 피며 말했다.

“너 생각해서 특별히 살살 때린 줄 알아.”

“아주 눈물나게 고맙군.”

“뭐 먹을 거야?”

“오므라이스.”

“3500원이 또 날라가는 군. 아냐, 잠깐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어.”

“뭐가 안 돼?”

“다시 내기해.”

“뭐? 또 농구 하자고?”

“아니, 당구.”

“당구?”

“당구에서 진 사람이 술 사는 거야. 왜 자신 없어?”

“아니. 좋아. 근데 너 돈 많냐? 밥값에다 술값까지 어떻게 충당할려고 그러냐? 혹시 오늘 용돈 다 날리는 거 아니냐?”

“걱정 마. 아무려면 내가 또 지겠냐? 이번에는 반드시 이길 거라고.”

“좋아. 그럼 공 갖다놓고 와.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야, 왜 내가 공을 갖다 놔야 해?”

“그럼 가위 바위 보 해. 사내 녀석이 쫀쫀해 가지고 하나부터 끝까지 트집을 잡아요. 그거 좀 갖다 놓고 오면 안 돼.”

“야, 그거 성 차별 발언이야. 사내가 좀 쫀쫀하면 안 돼?”

“시끄러. 잔말 말고 가위 바위 보나 해.”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민이는 주먹을 냈고 재수는 가위를 냈다.

“이제 불만 없지? 빨리 공이나 갖다 놓고 와.”

재수가 학과실에 공을 갖다 놓고 내려왔다.

“어디 갈까?”

민이가 물었다.

“어디 가긴? 당구장 가기로 했잖아?”

“야, 밥 사기로 한 건 사야 될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니까. 당구해서도 내가 지면 밥이랑 술이랑 내가 다 사지. 하지만 내가 이기면 다 더치페이야.”

“낮술 먹자고?”

“뭘 그렇게 놀라냐? 생활이면서.”

“뭐야? 좋아. 딴 소리 하기 없기야.”

“너나 딴 소리 하지 마라. 난 이래봬도 남자야.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누가 널 남자로 보냐?”

“그것도 성차별 발언이야.”

“으이그, 정말 놀고 있네.”

 

  당구도 민이의 승리로 끝났다. 재수는 어이없는 얼굴로 민이를 바라보았다.

“대체 당구는 언제 배운 거야?”

“고등학생 때 수업 땡땡이 가면서 배웠다.”

“참 잘한 짓이다. 근데 그러고 어떻게 우리학교엔 들어왔냐? 너 시험지 유출했지? 교육부는 도대체 뭐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이런 사위비 대학생 안 잡아가고.”

“야, 난 원래 머리가 좋아. 너보다 아마 IQ가 두 배는 높을 거다. 남북통일국가 초대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 다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라고.”

“대통령? 또 그 병 도졌나? 그러게 하루 빨리 정신 병원에 가 보라니까. 그리고 너 머리 좋은 건 나도 인정하는데 요즘은 EQ 시대야. 내가 보기에 니 EQ는 수준 미달이 확실하니까 한번 상담을 받아 보라니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재수의 말이 끝나자 민이가 재수의 발을 밟았다.

“아아, 야, 왜 남의 발은 밟고 그래?”

“니 그 입 좀 다물라고 그런다. 왜?”

“확실히 EQ에 문제가 있다니까. 내가 잘 아는 상담센터 있는데 소개시켜 줄까?”

“그런덴 너나 가서 상담 받고 빨리 밥하고 술이나 사.”

두 학생은 또 티격태격하며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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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광주에서 2

 

 

  밤이 되자 학생들은 다시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단상위에서는 북춤이 흥겹게 펼쳐지고 있었다.

ㄱ대 풍물패 회원들도 다들 그 곳에 모여 있었는데 희연은 조금 전부터 계속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며칠 전에 걸린 감기가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괜찮아? 그만 들어가서 자지 그래?”

유진은 걱정스런 눈으로 희연이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렇게 고집만 부리지 말고 그만 들어가서 자. 그러다가 더 심해져서 올라가면 네 어머니가 걱정할거 아냐.”

희연은 어머니라는 말에 유진이 어머님이 생각났다. 여기에 내려와서 아직 유진이의 어머님한테 전화를 한 번도 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죄를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까? 그럼 나 그만 들어가서 잘 게.”

“그래, 잘 생각했어. 들어가서 푹 쉬어.”

희연은 유진이의 안부를 뒤로하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강 여사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어머님, 저예요. 희연이.”

“그래, 잘 지내고 있냐?”

강 여사는 무척이나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 잘 지내고 있어요. 유진이도 잘 있고요.”

“그래. 다행이구나. 근데 목소리가 왜 그러냐?”

“감기가 좀 들어서요.”

“저런. 조심하지 않고.”

“괜찮아요. 어머님. 별로 심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모레 올라갈게요.”

“그래. 몸조심하고 잘 지내다 올라오너라.”

희연은 전화를 끊었다. 감기 때문인지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희연은 잠을 청하기 위해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진이 어머님이 걱정한 대로 이 곳에서 별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미 전경들이 주변에 쫙 깔린 채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김영삼 문민정부는 아직 초기단계였다. 그런 까닭에 이런 한총련이라는 이적단체를 대할 때 아직은 강경책 보다는 온건책을 택할 것이라는 것을 희연은 잘 알고 있었다.

강의실로 돌아온 희연은 요를 깔고 누운 후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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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광주에서 1

 

 

  풍물패 동아리 회원들이 광주에 내려온 지 하루가 지난 밤이었다. 그들은 ㅈ대의 넓은 운동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총련 출범식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내려온 대학생들은 운동장에 자리를 꽉 메운 채 앉아 있었다. 단상위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그동안 준비했던 공연들을 학생들한테 선보이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김영삼 대통령을 클린턴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모욕하는 노골적인 연극도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주위에는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지만 단상 위에서 이어지는 북춤에 학생들의 열기는 오히려 한층 더 타오르고 있었다.

북춤이 끝나고 새로이 한총련 의장에 뽑힌 학생이 깃대에 높이 걸려있는 성조기를 향해 불붙은 화살을 쏘아 올렸다. 화살은 그대로 성조기에 가 꽂혔고 성조기는 삽시간에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때를 같이하여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환호가 어둡고 추운 밤 속에서 일제히 터졌다. 희연이는 그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희연은 애초에 이런 행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희연은 분위기에 빠져들지 못하고 오히려 조금 전부터 일기 시작한 찬바람에 몸을 자주 떨었다.

“에취.”

희연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춥니?”

옆에 앉아있던 유진이가 희연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유진의 얼굴은 흥분이 된 듯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만 들어가서 자지 그래? 너 감기 걸린 것 같은데.”

“괜찮아. 그냥 재채기 했을 뿐인데. 뭐.”

“정말 괜찮아?”

“응.”

“그럼 이거라도 입고 있어.”

유진은 자신이 입고 있는 잠바를 벗어서 희연이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고마워.”

“그런 말은 친구 사이에 하는 게 아냐.”

유진은 말을 마치고 단상 위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단상 위에서는 어느새 사물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

희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유진은 언제나 자신한테 친구라는 말만을 했었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둘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자러 들어갔지만 운동장에는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일정이 끝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ㄱ대 풍물패 회원들도 많은 학생들이 자러 들어갔지만 유진, 재수, 민이, 희연은 일정이 끝난 새벽 3시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명의 학생은 강의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ㅈ대에 내려온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요를 하나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에취”

희연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재채기를 했다.

“그러길래 내가 아까 들어가서 자랬잖아? 가뜩이나 몸도 약하면서.”

유진은 걱정스런 얼굴로 희연이를 쳐다보았다.

“괜찮다니까. 그냥 감기일 뿐인데, 뭐.”

네 명의 학생은 강의실로 돌아와서 요를 깔고 자리를 잡고 누웠다. 유진과 재수와 민이는 피곤했는지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희연은 잠이 든 유진이의 모습을 행복한 미소로 바라보고 나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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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광주로 떠나고

 

 

  ‘삐이이...’하고 신호음이 울리자 박 회장은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박 회장의 목소리엔 위엄이 담겨 있었다.

“회장님, 희연 아가씨께서 오셨는데요.”

“들어오라고 해.”

박 회장의 목소리가 한층 누그러졌다.

“회장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세요.”

데스크를 보고 있는 안내원이 희연이한테 공손하게 말했다.

희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희연은 회장실로 갔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노크를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근데 무슨 일이세요? 절 갑자기 보자고 하시고.”

“일은 무슨? 저녁은 먹었니?”

“아뇨. 아직.”

“그럼 저녁이나 같이 먹으면서 얘기하자꾸나.”

박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은한 불빛 아래, 박 회장과 희연이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그 곳은 박 회장이 즐겨 찾는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다. 그들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그 날의 스페셜 요리와 화이트 와인이 놓여 있었고, 아름다운 여인이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이 그들의 식사를 한껏 분위기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박 회장은 화이트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말을 꺼냈다.

“내일 광주로 내려간다며?”

“예.”

“집사람이 괜한 걸 너한테 부탁했어. 이젠 별 일 없을 텐데 말야.”

“전 괜찮아요. 아버님.”

“어쨌든 못난 내 아들 놈 때문에 니가 고생이 많구나.”

“고생이라뇨? 당연히 제가 할 일인걸요.”

“그 녀석이 그렇게 좋으냐?”

희연은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 녀석은 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소꿉친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좀 도와 주세요.”

“내가 도와 줄 필요는 없을 거야. 적어도 그 녀석은 나하고는 달라서 인정은 있거든. 결국 니가 원하는 대로 될 거다.”

“정말 그렇게 되겠죠?”

희연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될 거다.”

박 회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희연은 박회장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도 일말의 불안감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희연이는 유진이가 자신을 떠나가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것이 희연이를 더욱 불안하게 했고 그래서 희연은 언제나 유진이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다음 날, ㄱ대 학교 운동장 안에는 한 대의 버스가 서 있었다. 학생들은 이미 버스에 올라타서 버스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버스에 시동이 걸렸을 때 버스를 향해 희연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다시 버스의 문이 열렸고 희연은 버스에 올라타더니 숨을 고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앞좌석에 앉아 있던 유진은 희연이가 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나도 같이 갈려고 왔어.”

“피아노 연주회는 어떻게 하고?”

“피아노 연주회는 다음에도 얼마든지 있는 걸. 뭐.”

유진은 희연이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희연은 여지껏 피아노 연주회가 있는 날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갔었다. 그런데 그런 희연이가 피아노 연주회를 포기했던 것이다. 그것도 희연이가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유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희연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굳이 그 이유를 따져 묻진 않았다.

희연은 뒷좌석에 비어있는 민이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니가 웬 일이냐?”

민이는 희연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같이 갈려고 왔어. 차 놓치는 줄 알고 뛰어 오느라 혼났어.”

“어쨌든 환영한다. 너도 이제 우리와 뜻을 같이 하게 됐으니 말야.”

민이가 밝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환영하긴 아직 일러. 난 너희와 뜻을 같이 한다고 한 적은 없으니까.”

“그럼 뭣 땜에 우리들의 여행에 동참한 건데?”

“그거야 목적지가 같기 때문이지. 하지만 목적지가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가는 목적이 다 같은 것은 아니잖아.”

“그럼 네 목적은 뭔데?”

“그냥 광주에 한 번 내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사과도 할 겸해서 말야.”

“사과라니?”

“우리 아버지 광주에서 사람 많이 죽였거든.”

“그래도 넌 니 아버지랑은 좀 다르구나.”

“다를 거 없어. 만약 똑같이 그런 상황이 또 일어난다면 나도 아버지처럼 행동할 테니까. 나도 아버지를 닮아가지고 내가 얻고 싶은 게 있으면 무슨 일이든 서슴치 않고 하거든.”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야. 너무 신경쓰지마. 그나저나 어제 리포트를 밤새 썼더니 너무 피곤한 걸.”

희연은 더 이상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듯 두 눈을 감았다. 민이는 그런 희연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만 보이던 희연이의 얼굴이 갑자기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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