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승훈의 가족

 

 

  서울시 지방 경찰청 형사과에서 일하는 민승훈은 업무를 마친 후 경찰청을 나왔다. 아버지의 생신이라 승훈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안양에 있는 집으로 가려고 안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동민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오래 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초등학교 피아노 콩쿨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한희연의 기사가 실려 있는 신문이었다. 그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조동민은 초등학교 5학년생인 한희연의 연주를 듣고는 전율이 일 정도로 감동을 느꼈다. 그건 어린 아이가 하는 연주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은 희연이한테 대상을 주는 데에 조금의 이견(異見)도 없었으며 그렇게 해서 희연은 대상을 받게 되었다. 그 후로 동민은 희연을 주목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자신이 음대 교수로 있는 ㅇ대학에 들어왔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나 그 때 아들인 승훈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병에 걸렸다. 아들의 치료에 온 정신을 쏟을 수 밖에 없었던 동민은 결국 희연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제대로 살필 수 없게 되었다. 병이 점점 더 심해져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해야 했던 승훈은 다행히 재혼한 부인인 신유선이 포기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보살펴 준 덕택에 입원한지 2년 후 완치가 되어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다. 동민은 가정이 정상을 되찾자 그 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희연이 다시 생각났다. 그는 희연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희연은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 중학교 콩쿨대회에서도 고등학교 콩쿨대회에서도 대상을 수상했다. 동민은 희연이 다녔던 고등학교를 찾아가 희연이 어느 대학에 진학했는지 물어 보았으나 희연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은 교직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 버려서 희연이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동민은 희연이 틀림없이 음대에 진학했을 거라는 판단 하에 전국에 있는 음대를 돌아다니며 희연이를 찾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음대를 돌아다녔는데도 한희연이란 학생은 찾을 수가 없었다.

유선이 사과와 배를 이쁘게 깎아 담은 접시를 소파에 앉아 있는 동민한테로 가지고 왔다.

“이것 좀 드세요.”

유선이 접시를 탁자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응.”

동민은 접시 위에 놓인 포크를 들어 사과를 찍었다.

“근데 또 그 신문 보는 거에요?”

“응, 그렇게나 찾아 다녔는데 도대체 어디 음대를 간 걸까? 외국으로 나간 걸까?”

“음대를 안 간 거 아니에요?”

“응?”

동민이 놀란 목소리로 말하며 유선을 보았다. 그렇게나 전국 대학의 음대를 다 돌며 찾았는데 없다면 유선의 말이 맞는 거 같았다. 그러나 동민은 다음 순간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피아노 콩쿨대회 대상을 받았고 수상 소감에서도 피아니스트 되는 게 꿈이라고 했던 학생인데...... 음대를 포기하다니...... 근데 승훈인 언제 온 대?”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우리 아들도 양반은 못 되나 봐요.”

유선은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승훈은 오른 손에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생신 축하 드려요. 아버지.”

승훈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케이크는 뭐 하러 사 오니? 나 케이크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생신이신데 케이크가 있어야죠.”

승훈이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내 탁자위에 내려 놓은 후 초를 꽂아 불을 붙였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승훈과 유선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노래가 끝나자 동민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초를 껐다.

“아버지, 무슨 소원 비셨어요?”

“한희연이란 그 아이를 찾게 해 달라고 빌었어. 그 애를 키워보고 싶거든.”

“니 아버진 아까도 그 애 기사만 보고 있었단다.”

유선이 핀잔을 줬다.

“그렇게나 찾아 다녔는데 못 찾는 거 보면 음대에 안 간 거 아니에요?”

“니 어머니랑 똑같은 소리 하는구나.”

“당연하죠. 내 아들인데요.”

유선의 말에 가족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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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깨어난 소희

 

 

  소희를 구해낸 승훈은 아직 깨어나지 않는 소희의 곁에 있었다. 소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무슨 일 때문에 자살을 하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소희는 깨어났다. 그리고 곧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는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깨어났구나. 의사 선생님 데리고 올 게.”

“왜 구했죠?”

소희는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이제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응?”

의사 선생님을 데려 오려고 일어나던 승훈이 멈칫했다.

“왜 구했냐고요?”

소희는 고개를 돌린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울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데리고 올게.”

승훈은 병실을 나왔다. 분명 큰 상처를 받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승훈이 의사를 데리고 소희가 누워 있는 병실로 왔다. 의사는 진찰을 다 마치고 나더니 물었다.

“집이 어디니?”

“......”

“가족은?”

“......”

의사는 더는 묻지 않고 승훈한테 잠깐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서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몸에 성폭행을 받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아무래도 지금은 그냥 안정을 취하도록 하는 게 낫겠어요. 정신적인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테니까.”

승훈은 저 어린 여자 아이한테 어떻게 그런 짐승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시 병실로 들어온 승훈은 소희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소희는 고개를 돌린 채 승훈을 보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거니? 누가 너한테 그런 짓을 한 거야?”

“난 이제 겨우 죽을 수 있었던 거였어. 그런데 당신이.....”

소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후 소희는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요. 당신 보고 싶지 않으니까.”

승훈은 병실을 나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승훈은 소희가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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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아름다운 밤 그리고 죽음의 유혹

 

 

 

  어제도 술 취한 채 들어온 김 판사는 짐승처럼 소희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소희는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깊은 밤, 소희는 잠실대교를 걷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흐르는 한강, 그리고 그 곳에 비치는 불빛들은 한없이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다. 이렇게 평화스러운 세상은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희는 이제 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야 될 때가 온 것을 직감적으로 느껴 그대로 몸을 던졌다. 강물은 뼛속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하지만 소희는 오히려 그 강물이 그동안 자신이 받은 몸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를 깨끗이 씻어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희의 몸은 점점 더 차가워졌으며 그와 함께 눈도 저절로 감기었다. 이제 다 끝난 것이었다. 소희의 입가에 처음으로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때, 한강변을 걸어가고 있던 남자가 소희를 보았다. 남자는 강물에 빠진 소희를 구해 낸 후 119를 부른 후 응급처치를 했다. 119가 도착하자 남자는 구급대원과 함께 소희를 구급차에 실은 후 같이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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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소희의 절망 2

 

 

  살고 싶지 않다. 정말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죽지도 못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오늘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다가 우연히 나의 친 어머니를 보았다. 그녀는 물론 나를 못 보았다. 아니 나를 보았다고 해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보같이 그녀가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찾아갔던 그 때처럼.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나은 딸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는 채로.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나는 정말 세상이 싫다.

 

 

  소희는 일기장을 덮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제 김 판사한테 또 당한 일이 생각났다.

‘죽고 싶다. 이젠 정말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끝내고 싶다.’ 소희의 절망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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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학교는 개강하고

 

 

  ㄱ대는 개강을 했다. 도현은 나연이 점심을 사 준다고 해서 약속시간에 맞춰 ㄱ대로 가고 있었다. 천천히 길을 걸으며 ㄱ대 정문으로 가고 있었는데 학교 옆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마리가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와 테니스를 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테니스를 구경했다. 마리가 밀리고 있었다. 준석이 포인트를 따냈다.

“잠깐 타임.”

마리는 밖에서 도현이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응?”

준석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마리가 코트 밖으로 나오더니 구경을 하고 있는 도현이한테로 왔다.

“이봐요. 자꾸 이렇게 쫓아 다니면 경찰에 스토커로 고소할 거에요.”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군요. 전 검사에요. 경찰이 어쩌지 못해요.”

그 때 핸드폰이 울려 도현은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딘데 아직도 안 와요?”

나연이었다.

“다 왔어. 금방 갈게.”

도현이 전화를 끊고는 다시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죠.”

도현은 인사를 하고는 떠났다.

도현이 떠나자 마리는 다시 코트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야?”

준석이 물었다.

“진짜 싫은 사람.”

“응?”

“넌 너무 신경 쓸 거 없어. 자, 다시 하자고. 니 서브였지?”

마리는 자기 코트에 떨어져 있는 공을 주워서 준석이한테 던져 주었다.

 

 

  도현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연이한테로 왔다.

“10분이나 늦었어요.”

“미안, 근데 니가 웬일이냐? 나한테 밥을 다 사 준다고 하고.”

“전 맨날 거지인줄 알아요? 저도 돈 있을 때가 있는 거라고요. 가요.”

두 사람은 함께 걸어갔다.

“난 짬뽕은 안 먹을 거야. 너랑 같이 하도 짬뽕을 먹어댔더니 짬뽕은 이제 질렸어.”

“오빠, 외계인이에요? 어떻게 짬뽕이 질릴 수가 있어요?”

도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뚫어져라 나연을 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어디서 너 같은 생명체가 나왔는지 신기해서 그런다. 아무튼 난 짬뽕은 안 먹을 거야. 짬뽕밥도 안 돼.”

“돈가스 먹으러 가요. 새로 생긴데 있는데 싸고 맛있어요.”

두 사람은 사거리에 다다르자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갔다.

 

 

  도현과 나연은 일식집에서 돈가스를 먹고 있었다.

“아, 언니가 얘기해 줘서 알게 됐는데 오빠 우리 언니 친구인 마리 언니 쫓아다닌다면서요. 근데 어떡할려고 그래요? 그 언니는 남자친구 있잖아요?”

“그게 뭐 대수라고? 넌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친구 있으면 포기할 거야?”

“당연하죠. 그런 게 사랑이니까.”

나연은 재수 오빠와 민이 언니를 생각하며 말했다. 재수 오빠를 두고 민이 언니와 싸우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야. 용기가 없어서 포기하는 것뿐이지. 사랑은 빼앗는 거라고.”

“오빤 그래서 뽀삐가 싫어하는 거에요!”

나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뽀삐는 도현이 집에서 키우고 있는 요크셔테리아였다.

“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뽀삐는 내가 옳다고 할 거에요. 근데 뽀삐는 잘 있어요?”

“너 보고 싶어해.”

“암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니까.”

“뭐가?”

“오빠가 봐도 저 이쁘지 않아요?”

“뭐. 이쁘긴 하지.”

“근데 왜 나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강아지 밖에, 아니지 강아지는 사람이 아니지. 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거죠?”

“난 말야. 정말 니 머리 한 번 열어보고 싶다.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그거야 당연히 꿈이 들었죠. 전 큰아버지처럼 훌륭한 의사가 될 거라고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도현은 마지막 남은 돈가스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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