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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첸을 멀리하라 - 불가능한 사랑
수잔네 아벨 지음, 김동언 옮김 / 뒤란 / 2024년 9월
평점 :
새벽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 그레타가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내가 왜 여기 있죠? 내 옷은 어디 있어요?"
갑작스레 찾아온 어머니의 치매, 그리고 그녀가 숨겨왔던 과거의 삶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고통받았던 어머니의 삶과 트라우마, 그곳에는 오랫동안 봉인했던 사람이 있었다.
오랜 세월 엄마가 침묵 속에 묻어둔 비밀!
암울한 시대, 위대한 사랑 『그레첸을 멀리하라 - 불가능한 사랑』 이다.
기자이자 보도국 앵커인 톰은 난민 수용 문제로 격렬하게 부딪히는 현장에 나가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은 어머니의 연락을 받게 되고, 그녀가 알츠하이머일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기억은 희미해지는데, 과거의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고 어느 유치원 앞, 마리라는 소녀를 찾는 그녀. 마리는 누구일까. 톰은 어머니가 오랫동안 숨겨놨던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고 사진 속 소녀가 어머니가 애타게 찾는 마리라는 걸 알게 되는데......
마리, 이 소녀를 찾아야겠다.
소설은 1939년부터 1953년까지 2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그 전후의 시간과 현재를 오가며 세대를 넘나드는 서사를 정교하게 그려낸다. 어머니 그레타의 젊은 시절과 현재의 치매와 싸우는 모습이 대비되며, 기억의 무게와 침묵 속에서도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톰이 어머니의 과거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발견하며 과거 참혹한 역사를 마주했을 때, 독자 또한 예기치 못한 부끄러운 역사 앞에 고개를 떨구게 된다.
이 소설을 통해 '브라운 베이비'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브라운 베이비'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연합군에 점령당했던 독일에서 흑인 미군과 독일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나치의 인종차별 영향이 남이 있던 독일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독일 연방의회에서는 어차피 독일 사회에 동화되지 못할 아이들이라며 해외로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시작된 '브라운 베이비 플랜'으로 수많은 혼혈아이들이 가족과 생이별하며 강제 입양이 되었고, 독일 여성들은 미군의 창녀라며 경멸의 시선을 받거나 무차별 폭행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66년 전,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그레테 그녀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가...
옮긴이의 말처럼 독일은 전쟁을 촉발시킨 가해자이지만 현실에 처한 사람들이 삶에서 겪어야 했던 궁핍함과 고단함은 나라를 따질 것 없이 엄밀히 중첩된다. 역사는 전쟁의 참혹한 면을 기록하지만 전쟁 후의 삶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 또한 몰랐을 아픈 역사와 진실을 직면하며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 속, 수많은 가족들은 생이별을 해야 하고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참혹한 현실에 고통받는다. 이제 멈춰야 하지 않는가. 우리 역사가 지금 증명해 주고 있건만, 왜 같은 역사를 반복하려 하는지, 결국 고통받는 건 현실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게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