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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읽는다 - 한 권으로 깊이 읽는 한강 대표 작품
강경희 외 지음 / 애플씨드 / 2025년 2월
평점 :
한강의 작품은 늘 나를 멈춰 세운다.
한 문장 안에서, 말해지지 않은 세계의 아픔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리고 나는 그 잔향을 오래도록 곱씹게 된다.
《한강을 읽는다》는 한강의 문학을 밀도 높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 깊이 있는 해설서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 내가 읽지 못한 『희랍어 시간』까지.
이 책은 다섯 명의 문학평론가가 ‘셰르파’처럼 독자를 인도하며 한강의 복합적이고 층위 깊은 서사를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이 세상에 던져온 이 질문들.
이 해설서의 문장들은 그것을 다시 끌어안고, 조용히 되묻고, 천천히 의미를 밝혀간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단지 세상을 등지려 한 것이 아니다.
동물적 본능마저 지운 채, 나무처럼 뿌리 내리고 싶은,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몸짓이다.
그 상징적 죽음 충동은 에코페미니즘과 만나며 기존 질서에 대한 강력한 반문이 된다.
『소년이 온다』는 묻는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끔찍한 잔혹과 함께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지켜낸 영혼의 무게를 함께 떠안는다.
눈물과 분노, 연민과 존경이 공존하는 이 작품을 다시 꺼내 들고 싶어졌다.
『흰』은 짧지만 가장 오래 남는다.
한강의 개인사를 넘어서, 세계사의 슬픔을 껴안는 이 소설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신성하고도 육체적인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죽은 언니에게 더운 피를 주고 싶었던, 언어도 침묵도 아닌 그 ‘사이’의 진동을 몸으로 써 내려간 서사.
『작별하지 않는다』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제주 4·3에서 베트남 전쟁까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며 이어지는 죽음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여전히 작별하지 못한 채, 혹은 작별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살아간다.
얼마 전 읽은 김도식 작가의 『바람이 소리가 들려』의 후속편처럼 느껴질 만큼, 두 작품이 맞닿아 있는 지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한강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잃고서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한강을 읽는다》는 그 깊이를 함께 들여다보게 해주는 눈이자 등불이었다.
읽고 나니, 내가 그간 읽어왔던 한강의 작품들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다가온다.
해설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문학’이었다.
《한강을 읽는다》를 함께 읽고 토론한 평친클나쓰의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깊은 독서였다.
한강의 문장을, 그리고 그 문장을 풀어낸 평론가들의 사유를 따라가며 우리는 각자의 생각과 삶을 되짚었다.
발제 1. 평론가들의 해석을 통해 이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장면이나 문장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한 순간이 있었는가?
발제 2. 우리가 읽어온 한강의 작품, 혹은 각자의 삶의 경험 가운데
–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세계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
이 질문들에 응답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는가?
이 질문들은 단지 작품의 해석을 넘어, 우리가 지금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현 시국에 대한 깊은 대화로 이어졌고, 우리는 저마다의 불편함과 무거움을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 마음 한켠이 조금씩 가라앉고, 말과 침묵 사이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 그리고 그 책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 이토록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느낀 시간.
한 문장, 한 대화, 한 마음의 흔들림이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