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
토니 페르난도 지음, 강정선 옮김 / 윌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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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 중 누가 가장 큰 소리를 내었는가?
*육근(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마음. 인간의 감각을 설명하는 불교 용어)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마음의 소리가 크다. 시각이나 청각 같은 외부 감각은 물리적 자극이 멈추면 고요해지지만, 마음이라는 감각은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도 수만 가지 소음을 만들어낸다.

"그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상대방 표정이 안 좋았던 게 혹시 나 때문인가? 앞으로 나를 계속 안 좋게 보면 어쩌지?”
“방금 내 말투가 너무 공격적이었나? 사람들이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오해하면 어떡하지? 아, 그냥 입을 닫고 있을 걸 그랬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연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하나의 생각이 씨앗이 되어 수백 개의 시나리오를 복제해낸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데, 왜 나는 내 생각 때문에 이토록 괴로운가?"

정신과 전문의 토니 페르난도는 20년간 진료실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그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한 가지 질문에 주목했다.

왜 나는 사소한 일에 무너질까.
왜 이미 가진 것보다 없는 것에 집착할까.
왜 생각은 멈추지 않고, 감정은 과장될까.

그리고, 그는 그 답을 찾아낸다.
놀라운 건, 그가 답을 찾은 곳이 최신 심리학 논문이 아니라 2,600년 전의 통찰이었다는 점이다.
석가모니는 고통을 운명이나 신의 시험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정밀하게 관찰했고, 반복되는 고통의 메커니즘을 해부한 인류 최초의 심리학자였다.

이 책은 부처의 가르침을 종교적 교리로 반복하지 않는다.
설득의 근거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임상 현장에서 검증된 경험이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아버지, 정서적 학대의 기억에 갇힌 딸, 폭력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 충동을 멈추지 못하는 운동선수.
그리고 “내가 옳다”는 확신에 중독되어 늘 분노해 있던 저자 자신까지.
그들이 겪는 문제는 달랐지만, 구조는 같았다.

✔ 고통의 기본값, 두카(Dukkha)
삶은 본질적으로 완벽히 만족스럽지 않다.
문제는 ‘불만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불만족을 없애려 애쓰며 더 움켜쥐는 태도이다.

✔ 생각의 폭주, 파판차(Papanca)
한 문장으로 시작된 생각이 과거 기억과 결합하고, 상상과 두려움을 덧붙이며 거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실제 사건보다 머릿속 해석이 훨씬 커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고통 속에 들어가 있다.

✔ 집착의 습관
행복도, 관계도, 신념도 ‘고정’시키려 할 때 괴로움이 시작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태도는 체념이 아니라, 유연함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고통을 다루는 실용성'에 있다.
저자는 마음챙김을 추상적인 명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는 '경험'으로 정의한다.
설거지를 하며 그릇의 촉감에 집중하는 '설거지 명상'처럼, 수행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일상의 틈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외부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을 재료 삼아 마음이 직조해낸 '파판차'의 직물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부처의 가르침을 빌려 그 직물을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법을 보여준다. 자신의 가르침조차 강을 건너면 버려야 할 '뗏목'으로 여겼던 부처의 말처럼, 결국 핵심은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데 있다.

책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모든 문장을 이해하거나 삶을 당장 바꾸겠다고 결심할 필요도 없다.
다만 멈추지 않는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멈춰 세울 단 한 문장을 발견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위로는 무척 현실적이다.

잔소리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스쳐 가는 바람일 뿐이고, 스트레스라는 '두카' 또한 결국 지나가는 구름이다. 내 마음만큼은 '파판차'에 매몰되지 않도록 가볍게 지켜내야겠다.

혹시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며 잔소리하는 이가 있다면, 달라이 라마의 말씀처럼
"연민을 실천하자" 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그게 결국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 선 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육근이 가만있지 않을 거 같은데, 이 일을 우짤까나...
오늘 밤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육두문자 대신 "연민을 실천하자"는 주문을 수시로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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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화살을 굳이 가슴에 꽂지 마라 - 한·중·일 50만 독자를 위로한 신경 쓰지 않는 연습
나토리 호겐 지음, 이정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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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늘도, 남이 던진 말 한마디를 꾸역꾸역 집에까지 들고 오셨나요?”
"남이 무심코 던진 말에 밤잠 설친 적 있나요?"

그 말이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박힌 것 같아 피흘리고 아파했던적.
그런데 사실 그 화살은 이미 땅에 떨어진 거다.
그걸 주워서 굳이 내 가슴에 다시 꽂고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땅에 떨어진 화살을 굳이 가슴에 꽂지 마라』는 일본 도쿄 미쓰조인 주지이자 ‘행동하는 승려’로 불리는 나토리 호겐이 전하는 실용적인 마음 안내서다. 10년 넘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전작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의 연장선에 있는 책으로, 최근에는 제이홉의 추천 도서로 알려지며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남의 말은 땅에 떨어진 화살과 같다.
내가 줍지 않으면 나를 찌를 수 없다.”

저자는 괴로움의 시작점을 ‘타인의 말’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붙드는 순간’으로 본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집착,
미움받지 않으려는 과잉 친절,
‘모두가 그렇다’는 말에 휩쓸리는 태도.
타인의 시선·평가·험담·비판 같은 것들이 왜 이렇게 오래 마음에 박히는지,
왜 자꾸 비교하고 자책하고 불안해지는지,
그 모든 게 ‘집착’과 ‘과도한 신경 쓰기’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결국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의 과열이었다.

책은 6단계 구조로 마음을 정리한다.

1️⃣ 집착이 괴로움을 만든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강박, 성과에 대한 집착, 비교 습관이 괴로움을 만든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2️⃣ 비우면 비로소 편안해진다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대신, 양보와 단순함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갖지 못해 즐거운 것’이라는 역설은 결핍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다.
3️⃣ 고통을 상처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울과 불안은 약해서가 아니라, 지나간 일에 머무르는 사고 습관에서 커진다. 분노가 치밀 때는 상대보다 ‘내 마음’을 먼저 보라고 조언한다.
4️⃣ 남을 내려두고 나를 바로 세운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상대의 문제.”
평가를 통제하려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잃는다.
5️⃣ 삶은 말과 태도로 드러난다
생각이 아닌 ‘느낀 것’을 말하고,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라. 삶의 품격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일상의 말투에서 드러난다.
6️⃣ 무심함을 알면 마음이 가벼다
무심함은 무관심이 아니다. 휘둘리지 않되,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태도다.

이 책이 더욱 특별했던건 “더 강해져라”가 아니라
“덜 붙들어라”라고 말하는 점이다.

불교적 지혜를 빌리지만 설교하지 않는다.
수행을 강요하지 않고, 감정을 억누르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존재 자체로 이미 괜찮다고."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나는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계속해서 화살을 주워 들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 하루,
굳이 꽂지 않아도 되는 화살이 있다면
이제는 그냥 두고 와도 되지 않을까.
아니, 그 화살 아주 지근지근 밟아서 부셔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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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감각 - 고요하게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장석주 지음 / 청림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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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장을, 당신의 뼈에 새겨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너무 빠르게 읽고, 너무 쉽게 잊는다.

화면을 스크롤하며 얻은 정보는 뇌를 잠시 스치고 사라질 뿐.


하지만 필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사각사각, 연필(또는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귀에 스며들 때,

그 소리가 오늘의 나를 붙잡아 준다는 것을.


장석주 시인의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개정판)

《필사의 감각》은 바로 그 머묾의 마법을 제대로 담은 책이다.

괴테, 톨스토이, 카프카, 헤세 같은 거장들부터 피천득·박완서·김애란까지,

총 68편의 감정을 다스려주는 문장으로,

인생을 깨우쳐주는 문장으로,

일상을 음미하게 해주는 문장으로,

생각을 열어주는 문장으로,

감각을 깨우는 문장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문장들은 '속도'에 지친 우리에게 '깊이'를 제안한다.

장석주 작가의 말처럼, 베껴 쓰는 일은 작가에 대한 오마주이자 자아와 문장이 하나로 섞이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펜이 종이를 지나는 사각거림은 그 자체로 명상이었고,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문장들을 따라 쓰다 보면 마음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특히 감정, 인생, 일상, 생각, 감각이라는 다섯 가지 테마로 나뉘어 있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처방전처럼 문장을 골라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문장 뒤에 덧붙여진 저자의 섬세한 해설은 필사 후, 사유의 지평을 넓혀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 네 문장을 써봐!"

남의 문장을 빌려 쓰기 시작해 결국 나의 내면을 채우고,

나만의 문장을 쓰고 싶게 만드는 힘!!!


모든 것이 빠르게 휘발되는 시대에 우리가 '필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비록 못난이 필체지만, 장석주 시인이 고른 68편의 문장을 따라 쓰며, 어지러운 내면을 고요히 정리해 본다.

펜 끝에서 문장이 다시 살아나 내 뼈와 살이 되는 시간.

마음이 무뎌졌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펼치고 사각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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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 행동을 결정짓는 40가지 심리 코드
폴커 키츠.마누엘 투쉬 지음, 김희상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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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동하세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세요!” 

“망설이지 마세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죽음을 막아주세요!”

이 두 문구중에 마음이 더 강하게 움직인 문구는 무엇인가?


두 메시지는 사실 내용이 같았지만, 죽음을 막자는 메시지가 무려 60%나 더 많은 참여를 이끌었다. 

인간의 마음은 긍정보다 부정적 조건, ‘잃음’의 가능성에 훨씬 크게 반응한다는 걸 보여 주는 실험 결과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에는 이 심리 법칙보다 더 강력하고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바로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효과'다.


최근 겨울철 혈액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적십자사가 ‘두쫀쿠’를 헌혈 답례품으로 내건 이벤트를 진행했더니, 헌혈의 집 앞에 오픈런 줄이 만들어졌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생명보다 죽음, 죽음보다 강한 건 '두쫀쿠'였다.


👉 헌혈 참여를 끌어낸 것은 선물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마음의 코드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실상 우리의 선택은 보이지 않는 무의식적 심리 규칙이 지배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규칙을 40가지 코드로 풀어낸 ‘마음 사용 설명서’다.

면전에서 문 닫기 효과: 부담 큰 부탁을 먼저 거절당한 후 작은 부탁은 훨씬 쉽게 받아들여진다.


사회적 태만: 함께하면 왜 더 게을러질까?

강요된 순종 이론: 신념에 반하는 말을 내뱉는 순간 믿고 싶어지는 아이러니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 사람에게 더 호감이 생긴다.

소유 효과: 잃는 것에 대한 고통은 얻는 기쁨보다 크다.

자이가르니크 효과: 끝나지 않은 일은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맥베스 부인 효과: 죄책감이 씻기 행위로 이어지는 심리적 연결고리.


이런 법칙들은 직장에서의 설득, 친구·연인과의 갈등, 반복되는 실수까지 우리가 매일 겪는 고민의 실체를 밝혀 준다.


책의 후반부에서 마주친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는 특히 흥미롭다. 

무언가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의 무의식은 온통 그 생각에 골몰한다. 

금지된 환영은 언제나 의식을 이기기 마련이다.


"오늘은 절대 과식하지 않을 거야." 

"오늘은 절대 빵을 먹지 않겠어."

"믹스커피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다짐하면 할수록 내 무의식은 빵과 커피라는 금기에 사로잡힌다. 

내가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믹스커피에 빵을 찍어 먹으며 괴로워했던 건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무의식이 금기를 버리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봤다. 심리학 법칙을 역으로 이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오늘은 반드시 과식해야 한다." 

"오늘은 꼭 빵을 먹어야지."

"오늘은 절대로 운동하지 않을 거야.“


며칠 이대로 살아봤다. 

그런데 폴커 키츠, 마누엘 투쉬 님! 시키는 대로 했더니 더 과식하고 빵도 더 먹어서 살이 더 쪘다.

운동도 정말 안 하게 된다. 

이거 제대로 된 실험 맞나요? 

심리학 법칙대로라면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서 덜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급격히 우울해졌다.


결국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차례를 하나하나 짚어본다. 

내 마음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40가지 코드 중 내가 놓친 번호는 무엇인지 다시 파고들어야겠다. 

마음을 안다는 것은 결국 나를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나를 이해해가는 과정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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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위의 가마괴
강지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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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 

이날도 어김없이 윤지의 비밀스러운 외출이 시작된다.


"너나 네 서방이나 똑같은 것들인데, 재수 없게 한 마리만 참교육하게 됐네.“


가정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반복되는 비명, 

신고해도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무력하게 멈춰 서던 공권력의 외면. 

그 틈새를 향해 날아가는 것은 검은 옷을 입은 '까마귀' 윤지다. 


디즈니플러스 〈킬러들의 쇼핑몰〉의 원작자 강지영이 내놓은 신작 소설 

『기린 위의 가마괴』는 이 서늘한 시작만으로도 독자의 숨통을 단숨에 조여온다.


"살아보니깐, 쥐어 터져야 낫는 병도 있더라."

낮에는 법무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사회의 규범 안에 머물지만, 

밤이 되면 너클을 끼고 폭력의 가해자들을 '참교육'한다. 

그녀의 철칙은 명확하다. 

죽이지는 않되, 

그들이 저지른 고통을 고스란히 몸에 각인시키는 것. 

하지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이 실현하는 정의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까마귀를 쫓는 수사망이 좁혀올수록, 윤지의 행보는 숭고한 구원과 위험한 범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탄다.


"기를 모아주세요. 서로 사랑해주세요. 정의를 실천하세요. 그래야 평화의 시대가 열립니다."

매일 아침 기린 모자를 쓰고 지하철 1호선의 기인처럼 행동하는 오빠 민기.

그의 외침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만, 

사실 이는 도시의 부정한 에너지를 정화해 거대한 재앙을 막으려는 숭고한 액막이 의식이다. 

그러나 이 기이한 광경을 견디는 못한 사람들의해 기린 모자가 분실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자가 사라지자마자 도담시에는 기괴하고 끔직한 재앙이 닥치기 시작한다.


"이제라도 자수하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윤지야, 우린 작은 결함을 찾아 고쳐놓는 사람이야. 다리가 무너지기 전에,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에, 건물이 주저앉기 전에 예방하는 거지. 조용히 세상을 구하는 일이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잡혀선 안돼.“


히어로는 늘 멋있을 필요가 없고,

정의는 반드시 박수 속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이 소설은 아주 집요하게 보여준다.


현실과 환상, 폭력과 구원,

비장함과 우스꽝스러움이 교차하는 전개는

강지영식 서사가 가진 힘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폭력을 끊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한 질문은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강지영 작가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과 장소를 엮어 흥미로운 스릴러를 창조하는 데 탁월하다. 

이번 작품 역시 기린 탈을 쓴 광인과 밤거리를 누비는 까마귀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통해 강렬한 서스펜스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토록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단권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도담시라는 무대에서 남매가 마주할 수 있는 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담겼다면 서사가 훨씬 풍성해졌을 것이다. 

전작 〈살인자의 쇼핑몰〉이 그러했듯, 이 작품 역시 연재작으로 확장되어 각 인물의 전사와 도시의 이면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망가진 세상을 구하려는 이들의 분투를 단편적인 에피소드로만 소비하기엔, 

그들이 짊어진 기린 모자와 까마귀의 날개가 너무도 묵직하고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고담시에 배트맨이 있다면 도담시에는 기린과 까마귀가 있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을 지나치는 기린과 까마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법으로 도저히 처벌이 안되는 법꾸라지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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