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을 지워라
빌 톰슨 그림 / 어린이아현(Kizdom) / 2011년 9월
품절


그림책을 펼치자, 이 그림책의 수상내역과 저자 빌 톰슨의 수상내역이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경력이 아닐 수 없는데, 무엇보다 그의 경력에서 눈에 띈 것은 일러스트레이션 대회에서의 수상내역이었다.

이 그림책의 삽화를 본 독자라면서 이 수상내역에 한번쯤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하는 삽화를 보면서 그의 정교한 그림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색연필과 아클림 물감으로 그린 삽화는 내리는 비, 옷의 주름, 머리카락, 나뭇잎 등을 너무도 정교하게 그려내었는데, 그림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삽화가 주는 강렬함은 최근에 읽어본 그 어떤 그림책보다 월등하다 생각된다.

<<공룡을 지워라>>는 글자없는 그림책이다. 요즘 글자없는 그림책을 많이 선호경향이 많은데, 활자에서 주는 정해진 내용 전개에서 벗어나, 삽화만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삽화를 통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금방 알게 되지만, 읽을 때마다 각각 다른 표현을 통해서 흥미롭게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한 권의 그림책이지만, 읽는 사람의 수만큼 ,수 만가지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린이들은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나 친구 이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더 큰 즐거움도 느낄 수 있으리라.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상상력을 키우게 되고, 책 읽는 즐거움도 알게 될 것이다.

비 오는 날, 세 명의 아이들이 공원으로 나왔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신나는 일을 기다리는 듯 즐거운 표정이다.
그러다 아이들은, 공룡 조각모형에 걸려있던 가방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그 속에는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분필이 담겨져 있었다. 누구나 어린시절에 분필을 가지고 땅 위에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세명의 아이들은 예쁜 색의 분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분홍색의 모자를 쓴 아이가 노란색 분필로 바닥에 해님을 그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은 듯, 반짝반짝 빛을 내더니 놀랍게도 비가 그치고 하늘에 해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났고, 그림에서 살아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며 즐거워했다.

이번에는 초록색 분필을 든 남자 아이가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림이 살아났다.
하지만, 너무도 놀란 아이들은 달아나기 시작했고, 놀이터 구석구석으로 숨고야 말았다.
남자 아이가 그린 것은, 바로바로 이빨이 날카롭고 사나운 티라노사우루스였기 때문이다.

이 공룡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이가 구름과 비를 그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비는 공룡의 몸을 서서히 지워갔다. 아이들은 분필이 든 가방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고, 이제 공원은 아이들이 분필을 발견하기 전의 고요함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뒤돌아 분필이 든 가방을 보는 남자 아이의 모습에는 무섭고 오싹했지만 놀라운 경험에 대한 아쉬움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보인다.
무서운 상황을 슬기롭게 모면했으니,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무료하기만하다. 심심했던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비가 그치고 해가 났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고, 신나고 즐거운 일들을 상상했을 것이다.
어린이들의 이런 마음을 이해한 작품 <<공룡을 지워라>>는 기발한 상상력과 놀라운 삽화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마술 분필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어할까? 건담처럼 멋지고 큰 로보트를 그리겠다는 아들래미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상상력은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가보다.

재미있는 상상과 글자없는 구성이 만나, 아이들의 상상력을 증폭시킨 <<공룡을 지워라>>는 읽을때마다 늘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아이들은 안내할 것이다.

(사진출처: '공룡을 지워라'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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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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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추천도서 목록과 중학교 1학년 추천도서 목록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그림책이 있으니, 바로 <<강아지 똥>>이다. 그림책이라고 하면 왠지 유아, 초등저학년의 전유물로 생각했었는데, 중학생 추천도서로 지정된 것을 보면 권정생 선생님이 전하려는 생각과 의미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꼭 기억하고 깨달아야하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강아지 똥>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다시금 그림책이 화두가 되었는데, 나 역시도 아이와 함께 책을 통해서 얻었던 감동을 화면을 통해서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림책과는 조금 달리 추가된 내용들이 있었는데, 상영시간 혹은 더 많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같이 작품을 감상하던 아이는 그림책이 각색된 부분에 대해 화를 내고야 말았다. 그림책 <<강아지 똥>>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일게다.
그림책을 펼치며 애니메이션의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아이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강아지 똥>>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이 그림책은 우리집 책장에서 가장 소중한 책 중의 한 권으로 자리잡고 있다.

골목길 담 밑 구석에 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눴다. 흰둥이는 조그만 강아지니까 그 똥도 강아지똥이 된다. 날아가던 참새가 "똥! 똥! 에그, 더러워...."하자 초라해진 강아지똥은 서러워 눈물을 흘렸고, 소달구지 바퀴 자국에서 뒹굴고 있던 흙덩이는 그런 강아지똥을 보며 빙긋 웃고 있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난 강아지똥이 대들자, 똥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개똥이라 놀리는 흙덩이 때문에 강아지똥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참이 지난 후, 흙덩이는 정답게 강아지똥을 달라며 어쩌면 더 흉칙하고 더러울지 모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산비탈 밭에서 곡식도 가꾸도 채소도 키우고, 여름엔 감자꽃도 피우던 흙덩이는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심했던 지난 여름, 키우던 아기 고추를 끝까지 살리지 못하고 죽게 했기 때문에 벌을 받아 달구지에 실려 오다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때, 덜컹거리며 다가오던 소달구지가 멈추고, 소달구지 아저씨는 떨어진 흙덩이를 소중하게 주워 담았다.
혼자 남은 쓸쓸한 강아지똥은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자신이 너무도 슬펐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던 어느 날, 강아지도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고, 강아지똥은 방실방실 빛나는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부러웠다. 하지만 민들레가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강아지똥이 필요했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강아지똥은 너무 기뻤고, 온 몸을 비에 맞고 잘디잘게 부신 후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강아지똥은 너무 기뻤고, 온 몸을 비에 맞고 잘디잘게 부신 후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

요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화두에 오르고 있는데, 자존감은 인생의 버팀목이고, 나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 된다. 또한 자기비판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놀라운 마음의 힘이라고 한다. ('아이의 자존감' 본문 5p)
세상에 쓸모없는 자연, 가치없는 사람은 없다. 가치는,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서로의 역량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강아지 똥>>은 스스로 가치가 없고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강아지똥을 통해서, 독자 어린이들에게 자존감을 높여주고 있다.
그림책 속에는 우리 어린이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밝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통해 강아지똥처럼 아이들의 마음 속에 녹아내신 권정생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진 듯 하다.

몇 번을 읽어도 읽을때마다 변하지 않는 감동을 선사하는 <<강아지 똥>>을 통해서 우리 어린이들이 자존감을 높이고,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덧붙히자면, 흔하디 흔한 흙덩이 한 주먹을 너무도 소중하게 주워 담은 소달구지 아저씨를 통해서 아이 스스로가 존재가치를 느끼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모의 작은 행동과 마음가짐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그림책 속에 상상 이상의 것을 담아 놓으신 권정생 선생님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사진출처: '강아지 똥'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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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18 - 오라, 환상의 세계로! 꿈 몽 손오공의 한자 대탐험 마법천자문 18
스튜디오 시리얼 글.그림, 김창환 감수 / 아울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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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동안 기다린 마법천자문 18권입니다. 17권을 읽기가 무섭게 18권을 기다렸는데, 18권을 읽은 아이는 또 19권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을 달래기 위해서 18권을 읽고 또 읽습니다. 마법천자문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집 어른들에게도 많은 인기가 있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책이 도착하면 서로 읽겠다고 아귀다툼(?)을 하는 걸 보면 마법천자문의 인기를 실감합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한자공부는 무조건 외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했는데, 요즘은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책들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마법천자문]은 아이들에게 한자가 저절로 기억될 수 있는 이미지 학습을 시도한 첫 번째 책은 아니가 합니다.
한자를 모르던 아이들도 친구와의 놀이에서 "바람 풍"을 외치는 모습을 주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손오공은 꼬불꼬불 어려운 글자들이 거리감이 느껴지는 한자와 친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18권의 내용이 흥미진진합니다. 혼세마왕이 잊혀졌던 과거가 생각나면서 아차아 태자와 이랑과 스승님과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림자를 짋어지고 빛을 향해 나아가라. 굳은 의지로 올곧게 바라보며 강한 마음이 이끄는 곳을 향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런 말을 되뇌곤 했던 스승님을 떠올리면서 혼세 마왕은 힘겨워하네요.
18권에서는 대마왕과 손오공과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됩니다. 더 강력해진 한자 마법, 더 강력해진 천자패의 위력이 보여집니다.
더 업그레이드 된 파워풀한 액션과 마법 기술이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을 거 같아요.
이 흥미로움이 한자가 이미지로 기억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듯 합니다.



마법천자문 각 권마다 새로운 한자가 20개, 그리고 복습 한자가 50회나 반복 된다고 하네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많은 한자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을 못했어요. 한자를 꼭 외워야한다는 부담없이 책을 읽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어린이들도 그럴 듯 싶습니다. 읽다보면 저절로 이미지화 되고, 한자 마법이라는 놀이를 통해서 쉽게 익히게 되므로 한자 학습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을 것만 같습니다.
더욱이 한자의 반의어와 동의어까지 자연스레 익힐 수 있으니, 즐거움과 학습이라는 두 가지의 쾌감을 모두 느낄 수 있답니다.

[마법천자문]의 손오공 캐릭터는 정말 특별합니다. 지고 싶어하지 않는 손오공의 승부욕,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정의를 위하 불물가리지 않는 정의감 등 손오공은 정말 사랑스러운 캐릭터입니다. 절대로 깨트릴 수 없는 요술(妖術)마법을 아주 무식하게(?) 깨버리는 손오공은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네요. 마법천자문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손오공과 같은 자신감과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3장 ’아버지의 마음, 아들의 마음’ 편은 만화책임에도 불구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내용을 다루었네요. 아이들에게 표현을 자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했습니다. 재미+학습에다가 감동까지 선사하는 18권이였습니다. 
[마법의 한자를 찾아라!][다시 알아보는 마법의 한자][달라진 부분을 찾아라][내가 만드는 마법천자문][마법의 한자를 낚아라!][마법의 한자 퀴즈를 풀자!] 등 재미있게 학습 할 수 있는 부분도 수록되어 있으니, 앞서 배운 한자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간혹 이야기의 흥미로움에만 치중하여 학습적인 부분을 잘 활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거 같아요. 
마법천자문은 여러가지 알차고 재미있게 학습 할 수 있도록 구성을 다양하게 담았습니다. 8급에서 3급까지의 한자를 두루두루 수록하였다고하니, 한자 카드 등을 이용하여 재미있게 활용하여 한자급수에도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네요.

(사진출저: ’마법천자문 18’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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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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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으면서, 저자는 전봉준을 전면에 내세우면 이야기가 진부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전봉준의 이야기는 쓰지 말자.'(본문 162p)고 결심했다고 한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푸른숲 역사동화 첫번째 이야기인데, 전봉준을 앞세우지 않고 열세살의 어린이를 주인공을 내세워 아이의 눈으로 그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게 한 점은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이질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성으로, 저자의 이런 결심이 결부되어 한편의 멋진 역사 동화로 탄생된 듯 하다.  

"녹두 장군 정봉준이 김경천의 밀고로 관군에 붙잡혀 처형되었다."
만약, 전봉준이 김경천이 밀고할 것을 알고 있었다면? (표지 中) 

  

저자는 역사 속 이야기에 상상력을 부가하여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고 있는데, 보부상의 아이를 통해서 동학 농민군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뿐만 아니라, 홀로 남은 아이가 어려운 상황에서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여정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1894년 1월 고부 군수 조병갑의 괴롭힘을 참다못한 농민들이 전봉준의 지휘로 들어일어난 이 시건은 백성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넓혔다. 동학 농민군을 잡겠다고 조선 조정에서는 청을 불렀고, 청나라 혼자 조선에서 힘을 쓰게 놔두지 못한 일본도 합세하게 되었다.
보부상인 '나'는 작은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처음 본 열세 살의 그날과 그 이후의 몇 달동안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웅덩이의 물은 오므린 두 손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물에 담긴 얼굴도 손 안에 그대로 남아 있던 그 물을 천천히 마셨던 그날, 아버지는 노스님에게 누군가에게 전할 서찰을 건네 받았다. 

"아버지는 서찰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알고 계세요?"
"그래, 알고 있다. 이 서찰에는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다. 그래서 이 서찰은 절대 아무에게도 보여서도, 빼앗겨서도 안 된다. 우리의 목숨까지 걸린 셈이다. 그래도 얼마나 좋으냐.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이 중요한 물건을 아버지의 손으로 전하게 되었으니" (본문 17p) 

  

그렇게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전라도로 향하지만, 도중에 아버지가 객사하면서 아이는 세상 천지에 홀로 남게 된다. 갈 곳도, 아이를 기다리는 곳도 없어 막막하던 어느 날, 한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할 만큼 중요한 서찰을 전달하려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이는 혼자 힘으로 전라도로 향한다.
누구를 만나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막막했던 아이는 서찰을 들여다보지만, 한문으로 적힌 글을 읽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서찰이기에 아이는 한자를 외워 한자를 알 법한 사람들에게 2자씩, 3자씩 따로 물어보며 그 해답을 찾아간다.
嗚呼避老里敬天買綠豆 (어호피노리경천매녹두)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는 일본 군사들을 보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서찰의 의미를 파악하게 되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는다. 

"아저씨, 녹두 장군이 누구예요?"
"동학 농민군의 대장, 전봉준이 녹두 장군이다. 몸집이 녹두처럼 작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몸집은 작지만 그래도 그 기상은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한다." (본문 101p) 

"가야 할 곳을 확실히 찾은 것 같구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도 그 길을 잃지 마라." (본문 102p) 

"아이야, 행복하다는 말..........난 칠십 평생을 살면서 그 말이 양반의 것인 줄 알았다. 네가 그 말을 쓴 걸 보니 동학 농민군의 말처럼 좋은 세상이 오려나 보다." (본문 115p) 

  

아이는 동학 농민군을 둘러싼 전쟁을 직접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동학 운동에 대해, 평등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달아간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는 전봉준과 동학 농민들을 앞세우거나, 조선 조정을 앞세운 역사를 보여주곤 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아이의 시각으로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해 바라봄으로써, 독자어린이 스스로가 역사에 대해 재조명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역사 동화 속 주인공을 통해서 역사적 순간을 대면하면서, 역사에 대한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해보는 과정은 역사를 바라보는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다. <<서찰하는 아이>>는 어린이의 눈높이를 통해 바라보는 '동학 농민 운동'이라는 역사적 순간에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음으로써,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주는게 일조한다.
더불어,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주인공을 통해서 독자 어린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함께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다는 동화적 메시지 또한 전달하고 있어 그 의미가 배가 된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본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역사를 재조명함으로써 좀더 나은 미래를 보고자 한다. 이런 부분을 볼 때, <<서찰을 전하는 아이>>가 전하는 역사는 더 나은 미래를 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며,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도 될 수 있기에, 앞으로 출간될 <푸른숲 역사 동화 시리즈>에 더 큰 기대를 걸어본다. 

(사진출처: '서찰을 전하는 아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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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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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자서전 써오기'를 숙제로 받는다면,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리 가족이지만, 그 속에 잔잔하게 전류가 흐르고 있다. 예민한 사춘기 딸,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괄괄한 엄마인 나로 인해 언제 파파박하고 불꽃이 튈지 아무도 모른다. 고요한 듯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신경전은 마치 폭풍전야같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요즘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해보려하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들어보려고 하며, 딸아이도 내게 마음을 열고 고민을 이야기하려 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하는 거야." (본문 197p)라는 말처럼, 그렇게 우리 모녀는 진화를 꿈꾼다. 

어느 가족이든 사사로운 고민과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불량 가족 레시피>>에 등장하는 가족은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보다 그 상태가 더 심각하다.
이야기는 여울이가 도덕 꼴통이 '가족 자서전 써오기' 숙제를 내주면서 시작된다.
고등학교 1학년인 여울이에게 가족은 불을 뿜는 용이나 다름없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따발총 같은 잔소리는 절대 늙지 않는 꼬장꼬장한 슈퍼 할매가 버티고 있으며, 채권추심 하청 사업을 하는 쉰넷의 아빠는 세 명의 여자와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둔 탓에 여울이는 이복형제인 오빠와 언니를 두었는데, 세 명의 엄마는 아이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모두 집을 나갔다. 여울이보다 네 살 위인 전문대 다니는 오빠는 다별경화증 때문에 기저귀를 차야하고, 고3 수험생인 언니는 여울이만 보면 거침없이 욕을 쏟아 낸다. 뿐만 아니라, 평생 주식에 목매이는 뇌경색 삼촌은 빚때문에 형식적인 이혼을 하게 되지만, 미국으로 간 아내와 아이들과 연락두절이다. 이 가족에게 '엄마'는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다.
정말 그야말로 이 시대에 확실하게 차별화된 가족구성원이며 불쌍한 영혼의 집합소(본문 10p)다. 여울이는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를 세우며 독립을 꿈꾼다.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를 통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댄서였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 없는 엄마를 상상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보곤 하는데, 암울한 가족 틈바구니에서 코스튬플레이는 여울이의 돌파구다. 코스튬플레이 동호회에서 알게된 세바스찬을 짝사랑하는 여울이는 그렇게 혼자만의 행복을 꿈꾸어본다.
그런 와중에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빠로 인해 그동안 곪아왔던 가족들이 상처가 하나씩 터지기 시작하면서 가족은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된다.
고3 수험생이지만, 아빠의 일을 돕누느라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언니와 아빠의 다툼으로 가출을 감행한 언니를 시작으로, 주식으로 대박의 꿈을 꾸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삼촌과 아빠의 불화로 삼촌 역시 집을 나가고, 병에 대한 불안과 치료비 걱정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오빠 역시 아빠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가출을 하게 된다.
그렇게 가족이 해체되고, 사랑하는 세바스찬에게 무참히 차인 여울이는 몸져누운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마음 속에 무겁게 짓눌린 앙금을 씻어내면서 가족의 면면을 다시보게 되고, 진짜 용기를 내게 된다. 

재미있는 일들만 생각하고 싶은데 이놈의 집구석은 사람을 깃털처럼 가볍게 놔두질 않는다. 알고 보면 다들 자기 앞에 놓인 일들이 감당이 안 디어 본의 아니게 서로를 괴롭혔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나는 다른 가족의 삶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지금 혼자 남은 이 상황이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느리게 꿈틀대는 알 수 없는 움직임들 때문에 혼란스럽다. (본문 196p) 

여울이네 가족은 만나면 서로 으르렁거리기 바쁘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문제가 많은 가족처럼 보이지만, 다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양로원에 들어가 남은 여생을 보내는 일이 꿈인 할머니는 며느리가 차려 준 밥상을 받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 아이를 키워야했으니 여울이에게 퍼붓는 악다구니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는 삼촌의 주식에 대한 기대, 고질병 때문에 스무살의 나이에 기저귀를 차야하는 오빠의 상처, 눈앞의일만 생각하고 뒤는 생각 하지 못하는 폭력적이며 권위적인 아빠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아빠의 무거운 어깨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너한테는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 생활을 책임지고 싶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본문 187p) 

음성지원이 되는 카랑카랑한 할머니의 억센 사투리는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진다. 아픈 아들과 손자, 쪼들리는 생활과 어른 손자들 때문에 삶이 버거운 할머니지만, 상처를 가진 이들 모두를 보듬고 있었다.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억세고 괄괄한 할머니였지만, 그래도 그들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둘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그 꼬장꼬장함이 아니였을까 싶다.
이제 여울이는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에 맞춰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용기를 가져본다.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족이지만, 이제야 비로소 가족이 하나로 뭉쳐져야 할 때임을 알게 된 것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하는 거야."
그렇다. 이제 우리 가족의 진화가 필요하다. 더없이 위태로운 불량 가족이지만. (본문 197p)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본문 103,104p)라고 생각했던 여울이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본문 103p)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듯하다. 이제는 습관처럼 달고 다니던 우울함과 엄마의 빈자리를 잊게 해준 코스튬플레이가 없다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그 마음을 채울 수 있게 된 여울이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17살 여고생 여울이를 통해서 바라보는 가족이 주는 의미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서, 나 역시도 다시금 내일을 위한 진화를 시작해본다. 내게 있어 진화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원천은 바로 '가족'이다. 여울이는 잠시 잊었던 가족의 힘을 일깨워준 고마운 존재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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