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빈센트 - 행복한 책꽂이 03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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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라면 그 강렬한 색체와 더불어 광기서린 삶으로 더욱 유명한 화가다

그 만큼 유명한 화가로는 겨우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피카소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가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그림도 그림이지만, 살아 생전에는 단 한 장의 그림 밖에 못 팔았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는데 죽고 난 후 엄청난 평가를 받았다는 극적인 과정에 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예술가의 광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평생 가난했고 인정받지 못했으며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광기에 휩싸였고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결국은 권총으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800여통의 편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더욱 소상히 알려질 수 있었다

 

박홍규는 평전을 쓸 때 주류의 인식과 다른 관점을 갖는데, 상당히 신선한 면이 있다

무엇보다 위인들을 신격화 시키거나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하는 태도가 마음에 든다

"까뮈를 위한 변명"에서 보여 준 것처럼 그는 고흐 역시 우리 가까운 곳으로 데려 오고 싶어 한다

고흐는 절대 광기에 휩싸인 삶을 산 게 아니었으며, 다만 열심히 살려고 애썼을 뿐이다

고흐를 "내 친구"라고 명명한 것은 고흐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신비주의를 걷어 버린 저자의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지나치게 주류 인식에 대해 반발한다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

 

고흐의 삶을 살펴 보면 의외로 성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16세부터 숙부의 화랑에서 근무한다

학교 성적이 꽤 좋은 편이었으나, 자기 자신에게 침잠하길 좋아했던 고흐의 적성에는 잘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 독서를 열심히 한다

저자는 고흐의 독서 목록을 여러 차례 인용하는데, 의외로 수준있는 책들이 많아서 놀랬다

그리는 일 말고 별다른 일이 없었던 고흐는 독서와 그림 그리는 일을 매일 규칙적으로 행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가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직업으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고흐가 정말 그림을 직업으로 생각했다면, 좌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붓을 꺽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관찰하는 자연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추상은 분명하게 거부했다

그런 이유로 가장 존경했던 화가도 다름아닌 농부의 화가 밀레였다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노동자 계층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전도사가 되어 광산촌으로 파견된 얘기는 널리 알려졌다

거기서 처음 습작을 시작했고 "감자 먹는 사람들" 등을 그렸다

고흐는 이 하층민들에 대한 애정을 평생 유지했는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 그의 애정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고흐는 다소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비사교적이라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유전성 간질 때문에 가끔 발작을 하기도 했으며 외모가 특이해 호감을 사기 어려웠다

(자화상을 보면 그렇게 특이한 것도 아닌 듯 한데...)

그는 얼마 안 되는 월급까지 광부들을 위해 썼지만, 결국 아무런 감정적 공감도 얻지 못한 채 쓸쓸하게 광산촌을 떠나야 했다

기독교의 권위주의와 교조주의를 비판했던 고흐는 전도사직에서 곧 해임됐다

 

고흐의 일생 중 제일 유명한 사건은 고갱과의 공동 생활일 것이다

저자는 고갱을 거짓말 잘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정의했는데, 고흐가 미쳤다는 강력한 증거가 바로 고흐의 자서전이라면서 그 부당함을 얘기한다

고갱 전기 작가들은 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주식 중계인이었다는 전적에 비춰 보면 고흐보다는 세속적 이익에 더 밝았을 것 같기는 하다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던 고흐는 고갱의 입주를 학수고대 한다

그는 여러 화가들에게 의사타진을 했는데 그림 한 점 못 파는 이 내성적인 화가의 청에 응할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고갱이 오겠다고 승낙했으므로 고흐는 꿈에 부푼다

당시 고흐는 아를에 정착한 후 커피와 압셍트에 완전히 중독되어 무절제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고흐는 고갱이 자기 삶을 바로잡아 줄 거라 믿었다

 

저자는 꼭 고갱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고흐와 함께 지낸다는 건 어려운 일일 거라 말한다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던 동생 테오마저 고흐와 함께 산 2년 동안 몹시 괴로워했다

그들이 평생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80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애착 관계를 유지했다고 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흐와 고갱의 공동체 생활비를 테오가 지불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는 고갱도 다소 뻔뻔한 것 같다

테오는 화가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가엾은 형을 위해 고갱에게까지 생활비를 대 준 것일까?

어쨌든 형에 대한 테오의 헌신은 놀랍기 그지 없다

화상이었던 테오는 당시 비주류였던 인상파 그림들을 사 모아 고객에게 팔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는 형의 예술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동안 형의 생활비를 댔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

더구나 자신이 결혼한 후에도 형의 생계를 책임질 정도였다

 

고흐는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한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 눈물나는 사연이 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다

내가 여자보다 그림을 더 사랑하긴 하지만, 서른 다섯이나 먹어 가족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산다는 게 얼마나 서글프고 쓸쓸한지 모르겠다...

아무리 고립을 좋아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주고 받는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고흐는, 생계를 꾸려 나갈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배척받는다

화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뮤즈가 있기 마련인데, 고흐는 평생 제대로 된 여자 모델 하나 없이 작업했다

평생을 여자들에게 둘러 싸였던 피카소를 생각하면 더욱 비교가 된다

유일하게 함께 살았던 여자는 하필 애가 다섯이나 딸린 창녀였다

심지어 처음 만났을 때조차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피임약이 없던 시절이라 창녀들은 끊임없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했다

고흐는 그녀에게 애정을 보였으나, 테오는 그녀와 계속 동거한다면 생활비를 끊겠다고 위협하고 그녀 역시 돈이 궁해지자 다시 창녀 생활로 돌아가길 원해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진다

고흐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창녀가 아니면 사랑을 나눌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저자는 고흐의 죽음을 자살로 보지 않는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죽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친 상태에서 자살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본다

진짜 사인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그림이 미친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보는 것에는 동의한다

특히 죽기 직전에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의 경우 그림에 광기가 서려 있다고 해석하는데, 저자는 단호히 주류 해석을 거부한다

고흐는 정신 분열병이 아니었고, 단지 유전적 간질을 앓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테오도 이 병으로 6개월 후 사망하고 그의 여동생도 죽었기 때문에 집안 내력일 뿐 특별히 고흐가 미쳤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고흐는 정상적이 삶을 살았다는 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그렇다면 고흐는 더욱 불행했을 것이다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속적인 즐거움도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림도 인정받았으면 좋겠고, 생계 걱정도 안 하고 살면 좋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었다

저자는 이 가엾은 화가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 "내 친구"라고 명명한다

고흐의 그림에서 상징성 대신 관람자의 느낌을 중시한 해석은 마음에 든다

"빈 의자" 등의 그림에서 어려운 상징을 뽑아 내기 보다는, 고갱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렸을 것이라는 소박한 해석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당대에는 형편없는 평가를 받다가 사후에 갑자기 유명해진 화가는 아주 드물다

(반대의 경우는 흔히 있다 생전에 높이 받들였으나 죽고 나서 가치가 하락한 경우 말이다)

르네상스의 대가들만 봐도 그림은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루벤스 같은 경우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유럽 왕실을 돌아 다니며 외교관 역할을 했을 정도다

고흐처럼 생전에는 철저히 무시되다가 사후에 갑자기 부각되는 건 아주 드문 경우다

그렇다면 결국 예술가 역시 살아 생전의 행복을 누리길 원할 것이다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술적 세계와 (즉 사회적 성공) 개인의 삶이 아름답게 조화되길 바란다

 

고흐의 가치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테오의 아내 수산나의 공이 크다

그는 1년 밖에 못 산 가엾은 남편 테오를 위해 고흐가 보낸 편지들과 그림을 수집한다

남편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즉 수산나가 괴팍한 시아주버니의 예술 세계를 이해했던 건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좀 삐딱하다)

수산나는 테오에게 보낸 800여통의 편지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 놀라운 집념을 보이고, 흩어진 고흐의 그림들을 열심히 수집해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

(고흐가 죽었을 당시 가족들은 그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테오가 모두 상속했다)

아들은 세계 각 미술관에 전시되야 한다는 어머니의 의견을 무시하고 한 데 모은 후 국가에 기증해 오늘날 반 고흐 미술관이 탄생했다

(상속세 문제 때문에 기부했다고 한다)

현명한 제수와 조카 덕에 우리는 편하게 앉아 이 위대한 화가의 일생을 살펴 볼 수 있다

적어도 가족 관계 측면에서는 고흐가 행복했음이 분명하다

살아 생전에는 동생의 지원을 받고, 죽어서는 동생 가족 덕분에 위대한 화가로 거듭났으니 말이다

 

광기 서린 예술혼이라는 부담스런 수식어 대신, 그림을 사랑하고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기 좋아했던 소박한 화가를 만나고 싶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

종이도 갱지를 사용해 좀 어둡긴 하지만 가벼워서 보기 편하다

대신 칼라 그림이 없어 약간 아쉽다

고흐의 훌륭한 그림들은 큰 도판으로 구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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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고종희 지음 / 한길아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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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랫만에 읽는 르네상스 그림 이야기다

한동안 서양화에 빠져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 그림들만 열심히 탐독했는데, 몇 권 읽다보니 중복되는 얘기가 너무 많아 잠시 밀쳐 뒀는데, 마침 도서관에 주문한 책이 도착해 열심히 읽었다

피사 대학에서 르네상스 그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의 약력이 말해 주듯, 꽤 수준있고 좋은 설명들과 엄선한 그림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현학적이지 않아 더욱 좋다

 

조토 이후 갑자기 뛰어난 솜씨를 보인데는, "명화의 기법"에서 호크니가 지적했듯 광학의 발견이 한 몫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거장들의 솜씨는 놀랍기 그지없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만 다뤘는데, 앞뒤 표지에 모자이크 식으로 배치된 수많은 초상화들을 보면서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는데 놀라는 게 아니라, 인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라 감동적이다

그 순간의 인상과 느낌을 포착해 수백년 후의 독자들에게도 그림 속의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독일의 위대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초상화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가 직접 그린 세 점의 초상화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도를 도입했는데, 정말 성자처럼 보인다

또 그의 후원자였던 막시말리안 1세의 초상은 푸른 배경과 어울려,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율리우스 2세"라든가, "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 등을 보면, 고집스럽고 권위적이며 탐욕스럽기까지 한 역대 교황들의 이미지가 잘 포착된다

사진처럼 정교하다고 하지만, 사진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르네상스인들에게 사진과 대가의 초상화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으면, 역시 초상화 쪽을 택했을 것 같다

라파엘로는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보다 후대에 훨씬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한다

무릎까지 보여주는 도상이라든가, 대각선 방향으로 앉아 시선을 아래로 두는 방식 등, 기존 초상화 형식을 탈피해 후학들에게 라파엘로 양식을 모방하게끔 했다

그는 홀로 작업한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중소 기업 수준의 공방을 거느리고 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눴다는데, 붉은 색의 강렬한 색감이나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본떴음에도 신비한 분위기 보다는 인물의 사실적 분위기를 강조한 "마그달레나 스트로치" 등을 보면 과연 세속적인 영광을 누리고자 한 적극적인 성격이었을 것 같다

 

흔히 화가라고 하면 고흐처럼 예술혼이라는 광기와 싸우면서 세상과 대립하는 외로운 존재라 인식되기 쉬운데, 르네상스 화가들을 보면 그림이 출세의 방법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화가도 직업인 이상, 세속적 성공을 지향하는 걸 탓하는 사람이 이상하기도 하다)

루벤스가 17세기에 유럽 왕실을 돌아다니며 외교관 역할을 한 것처럼, 르네상스 화가들도 교황과 제후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 갔다

특히 티치아노 같은 경우는 그의 초상화 모델이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할 정도였다고 한다

교황 파울루스 3세 같은 경우는 그를 로마로 부르기 위해, 티니아노의 아들에게 성직을 수여한다고 꼬실 정도였으니 가히 그 명성을 알 만 하다

(티치아노는 아들의 성직 수여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교황의 초상화를 스케치만 하고 베네치아로 돌아가 버린다 감히 교황의 초상화를 그리다 말다니, 대단하다!!)

뒤러나 라파엘로 등도 화가로서의 명성을 이용해 작위까지 수여받았을 정도로 교황과 제후들의 총애가 대단했다

 

오늘날 르네상스 시대의 명작들을 보면서 그 위대함에 감탄하지만, 실은 대중에게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됐다는 속사정을 듣고 보면 왠지 모를 허탈감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 경위나 화가의 돈벌이 수단이었다는 외적인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이야 말로, 아무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부르주아들의 경제적 여유를 피력하기 좋은 장르라고 한 부어스틴의 정의를 다시금 확인한다

베네치아나 피렌체, 플로방스 등의 산업 발전이 없었다면 르네상스의 화려한 예술도 부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예술 후원을 당연시 하는 그 전통이 부럽다

돈만 많으면 대접받는 게 아니라, 예술을 이해하고 후원할 수 있는 심미안까지 갖춰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다

 

다 빈치는 초상화를 겨우 다섯 점 밖에 그리지 않았는데 (그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림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신비롭고 긴 여운이 남는다

"모나리자"야 워낙 유명하니까 달리 말할 필요도 없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지네브라 데 벤치"라든가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등의 매력도 상당하다

이 두 여인의 초상을 한 번 보면, 쉽게 그 형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모나리자"의 매력이 보일듯 말듯 한 신비로운 미소에 있듯, 다른 두 그림도 독자에게 묘한 인상을 준다

입술을 앙 다문 지네브라 데 벤치나, 담비를 안고 있는 우아한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인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체칠리아는 스포르차 궁의 가장 매력적인 여인이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 미모를 짐작할 만 하다

다 빈치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세 초상화에 모두 잘 드러난다

 

명작에 관한 책은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인쇄된 그림으로 봐도 가슴이 설레는데, 실제로 보게 되면 얼마나 흥분할지 모르겠다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직접 본 이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림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쌓고 미술관에서의 관람에 도전해 보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정말로 인간의 기본 욕구인 모양이다

이렇게 많은 그림책들이 나와 눈을 즐겁게 해 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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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인간적 얼굴
프랑수아 베르나르 미셸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끌리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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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일 먼저 좋아했던 화가가 고흐다

배낭 여행을 갔을 때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직접 봤는데 (다른 그림과는 달리 유리관 안에 들어 있어 좀 서운하긴 했다) 그 강렬한 색채와 터치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경험을 한 뒤, 고흐의 그림에 푹 빠졌다

더구나 그는 대단히 극적인 삶을 산 화가로, 광기와 천재성이라는 주제에 단골로 등장한다

말년에 아를의 정신병원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고흐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자살로 마감한 그의 생은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은 고흐가 죽기 전 20개월 동안, 그의 정신 상태를 분석했다

고갱과 함께 살다가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귀를 술집 창부에게 건네 준, 바로 그 엽기적인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저자가 보는 관점은 고흐는 미치지 않았고, 다만 측두엽 간질과 우울증을 앓고 있을 뿐이었는데, 질병에 대해 무지한 당시 의사와 주변 사람들이 고흐를 자살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고흐의 정신 상태에 대해 분석한 글을 좋았지만, 논리의 비약이 너무 많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죽기 몇년 전 그를 치료한 세 명의 의사에 대해, 천재를 자살로 몰고 갈 만큼 형편없는 실력이었다고 질책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 당시 의료 수준의 한계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 아닐까?

푸로작 몇 알만 있으면 우울증 따위는 쉽게 털어 버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정신 병리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발달한 현대에도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다

더구나 고흐와 같은 열정과 광기를 가진 천재가 현대적인 정신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평범한 삶을 살았을지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고흐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닥터 가셰나, (이 그림은 일본인에게 수백원 대의 최고가로 경매되는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닥터 레이, 혹은 닥터 페이트롱 등에 대해 저자는 그들의 학교 성적까지 들먹이며 천재를 돌보기에는 형편없는 실력이었다고 혹평한다

몇 년만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 통과 점수가 몇 점이었는가까지 조사한 집요함이라니!!

특히 죽기 직전에 그를 돌본 신경증 전문의 닥터 가셰는 본인이 신경증에 우울증 환자였기 때문에 고흐를 그저 실력있는 화가라고 인정해 줬을 뿐, 아무 치료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뒀다고 비난한다

심지어 배에 총을 쏘고 자살한 날도 고흐를 방문한 후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둬 이틀 뒤 패혈증으로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 이것은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이다) 자살 방조 내지는 심지어 타살 혐의까지 있다고 비난한다

 

고흐네 가계도를 보면 우울증이 유전됨을 알 수 있다

평생 그의 생계를 책임진 동생 테오는 고흐가 자살한 뒤 6개월만에 역시 요양소에서 생을 마감했고, 여동생 빌헬민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요절했다

고흐의 이모나 어머니도 간질 발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또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비록 그런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지라도 요즘처럼 고흐가 인정을 받았다면, 과연 자신의 귀를 자른다든가, 자살까지 가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을까?

고흐 같은 위대한 천재가 시대로부터 버림받는다면, 꼭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성격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

당장 내일 먹을 빵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고, 가족도 없고, 동생에게 평생 얹혀 살며 열정적으로 그림 작업을 하나 겨우 단 한 장의 그림 밖에 팔 수 없는 처지라면 자살까지는 안 가더라도 평범한 성격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고흐는 세속적 성공이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외롭고 험한 예술가의 길을 간 대표적인 화가다

그래서 고흐를 생각할 때마다 원래 예술가란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다, 세속적 욕망에 초연한 가난한 삶을 사는 위대한 영혼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임을 새삼 느낀다

나는 늘 살아서 영광을 누리는 것과, 고흐처럼 죽어서 위대하게 평가되는 것 중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에 대해 궁금했는데 양자택일 할 수는 없겠지만, 사는 동안 어떤 대우를 받는가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고흐는 위대한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시대에 산 불행한 예술가다

마을 사람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격리 수용시켜 달라고 시장에게 청원한 후 정신 병원에 갇히게 된 빈센트의 심정은 어땠을까?

미친 사람들 속에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서, 그나마 고흐가 그림으로 자신의 명료한 의식을 드러낸 건, 고흐 자신을 위해서나, 그의 예술을 감상하는 현시대인들을 위해서나 다행스런 일이다

 

저자는 측두엽 간질을 미친 것과는 구별되는, 감기와 같은 단순한 질환에 불과하다고 보는데 이게 옳은 의견인지 잘 모르겠다

측두엽 간질은 전신성 경련을 일으키지 않지만, 발작이 일어나면 살인을 저지르고도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측두엽 간질 환자가 발작하면 미친 상태가 된다고 이해했는데 (낫을 들고 살해한 후 본인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진단명은? 답=>측두엽 간질, 이런 식으로) 표면적인 이해에 불과해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다

그렇지만 저자 역시 정신 병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표면적이고 지엽적인 지식을 고흐라는 특정한 인물에게 적용시키기 위한 논리적 비약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우울증의 공격성이 자신을 향한다는 건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고흐 역시 귀를 자른다거나 자살하는 식으로 내제된 분노를 스스로에게 떠트렸다

요즘 같으면 정신분열증이 아닌 이상 (사실 이런 경우일지라도) 수용소에 가두는 경우가 적은데, 고흐 시대에는 확실히 격리와 감금으로 정신병을 치료했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고흐 자신이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해 요양소 생활을 할 것을 원하기도 했다

시대에 의해 타살됐다는 저자의 마지막 결론은 도저히 수용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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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비밀 -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 한길아트 / 200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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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평이 신문에 났을 때 정말 사고 싶었지만 워낙 비싸 엄두를 못 냈다

서점에 가 보니 아예 비닐로 싸여져 들여다 볼 수도 없었다

아쉬워 하던 차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무척 기쁜 마음으로 빌려 왔다

책값이 비쌀 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 크기도 대단히 크고 두껍고 그림의 인쇄 상태도 아주 좋다

그림 보는 재미에라도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인상파 이전의 그림들을 보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천재라는 확신을 가질 만큼 그 놀라운 그림 솜씨에 탄복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현직 화가인 저자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사람의 기술로 사진처럼 완벽하게 그리는 게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특히 드로잉의 대가인 앵그르의 드로잉 전시회를 본 후 저자는 절대 눈과 손만 가지고는 저같은 완벽한 그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대담하게 마치 사물을 대고 그린 것처럼 한 번에 그려 낸 앵그르의 솜씨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호크니가 발견한 르네상스 화가들의 비법은 바로 카메라 루시다와 카메라 옵스큐라이다

즉 광학의 원리인 것이다

사실 정확한 원리는 책을 읽으면서도 이해를 잘 못했다

학교 다닐 때 물리 시간에 그 쉬운 안경의 원리도 이해못했는데, 거울-렌즈나 카메라 장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 무리다

어쨌든 결론은 이런 장치들을 이용해 화가들이 종이에 투영된 상을 직접 대고 그렸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만 그린 게 아니라 그림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모작을 하듯, 광학 장치를 이용해 종이 위에 투영된 인물을 따라서 그렸다는 것이다

호크니는 실제로 당시의 광학 장치들을 이용해 인물을 그려 본다

 

광학 장치를 이용했든 안 했든, 그런 사실들이 대가들의 위대함에 손상을 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과학적인 장치들은 대가들의 그림에 위대함을 더해 줬다

그런데도 그런 장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르네상스 걸작들의 가치를 깍아 먹는 것으로 간주하는 요즘의 세태를 아쉬워 한다

사실 나도 그 부분이 참 궁금했다

책에도 나왔지만 13세기 조토의 그림을 보면 지극히 평면적인데, 15세기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입체적이다

인물들의 표정이 살아 있고, 빛의 대가답게 명암의 차이를 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갑작스런 기술의 발전이 단순히 천재이기 때문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광학 장치를 이용해 그린 갑옷은 사진으로 찍은 갑옷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광학으로 그린 그림을 흑백 사진으로 찍자, 정말 사진처럼 보였다

카라바조가 그린 풀밭 전경은 2000년대에 찍은 사진과 조금도 다를 게 없고, 흑백으로 처리하자 거의 완벽하게 똑같았다

서양화가 동양화와 다른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길을 간 것은 이와 같은 과학의 힘이 숨어 있던 셈이다

 

광학 장치를 이용해 투영된 상을 따라 그리기 위해서는, 인물 하나하나를 콜라주 기법으로 각각 그린 뒤 합체하는 방식을 썼다

심지어 얼굴과 몸통 등도 따로따로 분리해서 그린 뒤 전체적인 윤곽을 잡았기 때문에 머리가 몸통에 비해 지나치게 작거나, 팔다리가 길어 보이는 비례상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한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했다고 알려진 베르메르는 주로 하인들을 그렸는데, 귀족들은 여러 포즈를 잡으라고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한 모델을 돌려가며 여러 인물을 완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루벤스의 그림이 위대한 까닭은 (걸작에 이유가 있겠는가마는) 단순히 눈 굴리기를 통해 어림짐작 만으로도 완벽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루벤스가 그린 기둥이나 인물의 얼굴들은 여러 차례 드로잉으로 완성한데 비해, 카라바조나 앵그르의 그림을 X-ray로 비춰 보면 한 번에 대담하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처럼 보이는 위대한 기술 뒤에 이런 과학 장치들이 숨어 있었다니,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 아닌가!!

비밀을 밝혀 내기 위해 애쓴 호크니의 노력도 대단하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임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건 13세기 조토의 평면적인 그림과 19세기 고흐의 자화상이 나란히 배열된 모습이다

둘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즉 같은 기법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광학 기구를 이용해 사진으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대상 묘사에 집착하던 서구의 화가들은, 카메라가 발명된 후 사진처럼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어지자, 다시 인간의 눈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인상파의 발로는 사진처럼 그린다는 기존의 미술 사조에 대한 반발인 셈이다

사진이 있는데, 화가가 사물을 똑같이 그려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세잔은 가히 혁명적인 화가라 할 만 하다

세잔은 입체파의 시조가 되는데 그가 그린 사과는 뒤로 물러날수록 더욱 형태가 선명해지는데 비해, 광학 장치로 그린 카라바조의 사진과 거의 비슷한 사과 그림은 뒤로 물러나면 형태를 잃어 버린다

호크니는 이 차이를 거울-렌즈가 하나의 초점을 갖는데 비해, 인간의 눈은 두 개의 초점을 하나로 합해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사물을 더욱 똑같이 묘사하려고 애쓰던 노력들은 광학 장치를 넘어 이제 TV와 영화 등으로 발전했고, 화가들은 다시 인간의 눈으로만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기술과 예술의 분화를 낳은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르네상스 화가들 역시 직업인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고, 호크니는 주장한다

오늘날 헐리우드의 배우들처럼, 사진이 없던 시절 르네상스 화가들은 귀족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욱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에 골몰했고, 그 결과 여러 광학 장치들이 개발됐다고 본다

예술가라면 이런 광학 장치의 도움 따위를 받아선 안 돼,라는 식의 생각은 라파엘로 같은 거장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술가 하면 고흐처럼 세상사와 동떨어져 독야청청한 길을 가는 외롭고 고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궁핍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관람자들의 이기적인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도 역시 크게 보면 하나의 직업인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들도 돈을 바라고 작업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왠지 거장들은 돈에 초연하고 예술만을 위해 살았길 바란다

 

앞쪽은 호크니가 르네상스 그림들에서 보여지는 광학 이용의 증거를 찾는데 투자하고, 뒷쪽은 문헌적 증거들과, 호크니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것에 관해 교류한 서신들로 구성됐다

절반은 화려한 그림들로 채워지고, 나머지 절반은 깨알같은 글씨들로 가득하다

독특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대작들의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그의 시도 자체가 독특하지만 말이다

그의 이론이 학계에 받아들여져 르네상스 대가들은 광학 장치를 이용해 실제와 똑같은 그림을 그렸다는 식의 내용을 앞으로 미술 개론사에서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마지막 결론처럼 광학 장치를 이용했다고 해서 르네상스 대가들의 위대함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과학적 장치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훌륭한 걸작들을 감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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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2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이 책에 관해서 읽고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구립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봤습니다. 정말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 리뷰들을 읽었지만, 가장 정리가 잘된 리뷰인 것 같습니다 ^^;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정물화, 아르테마 003
최정은 지음 / 한길아트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저자의 해박하고 지적인 감상 솜씨에 감탄해 정신을 못차렸다

나도 저자처럼 지적이고 우아하게 그림을 분석하고 감상할 수 있는 교양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시달렸을 정도

그렇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있는 책이다

일단 내용이 지나치게 세밀하다

17-18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갖는 상징성에 대해 책 한 권에 걸쳐 논하다 보니 자세하기 그지 없고, 어쩔 수 없이 지루해진다

차라리 네덜란드 전 그림을 상대로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는 그림 속 사물이 주는 상징을 깨우쳐 가는 재미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는데, 여러 장에서 반복되다 보니 억지스럽고 그림을 지나치게 '해석'하는데 중점을 두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어느 정도 그림이 주는 상징성에 대해 안 상태로 감상하는 건 좋은데, 본말이 전도되어 그림이 주는 느낌은 완전히 차치하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만 주력하는 듯 해서 읽는 게 부담스러웠다

작가는 물론 전공이기 때문이겠지만, 모든 그림의 소품 하나하나를 다 분석한다

이 분석대로라면 저자는 화가의 머릿속을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 같다

난 정말 모든 화가들이 정물화나 풍경화에 등장하는 사물들에게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 그렸는지 의심이 된다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되어있는 상징도 있겠지만, 정말 모든 소품들이 다 이렇게 거창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

그림의 도판도 마음에 안 든다

저자가 얘기하는 소품들의 상징성에 대해 제대로 보려면 그림이 좀 커야 하는데 한 면도 아니고 윗쪽에 그림을 배치하고 아래 절반은 설명하는 식이라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책 싸이즈를 키우고 전면에 그림을 배치한 후 뒷장에서 설명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지적 쇼크를 많이 줬다

다소 내용이 어렵고 현학적이지만 서양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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