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존 버거 지음, 박홍규 옮김 / 아트북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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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카소도 마찬가지로 그의 독립성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사람과 섞일 수도 있어다. 그의 상업적 성공은 그런 협력의 증거다. 또한 그가 출연한 영화, 포즈를 취해준 사진, 응한 인터뷰도 마찬가지 증거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아무리 순수했다고 해도, 그의 정력에는 매우 약삭빠른 사업가 기질이라는 얼룩이 배어 있다.

 이는 피카소가 위선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성공 때문에, 그가 브란쿠시보다 덜 진지한 미술가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실패는 그 자체가 도덕적이라고 보는 낭만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세속에서의 실패는 그 자체로 하나의 불행일 뿐이다. 피카소는 브란쿠시와 다른 기질을 가졌고, 그의 기질이 그의 천재성을 보존하면서도 성공하게 만들었다.

 

 왜 그는 스스로를 이상화했는가?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왜 그는 자신의 천재성이 지닌 원시적인 성향을 그토록 신중히 보존하여 그것이 고상한 야만인의 수호자로 봉사할 수 있도록 했는가? 그것은 이기심이나 허영심의 결과는 아니었다 자신의 고상한 야만인을 이상화함으로써 그는 루소처럼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비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평생 혁명가였다는 진지한 믿음의 근거였다 또한 그 자신을 혁명가라고 믿게한 것이기도 하다 비록 동시대 유럽인 중에서 피카소만큼 현대 정치와 직접 접촉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가 스페인으로 돌아갔다러다면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달리 발전했으리라. 스페인에서라면 그는 더이상 자신을 야만인으로 의식하지 않았으리라 이러한 의식은 피카소 자신과 그를 둘러싼 낯선 환경의 차이가 낳은 결과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 차이는 피카소를 이국적으로 보게 만들었고 어느 정도로는 그가 이것을 조장했다 왜냐하면 그가 이국적이 되면 될수록 그는 자신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상한 야만인에 더욱 가까워졌다 또한 자신을 이국적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좀더 강력히 비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에 대한 피카소의 태도 속에 숨어 있는 역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피카소의 근본적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철저히 위장되어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어려움이다 그의 조국에서 추방당한, 다른 세기에 속하는, 자신이 사는 부패한 사회를 비난하기 위해 그 자신의 천재성이 지닌 원시적 성격을 이상화하는, 그래서 자기만조겡 빠진,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일해야 하는 미술가를 상상해보라 그의 어려움은 어떤 것일까? 인간적으로 너무나도 외롭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외로움이 그의 예술에서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무엇을 그릴지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가 주제를 모두 소진했음을 뜻할 것이다. 그는 정서나 감정 또는 감흥을 소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을 담아낼 주제를 소진했다는 뜻이리라. 이것이 피카소의 어려움이었다. 자신에게 무엇을 그릴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그 질문에 혼자 답해야 한다는 것.


 

존 버거가 피카소를 비판하는 핵심이 담긴 글들이다

간단히 말해 그는 천재라는 자기확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자체를 불필요하게 느꼈고 연구를 통한 회화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자기 내부에 있는 고상한 야만인의 정서를 계속 키우면 그만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주제가 없다고 했다

 

"벨리니의 누드, 브뤼겔의 마을, 호가스의 감옥, 고야의 고문, 제리코의 정신병원, 쿠르베의 노동자들, 이 모든 것들은 미술가가 이전에는 무시되거나 버려진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한 결과였다"

 

말하자면 피카소는 이런 주제가 없었다

깊이 연구하고 천착할 주제가 없었고, 다만 자신의 천재성에서 기인한 감정이나 정서 등을 그림에 쏟아내면 그만이었다

뭐든 그리기만 하면 환호를 받았으니 더더욱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신뢰하고 유일한 믿음의 근거로 삼았을 만 하다

 

피카소가 스페인으로 돌아갔더라면 절대 고상한 야만인 정신을 계속 유지하지 않았을 거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프랑스는 이미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가장 발전한 사회였고 반대로 그의 고향 스페인은 봉건 제도 하에 있는 전근대적 사회였다

그러니까 스페인에서는 고상한 야만인 그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상한" 이라는 형용사가 붙으려면, 반드시 현대적인 모순이 가득한 사회, 기술 발전과 진보에 따라 민주주의와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는 근대적인 사회에 살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스페인은 아직도 고상한 "야만인" 상태였으니, 현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굳이 고상한 야만인 개념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는 야만 그 상태였다

그러니 피카소가 고상한 야만인 운운하는 것은 전혀 혁명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진보와 발전을 외쳐야만 현 사회에 대한 혁명이 가능했으리라

 

놀라운 것은 망명자가 어떻게 가장 현대적인 사회에서 그토록 열렬하게 완벽하게 받아들여졌나 하는 것이다

망명자라고 하면 고국에서 추방당해 이방인으로써 외국의 주류 사회 언저리를 헤매는 불쌍하고 처량한 정서를 생각하기 쉬운데, 피카소는 정반대로 이국에서 가장 열렬하게 환영받았고, 오히려 그 사회의 모순을 비판함으로서 혁명가 이미지까지 얻어서 더욱 투쟁적인 지식인으로 떠받들여졌다

그러니까 혁명가이면서도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가장 부유한 화가였으니 매우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까?

존 버거는 최고의 부를 누리면서도 스스로를 혁명가라고 느꼈던 근거가 바로 고상한 야만인 정서라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천재성에 근거한, 내면의 본능 같은 거라고 했다

그 본능에 기대어 그림을 그리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혁명가가 되어 더욱 많은 관중들이 환호하고 엄청난 부가 동반되는 상황이니, 그가 굳이 연구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으리라

주제가 없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존 버거는 피카소의 이중성을 철저하게 파헤쳤다

물론 그가 위선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존 버거가 피카소에게 진정한 혁명가의 기질이 없었고 자본주의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위선자라고 말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교조적인 비난이고 예술을 논할 필요도 없는 유치하고 수준낮은 짓이리라

과학도 그렇지만 예술 역시 어떤 이데올로기에 끼워 맞춰 비평이란 걸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나는 과학만큼이나 예술도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하는 게 아니겠는가?

만약 이데올로기에 의해 평판이 좌지우지 된다면 굳이 예술을 위대하다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 공산주의가 망한 것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 휴머니즘을 무시하고 예술을 이데올로기에 종속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어쨌든 이 천재 예술가의 속마음을, 혹은 정신 세계를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까발린 평론가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그림 자체가 아닌 화가의 일상 생활이 하나의 평론이 되서 돌아다닐 정도로 엄청나게 추앙받는 우리 시대 최고의 천재 피카소의 이중성을 분석하려면, 엄청난 내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할 것 같다

사실 나도 약간 의문이긴 했다

공산주의에 가담한 화가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토록 열렬히 숭배되고 최고의 부를 누렸을지 굉장히 궁금했고 모순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세계 대전이, 피카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저자의 말에 깊히 동의한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는 전쟁이나 사회 변화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평생을 자신의 천재성에 기대어 산 사람이다

또 사회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면 우리가 굳이 그를 천재로 떠받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년에 감소되는 육체적 능력을 슬퍼하면서 그린 소묘 연작들을 보면 묘한 감동이 온다

특히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누드를 그리고 그 앞에 가면을 쓴 난쟁이 노인을 마주 배치한 소묘들은, 피카소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 든다

이 화가는 확실히 솔직하고 자기 생각을 밝히는데 거침이 없다

어쩜 난쟁이 노인과 젊은 여자라는 아주 노골적인 배치를 했을까?

더구나 그 노인은 젊은이의 가면을 쓰고 있다

정말 대단한 발상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 성적으로 위축되고 늙었지만 (그래서 난쟁이로 표현한다) 여자에게는 젊은 얼굴로 대쉬하고 싶은 속마음!!

그러나 결국 그녀는 그 가면쓴 난쟁이 노인 대신 차라리 원숭이를 택하고 만다

한 달 간 그린 소묘의 마지막 그림에서 노인은 사라지고 원숭이와 여자만 남았다

오, 정말 대단한 피카소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성적 욕망이란 예술의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되는 것 같다

또 그 욕망을 자연스럽게 표현해야만 위대한 예술이 될 것 같다

억누르고 고상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가짜가 되버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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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음악축제 순례기
박종호 지음 / 한길아트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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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신과 의사인 박종호씨의 두번째 책

역시 수준이 있다

재밌게 잘 읽었다

매년 유럽으로 축제를 구경갈 수 있는 그 재력과 열정, 그리고 여유가 부럽다

사람이 태어나서 뭔가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매진하고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정말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남들 눈에는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내가 만족한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

물론 다른 사람의 인정도 받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남들이 인정해 주는 일은 경쟁이 치열한 법이고, 그래서 쉽게 얻을 수 없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다

박종호씨는 굉장히 교양있고 우아하고 차분한 성격일 것 같다

아내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단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책 좋아하는 사람과는 또다른 종류의 인간일 것 같다

 

유럽의 축제 문화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지방 축제 수준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언제쯤 우리도 그런 수준있는 축제를 열 수 있을까!

클래식을 테마로 삼아 축제를 열 정도라면 유럽의 클래식 수준이 얼마나 높고 또 일반화 되어 있는지 알 만 하다

기껏해야 우리나라는 홍길동이네 나비네 대나무네 하면서 급조한 것들 뿐인데, 역사의 면면에 흐르는 클래식을 테마로 잡아 외국인들을 끌어 들일 정도로 수준있는 축제를 개최하는 그들이 정말 부럽다

역시 대한민국은 문화 면에서는 아직도 한참 먼 것인가...

클래식을 처음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것도 콘서트처럼 직접 가서 보면 감동이 더욱 커진다는 걸 알았다

동영상으로만 봐도 흥분되는데, 직접 현장에 있다면 얼마나 가슴 떨릴까!

축제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하다못해 클래식 연주회라도 다니고 싶다

언제나 시간이 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제대로 가 본 적이 없다

데이트를 연주회장에서 할 수 있는 커플은 얼마나 행복할까!

 

글도 참 잘 쓰고 오버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읽기가 참 편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 좋아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열려 있고 매력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편협하고 외凉痔隔?꽉 막히고 자기 주장이 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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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신화와 의학 명화 속 이야기 9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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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큼 재미는 없다

명화와 의학에서도 느낀 바지만 글솜씨가 아주 좋다거나,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건 아니다

다만 관심이 좀 있는 정도?

이래서 책 내기가 두렵다

그래도 도판이 아주 선명하고 깔끔해서 그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스 신화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등장인물들이 하도 많아서 솔직히 헷갈린다

그러고 보면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책을 읽어 보지 못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그렇게 떴는데도 못 읽은 게 좀 아쉽다

그래서 기본 개념이 안 잡히나?

일단 발음부터 어려워서 빨리 눈에 안 들어온다

그래도 자꾸 보니까 익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귀스타브 모로의 신화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보는 기분이 든다

요즘 살아 있었으면 대단한 시각 디자이너가 됐을 것 같다

역시 난 신고전주의자인 앵그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정말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완벽하고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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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그림여행 - 특별 보급판
스테파노 추피 지음, 이화진.서현주.주은정 옮김 / 예경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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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 보다는 많이 못 미칩니다 너무 큰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겠죠? 표지 디자인은 참 예쁘고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워낙 많은 그림을 담으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크기를 줄이게 되고, 그래서 도판이 시원스럽지가 않습니다 시원시원한 그림을 기대한 저 같은 독자는 다소 실망할 수 밖에 없네요

중세 미술부터 시작해 현대 미술까지 중요한 그림들을 언급하면서 설명해 줍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책 한 권으로는 버벅댄다는 느낌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많은 그림을 볼 수 있어서 돈 아깝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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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2-1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가라는 맛에 샀지요. 내용보다는 많은 도판에 만족해야할 책이에요. 그죠? ^^

marine 2005-02-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싸니까 산 것 같아요 차라리 그림 수를 줄이더라도 도판을 좀 크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비로그인 2005-07-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훗 저도 특가라는 말에 샀어요. 그런데 저렇게 많은 그림들이 저렇게 응집력 없이 한 책에 들어가기도 참 힘들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매일밤 딱 한 페이지씩만 아껴 읽곤 해요. 그림을 보다 잠들었는데, 꿈의 배경이 그 그림이었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의무와 야릇한 기대감 속에 그래요.

prongkiller 2005-07-30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에 대해서 항상 깊이있게 접근한다고 생각했는데 라이프니츠 때문에 모든것이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미적분을 예술에 적용시킨 순간 저는 페시미스트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ㅠ.ㅠ

머언산 2007-08-1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사람들인것 같아서 그냥 한줄.. 그냥 인터넷으로 구입을 한걸까요?

한번 쭈루룩 훝어만 봐도 알 수 있는것들.. 이건 도록이 아닌데 도록이 아니라고 불만.
이건 해설서가 아닌데 설명이 부족하다는 불만.. 참 난감하군요.

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바랄 수 없는걸 바라는 불만은 무슨 이유인지 이상해서 한줄 남겨 둬 봅니다.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 기행
이주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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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까지 읽은 이주헌 책 중에서는 제일 별로였다
내가 너무 많이 읽어서 식상해진 건가?
아니면 루브르와 오르셰 같은 큰 미술관을 제외한, 프랑스 교외의 미술관에 한정되다 보니 덜 유명한 작품 위주로 국한되서 그런 걸까?
그림에 대한 설명이라기 보다는 기행문 느낌이 강하다
한가한 사람들은 이주헌처럼 한 지역을 정해 차분이 돌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처럼 늘 시간과 돈에 쫓기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프랑스 시골은 참 시원스럽다
기차를 타고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산이 안 보이는 곳이 없지만, 프랑스는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들판이 많아 차창 풍경이 참 시원시원 하다
유럽의 농업 강대국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 특히 프랑스 시골의 널찍한 들판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사는 화가들과, 들이 넓은 프랑스에서 사는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풍경 자체가 워낙 다르니, 캔버스에 옮길 그림도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웠던 점은 니스에 갔을 때 마티스 미술관이나 샤갈 미술관을 못 가 본 점이다
그 때만 해도 워낙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고 시간에 쫓겼으며 최성수기라 호텔이나 기차표 예약도 못해 허둥대느라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없었다
파리에서 니스 갈 때도 야간열차가 만석이라 어쩔 수 없이 낮에 TGV를 타고 갔다
덕분에 오르셰 미술관은 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이라도 가 봤는데, 다른 팀은 예약이 꼬이는 바람에 파리 구경은 커녕 북역에서 며칠을 보냈다
니스에 도착해서도 여행사에서 예약해 준 것은 다음날 아침이라 야간 열차를 타고 아침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어야 하는데, 낮기차를 타고 하루 전 날 저녁에 도착하는 바람에 호텔에 들어 가지도 못하고 주차장에서 꼬박 날을 샜다
호텔 로비에서라도 있게 해 달라고 했더니 한국인 이미지가 얼마나 안 좋은지, 짐도 맡을 수 없다며 내일 체크인 할 시간에 오라고 쫓아 버렷다
덕분에 20명이 넘는 우리 팀은 근처 주차장에서 날을 샜다
다음 날 호텔에 체크인 하고서는 너무 피곤해 종일 자는 바람에 니스 해변가 밖에 못 봤다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샤갈 미술관도 가고 마티스 미술관이나 피카소 미술관까지 쫓아 다녔는데 그 때만 해도 샤갈이나 마티스는 미술책에서 이름 본 게 전부일 때라 니스 해변가에 누워 선탠하는 걸로 관광을 끝마쳤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쉽다
그림으로 백 번 보는 것보다 실제로 한 번 보는 게 훨씬 감동적인 법인데,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린 셈이다
이런 기행문을 보면서 대신 만족하는 수 밖에
파리에 갔을 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외롭거나 심심할 틈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분이 우울하고 혼자라고 느낄 때는 루브르 미술관이나 오르셰 미술관 등에 가서 눈요기를 하면 금방 행복해질 것 같다
불어만 잘 하면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는 느낌을 들 정도로 파리는 문화를 즐기는 도시 같다
이주헌은 프랑스 곳곳을 방문하면서 문화대국 프랑스의 진면목을 잘 보여 준다
지나치게 찬양적이지도 않고 감상도 절제하면서 그림 설명도 진지하게 곁들이는 그의 책은, 그래서 참 재밌고 부담스럽지 않다

라스코 동굴 벽화도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때인가?
라스코 동굴 벽화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번역책이었음) 관광객들 때문에 인류 문화의 보고가 훼손된다고 걱정하던 저자의 말이 생각난다
역시 90년대부터는 동굴을 폐쇄해 벽화를 보존한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는 라스코 2라는 인조 동굴을 만들어 당시 사람들이 쓴 재료와 기법으로 똑같이 재현했는데 5mm의 차이 밖에 안 날 정도로 정교하다고 한다
이주헌은 벽화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한다
단순히 동물을 많이 잡게 해 달라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의 종족이듯, 동물들도 이웃 종족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자기들과 같은 인간 부족, 말 부족, 황소 부족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사냥 전 사기 충전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 보다 고차원적인 종교 활동이 있었으리라 본다
그림들도 참 놀랍고 캐리커쳐처럼 대상의 특징을 잘 잡아낸다
색깔까지 이용해 채색을 한 걸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의 예술적 재능이란 이처럼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중요한 특성인 것 같다

오베르에서 고흐는 겨우 70일을 살았을 뿐이지만, 지금 그가 머무르던 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테오가 회사에서 나와 독립한다는 말을 듣고 고흐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고 한다
회사를 나오면 당연히 테오의 재정 상태가 흔들릴테고, 테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고흐의 삶도 흔들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동생더러 언제까지 돈을 대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는 고흐의 가엾은 처지가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 들어 눈물이 살짝 났다
그런데 형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산 테오도 대단하지만, 그의 아내 조도 굉장한 여자 같다
조는 고흐에게 편지를 보내 아주버님의 경제적 지원은 계속 될 거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나중에 테오가 형 죽은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고흐의 그림값이 치솟으면서 조와 그녀의 아들에게 큰 도움을 됐다고 하니, 그녀의 예술적 안목도 상당했을 것 같다
평범한 여자 같으면 형을 부양하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기 쉽상인데 말이다
조는 테오에게 보낸 700통이 넘는 고흐의 편지들을 꼼꼼하게 시대별로 정리하면서 고흐 연구에 큰 도움을 줬다
오베르의 넓다란 밀밭을 보면 죽기 직전에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 이 보다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이 끝없는 지평선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베르의 교회도 고흐 식으로 해석하면 단순한 교회가 아닌, 느낌을 지는 생명체로 다가온다
그림과 실제 풍경을 담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예술 작품이란 늘 현실보다 더 높은 존재 같다

프랑스 여행을 계획한 사람이라면 이주헌의 기행문을 들고 따라가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물론 루브르나 오르셰 등을 먼저 방문해 어느 정도 미적 욕구를 채운 후 주변을 둘려봐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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