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뱀
베르나르 뒤 부슈롱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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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6세 노인의 처녀작으로 프랑스 문학상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수상한 놀라운 사실들에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 읽어야할지 상당히 고민스럽다.


인술로몬타누스 주교의 보고서가 주 내용을 이루면서 고통스러운 여행과 누벨툴레의 어려운 환경과 힘겨운 생활들이 나오는데 그 속에 담긴 사실과 왜곡들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 기독교 주교의 시선에 서 본 그들의 생활이 지배자의 시선을 그대로 담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은 역시 마지막 장에서 선장의 설명이 나오면서이다. 그 보고서의 내용들을 믿고 읽은 나에게 힘을 빼게 만들고 자신의 안위나 지위를 위해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글들과 묘사는 객관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약간 지루하고 답답한 문장으로 진행되는데 곳곳에 묘사되는 장면들은 놀랍기도 하다.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두 가지 재난에 인육을 먹거나 음란함이 지속되는데 주교는 이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묘사하면서 식민지 사람들의 노력 부족과 야만이라는 말들로 치장한다. 하지만 그것이 약탈자의 시선에서 본 전형적인 시선임을 알게 되는 것도 역시 마지막에 가서 알게 된다.


우아하고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선교를 위해 나아간 듯한 방문이 사실은 식민지 지배의 한 방편임을 알게 되는 순간 앞에 나오는 수많은 문장과 묘사들이 얼마나 허구로 가득한지 깨닫게 된다. 지배자들이 늘 하는 말처럼 그들이 게으르고 무식하다고 하지만 기나긴 세월을 동토의 대지에서 살아온 그들이 게을렀다면 어떻게 살아남았겠는가? 그래서 다시 처음 읽었던 곳으로 돌아가 몇 가지를 다시 생각하니 식민지 수탈이 목적임을 알게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사전에 정보 없이 읽기에는 쉽지 않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첫 부분을 정확히 읽어내면서 그 숨은 뜻을 발견한다면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고 그 민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이것 또한 마지막의 재미를 위해 남겨 놓은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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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눈동자 1939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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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일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일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너무나도 많은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하는 끔직한 그 사실을.


이 소설을 읽기 얼마 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었다. 홀로코스트의 또 다른 면을 보게 하는 역작이었다. 이 책 덕분에 이 소설이 더욱 쉽게 읽혔고 생략된 많은 의미와 상징을 알게 되었다. 예로 들면 옛날 번호의 의미 등이다. 번호가 짧으면 짧을수록 수용소에 오래있었다는 의미고 고생도 많았고 그 환경에 잘 적응하였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굴뚝으로 사라졌고 오랫동안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나치에 빠져든 힐러리와 유대인 샤나의 이야기지만 대부분 샤나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현대의 힐러리가 교통사고로 병상에서 샤나의 과거를 체험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처음에 적응하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었다. 빙의나 과거로의 여행 등으로 착각한 나의 실수 때문이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좀더 집중하면서 이 두 소녀가 함께 하는 방식과 서술 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소설에 나오는 많은 부분을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접한 것들이다. 쉽게 말해 신선도가 많이 떨어진다. 이 책이 나온 당시라면 아마 지금처럼 많이 알고 있지 않아 충격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그 지독한 환경이 주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상황에 놀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이성을 죽이고 살고자하는 본능만을 남겨둔 그녀의 외침이 책 속에 가득하다. 그 끔찍한 상황을 전달하고 다시 이런 비극들이 없게 하기 위해 자신을 죽여 가는 그녀를 보면 숙연하여진다. 신나치의 발흥과 함께 묘사된 이 비극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도움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 일본의 우익과 군국주의가 득세하면서 군사 대국화로 가는 것과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더 많은 점을 생각하고 얻게 되지 않을까 한다.


팔레스타인 사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는 것과 홀로코스트 산업으로 불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 때문에 초반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이 소설에 약간 거부감이나 ‘또’라는 선입견을 주기도 하였지만 책의 출판연도와 독서 대상을 생각하고 구성을 조금 이해하면서 많이 해소되었다. 하지만 책에 너무 주석이 없어 많은 의미와 상징을 놓치게 만드는 것은 아쉽다. 주석이 없다면 역자 등의 후기로 그 의미와 상징들을 이야기한다면 더 좋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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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음모 1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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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모습을 지금처럼 영상으로 볼 수 없는 시대를 그려내는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얼마나 충실하게 묘사하였는지가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1719년 런던의 상황을 잘 나타내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잘 짜여진 소설이기도 하다.


과거 회상으로 시작하면서 두 사건을 연결하면서 숨겨진 많은 이야기와 욕망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이 초창기 증권시장에 대한 두려움과 시대의 흐름을 읽게 한다. 실물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기에 벌어진 이 사건이 불신과 함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정직성이나 타인의 생명마저 주저 없이 빼앗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알고 있었고 알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 왜곡을 가지고 있는지 말한다.


금융스릴러라고도 하고 팩션이라고도 불리는데 사실의 기반 위에서 가공의 인물과 역사적 인물이 교차하면서 진행되어 현실성과 흥미를 더욱 높여 놓았다. 시작은 비록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을 파고 들면서 나오는 알력과 음모는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몇 가지는 짐작 하였지만 전체적인 윤곽과 흐름을 알기에는 작가의 구성이 치밀하였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근대적 탐정이 생기기 전 해결사 겸 탐정 역을 하는 전직 복서인 유대인 벤자민 위버가 의뢰에 의해 조사를 한다. 의뢰 내용은 자신의 아버지가 마차에 치여 죽은 것과 의뢰인 아버지의 자살이 사실은 타살이고 그 배후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곳곳에 유대인들이 받는 억압과 그 시대 런던의 더럽고 부패한 시대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태동하는 증권시장을 설명한다.


초기의 증권시장이 이익을 위해 정보를 왜곡하고 선동하는 것을 보는데 얼마 전까지 우리사회에서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것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은 밝혀지면 법적 처벌이 따르지만 이전에는 그것조차 없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충실한 역사 고증과 인물 묘사는 사실성을 높여주고 뒤에 숨겨진 음모와 배신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나의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고, 속고 속이고 협박하면서 나아간다. 반유대 정서와 런던 하층민의 빈곤한 삶과 당시 런던의 위험함을 설명하면서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벤자민의 모습은 흥미와 재미를 준다. 그리고 도둑의 왕 조나단 와일드의 모습은 다시 생각하면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악당이다. 그와 와일드의 묘한 신경전과 대립은 이 소설의 숨겨진 재미 중 하나다.


이 소설을 읽는데 범인 찾기에 치중하면 재미를 놓치기 쉽다고 생각한다. 범인 찾기가 스릴러의 재미 중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작가가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로 정확한 범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후의 순간에 가서 많은 죽음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자세히 읽기 전에는 마지막 순간에도 진실을 알기 어렵다. 그리고 작가가 공들여 묘사한 18세기 초 영국의 모습이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약간은 답답한 감이 있지만 매력적이고 거친 주인공 벤자민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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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손바닥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윤덕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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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와 형사와 수학교사의 대결로 생각한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이야기의 진행은 교사와 형사가 번갈아 가면서 화자로 나오다 미륵이 마무리하는데 이 순서에 혹하면 기본적인 트릭을 발견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요즘 신본격 작가의 추리소설이 많이 번역된다. 추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기분이 좋다. 하지만 가끔 너무 많은 기대 때문에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경우도 약간 실망을 하였다. 형편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말에 가면 왠지 너무 조급하게 마무리하고 작위적인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초반의 분위기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트릭 자체를 설명하는 미륵의 장에서 미륵의 정체가 밝혀지고 살인자가 알려지는 순간 감탄을 자아내기보다 왠지 억지 같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런 식으로 둘을 묶어 둘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치밀하다는 생각보다 엉성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개연성이나 공정한 독자와의 대결이라는 점이 부족한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쉽게 몰입하게 만들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보더라도 완성도가 떨어진다. 아니 충분히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다. 밋밋하다고 해야 할까? 교사와 형사의 마무리를 생각하면 그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하지만 마지막 미륵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밝혀지는 부분은 상당히 신선한 부분이었다. 정보가 돈이 되고 권력이 된다는 기본 사항이 잘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가 그런 식으로까지 발전한다면 많은 이들이 당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심플하게 쓸려고 하다 어수선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느낌이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스릴러도 강력한 경찰소설도 치밀한 트릭도 보이지 않고 왠지 조금씩 섞여 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살육에 이르는 병’에 관심이 간다. 뭐 워낙 하드코어에 하드고어라는 말이 있지만 그의 특징이 잘 살아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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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1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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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새롭게 깨닫게 되는 점이 많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여 당연시 한 많은 것들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이기에 당연히 정사에 나오는 인물이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그녀의 삶의 전부로 착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생몰연도가 정확하지 않은 그녀에게 임의로 그 시간을 부여한다. 그녀가 태어난 날 조차 정확하지 않다고 하니 그녀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얼마나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을 것인가 짐작이 간다. 과장되어 있는 그녀의 모습에 작가는 탄생과 성장부터 신비하게 처리하는데 이 부분은 사실 현실성을 떨어트린다. 그녀가 뒤에 주장하는 자유로운 그녀를 부각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황진이의 모습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듯하다.


화담과의 관계나 스님과의 관계를 과감히 하나의 에피소드로 처리하여 연인으로 이사종을 내세워 그녀의 사랑이 커져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신분제도의 질곡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이 태생과 타고난 미모를 너무 부각하면서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진 점이나 이후 그녀가 보여준 여러 행동들은 작가의 바람이 투사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근래 드라마로 만들어진 황진이를 보지 않았지만 미모와 매력에 너무 집착하여 황진이 자신보다 만들어진 이야기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한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신비화되어 현실성을 높이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비교할 수 없지만 드라마 원작이 되는 김탁환의 황진이를 나중에라도 읽고 두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녀를 내 속에서 되살려 보고 시대에 대한 한 단편이라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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