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모노 에디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석영중, 정지원 (옮긴이) 열린책들 2024-03-05, 224쪽, 러시아소설

#빈칸놀이터프로그램
#문학을낭독하는사람들
#문낭사

🍊 문학을 낭독하는 사람들, 5월도서로 톨스토이를 만나게 되었다. 열린책들 모노에디션으로 나온 이 책은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미완성 단편 <광인의 수기 > 두 편이, 단편만큼 긴 역자 해설 과 함께 묶여있다. 톨스토이라면 지금은 기억이 99%소실된 학상시절 읽었던 <안나 카레리나>와 너무나도 유명한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유일하게 읽었던 전부인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두 책을 다시 읽어보고, 다른 책들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 5월 문낭사 책 두 권의 후보 중 고민할 때, 4월을 함께했던 분께서 봄에는 죽음을 생각해야한다는 멋있는(?) 말씀을 하셔서 최종 선정하게 된 책이다. 그런데 <이반 일리치의 죽음> 뿐 아니라 <광인의 수기>,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이전 읽었던 톨스토이 작품까지 모두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역자 해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네 편 뿐 아니라 평생 톨스토이는 죽음을 성찰했고 작품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 최근 3년 정도 내가 가장 고민하고 깊게 생각해온 두 세가지 중 하나가 죽음이었다. 책리뷰 때 가끔, 그리고 얼마전 공저로 나온 글에서도 남긴 나의 미완성 결론은 죽음도 삶도 다른 게 아닌가 보다 였다. 대문호 톨스토이에 근접했다는 오만이나 무지는 아니다. 그저 이런 생각을 이미 많은 문인들이 했고 톨스토이가 작품에서 말하는 바라는 걸 역자 해설에서 다시 확인하며, 뭔가 위로와 격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 꼭 봄 (무언가 시작되는 시기. 생명의 시작) 뿐 만이 아니다. 삶에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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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법원 건물에서 멜빈스키 사건을 심리하던 판사들과 검사들은 휴정 시간이 되자 이반 예고로비치 셰베크의 집무실에 모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크라소프사건에 대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 P9

동료의 죽음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불러일으킨 것은 그로 인해 가능해진 자리 이동이나 직위 변경에 대한 생각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까운 지인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 으레 그렇듯이 죽은 것은 자기가 아닌 그 사람이라는 데에서 모종의 기쁨을 느꼈다.
- P11

<어쩌겠어, 죽은 걸. 어쨌든 나는 아니잖아> 모두들이렇게 생각하거나 느꼈다. 이반 일리치와 아주 가까웠던이른바 친구들이란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이제 예절이라는 이름의 대단히 지겨운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추도식에 참석하고 홀로된 부인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해야만한다는 사실을 부지불식간에 상기했다.
- P12

그녀는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연금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척했다. 하지만 분명 과부는 이미 아주 세세한 부분은 물론 심지어 표트르 이바노비치도 잘 모르는 정보까지 모조리 꿰뚫고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빌미로 국가에서 받아 낼수 있는 모든 지원금의 종류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돈을 더 긁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 P22

그리고 이러한 재미는 결국 그를 통째로 삼켜 버렸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밟아 버릴 수 있다는 권력의 의식, 법정에 그가 들어설때나 부하 직원들을 마주할 때면 그들의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나는 존경심, 상사와 부하 직원들을 상대로 거두는 성공,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이 모든 것이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 P39

남편과 아내가 폭발하지 않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작은 섬들이 다시 떠오르곤 했지만 그 섬의 수는 아주 적었다.
- P55

이제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섭고 낯설고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그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아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점이 무엇보다도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P64

혼자 남은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삶에 스며든 독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 P67

그는 그렇게 파멸의 벼랑 끝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고 불쌍히 여겨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다.
- P68

이건 맹장 문제도 아니고 신장 문제도 아니야. 이건 삶, 그리고......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이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자꾸만 도망가고 있어. 나는 그걸 붙잡아 둘수가 없어. 
- P73

이제 남은 것은 죽음인데, 나는 맹장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맹장 고칠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사실 문제는 죽음이야. 그런데 정말 나는 죽는 걸까?
- P75

이반 일리치는 서재로 돌아가 자리에 누웠다. 그는 또다시 죽음과 단둘이 남겨졌다. 죽음과 마주 보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차갑게 식어 가는 자신을 느낄 뿐이었다.
- P83

모든 이들의 관심은 그가 과연 언제 자신의 자리를 비워 주게 될것인지, 과연 언제 사람들을 그의 존재로 인해 야기된 의무와 압박에서 해방시켜 주고 자기 자신도 고통에서 자유롭게 될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 P84

「우리는 언젠가 다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 좀 못 할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 위해 고생 좀 하는 것이 전혀 힘들거나 괴롭지 않으며, 그 또한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수고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 P91

늘 이런 식이었다. 어디선가 한 줄기 희망이 반짝하는가 싶다가도 금방 절망의 파도에 휩쓸려 버리고 결국 똑같은 통증, 그 빌어먹을 통증, 똑같은 절망만 남고 모든것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혼자 있을 때면 무섭도록 외로워서 누군가를 부르고 싶었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이 오면 기분이 더 나빠진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P96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의 처지와 절대 고독과 사람들의 잔인함과 신의 잔인함이 서러워서, 신의 부재가 서러워서 목 놓아 울었다. <어째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어째서 저를 이 지경까지 끌고 왔나요? 어째서,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저를 이다지도 괴롭히는 겁니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엉엉 울었다. 대답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것 때문에 더 울었다.
- P107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잘못 살아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올바르게 살았는가를 되새기며 그 이상한 생각을 바로 떨쳐 버렸다.
- P111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최소한 이유는 알아야 할 거 아냐? 그런데 그게 불가능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한다면 설명이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그건 인정할 수가없어.>
- P115

<만약에, 의식적으로 살아온 내 평생의 삶이 정말로 《그게 아닌 삶》이었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생각, 즉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18

그는 똑바로누워 지나간 삶의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하인에 이어 아내와 딸, 그리고 의사가 차례로 보여 준 행동과 말은 모두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운 진실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 P119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얼마나 좋아, 얼마나 단순해. >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 P125

「끝났습니다!」 누군가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반 일리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은 없어.>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도중에 멈추더니 온몸을 쭉 뻗었다. 그렇게 그는 죽었다.
- P126

1883년 10월 20일. 오늘 나는 기관에 끌려가 정신 감정을 받았다. 
- P129

그럼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검사를 받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미치게 되었으며 어떻게 나의 광기가 드러나게 되었는지를 차례로 얘기해 보겠다. 
- P130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나쁜거지?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거지?> 「나를 두려워하는 거지.」 죽음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거든.」 온몸에 소름이 쫙끼쳤다. 그래, 죽음이야. 죽음이 오고 있어, 바로 여기 와있어. 하지만 그래선 안 돼. 
- P138

나는 아내에게 이 영지의 수익은 사람들의 가난과 슬픔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영지를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순간 갑자기 내가 한말의 진실이 나를 밝게 비춰 주었다. 
- P151

이 모든 고통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고통이 없다면 죽음도 공포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전과 같이 마음이 찢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 P151

톨스토이는 평생 동안 문명을 비판했고 평생 동안 죽음을 성찰했다. 그의 무덤은 그의 사상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 P155

톨스토이에게 죽음은 삶의 이면이었으며 죽음의 문제는 삶의 문제와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동일한 문제의 양면이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따라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풀기 위한 문명-자연-도덕의 3중 코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코드이기도 했다. 
- P166

이때의 체험은 15년 후 「광인의 수기」라는 단편으로 구체화되었다. 비록 미완성의 작품이지만 이 단편은 「참회록」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사이에서 일종의 교량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자전적 소설이다. 
- P175

그러니까 이반은 어느 특정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처럼 유한한 인간 일반이고 <이반 일리치의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라 해석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평생 동안 자기를 사로잡아 온 죽음의 문제를 이제 가장 보편적인 차원에서 펼쳐 보이는 것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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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은이), 이훤 (사진) 디플롯 2023-07-03, 228쪽, 에세이

#빈칸놀이터프로그램
#에세이를읽어죠앤
#밀린독서기록정리중
#책사는속도는읽는것보다빠르고
#기록은읽는것보다느리다

🍊 빈칸놀이터 에세이를 읽어죠앤의 4월책 리뷰를 이제야.. (사실 두어달 밀릴 리뷰는 밀린것도 아니다.) 이슬아작가의 책을 한다고 해서 3월에 이어 두번째로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슬아작가의 매력에 빠져있다면 이 책 역시 안 읽을 수 없다. 할 말 다하고 온전히 자기 생각대로만 살 것 같은데, 이슬아 작가 배려심도 따뜻함도 가족에 대한 애착도 많다. 왜 이런 부분이 의외인데 자연스러운거냐구.

🍊 에세이를 평범한 소재에서 어떻게 특별하게 쓸 수 있는지를 보여준 책이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한 줄 평가가 나왔다. 난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 내 글이 재미가 없는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표지랑 제목. 너무 이슬아 같았다. 표지 사진이 이훤 작가 작품인데, 이훤 작가와의 만남이 책에 담겨있다. 설마 영어회화 튜터였을줄이야... 나 왜이렇게 이슬아 작가에게 빠진거지??? 이슬아 답게 재미있게 금방 읽힌다. 가벼운데 가볍지가 않다. 이슬아의 매력이다.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매력있어.

🍊나에게 무용해도 아름답거나, 탁월하지 않아도 좋은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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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노 아키라 (지은이), 이영미 (옮긴이) 블루엘리펀트 2018-08-01, 304쪽, 일본소설

#광주용인독서모임
#밀린독서기록정리중
#책사는속도는읽는것보다빠르고
#기록은읽는것보다느리다

🍅 경기광주,용인, 수원독서모임
4월 도서, 그리고 7번째 도서
(건너 뛰는 달이 있음. 모임이 지속될 수 있을까?)

🍅 예전 팟태스트 ‘지대넓얕‘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정말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김도인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하도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들어 본듯한 느낌이었는데, 그 즈음 이 영화 스토리도 듣기는 들었다. 이번에 읽으며 상당히 빨려들어가며 읽었다.

🍅 책이 너무 좋았다. 손에 꼽는 책이 되어버렸다. 신파 없이 갈등을 잘 표현했고,
워커홀릭에 자신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용서못하고 미워한 료타가, 진정한 아버지가 되고 가정적으로 되는 성장을 설득력있게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모습도 좋았다.

🍅 아버지인 료타가 세이지를 보면서 본인과 닯은 건 핏줄(혈연관계)이라 생각하고,
예의가 없거나 고집을 부리는 건 생활습관(자라온 환경)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서.. 어이가 없으면서도 나 또한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가족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료타나 료타의 아버지는 혈연에 집착했다. 결국 료타는 가족이 단순히 혈연이 아닌,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받아들인듯 하다. 식구, 가족이란 말이 올드해진 요즘 시대에 신파가 아니면서도 곰곰히 생각할 만한 시간을 준 책이었다.

🍅 참고로 모임을 책과 영화 모두 취향대로 감상하기로 했는데, 전체적인 것 비슷하지만 일부 내용이 다른 게 있었다. 미도리의 친정엄마와 아이바꿔치기한 간호사 이름이 다르고 약간의 스토리가 달랐다. 특히 영화는 얘기를 들어보니 좀 더 열린결말인듯했다. 책은 료타가 류세이가족을 도쿄로 초대하거나 캠핑텐트를 12인용으로 사기 쉽지 않다하면서, 세이지가족이 있는 처가댁으로 이사가는걸 암시한다. 반면 영화는 게이타와 화해하고 철물점 안으로 같이 들어가는 걸로 끝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둘 다 접한 모임의 다른 분이 책 내용이 좀더 디테일하고 인물간의 감정서사를 좀더 다뤄주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영화속의 질문에 대한 답을 책에서 찾을수 있었다고 하니, 두 매체 모두 읽거나 보면 좋을 듯 하다.

🍅 남기고 싶은 구절들

🌱미도리는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야경이 아니라, 괴롭게 일그러진 채 유리창에 비친 료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 ‘역시 그런 거였어‘라고. ‘역시‘라가 무슨 뜻이야?˝
210

🌱미도리가 돌아보았다. 얼굴은 눈물에 젖어 일그러져 있었다. 그 눈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깊은 분노로 불타올랐다.
아마도 이제 서로 어긋난 톱니바퀴는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것이다.
료타는 우두커니 선 채로 가족이 붕괴하는 소리를 들었다.
211

🌱미도리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게이타가 그 맛을 잊지 않길 바랐다. 유카리의 닭튀김도, 그 어떤 고급 음식점의 맛도 엄마가 만들어준 닭튀김에는 대적할 수 없다고 여겨주길 바랐다. 평생, 영원히 잊지 말아달라고 미도리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절대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저 닭튀김에 그 마음을담을 수밖에.
215

🌱˝너는 왜 이런 미션 같은 걸 하나 싶겠지만 십 년이 지나면 틀림없이해하게 될 거야˝
게이타로서는 십 년이 어느 정도 시간인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시계도 제대로 읽을 줄 몰랐다.
216

🌱손의 온기를 느낀 유카리가 더 힘껏 게이타를 끌어안았다.
내 앞에서 슬퍼하는 아이. 그 슬픔을 덜어주고 싶었다. 유카리에게는 그것이 어느 곳의 어떤 아이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류세이와의 관계, 류세이에 대한 마음, 류세이에 대한 사랑,
그것은 나만의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변할 리 없다고 유카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233

🌱료타는 말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여유가 있었다. 좌천 소식을 들은 당일이니 짜증스러울 법도 하지만, 스스로도 이상할 정도로 마음은 편안했다.
242

🌱˝그런데 말이야. 노노미야, 왠지 널 좋아하게 될 것 같긴 하다.˝
스즈모토가 놀렸지만 완전히 농담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멍청이 너한테 사랑받아봤자 하나도 안 기뻐.˝
놀림을 받아치는 가벼운 농담을 던지려 했는데, 절실한 말투가 나오고 말았다.
257

🌱예의가 없다? 그렇다. 예의 탓이지 내 ‘핏줄‘ 탓이 아니다. 나쁜 점은 예의 탓이고 좋은 점은 ‘핏줄‘ 탓이다. 좋은 점이 있다면 그렇단 말이지만, 하하하.
260

🌱긴 시간일까? 게이타를 키워온 육 년. 류세이와 떨어져 지낸 육 년.
그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했을까? 아니, 애당초 그것을 부모가 선택해야 했을까?
그러나 게이타도 류세이도 분명 인공림의 매미였다. 사람의 손에 의해 그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275

🌱자기한테 유리할 때는
‘핏줄‘, 마음에 안 드는 점은 가정교육 탓. 그 모습은 아버지 료스케와 매우 비슷했다. 자기에게 불리한 건 모두 남에게 밀어버린다. 혐오했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284

🌱이제는 누가 누구의 자식이고, 누가 누구의 부모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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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것은 이미 오랜 옛날 내가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던 그런 시각이었다. 그러한 때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언제나 가볍고 꿈도없는 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인가 달라져버린 것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이제 내가 다시 만나는 것이 나의 감방이니까 말이다. 마치 여름 하늘 속에 그려진 낯익은 길들이 죄없는 수면으로 인도해 갈 수도 있고 감옥으로 인도해 갈 수도 있는 것처럼.
- P129

그때 나는 검사의 말을 이해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그가 ‘그의 정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마리였을 따름이다. 
- P132

지금의 나의 관심거리는 메커닉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불가피한 것으로부터 빠져 나갈 길이 있을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 P143

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밤마다 그 새벽을 기다리며 지낸 셈이다. 갑자기 놀라는 것을 나는 언제나 싫어했다. 
- P148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 P157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 P157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왜 인생이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생애를 다시 시작해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들인 휴식시간 같았었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에서 엄마는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 P159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준것처럼,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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