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온의 글쓰기를 구성하는 원리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불안이다. 이로부터 디디온은 재능을 멋지게 떠받쳐주는 우울하고 흔들리는 페르소나를 창조해냈고, 적어도 한 편의 불후의 소설 (『모든 것은 순리대로 Play it as it lays』)과 미국 문학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에세이 몇 편을 남겼다. 
- P45

에세이 「나는 왜 내가 사는 곳에 사는가>에서는 대리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이용하여 ‘고향‘에 대한 지독한 양가감정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심리의 치명적 급소를 탐구하기도 한다. 
- P51

끝이다. 이게 전부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 P62

「미국의 아들의 기록」과 「코끼리를 쏘다」 모두 지독하리만치 깊숙한 자아 탐구가 글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자전적 이야기를 에세이에서 회고록으로 인도하는 것은 탐구의 깊이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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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다현을 죽인 것이 영주였다면 좋았을 것을.
다현이 죽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준후는 조금 놀랐다.
- P269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일그러진 조미란의 얼굴을 보며, 정은성은 조미란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슬프다는 얼굴을했다.
"내가 어떻게 엄마를 실망시켜."
- P279

준후는 저항하듯 벌떡 일어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강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 P323

그중 한 사람만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강치수가 답했다.
"외로웠겠죠."
- P328

아무도 모른다.
그 냄새나는 차의 문을 닫을 때, 황권중이 살아 있었던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김준후는 길고 긴 복도를 웃으며 걸었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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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 P7

아주 잠시, 준후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무섭게 굳어버린 얼굴 속에 일그러진 욕망이 있었다. 두려움과 슬픔의 외피를 두른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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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 P9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날 때까지 넣어라" 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 P10

인생은불공평하고, 때로는 분별없이 남 탓을 해보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 P14

대신 두 분이 그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 고리 모양의 달콤한 짱구 과자를 열 손가락에 끼고 흔들어대던 모습, 한국 포도를 먹을 때 껍질에서 알맹이만 쪽 빨아먹고 씨를 훅 뱉는 법을 내게 가르쳐주던 모습을.
- P23

엄마는 2014년 10월 18일에 눈을 감으셨는데 나는 매번 이날짜를 잊어버린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리가 함께 견뎌낸 어마어마한 시간에 비하면 정확한 사망일 따위는 너무 하찮게 느껴져서인지. 
- P24

"아이고 예뻐"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 P60

당시에는 엄마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지금처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엄마는 어마어마한 상실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나는 아직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자기 엄마에게서 떨어져 지낸 그 모든 세월에 대해,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 느꼈을지도 모를 죄책감도 생각하지 못했다. 
- P64

피터는 한참 지나서야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이 자신에게 먼저 전화했노라고 엄마가 아프다는 걸 자신이 나보다 먼저 알았노라고 내가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에 반드시 내 옆에 있겠다고 두분에게 약속했노라고.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자기가 내 옆에 있겠노라고.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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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적‘ 형태의 담론이다.
여기에 한 가지 예가 있다.
그 중심 개념은 책임이다. 책임은 진보주의 · 자유주의 도덕의 핵심이다 (『도덕의 정치』 참조). 진보주의 · 자유주의의 도덕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감정이입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에 대한 책임, 보호에 대한 책임, 공동체에 대한 책임,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책임은 모두 감정이입을 전제한다. 그것은 우리가 9.11 테러 직후 목격한 구조대원들의 행동에 내재되어 있는 바로 그 가치다.
- P205

프레임 형성에 대해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라. 일단 나의 프레임이 담론으로 수용되면,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그냥 상식이 된다. 왜? 이미 자리 잡은 일상의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는 것이 바로 상식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 P280

상대를 존중하라.
프레임을 재구성하여 대응하라.
가치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발언하라.
자신의 신념을 말하라.
- P285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는 조치에 투표하는 경우가 많다. 보수의 지속적인 프레임 구성으로 인해, 바로 그것 때문에 삶이 본질적으로 황폐해질 수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까지 보수적 세계관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 P129

즉 우리 도덕적 감각을 특징짓는 회로망이 바뀌면 우리의 인성도 바뀐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것,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이 바뀜으로써 우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도 바뀐다. 
- P91

진보와 보수의 세계관은 서로 충돌하며, 둘 다 뇌 속에서 신경 회로를 통해 규정된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의뇌 안에 상충하는 신경 회로를 지닐 수 있을까? 간단하다. 해답은 상호 억제다. 이런 식의 뇌 회로망은 매우 흔하다. 한쪽 회로가 활성화되면 다른 쪽 회로는 꺼진다. 주어진 시점에 어느 쪽 회로가 켜지는가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두 세계관을 모두 가진 사람은 이를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른 쟁점에 적용하며,
그 결과 서로 다른 가치에 결부된 뇌 회로를 쟁점에 따라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넘나들게 된다. 이것이바로 이중개념 소유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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