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짜리 화보 포함한 책이 1만원이다. 80% 할인이다.  리뷰를 찾아보니 평소 자주 가던 믿을만한 이웃의 평이 만점이다. 그림과 사진만으로도 1만원어치 이상의 값어치는 할 듯하여 선뜻 주문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매일 접하는 음식에
이토록 많은 역사적·사회적 의미가 담겨있다!

다른 섬 주민들과 달리 시칠리아 사람들은 생선에 영 관심이 없다. 엄청나게 많은 생선을 소비했던 영국인들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겨우 몇 가지의 생선과 조리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로마제국부터 유럽은 행신료를 많이 쓰기로 유명했는데, 왜 19세기에 와서 향신료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을까?
커피나 초콜릿의 도입으로 국제 상업 무역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랍 사막에서 창조된 정교하면서도 다양한 음식의 기원은 무엇이었을까?
프랑스의 그랑 퀴진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을까?
레스토랑은 언제, 어디서 발생했을까? 그리고 과거의 맛과 현대의 맛은 어떻게 절충해야 할까? (출판사 소개글)

 

 

정재승님의 책은, 뭘 깊이있게 배운다는 것 보다는 재미있게 책을 읽고 싶을 때 선택하는 책이다. 과학콘서트가 그랬다. 영화와 과학을 접목하면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다. 정재승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까.

 

 

 

 

 

 

 

 

 

 

 

 

 

 

 

기억은 우리 삶에 연속성을 제공한다. 기억은 과거에 대한 정합적인 상을 제공하고, 그 상은 현재의 경험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그 상은 불합리하거나 부정확할 수도 있지만 존속한다. 기억의 결합력이 없다면, 경험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무수한 순간들만큼 많은 조각들로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기억이 제공하는 정신적 시간 여행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개인사를 알지 못할 것이며, 우리 삶의 찬란한 이정표로 작용하는 기쁨의 순간들을 회상할 길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인 것은 우리가 배우고 기억하는 것들 때문이다. --- pp. 28~29

새 시냅스 말단들의 성장과 유지는 기억이 영속하게 한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뇌가 약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험의 결과로 새 시냅스 연결들을 성장시키는 능력은 진화 과정 내내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더 단순한 동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에서 신체 표면 감각의 피질 지도는 감각 경로들에서 온 입력의 변화에 반응하여 끊임

 

없이 교정된다. --- p. 308

발생 및 발달 과정은 뉴런들 사이의 연결을 지정한다. 즉, 어떤 뉴런들이 언제 어떤 뉴런들과 시냅스 연결을 형성하는가를 지정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 연결들의 세기를 지정하지 않는다. 그 세기-시냅스 연결의 장기적 효율성-는 경험에 의해 규제된다.……나는 17세기 이후 서양 사상을 지배한 상반되는 두 철학-경험론과 합리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 pp. 229~230


 

 그리고.. 갖고 싶었던 음악의 세계사는 제 값 주고 드디어 주문. 알라딘에서 예스24보다 4천원 저렴하다

 

 역사를 반영하면서 예술은 어디까지 왔는가? 예술로 집약되고 열리면서 현실은 어디까지 왔는가? ‘음악의 세계’사를 살피면 인간 역사와 우리 마음에 ‘아름다운 시간의 형식’을 부여할 수 있을까? 다른 예술장르는? 이 책은 그 무엇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경위를 주제 삼은 ‘교과서풍’ 역사책은 아니다. 무엇보다 예술, 특히 음악이 흐르듯 오늘날 역사가 흐르고, 오늘날 흐르는 역사가 가장 위대한 예술이기를 바라는 모종의, 음미다. (23쪽)

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처음에는 수없이 많은 접속사와 쉼표(,)의 돌부리에 시도 때도 없이 걸려 넘어질 것이다. 그것들은 일반적으로 호흡 곤란의 진정제일 때가 많지만, 이 책에서 문장과 문장을 잇는 접속사와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쉼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유의 신중한 숨 고르기처럼 읽힌다. 역사를 마주하는 저자의 시선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사유의 무늬는 영락없는 시인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술(가)의 시선과 사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역사서에서 만나는 일은 흔치 않은 체험일 것이다.

모든 음악은 우주의 배꼽을 품고 있으며, 참혹조차 명징하게 만들고, 인간의 마음속을 가장 아름다운 우주의 시간과 공간으로 펼쳐낸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음악은 죽음이 액화한 시간이고, 아름다움이야말로 죽음의 배꼽이다.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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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모집] 민음사 신간 『강대국의 경제학』알라딘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총 10명, ~7.24)


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경제학자의 시각으로 밝혀낸 국가 흥망성쇠의 패턴
모든 번영의 핵심은 '경제 불균형' 해결에 달려 있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쓴 <총, 균, 쇠>
『강대국의 경제학』알라딘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총 10명, ~7.24)


알라딘 『강대국의 경제학』보러가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9317

 

 

 

 

▶『강대국의 경제학』소개글_

 고대 로마와 중국 명나라, 오스만튀르크와 스페인 제국 등 수많은 강대국들이 일어나 막강한 군사력과 영향력을 자랑했지만 결국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한 나라가 태어나 오랫동안 번영을 구가하기 위한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경제학자 글렌 허버드와 팀 케인은 강대국 흥망의 메커니즘을 다각도로 연구해 포괄적이면서도 대담한 이론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정치나 지리, 군사력 중심의 기존 이론들과 달리 새로운 경제력 측정법과 방대한 데이터를 무기로 삼아, 로마의 성공과 몰락, 스페인 제국의 영광과 파산, 일본의 경제 기적과 잃어버린 10년 사이에서 ‘공통된 패턴’을 찾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넓은 영토와 인구, 군사력 등은 강대국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며, 한 나라를 유지하고 번영케 하는 것은 경제적 요소들 간의 독특한 관계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또한 그 이론을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유럽과 영국 등 최강대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보여 준다. 이 책은 국가들을 움직이는 장기적인 동역학과 거대한 인간 집단의 상호작용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선사할 것이다.


▶『강대국의 경제학』내용 소개_

 경제학의 렌즈로 역사를 보기 시작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다. 이때 역사는 여러 인물이 만들어 내는 드라마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지니며, 터무니없이 불합리하게 보이는 놀라운 정책 선택의 리듬을 드러낸다. (13쪽)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멸망을 떠올려 보자. 흔히 도나우 강 저편에서 전투용 도끼와 방패를 만드는 게르만족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결국 강대국은 이민족에게 무너진다는 것이 역사적 통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발렌스 황제가 고트족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아드리아노플 전투를 로마가 쇠퇴와 멸망으로 돌아선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글렌 허버드와 팀 케인은 아드리아노플 전투 수 세기 전부터 로마가 내부적으로 썩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로마 쇠퇴의 시작으로 지목한 시점은 로마의 전성기인 5현제시대를 이끈 트라야누스의 치세다. 바로 그즈음에 로마 경제가 성장에서 쇠퇴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를 비롯한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강대국의 경제학』에는 경제학의 관점에서 강대국 흥망의 메커니즘을 살펴보는 흥미로운 분석들이 이어진다. 콜럼버스보다 1세기나 앞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지배할 수 있었던 정화의 보선(寶船)이 왜 항해를 멈추고 항구에서 파괴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는지(5장), 신대륙에서 들여 온 은은 스페인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6장), 일본식 경제 모델은 어떻게 기적을 일구어냈으며 그 한계는 무엇인지(8장) 등 이 책은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을 총동원하여 강대국 흥망의 궤적을 살핌으로써 역사를 읽는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 『강대국의 경제학』작가 소개_

 

■  글렌 허버드(Glenn Hubbard)
 글렌 허버드는 세계적인 거시경제학자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재정학 석좌교수 및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센트럴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최우등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노스웨스턴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 등에서 가르쳤으며, 국립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미 재무부에서 세금 정책 담당 부차관보로 일했고, 2001년부터 부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와 OECD 경제정책자문위원회에서 의장직을 맡았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파이낸셜 타임스》 등에 기고하며, 텔레비전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  팀 케인(Tim Kane)
  팀 케인은 허드슨 연구소의 수석 경제학자이자 소셜 네트워킹 회사인 스토리포인트(StoryPoint)의 창립자이다. 기업가 정신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그의 논문은 2011년 대통령 경제 보고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었다. 현재 다수 대학과 싱크탱크에서 경영자 및 학자로 일하고 있으며, 《뉴욕 타임스》, 《애틀랜틱》 등 많은 경제·시사지에 기고한다. 

 

■ 옮긴이 김태훈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현재 번역 에이전시 하니브릿지에서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의 비밀』, 『달러제국의 몰락』, 『야성적 충동』, 『욕망의 경제학』, 『금융공황의 시대』, 『그린스펀 버블』 외 다수가 있다.
 
▶『강대국의 경제학』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하나, 강대국의 경제학』해당 서평단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 등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와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4년 07월 16일 (수)~2014년 07월 23일 (수) (7일간) 입니다.

 

셋, 총 추첨 인원은 10명입니다.

 

넷, 발표일은 2014년 07월 24일 (목) 오후 알라딘 민음사 나의 서재에 댓글 및 [서평단 발표]에서 공지됩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4.07.29(화)~08.12(화) 2주간 입니다.

 

마지막, 당첨자 분들은 2주간 알라딘 나의 서재 개인 계정 및 개인 블로그, 그 외 외부 채널 등 서평을 작성 한 후『강대국의 경제학』서평단 발표 페이지에 알라딘 나의서재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해당 기간 안에 작성하지 않을 시에 다음 서평 모집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민음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당첨자 분들은 댓글과 해당 도서 [서평단 발표] 게시물에 닉네임으로 공지가 될 예정입니다. 당첨자 분들은 반드시 해당 도서 [서평단 발표] 게시물에 마감 날짜 (당첨자 발표 후 3일간) 까지 비밀 댓글로 『강대국의 경제학』수령하실 주소와 성함, 연락처를 정확하게 기입해주세요.

 

 

민음사를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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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스티븐 킹 신작도서! 『닥터슬립』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안녕하세요. 황금가지 입니다 :)


36년 만에 출간된 『샤이닝』의 후속작,

뉴욕타임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전 세계 3억 독자를 둔 세계적인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의 최신작!

스티븐 킹 신간도서『닥터슬립(Doctor Sleep)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어서와 황금가지 온라인 서점 서평단은 처음이지..?!!)



▶ 도서소개 


광기 어린 아버지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포가 아닌 치유를 보여주는 작품, 『닥터 슬립』 출간!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잭 니콜슨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샤이닝』의 후속작으로서, 36년 만에 출간된 속편 『닥터 슬립』(전2권).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브람 스토커 상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다. 


『샤이닝』에서 살아남은 소년 대니가 중년이 된 후를 그리는 『닥터 슬립』은 기존의 '공포'에서 탈피하여 초능력을 가진 소녀와 그녀를 죽여 영생의 기운을 받으려는 괴집단과의 쫓고 쫓기는 스릴을 담는 한편, 알코올 중독자로 인생의 끝에 섰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재미와 감동을 함께 준다. 


『시녀 이야기』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닥터 슬립』에 대해 "스티븐 킹의 여러 걸작에서 드러난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극찬하면서,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는 너대니얼 호손과 에드거 앨런 포에서부터 이어진 미국 호러 문학의 본질이라고 평했다.



 

 

 


 


▶ 줄거리


어린시절 오버룩 호텔에서 겪은 악몽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댄(대니)은 작은 마을에서 호스피스 일을 한다. 그의 특별한 능력 '샤이닝'은 임종을 앞둔 이들이 편안하게 눈감도록 인도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닥터 슬립'이라 불리운다. 그러던 어느날 오래 전부터 그의 주변을 맴돌던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며, 도움을 요청한다. 


전국을 떠돌며 샤이닝을 가진 어린 아이를 고문하고 죽여 거기서 나온 기력을 먹고 사는 괴집단 '트루 낫'이 다음 목표로 소녀를 선택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샤이닝을 가진 소녀의 목숨과 영혼을 구하기 위해 댄은 초능력자 집단인 '트루 낫'과 생존을 위한 전쟁에 나서게 된다. 



▶ 『닥터슬립』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하나, 해당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4년 07월 16일(수)~2014년 07월 20일(일) 5일간 입니다.


셋,추첨 인원은 10명입니다.


넷, 당첨자 발표일은 2014년 07월 21일 (월) 오후 입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4.07.24(목)~08.03(일) 10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자 분들은 서평을 작성 한 후 『닥터슬립』 서평단 발표 페이지에

온라인 서점 블로그와 개인 블로그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도서는 닥터슬립 1,2권 모두 발송 됩니다)

 


- 서평단 지원자가 모집 인원에 미달할 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일부 인원만 선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작성하지 않을 시에 다음 서평 모집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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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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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의 아들은 왜 다들 똑똑하고 잘생기고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효자고 자상하고 부드럽고 능력있고 모든 여자들이 다 좋아하는 걸까. 왜긴. 엄마 친구 아들이라서다. 여기서 엄마 친구는 엄마의 어떤 친구가 아니라 엄마의 모든 친구들의 교집합이다. 그런 남자, 엄마가 매일 자기 아들과 비교하는 그런 남자가, 단일한 인격체로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희귀한 종들을 엄친아라고 한다. 또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올 것 같이 길쭉하게 생겨서 부드러운 머리결을 바람에 휘날리며 상콤한 미소를 보내는 남자들을 만튀남 혹은 순튀남이라고도 한다. 이건 만화니까. 어쨌거나. 그런 남자들은 없다. 있다 해도 우리가 아는 건 그의 일부일 뿐. 스위디는 그런 존재였다. 실제로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온동네 모든 소녀들, 친구, 동생의 친구, 학부모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동네를 넘어 도시의 모든 사람들까지 숭배하는, 강인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능력이 있으면서 부모에게는 복종하고 절대로 거만하지 않고, 유대인이라는 낡은 가치에는 도전했던, 이상적인 소년이었다. 훤칠한 키, 금발, 뛰어난 운동신경, 완벽한 빚어진 근육으로 뉴어크의 팬들에게 승리감을 안겨주는 스포츠 스타. 친절하고 상냥하고 부드럽고 균일한 성격과 인내심. 순혈의 북구 피를 가진 사람처럼 금발을 가진 잘생긴 소년 스위디는 미국 이민자들이 4대에 걸쳐 어메리칸 드림을 향해 이룬 과정의 거의 끝인 1960년대 완성품이었다. 그리고 그의 딸 메리는 2천년동안 받아온 박해의 최종 장소인 홀로코스트를 피해 바다 건너 미국으로 온 선조들이 4대에 걸쳐 피와 땀과 민족적 자부심으로 이루어낸 낸 성취를 성년이 되기도 전에 가장 반미국적이고, 폭력적이고, 비타협적이고, 혐오받을 방식으로 박살내었다. 딸 메리로 인해 완벽하고 흠없는 인생이 저 밑바닥 끝모를 나락으로 어지는 과정, 그게 소설의 전체 내용이다. 
 
나는 여기서 스위디의 딸 메리가 극렬 베트남 반전 운동가로서 폭파범이 되어 서서히 스위디와 그의 가족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보다, 소설의 프레임 구조에 숨긴 수수께끼가 궁금했다. 필립 로스는 자신의 분신, 저크맨이라는 1인칭 화자를 통해 스위디의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왜 작품 속 나는 스위디가 아니라 저크맨일까. 게다가 저크맨이 스위디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동기와 그에게 스위디라는 한 인물의 인물을 회상하는 묘사는 상세하다. 소설가로서 성공한 나 저크맨은 유대 이민자의 후손으로 가난하고 페쇄된 커뮤니티 내에 살았던 경험 속에서 스위디와 그의 동생 제리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동창회에서는 고등학교 시절의 온갖 친구들을 만나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수다들을 끝도 없이 묘사한다. 참으로 지루하다. 거기서 그는 스위디의 동생을 만나, 스위디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우연하게도, 저크맨은 바로 두 달 전 스위디의 요청으로 수십년만에 그를 만났다. 그는 스위디가 실은 죽기 전 소설가인 자신에게 무엇인가 할 남길 사연이 있었음을 깨닫고 그의 인생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워웨이크의 영웅 스위디에 대한 기억은 소설가로서의 어떤 허구의 인물을 창조하고자 하는 창작자로서의 욕망보다 자신이 아는 스위디의 삶을 재현해보고자 하는 인간적인 욕구에 더 이끌리게 한다. 그러나 스위디는 이미 죽었다. 그는 스위디의 진짜 이야기를 쓸 수가 없다. 자신이 아는 것은 독단적이고 냉혹한 성격의 그의 동생 제리를 동창회에서 우연히 만나 전해 들은 짧은 미완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자신의 형을 몰락시킨 주위 사람들에 대한 독설을 토대로, 저크맨은 상상한다. 엄친아, 우리의 영웅 스위디는 어떻게 몰락해갔을까. 

 

그래서 스위디의 이야기는 로스의 소설이 아니라, 로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 저크맨의 소설이다. 그는 수십년만의 짧은 만남에서 얻은 아주 작은 단서들과 제리가 알려준 비극적 결말을 실에 꿰어 스토리를 써나간다. 이 때부터 우리는 나 저크맨의 상상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허구 속의 스위디와, 그 스위디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미국적 가치 체계 속에서 나오는 주변 인물의 생각을 만난다. 제리가 전해 준 메리라는 인물이 저크맨을 통해 스위디의 머리 속에서 실패와 독선과 폭력 증오의 화신인 딸이 되어 그녀의 이기적인 아내와 이루어 살아간 '목가적' 삶을 만난다. 저크맨은 스위디가 되어 글을 썼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알고 있는 인물은 스위디 뿐이다. 그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은 그를 통과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적 배경 뿐이다. 그래서 실은 스위디를 이해하지 못한다. 스위디를 이해하고 싶다. 스위디의 삶을 좀 더 추적해서 그의 전기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로스가 로스 자신과 스위디 사이에 나 라는 저크맨을 화자로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 소설이 특히, 제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최대한 스위디의 인생에 가깝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는 한 번에 여섯, 여덟, 때로는 열 시간씩 스위드 생각을 하고, 내 고독과 그의 고독을 바꾸어보고, 나와 전혀 닮지 않은 이 사람 안에서 살아보고, 그의 안으로 사라져보고, 낮이나 밤이나 겉으로는 텅 비고 순수하고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을 측정해보려고, 그의 붕괴의 도표를 그려보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를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중략. 나는 제리에게 원고를 보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몯고 싶은 아마추어같은 충동을 느꼈다. 121

 

 

로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답해야 하는 역사적 문제 의식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고 싶었다. 전쟁의 광기와 폭력과 혼돈의 시대 속 매리라는 인물을 스스로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건 독자들의 몫이니까. 이미 자유라는 이름의 최고 가치가 미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정체성을 형성한 후에야 자신들의 과거인 이 소설을 읽게 되었으니까. 메리는 스위드의 동생 제리의 눈에, 1960년대 미국의 반항적이고 병적인 광기와 이미 실패한 혁명이란 이름의 모든 폭력적 운동을 상징한다. 우리는 메리를 모른다. 스위디가 상상한 메리의 생각이 있을 뿐이다. 저크맨은 스위디가 메리를 몰이해하는 방식으로 무너져내리게 묘사했기 때문에 독자는 스위디가 바라보는 만큼, 저크맨이 상상한 것만큼 밖에 메리를 알 길이 없다. 첫번째 프레임 내에서 오로지 메리를 보았고, 말을 해본 사람은 냉정하고 비판적인 제리 뿐이다. 그 아이는  어쩌면 착한 아이였을 수도 있다. 자신의 부가 어떤 착취를 통해서 왔는지 자신의 나라가 자유 라는 이름의 오지랍으로 어떻게 베트남 민족을 분열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미국인을 자신과 스위디 사이에 끼워 넣었다.  '로스 ≠ 저크맨  ≠ 스위디'의 공식은 그런 것이다. 이게 나의 생각이다. 

 

 저크맨이 스위디에 대해 가진 환상은 컸지만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아주 작은 단서로 미국의 1960년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창조해 내야 했다. 폭파범은 혁명 전사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미국은 독립과 평화를 원하는 베트남 민간인을 향해 끝도 없는 공습을 퍼부었고, 매리는 '폭력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세상에, 미국 사람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16세의 어린 나이에 폭파범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것을 보는 시각은 제리가 악마라고 규정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제리의 시선을 저크맨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그 길고 상세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고등학교 동창회가 길어졌다. 저크맨의 상상이 빚어낸, 외향적으로는 긍정적이고 평화적이고, 이타적이고 강인한 미국적 가치와 이상적으로 부합되는  스위디를 미국과 동일시하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그의 딸 메리를 반미국적으로 대치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로스의 생각과 어떤 이견이 있는지 어떤 일치가 있는지를 밝히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한 발 더 물러서기 위해 저크맨이라는 인물을 드러내고 자신은 그 뒤에 철저하게 숨었을 것이다.  

 

로스의 알레고리는 미국 = 스위디다. 강인하고 긍정적이고 이타적인 그의 뒤에 숨은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깨닫지 못할 것들. 영원히 알지 못할 것들이다. 그들이 흑인 노동자를 착취한 것이 아니라 '구해' 주고 베풀어 주었다는 근본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자신들이 선하다고 믿는 그 해맑은 미국적 정신이다. 선한 자신들이 과거 인디안에게 그랬듯 흑인 노예들에게 그랬듯 지금 앞으로도 계속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쭈욱 모른 채 선한 얼굴로 남게 될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비로 스위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감추고 떨쳐내 온 미국 사회의 어두운 폭력과 광기로 대변되는 매리의 삶은 그래서 스위디의 기억과 상상으로만 재생된다. 그 재생이 로스의 손을 떠나 제리를 거쳐 스위디의 머리속으로  탄생되는 몇겹의 이중장치를 통해 실상은, 메리의 진짜 마음속, 메리가 품은 이상에 절대로 근처에도 갈 수 없다는 것과 그 잔인한 폭력의 이면에 갇힌 진짜 문제들을 덮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감추는 것이다. 

 

필립로스는 인물의 생각을 끝도 없이 파고, 파고 또 파서 생각하는 것의 디테일의 끝판을 보여준다. 가죽공장과 장갑을 만드는 공정, 지리적 위치, 대화의 상세한 기술과 묘사는 대단하다 대단하다가 결국 질리기에 이른다. 필립 로스의 소설은 잠시 이제 여기서 고만 보자. 최근 들어서만 <포트노이드의 불평>과 <에브리맨>까지 읽었다. 더 늙어서 쓴 에브리맨에서 작가로서의 원숙의 끝을 보이지만, 포트노이드의 불평은 젊지 않으면 결코 이를 수 없는 위트를, 미국의 목가는 또 그가 그 나이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소설적 완벽함을 보여주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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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썼다가 지운다. 다시 썼다가 다시 지운다. 그렇게 일주일이 열흘이 지났다. 격앙된 목소리로 그날의 기록에서 받은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쏟아내었다.. 지운다. 슬픈 얼굴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글자들을 화면위에 늘어뜨렸다.. 지운다. 눈물로 울음을 울지 못한다. 그동안 흘렀던 눈물과 똑같은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그동안 쌓았던 을분과 똑같은 을분을 터뜨릴 수는 없다. 이것은 소소한 감정의 소비로 마무리할 수 있는 종류의 진실이 아니다. 울면 안된다. 가족과 싸웠다고, 몸이 아프다고, 저녁 어스름이 감성을 건드린다고 흘렸던 것과 똑같은 물리적 성분으로 구성된 액체를 흘려 내림으로 해서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1980년 광주, 5.18은 '고립'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은폐'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닸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해 아른아른 우리들 삶의 틈새로 흘러다니고 죽지 않은 사람들은 방사능 피폭처럼과 유전자들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잔인하게 세포들을 태운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 총검 앞에 학살.고문.폭력.살인.능욕과 같은 가장 잔인한 언어들은 무기력하다. 그 어떤 언어도 참담했던 기억 앞에서는 무능하게 스크린과 지면을 채울 뿐 희생자를 가둔 가장 깊은 곳의 진실은 여전히 희생자들의 몫이다. 이 책에서 다시 깨닫는 그 날 광주의 실상은, 2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아픔, 이들의 고립, 저들의 은폐, 저들의 폭력이 희생자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방가능 피폭처럼 몸속의 유전자와 시간이 함께 파멸해가는 것이어서, 영원히 치유되지 않고, 계속되는 고통이고, 순간순간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시간과 함께 켜켜히 산처럼 쌓여 점점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곧 삶이 되어 버리는, 우리가 한 때 외면하고, 오해하고, 은폐했던 가장 잔인한 역사의 한 장이다.

 

그 열흘간의 고립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날의 폭력과, 그 날의 학살과 도륙의 잔인성이 아니다. 그 날의 피와 멍, 찢기고 찔리고 총에 맞아 헤집어진 내장과 머리통과 썩어가는 시체 냄새와 함께 있었던 16세 한 소년의, 16세 나이의 순진하고 맑은 영혼이 삶과 죽음이 공유하는 두렵고 냄새 역겨운 현장 속에서 맞설 수 있었던 고결함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소년은 알지 못했다. 단지 소년의 친구, 그 시간 죽어 원혼이 되었을 정대가 먼저 죽었다. 함께 대열에 있던 정대가 총소리와 함께 무너졌을 때 함깨 잡고 있았던 손을 놓쳤고, 공포의 순간이 스쳐간 후 친구의 죽음을 외면했다는 자책감이 소년을 그렇게 했다. 소년은 마르크스의 혁명 전사도 정의의 수호 천사도 아니었다. 왜 태극기로 주검을 덮는지가 궁금했던 한 소년이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지 궁금했던 소년이 은숙 누나에게 들은 대답,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고, 그들은 나라가 아니라는 궁색한 대답을 듣고 혼란스러운만큼 딱 그만큼밖에 역사도, 민족도, 자유도, 민주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소년이었다. 엄마가 찾아와 회유해도 끝까지 도청을 떠나지 않게 했던 소년의, 가슴에 총탄이 박힌 채 다른 소년들과 함께 가지런히 한꺼번에 주검이 되어 도청바닥에 누워있던 사진 한 장 속에 남겨져야 했던 그 소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설 만한 고결함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마도 지극히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그들이 소년인 나를, 죄없는 나를,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죽음의 공포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16세 아이였다.  소의 눈망울처럼 순진한 16세 아이의 눈에 비친 도륙과 학살의 현장에서 그토록 순수하고 단순하게 맞서게 했던 것의 실체가 '불의에 맞서는'이라는 말로 설명되어 질 수 있는 단순한 것이었을까.

 

책을 읽고 꽤 시간이 흘렀다. 책을 덮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 다른 책도 또 다른 책을 읽었어도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적는다는 것의 의미, 생각한다는 것의 한계, 공감하고, 간접경험을 하고, 깨닫고, 알게 되고 책 속의 글자를 통해 하는 정신적 행위가 차고 단단한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모르는 사실을 알았던 것도 아니고, 예상 외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던 것도 아니고, 어쩌면 사진으로 다큐로 다른 종류의 문자로 자주 접했던 내용이었지만, 그 때마다 엄숙하고 숭고한 무엇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조용히 반추하게 했지만, 공포에 맞선 양심적 선택이 역사적 순간을 외면하고자 하는 내적 이기적 자아를 이길 수 있을까. 소용없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그럼 지금 무얼 할 수 있느냐는 것은 또다른 선택이다.

 

광주가 고립되어 있는 동안, 내가 살던 도시와 대부분의 다른 도시에서는 폭도들이 총을 탈취해 도시를 불태우고 체계를 전복하려 해서 진압되었다는 소식이 뉴스로 나왔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알지도 못했거나 혹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해와 달이 엄청나게 많이 바뀌어 광주와 인연이 닿아 살게 되어 처음 찾은 5.18 묘역에서 17세, 18세의 비석을 보았을 때의 먹먹함은 대학 시절 이후 시청각 자료로 접했던 무참했던 사진과 동영상과 글들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이 곳 사람들에게 그 날의 기억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았을 때, 사람들은 그 깜깜했던 5월의 밤을 기억했다. 여학생의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2007년 여름 흥행돌풍을 몰고 왔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김요원이 맡았던 여학생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까만 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던 광주 시민에게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는 목소리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극중 김요원이, 영화 속 결혼식장 모두 웃고 있는 단체 사진 속 유일하게 어둡고 무표정한 모습의 김요원이 그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는 사실 외에, 그 다음 일에 대해 영화는 말할 기회를 잃었다. <소년이 온다>에는 그 다음 이야기가 있다. 차라리 죽음이 더 편했을 그 다음 이야기, 인간으로서 어느 처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고문과 맞닥뜨렸는지에 대해 여자로서 더는 치욕적일 수 없을 가학행위를 받고, 그 기억과 공포와 함께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디테일이 여기에 있다.

 

가해자들. 그들을 총으로 쏘고, 그들의 시체를 트럭에 퍼 나르고, 개머리판으로 머리통을 빠개고, 잡혀온 사람들을 온갖 이름의 고문으로 세포의 구석구석 상흔을 남긴 그 가해자들은 그럼 누구일까. 가학적이기로 가장 유명한 실험으로 밀그램의 전기고문 실험과 짐바도르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떠올렸다. 인간의 권위에 대응하는 본능을 보여준다는 이 실험은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들의 심리를 변호하는 데 쓰였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총을 쏜 사람들 중에는 일부러 총구를 하늘로 치켜올려 맞추지 않게 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게 인간의 잔학한 본성을 이해하는 데 무슨 위안이 될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 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117

잔혹함. 부당함. 아니아니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왔다.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다 나의 값싼 눈물을 내가 사소한 삶의 불평 불만 때문에 눈 밖으로 짜내었던 똑같은 눈물을.  내가 삶의 무게에 짓눌렸다고 징징거릴때 빼내던 똑같은 눈물을.  내가 지는 석양의 고독함에 홀려 충만한 감성이 불러내는 삶의 원초적 슬픔을 느꼈을때 흘렸던 똑같은 성분의 눈물을.  내가 인간 관계에서 상처 받아 이 세상 나만 혼자라고 느꼈을 때 흐느끼던 똑같은 성분의 눈물을. 그 값싼 눈물을 너 16세 소년의 원혼을 향해 흘리지는 않기로 했다. 너는, 혼이 되어 육체가 없이 내게로 온 너는 그렇게 소비될 수 있는 감정으로 닦아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소소한 일을 가지고 너무 그동안 많이 울었다. 쉽게 소비되고 또 다시 채워지고 했던 나의 눈물이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학살 앞에 스러져가 혼이 된 너를 향한 마음과 같은 가치가 될 수 없다. 너의 혼은, 너는 죽어서, 왜 죽었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너는 그래서 이 여름, 나에게로 왔다.  작가를 한강을 통해

 

서정적 예술성을 지향하는 작가가  목적의식을 가진 계몽적 글쓰기를 선택해야만 하는 암울한 시대를 만났을 때  예술성을 버리고 진실을 알리는 일에 경우가 있다. 한강은 예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역사가 결코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진실을 전한다. 김형수는 문학적, 창작적, 작가적 가치관을 확립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묶은 그의 글에서 '피할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것을 감당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삶으로 송두리째 안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서럽고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시작에서 우리는 16세 소년의 영혼을 맞는다. 대의가 무엇인지나 알았을까. 자신이 무엇을 위해 거기 서 있는지에 대해, 역사의 무엇이었는지, 그가 그 자리에 서고 달리고 앞으로 진전하고 끝내는 친구의 손을 놓치고 총을 맞고 리어커에 십자 모양으로 실리고, 서러운 혼이 되어 더럽혀진 썩어가는 몸들 사이에 붙잡혀 아른아른 거리고 있었던 것의 의미가, 그것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어놓았으며, 그 역사의 수혜자들이 자신의 희생을 어떻게 망각해가고 있게 될지 전혀 눈꼽만큼의 아이디어도 없을 그 순박하기 짝이 없는 정대를, 그의 혼을 묘사할 때, 작가는 시인이다. 값싸게 슬퍼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그 소년의 혼, 갑작스레 죽어 다시는 몸이 될 수 없는 혼이 가까스로 썩어가는 자신의 몸으로부터 멀어져,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혼을 향해 눈을 감고 바라보고 안고 공유한다. 깊이 공유한다. 

 

경험이다. 짧막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기록과 역사를 허구라는 형식으로 엮었지만, <화려한 휴가>를 소비하는 형식으로 혹은 다른 역사 소설을 소비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통해 감정을 자극받거나 카타르시스적 슬픔을 배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소년을, 자꾸 멀어져가는 소년의 원혼을 붙잡아 멀리 보내지 말고, 기억하고, 다짐하고, 계속해서 경험해야 할 것이다.

 

*  EBS의 지식채널 e에서 실려보내준 영상 속에 이 책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 이야기가 약간 있어서 링크한다.

 http://youtu.be/uTiIbqqUDA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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