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10여명 남짓, 어쩌다 hot 에 올라가 메인에 떴을 때에도 수십명이 고작인 내 블로그에 오늘 아침 현재 방문자 수가 136명이다. 어디 메인에 떴나, 샅샅이 뒤져봐도 없다. 무슨 일일까. 어제 올린 리뷰는 투명인간 하나인데, 공감수로 보면 그 글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어떤 글을 읽으셨나요. 궁금하다.


그냥 나가기 허전해서 읽고 싶은 신간 몇 권 추천. 존사쿠의 만화책은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마침 어딘가에서 할인행사중이다. 
























수학이 즐거운 세계를 꿈꿔본다. 수학이 즐겁지는 않지만, 사물을 설명할 때 이해할 때 명확하고 편리하다. 사고하는 것들을 수학적인 언어로 쓰는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가? 전에, 심심하면 내 고민을 C++ 언어로 만들어보기도 했었는데... 결국 C 언어란 게 일반언어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므로.. 그닥 기발하지는 않다.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 생각도 그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 그건 그렇고. 수학이 즐거운 세계를 꿈꿔봤는데. 수학을 즐겁게 글로 쓴 책이라면 어떨까. 읽어보고 싶어서.












과학 한 잔 하실래요? 의 강석기님의 신간이 나왔다. 한국의 스티브 제이 굴드라고 불린다고 하는 분의 책.

















<만조의 바다 위에서> 제목마저 근사하다. 이창래. 이 분의 책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구간 부터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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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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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세밀한 풍경화 같다. 가끔은 서정적고도 정겨운 산문 같다. 빛바랜 신문의 사회면 기사 같은 곳을 만나기도 한다. 갑자기 시골 소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문체가 나타난다. 우민에게 보내는 혁명가의 선동 메시지 같을 때도 있다. 다중 인격의 작가가 쓴 짧은 단편집 모음 같기도 하다. 인간 시대 같은 타이틀을 가진 프로그램에 나와 인터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긋 나긋 편지쓰듯 쓴 것도 보인다.  산더미 같은 이야기와 셀 수 없는 아픔과 수많은 시대적 풍경을 3대에 걸친 많은 화자들의 입을 통해 재현한다. 김만수와 인연으로 깃을 스친 사람들이 살아온 길에는 긴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 태풍의 눈이 있었다. 그것을 피할 길 없이 온몸으로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김만수를 보았다. 누구는 조금 멀리서 스치듯 보았고, 또다른 누구는 가까이서 피를 나눴다.  


소설을 구성하는 다중화자들은 서너명이 아니다.  한 때 삶 언저리에 김만수가 있었던 모든 등장인물들은 모두 소설의 화자가 되어 김만수의 일생 중 일부를 공유했고 기억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김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김만수를 증언했다. 그러나 김만수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말하는 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기억될 뿐이었다. 천근 같은 가족과 형제들의 생계와 학비를 떠맡고, 오로지 자기 희생을 통한 가족애가 전부고 종교고 신이었던 그를 역사의 수레바퀴가 벌레밟듯 짖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래서. 투명인간이 되었다.  투명인간이 메타포냐 판타지 소설 속 진짜 투명인간이냐고 빨간책방을 진행하는 이동진이 성석재에게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작가는 그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겠죠.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문에 현답이다. 


그들 가족은 투명인간이 되었다. 소외된 자, 그들이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버림받은 자, 그들이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 외마디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잊혀질 사람들이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그들은 모두 모든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착하면 착한대로, 악하면 악한대로, 현대사의 흐름 속에 철저히 소외된 채, 소비되고,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 


김만수의 추측은 가족과 관계있지만 유전의 영향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선택한 그의 아내도 투명인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투명인간 1호 김만수는 기업과 공장이 노사갈등의 열병으로 들끓을 때조차 민중의 편에서 장렬하게 희생되는 대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엉뚱한 대가를 치렀다. 이기심으로 무장하고 개인의 성공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석수는 시대를 비껴가지 못하고 컴컴한 고문실에서 폭력으로 파괴된 자아를 끌어안고 투명인간이 되었다. 가족의 희생을 발판으로 모든 가족의 기대와 희망를 한 몸에 짊어지고 대학을 들어갔지만 머나먼 땅 베트남에서 몬산토사의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의 희생양임을 모른채 대가 없이 병사한 백수 역시 어디에선가 투명한 몸을 옷으로 감싼 채 자전거를 탔을 지 모를 일이다. 


엄마 아빠에게 애초에 버림받아 결핍과 소외에 차고 날카롭고 비수로 방어했던 천재 소년 태석의 독백에서 이 모든 투명인간들의 변신 과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 


오 제발 이럴 바에는 나를 죽여주소서, 내 생명을 거두소서, 태우고 잿가루로 만들어 공중에 뿌리소서, 강물에 흘러가게 하소서, 저 광활한 우주의 한낱 티끌이 되게 하소서, 생각하지 않고 제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원소로 만드소서, 절망 속에서 울부짖을 때에 그게 됐다. 또. 중략. 그게 된다. 가끔 그래서 나는 살 수 있다.


친부는 자신의 존재도 모른다. 친모는 자신을 버렸다. 자신을 키우는 여자는 자신을 두려워한다. 학교에선 차라리 죽음이 나을 듯한 괴롭힘을 당한다. 의미 없이 딛고 올라서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격을 파괴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투명인간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은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매일 뉴스를 장식한다. 나는 투명인간인가. 나의 부모는 투명인간인가. 나의 친구, 나의 동료, 나의 형제, 나의 부하직원, 나의 상사, 나의 이웃... 그들은 투명인간이 아닌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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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devous 2014-08-17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써주신 분들마다 인용해주신 문장이 달라서 골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 빨간책방, 라디오 책다방 성석제 투명인간 방송 아직 못 들어봤는데 궁금하네요 ㅎㅎ 그런데 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그랜드슬램(문학동네, 라디오 책다방, 빨간책방) 들으면서 콘텐츠가 작아지고 다양해져서 좋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쩔 수 없이 주류와 중심이 생기고 여기서 벗어날 만큼 시장이 커지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생각하지 않고 제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원소의 존재-삶... 불교 공부를 하면 이것을 '사유'할 수 있을까요? 뜬금포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

CREBBP 2014-08-21 22:43   좋아요 0 | URL
한강의 그랜드 슬램이란 세군데 팟캐스트를 모두 석권했다는 말이군요. 전 아직 하나도 안들어봐서.. 오늘 문학동네 팟 캐스트를 처음 들어봤는데.. 말이 느려서.. 어제 친구가 침이 마르도록 들으라고 들으라고 전화까지 해줬는데 차에서 들어봐야겠네요.. 빨책도 한참 밀렸네요..라디오 책다방이라는 것도 있군요. 전 김영하 톤이 가장 적당한 것 같아요. 너무 늘어지지 않고, 너무 고조되어 있지도 않고 딱 적당..

제 딴에는 저 부분이 하일라이트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봤어요.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저것이 아닐까 라고요. 어제 밤에 투명인간이 되고 싶더군요
 
닥터 슬립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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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으로 대화를 한다. 현실에서는 혼자서나 가능한 일이다. 소설 속에서는 두 사람이 가능하다.  샤이닝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둘이서도 생각만으로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둘이 가만히 앉아있는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읽고 그 생각에 대한 자기 생각을 생각하고, 그러면 다시 상대방이 그 생각을 읽고 그것이 대화처럼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쌍방향 대화를 생각으로 하는 거다. 1편이 처음부터 흥미로운 건 그런 말도 안되는 일들을 천연덕스럽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라는 건 언어로 변환되기 전엔 몽롱하고 어떤 안개 덩어리같이 구체적이지 않을 수 있는데 그걸 읽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지는 몰라도, 그걸 읽고 해석해서 다시 그 의사를 생각으로 전달한다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스티븐 킹은 애초에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해냈을까?

 

 

1편에서는 등장인물의 소개와 성격을 배경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많은 장면들이 교차 편집하듯 수시로 바뀌어 나타난다. 크게 댄 파트와 아브라 파트, 그리고 트루낫 집단들의 세 파트들이 돌아가며 그들의 일상과 내면적 갈등, 비밀 등을 서서히 파헤치며 극적 전개를 위해 천천히 치닫고 있다.

 

소설의 스케일이 크고, 개념이 생소해서 일단 기본적인 정보를 정리한다.


<용어>


초능력을 가진 생명을 주인공으로 하기에, 생소한 용어가 많다. 

샤이닝 - 말을 하지 않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수한 능력, 예지력, 천리안 등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초능력을 말하는 듯하다. 댄과 아브라가 샤이닝을 지닌 핵심 인물이다. 딕과 빌리, 아브라에게 있는 능력이다. 샤이닝이 있는 사람들은 트루 낫의 먹이가 된다. 빌리의 샤이닝 능력은 존재감이 크지 않다. 


트루낫 - 장르 소설에 나오는 전형적인 나쁜 놈들이다. 흡혈귀처럼 샤이닝들의 기를 먹고 산다. 그들은 고속도로 위에서 이동식 주택을 운전하며 떠돌이 이동 생활을 한다.   샤이닝들의 비명을 먹고 고통을 마셔야 산다.


스팀 - 트루낫이 샤이닝에서 취하는 먹이이다. 트루낫의 삶의 목적 자체가 먹고 살기 위해 샤이닝을 사냥다니는 것 같다. 샤이닝들의 능력에 따라 스팀의 크기가 달라진다. 스팀은 트루낫들이 샤이닝을 유괴 납치하여 잔인하게 고문하여 죽여야 많이 나오고, 깡통에 담아넣고 먹는다. 


사이클링 - 트루 낫들이 죽을때 삶과 죽음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투명과 불투명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기이한 현상인듯. 1편에선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2편에서 주로 나온다.

 

등장인물


댄 토런스 - 오버룩 호텔의 화재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비운의 주인공,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의 피를 받아 알콜중독자가 되어 떠돌다가 빌리의 도움으로 뉴햄프셔의 프레이저에 호스피스의 관리인으로  정착한다.  그의 초월적 능력을 이용하여, 호스피스 입소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편히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관련 인물로 댄의 멘토 역할을 하는 또다른 샤이닝 딕 할로런과, 프레이저에 처음 왔을 때, 그를 알아보고 도와준 빌리 프리먼이라는 친구와 알콜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친구 존 돌턴이 있다. 엄마는 웬디 토론스 사망, 아버지 존 토런스는 오버룩 호텔 화재 사고로 사망. 1부에서는 댄이 아직 밝혀지 않은 아버지와의 어떤 비밀 같은 걸 가지고 있다. 댄은 중독으로 가장 밑바닥 생활을 전전할 때, 어떤 소녀의 집에서 하루 밤을 자고 그녀의 지갑에 남은 70달러와 그녀의 2살박이 아기를 방치하고 나온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브라 - 대망막을 얼굴에 뒤집어 쓰고 태어난 소녀로 어릴 때부터 강력한 샤이닝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 가족으로 엄마 루시와 아빠 데이비드, 그리고 증조 할머니(루시의 할머니) 콘체타가 있고 댄의 친구인 존 돌턴이 그녀의 주치의이다. 아기일 때, 9.11을 예측하고, 나라에 굵직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예감하거나 숟가락을 모두 천정에 붙게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 등의 행동으로 부모들의 근심을 산다. 어린 동안 댄 토런스의 어린 내적 자아인 토니와  기이한 방식으로 친구가 된다. 아브라가 중학생이 되자, 한동안 억제해서 없어진 줄 알았던 샤이닝이 다시 나타나 그녀에게 마을 소년이 고문당해 죽은 전모를 밝히고, 두려움에 쌓인 아브라는 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둘은 만나게 된다.   

 

어릴 때, 버려두고 온 내면 아이가 성장하지 않은 채로 아이로 남아, 소녀의 친구가 되고.

샤이닝의 특성 중 하나는 언어가 아닌 생각만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토미는 어릴 때부터 댄에게 나타나는 상상 속 친구이다. 속이 깊고 현명한 내면 자아이다. 댄은 성인남녀의 머릿속에 모든 발달 단계의 내면 자아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토미는 어릴 때의 모습 그대로인 채로 자라지 않았고, 댄은 서른 살이 넘었다. 어떤 일을 계기로 아브라와 알게 되었는데 아브라는 서른 살인 자신과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대니와 대화를 한다. 샤이닝들은 보이지 않는 머릿속으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상상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 상속 도우미와 아브라는 서로 친구가 된 것이다 이렇게 기발할 수가..

 

인생을 바꾼 작은 친절

미스터리 공포 소설이면서도 인간의 내면적인 갈등 특히, 알콜 중독자의 반복되는 자기 파괴적인 읜존성과 술을 끊은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하는 중독의 잔인함, 결코 극복되지 않는 정신적 갈망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를 돕는 아주 작은 친절, 그로 인해 바뀌는 삶, 바뀐 삶 이후 중독자였을 때 행했던 행동에 대한 자책감 등 은 이 소설이  스릴러물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독자를 끌고 가는 커다른 동력이 된다.



293

댄은 10년 전에 그가 어떤 식으로 시외버스에서 내려 웨딩드레스의 레이스처럼 고은 눈보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떠올렸다. 헬렌 리빙 턴을 끄는 새빨간 기관차를 보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떠올렸다. 그리고이 남자가 괜히 건드리지 말고 꺼지라고 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 그에게 모형 기차를 좋아 하느냐고 놀았는지 떠올렸다 작은 친절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계기로 지금 그가 가진 모든게 시작 됐다.


그렇다. 작은 친절에 나락으로 떨어져 가던 지옥 같은 인생을 건져 올리는 기적이 때때로 인간에게는 생긴다 그는 중독자였다. 중독 때문에 오래 일을 하지 못하고 매일 아침 숙취와 후회로 죽지 못할 삶을 이어가던, 더는 이제 갈 곳도 없던 중독자였다. 중독자가 아닌 우리는 중독자의 속성을 모른다. 안마시면 되는데 인생을 망치는 술을 왜 마시고 흡입하지 않으면 되는 마약을 왜 흡입하고, 도박에 왜 빠질까. 욕망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그 욕망을 거부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 치열하고 부단한 싸움을 이겨낸다는 것이 중독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엄청나고 힘든 일이란 걸 소설을 통해 댄을 통해 읽는다. 

 

2편에 리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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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이나 에세이 류에 크게 마음이 감화되지 않는 편입이어서 그동안 많이 안읽었는데... 김연수의 책은 산문집이 더 좋다는 친구의 말에 현혹되었다. 청춘의 문장들 플러스에 계속 눈이 갔었는데 오래 전 나온 청춘의 문장들을 먼저 읽고 좋으려고 주문했다. 생각지도 않게 짧은 글들로 구성된 산문집이었다. 오래된 구간이라 40%


















소설에 대한 리뷰를 많이 쓰게 되다 보니, 소설의 본질에 대해 이론적인 체계가 없이 아무렇게나 쓰는 게 어떤 발전이 있을까 라는 회의가 들기 전 조금씩 소설론에 대해 공부해두면, 소설을 읽는 눈이 더 밝아질 듯하다. 이 책은 조금 어렵다고 한다. 어려우면 한장씩 한장씩 읽지 뭐. 특정 서점에서만 여름 정기 세일 중.  


















예스24 서점 메인에 오늘의 특가 도서 라는 란이 있다. 홈에 들어갈 때마다 확인해 보고, 괜찮은 책이 있으면 카트에 담아두는데, 진중권의 책은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 알람을 신청했다가 샀다. 나중에 보니 계속해서 50% 할인 유지중이다. 



















신화와 전설에 대한 넘치는 화보만으로도 책값을 빼는 책. 텍스트도 많다. 오래 전부터 할인중이었고, 계속 할인중이다. 아마도 책을 모조리 팔아 없애려는 듯. 정가 45000원인데 판매가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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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장석훈 옮김 / 판미동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내게 철학은 너무나 졸리운  것이고, 내게 종교는 너무 편협된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인류 역사상 아마도 가장 많이 영향을 준 분들이지만, 사실 그분들의 생애와 그분들이 전한 말씀, 그리고 인류애를 향한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론 믿고 있었다. 인류의 위대한 세 스승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붓다를 함께 묶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오랜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서로 가까운 역사 속에서 살아간 위대한 성인 세 분의 생애와 가르침을  한꺼번에 같은 차원에 두고 이야기한다.

 

역사속의 그들, 종교속의 그들, 철학 속의 그들을 같은 주제 하에서 만난다. 우리가 그들을 알게 된 방법, 그들이 살고 죽은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 유년기,  성 문제와 배우자 및 가족관계, 그들의 인격과 개성, 죽음을 맞이한 방법과 태도, 가르침의 방법 등 인간으로서의 세 성인이 1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주제로 묶여져 있고,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이라는 주제로 2부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를 몇 가지 주제로 묶여 보여진다.

 

우선, 가장 궁금할 내용 첫번째, 이 책은 종교적 영역과 논쟁을 떠나 있다. 책의 저자는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특정 종교에 대해 편향적인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다. 1부는 성인들의 인간적인 관점과 역사와 기록 속의 그들에 대해 다루지만, 신적 영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 그 분들을 역사적으로 조명해볼 때 공통점이 많다. 가장 큰 특이성은 누구 하나도 직접 글로서 자신의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이 실재로 존재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훨씬 부족하므로 학계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그들은 존재했었다고 받아들여진다. 붓다는 2500년 경 북부 인도에서, 그리스인 소크라테스는 2300년 전 아테네에서, 에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다. 그들의 기록은 말로 구전되다가 제자들에 의하여 글로 옮겨졌는데, 소크라테스의 경우 사후 몇 년 뒤의 일이었고, 예수의 경우엔 사후 수십년 뒤, 붓다의 경우 사후 수백년 뒤에서야 그들의 말씀이 글로 옮겨졌다. 그 기록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점 더 퍼지고 방대해졌다.

 

그들은 많은 사람과 만나고 다니면서 직접 구두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아테네에 머물렀던 소크라테스 역시 시장과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말을 하였다. 그의 대화는 아이를 낳듯 논리와 진리를 낳는 과정이라고 해서 산파술이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아늑하고 안정된 집을, 싯다르타의 경우 세손이라는 권력조차 버리고, 모든 것을 탈탈 털어버린 채 고행의 길을 자처하였다.

 

그들의 성 문제도 약간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으나, 여자와 잘 어울리지 않았으며, 미소년인 알키비아데스에 빠져있었지만 육체적인 사랑을 추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왕가의 세손이었던 출가 전 싯다르타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둔 상태였으며, 난교도 서슴치 않은 채, 흘러넘치는 풍요와 육체적 쾌락의 극치 속에서 살았다. 예수의 경우는 독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에서 1945년에 발견된, 4세기 경에 쓰여진 외경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정부였다는 대목이 나오고, <다빈치 코드>에서도 이를 인용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지만, 저자는 논쟁을 피하고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역시 비슷했다. 붓다는 길고 긴 생애동안 수없이 많은 장소를 걸어다니며 불법을 설파하다가, 마지막 순간 열반에 들었지만,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죄를 뒤집어 쓰고 처형당했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모두 죽음을 눈앞에 두고,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초연하게 받아들였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들을 받들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시민법정에 섰지만, 배심원들을 향해 비굴하게 선처를 호소하는 대신 일장 연설을 함으로써 그들을 자극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 집행 한달 동안 격리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크리톤이 도망가자고 권유하지만 거절하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친구들을 위로하며 초연하게 독배를 마셨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복음 사가들은 예수가 정치적 이유라기 보다는 대사제들을 모욕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본다. 그들 모두 죽음이 닥쳐도 자신들이 가르친 바를 저버리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죽음을 대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은 오래도록 면면히 흐르며 인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붓다는 의식을 잃고 열반에 들기 전 "굴레에 갇힌 모든 것들은 소멸되어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자신이 45년 동안 설파한 전법륜을 요악하는 말을 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독특하다. 독배를 마신 후 자리에 누워 얼굴에 천을 덮고 온기가 빠져나가 죽음을 맞던 중 갑자기 얼굴에 손을 가져가 덮은 천을 들어 올리더니 크리톤에게 "우리가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마리를 빚진 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 주게"라고 말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다름 아닌 의학의 신으로 치유를 기원할 때와 치유가 되어 감사를 표할 때 제물을 바쳤는데, 이 말에 매료된 철학자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삶은 하나의 질병이요, 죽음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 즉 치유료 보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고 풀이했다. 소크라테스다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지 모릅니다" 였다. 세 성인은 모두 공통적으로 무지를 악의 근원으로 보았고, 끊임없이 앎을 전해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녔다.

 

이해하기 쉽게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사상에 대한 길라잡이 역할을 충분히 잘 해주는 책이다.  시대적 배경과 문헌 들의 내용, 종교로서 혹은 철학으로서 발전하기 까지의 과정과 여러 갈래의 주장들이 갈라졌다 통합되면서, 어떤 것은 이단이 되고, 또 어떤 것은 유일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 또한 흥미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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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7-3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붓다의 죽음에 대하여서는 의학적 분석 논문이 있는데.. 당시의 붓다가 한 말씀과 증상, 추후 아난다의 증언을 종합하면 " 허혈성 대장염( Ischemic Colitis)"으로 사망한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질환은 70세 이상 고령에게 흔히 나타나는 병으로, 간단히 요약하면, 대장으로 가는 동맥이 동맥경화로 막혀서 장이 괴사되는 것으로, 하혈과 함께 복통을 유발합니다. 물론 당시에 치료는 불가능했으며, 고령의 붓다로서는 치명적이었을 것입니다. 붓다는 말년에 이르러 자주 복통이 있었고, 그 증상이 심해짐에 따라서, 곧 자신이 이병에의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붓다가 보인 이미알려진 죽음에 대한 태도는 가히 경지에 이른 성인의 모습이지요.

CREBBP 2014-07-31 17:2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책에 의하면 그날 식사에 초대받아 음식을 먹엇다고 하는데, 물론 붓다의 죽음이 그것과 관련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저자가 어떤 의사도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독살설이 생길수도 있었겠구나 라고 여겼죠. 나이도 많았고, 젋었을 때 고행중에 건강을 많이 상하기도 했고, 허혈성 대장염을 늙어서 죽는 자연사로 볼 수 있겠군요

Ralph 2014-07-3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이 상한 음식이었거나, 약간의 독이 함유되어있었으나, 대접한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것이어서, 자신을 접대하려고 내온 것을 고려해서 받아드렸다는 설이 있고, 전체적으로는 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어차피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고, 대접하는 사람의 성의를 고려하여 먹었다는 것으로.. 어쨋든 다가오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드린 상황이고, 늙어서 죽는 전형적인 자연사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