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 기상천외한 공생의 세계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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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를 자주 선과 악으로 양분한다.  그게 편리하고 익숙하다. 인간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선 유난히 나쁜놈과 좋은놈으로 나눈다.  미생물도 그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 양분법은 유행을 탄다. 장기적 유행을 타기도 하고 초급속 유행을 타기도 한다. 온갖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고지방 식품과 동물성 식품이 최근 몇년간 저탄고지 다이어트 열풍을 타면서, 수십년간 받아왔던 건강에 해롭다는 오명은 지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은 탄수화물 식품이 적폐가 되었다. 언제 단백질이 타겟이 될 지 모른다. 미생물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인류가 미생물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레이우엔훅이 정교한 현미경을 만들어 관찰한, 최근 몇백년 사이의 일이고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들은 병원균으로 통해왔다.


세균과의 전쟁은 일상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들과 싸우기 위해 하루의 많은 시간과 노동을 할애한다. 손에 묻어있을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손을 씻고, 이빨 사이에 상주하고 있을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이빨을 닦고, 식탁과 그릇을 거품 세정기로 박박 닦아내고,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침구를 세탁하고… 세균을 몰아내기 위해 쓰는 씻기 작업의 총량은 반복적 일상의 노고를 증가시킨다. 산업화 이전,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기계가 전혀 인간의 노동을 돕지 못해 모든 걸 손으로 해야 했던 일상의 노동량보다도 청소기며, 세탁기며 모든 걸 기계에 맡기는 현대인들의 일상이 오히려 더 바쁠 것이다.


세균이 가장 많은 곳이 가장 ‘더러운 곳’으로 여겨지기도 하다. TV에 단골 정보 중 하나로, ‘OOO 화장실 변기보다 수백배 많은 세균’ 따위의 정보를 많이 접한다. 항균제 칫솔, 화장지, 행주 등등 이들의 청결이 중요한 것은 ‘세균 = 병원균’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먹고 아플까봐 씻고 닦고 빨고 삶는다. 이로 인해 우리 생활에 등장한 또다른 상업용 제품은 온갖 종류의 항균제품들이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살균이니 항균이니 하는 제품들은 핵심성분의 안전을 담보하지 않은채 수많은 굳이 항균이 필요해보이지도 않은 제품에 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미생물에 대한 학계의 새로운 정보는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한쪽에서는 미생물총이 인간의 건강을 좌우한다면서, 똥을 이식하여 병을 고치는 사례가 수도 없이 보고되기도 한다.


쏟아지는 미생물총과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들 역시 건강식품으로 포장되기 위해 선악의 논리로 왜곡되고 단순화된다. 항생제로 장내 미생물들을 쏴~아악 청소하고 나면, 건강한(?) 미생물총은 사라진다.  대홍수와 같은 생태적 재앙을 맞고 핵전쟁과 같은 종말적 단계에서 살아남아 너른 대지와 식량을 차지하는 것은 살아남은 노아는 다름 아닌 지닌 기회감염 세균들이다. ‘중독과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살모넬라균과 심한 설사를 유발하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lostridium difficile(C. difficile)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미생물은 좋은 놈과 나쁜놈이 있는 것이 아니다.(병원균은 별개), 살아남는 놈과 도태되는 놈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명체와 공생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소와 말 염소 등의 채식동물의 소화계에 상주하며 질겨 빠진 셀롤로우스를 소화시키는 미생물들의 예는 아주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떤 환경에서건, 어떤 방식에서건 살아남은 놈들은 후대를 이어갔고, 그것들과의 공생을 승인한 숙주는 그것들과 의존 관계를 맺으면서 수평적 혹은 수직적으로 몸 속 미생물을 퍼뜨리며 수만년동안 살아왔다.  하지만 미생물에 대한 최근 학계의 새로운 보고들은 이번엔 반대로 미생물 만병통치설을 퍼뜨리기도 한다. 나쁜놈에서 갑자기 좋은놈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지구라는 거대 환경에서,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자라는 풀과 동물들 몇 점을 수집해서, 그것의 변화와 지구 온난화, 혹은 폭풍의 영향 등을 극적으로 밝혔다고 하자. 그것은 우연적 차이에 근거한 어처우니 없는 결론일 뿐고 단지 일화일 뿐이다.우리 몸의 미생물총은 하나의 생태계로 파악해야 하지 단일 미생물이 몸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비만과 같은 주제는 연구에 조금만 진전이 있어도 그 상업화를 통한 엄청난 돈벌기가 가능하기에 업계에서는 비만과 관련된 미생물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비만과 관련한 단일 미생물을 찾는데는 조금도 진전이 없다. 이것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한 가지 들꽃에서 찾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만한 쥐와 날씬한 쥐와 멸균쥐를 이용해 미생물을 여기 저기 주입해서 알아낸 결과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가 비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뿐이다.


우리가, 아주 악독한 놈으로 알고 있는, 그래서 TV 광고에도 등장한 헬리코 박터 파일로리 균에 대한 팩트를 보자. 최근 천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 균의 유무는 사망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오히려 파일로리가 위산역류, 식도암, 그리고 아마도 천식의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점은 무시되어왔다. 파일로리를 연구한 블레이저는 진화와 공생의 과정중 중 최소 5만 8천년 동안 인간을 감염시켜온 파일로리는 장에 정착한 ‘오랜 친구들’ 중 하나로 본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좋은놈과 나쁜놈을 가려내고, 인간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미생물에 대한 이해다. 미생물이 건강에 좋고 안좋고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미생물이 어떻게 생물체와 공생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 정보는 새롭고, 놀랍고, 신기하면서, 무지를 퍼뜨리며 스스로의 환경을 해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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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0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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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0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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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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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앞으로 100년의 시간이 주어져야 해.  90년전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100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녀는 세익스피어의 누이다. 세익스피어와 똑같은 재능과 열정을 지니고 태어난 세익스피어의 누이가 같은 세익스피어가 쓴 글과 같은 글을 쓰기 위해 인류에겐 100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익스피어의 시대에는 같은 재능, 같은 열정, 같은 가정 환경을 가진 그의 누이가 작품을 쓰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90년 전, 세익스피어가 죽은 지 300년이 넘는 시점, 직업적인 글쓰기가 사회적으로 가능해진 새 시대에, 그녀는  재능있고 열정으로 가득한 당대의 여성 문학 지망생들에게 아직도 멀었다고,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문화와 사회 제도, 가치와 관습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헤밍웨이가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는 동안 스타킹을 깁고,  제인 오스틴은 시끄러운 거실 한편에서 차를 대접하며 틈틈히 상상력을 옮겨적는동안 처했을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헤아렸다. 가상의 세계에서 캠브리지 캠퍼스 잔듸 위를 걷는 것을 저지당하던 그녀,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하던 그녀는 자신이 걷고 있는, 걷게 될, 여성 작가의 길이 폭신폭신하고 말끔하게 깎여진 잔듸길이 아닌 이곳 저곳 돌뿌리가 발길을 방해하는 자갈밭임을 알았다. 


 90년이 지났다. 지난 90년동안 인류 전역사에 걸친 변화만큼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 세계는 하나가 되고 풍성한 문화적 교류를 이루고 평화와 자유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누구나 울프가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자신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법적,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었다. 사회는 이제 여성의 특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여성이 결혼하면 가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직장 남성들은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하릴없는 맘충들은 남편이 뼈빠지게 돈벌며 고생하는 동안 한가하게 비싼 커피 마시고 다닌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은 대개 우리에게 조금은 이질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역동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이야기, 불의에 저항하거나, 복수하는 이야기. 그렇지 않고 우리에게 가까운 이야기들은 적어도 어떤 드라마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드라마가 없다.  역사도, 고통도, 분노도, 복수도 없다. 매일매일 여성으로서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매일매일 겪다보니 드라마가 되지 못하고 일상이 되어 버린,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일상 중 부딪치는 미세한 차별이 낳은 작디 작은 슬픔들의 합이 만들어낸 갑작스런 환기가 있을 뿐이다.  

양성 평등 조항이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훌륭한 헌법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미국에서도 유래가 없던 '여성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국민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일은 때때로, 아니 자주 과잉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그런 503을 뽑는 국민들이기에 차별을 이야기하는 일이 치부를 들추는 일처럼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일상중 일어나는 그 미세한 작은 차별들에 일일히 대응하고 따지고 분노하면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며, 커져버린 반향의 힘에 부딪혀 무기력해지고 또한 무감각해진다. 그래서 김지영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인격이 되는 길을 택했다. 82년생 김지영이 말이다. 72년생 이미영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92년생 유진과 2002년생 보람의 삶이 72년생 김지영과 얼만큼 더 달라졌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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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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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로 인간이 상처를 입는지 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편히 못 잔다는 옛말은 틀릴 때가 많다. 때린 사람이 자기가 때렸는 지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는 동안 어쩌다 잘못해서 맞은 사람은 시퍼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수도 있다. 고객에게 최선의 결정이 모두에게 최선의 결정일 수도 없다. 호텔리어의 정성어린 서비스는 체크인 순간부터 체크아웃 까지만이다. 호텔리어 입장에서는 돈을 낸 사람이 고객이기에 고객이 원하는대로 해야지 가족이라고 해서 혹은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어 투숙객의 의사와 무관한 행동을 하는 경우 제지한다. 수상한 사람이 얼쩡거리다가 엘리베이터를 따라 타려 해서 제지시키는 것, 여자 친구라며 서프라이즈 헤주고 싶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 등등이 그런 것이다. 예전에 불륜 현장을 목격해서 빵에 넣었다는 말들을 하곤 했는데 경찰을 대동하면 섹스하는 남녀의 침실을 열어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호텔에선 다르다. 설사 명백하게 외도임이 드러나더라도, 호텔에서는 윤리적 잣대는 필요없다. 고객의 요구에 따르는 게 윤리다. 호텔의 하루라는 집에는 없는 환경을 거액을 들여 단 하루 산 건데 당연히 돈을 내고 서비스를 산 고객의 요구에 우선하는 게 호텔의 존재 이유다.  그 과정에서 호텔리어는 고객의 편안함만을 생각해야지 그 고객의 뒷사정, 그를 ‘스토킹’하는 비고객의 요구는 그게 아무리 정당한 것일지라 해도 알 필요도 알아서도 안되는 남의 사정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구나라는 생각에 더하여 세상에 갑질의 창의력 은 참으로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 묵던 부산의 한 호텔에서 고층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툴툴거리다가 결국 방 교체를 요구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이즈가 훨씬 작았다. 똑같이 트윈은 맞는데 욕실도 작고 생활공간도 작은데 호텔리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걸 보고 그냥 참았는데, 호텔 가서 무슨 집 보러 온 사람들처럼 이방 저방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으며 없는 트집을 만들어 업그레이드를 요구하는 얌체족이 있다는 것도 첨 알았다. 그리고 세상 편한 직업이 호텔리어인줄 알았는데 그쪽 세계 나름대로 최고급 호텔이라 하더라도 혹은 최고급 호텔이기 때문에 치르는 댓가가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술술 잘읽히고, 호텔리어라는 직업적 묘사가 흥미롭다 단점은 인물의 성격이 별반 특징이 없이 직업 정신 투철한 모범적 스테레오 타입이어서 평이하다는 점이다. 사건의 진행도 느슨하고 범행동기와 진행도 억지스럽다. 세 건의 살인 사건에서 동일범임을 암시하는 듯한 숫자가 남겨진다. 숫자의 형식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추측할 수 있는 위도와 경도이며 해당 위치의 살해 지점과 날짜와 조합한 것이다. 다음 사건 발생을 예고하는 장소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 형사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호텔의 여러 포지션 으로 가장하고 동태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이 호텔은 도쿄 최고의 일류 호텔이고 호텔리어 나오미는 투철한 서비스 정신으로, 고객의 온갖 종류의 갑질과 생트집들을 ‘고객은 언제나 옳다’주의로 무장, 고객의 무리한 요구도 최선을 다해 제공하지만, 사건을 위해 호텔리어로 위장한 닛타 형사를 담당하게 되자 고객을 응대하는 형사의 태도를 고치기 위해 한동안 티격태격. 그도 그럴것이 닛타 형사 역시 형사로서의 직업정신이 투철하고 프라우드가 강해서 공손한 태도로 고객 응대 하지 못하고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 발끈하곤 하면서도 자신은 호텔리어로서의 이 일이 수사를 위한 일시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대충 해도 된다는 마인드 와 그렇게 되면 호텔의 소중한 고객이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정식 호텔리어와 똑같이 교육 받아야 한다는 나오미와 시시콜콜 부딪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소설이지만 실제로 피가 튀기거나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고 터프 한 형사가 공손한 호텔리어가 되는 과정에서 인간적 성찰을 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만나면서 호텔리어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던 점이, 호텔리어로서의 직업적 모습이 부유한 고객에 대한 무한 만족 서비스 제공을 지향한다는 점이 그랬다. 예를 들어 고객들은 일부러 담배를 피운 후 담배 냄새가 난다며 방교체를 요구해서 결국은 스위트룸으로 바꾸거나, 전망이 홈페이지 사진과 다르다거나 안좋은 영이 씌웠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방 교체를 요구하며 트집을 잡거나, 새치기를 하며 자신이 VIP 고객이니 먼저 처리해달라고 하는 등의 부당한 요구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의 응대를 존중하도록 요구된다. 

나오미는 특히 그런 부당함에 대해서도 고객의 입장에서 만족할 때까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직업윤리로 아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감정 노동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고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권익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직업적 윤리관이 일본답다고 느꼈는데 그런 진상 고객을 만나 온갖 인격적 모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참아내는 것을 마치 성장이라도 한듯하게 그려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진상 고객은 오래 전 닛타 형사가 고등학생 시절 교생 실습으로 왔다가 닛타와 친구들의 못된 행동으로 실습을 포기하고 교사가 되는 일마저 포기한 채 이직업 저직업 전전긍긍하고 살다가 웬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대신 호텔 프론트에서 만나 알아보고 고객과 호텔리어라는 갑을 관계로 만났으니 단단히 복수하려던 거였는데,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낸 덕에 “왜냐고, 왜 화를 내지 않는 거야 왜 치고 덤비지 안 내면 말이야” 라는 오골거리는 멘트를 날려주시며 포기하게 만들고, 결국 나오미의 멘토링이 성공하여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훌륭한’ 호텔리어로 성장하게 되었으나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프로페셔널한 호텔 프란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수사 팀 내에서 형사로서의 입지는 줄어들고 수훈을 세울 기회도 줄어들고 있었으니 이를 깨달았을 때는 방방 뛰어봤자 소용이 없다. 사건의 동기와 해결 과정은 좀 설득력이 떨어지고 얼버무린 듯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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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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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0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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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엌에서 과학의 모든 것을 배웠다 - 화학부터 물리학·생리학·효소발효학까지 요리하는 과학자 이강민의 맛있는 과학수업
이강민 지음 / 더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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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세부적 개별 조리법을 일일히 습득하는 것보다 요리의 원리를 아는 것이 더 많은 요리를 자유롭게 창조해낼 수 있게 한다. 시금치를 삶을 때,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얼른 찬물에 헹구라고 배운다면 시금치 데치는 방법만을 알지만 야채를 삶을 때 일어나는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와 소금이 첨가되었을 때 생기는 현상에 대해 알고, 삶은 후에 남아 있는 열이 야채에 가해져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게 되면, 이러한 현상을 녹색 야채가 들어가는 모든 요리를 할 때 그러한 화학적 현상을 고려하여 요리에 응용할 수 있다.


요리라는 것은 삶고, 조리고, 데치고, 굽고, 찌고 하는 등, 식재료를 원래의 형태에서 좀 더 맛이있거나 먹기 좋은 다른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식재료의 공통적인 물리 현상과 화학 작용을  이해하면 요리를 할 때의 온도, 함께 어우러질 재료, 조리 방법 등을 자유자재로 다룸으로써 무한한 조합의 창조적 요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중화 요리의 주방은 칼질하는 칼판라인이,  불로 빠르게 조리하는  불판라인, 그리고 쫄깃한 먼빨을 뽑아내는 면판라인이 따로 있어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 맛의 중요성도 변하고 그에 따라 주방에서의 위치도 달라진다 하니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칼질, 불다루는 기술이 그토록 맛을 결정하는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각 라인에서 하는 일이 중식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믿고 전문성을 갖춘 의 기본은 불맛 칼맛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방에서 요리는 대개 불에서 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이 불을 다루면서 먹거리의 세계는 다채로와졌고, 소화가 용이로운 형태의 식사를 섭취하기 시작하면서 소화하는데 소비하던 에너지는 두뇌의 활동에 더욱 많이 배분되고, 이것은 인류 문명의 발달과 이어졌을 것이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볼 때 요리는 인간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고, 도구를 이용하는 다른 어떤 동물도 이런 저런 식재료를 다른 형태의 식품으로 변경하여 먹지 않을 것이다. 불의 사용 말고도 음식의 형태를 먹기에 더욱 선호되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키는 여러 방법이 있다. 효모와 박테리아를 이용하여 발효하고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치즈가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유를 응고시켜 만들어진다는 것은 아는데, 그 기본원리는, 우유가 레닛과 만나, 응고되고 공기중에 떠다니는 미생물을 수천년동안 길들여온 인도 및 유럽 각지의 발효균들이 생성하는 다양한 맛과 향기로 만들어지는 것을 알면, 만드는 과정이 베일에 쌓여있는 대형 다국적 공장에서 생산하여 슈퍼마켓 매대에 쌓여 있는 치즈의 획일적인 맛이 어째서 프랑스 시골 마을의 로칼 샵에서 먹은 치즈와 그토록 차이가 있는지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다.


지방에 대해서도 우리는 숱하게 많은 말들을 듣는다. 어떤 지방은 좋고, 어떤 지방은 안좋다,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의 차이에 대해서도 입에 닳도록 듣지만, 실제로 그게 뭘 의미하는지, 어째서 하나는 덜 나쁘고 하나는 엄청 나쁘고 그렇다는 건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지방은 지방산이 대부분인데, 한 개의 글리세롤과 세 개의 지방산으로 구성되며, 지방산은 긴 탄소 사슬에 카르복시산이 붙어있다. 그토록 귀가 닳도록 듣는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의 구분은 탄소 이중결합의 존재 유무에 따른다. 포화지방산은 이중결합이 없이, ‘탄소의 단일결합으로 되어 있다. 탄소와 탄소가 단일결합하여’ 상온에서 고체로 존재하며 스테아르산이 여기에 포함된다. 불포화지방산은 이중결합 구조를 지녀 ‘결합회전이 안되므로’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지방의 지방산 구성 성분에 따라 상온에서의 물성 상태가 다르며 포화지방산이 많을 수록 딱딱하다는 것이 설명된다.


탄소가 단일 결합하는 데 왜 상온에서 고체가 되며, 이중결합을 하면 왜 결합회전이 안되고, 그것이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지를 알려면 좀 더 화학적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딱 그 정도에서 설명을 멈춘다. 전문성과 대중성의 어느 선에서 적당히 선을 그어야하는데, 일반 대중이 따라갈 수 있는 개념은 거기까지라고 설정한 듯하다.


지방산의 성분에 따라 끓는 온도도 다른데, 올리브유처럼 탄소수가 작은 지방산(불포화지방산)의 성분이 높으면 끓는 점이 낮아져 튀김에 적당하지 않다. B*Q 치킨이 올리브유로 튀겼다고 광고하는데 이 점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지 모르겠다  올리브유도 올리브유 나름이고 보통 우리가 건강하다고 알고 있는 건 압착 올리브유인데 화학적으로 뽑아낸 거 말하는 건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외국인 저자의 <부엌의 화학자>에서 다룬 내용과 비슷한데, 국내 저자가 썼기에 조금 더 읽기가 수월했고, 내용의 깊이를 적당한 선에서 잘 타협한 것 같다. 수비드 요리법의 실제적 방법도 알게 되었고, 알고 있으면 여러 요리에 응용 가능한 화학적 변화에 대한 설명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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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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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된 한국 영화 중 안성기와 장미희가 나왔던 깊고 푸른 밤은 오래 전 영화이지만 깊은 인상 때문인지 오래 전에 봤음에도 주요 장면과 소재가 잊히지 앉는다. 아직 아메리칸 드림이 위세를 떨치고 있을 당시, 재앙과도 같은 가난을 떨치고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꾸고 태평양을 건너가지만 적법한 투자금도 자격도기술도 학위도 없이 까다로운 이민법으을 우회하여 영주권을 취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결혼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의 일이었지만 실제로 먼 친척분 중의 한 분이 결혼을 통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를 계기로 모든 가족들을 불러들인 적이 있었다.


당시 미국은 멀고도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전해오는 소식 역시 비현실적이었다. 지금 생각헤 보면 깊고 푸른밤의 내용처럼 처음 결혼할 때부터 그 결혼이 영주권을 얻기 위한 계약결혼이었던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썽만 부리고 껄렁껄렁했던 집안의 한 아재가 어느 날 아메리칸 드림에 들떠 미국에 있던 여자와 갑자기 결혼을 해서 떠나고 가족들 모두 불러들인 후 여자 나이가 많아 아이가 계속 유산된다는 둥 그런 얘기가 들렀던 걸 보면 결혼 생활을 한동안 지속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정착후 둘의 관계는 결국 이혼으로 끝났던 것같다.

이 소설도 미국에 정착한 현 세대의 이민자들과 그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이야기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고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완전히 변한 것들이 있다. 이제 젊은 한국인 2세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중심 도시의 중심가를 움직이는 주요 인물이 되어 있다. 미국을 찾은 한국인들은 더이상 가난에 쩔어 천하고 노동집약적인 일자리를 찾아 다니는 대신 뉴욕의 중심가에서 예술을 강의하고 예술가들을 발탁하고 사진을 찍고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시안계끼리, 한국인들끼리 엮이는 인간관계는 그 무한한 세계를 넓은 작디 작은 세계로 축소시킨다. 세계 예술인들의 중심 뉴욕 맨하탄에서 예술을 매개로 서로 관계맺고 살아가는 한국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의 이야기다.

내가 반해 가슴앓이 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에게도 반해 가슴앓이할 가능성은 얼마나될까. 로미오와 줄리엣을 말할때 우리는 집안 대대로 원수 지간인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라는 우연에 주로 집중하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 반한 우연 또한 흔치 않다. 사랑은 자주 둘중 하나가 먼저 반해 신호를 보내거나 짝사랑에서 시작해서 고백과 관심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쪽으로 진행된다. 사랑은 더 사랑하는 쪽과 덜 사랑하는 쪽 사이의 균형을 찾고 받아들일 때까지만 유효하다.

비자도 없고 작품도 장래성이 없는 한 예술가를 사랑하는데, 모든 걸 가진 자신에게 단 한마디의 확신도 주지 않는다. 결국 그의 뉴욕에서의 장래를 위해 티파니에서 스스로 반지를 사서 끼고 축복바지 않은 결혼 둘만의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는데, 예민한 그녀의 촉이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감지해낸다는 거다. 성주가 공공장소에서 책을 읽다가 눈물흘리는 모습에 반해 그를 지켜보고 스토킹이라 할만한 행동까지 했던 정인의 눈에 포착된 모습은 그가 예술 강의에서 강사 수영을 바라보는 눈빛이다.

유능한 큐레이터 마리는 사진 작가 성주를 사랑해서 자신의 집에 들이고 함께 살지만 비자 만료가 다가오는데도 시민권을 지닌 자신에게 청혼하지 않는 성주에게 복잡한 마음이다. 그들의 인연은 성주의 일방적 관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사랑이 시작되자 마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사랑으로 인한 충만감이 아니라 의심과 불안 뿐이다. 소설은 마리의 시점일 때조차 성주의 어떤 점이 그녀를 그렇게 불안하게 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화자의 심리와 행동은 독자를 화자에게 공감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의부증가 같은 상태의 화자를 쯧쯧거리며 가엽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녀가 독자에게 납득시키고자 하는 건, '자 봐봐 성주가 이러이러하니까 내가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가 아니라 ' 내가 쟤를 너무 사랑해서 나 힘들어 죽을 거 같아'인 것이다. 화자는 철저히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나 마리는 괴롭다. 심리적 고통이 너무 커서 날카로운 면도날로 팔목을 그어대며 육체적 고통으로 그것을 덮으려 하고, 남편의 폴더 속 사진들을 뒤진다.

큐레이터의 마음에 들고 싶어했던 성주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따라와서 인연을 만들지만 막상 그녀가 그를 돌이킬 수 없이 사랑하는 시점은 그와의 성적인 관계가 통속적 욕망을 지나는 지점이다. 그가 나를 정말로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은 그녀가 가진 모든 조건이 그의 장래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치명적으로 사랑하면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대에게 구하는 갈구가 결코 채워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상대에게서 내가 원하는 걸 채울 수 없다면 내가 포기해야 한다. 예정된 실연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다가오기 전에 끝내는 것이 그런 정신상태에서는 유일한 희망이다.


마리와의 이혼은 다시 성주의 비자 상태가 불안해짐을 의미한다. 너무 사랑해서 의심하고 증오하고 고통에 겨워 결국은 끝내는 것이 유일한 길임을 인정한 두 사람의 이혼 소송기간 중 이민국에 애초 결혼이 사랑 때문에서였지 비자 때문이 아니었음을 증언해야 하는 여자와 이를 부탁해야 하는 남자, 이렇게 상황은 꼬일대로 꼬였지만 애초 그 균열의 원인을 제공해야 했을 남자의 외도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여성이 쓴 작품에서 한 여성의 외모적 특징에 대한 섬세한 묘사 대신 그저 단순히 '아름답다'는 빈약한 형용사로 모두 설명되는 점은 여성을 대성화하는 남성적 시선을 아무 성찰 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느껴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리의 직업적 위치, 시민권자로서의 위치, 우월한 외모 등 모든 면에서 성주에게 갑의 위치에 선 마리의 모습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기로 했다. 빼어난 외모, 직업적으로도, 비자 상태로도 갑의 갑 상태에 있어야 할 여성이 금방 부서질 것같이 취약한 남성에게 사랑 때문에 종속되는 대조적인 상황을 그려내기 위해 빼어난 외모를 강조해야 했다.

정인은 성주를 사랑했을 마리와 결혼한 상태에서 수영의 뒷모습을 슬프게 바라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재 옆에 이소는 파트너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뉴욕의 한엔 예술가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정인, 마리, 수영이 모두 성주라는 인물과 사랑을 매개로 엮인 채 엇갈린 사랑 속에서 성주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의 감정 속에서 복잡하기만 하다. 자신이 아닌 수영을 사랑한 남자 때문에 생긴 마리의 그 긴 고통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수영과 성주는 특별한 관계도 아닌 것 같은데, 둘이 어떤 관계었던 아니던 문제는 그가 공교롭게도 비자를 가진 여자를 따라다녔고, 그녀에게 사랑에 관한한 어떤 확신도주제 않은 채, 비자를 구걸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결혼을 이루었으며, 결혼한 동안 그녀는 그토록 그의 다른 여자를 상상하며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결코 나쁜 남자로 나오지 않는다. 비자 때문에 마리를 사랑했던 것 같지도 않다 다만 그가 마리에게서 결혼의 혜택인 비자 연장을 받는 동안 수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흘렸다는 거다.

정인은 그런 그에게 또 반해 그의 집을 서브렌트해서 한달간 들어가 살지만, 그녀가 발견한 건 힘겨워하는 마리의 흔적이다. 그래서 애인의 애인이다. 정인의 애인(성주)의 애인은 마리. 마리의 애인(성주)의 애인은 수영인데, 그 와중에 마리의 동료가 결혼 2달 전에 마리에게 사랑한다고 한다고 가볍게 고백했던 것까지 치면 동료의 애인의 애인은 마리다. 애인의 애인들. 모든 말해지지 않은 누군가의 짝사랑들, 짝사랑하는 누군가들, 그리고 피다 말은 사랑과 싹이 트기도 전에 쓸쓸하게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외사랑들이 돌고 돌고 돌아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연결되는 세상이 상상되었다. 사랑,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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