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미학 에세이 - 예술의 눈으로 세상 읽기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얼마전 한동안 정기구독하던 씨네21을 끊았다. 언젠가부터 영화에 대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경우, 내 나름의 느낌과 감상에 충실함으로써, 영화가 주는 진짜 재미를 더욱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작품 자체가 순간적 쾌감과 짜릿함 웃음 등을 주는 가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영화가 품는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인 의미들을 캐치하기에 스스로의 지적, 감성적 통찰이 부족한 경우를 다른 이의 후기나 평론을 보고 깨닫는 경우도 많다. 어쨌거나, 씨네 21 중 몇몇 정기 칼럼을 놓지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 진중권 미학 에세이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 책 미학 에세이는 씨네북스가 그 컬럼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으로 2012 년부터 2013 년 초까지의 글들이 담겨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가벼운 언사로 대중의 인기와 질타를 한몸으로 받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아이콘이지만 그의 글은 진중하다.

 

인셉션 같은 영화들은 영화 평론가의 분석과 인터넷 상의 여러 해석들은 읽고 나면 부주의하게 흘려보낸 작은 암시 같은 것들이 영화 전체의 해석에 더욱 풍부한 세계를 열어준다. 여기에 비평가들의 순기능이 있다. 일반인이 놓치기 쉬운,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을 동반한 작품의 해석은 때로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며, 잘 쓰여진 예술 비평은 그 자체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언어적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잭슨 폴록을 세계적 스타로 만든 사람은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였다. 그의 언어를 통해, 폴록의 페인트 뿌리기가 예술이 되는 순간은 어쩌면 대중이 이해못할 작업을 폴록이 완성했던 순간이 아니라 폴록의 정신이 비평가의 글을 통해 언어로 세상에 번역되었을 때였을 지도 모른다.

 

진중권은 미술계의 수집가들과 큐레이터 역시 시대의 미술 비평의 담당하는 시대의 한 축이라고 말한다. 홍라희의 취향은 대한민국 예술계의 트랜드가 된다. 그의 취향이 서구에서는 30년이 지난 한물 간 스타일이라고 해도, 회화 예술이 콜렉터들의 수집 경향과 값으로 매겨지는 현실에서, 홍라희의 발자취를 따라, 눈길이라도 한 번 받기 위해서라면, 홍라희의 취향에 따라 예술가들의 붓질이 움직여져야 한다. 그래야 콜렉터들의 눈에 띄고, 값이 올라가고, 예술가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물론 그런  얘기들을 시시콜콜히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미술관, 화랑가를 찾으면 ‘알현’을 하려는 화랑주들과 작가, 기획자들이 몰려온다. 자기네 작품을 설명하고 한번이라도 눈길을 받으려고 안달이다. 그가 유심히 본 미술품은 당장 인기 그림이 된다. 기하학적 화면의 미니멀리즘 그림을 좋아하는 그는 서구에서 30년 전 끝난 이 그림풍을 1990년대 이후 한국 화랑가의 최신 유행으로 만들어내는 괴력도 보여주었다.”(‘위태로운 미술지존 홍라희’ <한겨레21>, 2007년 12월6일자) 화랑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거기서 그녀는 거의 재림예수였다. 죽은 나사로를 되살린 예수처럼, 그녀는 죽은 예술언어를 되살린다.

 

또한 예술 비평에 대한 의식적 세계관을 몇몇 에세이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 성찰레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비평의 세 가지 요건 즉, 작품의 특성에 관한 기술, 작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비평문 자체도 문학적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드레스드너의 세가지 요건을 인용하면서, 그 비평 자체로 문학이 되는 새로운 비평의 몇 가지 예, 평론가 로제 드 필은 화가들과 논쟁을 통해 ‘회화에서 윤곽보다 색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관철시킨 덕분에 프랑스 미술은 이탈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유의 민족적 양식(로코코)을 확립했던-들을 제시한다. 한편, 예술에는 맞다 틀리다가 없고 단지 취향이 있을 뿐이며 따라서 비평가는 예술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김규향의 주장에 대해, 창작과 비평은 서로의 영역이 틀리며, 비평가는 작가-작품-관객의 사이에서 피드백 역할을 하며,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일반 대중에게 작가와 작품을 매개한다는 비평가의 자리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는 소크라테스, 칸트, 데카르트, 라캉, 베르그송, 브르통, 바타유 등등 수없이 많은 세대를 통과해간 철학자, 비평가들의 세계관과 잭슨폴록, 아마데우스, 김삿갓, 리펜슈탈, 앤디워홀, 다비치, 구르스키, 예술가들을 상황주의, 회복과 복구, 로테스크 리얼리즘, 분변증, 게이 미학, 팩토리얼리즘 등의 온갖 미학사와 종횡으로 교차하시켜 미학적 사색 안의 어떤 담론 속에 용해해 내고 있다. 예술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고, 미학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이 글을 읽는 데에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문체에 쓰인 생소한 예술가 및 비평가들 및 예술 사조의 이름은 읽기의 흐름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때때로 발견하는 무지에 대한 자각에 지적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훌륭한 책이다. 모르는 건 내 사정이지, 진중권의 잘못이 아니다.  예술과 철학, 그리고 시사까지 어우르는 그의 사색의 읽기 과정은 정독의 즐거움을 준다. 미학 오딧세이를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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