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킹맘이다. 나는 진작부터 워킹맘이 되기로 결심했던가 보다. 직업은 가질 생각이었고, 아이도 둘 낳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을 모두 이루고 보니, 나는 워킹맘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워킹맘 이미지로 종종 언급되는 '슈퍼우먼'이 되었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나는 본질적으로 게으른 인간이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잘하기보다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슈퍼우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냉동실에 가득한 냉동음식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로 넘쳐나는 난잡한 방꼴, 늘 분주해서 늘 뭔가 빼먹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 일상들을 못 보니까.
워킹맘이라도 다 하나로 묶어서 보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은 온 가족(남편과 시가 식구들 포함)의 적극적 지원 아래 날개를 펴고 자기 일에 매진하고, 어떤 사람은 일을 최대한 줄이고 육아에 힘쓰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방황한다. 전자의 경우, 일단 그런 환경도 안 될 뿐 아니라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싶은 욕구와 필요를 내려놓기도 어렵다. 후자의 경우 일을 줄인다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뿐더러 업무영역에서 성취하고 싶은 욕구와 필요를 내려놓기도 어렵다. 이건 양손에 떡을 쥐고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다. 양손에 쥔 이것은 내 인생에 너무 중요하다. 다만 그 둘을 모두 잘 해내기에는 체력과 능력이 부족한 보통 사람이니까. 해결 방법은 두 가지이다. 둘 모두 '잘' 해내기를 포기하거나, 떡의 무게를 마땅히 나눠야 할 사람(남편)에게 나눠 주거나. 후자의 경우 남편이 없는 사람은 어려울 것이고, 남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들도 있다... 인생 선배들은 "내려놓으면 편해져"라고 조언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일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하고(요즘은 갑자기 하원/하교하라는 연락이 오면 허둥거리며 사람을 찾거나 조퇴해야 한다), 일과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는 각종 잡일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들도 사야 한다. 집에 가면 아이들과 놀아주어야 하지만 너무 피곤하다. 업무에서는 비양육자 동료들에게 밀리는 것 같고 양육/교육에서는 전업맘들에게 밀리는 것 같다.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조그만 실수에도 밀려오는 죄책감. 그게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나는 전업맘에 대한 후려치기에 대해서도 분개하는데, 그게 잘하려고 들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직업이 있었으나 내가 초등학교 무렵에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일하는 아빠보다 엄마가 늘 더 바빠 보였다. 아빠에게는 주말도 휴가도 있었지만 엄마에겐 없었다. 아빠는 열심히 밖에서 일하고 오면 따뜻한 밥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엄마는 청소, 빨래, 아이들케어, 재정관리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단 한 번 다른 이에게 밥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전업맘들에 쏟아지는 시선은 어떠한가?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중
"아니, 정말로 잘하는 게 뭐냐고? 어떻게 잘하는 게 그렇게 하나도 없어?"
"뭐라고?"
"맨날 집구석에나 박혀 있고, 옛날 여자처럼."
"없어? 내가 잘하는 게 없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를 일이다. 험하게 돌아누우며 자도 먼지 안 나는 침구가, 곰팡이 없이 깨끗한 욕실 타일이, 주름 잡혀 걸려 있는 양복바지가, 오래되었지만 가죽이 은은하게 빛나는 소파가 자동으로 그렇게 유지된다고 인철이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만큼은 오래 해왔다. 인정해 주리라는 기대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도 그날 밤 그 순간, 운영은 화가 났다. 몰라? 정말 몰라? 이렇게 잘하는데, 어떻게 몰라? - <피프티 피플> P198, 199
엄마들이 평일에 카페에 모여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 떠는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거기에 대고 어떤 이들은 팔자가 좋다고 한다. 남편 돈으로 먹고 논다고. 왜 남자들이 밤에 회식을 하며 술을 마시고 심지어 룸살롱에 가는 것은 사회생활, 경제생활이고 여자들이 모여서 식사하고 정보를 나누는 건 노는 일인가? 엄마들 사이에 정보력과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나 하나. 그저 그런 필요가 아니라도, 아이들 외에 대화 대상이 없을 때 공통 화제가 있는 어른과의 대화는 숨통을 틔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렇게 엄마들 역할을 비하하면서, 또 애들 교육에 실패하면 그 책임은 엄마에게 미루는 것.
전업맘에게는 집안을 벗어난 시간과 공간이 꼭 필요하다. 일터에서 쉴 수 있는가? 집에 있으면 해야 할 일이 계속 눈에 띄는 것이 집안일이라는 건데. 그래서 오소희 작가는 무조건 눈썹을 그리고 일단 나가라고 한 것이다.. (엄마의 20년) 사실 나는 주말이나 휴일이 너무 힘들어서, 출근할 때 기쁘다... 애들이 예쁜 건 예쁜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집에 있는 시간 비례해서 손도 튼다 ㅜㅜ
최근 엄마의 경제적/정신적 독립과 건강이 얼마나 아이에게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연달아 읽었다.
<의지와 증거> 이 책에 나오는 엄마는 최악이다. 가진 것은 미모 뿐이어서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존하기만 한 엄마는 아빠의 부속물일 뿐 아이들에게 마땅한 보호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화자 베르기요트는 그래서 아빠보다 엄마를 더 증오하는 것 같다. 엄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일 뿐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베르기요트가 입은 피해를, 아빠를 떠나기 위한 구실로 이용하려 했다. 떠나지 못하자, 겉보기에 화목한 가정을 꾸미며 베르기요트의 정신을 계속 파괴해 나간다.
마침 이걸 설명하는 내용이 <여성과 광기>에 나왔다.
정신과의사 주디스 루이스 허먼(Judith Lewis Herman)과 고인이 된 그녀의 어머니 헬렌 블록 루이스(Helen Block Lewis)에 따르면 근친상간이 일어난 가정에서 딸들은 어머니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힘센 남성을 달래기 위한 희생자로 바쳐졌다"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경멸한다"고 느낀다. 그들은 또한 다른 여성으로부터는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고 배운다. 경우에 따라 그러한 폭력에 강력히 맞서거나 복수를 하는데 대상은 주로 자신들의 어머니이다. - <여성과 광기> P36
김초엽은 「관내 분실」에서 '고유성을 상실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룬다.
지민은 사망 직전에 사람의 뇌를 스캔해서 '마인드'라는 이름으로 보관하는 일종의 '도서관'에 찾아간다. 그러나 지민의 어머니의 마인드가 '관내 분실' 되어 찾을 수가 없다는 설명을 듣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오래전 집을 떠나 부모와 연락을 끊었던 지민은 엄마의 마인드를 찾기 위해 엄마 마음속에 특별하게 남을 만한 추억의 물건을 찾으려 한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늘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지민에게 집착하며 소리지르던 엄마 말고, 엄마의 인생에 뭐가 있었을까? 엄마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는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 p267/367(전자책)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의 주인공도 비슷하다. '왼손잡이'로 표상되는 고유성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사라져 버렸다. 주인공은 고유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게 어찌나 힘든지. 헤어지자며 집에서 내보낸 남편은 한때의 장난으로 치부하려다가 별거가 길어지자 폭력을 행사하려 하고, 번역일을 맡기 위해 연락한 출판사 사장은 일감을 핑계로 추근대고, 아들과 친구들은 일하는 엄마를 방해하기 바쁘다. 엄마가 아들에게 소리 지르고, 아들도 엄마에게 "나도 슬프다고요!"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이 책에는 '왼손잡이 여인' 외에도 '소망 없는 불행'이 실려있는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는 이 단편을 보면 주부로 살면서 자신을 잃어가는 여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알 수 있다. 인용하고 싶은데 책이 지금 없다.... 나중에 추가해야지.
고유성. 남편 말고, 아이들 말고, 누구 부인 말고, 누구 엄마 말고. 나 자체를 특정하는 인덱스. 그게 분실되지 않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워킹맘과 전업맘이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한다면, 고유성을 확보하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 상호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원래 주부 후려치기에 대해서만 쓰려고 했는데 내 얘기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민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