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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리커버 특별판, 양장) ㅣ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컬렉션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설국? 재미없어.
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다.
아 재미없구나... 어렵나? 심심한가? 그래도 두껍지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던 차, 리커버 특별판이 나와 일단 구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녀가 다가와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 -」
(7쪽)
이 첫 부분만으로도 눈 냄새가 맡아지는 듯 하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맞닥뜨린 여행지는 눈에 묻혀 빛나고, 동행한 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정체 모를 아름다운 처녀(요코)의 등장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왜 재미가 없다는 걸까? 결론을 말하자면, 재미없다.
시마무라는 무위도식하는 한량(가끔 글을 쓰기는 한다)으로, 이리저리 산행을 다니다가 바로 이 '눈의 고장'에 도착하여 온천장에 간다. 그는 게이샤를 부르지만, 마침 행사가 있어 게이샤들이 죄다 불려간 탓에, 게이샤는 아니지만 큰 연회에 더러 불려 나간다는 아가씨, 고마코가 불려 오게 된다.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시마무라는 다음 날 떠나고, 일년 후 고마코를 만나기 위해 다시 이 고장으로 가는데, 그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소설의 어조는 시종일관 점잖고 고상하며, 한 발짝 떨어져 관조하는 듯하다. 어찌나 점잖은 척 하는지, 온천장에서 게이샤를 부르는 시마무라의 의도가 춤과 노래를 감상하기 위한 예술적 충동 때문인 줄로 착각할 뻔. 시마무라는 너무나 깨끗해 보이고 초보자(?)인 고마코에게 성매매를 요구하기가 꺼려지자, 당신과는 친구로 남고 싶다면서 다른 게이샤를 소개해 달라고 한다.
「어린 사람이 좋아. 어린 편이 무슨 일이건 실수가 적겠지.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약간 멍청해도 때묻지 않은 쪽이 좋아. 얘기하고 싶을 땐 당신하고 하겠어」
(25쪽)
순수한 어린 여자애 불러달라는 거 아니야. 아니 고마코가 깨끗해 보이고 초보자여서 좀 그렇다며ㅋㅋ
고마코랑 밀당을 해본거라 치고 넘어간다. 그런데,
더욱이 그는 여름 피서지를 어디로 할까 망설이고 있던 터라, 이 온천 마을로 가족을 데리고 올까도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여자는 다행히 초보라, 아내에게도 좋은 말동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심심풀이로 춤도 배울 수 있으리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27쪽)
시마무라는 유부남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아 근데 또 문제는, 고마코가 주저하다가 결국 게이샤를 불러줬는데, 이 게이샤가 안 예쁜 거다. 고마코보다 어리면서 예쁜 애가 올 줄 알았던 거지 ㅋㅋㅋ 순간 확 욕망이 사그라들고. 그러고는 고마코를 다시 보니 넘나 예쁜 거라 ㅋㅋㅋ 아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 여자를 원했던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시마무라.
그날 밤 술에 취한 고마코가 시마무라가 묵고 있는 방에 찾아오고, 횡설수설 하다 둘이 잔다. 새벽에 고마코가 나가고, 그날 바로 시마무라는 도쿄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소설의 첫 부분처럼, 일 년 만에 고마코를 만나러 다시 돌아가 얼마간 머무르다 도쿄로 떠나고, 세 번째로 다시 한번 고마코를 만나러 돌아가 실컷 놀고 먹는다. 끝.
불륜이야 흔하디 흔한 소재이지만, 이렇게 아내와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눈꼽만치도 안 느껴지는 화자는 첨 봐서 신선했다. 한편으로 고마코와의 미래도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헤어질 걸 전제하고 만난다. 고마코에게서는 체념의 정서가 느껴진다. 게이샤인 자기 처지에 아내가 있는 여행자와의 사랑은 그냥 거기에서 끝내야 하는 것이다. 긴 터널은 도쿄에 사는 유부남으로서의 시마무라와 눈의 고장에서 게이샤와 연애하는 여행자로서의 시마무라를 분리해 주는 좋은 기제다. 터널을 빠져나와 펼쳐지는 낯선 고장. 그곳에서의 일은 그곳에서 끝나고, 자신은 도쿄로 돌아가면 그만이므로, 시마무라의 무심한 시선은 그 탓이 아닐까. 그건 관조도 뭣도 아니고, 그냥 비겁한 거 아닌가.
제일 거슬리는 것은 고마코와 요코라는 두 여성상이다.
'헛수고'인 일에 매달리고 미래가 없는 사랑에 빠져드는 부나방. 비논리적, 비이성적, 감상적, 변덕스러움. 누군가를 돌보고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성정. 아무리 옛날 소설이라지만 너무나 틀에 박힌 여성상인 거 아닌가.
「역장님, 동생을 잘 돌봐주세요. 부탁이예요」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9쪽)
거울 속 남자의 안색은 이제 그저 처녀의 가슴 언저리를 보고 있어 편안하다는 듯 차분했다. 허약한 체격이 허약하나마 부드러운 조화를 띠고 있었다. 목도리를 베개 삼아 깔고 그걸 코밑까지 끌어당겨 입을 꼭 덮고는 다시 위로 드러난 볼까지 감싸 일종의 볼싸개처럼 되었다. 그것이 더러 헐거워지거나 코를 덮어버리거나 하면, 남자가 눈을 채 깜박이기도 전에 처녀는 나긋한 손길로 고쳐주었다. 지켜보는 시마무라가 초조해질 만큼 몇 번이고 똑같은 동작을 두 사람은 무심히 반복하고 있었다. 또 남자의 발을 덮은 외투 자락이 간혹 벌어져 흘러내릴 때도 처녀는 곧바로 알아차리고 매만져 주었다. 이 모든 게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이렇듯 거리감을 잊은 채 두 사람은 끝없이 먼 길을 가는 사람들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그 때문에 시마무라를 슬픔을 보고 있다는 괴로움은 없이, 꿈의 요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기한 거울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 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12, 13쪽)
요코는 병에 걸린 선생님이라는 사람의 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고마코는 어릴적 소꿉친구에 불과한 그 남자(위 아들과 동일인물)의 요양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가 되었다. 그리고 그 희생의 한 단면을 들여다본 시마무라의 감상은 '아름답다'는 거였다. 여자가 치러야 할 희생같은 건 안중에 없다. 그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다. 시마무라의 시선은 기차에서 거울로 바라본 풍경을 향할 때나 살아있는 사람들을 직접 향할 때나 똑같다. 똑같이 멀리 있고, 냉담하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사랑한 적이 없다. 그러니 떠나야 할 시마무라를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고마코를 보면서 요렇게 분석이나 하고 있는 거다.
「힘들어요. 당신은 이제 도쿄로 돌아가세요, 힘들어요」
하고 고마코는 고다쓰 위에 얼굴을 묻었다.
힘들다는 건 여행자에게 깊이 빠져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이럴 때 꾹 참고 견뎌야 하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여자의 마음이 여기까지 깊어졌나 보다 하고 시마무라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81쪽)
묘사가 훌륭하다고 해서 소설이 훌륭한가? 진부한 이야기와 이해되지 않는 인물들... 어떤 인물에게도 감정이입이 안 되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
안녕, 설국. 넌 이제 중고매장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