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햄릿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ㅣ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오디오북)
윌리엄 셰익스피어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역시 희곡은 극으로 상연해야 제맛이 나는구나.
책으로는 예전에 읽었지만 그다지 재미는 못 느꼈던 것 같은데, 오디오북으로 들으니 (연극을 직접 보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했다. 성우들 연기도 훌륭하고(클로디어스 역의 정상철님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중간중간 적절히 들어간 효과음이 흥미를 돋구어 준다.
오디오제작 훌륭하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그래.. 옛날 남성작가. 어쩔 수 없겠지만.
여성비하 너무 많다.
유명한 이 구절 "약한 자여, 그 이름은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여자의 약한 마음"이라는 구절도 또 나오고, 햄릿과 친구들이 여신을 막 희롱하는 대사도 두어번 나온다.
여신도 신인데, 야. 니들 그래도 되는 거니?
무엇보다 내용에서,
햄릿이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대목에서 나오는 대사들을 듣고 있자면 도대체 분노하는 원인이 '숙부가 아버지를 살해한 줄도 모르고 그와 결혼했다는 사실'인지, 그냥 엄마가 딴 남자랑 잔다는 사실인지 헷갈린다. 왕을 잃은 왕비가 그 동생과 결혼한 것은 아마도 여러가지 정치적 이유나 개인적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햄릿은 어머니가 "욕정"을 참지 못하고 숙부의 침대에 들어갔다는 둥 하며 죽은 남편에 대해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엄청 비난한다. 그러니까 위에 말한 약한 여자의 마음이라는 생각과 연결되는 것인데, 뭐 되게 자기가 정당한 척하지만 결국 그냥 여자는 정조를 지켜야 하는데 정조 안 지켰다고 자기 엄마를 막 몰아붙이는 나쁜 아들로밖에 안 보인다..
오필리아는 햄릿과 대조되면서 "여자의 약한 마음"을 부각시키는 인물이다. 햄릿과 비슷하게 오필리아도 아버지가 살해당하지만, 미친 척할 뿐 이성을 잃지 않고 복수를 꾀하는 햄릿과 달리 오필리아는 정말로 실성한다.
햄릿에 등장하는 단 두 명의 여성이 모두 여성의 약함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맨스플레인도 쩐다.. 특히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우스. ㅎㅎ 잔소리쟁이.. 듣다 보면 거트루드나 오필리아의 대사 중에는 남에게 충고하거나 조언하거나 하는 것이 거의 없는데 폴로니우스나 클로디어스나 햄릿 대사 중에는 많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두말 필요없는 고전이고 읽어볼 가치가 있겠지만, 이런 내용들을 '고전'이라는 이유로 무비판적으로 읽게 될 때, 여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형성될까? 비판적 독서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많은 성우들이 참여해서 만들었는데, 이 가격에 들을 수 있다는 게 미안할 지경이다. 고마워요~ 다른 오디오북도 들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