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셜리 1~2 세트 - 전2권
샬럿 브론테 지음, 송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3월
평점 :
샬럿 브론테가 <제인에어>의 성공 후 썼다는 <셜리>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제목과 달리 셜리가 등장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우선 보좌사제 3인방(개그담당)과 주임사제 헬스턴이 나오고, 이들은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적 소란의 근원지인 할로 공장으로 간다. 이제 공장주 로버트 무어, 매력적인 젊은 남성이 등장할 차례다. 그는 공장에 최신식 기계를 들여오면서 많은 사람을 실직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방인이며, 영국 북부의 요크셔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공장에서 일어난 소동을 해결하고 나서야, 셜리에 버금가는 주인공, 캐럴라인을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주임사제 헬스턴의 조카딸로서 엄마와 헤어지고 아빠는 사망하여, 부인을 사별한 숙부 헬스턴과 함께 살고 있다. 캐럴라인은 사촌인 로버트와 그 누이 오르탕스가 사는 집에 종종 찾아간다. 사촌이라 더욱 조심스러우나,, 캐럴라인은 로버트를 향해 커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짠 하고 등장하는 상속녀!! 셜리는 가문의 유일한 상속녀로서 매년 상당한 금액을 받고 있는 부유한 여성이다. 그녀는 나폴레옹과의 전투로 인해 영국과 유럽 사이의 교역이 막혀버려 어려움을 겪는 로버트의 할로 공장에 투자하고, 로버트와 가까워진다.
자, 뻔하디 뻔한 삼각관계 로맨스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샬럿 브론테는,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서로 경쟁하고 미워하는 쉬운 길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셜리와 캐럴라인은 마음을 나누는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된다. 캐럴라인이 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도, 그녀를 절망에서 꺼내주는 건 셜리와 그녀의 가정교사 프라이어 부인, 이 여성들이다.
그리고 2권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셜리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는데.. (직접 읽어보세용)
뭐, 시대적 한계이겠지만 로맨스는 아쉬운 점이 많다. 일단 남자들이 아쉽다 ㅋㅋ 제인에어에서 로체스터가 맘에 안 들었듯이, 이놈이나 저놈이나.. 흠흠. 로체스터만큼 나쁜 놈은 나오지 않긴 한다. 제인에어, 빌레뜨와 셜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성들의 미모가 빼어나다는 점일까. 로버트무어도 잘생겼다. 관계성에 있어서는 제인에어-로체스터만큼 계급차이가 있지 않고 오히려 역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눈에 띈다. 여성이라서 불리한 점이.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아쉬운 인물은 역시 셜리다.
셜리는 이런 인물이다. 로버트 무어 왈, '소녀의 리본으로 된 어깨끈 아래에 상태 좋고 혈기왕성한 심장을 가진 당신 같은 사람은 지금 이런 사소한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해도 겁먹지 않겠지요'(2권, 11쪽). 여기서 당신이 셜리다. 그녀는 용감하다. 기개가 있고, 자신감이 넘치며, 똑똑하고, 건강하고, 활기차다. 심지어 그녀는 책도 좋아하거든.
올려다보니 달이 떠 있다. 그녀는 책을 덮고 일어나 방 안을 거닌다. 아마도 좋은 책이었을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채워 주고, 다시 따뜻하게 해주었다. 뇌를 자극하고, 마음에 생생한 그림들을 채워주었다. 조용한 응접실, 깨끗한 벽난로, 황혼의 하늘로 열린 창, 새롭게 왕좌에 앉은 그 영광스러운 하늘의 '달콤한 지배자'로의 모습이 셜리에게는 지상을 에덴으로, 삶을 시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2권, 87쪽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을 강요하는 친척들이 아니라면, 여성이 할 일은 집 안에, 바느질감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그녀는 치안판사도 될 수 있고, 사제도 될 수 있고, 공장주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셜리들이 그 재능을 아깝게 썪혔을까.
<셜리>에서 또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시대 상황에 관한 샬럿 브론테의 이런저런 논평들, 여성의 처지에 대한 비판, 한심한 사제들을 향한 유머 섞인 조롱들이다. 특히 독신 여성들의 처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각된다.
'(...) 하지만 어떤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삶을 포기하고 자신들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칭찬으로 보답하지. 그런 인간들은 그들이 헌신적이고 고결하다고 해. 그걸로 충분한가? 그게 사는 건가? 나를 바칠 나 자신만의 것이 없다는 이유로 남에게 자신의 존재를 내줘버린 사람들은 끔찍한 공허함, 조롱, 결핍, 갈망이 없을까? 내 생각에는 있을 것 같아. 자아를 버리는 데에 미덕이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지 않아. 과도한 겸손은 폭압을 만들어내. 나약한 양보는 이기심을 만들어 내고. 가톨릭이 특히 자아를 버리고 남들에게 굴종하도록 가르치는데, 가톨릭 사제단만큼 탐욕스러운 폭군들이 많은 곳도 없지.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 몫의 권리가 있어.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알고 순교자가 자신의 신조를 결연하게 고수하듯이 그 몫에 충실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지고 잘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이상한 생각이 내 마음속에 밀려들다니. 이런 게 옳은 생각일까? 잘 모르겠네.' - 1권, 249쪽
하지만 분명 무언가 잘못됐어. 독신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야 해. 지금보다 더 흥미롭고 돈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내 말에 불쾌해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내가 불경스럽다거나 참을성이 없다고, 혹은 신심이 깊지 못하다거나 신성을 모독한다고도 생각 안 해.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인간이라면 귀를 막거나 무력한 경멸감으로 얼굴을 찌푸릴 슬픔에 대해서도 동정해주신다는 것만이 나의 위안인걸. 무력한 경멸감이라 한 건,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이런 불만들에 대해서 사회는 보통 경멸을 무기삼아 아예 말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기 때문이야. 이런 경멸은 약점을 덮는 번쩍이는 망토에 불과해. 사람들은 고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문제들을 상기시키면 싫어해.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무능을 절감하거나, 그보다 더 고통스럽게도, 내키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니까. 그게 그들의 안락함을 방해하고 자기 만족을 흔들어놓지. -2권, 92-93쪽
해설에 잘 설명되어 있지만, 샬럿 브론테 자신이 노동자 계급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생계가 달린 시위를 부르주아 계급의 도덕의식에 기대어 해결하려 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로버트 무어의 비정함이 깨달음을 통해 달라져서 자신의 결정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인지하게 되면, 그러면 공장 기계화에 수반되는 노동자들의 터전 잃기와 계급 갈등이 해결될까? 시혜적인 태도로 계급 문제를 바라본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샬럿 브론테는 좋다. <셜리>의 출간에 감사하며, 별 다섯 개를 드립니다.
슬픔과 두려움은 침묵 속에서 돌보면 거인족의 아기들처럼 자라나지요. (2권) - P266
자신을 존중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보다 무지를 더 배려하고 고통에 더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저는 저 자신을 대단히 부당한 인간이라고 경멸해야 할 것입니다.(2권) - P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