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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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이어지면서 그녀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데이지도 톰도 심지어 개츠비도 아니고 닉 캐러웨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자 그 인상은 배로 더 강해졌다. 그는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닉이 바로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인물, 유일하게 자기 외부를 볼 줄 아는 인물이다.

 -본문 15 페이지

 

 


 저녁의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도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텅 빈 것도 아니어서 그곳에서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가족, 친구들, 소소한 일, 생각, 말. 그것은 각자의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는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었으나 때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애매함은 줄고 명확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귀 기울이면 늘 무언가를 원하거나 꿈꾸고, 열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 소리는 종종 봄비처럼 조용히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만나 강풍과 비를 뿌리듯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폴 오스터의 소설 '선셋 파크'는 이런 요란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사람들이 서둘러 떠난 빈집을 치우며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물건 사진을 찍는 마일스 헬러가 있다. 그가 사랑하는 어리고 똑똑한 소녀가 나타난다. 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열망하는 것 없이 시간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무언가 또렷하게 점차 모습을 드러내듯 사람들이 드러난다. 그의 부모, 우발적 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 선셋 파크의 빈집을 무단점거하여 사는 빙, 앨리스, 엘라. 세상은 무대이고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각자의 배역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셰익스피어의 명제를 충실히 지키듯 이들이 하는 각자의 역할을, 폴 오스터는 전지적 시점을 통해 우리는 볼 수 있다. 논리적인 흐름을 걷어내고 우연에 의존하였던 포스트모던의 폴 오스터가 이번에 택한 것은 정반대의 무엇이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장광설과 과장, 왜곡과 은폐, 포커스와 줌 인, 줌 아웃을 이 소설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다. 폴 오스터는 읽기와 쓰기, 이야기를 듣는 자와 하는 자의 규칙을 조금씩 변형시키는 작가가 되어 돌아왔다. 관습이 바뀌고 사건의 이유가 생겼다. 일상이 배경으로 자리잡은 무대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조금씩 경계를 허문다. 그리하여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읽는 나에게 폴 오스터가 제시한 길은 곧장 핵심으로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소설 속에 언급한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 캐러웨이는 일종의 전달자, 기록자였다. 그는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선셋 파크의 마일스는 쓰레기를 치우며 남들의 흔적을 기록한다. 유일한 취미는 소설 읽기. 오스터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이런 모습으로 등장한다.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이야기 속에 천천히 스민다. 그는 치유하고 싶은 마음도, 재활에의 의지도 없는 중독에 탐닉한 남자. 이유가 있어 도망친 사람.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남자가 실수로 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때마침 자살하던 아들을 총알이 맞힌다. 그는 추락사가 아닌 총상으로 사망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구원투수 도니 무어는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투구를 했다. 3년 후 그는 아내와 세 아이들 앞에서 아내에게 세 발의 총을 쏜 다음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사망자는 아내가 아닌 그 자신이었다. 우연 끝에 결국 오스터가 다다른 곳은 필연이었다. 어느 곳에 꼭 다다르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니나,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선셋 파크였다.

 


 무대와도 같은 선셋 파크의 다양한 인물의 심중까지 이야기하는 폴 오스터의 시선은 의외로 어느 한 인물도 예사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 시선은 마지막까지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 마일스와 필라의 사랑은 필라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완전함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곳곳에 안전장치가 있다. 선셋 파크의 빙, 엘런, 앨리스. 집이 없는 이들이 불법 무단 점거로 집을 얻는다. 사랑받고 싶고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엘런은 포르노그라피를 보며 화첩을 채우고 옛 남자친구, 새 남자친구를 얻는다. 무관심한 관계에 고심하며 스스로 뚱뚱해서 자존감마저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앨리스는 살을 빼고 남자친구와 헤어진다. 마일스는? 마일스는 미성년인 여자친구가 열여덟이 될 때까지 선셋 파크에 있기로 한다. 20일까지만, 22일까지만. 하루만 더. 지금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혹시 이 시선이 엇갈린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의 여지를 폴 오스터는 단숨에 걷어낸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차츰 무언가를 원하게 되는 과정을 폴 오스터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핵심으로 다가서노라면 소설은 마치 요약본을 제시하듯 챕터와 인물, 사건을 늘어놓는다. 그새 어느 한 사람도 소홀하거나 멀어지지 않는 것은 폴 오스터가 그만큼 선셋 파크의 허술한 문과 벽돌, 집 안의 계단에까지 그 눈길을 오래도록 주었다는 뜻이리라. 자신의 관습을 스스로 파괴한 작가는 독자에게 인위적인 즐거움 대신 새로운 얼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혼란이 가득하고 하루를 보내면 지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다 보니 현재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안개 속의 풍경.

 


 이 안개 속을 걷노라면 독자로서는 '그래서 핵심이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은 모든 애매함을 없애고 확실함과 직설적인 어조, 명확한 이유와 또렷한 근거를 자신의 새로운 작법으로 선별한 폴 오스터가 만든 조각 이불이다. 아니, 그보다는 조각조각 떨어져 있지만, 어느 한 페이지 소홀하지 않은 화첩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초기 작품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우리가 보았던 우연이 우리의 등을 세게 후려치지는 않는다. 물론 노스탤지어에의 열망, 야구 사랑, 소수만이 열광하는 오래된 취미 같은 직업, 기록하는 자가 만나는 거대한 벽과 같은, 폴 오스터가 자주 그의 작품 속 배경과 사건으로 골랐던 필터는 여전하다. 이러한 필터는 아마 십 년 후에도 그의 문체와 독특한 공기로 계속 남아 그 모양을 더욱 굳건히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독자를 의식하는 단편적 노력 대신 스스로 한계를 생각해 보고(아마도 그의 기존 팬들은 좀 싫어할지도 모르겠으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그의 노력은 '선셋 파크'의 그 모든 흔적처럼 또렷이 남을 것이다. 선셋 파크의 모든 발자국은 제각각 자국으로 남아, 우리가 뒤돌아 보았을 때 그 모양이 공기 중에 흩날려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In Studio: Paul Auster reads Sunset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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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7 0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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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1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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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3 06: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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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3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80일의 엘불리 - 미슐랭★★★, 전 세계 셰프들의 꿈의 레스토랑
리사 아벤드 지음, 서지희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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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메이저 신용카드로 계산 가능.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점심, 저녁 식사 가능. 가격대는 비싼 편. 로즈 가이드에서는 20점에 17.5점 기록, 미슐랭에서는 계속 1위. 스타일은 모던. 지금은 요리연구소로 변모한 스페인의 레스토랑, 엘 불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방문객의 모국어로 인사하는 서버가 테이블을 안내해준다. 와인은 선택할 수 있지만, 요리는 선택 불가하며 코스 구성은 50여 종. 한 입, 한 입, 입 안에서는 놀라운 경험이 펼쳐진다. 물론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명함을 소스에 찍어 먹으라는 서버의 안내에 당황한 적도 있고(명함은 감자 전분으로 만든 것으로, '미각에의 새로운 경험'이라는 글귀가 찍혀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달지 않고 짭짤해서 놀란 적도 있었다. 계란인 줄 알았는데 캐러멜 소스를 입힌 아이스크림과 마멀레이드여서(노른자 깨진 것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후문) 재미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귀, 눈, 코, 손끝, 입술, 혀끝.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다다르는 새로운 경험. 음식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지만, 음식에 대한 경험이 없을 수는 없다. 엘 불리는 '평범한' 단순한' '상상할 수 있는' '상식적인' 모든 선을 넘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없는 그 한 자락이 여기 이렇게 리사 아벤트의 취재로 드러났다.


 


 

엘 불리를 이끌었던 페란 아드리아는 돌가루도 흥미롭다면 요리 재료에 활용했을 인물이다. 거리낌이 없고 막힘도 없다. 단, 자기 자신을 모방하는 것이라 해도 모든 모방은 진부하다. 정작 반응은 시들했지만 페란 자신이 시즌 동안 좋아했던 요리 중 하나가 장미꽃잎 아티초크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에 굶주린 사람이다. 천성이 직관이고 창조가 직책이다. 아이스크림은 왜 달콤해야 하는가? '적당히'는 없다. '어머니의 손맛'은 그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분자요리라는 명칭을 정작 페란은 싫어한다지만 로마 시대에서 출발한 그 개념을 현대에 들어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이가 바로 페란 아드리아이다.

 

 

 

 그렇다면 분자요리란 무엇일까. 그 기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하게 분석, 연구한다는 개념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재료의 질감, 조직, 화학, 물리 작용까지 분석하여 변형하거나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바로 분자요리이다. 두산 백과에서 찾아보니 올리브 오일도 액화 질소로 순간냉각을 거쳐 아이스크림으로 만들면 전혀 다른 새로운 맛과 질감이 생겨난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는 송아지, 돼지, 양, 닭을 마트료쉬카 처럼 만들어 서빙했고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천연재료를 고무, 껌 등과 같은 비천연적인 재료로 융합하여 케이크를 산처럼 쌓아올리는 세트피스를 활용했다고 한다. 어떠한 법칙도 근거가 필요한 법. 본격적인 분자요리는 물리, 화학과 함께 등장했다. 라부아지에의 맑은 육수,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 마이야르의 마이야르 반응. 이들이 소개한 것은 음식의 화학 작용과 반응이었다. 마이야르 반응만 하더라도 고기를 구우면 탄수화물과 아미노산이 고온에서 결합, 아로마 분자를 발생시킨다는 학설이다. 생화학과 물리, 분자생물학은 그 미세한 부분을 파헤쳐 새로운 길을 연다. 1988년에는 에르베 티스(프랑스, 화학자)와 니콜라스 커티(헝가리, 물리학자)는 시칠리아에서 요리를 물리, 화학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심포지엄을 갖는데 여기서 바로 분자물리학 요리, 즉 분자요리가 그 이름을 갖게 된다. 요리에 대한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들은 계량하고 관찰하고 분석한다. 이론과 관찰, 분석과 집중을 요구하는 현대의 새로운 요리의 절반은 이 심포지엄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원칙과 고집. 경험과 상상. 패기와 열정. 끈기와 노력. 짝으로 이루어서 더 완전해지는 조합이 있다. 엘 불리는 이 모든 조합을 그러모아 창조를 하는 요리 연구실이었다. 레스토랑을 들어서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일깨워준다. 모든 것이 구태의연하고 케케묵어도 엘 불리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살아있다면 먹어야 하고 먹어야 한다면 새로워야 한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은 실은 태초의 도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화학과 물리. 상상력과 직관. 페란 아드리아의 레스토랑 엘 불리에서는 음식이 새로운 경험이 된다. 요리는 낯선 곳으로 가는 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180일간의 중노동과 엄격한 규율이다.

 

 


 

 엘 불리는 일 년 중 180일만 문을 연다. 매년 실습생을 바꾸는데, 그들은 모두 무보수로 일한다. 케모, 케모를 외치며 군대와도 같은 엄격한 곳에서 180일을. 별 다섯짜리 주방에서 일하던 이도 있고 생화학 석사도 있다. 엘 불리 앞에서 텐트를 치고 뽑아달라고 애원하여 들어간 이도 있다. 그리하여 모인 이들이 하는 일은 토끼 귀 손질하기, 장미꽃잎을 데쳐서 아티초크 모양으로 만들기. 말미잘 촉수 제거하기. 우유에서 굳은 우유 단백질을 걷어내기(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걸로 요리를 한다). 옥수수 다듬기. 손상 없이 굴 껍데기 까기. '자, 이제 창조를 시작할 거야'라는 페란의 말에 모두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물론 그중 아주 극소수만 채택되거나 변형된다. 

 그리하여 나오는 메뉴는 다섯 시간에 걸쳐 오십여 가지로 나뉘어 서빙한다. 칵테일은 우메보시와 소금으로 만든다. 크림에 버섯을 3밀리가량 두께로 썰어 붙여 민트와 함께 서빙한다. 안초비는 요구르트와 함께 낸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든 조합이 엘 불리에서는 가능하다. 물론 이 메뉴는 늘 다르고 늘 변한다. 같은 것은 없다. 

 


 

 

 주방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뛰지 말 것. 두 번 이상 지각하면 곧장 해고. 요리 맛은 이미 다 정해진 것이니 테이스팅 스푼은 필요 없다. 맛도 볼 필요 없다.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것이므로. 메뉴는 분과 초 단위로 정확히 시간을 지켜 조리한 다음 서빙할 것. 청결히, 효율적으로, 빨리! 그래서 리사 아벤드의 시선을 빌어 엿본 엘 불리에서는 쉴 새 없이 '케모, 케모'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본래의 스페인어와는 다른 의미로 케모는 주의, 비켜주세요, 뒤에 사람 지나가요, 서빙중입니다, 빨리, 빨리. 등등 모든 의미가 된다. 효율성의 극대화. 주관의 배제. 엄격, 깐깐함. 매와 같은 시선. 아, 나는 주방이 이렇게 무서운 곳인지 몰랐다. 앤서니 보뎅의 키친 컨피덴셜에서는 페이스트리 담당이 전날 마약과 술에 찌들어 늦잠을 자는 바람에 대신 누군가 반죽을 해야 했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제이미 올리버의 학교급식 개혁 다큐멘터리에서는 주방 직원을 놀렸다가 학교 강당을 가로질러 도망가는 스타 세프 제이미 올리버가 등장했다.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에서 고든 램지는 끊임없이 고함을 지르며 욕을 했다. 그 모든 케이스를 '요리사들은 개성적이다'라는 명제 아래 다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각자 개성의 표출, 작업의 방식일 뿐이었다. 그리고 페란의 주방은 공기가 가라앉고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실험의 공간이었다. 뉴욕 타임즈니까 특별히 2년만 기다리게 해주겠다든지, 자기 자신조차 모방하지 말라는 페란 아드리아의 말은, 그의 특징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옳다. 같은 라비올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제이미 올리버와 고든 램지, 앤서니 보뎅과 페란 아드리아의 라비올리는 제각각 다를 것이며 개성과 구조, 아이디어와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런 각자의 스타일이 신선하게 와 닿는다. 우리는 이것을 요리라고 부르고, 미식이라고 하지만 끼니를 넘어선 경험의 측면에서 볼 때, 이 모든 개성은 훗날 한 줄기를 이룰 것이다. 

 





메뉴란 한 편의 영화와 같아서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일 년 후 나를 다시 찾은 이에게 같은 영화를 보라고 할 수는 없다. 

-페란 아드리아

 


 



주방을 이야기하는 리사 아벤드의 시선에는 환상도 과장도 없다. 말없이 보고 과장없이 전한다. 엘 불리라는 이름이 주는 위압감에도 억눌리지 않는다. 페란 아드리아의 카리스마에도 억눌리지 않는다. 서른 명 실습생의 이야기를 다룸에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과장과 거짓이 없는 시선은 그 자체로 충직한 무기이다. 요리에 대한 애정과 결핍을 일부러 꾸미지 않는 그녀의 시선을 글로 읽다 보면 사진이 거의 없는 이 책이 전혀 아쉽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이다.


 

 





-영화 '엘 불리'의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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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미스 스타일 -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 폴 스미스 A to Z
폴 스미스, 올리비에 위케르 지음, 김이선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12월
절판




태초에 실루엣과 색상이, 동세와 질감이, 직선과 비정형 움직임이 나타나기 이전에 어떠한 특징이 있었다. 샤넬만 입는 여자를 보면 강한 자존심이 느껴진다. 망가진 구두 코는 가난한 마음이었다. 피케 셔츠는 각고의 생각 혹은 무개성이었다. 샤넬은 한때 꽃핀 여성의 사회참여 정신의 계승인가, 천민자본주의 특성인가, 혹은 강한 자존심의 표출인가. 모두가 입고 있는 옷, 구두, 가방, 이런 것들은 어떤 의미일까? 패션과 생활의 창조자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책은 '창조'의 관점에서 본 폴 스미스의 특징을 간략히 보여준다.




책의 느낌은 상당히 가볍다. 1946년 영국 태생 폴 스미스가 직접 찍은 사진과 알파벳 A부터 Z까지 떠오르는 단어에 관한 생각을 짤막하게 나열했다.

A
애비 로드
자크 앙크틸
건축
예술

에서 시작하여

Z
얼룩말까지.





평범한 검은색 반지갑이었는데 펼치는 순간 화려한 스트라이프 무늬를 배경으로 자동차가 나타나는 지갑이 있었다. 무난한 엷은 하늘색 셔츠에는 베이지색 단추들이 줄지어 있는데 아래에서 세 번째 단추만 색상이 진한 파랑이었다. 이런 그의 디자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상품을 선택함에 고려하는 많은 사항 중 하나는 바로 만든 이의 의도와 구입하는 이의 취향일 것이다. 그것은 재활용 아크릴 원단으로 만든 오천 원짜리 스카프일 수도, 라벨이 붙은 몇십만 원짜리 디자이너 슈즈일 수도 있다. 왜 그것을 돈을 내고 사서 몸에 걸칠까? 나는 왜 지금 이 옷을 입었나?




이 책은 가볍지만 아무렇게나 만든 것은 아니다. 스타일에 관한 키워드를 툭툭 던진다. 이 책을 읽어도 옷 잘 입는 법을, 혹은 폴 스미스 라벨 옷을 저렴하게 구할 방법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옷을, 주변 사물을, 나아가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을 살짝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감히 이 책이 육천 원 가량의 광고 전단 묶음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생각의 갈래, 아이디어의 구현.




어느 오후, 당신은 길을 걷고 있다. 그곳은 혼잡한 광화문 대로일 수도, 빈의 슈테판슈트라세일 수도, 창원의 주택가일 수도 있다. 눈은 무언가를 바라보고 귀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러한 상황이었다. 왜 어떤 이는 길에 지나가는 개미를 보는데 어떤 이는 자동차의 반짝이는 유리창을 보게 될까?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이 우리에게 남기는 흔적은 어떻게 되살아날까? '기껏해야 옷 쪼가리 주제에!' 와 '패션의 관심은 오직 미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이 이 책에서는 버겁지 않다. 훑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30분에서 한 시간. 사진이 대부분이고 글은 짧다. 폴 스미스는 짧고 간결하고 간단하다. 그러나 라일락색 셔츠에 진회색 바지에 에메랄드빛 구두를 신는 그의 스타일링이 나오기까지 그의 생각의 흐름은 예상외로 다채로웠다.




무엇보다도 그의 디자인에는 코드가 있다. 그 스스로 밝혔듯 그의 디자인은 영국적인 스타일의 극대화에 그 특징이 있었다. 수트는 전통적인 영국 스타일, 새빌 로 스타일을 따른다. 과장없이 자연스러운 윤곽선, 조화와 균형. 아르마니처럼 극단으로 치닫지도,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아나키스트의 전복성을 구현하지도 않는다. 폴 스미스의 검은색은 튀는 디테일과 과감한 라인 없이 입은 사람의 윤곽선을 부드럽게 드러낸다. '옷이 사람을 입고 다닌다'는 느낌을 없애고서도 디자이너의 터치를 잊지 않는다. 소재에 집중하여 그 특성을 살리고 윤곽선을 살리는, 기본에 충실한 그의 디자인은 모즈 룩, 여피 룩이 그의 손을 거치면 영국이 존중하는 장인정신, 수공예, 예로부터 이어진 기본과 현대적인 감성의 표현으로 드러난다. 물론 아내 폴린의 도움이 있었지만(지대했지만) 그는 정식 리테일링 수업을 받지도 않았다. 지금도 사이클에의 열정이 대단하며 17세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사이클러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의 작업실에 있는 사이클은 그 열정의 증거인 동시에 그의 디자인 철학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관한 듯한 사물이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직조하는 창의력의 산물, 그것이 폴 스미스의 디자인이다. 역설적으로 영국적 스타일의 뛰어난 해설자는 미국인, 랄프 로렌이었다. 그에 대한 화답은 핀 스트라이프, 즈크 신, 비정형의 색상 배합을 담은 폴 스미스였다. 아르마니, 레이 가와쿠보, 랄프 로렌. 이들이 폴 스미스 런칭 당시 가볍게, 우아하게, 구조를 파괴하거나 혹은 클래식을 당시 상황에 맞추어 재현하던 이들이었다. 반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영국적인 감각-프린스 오브 웨일즈 스타라이프, 유니언잭, 이케아가 갖다 버리라고까지 한 꽃무늬까지!-에 기반을 둔 폴 스미스의 디자인은 어떠한가. 그는 전통을 존중하되 젊음을 잃지 않는다. 격식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비싸 보이는 제품이 아닌 비판감각과 균형감각을 지닌 제품은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멀티 스트라이프로 다시 태어났다. 한마디로 자신의 직관을 새로운 형상으로 살려낸 그의 아이디어 창조와 구현의 과정이 이 책에서 스치듯 펼쳐진다. 읽는 이가 품은 의문에 다라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천만 갈래의 과정을 안내해 줄 수도 있는 지도.




이 책에서 드러내는 것은 이러한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지향점이다. 그는 컬렉터임을 부정하며 난독증을 그대로 활용한다. 준비된 종이 한 장 없이 애플에 강의하러 가고 언제나 머릿속에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펼쳐 보이게 해주는 것이 그의 난독증이었다. 데이빗 보위, 패티 스미스, 카오스 같은 사무실, 아이디어를 그대로 써두는 쌓여있는 너덜너덜한 포스트잇. 그는 가장 보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인물인 가운데 타고난 협상가이다.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닌 서로의 의견의 균형점을 찾아간다고 밝힌 대목에서는 위트있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구현해나가는 동시에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담은 제품을 판매하는 능력이 보인다.




무언가를 관찰하여 깨닫고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손끝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디자인은 관찰력, 깨달음, 상상력, 창조력, 비판정신, 직관, 기억력, 호소력을 바탕으로 나타난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도 구현되지 않으면 상상에 그칠 뿐이며 자신의 그 어느 줄무늬 하나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홀로 나타나지 않은 것임을, 충분한 고민과 수정, 비판과 절제를 거쳐 나온 것임을 폴 스미스는 분명하고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만난 그는 친절하고 조용한 안내자였다. 칼 라거펠트가 '패션의 관심은 오직 미래'라고 하였듯 폴 스미스도 '패션은 어제에 관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얼룩말은 꼭 파자마를 입은 말 같다'고 말하는 그를 보노라면 사람들이 입은 옷과 구두, 자동차와 생수병, 바지 끝단과 도시의 윤곽선이 조금은 다르게 눈에 들어온다. 눈에 담기는 풍광, 그것을 어느 순간에는 다시 꺼내어 차를 한 모금 삼키듯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자기 생각대로 다시 창조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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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03-1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정말 궁금했는데 쥬드님의 리뷰로 정말 깔끔하고 쉬크하게^^;; 정리가 되네요. 눈호사 하고 갑니다.

Jeanne_Hebuterne 2013-03-18 17:57   좋아요 0 | URL
폴 스미스는 디테일에 퍼스널리티의 엣지를 살려 옴므 룩에도 브리티쉬의 스트라이프를 가미하기로 유명한 디자이너지요. 그의 센서티브한 감성이 포토그래퍼의 열정으로 되살아난,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를 이번 스프링을 맞아 슬쩍 엿보기에 좋은 책입니다.
아, 보그체 따라하기 정말 힘들군요. 전 포기하렵니다. 가볍게 보려면 가볍게, 뭔가를 좀 더 보려면 비밀의 문이 열리는 신기한 책이어요. 블랑카님께서 읽으시면 꽤 흥미로운 리뷰가 나올 듯 합니다.

dreamout 2013-03-1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션으로는 모르겠지만, 책으로는 폴 스미스의 이 책이 크리스틴 녹스의 '알렉산더 매퀸 : 이 시대의 천재' 보다는 나아 보이네요. ㅋ

Jeanne_Hebuterne 2013-03-18 12:32   좋아요 0 | URL
이 시대의 천재라니 알렉산더 매퀸이 궁금해지는 제목임에는 분명하군요!

다크아이즈 2013-03-1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하고 무척 어울리는 리뷰네요.^^*
저얼대로 이런 섬세한 코드와는 먼 저 같은 사람은 그저 신기할 뿐인 걸요.
폴 스미스를 소개한 님 글의 궤적을 찬찬히 훑는 중입니다. 님 글 읽으니 디자인은 과학이자 예술이군요. 머리 회전력도 좋고 창의력도 있어야 하네요.
새로운 한 주 잘 지내시어요. 에뷔테른님...~~~

Jeanne_Hebuterne 2013-03-20 23:25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폴 스미스의 정신없는 사무실과 제가 좀 잘 어울리기는 합니다 ^^*
화보집처럼 한번 쓰윽 훑고 덮어두었는데 다시 한번 보니 폴 스미스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아이디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적용하는지가 보였어요. 어쩌면 이건 그의 디자인을 좋아해서 억지로 끼워맞춘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하나하나 뜯어보면 폴 스미스는 분명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옷이나 잡화를(이렇게 말하니 참..하지만 맞지요! 구두, 지갑, 가방, 잡화. 1층 코너)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보였어요.

제가 뒤늦게 댓글의 댓글을 다는 지금은 이제 거의 주말을 향하고 있어요. 한 주 무사히 즐겁게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팜므 느와르 님.
 
드링킹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있었다. 그 사랑은 그녀가 좋아하던 모든 것을 망쳐버렸기에 결국 격정적이고 파괴적인 관계, 스무 해 동안 얽힌 그 관계를 그녀는 끝낸다. 1959년. 미국 보스턴 출생. 화가 어머니와 정신분석가 아버지. 1981년에 브라운 대학 우등 졸업. 보스턴 피닉스, 뉴우먼, 마드무아젤 등의 매체에 객원 편집자, 주간 칼럼니스트로 활동. 그리고 2003년 폐암으로 사망한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은 강렬한 사랑의 역사이다. 




 

원래 그런 법이다. 진성 알코올 중독자들은 시도하고 또 실패한다.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려고 진심으로 노력하고,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외면하고, 석 잔, 아니 넉 잔, 다섯 잔째 술을 마시기 위한 변명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오늘만이야. 오늘은 너무 힘들었어. 위로가 필요해. 내일부터는 잘할 거야.......'

 어머니와 해변을 산책한 지 몇 주일 후, 책을 읽다가 알코올 중독 여부를 알아보는 자가 테스트를 접했다. 그 테스트는 한계 설정과 관련된 것이었다. 여섯 달 동안 하루에 꼭 석 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는 없다. 누군가 죽어도 석 잔 이상은 안 된다. 직장에서 해고되어도 석 잔뿐이다. 결혼식, 장례식, 축하 모임, 갑작스런 불행, 어떤 것도 상관없다. 나는 그 테스트를 몇 번이나 해봤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족히 수십 번은 될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규칙을 어기고 네 번째 잔을 마시거나, 커다란 잔에 술을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석 잔이라도 실제로는 여섯 잔을 마신 일을 일일이 헤아리지 못한다. 

 그럴 수 없었다. 알코올은 내게 너무도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시기에 이르렀을 때, 인생을 통틀어 내게 그보다 중요한 관계는 없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러브스토리다. 

 열정에 대한 이야기고, 감각적 쾌락과 깊은 흡인력, 욕망과 두려움, 타오르는 갈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 강렬함으로 온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는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도저히 이별을 상상할 수 없는 상대와 작별을 나누는 이야기다. 

... 우리의 첫 만남은 별로 극적이지 않았다. 첫눈에 반한 사이는 아니었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두고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천천히 굳어진 사이다. 막연히 품고 있던 좋은 감정이 어느 순간 열렬한 집착으로 돌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마음 한구석을 조그맣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우리의 관계는 일변해 있고, 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길은 없어져 버린다. 그것은 내게 너무 간절해지고, 내 인생의 확고한 중심이 되어 버린다. -17 페이지 


 


 관계의 문제, 그 사이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문제에 캐롤라인 냅은 어떤 한 쪽으로 치우친 권위자였다. 오독하고 오인하고 오판했다. 자신의 역량을 몰랐다. 오히려 그녀에게 있어 나쁜 남자였던 줄리안이야말로 '그녀에게는 다앙한 가능성이 있지만 대체 언제 그 가능성이 빛을 발할지 모르겠어요.'라고 상담사에게 말한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잘해주는 존재야말로 나를 망치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볼 때 줄리안과 술은 거의 용호상박의 존재이다. 



 일할 때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철칙. 일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철칙. 그 철칙 덕분에(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알코올 중독을 알아채지 못한다. 리츠 칼튼에서 한 잔, 회사 건너편 중국 식당에서 조니 워커 블랙 온 더 록스 더블샷 한 잔, 집에 와서 한 잔. 생성되는 도파민, 작동하는 뇌의 보상 시스템.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다. 자기 위로는 코냑 두 병으로 대체된다. 전시용은 늘 얌전히, 토스터 뒤의 숨겨둔 코냑은 이삼일 만에 완전히 사라지는 형태로. 게으른 합리화. 어설픈 투사.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마치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 같은 모습. 고통과 함께 오는 진실. 늘 미끄러지는 깨달음. 이 느낌은 곰팡이처럼 자존감을 깎아 먹으며 곪아갔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발끝을 내려다보면,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에는 뒤틀린 가족관계, 제어할 수 없는 자기 파괴 본능, 자신이 부족하다는 낮은 자존감, 만족스럽지 않은 대인관계가 드러난다. 한 사람의 과거는 곧 그 사람의 미래. 그 미래가 그녀에게 왜 그렇게 다가와야 했나. 스무 살이 넘어서야 자신이 몸담아왔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는 이의 절망. 모든 가정이 걸머진 속죄 같은 숙제. 매일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라는 요구가 어느 순간 오늘은 어땠냐는 질문으로 바뀐다. '별일 없었어요'라고 말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그렇다면 새로운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는 말이냐?'라고 거대하고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무엇으로 대답을 바꾸었다. 치고 들어갈 지점을 찾는 자의 날카로움. 그 속에 깃든 것은 가볍게 즐기는 마티니 한 잔.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것 없이 그녀는 아버지에게 대적할 수 없었다. 배경 없는 블루 스크린 앞에서 절벽에서 낙하하는 연기를 펼쳐 보여야 하는 여배우처럼 느끼던 그녀에게 아버지와 함께하는 술 한 잔. 후에 아버지가 벌였던 일들을 떠올리며 마시던 술 한 잔은 망각의 음료이자 지혜의 음료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겨울이 오면 나뭇가지의 잎이 떨어지듯 아침이 되면 사라졌고 그녀는 겨울나무처럼 헐벗었다. 마음을 채울 무언가를 향해 술잔을 기울였다.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위로를 구하니까. 그것은 마음속 아득히 깊은 곳의 일이라서 표면에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허기, 결핍감. 안도감과 위로와 평안을 줄 외부의 무언가를 향한 갈망. 



 알코올 중독자들의 자기 극복 모임인 AA는 실제 대단한 의지가 있어야 성공을 맛볼 수 있는 단체이다. 알코홀릭 어나니머스. 이 단체는 전미 전역에 퍼져 있으며 주로 한 주에 한두 번 열리는 것이 원칙이다. 주로 교회의 예배당이나 지역 공동체의 회관 등을 두세 시간 가량 빌려 정기적 모임을 하고 알코올 중독자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모임을 공개한다. 주로 알코올 중독 경험이 있었으나 거의 극복해 나가는 한두 사람이 이삼십 분 가량 발표를 하고(형식 자유), 그 뒤 모임에 모인 사람 전원이 이름과 중독 사항을 돌아가며 말한다. 그 뒤는 개별 자유 토론이 이어지는데, 모임의 모든 것이 자유이며 출결 상항을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만큼 구속력이 낮기도 하다. 전미 알코올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알코올 소비자 10퍼센트 내외가 소비하는 미국의 재활 시스템은 눈물겹다. 문제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자신들의 논리로 해결방법을 찾는 이 나라에서 알코올 중독은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것이 분명하다. 모두가 머리에 꽃을 꽂던 마리화나와 술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파티장에서도 페리에를 들고 다니는 것이 더 패셔너블해 보이는 시대가 되며 술꾼들은 길을 잃었다. 물론 캐롤라인 냅도.  AA 보다 효과가 더 큰 것은 개인 스폰서 시스템인데 이는 멘토링 시스템의 일환으로, 1:1 관계가 성립된다. 수시로 상태를 체크, 보고하고 정기적으로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 지속적인 관찰을 시행하는데 캐롤라인 냅은 재활 기관과  AA만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다. 어떻게든 술에서 벗어나 공허의 우물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의지. 




 마릴린 먼로, 주디 갈란드, 라이자 미넬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명성의 압박, 창조의 열망. 영혼의 치유. 그와 달리 캐롤라인 냅에게 술은 대인관계의 창이자 자신의 위안이었다. 황홀경의 영역, 심리적 비상. 환상이 기거하는 은밀한 장소. 단순한 무엇으로 환원되는 세계. 유대감을 전해주고 사회생활의 불안과 고립에 처한 이에게 놓아주는 다리. 그녀는 그 다리를 건넌 것뿐이었다. 그러나 효율성이 전부인 시대, 도덕적이어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지배하는 사회, 부모의 기대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시간에 캐롤라인 냅이 건넌 다리는 쉽게 돌아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재활 모임에서 떠도는 농담처럼 오이는 피클이 될 수 있으나 피클은 오이가 될 수 없는 법. 

 그녀는 알코올 중독의 갈래 가운데 하나인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임을 고백한다. 늘 술에 취해있지도 않다. 빛나는 성과를 낸다. 수많은 이들과 바쁘게 연락한다. 남자를 사귀기도 한다. 그녀가 열네 시간 내리 일할 수도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쓰고 집에 가면 냉장고에 넣어둔 백포도주를 마셔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수많은 질문, 그에 따르는 간결한 답. 상황에 따른 책임. 그녀는 책임 회피 여부를 알코올 중독자를 가려내는 간단한 척도라고 말한다. 관계가 꼬였을 때 개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든지 자신의 감정을 타인의 언행이나 사물 탓으로 합리화하는 것. 이 감정의 실루엣은 술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모든 기만자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뜻은 아니다. 단, 알코올 중독자 중에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합리화를 하는 이들이 있을 수가 있다. 관계가 단순하게 느껴지고 연막이 사라지는 듯한 감정의 이탈. 이것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인 그녀는 술을 마시는 일이라고 불렀고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난 같은 개인인 그녀는 환각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술이 이루어내는 일. 그러나 보통의 우리는 술은 죄가 없으며 그것을 마시는 사람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것은 의지와 도덕의 문제. 그렇다면 중독은 의지의 영역이건만, 실은 알코올 중독은 강력한 물질적 메커니즘 작용의 결과이다. 신경의 보상 회로의 기억 능력을 통해 신경학자들은 알코올 중독에서 상담 위주의 치료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하나의 메시지가 두뇌에 저장되면, 그 메시지는 영구히 아로새겨진다. 약한 것이다. 인간의 의지와 결단과 방어력은. 그 모든 물질적 메커니즘 앞에서 홀로 설 방법을 탐구하기까지 캐롤라인 냅은 이십여 년의 여정을 거쳐야 했다. 술의 강을 노 저어 온갖 희환과 고통, 기만과 환영 끝에 얻은 결론. 스스로 좌절에 대한 내성 없이 충동으로 움직이던 그녀가 마침내 너무 많은 것을 더는 잃지 않겠다고 결심한 다음 그 결심이 굳건히 지켜지는 과정을 써내려간 이야기. 달리 말하자면, 이것은 명명백백히 하나의 사랑 이야기다. 아프고 괴롭고 파행적이어서 누구라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랑 이야기.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는 대다수가 이런 사랑에 심취해 있거나 심취한 적이 있지 않은가? 정도가 다를 뿐. 스스로 눈치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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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2-1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구절이 몇 구절 있어서 카피하려다 말다 그랬어요, 댓글 잘 안 달았는데 오늘은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서요.^^;;;

Jeanne_Hebuterne 2013-02-13 10:03   좋아요 1 | URL
나비님! 나비님을 꿰뚫어 보는 듯한 구절은 어떤 구절이었을까요? 이 책은 저자의 음주에 관한 글이지만 그 배후의 요인을 개인적으로 탐색하는 글이기도 하여 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글이었어요. 읽다가 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 구절이 꽤 많았답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3-02-13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3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2-14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 안녕. 언제나 실망할 수 없는 님의 리뷰.
나비님 대신하여 저를 꿰뚫는 구절 고백할게요.
<제어할 수 없는 자기 파괴 본능, 자신이 부족하다는 낮은 자존감, 만족스럽지 않은 대인관계,한 사람의 과거는 곧 그 사람의 미래> - 이런 구절 보면서 뜨끔하지만 그래서 님 글이 더욱 고급스럽게 다가오지요. 아, 이런 리뷰 올리고도 지쳐 쓰러지지 않는지요?
전 이렇게 쓰지도 못하지만 가능하대도 한 이틀은 앓아 누워야 하는 체질이어요ㅠ
굿나잇하시어요...^^*

Jeanne_Hebuterne 2013-02-14 11:28   좋아요 1 | URL
팜므느와르님! 원문이 워낙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여(이러기가 제겐 무척 어려워요) 읽는 내도록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던 책이었습니다. 특정 문제를 다룰 경우 그 문제를 겪어보지 않은 독자는 작가의 생각을 따라잡기가 힘들 수도 있는데, 캐롤라인 냅의 경우 솔직하고 친근하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어떤 챕터, 어떤 과정도 덜하거나 더하지 않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좋은 리뷰는 탐정 소설은 탐정처럼, 자기고백 수기는 인터뷰어처럼, 인문학 서적은 구도자처럼 풀어나가 원문과 높낮이의 차이가 나지 않는 리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다른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 내가 감탄하고 감동했던 것을 타인에게도 소개할 수 있을테니까요. 전 아직 많이 멀어서 많이 갈팡질팡하는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갈팡질팡하다 보면 어느새 딴짓을 하며 옆길로 새곤 합니다. 팜므 느와르님은 온 힘을 쏟아부으셔서 그런 것일 거에요. 그래서인지 친근하고 겸손하게 조근조근 속삭이시는 것이 느껴져서 살짝 부러워지곤 합니다.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과 커피도 함께. 혹은 핫초코를 마시기에도 좋은 날이에요. 핑계가되니까요!

덧-저 책은 읽는 내도록 뜨끔한 모든 구석구석을 락스로 박박 살균세척을 하는 자기고백과 성찰의 글이었습니다.
 
BBC 셜록 : 시즌 2 (2disc) - 본편 + 부가영상
폴 맥기건 감독, 마틴 프리먼 외 출연 / KBS 미디어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밤을 샌 날이 아니라면 으레 느지막이 일어나는 셜록 홈즈가 식탁에 앉아 조반을 들고 있었다. 사실 그가 밤을 새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나는 벽난로 앞의 깔개 위에 서서 전날 밤 우리를 찾아왔던 손님이 남겨두고 간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은 손잡이가 뭉툭하게 불거진 놈으로 묵직한 고급 나무로 만들었으며 '페낭 로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느 지팡이였다. 손잡이 바로 밑에는 폭이 3 센티미터는 좋이 될 듯한 넓은 은관이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1884'라는 숫자와 함께 '영국 외과 의사회 회원인 제임스 모티머에게, C.C.H의 친구들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구식 개업의가 지니고 다닐 듯한 품격과 견고함을 갖춘 바로 그런 지팡이였다.
 "여보게 왓슨, 그걸 보고 무엇을 알아냈나?"
-셜록 홈즈, 코난 도일.(황금가지판 셜록 홈즈 전집 3)

 

 

 
 네, 저는 방금 어떤 텍스트를 발췌 인용했습니다만 실은 저 텍스트는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어떤 사건의 전조, 인물의 묘사보다는 무대의 공기와 분위기에 집중한, 말 그대로 여는 글일 뿐입니다. 저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몇 가지 되기는 합니다만 저 인용문이 마음에 들었거나 당신의 마음 어느 한구석을 자극했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신이 바로 홈시언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주제에 집중하고 골몰하며 팬이 되는 단계를 거쳐 마침내는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트레키와 셜로키언, 홈시언들입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특정 중독자들이 있습니다만 이들에게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스타트렉에 열광하는 이들을 부르는 트레키는 한없는 경멸의 의미가, 셜로키언과 홈시언은 코난 도일의 작품 셜록 홈즈에 열광하는, 스스로 울타리를 곧추세워 등골까지 221B의 일원이 된 이들에 관한 존중의 의미가 있다는 것. 빅토리아 시대를 시작으로 1892년 '페그람의 수수께끼'부터 2010년 나온 BBC 방영작 셜록까지, 홈즈는 꽤 다양하게 변주되고 반복됐습니다. 물론 루시 리우가 나온 미국판이 더 최근입니다만, 작품의 완성도를 볼 때 이 작품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2000년대 셜록 홈즈 변주곡의 시작은 2009년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였습니다. 근육질의 셜록이 예쁘장한 왓슨을 데리고 온갖 액션을 선보였더랬지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양한 셜록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나왔다 하면 인기가 있기 때문에?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마약 중독에 소시오 패스, 두뇌 회전이 빠르며 연애에는 관심 없는 사설탐정이 빅토리아 시대의 정보망을 이용하여 평범한 의사 왓슨과 함께 모험하는 것이 그 줄거리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사건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모험에 뛰어드는 인물이에요. 시각, 촉각, 후각과 화학, 생물학, 지질학, 역사(와 기타 등등)를 바탕으로 한 본인의 직관을 이용하여 평범하지 않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사람입니다. 군더더기는 생략하고 필요한 것만 취하며 타인의 고통에도 어느 정도 무감각합니다. 이 캐릭터 하나만 봐도 정신의학계는 약 오 분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신기한 것은 이 다양한 결함과 장점이 하나의 세계를 이룩한다는 데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가상의 공간 221B는 현실의 공간이 되고 엘러리 퀸부터 스티븐 모펫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자신의 셜록을 만들어냈지요. 한마디로 셜록 홈즈는 워낙 그 개성이 뚜렷하고 토대가 굳건한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변주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셜록을 재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국적인 사건에 집중한다면 인디아나 존스를, 추억에 집중한다면 셜록 홈즈 앤솔로지(앨러리 퀸)를, 액션에 집중한다면 셜록(가이 리치)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나옵니다. BBC의 셜록이 여기에 왜 필요한 것인가? 칠십여 명의 셜록 중 하나를 보태었는데, 죽지 않고 산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지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셜록은 BBC에서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입니다. 회당 90여 분이며 한 시즌당 세 편, 2013년 초 현재까지는 시즌 2가 나왔으며 올해 말 크리스마스 특별편이 방영되고 시즌 3이 아직 남았어요. 감독과 각본을 맡은 모팻과 게티스는 이미 영국 텔레비전 드라마 '닥터 후'에서 함께 일했고 마침 닥터 후의 촬영으로 함께 탄 카디프행 기차에서 둘 다가 홈시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함께 작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팬심으로 만든 팬픽인 셈입니다. 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다른 일면을 살펴볼까요. 방영 시간대는 닥터 후가 저녁 7시였고 셜록의 경우 저녁 8시였습니다. 9시 이전 시청 시간이 영국의 가족 드라마 방영 시간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셜록은 처음부터 유혈낭자한 섹스 난투극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군다나 주연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틴 프리먼입니다. 저는 캐스팅과 각본 구상이 BBC 드라마 셜록의 성공을 좌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완벽한 변주이자 현대화였으니까요.
 
 
 감독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캐릭터와 최대한 닮은 인물을 뽑는 것과 캐릭터와 최대한 비슷하게 행동하는 인물을 뽑는 것. 예를 들자면 전자는 한국 영화 '왕의 남자'이고 후자는 BBC의 텔레비전 시리즈 '셜록'입니다. 하나도 닮지 않은 외양, 홈즈의 재현이라 일컬어도 될 법한 행동양식입니다. 저는 여기서 컴버배치의 외모에 대해 평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스틸 컷만 보아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대신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구글 지도, 아이폰 앱, 클라우드 서비스 활용의 비빌 번호 추적, 단체 문자, 맥북 페이스 타임, 아우디 새 모델, 747 좌석 번호, 언록 시스템, 핸드폰 스캐닝. 이것이 바로 셜록이 이용하는 기기입니다(아우디는 마이크로프트). 그는 아편 대신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경찰 기자회견장의 기자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냅니다. 가끔 왓슨을 대신 보내 페이스 타임으로 현장을 둘러봅니다. 다른 면을 한 번 볼까요. 모리어티가 교도소 문을 개방하고 은행 금고를 여는 동시에 왕관 유출(은 아닙니다만 정확히는)을 시도할 때 흐르는 음악은 로시니, 홈즈가 법정 출두를 할 때 흐르는 음악은 니나 사이먼입니다. 이것은 007의 최첨단 무기가 라디오 수신기인 반면 홈즈의 활용 기기는 스마트폰으로 역주행함을 엿볼 수 있는 단면입니다. 윌리엄 터너가 그렸던 국회의사당과 함께 있는 빅 아이를 보듯 스티븐 모펫과 마크 게티즈는 빅토리아 시대 픽션의 현대화를 해낸 셈입니다.

 

 

 이는 곧 현재란 어떤 모습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이지요. 과거에서 흘러나왔으되 변하고 있는 것. 우리는 지금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을 보며 가장 탄탄하게 현대화된 셜록을 보고 있습니다. 정점을 찍되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것. 이것은 제작자로서의 욕심과 홈시언으로서의 까다로움이 만나 이루어낸 새로운 시대의 홈즈입니다.
 
 
 
 
#1.DVD에는 40분 가량의 부가 영상이 있습니다. 좀 더 길었어도 좋았을 걸 그랬어요.
 
#2.영화에 비해서는 결정이 빠른 드라마 시리즈를 선택한 편이 나았다고 봅니다. 이전에야 드라마는 비디오로 촬영하고 영화에서는 35mm로 별도 작업했다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쪽이 의견 반영도 빠르고 자본도 덜 들어가니까요.
 
Sherlock (2010– )
 
Creators:Mark Gatiss, Steven Moffat
 
Series cast summary:
  Benedict Cumberbatch  ...   Sherlock Holmes (7 episodes, 2010-2012) 
  Martin Freeman  ...   Dr. John Watson (7 episodes, 2010-2012) 
  Una Stubbs  ...   Mrs. Hudson (7 episodes, 2010-2012) 
  Rupert Graves  ...   DI Lestrade (6 episodes, 2010-2012) 
  Louise Brealey  ...   Molly Hooper (6 episodes, 2010-2012) 
  Mark Gatiss  ...   Mycroft Holmes (5 episodes, 2010-2012) 
  Andrew Scott  ...   Jim Moriarty (4 episodes, 2010-2012) 
  Vinette Robinson  ...   Sgt Sally Donovan (3 episodes, 2010-2012) 
  Tanya Moodie  ...   Ella (3 episodes, 2010-2012) 
  Jonathan Aris  ...   Anderson (3 episodes, 2010-2012) 
 
Country:UK
Language:English
Filming Locations:North Gower Street, London, England, UK
 
Production Companies
•Hartswood Films
•BBC Wales (for)
•Masterpiece Theatre (as Masterpiece) (in co-production with)
 
Runtime:90 min
Sound Mix:Dolby Digital
Color:Color
Aspect Ratio:1.78 : 1
 
http://www.johnwatsonblog.co.uk/
(존 왓슨 블로그)
 
http://twitter.com/WatsonJW
(존 왓슨 트윗-팬이 운영한답니다)
 
http://twitter.com/SherlockSH
(셜록 홈즈 트윗-팬이 운영한답니다)

 

리뷰는 셜록 시즌 2 링크이며 유튜브 영상은 시즌 1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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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2-0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에서 읽으면서 홈즈에 대한 각인이 머리 속에 너무나 강하게 찍혀버렸는지,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영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저 정도로는 안돼...' 이러면서요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경우엔 만족스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더 심했어요.
앞으로 또 어떤 버젼의 홈즈가 나올까요. 기대가 되기도 하고, 별로 기대가 안되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러고 보면 영국 사람들은 홈즈를 비롯해서 추리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영화뿐 아니라 먼저 TV 드라마부터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요. 말씀하신 것처럼 방영 시간도 꼭 매니아 층만 볼만한 시간대도 아니고 말이지요. mysterious한 성향을 반영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열심히 쓰신 페이퍼를 읽고 나면 저는 한동안 글 올리기가 망설여집니다 ㅠㅠ)

Jeanne_Hebuterne 2013-02-06 08:03   좋아요 0 | URL
온갖 종류의 홈즈를 다 보았는데 저의 경우 가장 최악은 루시 리우가 왓슨 역을 맡은 미국 버전이었어요. 슬쩍 보아도 (물론 수많은 셜로키언들과 홈시언들은 왓슨이 여자였을 수도 있다지만) 적응이 안되었어요. 물론 그 시리즈를 보기 전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이 최악이었습니다. 홈즈의 액션을 부각시키려 한 점은 알겠지만(원작에서 취미로 권투를 했지요) 그는 액션 영웅이 아니라 추리 탐정이니까요! 뇌가 근육보다 섹시한 남자에게 뭐하는 짓인가 탄식만 절로 했더랬습니다. 전부 다 만족스럽지가 못했어요.

영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애니팡과 차차차에 미쳐들듯 자국의 문화유산 시리즈에 탐닉하는 경향이 강한 듯 합니다. 물론 한국인이 무엇에 스미는 그 정도보다 꽤 은근히 지속된다는 점이 다릅니다만, 그들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 1위로 오만과 편견을 꼽았다는 것과 셜록 홈즈의 수많은 개정판을 만들어내는 것만 보아도 그래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영국의 성공한 시리즈를 건들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일하는 시간 일하기 싫다는 열정을 셜록 덕후질로 보내다 보니 이렇게 주절주절 리뷰가 양산되었습니다. 너무 놀고 싶어서요 ㅜㅜ)

다크아이즈 2013-02-0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 전 셜록 홈즈 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글에 뭔가 코멘트를 남기기는 힘들어요. 다만 님의 글쓰기 방식에 언제나 감탄하기 때문에 추천만 날리고 갑니다. 이 많은 추천 수도 저 같은 맘으로 날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짐작이...
그나저나 일 할 시간에 눈치껏 이런 고급한 리뷰를 올릴 수 있는 님의 내공에게도 찬사를^^*

Jeanne_Hebuterne 2013-02-06 13:43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이렇게 칭찬해주시니 너무 좋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팜므느와르님의 칭찬은 제 부족한 부분을 좀 더 돌아보게 하는 힘까지 지녔어요.
사실 일 말고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고(=놀고 싶었고), 그와중에 최근 DVD로 홀로 시청한 셜록이 아른거려서 저야말로 팬심으로 쓴 리뷰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도 업무시간이군요!)
내일은 더 추워진대요. 옷 두껍게 입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