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끝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쾌락은 끝이 없는 듯 여겨졌다. 그런데 한두 번은 이러한 밤에 기쁨을 맛보기도 했는데, 고통이 가라앉은 데서 생겨난 기쁨이었으므로, 만일 갑자기 멈춘 불안이 반동 작용으로 다시 격렬하게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평온한 기쁨이라고 부를 만했다.

스완은 이 내적인 삶의 예기치 않은 풍요로움이 정확히 무엇에서 연유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욕구 역시 현실 세계 밖에서 전개되던 것으로, 바로 음악을 듣고 싶고 음악에 정통하고 싶다는 욕구였다.

그는 그녀라는 이 삼인칭 대명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사랑이나 죽음과도 흡사하지만 막연한 닮음이라기보다는, 그 실재가 우리로부터 빠져나갈까 두려워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하는,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이 질문하게 하는 인격의 신비로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스완의 사랑이라는 이 병은 너무도 확산되어 그의 모든 습관이나 모든 행동, 그의 생각이며 건강이며 수면이며 생명이며 심지어는 그의 죽음 뒤에 그가 소망하는 것에까지도 밀접하게 섞여 그와 하나를 이루었기 때문에, 스완 자신을 거의 전부 파괴하지 않고는 그로부터 제거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단지 자신을 위해서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만 몸을 떠는 법이다. 우리 행복이 이미 사랑하는 사람 손에 달려 있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사람 곁에서 얼마나 침착하고 편안하며 또 대담하게 행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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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02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제 잃어버린 시간도 읽으시는군요. 겨울호랑이님 독서력에 정말 감탄할 따름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2-06-03 06:44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잃어버린 시간 11>이 최근에 나와 읽으려 보니 앞부분이 캄캄하네요 ㅜㅜ 그래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바람돌이님 오늘도 활기찬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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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4일, 영국군과 12만 명의 프랑스군은 독일군의 공격에 밀려 개인 무기와 모든 차량 등 장비를 뒤에 남겨둔 채 됭케르크에서 철군했다. '다이너모 Dynamo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됭케르크 해안에서의 영국군 철수는 9일 동안 계속되어, 33만 8,000명을 무사히 철수시켰다. 그 철수 작전에서 온갖 종류의 선박 887척을 모아 들인 영국 해군과, 나흘 동안 29대의 비행기를 잃으면서 적의 비행기 179대를 격추시킨 영국공군의 업적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병력을 무사히 구출해냄으로써 안도감을 느낀 영국은 기습 반격을 가했지만, 영국군은 이미 철저하게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많은 장비를 프랑스에 버려두고 탈출했기 때문에, 1940년 여름에는 잉글랜드 군 1개사단만이 제대로 무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_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 p847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3개월만에 치르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달도 안되는 시점에 치뤄지는 선거라 불리한 지형에 포진한 야당에게는 쉽지 않은 선거였다. 아직 개표가 되지 않은 시점에 실제 결과도 여당 국민의 힘 압승이 예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거가 불안정한 신임 대통령에게 경고가 되주길 바랐지만, 주권자의 뜻은 힘을 모아 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다만, 역대 2번째로 낮은 50.9% 투표율로 실망감을 표현했다는 점도 분명 의미있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결과는 아쉽게 나타났지만, 이기기 쉽지 않은 선거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지난 대선때보다는 편한 마음이 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철수하는 덩케르크 작전을 지켜보는 영국민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많은 이들이 살아 돌아왔지만, 전쟁의 패배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패배한 전쟁에서의 작은 승리'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위스턴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러한 감동적인 철수작전의 한계와 작은 승리의 의미가 명확하게 지적된다.  짙은 안개 속에서 거의 눈에 띄이지 않은 영국공군의 활약은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Edward Nolan, 1970 ~ )의 영화 <덩케르크 Dunkirk>에서 시각적으로 부활한다. 


 영화 <덩케르크>에서 하늘에서는 독일군과 전투 중인 영국공군들이 있다. <덩케르크>의 세 개의 공간 - 육지, 바다, 하늘 -  중 적을 공격하는 무대는 하늘밖에 없다. 이들은 작은 선박들이 군인을 싣고 돌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 중, 바다로 추락한 '콜린스'(잭 로던)는 피터에게 구조 당하고, '파리어'(톰 하디)는 연료가 떨어져 덩케르크 해변에서 포로가 된다. 영화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와 끝없이 펼쳐진 해안가에 따로 모인 몇몇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고립감을 강조한다. 공중에서의 영상은 특히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공군들을 클로즈업 하거나, 공군들의 시점과 유사한 각도로 전투기 안에서 보이는 바다, 해변, 공중의 풍경을 시원하고 속도감있게 담아내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인터스텔라>에 이어 <덩케르크>를 반드시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놀란의 작품으로 인식시켰다. _ 서곡숙, 이현경 외, <미국 영화감독 1> , p146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이뤄진 헌신이 가져온 작은 승리. 이 작은 승리는 바로 이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1940년 7월 ~ 10월)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戰況)이 바뀌는 변곡점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서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냈을까. 또는 만들어냈다면 발견할 수 있을까...


 선거 결과와는 무관하게 다른 한 편으로 가능성도 발견한다. 시/도지사 투표와 다른 교육감 선거결과를 보면서, 유권자들이 맹목적으로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약을 보고 자신의 삶을 바꿀 인물을 선택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개개인은 다를 수 있겠지만, 집단지성의 힘으로 발현되는 투표 결과를 보면서 유권자의 선택을 단순한 '욕망', '이기심', '이념' 등으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정치인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광주의 투표을 33.6%가 말해주듯, 이제는 '잡은 물고기'로 지지층을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정치인과 정당은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이것이 한동안 이어질 어두운 시대의 개인적인 희망이 될 듯 싶다...


 우리는 그 구출 작전(다이내모 작전)을 승리의 상징으로 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철군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획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구출 작전의 이면에는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승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공군이 거둔 승리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우리 용사들은 귀환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공군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우리 공군의 엄호 공격망을 벗어난 적군의 폭격기만 보았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 공군의 공적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바깥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항하여 이 영국 섬을 상공에서 방어해야 할 경우 우리가 누리는 유일한 혜택이란, 바로 실질적이고 확실한 안심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_ 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上>, p412


 설혹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오랜 전통의 주요 국가들이 게슈타포의 손아귀에 이미 들어갔거나 들어가게 되어 나치 지배의 끔찍한 상황에 빠져들더라도, 우리는 결코 힘없이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나아갑니다. _ 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上>,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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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6-02 08: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를 보며 덩케르크 작전을 떠올리시다니.. 호랑이님 남다르십니다👍 덩케르크 영화 보고 싶어지네요~

겨울호랑이 2022-06-02 08:33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출근하면서 결과를 확인했는데, 다행히 경기도에서는 역전했네요. 그나마 작은 위안을 받은 아침입니다. <덩케르크>는 육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이라는 시간-공간의 교차 상황에서 영상과 음향이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로 기억합니다. 다만, 지나친 ‘영국 만세‘ 요소는 있습니다만... 어두운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보여줄 영화라 생각됩니다. 독서괭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레삭매냐 2022-06-02 0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선 끝나고 치른 지선에서
야당이 승리한 적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선거는 어렵겠구나 싶었습니다.

민심의 향방이란 정말 가늠할
수가 없네요.

앞으로 2년 동안 어떻게 진행
될 지 우려가 되네요.

겨울호랑이 2022-06-02 09:25   좋아요 4 | URL
아무래도 선거 역시 대중심리의 영역이라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잘못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찍었다는 평가보다는 부족하지만, 일단 기회를 줘보자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들이 가진 권력이 크기에 걱정이 됩니다만, 대통령과 새정부에 대한 걱정과 우려보다는 크게, 기대감보다는 작은 어디에선가 그의 업적이 만들어지길 바라봅니다... 사실 더 큰 걱정은 5년으로 끝나지 않을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건 더 나중의 걱정거리겠지요.... 레삭매냐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오데트의 육체는 별로 좋지 못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이 쪄 갔다. 그렇게도 풍부한 표현이며 애절한 매력이며 놀란 듯 꿈꾸는 듯하던 시선도 그녀의 첫 번째 젊음과 더불어 사라져 버린 듯했다. 그녀가 스완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은, 말하자면 이처럼 스완이 오데트를 가장 덜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그는 예전에 느꼈던 매력을 다시 찾아내려고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번데기 아래 살고 있는 것은 여전히 오데트였으며, 여전히 덧없고 포착할 수 없는 앙큼한 의지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스완이 그녀 마음을 붙잡기 위해 예전과 똑같은 열정을 기울이기에 충분했다.

스완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도 유독 자기에게만 그날 피에르퐁에 갈 권리가 없는 것은, 바로 자기가 오데트에게 있어 남들과는 다른 어떤 사람, 즉 그녀의 연인이기 때문이며, 이 보편적인 자유 통행 권리를 제한하는 것도 그 노예제도 중 한 형태, 그에게는 그렇게도 소중한 사랑의 형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행복해했다.

오데트가 사는 세계는, 그가 그녀를 그곳에 두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무섭고 초자연적인 세계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슬픔도 발산하지 않는 현실 세계가 아닐까! 그가 지금이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이 테이블이며, 지금이라도 맛볼 수 있는 이 음료수며, 그가 감사하는 마음만큼이나 호기심을 품고 찬미하며 바라보는 이 모든 물건들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 물건들은 그의 몽상을 흡수하면서 그를 몽상으로부터 해방해 주는 동시에, 물건 자체는 반대로 몽상으로 풍요로워져 만질 수 있게 실현해 보여 줌으로써 그를 흥미롭게 하고, 그의 시선 앞에서 입체감을 띠며 동시에 그의 마음을 진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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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도시들 1 - 도시의 탄생과 정보 기술 케임브리지 세계사 5
노먼 요피 외 지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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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도시화란 사람들이 모이고 사회적 계층이 나뉘는 과정을 말한다. 정치적 측면에서 도시는 다양한 사회적 분파의 다양한 관심사가 서로 충돌하고 협상하는 가운데 발달했다. 통치자(중간 계층의 정치 지도자 포함)와 백성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도시에서는 대규모 노동력 동원이 가능했기 때문에 새로운 산업이 발달했고, 기술 혁신과 규모의 경제가 이를 뒷받침했다. 사회적 측면에서 도시는 기존의 혈연 중심 관계를 약화시켰다. 전통적 인간관계는 더 높은 권위 아래 복속되었고, 새로운 최고 권력에 의해 노역과 세금 의무가 부과되었다. 도시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도시민의 정체성도 새삼 발달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지와 주변 환경은 도시 구조에 걸맞게 변해갔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544


  케임브리지 세계사 5 <고대의 도시들 1 : 도시의 탄생과 정보 기술 Cambridge World History Vol. III>는 신석기 혁명 이후 세계 각지에서 출현한 고대 도시문명을 다룬다. 농경 문화는 많은 산출량에 비례하는 노동 투입을 요구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는 내부에서 계급과 분업을 발생시키고, 외부와는 배후지와는 생산물을 주고 받으며 문명권을 바꾸어 나갔다. 이 같은 측면에서, 저자는 도시는 고대 문명의 결과물이자 출발점이라 규정한다.


 도시국가는 단지 도시 하나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자원과 인력을 공급하는 상당한 규모의 배후지를 거느렸으며, 배후지는 사회/정치적 조직에 의거해 도시에 결부되어 있었다. 배후지와 도시로 구성된 많은 도시국가가 있었고, 이들은 커다란 하나의 문화권에서 "대등정치제(peer-polity)"로 공존했다. 상호 전쟁을 통해 그중 한 도시국가가 전체 문화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차지한 헤게모니는 흔히 변화되었고, 이후 도시 국가의 자치 체제가 무너지고 더 큰 규모의 영토국가가 들어선 뒤에는 헤게모니 자체가 "붕괴"되었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63


 최초의 도시가 부상한 이후 도시 네트워크의 형성과 해체는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기원전 제2천년기 중엽에 이르러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정치 환경이 근본적 변화를 겪기 이전까지는 도시 네트워크 체제가 유지되었다. 도시 체제가 작동하면서 부와 정치 권력이 엘리트 계층의 손에 집중되었다. 경제 부문은 갈수록 차등이 심화되었고 효율성이 높아졌다. 사람들이 도시로 들어왔다가 다시 시골로 되돌아가기도 했고, 시골의 통제는 갈수록 강화되었다. 과거의 정체성은 변형되었고 새로운 도시 정체성이 발달했다.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도시가 만들어낸 풍경 또한 변화를 계속했다. 정치적 관행과 이데올로기가 발달했을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은 건축물도 새롭게 들어섰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468


 <고대의 도시들 1>의 전체 주제는 고대 도시의 시스템이다. 그리고, '건축', '문자'  그리고 '종교'의 조합이었다. 도시를 이루는 하드웨어인 '건축'과 소프트웨어인 '정보 전달 수단'과 컨텐츠인 '종교'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된 요소임이 본문에서 확인된다. 


 특히, 고대 사회에서 '종교'는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하루하루 변화하는 날씨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기후는 농경 문화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기후에 따라 적합한 거주 형태가 결정되었고, 날씨에 따라 행사가 결정되었다. 거주 형태에 따라 건축물이 들어섰고, 농사를 위해 행사가 진행되었다. 건축물이 정(靜)적이라면, 의례는 동(動)적이었다. 또한, 주기에 따라 달라지는 의례는 건축물의 배치에 영향을 주고 고대 도시는 만들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고대 도시에서 '종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며, 모든 것이었다.


 도시에서 권력 표현의 핵심은 기념비적 건축물과 그를 둘러싼 공간이었다. 기념비적 건축물 위주로 도시 설계가 이루어졌고, 의례 행사가 건축물에 숨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의례 행사는 영원한 동시에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었다(p224)... 초기 문명의 두드러진 혁신이었던 도시는 신앙 체계에서 비롯되었다. 도시는 곧 신앙 체계가 물리적으로 구현된 것이었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225


 고대 도시의 전형적 구조는 밀집된 주거 구역과 개방된 공간 혹은 건축물들이 몇 차례 번갈아가며 구성되는 식이었다. 이와 같은 구성 방식은 행사를 개최하는 데 필수적이었다(p208)... 행사에 사용되는 특별한 물품은 흔히 멀리서 가져왔다. 중요한 물품은 전문 수공업자가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행사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통치자나 엘리트 계층에게 후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사회의 지도층에 속했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209


 행사의 핵심은 이동이었다. 행사와 기념식을 위해 건물과 통로가 조성되었고, 그에 따라 이동 경로가 정해졌으며, 사람들이 이동 과정에서 특별한 의미를 전달받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다. 도시 공간을 이용한 행사와 그 의미는 주민의 의식에 각인되었다. 이외에 다른 지역을 오가는 것도 또 한 가지 이동의 유형이었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214


 도시의 외관에 건축물이 토대가 되었다면, 도시의 체제 유지를 위한 기반은 문자(文字 letter)였다. 이미 신석기 시대에 시작된 사회적 불평등은 이 시기에는 더욱 확대되었고, 사회적 계층화가 상당 정도로 진척된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계층 별로 자신의 역할이 고정되면서 일은 점차 전문화, 분업화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보편적인 문자가 사용되며, 고대 도시 특성의 한 축을 담당한다.


 고대 도시를 운영하려면 모든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체제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야만 이질적 집단들을 서로 연결하고 조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대개의 도시는 전문 행정 관료 체제를 동원했다. 도시에는 갈수록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점차 질서도 강화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워낙 가까이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소요되는 물량과 행정 관리를 인간의 기억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전문화된 기록 관리(record- keeping) 수요가 생겨나게 되었다. 문제는 도시를 구성하는 인력과 필요한 물자의 흐름을 추적하고 조정하는 일이었다. 도시의 등장과 함께 위계질서와 통제 체제는 더욱 확고하고 정교해졌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386


 도시화 과정은 어느 한 공간에 주민이 몰려드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관습의 근본 구조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참여의 장(field)으로 사람들을 이끌어내고, 말하자면 그 새로운 장에서 참여자들이 새롭게 규정되는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획일화다. 획일화는 도시화 과정의 핵심이다. 권력은 기호(signifier)와 의미(signified)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다양한 권력 기관(제도)을 통해 바로 그 공간을 파고든다. 권력의 목적은 유통되는 의미를 규정하는 것, 그리고 허용 가능한 담론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311


 케임브리지 세계사 5 <고대의 도시들 1>에서는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농경문화의 요구에 맞춰 기후가 적합한 지역에 도시가 형성되었음을 고대 이집트,  중국, 동남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잉카 문명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 문명 모두 신(神) 중심의 권력 구조와 함께 왕, 귀족, 엘리트 계층, 농민 등 서열화된 계급사회의 면을 보인다. 또한, 의례(儀禮)를 통해 이들은 권위를 입증하고 권위를 만들어갔으며, 권위를 사용해 건축물을 만들어 권위를 강화하고, 강화된 권위로 체제를 유지하고자 문자를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자를 통한 정보 독점이 그들의 체제를 굳히는데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고대인들의 삶 역시 오늘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신석기 혁명기 이후 인류는 적어도 주제면에서는 같은 고민을 수천 년 동안 반복해오고 있는 셈이다. 


 도시의 성장을 정치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친족 기반 집단의 지도자들이 연맹이나 의회를 형성하여 분쟁을 조정했고, 본인의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들을 이끌고 동맹이 체결된 곳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정치적 연맹체에서 단일한 지도자가 출현했고, 사람들이 모일수록 그들의 권위는 더욱 높아져갔다. 이를 근거로 농업의 집약화, 대규모 토목 공사, 군사 원정 등을 조직할 수 있었고, 전쟁 포로를 잡아 와서 도시에서 노예로 쓸 수 있었다. 사원은 새로운 정치 현실에 신성(神聖)한 면모를 더하는 기능을 잠당하기 위해 생겨났을 것이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481


 고대의 도시들 속에서 우리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이 구성한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의 틀을 떠올리게 된다. 농작물과 농기구 생산, 생산물 보관을 위한 회계시스템 등에서 우리는 1,2,3차 산업의 물질문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도시-주변부'와의 교환에서는 시장경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아직 자본주의의 싹은 이미 트고 있었는데, 이들의 발화는 다음 편 <고대의 도시들 2  : 권력과 제국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을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유통 관계가 중요했는데, 도시 안에서 사람들이 생산한 농산물 혹은 수공업품을 서로 교환하는 시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형성되기 전, 생산과 교환은 사회 및 정치적 관계와 긴밀히 얽혀 있었다. 그 관계에 따라 초기 시장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통제되었다. 따라서 논쟁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대부분의 초기 도시가 등장할 때 이미 정치적 협상 및 정치권력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 같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545


 도시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 개념이 출현했던 증거도 있다. 바로 "시민(citizen)" 개념이다. 기원전 제3천년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엘리트 계층과 노동자 계층을 막론하고 기관에서 보유한 배급 명단에는 출신 도시가 기록되어 있었다. 출신 민족 명칭보다는 출신 도시 명칭이 당시 사회에서 더 보편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_ 노먼 요피, <고대의 도시들 1> , p553


마야 도시의 구성 의도를 해석한 설득력 있는 견해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마야인은 멀리 다른 곳에 떨어져 있는 길들여지지 않고 위험해 보이는 성스러운 공간(동굴, 언덕 등)을 ‘포착‘ 내지 복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도시 중심에 가져다 놓고 엘리트 계층의 통제 아래 두고자 했다. 인간의 재주로 만들어낸 건축물을 자연적이면서도 영원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언덕은 언제가 그곳에 있었지만, 왕이나 엘리트 계층의 주도로 다시 만들어진 언덕은 오래된 것인 동시에 새로운 곳이었다. - P135

제1천년기에 이미 사회의 계층화는 중앙의 통치자로부터 지방이나 특정 지역 단위까지 보편화되어 있었다. 비문을 통해 지역 엘리트 계층 또한 의례로써 권위를 내세웠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힌두교의 통치 기술과 토착 애니미즘 신상을 혼합하여 왕국의 수도를 성지로 만들었고, 그곳이 의례 행정의 중심이 되었다. 성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의례용 건물 건축이었다. - P187

고대 중국에서 주요 도시의 종말은 대개 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왕조가 바뀌거나 제국이 탄생하면 도시는 새로운 사이클로 접어들었다. 이전의 도시에서 개발된 어떤 부분들은 새로운 혁신을 거쳐 유지되었다. 무엇보다 문자가 바로 그러한 사례였다. 상나라의 문자 체계와 필사자들은 정복 왕조 주나라에 의해 그대로 채택되었다. 주나라는 중국의 더 넓은 지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도시를 건설했으며, 그 과정에서 문자도 보급되었다. 문자는 정치, 종교, 행정, 군사, 문화 생활은 물론 도시 바깥에서도 사용되었다. - P300

다른 도시들이 파편적으로 자연의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였다면, 콘코와 티와나쿠의 정치권력은 인간과 곡물과 가축의 생존에 핵심이 되는 자연 과정의 일부를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의례 관습 덕분이었다. 그들의 의례 행위는 자연환경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핵심적 자연 현상을 영적 존재로 이해했다. 자연의 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사회적, 공간적, 우주적 네트워크의 중심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데 성공한 집단은 월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기원후 500년경부터 이들은 엘리트 계층으로 대두되었으며, 이후로는 티와나쿠의 기념비적 건축물 주변에서 살았다... 기념비적 건축물과 석상이 나타내는 것, 즉 압축 모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자연 현상을 움직이는 작동의 주체로서의 조상신이었다. - P458

도시에서 사원은 가장 중요한 시설물이었다. 사원은 다양한 문화적 행위가 거행되는 구심점으로, 대중이 참여하는 의례는 물론 농산물이나 수공업품의 생산도 사원에서 이루어졌다. 도시의 통치자는 사원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이와 같은 관계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p555)... 성벽은 다양한 관점에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성벽을 건설한 목적이 적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 도시민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지, 통치자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는지, 주변에서 도시가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는지 등이 관심 분야였다. - P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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