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자매 이야기 3
카즈토 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빈곤자매 이야기(1권∼ )
- 글ㆍ그림 : 이즈미 카즈토
- 옮긴이 : 서현아
- 펴낸곳 : 학산문화사(2006년부터∼ )
- 책값 : 한 권에 4000원씩


 [킨코] (속생각) 절약은 잘하고 있는데, 왜 마음이 편치 않을까?
 [쿄우] (꽃관을 만들어 씌워 주며) 아스, 잘 어울리네!
 [아스] 정말?
 [긴코] 꽃 같은 걸 갖고 놀 틈이 없어. 언니, 가요!
 [아스] 이 꽃은 먹을 수 있거든.
 [긴코] 뭐?
 [아스] 새콤하게 무치면 맛있어. 저녁 반찬이 생겼네!
 [킨코] 절약이 되잖아! 절약을 하면 힘들 텐데. 왜 저렇게 즐거워 보일까? 우리는… 〈3권 27∼29쪽〉


 부모님 집을 나와 홀로 살림을 꾸리기를 열세 해. 그동안 어느 하루도 돈에 쪼들리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돈 50원을 쓰더라도 끙끙 앓았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도, 속으로는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 갑니다. 지금 나한테 남아 있는 살림돈이 얼마인가를 헤아리며 물건을 하나하나 사야 할 때에는, 책을 살 때에는, 반찬거리를 마련할 때에는, ‘안 돼. 허리띠를 더 졸라야 해’ 하면서 도리질을 칩니다. 밥상에 반찬 두 가지를 차리고 싶으면 한 가지만 차립니다. 설거지를 할 때에는 물 한 방울 덜 쓰려고 하며, 빨래를 하면 한 번 더 입고 빨려고 합니다. 사고픈 옷이 왜 없겠습니까만, 되도록 행사장에서 거저로 나눠 주는 옷을 얻어서 입고, 남들이 안 입게 된 옷을 받아서 입습니다. 찻삯은 어쩔 수 없이 나간다지만, 이 찻삯을 줄이고자 자전거를 자주 몰게 되었고, 사진을 찍으며 사진 뽑는 돈을 줄이려고 필름스캐너를 장만합니다.

 마음놓고 돈을 써 본 일이 없지만, 마음놓고 돈을 쓰고프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마음놓고 하고픈 일은 돈쓰기가 아니라, 내 삶을 가꾸기라서 그렇습니다. 나한테 반가울 일을 하는 데에 마음을 쓰고 싶습니다. 나한테 반가울 사람을 만나는 데에 마음을 쓰고 싶습니다. 나한테 반가울 책을 사는 데에 돈을 쓰고, 이 책을 읽는 데에 마음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돈씀씀이는 줄고, 비싼 밥하고는 멀어지게 되네요. 술 한 잔을 마셔도 싼 술을 마시고, 싼 술을 마셔도 한 잔 덜 마십니다. 술을 한 잔 덜 마시니 술은 금세 깨고, 몸에도 한결 짐스러움이 적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묻습니다. “최종규 씨한테는 돈이 1억 생기면 어떻게 쓰겠어요?” “음, 글쎄요. 그 돈을 언제 다 쓰지요? 돈을 쓴다면, 더는 살림집을 옮기지 않고 살아도 되게, 조그마한 집 한 칸 사는 데에 쓰고 싶어요.” 하고 대꾸하고 싶은데, 요즈음 세상살이를 보아하니, 아무리 집임자가 되어도 재개발을 하면 고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더군요. 그래, 집을 사 보았자 똑같이 되겠데요.

 1억 원이 아니라 1천만 원을, 또는 1백만 원을 선뜻 안겨 준다고 해도, 그저 통장에 집어넣을 뿐, 달리 쓰고픈 데가 없습니다. 오로지 둘, 읽고픈 책을 살 때 돈 조금, 찍고픈 사진을 찍을 때 필름 조금. (4340.5.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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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1
기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1∼3)
- 글ㆍ그림 : 기선
- 펴낸곳 : 서울문화사(2006)
- 책값 : 한 권에 3800원씩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바탕으로 요즘 흐름에 맞게 새로 꾸민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입니다. 주요섭 님이 쓴 짧은소설을 모른다면, 이 책이름이 그저 그러려니 할 수 있을 텐데,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읽어 보지는 않았어도 글이름만은 한두 번 들어 보았겠지요.

 만화책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를 보면, 이야기 짜임새가 1권과 2권에서 바쁘게 잘 돌아갑니다. 주요섭 님 소설이 두 어른 사이에 애틋한 마음이 요리조리 왔다갔다 한다면, 기선 님 만화는 아직 철이 없다고 할 두 어른 사이에 애틋함이란 없이 콩닥콩닥 다투거나 복닦이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짜임새가 3권이 되면서 갑자기 느슨해지고 일찌감치 끝을 맺어 버렸다고 느낍니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 만화 터전 탓일 텐데, 이만한 이야기감이고 흐름이라면, 4권 5권 6권, 나아가 10권까지는 채울 만큼 줄거리를 탄탄히 짜고 살을 붙이면 한결 사랑을 받고 알콩달콩 부대끼는 우리 삶을 담아내며 웃음을 선사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잡지에 이어싣기 버거웠다면 몇 회를 쉬는 편이 나았을 텐데. 잘나가다가 뚝 끊겼달까요.


[옥희 엄마] 게다가 얼마나 띨띨하고 후줄근한지, 그런 지저분한 녀석을 알바로 썼다가 손님이라도 떨어지면 어쩌지…….
[옥희] 엄마 나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돼요!  .. 〈1권 62쪽〉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 사람, 먼저 ‘옥희 엄마’와 딸 ‘옥희’ 사이, 다음으로 ‘옥희 엄마’와 게임방 손님인 ‘판석’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와 사건이 중심입니다. 지난날 사랑방은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길손이 머무는 곳이면서 애틋함이 묻어나는 문화라 할 테고, 오늘날 게임방은 옆에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있든 자기가 놀고 싶은 대로 신나게 노는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답게 옥희 엄마와 옥희 사이에 오가는 말은 차례가 바뀌었다 싶도록 스물여섯 먹은 젊은 어머니가 퍽 철없어 보입니다.


[옥희] 옥희는 아저씨가 너무 좋아. 엄마도 아저씨 좋아?
[옥희 엄마] 음, 옥희야, 언젠가 네가 더 크면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잘 들어. 남자란 동물은 말이지, 여자보다 정신연령이 엄청나게 낮단다. 한 마디로 하등동물이지. 하물며 연하는 말할 것도 없어. 네가 보기엔 저 아저씨가 어엿한 어른으로 보일지 몰라도, 엄밀히 말해 남자도 여자도 인간도 아닌, 22년 묵은 개구리일 뿐이야.
[옥희] 그치만 22살이면, 아빠랑 엄마랑 결혼한 나이 아냐?  .. 〈1권 79∼80쪽〉


 철없는 어머니에 일찍 철든 딸. 여기에 마찬가지로 철이 안 든 스물두 살짜리 만화가. 철이 없기 때문에 더 ‘용감’하게 세상을 부딪힐 수 있겠지만, 철이 없기 때문에 얕은 이익에 따라 눈이 똥그래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얕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다가 쓴맛을 보며 세상을 배울 수 있고, 얕은 이익을 다부지게 내치면서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어려움과 보람을 익힐 수 있어요.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 ‘바른 길’이란 딱 하나만 있지 않으니까요.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놀이를 찾아서 살아갈 때가 가장 좋아요. 생각과 꿈과 집안 터전과 이웃이나 부모와 살아가는 곳이 모두 다른 우리들입니다. 키도 다르고 몸무게도 다르고 말씨와 얼굴과 몸매도 다른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다른 우리들이 다 똑같은 길을 갈 수 없겠지요. 이렇게 다른 우리들한테 다 똑같은 길을 가라고 하면 머리가 터지거나 홱 비뚤어질 수 있어요.


[옥희 엄마] 옥희는 시끄러운데도 잘만 자네. 게임방 집 딸은 역시 달라. 휴, 그나저나 거실이 아주 쓰레기장이네.
[판석] 귀찮은데 청소는 그냥 내일 하죠.
[옥희 엄마] 내 인생은 항상 이런 식이야. 정신차려 보면 항상 쓰레기 천지 속에 혼자 남아 있어. 대체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온통 쓰레기 천지야.
[판석] 누나?
[옥희 엄마] 제기랄! 다 지겨워! 거지 같은 게임방! 만날 이런 식이야! 사람들은 다 왔다가 가 버린다구! 내 상태가 조금만 안 좋아지면 다신 안 찾아와! 왜 내가 이렇게 거지같이 살고 있는 거야! 왜 내가 애 엄마야! 왜 내가 과부인 거야? ……
[판석] 누나는 하나도 잘못한 거 없어요. 그냥 조금 지친 것뿐이야. 누나가 아무리 그렇게 얘기해도 난 누나를 좋아해요. 내일 당장 게임방이 없어진다고 해도, 여기서 보낸 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  〈2권 156∼159쪽〉


 일본 만화 《도레미 하우스》를 보면, 하숙집에 깃들어 지내는 어린 학생과 새로 하숙집 임자가 된 젊은 홀어미 사이가 애틋하게도 되었다가, 서로 토라지기도 하며 조금씩 세상과 사람과 둘레 삶터를 깨달아 갑니다. 조금씩 무르익는 사람으로 발돋움하며, 차근차근 따사로운 사랑으로 부풀어간다고 할까요.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도 처음에는 철없이 살아가는 젊은 홀어미와 만화가가 나옵니다. 이들은 자기 삶을 ‘거지 같다’고 느끼지만, 참말로 거지 같은 일이 무엇인지, 자기가 왜 이렇게 자신을 깎아내려야 하는지, 자기가 바라는 꿈, 자기가 누리고 있는 그 젊음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게임방 임자인 옥희 엄마는 새로운 ‘손님’인 젊은 만화가를 집안에 받아들여 하숙(또는 사육)을 치고, 제멋대로 굴며 살던 만화가 판석은 잡지사 편집자한테 등떠밀려서 마감날짜를 꼬박꼬박 지키고 어디로 내빼지 못하게 되는 울타리인 게임방으로 살림(또는 갇힘)을 차리게 됩니다. 이리하여, 게임방은 그냥 게임방이 아니라, 막나가던 사람들 삶이, 앞이 시커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삶이, 그대로 이어가느냐, 이제부터 하나하나 달라지느냐 하는 갈림길로 거듭납니다.

 사랑방도, 게임방도, 또 빨래방이나 노래방도, 찻집이나 술집이나 밥집도, 하숙집이나 전세집 같은 우리네 살림집도 모두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에 나오듯이 ‘거지 같이 사는 꼬락서니’로 이어가는 곳이 될 수 있고, ‘내가 참으로 바라던 삶이 무엇인가 돌아보는 터전’으로 달라지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느끼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요. 내가 바라는 것이 돈인지 이름인지 힘인지, 아니면 꿈인지 믿음인지 사랑인지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길로 걸어가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이 만화책을 ‘거참, 재미있네’ 하고 덮을 수 있습니다. ‘음, 뭔가 아쉽네’ 하고 덮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둘레 사람들과 맺고 있는 끈’은 무엇이고 ‘내가 걷는 이 길’은 무엇인가 가만히 짚어 볼 수 있어요. 뭐, 책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받아들일 테니까요. (4340.3.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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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의 곡예사
R. O. 블레크먼 각색 및 그림, 박중서 옮김 / 샨티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성모의 곡예사
- 그림ㆍ각색 : R.O.브레크먼
- 옮긴이 : 박중서
- 펴낸곳 : 샨티(2006.12.25.)
- 책값 : 8900원


 우리 나라에 종교가 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글쎄, 있었을까요. 집마다 업을 모시고, 새벽에 맑은 물 한 그릇 떠 놓은 뒤 비손을 하고, 서낭당이나 마을을 지킨다는 나무에 비손을 하는 일은 있었으나, 따로 종교라고 할 만한 믿음은 없었지 싶어요. ‘주 찬양’을 하지 않아도 ‘하느님 사랑’을 알았고, ‘부처님 만세’를 읊지 않아도 ‘온갖 목숨붙이를 자기 몸처럼 여기며 함부로 마주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 캉탈베르는 서글펐다. 그는 곡예를 통해 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  〈25쪽〉


 지금도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콜럼버스’라는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찾은’ 사람이라거나 ‘탐험가’로 가르치는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도 곧잘 하고요.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과 계약을 맺고 돈과 영주라는 지위를 얻고자 쿠바며 북미에 있는 여러 섬 토박이를 끔찍하게 죽이고 마을을 불살랐으며, 그곳 사람을 죄 노예로 삼았습니다. 콜럼버스 뒤로도 수많은 ‘탐험가’들은 중남미 대륙에서 어마어마한 학살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중남미 토박이는 아프리카 토박이처럼 노예로 붙잡아 써먹기 어려움을 깨닫고는, 이른바 ‘인종청소’를 합니다. 토박이 문화와 문명을 모두 짓밟고 불사르고 깨부수고 무너뜨리면서. 불타오르는 마을과 외마디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탈자와 학살자는 한결같이 외칩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성경 말씀으로!”

 북미에서 이루어진 약탈과 학살도 중남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고, 중남미 때보다 훨씬 꼼꼼하게 땅빼앗기와 인종청소를 이루어냈습니다. 북미는 중남미와는 달리 통째로 살갗 흰 사람들 나라가 되어 버립니다.


.. 차라리 수사가 되었더라면, 따뜻한 집에 살면서, 친구들하고도 어울리고, 새들에게 모이도 주면서, 이 세상의 불행 따위는 모르고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그리고 성모님께 말씀드릴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서글픈 마음을. 그러면 성모님께서는 모두 다 이해해 주시겠지 ..  〈49∼51쪽〉


 서양 종교가 발을 디디거나 뿌리를 내리는 나라치고, 그 나라나 겨레한테 고유하게 있던 문화와 버릇과 삶과 터전이 고이 이어가는 곳을 보지 못합니다. 앞에서는 사랑을 말하고 입으로는 나눔을 읊지만, 정작 이루어지는 일은 빼앗음과 괴롭힘이었어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믿음으로 사랑과 나눔을 함께하려고 애쓴 마음 착한 이들은 틀림없이 있습니다만, 권력을 쥐고 사회를 움직이며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휘두르는 종교라는 방망이는 여린 이를 내리치거나 짓누르거나 울궈내는 연장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바퀴벌레도 사랑하고 까마귀도 아끼며 구렁이도 어여삐 여기리라 믿습니다. 닭공장에서 전기불빛에 눈이 벌건 채 알만 낳고 잠을 못 자는 어미닭도 사랑하고, 비닐집에서 사료와 농약을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딸기며 토마토며 푸성귀도 사랑하시겠지요. 개미는 개미라서 사랑하고, 비둘기는 비둘기라서 사랑하며, 고등어는 고등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독일사람은 독일사람이라서, 네덜란드사람은 네덜란드사람이라서, 헝가리사람은 헝가리사람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이리하여 키체 부족 사람은 키체사람이라서 사랑하고, 이러쿼이 부족 사람은 이러쿼이사람이라서 사랑하며, 류우큐우 부족 사람은 류우큐우사람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 수도원의 모든 형제들은 각자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크리스마스를 맞아 성모 마리아께 바칠 선물을 마련하기에 바빴다. 누구는 책을 쓰고, 누구는 조각을 하고, 누구는 요리를 하고, 누구는 시를 짓고, 누구는 작곡을 하고, 누구는 그림을 그렸지만, 캉탈베르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  〈82∼84쪽〉


 만화 《성모의 곡예사》에 나오는 ‘곡예사 캉탈베르’는 북중남미에 살던 토박이 같은 사람이었을까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자기가 즐길 수 있는 놀이, 자기가 가진 재주를 또렷하게 깨달으며 사는 사람. 남 앞에 우쭐거릴 줄 모르며, 자기가 기쁘고 즐겁게 맞이하는 일과 놀이를 기꺼이 이웃과 나누려는 사람. 자기가 가진 것은 자기 혼자만 누릴 것이 아니라 이웃과 스스럼없이 함께 누릴 것으로 여기는 사람. 꾸밀 줄 모르고 감출 줄 모르며 덧바를 줄 모르는 사람.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사람.

 곡예사 캉탈베르는 자기한테 하나 있는 재주 ‘곡예’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듬으며 살고자 했습니다. 이 뜻이 성모 마리아님한테, 다른 수사들한테 건네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북중남미 토박이를 거의 모두 죽이고 없앤 살갗 하얀 사람들은 오늘날에 와서 ‘북중남미 토박이 슬기를 배우고 나누자’며 이들이 입으로 남긴 이야기를 책으로도 묶고 이들 삶을 좇아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강의하고 교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중남미 토박이는 죽었습니다. 곡예사 캉탈베르는? (4340.3.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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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투게더 6 - 완결
가와쿠보 카오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해피투게더 (1∼6)
- 글ㆍ그림 : 가와쿠보 카오리
- 옮긴이 : 설은미
- 펴낸곳 : 학산문화사(2005)
- 책값 : 한 권에 3500원씩


 살아가며 나이를 생각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 하나 고를 때에도, 다른 이 일손을 거들며 땀을 흘릴 때에도, 밥을 할 때에도, 설거지를 하고 걸레를 빨아 방을 훔칠 때에도.

 나이 스물에도, 스물다섯에도, 서른에도 높다란 언덕길을 낑낑대면서 신나게 자전거로 넘었습니다. 어느덧 서른셋이 된 이 나이에도, 자전거로 언덕길 넘기는 늘 즐깁니다. 앞으로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지금처럼 살겠지요. 힘은 떨어질지 몰라도. 이마에서 땀이 방울져 뚝뚝 떨어져도.


.. “얼마 남지 않았어. 시합에서 이기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절실히 느끼게 돼. 지금까지 계속 지면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어. 그때마다 내 형편없는 실력과 연습부족에 좌절하면서 그 이상으로 미련이 남는 게 있었어. 만약에 이겼으면, 모두와 또 같이 시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까지 못한 것을 채우자. 반드시, 반드시 이기자.” ..  〈6권 136∼138쪽〉


 배구부 동아리 활동을 하며 고등학생 1∼2년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 《해피투게더》를 봅니다. 거친 몸싸움이 없고 오로지 자기 재주와 훈련으로만 부딪혀서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인 배구. 어느 쪽이든 반칙을 할 수 없고, 반칙이 나올 수 없는 경기인 배구. 축구나 농구처럼 ‘심판이 안 보이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옷을 잡거나 다리를 걸거나 팔꿈치로 찍는’ 못된 짓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배구. 그만큼 자기다스림과 자기가꿈으로 몸을 만들고 솜씨를 쌓아야 하는 경기인 배구. 배구를 즐기면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튼튼해집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펄쩍펄쩍 뛰면서 온갖 생각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고요히 자기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독이기도 합니다. 잠깐도 눈을 뗄 수 없이 경기에 빠져들어야 하지만, 숨가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내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나를 돌아보게 된달까요.

 만화 《해피투게더》에 나오는 여섯 아이는, 저마다 다 다른 집안에서,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저마다 다 다른 꿈을 안고 살아가다가 만납니다. 딱히 ‘배구’에서 만나야 할 까닭은 없었지만, 한삶을 바칠 만한 대상으로 삼은 아이가 있고, 뜻하지 않은 때에 짜릿함을 느끼며 자기 마음 더 깊은 데를 찾아보고 싶은 아이가 있으며, 세상 편견에 맞서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겉멋에 홀려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우리 삶 깊은 자리를 파헤치는 가운데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동무 따라 강남 가듯 흘러드는 아이가 있습니다. 따로따로 노는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배구에서 ‘모이’고, 어떻게 자기 삶에서 ‘저마다 흩어져’ 살아가게 될까요.


― “우리도 할 수 있어.” 〈5권 36쪽〉
― “레이코, 처음으로 슬라이딩하면서 공을 잡았구나. 아주 잘했어.” 〈5권 50쪽〉
― ‘너는 이 도시를 좋아하고, 줄곧 이곳에서 살아가겠지.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조금은, 마지막으로 조금은 봤는지도 몰라. 이 도시의 빛깔을.’ 〈5권 99쪽〉


 만화를 보는 내내 ‘일본도 우리하고 크게 다를 바 없구나. 학교를 다니는 이 아이들한테 길잡이가 되거나 길동무가 되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구나. 아예 없지는 않지만.’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한테 말벗이 되고 스승이 되고 제자도 되었다가 도움이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치는 기둥, 밑바탕이라고 할까요. 다른 동무한테 힘을 내라며 건네는 한 마디는, 다름아닌 자기한테 힘을 내라는 울림입니다. 자기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는 굳센 믿음은, 다름아닌 다른 동무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더욱 자기를 믿고 힘내라는 응원이기도 합니다. 자기 길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스스로이지만, 그 길에는 자기만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옆이나 뒤에 동무들이 있으며, 다른 동무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야 하지만 그 길 옆이나 뒤에도 언제나 다른 동무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 “그러면 안 되나요? 저처럼 요령이 없고, 아무 재주도 없는 애가, 설령 착각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선생님 보시기에는, 제가 언제까지나 형편없는 인간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걸 만회하기 위해 제 진로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  〈6권 87∼88쪽〉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이 그저 만화 주인공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멀거니 구경하듯 바라보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 하나마다 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제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며, 제 앞길을 내다보게 합니다. ‘너 지금 얼마나 즐겁니?’ 하고 자꾸자꾸 말을 겁니다. ‘너한테 소중한 일은, 사람은, 사랑은, 놀이는, 세상은 무엇이니?’ 하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저는 요사이 사랑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데, 사랑은 언제나 제 곁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곁에 있겠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며, 좀더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고, 잃었다고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

 다만, 이 만화책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아쉬웠습니다. 영어로 지은 책이름 《해피투게더》를 보고는 정나미가 떨어졌거든요. 니노미야 토모코라는 사람이 그린 《GREEN》이라는 만화책을 볼 때에도 그랬습니다. 책이름을 왜 이렇게 지을까요. 이렇게밖에는 못 지을까요. 《GREEN》은 도시에서만 살던 아가씨가 농사짓는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시골 총각한테 시집가서 살아가는 줄거리로 된 만화책입니다. 만화는 퍽 짜임새있고 재미도 있지만, 책이름 ‘그린’만 보아서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 일본사람들이 영어 쓰기를 좋아한다지만, 우리 말로 옮기면서 책이름을 우리 삶과 문화에 걸맞게 풀어내 주면 한결 나았지 싶은데. “함께 웃는다”나 “다 함께 즐겁게”나 “함께 있어서 좋아”처럼. (4340.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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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2 강풀 순정만화 5
강풀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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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순정만화(1ㆍ2) - 강풀  2006.10.31 10:13

- 책이름 : 순정만화(1ㆍ2)
- 글/그림 : 강풀
- 펴낸곳 : 문학세계사(2004.2.∼2004.5.)
- 책값 : 한 권에 12000원씩


 인터넷만화를 그리는 이 가운데 나라안에서 가장 이름이 높다는 강풀(강도영) 님. 손이 아닌 셈틀로 그리는 만화를 썩 내켜하지 않기에 이분 만화는 몇 번 지나가며 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터넷만화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손쉽게 그리려 한다는 생각도 들고, 기계로 꾸민 빛깔이 제 눈에는 아주 따갑고 낯설고 사람냄새가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온갖 빛깔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셈틀입니다. 하지만 온갖 빛깔을 다 나타낼 수 있으면 뭐하나요. 사람냄새, 풀냄새, 꽃냄새, 흙냄새가 없는걸요. 이렇게 따지면 요즘 물감도 자연에서 얻기보다는 화학물질을 뒤섞어 만드니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그나마 질감이라도 있기는 하지만.

 한편, 너무 손쉽게 그린다는 느낌이 드는 인터넷만화는 ‘누구나 배워서 그릴 수도 있’다는 좋은 대목이 있어요. 뭐, ‘누구나 배워 쉽게 그린다’고 해도 아무나 대충 그릴 수 있는 그림이나 만화가 아닙니다. 그만큼 애쓰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다만 손그림 만화보다 품이 적게 들고, 어차피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여주는 세상이라면 손그림을 긁어서 인터넷에 띄우나, 처음부터 셈틀로 그려서 띄우나 마찬가지일 테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셈틀로 그리는 편이 보기에도 더 낫다고 할 수 있어요. 손그림 만화는 종이에 찍어서 맨눈으로 보아야 제맛이고, 셈틀그림 만화는 인터넷으로 보아야 제맛이니까요. 강풀 님 《순정만화》도 어느 만큼은 ‘종이보다 인터넷 화면’이 더 보기에 낫습니다.

 강풀 님이 그리는 만화는 널리 사랑받고 좋은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언제나 세상살이에 가까이 다가서면서 우리들한테 ‘어떤 생각이나 이야기’를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아요. 자기가 겪고 느끼고 본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내 보일 뿐입니다. 머리로 꾸미거나 지은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낀 이야기를 자기 입이나 동무들 입을 거쳐서 들려줍니다. 그러니 이분 만화에는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싱싱합니다. 파릇파릇한 기운이 있습니다. 잠깐 보고 지나가면 그만인 다른 인터넷만화와는 달리,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는 힘, 기운, 느낌이 서려 있어요.

 낯선 사람을 만나며 차근차근 인연을 쌓다가 자기 삶이 차츰 바뀌고, 어느 결엔가 서로를 생각하고 바라는 마음이 사랑으로 탄탄하게 자리잡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순정만화》입니다. 사내 셋, 계집도 셋, 이들을 둘러싼 크고작은 인연이 하나씩 엉키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면서 사랑이든 만남이든 헤어짐이든 미움이든 멀리 있지도 않으나 바로 옆에 있기만 하지도 않음을 가만히 느끼도록 합니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보이는 사람 사귐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보면, 참 흔한 이야기입니다. 뻔한 줄거리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서로서로 좋게좋게 끝내는’ ‘순정만화’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뻔하고 흔한 이야기를 잘 그리네요. 뭐랄까,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림 그린 이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그렸으니, 그림 보는 우리들도 눈에 힘을 빼고 즐길 수 있습니다. 모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요 놀이라 하겠으나 ‘어떻게 먹고살까’를 생각하지 않고 바삐 돌아가는 우리들한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우리는 또 우리대로’ 어떠한 길을 스스로 찾아가면 좋을까를 넌지시 느끼게 해 줍니다.

 문득, 만화쟁이 강풀 님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아는 대로’ 꾸밈없이 그릴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다른 만화쟁이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누구나 다 모르는 줄’ 잘못 생각하는구나 싶고, ‘누구나 다 모를 만한 이야기를 억지로 찾으려’ 바둥거리고 있으니, 마음을 적시고 즐거운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는 작품을 남기지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만화대사로 쓰는 말을 좀더 다듬고 걸러낼 수 있으면 훨씬 좋은 작품으로 이어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책값을 지나치게 비싸게 붙였고, 책도 지나치게 겉멋들여서 꾸몄습니다. 그린이와 줄거리하고는 하나도 안 어울리는 부풀린 꾸밈새 때문에, 지난 이태 동안 이 책을 거들떠보지 않다가 이제서야 찾아서 보았습니다. (4339.10.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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