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로 간다 - 땡전 뉴스에서 경포대까지 시사만화가 이홍우의 네 컷 만화인생
이홍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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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와 ‘비아냥’ 사이에서 오락가락 시사만평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8] 이홍우, 《나대로 간다》



 〈동아일보〉에서 “국장급 편집위원”으로 있던 만화쟁이가 한 분 있습니다. 이분은 1980년 11월 12일부터 2007년 12월 26일까지 ‘나대로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스물일곱 해에 걸쳐 8568번이나 네 칸 만화를 그려 왔습니다. 몇 해를 더 그렸으면 서른 해를 채우고 1만 번째 만화까지 빛을 보면서, 김성환 님 ‘고바우 영감’에 못지않는 시사만화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 텐데, 9000번째 만화를 코앞에 두고 신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며 2008년 1월, ‘한나라당 부산 진갑’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당신한테는 안타깝게도 공천심사에서 떨어집니다. 그러고 나서 상명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 1988년 KBS TV에서 방영된 〈광주는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5ㆍ18 민주화운동을 말하지 못할 때 〈전남일보〉 시사만화 ‘미나리 여사’에서만 광주 상황을 은유적으로 그렸다”고 소개하며 방송 화면에 광주 상황을 그린 만화를 한동안 비춰 준 적이 있다. 〈전남일보〉 시절 5ㆍ18 민주화운동을 멀리서 지켜보았던 나는 보도가 통제되는 가운데 간접적으로라도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당시 ‘미나리 여사’를 그릴 때마다 고민도 많이 했다 … 기분 좋게 시작한 ‘나대로 선생’과 노 대통령(노무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졌다. 시사만화가가 항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풍자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무척이나 못 견뎌 하는 정치인이 종종 있다. 최근 들어 시사만화의 풍자에 가장 못 견뎌 하는 정치인이 노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 한때 권력의 칼날을 맘껏 휘두르던 그(1985년 문화공보부 장관 이원홍)가 “정부(노무현 정부)를 더 비판하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권력의 패러독스를 느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내 손 안의 권력과 남의 손에 든 권력은 다른 모양이다 …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 게 좁은 대한민국 사회다. 그러다 보면 철천지 원수가 아닌 이상 어느 자리에서든 얼굴 볼 일이 없겠는가. 그런데 노 정권(노무현) 사람들은 ‘코드’가 다른 사람들과는 밥 한 그릇도 같이 먹지 않는 유별난 사람들인 모양이다. 이제는 만나자고 해도 내가 안 만날 것 같다. 나도 이제 느즈막히 코드나 찾아볼까? ..  (64, 113, 146, 160쪽)


 흔히 ‘조중동’으로 일컫는 신문에서 스물일곱 해에 걸쳐 만화를 그린 분 이름은 이홍우입니다. 신문에 만화를 그린 분으로는 드물게 낱권책을 여럿 펴냈습니다. 1979년에 《미스 앵두》, 1987년에 《오리발》, 1995년에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 1996년에 《재롱이 만화일기》를 내놓았습니다. 이홍우 님은 만화이름 그대로 “나대로 간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2004년부터 신문읽기를 끊었기에,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이분 만화며 다른 분 만화이며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잘 모릅니다. 2004년 겨울에 〈한겨레〉 ‘미주알’을 그리던 김을호 님이 붓을 꺾은 뒤로는 〈한겨레〉마저 볼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만, 둘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와 지난날 ‘나대로 선생’이며 ‘왈순 아지매’며 ‘야로씨’며가 어떤 눈높이에서 어떤 목소리로 우리 삶과 사람을 읽어내어 그림으로 담아냈는가를 돌아볼 때에는 여러모로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시사만화는 틀림없이 ‘세상일’을 다루는 만화입니다. 어느 만화가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신문에 싣는 시사만화는 더더욱 ‘풍자’를 하면서 재미를 잃지 않도록 그립니다. 한자말 ‘풍자(諷刺)’ 뜻을 살피면, “(1)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2)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인데, 말풀이가 처음부터 이러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풍자’는 세상 잘잘못을 슬그머니 다른 이야기에 빗대어 까밝히면서 속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도록 하는 말마디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비웃다’ 말풀이는 “어떤 사람이 보여주는 몸짓을 터무니없거나 어처구니없다고 여겨 얕잡거나 업신여기다”이거든요. 우리가 풍자를 한다고 할 때에는 맞은편을 얕잡거나 업신여기는 매무새가 아니라, 잘잘못을 밝히면서도 슬쩍슬쩍 눙치거나 꾸지라다가도 따뜻하게 감싸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거든요.


.. 매일 검열과의 싸움이었다. 어떤 날은 만화를 하루에 일곱 번 그린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시절이다. 그러나 검열을 뚫고 할 말은 해야 했다 … (이회창 총재가 묻기를) “매일 매일 시사만화를 그려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시사만화 소재를 어떻게 찾으십니까?” 평이한 질문이었으나 다들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일순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내가 농담 삼아 한마디 툭 던졌다.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 그(이회창 총재)를 미리 만나 봤더라면 실제로 둥근 안경을 세모로 그리면서까지 날카로운 캐리커처로 묘사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전 총재는 정치적인 이미지 차원에서 손해를 많이 본 정치인이다 ..  (75, 116∼117쪽)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돌아가는 엊저녁과 다시 일을 하러 서울로 길을 나서는 오늘 아침에 이홍우 님 다섯 번째 책 《나대로 간다》를 읽습니다. 앞서 나온 《미스 앵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해 읽지 못했으나 《오리발》과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는 일찌감치 읽었습니다. 이 만화 두 가지를 읽을 때에는 나라안 10대 중앙일간지를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기사와 만평을 샅샅이 견주어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무렵에 ‘나대로 선생’을 들여다보던 저는, ‘이분이 스스로는 풍자를 하는 시사만화를 그린다고 말씀하실는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풍자가 아닌 비아냥에 지나지 않는 총질로 사람들 가슴에 구멍을 뚫는 짓’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있기에, 이홍우 님으로서는 보수 쪽에 한 발을 디디고 있었다 말할는지 모르지만, 보수이든 수구이든 오른쪽이든, 또 진보이든 개혁이든 왼쪽이든, 지켜야 할 대목은 지켜야 합니다. 사람된 매무새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갈고닦아야 할 길은 갈고닦아야 합니다. 섬겨야 할 어른은 섬기고, 받들어야 할 넋은 받들며, 고개숙여야 할 곳에서는 고개숙여야 합니다.

 꼭 ‘조중동’이라고 묶는 세 신문사라서가 아니라, 세 신문사에 글을 쓰고 사진을 담고 그림을 그려 넣는 분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삶터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우리 삶자리에서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며 붙잡아야 할 길은 어디에 있다고 헤아리시는지 궁금하며, 우리 삶자락을 어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리 마음밭을 어떻게 일구어야 기쁘고 반갑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검열을 뚫고 할 말’은 무엇이었으며, 검열을 없애려고 보여준 움직임은 무엇이었고, 검열에 스러지는 이웃과 동무를 어느 만큼 느끼는 삶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하고 1980년대 〈동아일보〉랑 1990∼2000년대 〈동아일보〉는 서로 얼마나 닮거나 다를까요. 만화쟁이 이홍우 님이 스물일곱 해라는 기나긴 동안 〈동아일보〉에서 보여주고 들려준 ‘나대로 선생’ 말마디와 생각마디는 우리 이웃과 터전을 어느 만큼 비추거나 담아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공천심사부터 떨어졌기에 더 할 말이 없고 아쉬움도 클 텐데, 공천에 붙고 국회의원까지 되었다면, 당신이 걷는 길은 지난날과 또 얼마나 크게 달라졌을까요.


.. 1972년 6월 19일에 실린 그(윤영옥, ‘까투리 여사’)의 만화가 정부 권장으로 비닐하우스 작물을 재배한 농민들이 과잉생산과 판매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을 풍자했는데,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을 비판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결국 그는 펜을 놓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의 만화 ‘까투리 여사’ 역시 연재가 중단되었다. 이른바 “서울신문 필화 사건”으로 한동안 지방신문 등에 만화를 그리던 윤 화백은 국립도서관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아 한국시사만화계의 소중한 자료인 《한국시사만화사》를 펴내기도 했다 ..  (217쪽)


 1986년 3월 24일치에 그린 ‘나대로 선생’ 때문에 하루 동안 끌려가 몇 대 얻어맞고 나왔다는 이야기(78∼79쪽)는 있지만,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움켜쥔 전두환 정권 첫무렵에 어떤 그림과 이야기로 그 어둡던 나날을 그려내고 있었는가를 밝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라 낮은자리 사람들이 눌리다 눌리다 못해 들고 일어나면서 군사독재 정권이 흔들리던 무렵부터 조금씩 ‘전두환 비판’을 그리기는 했다지만, 군사독재 정권이 단단하던 무렵에는 ‘나대로 선생’이 얼마나 ‘나대로’라고 하는 길을 걸었는지는 239쪽짜리 책에 한 줄조차 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난날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이회창 씨 앞에서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하며 읊던 말마디처럼, 지난 열 해에 걸쳐 집권여당만 신나게 ‘조지는’ 만화를 그리면서, 당신한테 ‘아무런 아이디어가 안 떠올랐’음을 이 책으로 낱낱이 보여주는 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 겉장에 굵직하게 찍혀 있는 “땡전 뉴스에서 경포대까지 시사만화가 이홍우의 네 칸 만화 인생”이라는 말마디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경제 포기 대통령 노무현 조지기’만 가득 담긴 책에, 이홍우 님 만화쟁이 삶과 발자국이란 무엇이었는지 읽어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노무현 옛 대통령이 잘못한 일은 어김없이 있었고, 안타깝다고 여길 일 또한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 《나대로 간다》는 ‘아무개 조지기’를 하겠다는 책은 아니지 않았던가요? 어릴 때부터 온삶을 ‘만화에 미쳐’서, 부산에서 중학생이던 때에 공납금 두 달치를 몰래 모아서 집을 뛰쳐나온 까까머리가 만화쟁이가 되려고 바득바득 땅을 기면서 애쓰던 삶과 꿈을 보여주려고 했던 책이 아니었는가요? 좁다란 골방에서 아내와 힘겹게 살아내던 일이며, 열세 해 만에 어렵사리 아이를 얻은 기쁨이며, 만화 외길에 큰뜻을 품은 김성환 님 같은 어르신들 ‘세상에 잘 안 알려진 아름다운 이야기’며를 담아내고자 했던 책이 아니었는지요?


.. (‘사자에 상’을 그린) 하세가와 여사의 만화는 가정의 일상성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통합하는 힘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만화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의 시대 변화까지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233쪽)


 책 끝에 나라 안팎 시사만화(또는 신문만화)를 그린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면서, 일본사람 하세가와 마치코 님 만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가를 몇 쪽에 걸쳐서 들려줍니다. 아직 이분 만화가 한국말로 옮겨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헌책방에서 이분 만화책을 몇 권 사들여 틈틈이 꺼내어 다시 읽곤 합니다. 글은 못 읽어도 그림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가를 헤아릴 수 있고, 그림만 보아도 눈물겹고 웃음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홍우 님도 이야기하지만, “가정의 일상성”으로 “일본 사회를 통합”한 만화 ‘사자에 상’이요, “시대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으로 “일본의 시대 변화”까지 읽도록 해 줍니다.

 자, 그러면 이홍우 님 ‘나대로 선생’은 어떤 만화로 자리매김을 할까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에 걸쳐,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은 우리 만화와 문화와 삶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저 ‘스물일곱 해 동안 팔천 번 넘게 그린 기록이 남는’ 이름 하나 아로새길는지요? 이 만화마다 어떠한 깊은 이야기나 뜻이나 생각이 간직되어 있었다는 눈물이나 웃음을 새겨 줄 수 있는지요? 참말 이홍우 님 당신은 당신 네 칸 만화가 ‘풍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한 번도 ‘비아냥’이나 ‘비웃음’이나 ‘비꼬기’나 ‘비틀기’ 언저리에서 맴돌았다고는 느끼지 않으십니까? (4342.10.15.나무.ㅎㄲㅅㄱ)


 ┌ 《나대로 간다》(동아일보사,2007)
 ├ 이홍우 씀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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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소복이 지음 / 새만화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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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뜻이란
 [살가운 만화 50] 소복이,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 책이름 :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 글ㆍ그림 : 소복이
- 펴낸곳 : 새만화책 (2009.7.25.)
- 책값 : 8000원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에서 살아가는 여섯 사람 이야기를 만화로 담은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는 아주 조그마한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섯 사람 이상범 님(48), 경아 씨(38), 은동원 씨(36), 함은희 씨(37), 인섭이(20), 지희(12)는 남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네에서 저마다 제 삶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는 여느 사람들입니다. 이 만화책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에서 상범, 경아, 동원, 은희, 인섭, 지희 같은 이름을 따로 붙이지 않더라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는, 이 같은 이름으로 우리 땅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당신 이름을 세상에 내놓거나 드높이지 않으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160쪽짜리 자그마한 만화책은, 그린이가 만화를 다 그릴 무렵, 매화동 마을회관에서 조촐하게 만화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만화에 나온 사람과 동네사람들이 모인 따뜻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책 사이사이에는 그린이가 만난 여섯 사람이 손수 그린 그림 한두 장을 살짝살짝 곁들여 놓았습니다. 그린이가 사는 곳에서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으로 가자면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한다는데, 매화동은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이면서, 집값 싼 곳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고, 시골스러움과 어수선하지 않음에 끌려 찾아온 사람들이 있으며, 예부터 농사짓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함께 어우러진 곳이라고 합니다.


.. “뭐, 정신을 차려도 삶 자체가 변해야 되잖아요. 극단을 접거나, 혹은 대박을 터뜨리는 작품을 하거나. 그런데 여기서 공연을 해도 사람들은 공연 보러 서울로 가요. 못 믿는 거죠.” ..  (37쪽)
 





 오늘은 새벽 네 시 반에 잠에서 깼습니다. 아기가 그무렵에 깨었기 때문입니다. 잘 자다가 갑자기 깬 아기는 끙끙거리고, 아기 엄마가 기저귀에 손을 넣어 보더니 “똥 쌌네.” 한 마디. 뜨이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아기를 안고 씻는방으로 가서 기저귀를 벗기고 밑을 씻깁니다. 곧바로 똥기저귀를 빱니다. 일어난 김에 아기 엄마와 아빠는 모기를 대여섯 마리쯤 잡고 불을 끕니다. 아기는 이십 분쯤 더 칭얼거리며 엄마아빠 배며 등이며 올라타고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빠는 곧바로 일어날까 했지만, 몸이 무거워 더 잠들기로 하고 다섯 시 오십 분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안칩니다. 머리를 감고 셈틀을 켭니다. 그런데 모니터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엊저녁, 아기가 모니터에 대고 오줌을 갈겼는데, 그 탓에 모니터 전원단추가 맛이 간 듯합니다. 그제는 셈틀 자판에 똥을 갈기는 바람에 자판이 맛이 갔습니다. 지난달에는 엄마아빠 손전화를 입에 넣고 빠는 바람에 엄마아빠 손전화가 모조리 맛이 가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기 엄마가 쓰는 노트북을 켜고 글 몇 조각을 쓰는데, 예전에 아기가 쥐어뜯은 자판 몇 군데가 잘 눌리지 않습니다. 히유.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아기한테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섭니다. 오늘은 일곱 시 이십이 분에 나섭니다. 늦어도 이십 분 안쪽에 길을 나서야 전철역에 알맞게 닿는데, 전철역까지 가는 길에 사진 몇 장 찍는다며 이 분쯤 어기적거립니다. 전철역에 닿고 보니, 삼십삼 분에 들어왔어야 할 급행전철이 삼 분 늦어졌다고 합니다. 아침에 좀더 바지런히 길을 나서고 골목 사진 찍는다며 깨작거리지 않았어도 때맞추는 전철은 못 탔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제때 안 들어온 전철 때문에 전철역에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히유. 오늘도 첫 역인 이곳에서 자리잡고 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50살에 자살할 거예요.” “그때 너무 잘 살고 있으면요?” “그럼 그냥 오래 살구요.” “하하.” “저는 집에 있는 게 고통스러워요. 저는 막내인데, 사랑받는 막내는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내 밥은 내가 차려 먹었어요. 엄마가 차려 주면 이상해요. 엄마는 내가 밥 먹기 전에 이 닦는 걸 극도로 싫어하셨어요. 손으로 칫솔을 만져 보고 검사까지 했다니까요. 원래 제 꿈은 만화가예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힘들겠다 싶어서 포기했어요.” “그럼 지금의 꿈은 뭐예요?” “성공이요. 목표를 달성해서 행복하게 미소짓는! 세계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고등학교 때는 개근상 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성공하는 게 목표예요.” ..  (51∼53쪽)
 





 전철에 타면서 자리는 꿈조차 꾸지 않고 바퀴걸상이나 자전거를 놓는 자리 안쪽에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펼칩니다. 이 다음으로 서는 주안역부터 퍽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몰려 탑니다. 이이들도 아침 전철이 늦어지는 바람에 줄이 더 길어졌으니까요. 이리하여 부평역에서 사람들이 탈 때에는 서서 가는 사람은 옴쭉달싹 못할 만큼 꽉 끼게 되고, 끄트머리에서 책을 펼치던 저는 창문 쪽으로 몸이 눌립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송내며 부천이며 역곡이며 더 타려는 기나긴 줄은 지치지 않고 더 몰려들고, 먼저 들어와서 눌렸든 늦게 들어와서 누르든 서로서로 숨을 쉬기 어렵습니다. 전철기사는 여러 차례 안내방송을 하면서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었으나 시원하지 않을 듯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문득 1994년 봄이 떠오릅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가끔 책방 마실(교보문고나 헌책방)을 하러 서울에 전철을 타러 왔고, 국민학생 때에는 집에 자가용이 없어 전철을 타고 작은아버지 댁에 찾아갔는데, 이때에는 선풍기만 있거나 선풍기조차 없는 전철칸이 그렇게까지 덥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마, 출퇴근 지옥철을 탈 일이 없이 전철을 타서 그랬을 텐데(이무렵에는 다들 창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1994년 봄에 인천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 처음으로 ‘지옥철’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인천 끄트머리부터 구로역 둘레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이 전철을 탈밖에 없으나, 그사이에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타기만 해야 합니다. 또한, 서울과 가까운 곳이라 해서 서울로 수월히 갈 수 있지 않고, 외려 탈 자리가 없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하는 판이니, 벌써 꽉 들어찬 전철이라 하여도 우격다짐으로 밀면서 타려고 합니다. 서로서로 괴로운 노릇이지요. 그때, 1994년에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에는 선풍기만 있었습니다(수원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도 매한가지). 게다가 선풍기는 안 돌아가기 일쑤였고, 그나마 돌아가는 선풍기라 하여도 한 칸에 두어 대가 달랑 달려 있었습니다.


.. ‘요즘 나는 매일 바란다. 오늘 밤 꿈에서 엄마를 만나기를. 몇 년 전,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못 봤다. 우리 엄마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견디고 사셨을까?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엄마를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나보다 더 열심히 사셨는데 말이다.’ ..  (67∼68쪽)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여의도를 지나면 전철은 홀가분하다고 느낄 만큼 사람이 줄어듭니다. 서울에서 움직이든 서울 바깥에서 서울로 들어오든, 저마다 제 갈 곳을 찾아서 사람 물결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겠습니다. 오늘은 800쪽이 조금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조금 읽다가 《씨앗은 힘이 세다》라는 책을 살짝 펼쳤습니다. 고흐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두툼한 책은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디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씨앗은 힘이 세다》는 2006년에 처음 장만해 놓고 한참 읽다가 줄거리가 조금 지루해졌을 때 덮어놓고는 이태 넘게 다시 펼치지 않다가 이즈음 마저 읽으려고 집어들고 있습니다. 서대문역에서 내리기 앞서 “소비자들이 때깔이나 크기로만 농산물을 선택한다면 이 땅의 농부들은 농약을 안 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비자의 의식도 함께 바뀌어야 하겠지요(199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익히 들어 왔는데, 오늘은 새삼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곡식이나 열매를 사먹는 도시사람들이 ‘굵직굵직하고 빛깔 고우며 벌레먹은 곳 없는 말끔한 녀석’을 찾는다면, 어느 농사꾼이건 농약과 비료를 듬뿍듬뿍 안 칠 수 없습니다. 포도며 능금이며 배며 복숭아며 수박이며 갖은 농약과 비료에 범벅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도시사람들은 뻔히 농약과 비료를 많이 친 줄 알면서 이런 열매를 사다 먹습니다.

 알 수 없는 우리 씀씀이요 삶이 아닌가 싶으나, 밀고 밀리는 사람 물결에서 벗어나서 아침햇살 받고 한글학회까지 거니는 동안 곱씹어 보니, 《씨앗은 힘이 세다》를 쓴 농사꾼이 외친 이 말마디는 바로, ‘오늘날 우리들은 온통 껍데기로 겉치레를 하는 데에 매여 있다’는 소리로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책이란 알맹이(줄거리)를 살피고 사서 읽어야 합니다. 껍데기가 곱거나 멋스럽다고 사서 읽습니까. 꽂아 놓기에 보기 좋다고 사들이는 책입니까. 뭐, 누군가는 틀림없이 ‘꽂아 놓으려고 책을 사들일’ 수 있고, 이렇게 하는 일은 그이 권리입니다. 다만, 책은 꽂아 놓으려고 만드는 종이뭉치가 아닙니다. 읽으려고 만드는 종이뭉치입니다.

 곡식이나 열매는 먹으려고 일굽니다. 보기 좋으라고 일구지 않습니다. 배속에 들어와서 우리 몸에 새힘을 불어넣도록 하려고 일굽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은 어떠한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요. 우리 스스로 내 모습을 어떻게 차리고 있지요? 우리 스스로 내 이웃하고 마주하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마주하는지요? 우리들 옷차림은 얼마나 내 몸을 사랑하고 아끼는 옷차림입니까? 우리들 집치레나 몸치레는 얼마나 내 삶터를 사랑하며 돌보는 집치레이거나 몸치레인가요? 우리는 왜 일을 하지요? 우리는 왜 사랑을 하지요? 우리는 왜 아이를 낳아 기르지요? 우리는 왜 밥을 먹지요? 우리는 왜 돈을 벌지요? 우리가 아무개 정치꾼한테 표를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무개 정치꾼이 죽은 일에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숙이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 “부모님은 수원에 사시구요. 여기도 곧 정리할 거예요. 귀농할 거거든요.” “왜요?” “농촌은 뿌리고 도시는 꽃이라고 하는데, 음, 썩은 꽃이죠. 도시는 죽이는 일만 해요. 지구라는 별에서 제대로 살려면 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혼자 가면 외롭지 않겠어요?” “술 안 드시죠? 술 마시면 외로운 것도 몰라요. 하하!” “농사일이 힘들 텐데요.” “일하는 게 즐거워야 해요. 농업이 아니라 농사가 되어야지요. 팔아먹을 거 생각하면 고되져요. 나는 행복하려고 가는 거예요.” ..  (127∼128쪽)
 





 그제 일터로 오는 길에 만화책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를 다 읽어 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일터 책상에 그대로 두고 나왔습니다. 어제와 오늘, 다 읽어 낸 만화책을 다시 더듬어 보면서, 이 만화는 우리한테 무슨 말을 걸고 싶어 하는가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그나마 저는 집이 아닌 일터에 있기 때문에 이 만화책을 생각할 겨를을 얻었습니다. 집에서 옆지기하고 아기를 돌보고 있었다면, 아기를 보고 놀고 씨름하느라 온 기운이 다 빠져서 책이고 뭐고 거들떠보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로 전철을 타고 와서 돈을 얼마쯤 버는 일을 한답시고 아기를 옆지기한테 통째로 맡겨 놓으면서 저는 제 깜냥껏 제 일을 한다고 하는데, 이 일이란 얼마나 저와 옆지기와 아기한테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글을 쓰고 책을 쓰며 이것저것 곁일을 거들면서 가까스로 버는 돈으로 도서관 달삯을 대고 집삯을 또 어찌어찌 대며 우리 살림을 이렁저렁 꾸릴 때하고 견주면, 어느 회사 한 곳에 엉덩이를 지긋이 눌러붙이면서 일할 때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해서 버는 돈으로 우리 세 식구는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답게 우리 삶을 가꿀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을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보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한테 목숨 하나 내려주고 이 땅으로 보내준 ‘너른 자연’은 무슨 마음을 먹고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 목숨 하나 붙잡으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굽어살피고 있을 하늘나라 넋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오로지 내 밥그릇만 챙기면 된다고 하는 이 터전인데, 너른 자연이든 하늘나라 님이든 따지기 앞서, 우리한테 목숨을 선사한 우리 어버이는 무슨 사랑과 믿음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어버이한테,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를 그린 만화쟁이 소복이 님 어버이한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여섯 사람네 어버이한테, 당신들이 살아온 뜻과 보람은 무엇이었으며, 당신 아이들한테 보여주거나 나누려고 하던 뜻과 보람은 무엇이었을까요. (4342.8.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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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2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림체가 일반일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군요.요즘은 암만 알맹이가 좋아도 포장이 나쁘면 사지 않은 시대이니까요.

숲노래 2009-08-23 08:21   좋아요 0 | URL
'일반인'이란 누구일까요?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그림체'란 무엇일까요?

책은, 편견으로 보는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책일 뿐입니다.
편견에 맞추어 주면 더 훌륭할는지 모르나,
그저 유행으로 그칠 뿐입니다.

카스피 2009-08-2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말씀 마따나 책은 편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하지만 암만 좋은 책도 독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쉬이 읽혀 질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관주성경(아주 고풍스러운 20~30년대 문체의 성경인데 제목이 이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네요)을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는다면 아마 반도 이해하지 못할것입니다.
솔직히 좋은 내용의 책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려고 한다면 그에 걸맞는 포장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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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숲’에서 농사지으며 만화그리는 아가씨
 [살가운 만화 49]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1권



- 책이름 : 리틀 포레스트 (1)
- 글ㆍ그림 : 이가라시 다이스케
- 옮긴이 : 김희정
- 펴낸곳 : 세미콜론 (2008.10.13.)
- 책값 : 8000원



 (1) 도시 삶터에서 자연이란 어디에?


 꼭 지난주부터 동네 골목길에서 ‘빨간고추 말리기’를 봅니다. 처음에는 어느 한 동네 골목길에서만 ‘고추 말리기’를 하는가 생각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휘휘 이웃 동네를 다니다 보니, 온 골목동네가 고추를 말리려고 부산합니다. 꼭 지난주에는 한두 집 드문드문이었고, 어제오늘은 제법 늘었는데 마침 엊저녁부터 빗줄기가 뿌리는 바람에 오늘은 길가에 고추를 널어 놓은 집이 퍽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빗줄기가 뿌리더라도 비닐을 쳐서 고추는 길가에 그대로 두는 집이 제법 있습니다.

 이렇게 고추 말리는 철이 다가오면, 골목마다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하게 하려’고 굵은 나무토막을 먼저 길가에 척척 깔아 놓습니다. ‘이 자리에는 고추를 널어야 하니까 차 대지 마쇼!’ 하고 밝히는 뜻인데, 여느 때에는 아무 거리낌없이 차를 대놓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차를 대놓을 수 없으니 못마땅해 하거나 짜증이 나겠구나 싶습니다. 고추를 말려 놓는 집에서 모는 자동차라면 다른 데에 대놓을 테지만, 다른 집에서 대놓던 차라면 고추를 내놓는 집은 ‘이제 며칠 동안이나마 우리 집 앞에 멋대로 차를 못 대놓겠지’ 하고 싱긋 웃을 테고, 제 집 앞이 아니면서 아랑곳않고 차를 대놓던 집에서는 ‘뭐야, 이건?’ 하며 이맛살을 찌푸릴 테지요.


.. 다시 수유의 계절이 되었다. 많은 열매가 떨어져서 썩어간다. 떨어진 건 모두 쓸모가 없을까? 잼이나 만들어 보자 … “뱀밥은 역시 잡초야. 쇠뜨기가 무성해지면 베어도 베어도 없어지지 않고 말야. 뿌리는 잘아서 뽑아내기도 힘들고.” “뭐, 그건 그렇지만, 뱀밥이 자라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온 건 인간이잖아. 숲을 개방해서 말야. 옛날에, 죠몬시대에 말야, 뱀밥이 자라는 곳은 얼마 안 돼서 잡초가 아니라 귀중한 산채였을지도 모르지. 봄을 알리는 중대한 산의 은혜로. 분명히 태고적 인간은 뱀밥을 소중하게 여겼는지도 몰라.” ..  (8∼9, 74∼75쪽)
 



 고추를 말리는 철에는 골목동네마다 길바닥이 빨갛게 물들지만, 아파트도 곳곳이 빨갛게 물듭니다. 예전부터 고추를 말려서 쓰던 할매가 함께 살아가는 집에서는 아파트로 삶터를 옮겼어도 어김없이 ‘어디라도 빈 자리를 찾아내어’ 고추를 널어 놓습니다. 지난날에는 아파트 꽃밭에 장독을 심기까지 했고, 오늘날에는 그나마 고추 널기라도 한다고 할까요.

 제 어릴 적 일을 떠올려 보면, 제가 일곱 살 무렵부터 열일곱 살까지 살던 5층짜리 아파트에서는 ‘자가용 있는 집’이 드물어서, 아파트 주차장은 거의 모두 ‘고추 말리는 터’가 되었고, 여느 길바닥에도 고추를 촘촘히 깔아 놓아, 차는 고작 한 대만 외길로 다닐 만큼만 남겨 두곤 했습니다. 5층짜리 아파트 옥상은 집집마다 자리를 잡아 놓고는 가득가득 고추를 널어 놓곤 했는데, 헬리콥터라도 타고 내려다보았다면 그야말로 남다르고 빛고운 모습이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옹진군 장봉섬 옹암분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 분교 사택 옥상이며 학교 운동장이며 온통 고추를 널어 놓던 일이 떠오릅니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따로 안 살았지만, 어머니가 으레 고추를 널어 말린 다음 집에서 손수 고추장을 담갔습니다. 이웃집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어느 집이든 ‘고추장은 마땅히 사다 먹지 않고 집에서 빚어 먹는다’는 흐름이었습니다.


.. 푹 삶아진 잼은 투명감이 없는 탁하고 진한 핑크색. ‘타는 게 무서워서 너무 많이 젓다 보면 잼이 탁해진다’고 엄마가 말했었다. 망설이다가 너무 많이 저었나.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집중해. 다치기 쉬우니까.’ “지금, 이게 내 마음의 색깔인가?” … 벼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벼 수확도 비가 내리는 추운 날 짬을 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분주하게 일했다. ‘올해의 찹쌀농사의 성과가 지금……’ ..  (11, 42쪽)


 날씨는 한여름에 접어들어 푹푹 찝니다. 흙을 밟을 수는 없어도 골목집들은 어김없이 스티로폼 꽃그릇을 키우거나 ‘철거되어 빈 집터에 있던 돌을 치우고’ 동네텃밭을 일구어 조그맣게 농사를 짓곤 합니다. 작디작은 땅뙈기마다 오이며 가지며 박이며 쑥갓이며 마늘이며 파며 배추며 상추며 고추며 도라지며 깨며 심는데, 꽤 느즈막하게 오이와 호박을 심어, 이제서야 꽃을 피우는 집이 있습니다. 어쩌면, 꽤 느즈막하게 심었다기보다, 일찍 심어 일찍 한 번 거둔 다음 두 번째로 심어 새로 거두려고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비가 살짝 흩뿌리다가 개다가 하는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숭의4동과 도화1동 둘레를 죽 돌아보는데, 도원역과 제물포역 사잇길 건너편 안쪽인 숭의4동에 있는 꽤 많은 골목집에서 포도넝쿨을 키우는 모습을 봅니다. 어느새 짙은 빛깔로 익어 가는 포도송이가 있고, 아직 덜 익은 포도송이가 있습니다. 보름쯤 앞서는 신흥동1가 긴 담벼락을 타고 자라는 포도넝쿨을 보았는데, 이곳도 머잖아 바다를 닮은 쪽빛으로 송이송이 알알이 영글겠구나 싶습니다. 슬쩍 한 알 따먹을까 하다가 사진만 여러 장 찍고 돌아섭니다.


.. 하츠미는 밀가루에 물을 넣고 귓불 정도로 말랑하게 반죽해서 2시간 이상 재워 둔다. 그것을 손으로 잡고 얇게 늘려서 찢어 국물에 넣고 끓인다. 충분히 재워 두지 않으면 쫀득하지가 않다. 그래서 눈을 치우기 전에 만들어 놨다가, 눈을 다 치우고 배가 고파졌을 때 먹는 게 제일 맛있다 … 서리 맞은 시금치는 감칠맛이 확 늘어나서 더 맛있다 ..  (25, 158쪽)


 이제 우리 집 아기는 아장걸음을 곧잘 걸어, 신을 신기면 혼자서 신나게 이리 뒤뚱 저리 뒤뚱 걷습니다. 비알이 진 길에서는 자꾸 넘어지지만 판판한 골목에서는 웃는 입을 헤 벌린 채 나비춤을 추듯 걷습니다.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가면 마주 걸어오던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웃음으로 인사하면서 길을 내어줍니다. 몸소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지내온 분들이기 때문일까요.

 며칠 앞서 아기가 첫발을 내딛고 나서, 옆지기는 푸념을 했습니다. “아기가 첫발을 떼었는데, 첫발을 뗀 길이 아스팔트야!”

 옆지기가 말하기 앞서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 아스팔트입니다. 또는 시멘트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 제아무리 싱그럽고 아리따운 골목길마실을 즐길 수 있다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도시라서 흙길이 아닌 시멘트길이거나 아스팔트길입니다. 아기는 제 첫발을 뗀 기쁨을 ‘제대로 된 땅’이 아닌 ‘껍데기 씌운 땅’을 밟으면서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런 아스팔트 길맛을 땅맛인 듯 잘못 알게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흙땅이 아닌 시멘트땅과 아스팔트땅을 밟습니다. 시골에서도 논밭일을 할 때를 빼고는 으레 시멘트땅을 밟기 마련입니다. 온나라 거의 모든 시골길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덮여 있으니까요. 옛날 같은 고샅길이란 없다시피 하고, 아련한 논두렁길 또한 없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 저녁식사도 준비되어 있고, 집에서는 피곤하다고 말해도 되겠죠. 빨래가 쌓여 있으면 잔소리도 하고 말예요. 하지만 난 아무리 피곤해도 전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돈을 버는 것도 집안일도 분담해 줄 사람은 없으니까. 여기서 돈을 벌고 있는 동안 집안일은 손도 못 대요. 한 가지씩밖에 못하죠. 눈을 치우고 있을 때, 장작 패는 게 끝나는 일은 절대 없어요. 난 혼자니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가족에게 시키는 주제에 바쁜 척 대단한 척하지 마요. 난 뭐든 혼자서 다하니까. 가족에게 어리광 부리는 당신들이 내 고통을 알 리가 없지. 일을 분담해서 해 줄 가족이 없는 게 얼마나 ……, 난, 엄마에게 정말, 가족, 이었을까 ..  (62∼63쪽)


 엊저녁 옆지기가 푸념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한 가운데, 낮나절에 홀로 자전거를 몰며 골목마실을 하며 밤나무를 보고 모과나무를 보고 호두나무를 보고 대추나무를 보며 감나무에다가 포도나무 들을 실컷 보았습니다. 제 사진기에는 이 온갖 열매나무들 자취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들은 하나같이 ‘골목집 담벼락 안쪽 마당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길가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길가엔 흙이 없으니까요. 숭의3동과 송림2동에는 꽤 큰 고무다라이통에서 자라는 대추나무가 있기도 한데, 이런 데에 대추나무를 심어서 가꾸니 놀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서글픕니다.

 나무는 마땅히 너른 흙을 제 어머니밭으로 삼아 뿌리를 내려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그 나무 한 그루만이 아니라 동무나무도 옆에서 자라고, 엄마나무나 아빠나무도 둘레에서 함께 자라야 할 테니까요. 키가 15미터쯤 넘는 버드나무가 고작 너비 0.5미터도 안 되는 흙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키가 20미터를 훌쩍 넘는 은행나무 또한 고작 0.5미터쯤 될까 말까 한 ‘살짝 구멍난’ 아스팔트길 가운데에서 줄기를 올리고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말라죽지 않을 만큼 흙을 얻고, 겨우 숨을 틔울 만큼 땅을 얻은 셈이라고 할까요. 모조리 사람들한테 제자리를 빼앗기고 가까스로 고만큼 살아남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골목길이나 찻길가에서 자라는 나무들 삶하고, 우리네 여느 사람들 삶은 매한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나무가 나무다움을 살뜰히 간직하면서 살아가기 어려운 터전이듯이, 사람이 사람다움을 알뜰히 추스르면서 살아가기 어려운 터전이 아니랴 싶습니다. 우리들은 틀림없이 온갖 물질문명을 누리거나 즐기고는 있는데, 날마다 어마어마한 먹을거리에 둘러싸인 채 배고픔이나 배곯음을 잊거나 모르는 채 살아가고는 있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들 누구나 ‘목숨붙이’임을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자연을 잊으면 사람 또한 잊고, 자연을 잃으면 사람 또한 잃는다고 느낍니다. 자연을 버리는 터전에서는 사람 또한 버리고, 자연을 내치는 삶터에서는 사람 또한 버린다고 느낍니다. 국민소득이니 경제발전지수니, 또 무슨무슨 국제행사이니 빌딩 높이이니 아파트 평수이니 연봉이니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이니 하는 말마디와 숫자놀음은 어디에나 흘러넘치는데, 정작 사람들 목소리와 숨결과 살내음과 땀방울과 손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2) ‘작은숲’에서 농사짓는 아가씨가 그린 만화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를 봅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제 2권까지 옮겨진 작품입니다. 그린이는 일본 어느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도시로 나와 만화를 그리다가 마음에 생채기를 받고는 ‘내빼듯이’ 고향인 시골마을로 돌아와서 혼자 숨어 지내듯이 농사짓고 살면서 다시 만화를 그리는 아가씨입니다. 우리 말로 옮기자면 “작은 숲”이 될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는 책이름 그대로, 그린이 스스로 ‘작은’ 사람이요, 그린이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시골 또한 ‘작은’ 땅이요, 이곳에서 웅크리듯 묻혀 지내는 당신 삶 또한 ‘작은’ 살림이며, 지구라고 하는 커다란 자연과 견주면 아주 ‘작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살아갑니다.


.. 보름달이 뜬 밤. 대낮처럼 밝다 … ‘코모리’는 토호쿠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상점 같은 건 없어서 간단한 물건을 사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 중심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농협의 작은 슈퍼나 상점이 몇 채.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라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느 정도 걸릴지……. 겨울에는 눈 때문에 걸어가야 합니다. 천천히 도보로 가면 1시간 반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 마을의 대형슈퍼로 가는 모양입니다. 내가 거기에 가려면 한나절이 걸립니다 ..  (50, 13쪽)


 그린이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은 “작은 숲”에서 살면서 ‘어릴 적 어머니가 당신한테 해 주던 밥’을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시골살이에서 ‘먹는 이야기’밖에 없으랴 싶을 만큼 ‘어머니 손맛과 입맛’을 곱씹습니다. 다른 이야기라든지 다른 삶이라든지 다른 삶자락도 있을 텐데, 무엇보다도 ‘손수 키우고 손수 거두며 손수 빚는 밥’ 이야기가 그득합니다.

 그린이가 따로 ‘먹는 일을 좋아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다가는, 어릴 적 엄마한테 안겨서 젖을 물던 느낌을 잊지 않는 어른이 적잖이 있음을 떠올려 보면, ‘이제는 곁에 없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데에 ‘어머니 손맛과 입맛’을 되새기는 일만큼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일도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차근차근 그린이 지난 삶을 되짚고 톺아보는 동안, 그린이가 도시살이에서 받은 생채기를 하나둘 씻을 수 있을 테며, 생채기를 하나둘 씻는 가운데 ‘내빼서 숨어든 시골’이 아닌 ‘좋아서 다시 찾아온 고향’ 이야기로 새로 태어날 수 있겠지요.


.. 나한테 ‘우스터소스’는 집에서 만드는 소스였다. 그래서 학생 때 가게에서 팔고 있는 ‘우스터소스’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었다 … 씻고 잘라서 볶다가 간을 하고 그릇에 담는다. 순서는 엄마랑 똑같은 게 분명한데, 씹는 감촉이 다르다. 뜯는 시기를 놓쳐서 너무 많이 자란 푸성귀라도 엄마가 볶으면 맛있었다. 내가 볶으면 ..  (18, 155∼156쪽)


 이제 곧 2권을 넘길 차례인데, 우리한테도 《리틀 포레스트》처럼 제 삶과 삶터를 단단하고도 따뜻하게 붙잡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만화로 엮어내는 만화쟁이가 하나둘 태어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느낍니다. 벌써 스무 해쯤 앞서부터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만화를 그리는 박연 님은 《들꽃 이야기》와 《엄마의 밥상》을 그려내기도 했는데, 농사일이 너무 바쁘고 힘든 탓인지, 아니면 농사일이 훨씬 재미있어서 만화그리기는 조금 멀리하는 탓인지, 더 많은 작품이 못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만화쟁이를 돌아보면, 하나같이 도시에서 살아가며 도시 삶만을 만화로 담아냅니다. 하기는. 어느 누구라도 제가 살아가는 곳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가운데 담아낼 테니까요. 더구나, 이런 만화를 보고 저런 만화를 펼치는 저 또한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부터 스스로 시골살림을 꾸리지 않으면서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 살내음 나는 만화’를 바란다면 꿈 같은 노릇입니다.

 다만, 꼭 농사짓는 만화쟁이가 농사짓는 시골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어 내놓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도시살림 꾸리는 만화쟁이 스스로 ‘머리만 굴려 어설피 지어낸 이야기로 그려내는’ 만화를 뛰어넘으면서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사람과 동네를 받아들이고 느낀 이야기를 펼쳐내는’ 만화로 거듭날 수 있으면 더없이 반갑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참되게 살고, 스스로 즐겁게 살며,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가운데, 이와 같은 우리 삶을 만화이든 사진이든 글이든 알차게 꽃피울 수 있으면 둘도 없이 훌륭하면서 싱그럽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아로새겨지리라 믿습니다. (4342.8.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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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0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만화가 우리에겐 음란하고 폭력적이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서정적인 만화를 그리시는 분도 계시네요.
 
만화 공화국 일본여행기 -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일본컬처트래블
박인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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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만화쟁이가 일본을 사랑하는 까닭은
 [잠깐 읽기 50] 박인하,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 책이름 :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 글 : 박인하
- 펴낸곳 : 랜덤하우스 (2009.7.10.)
- 책값 : 13800원



 (1) 일본책과 한국책


 헌책방에서 만난 책마을 어르신들은 퍽 예전부터 으레 “자네, 일본 간다에 가 보았나? 일본 간다에 가 보면 책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거야.” 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일본 나들이를 할 만한 비행기삯이나 방삯이 없습니다. “네, 나중에 돈이 되면 가 볼게요. 그리고 굳이 일본까지 가 보지 않아도 우리 나라에서도 책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틀림없이 일본은 우리와 견주어 책 문화가 크게 발돋움했고, 일본 헌책방 문화 또한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훌륭합니다. 이러저러한 모습은 몸소 겪으면서도 알 수 있겠지만, 굳이 몸소 겪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제 깜냥껏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리라 생각하면서 조용히 나라안 헌책방 마실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여름에 일본 나들이를 한 번 했습니다. 그무렵 몸담고 있던 출판사에서 ‘자료를 사서 들고 올 짐꾼’으로 저를 곁다리 삼아 일본에 보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넉 밤을 지내고 돌아오는데, 그 넉 밤 동안 ‘일본 간다에 가 보지 않고 헌책방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던 책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살갗으로 느꼈습니다. 간다 헌책방거리를 여러 날 돌아보면서 ‘책을 보는 눈’ 또한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 일본에 처음 도착해서 느낀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거리가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과 닮아서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몇 번 방문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일본 도시의 거리는 한국과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많이 다르다. 특유의 작은 이층집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거리와 골목, 외관이 잘 정돈된 상가, 아케이드 지붕 아래 늘어선 건물들, 길게 형성된 지하상가까지 일본의 가장 일상적인 풍경들은 사실 우리에게 낯선 모습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에 도착하면 이 일본적인 거리 풍경을 보고 ‘낯익다’고 느낀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일본의 거리와 집을 끊임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  (38쪽)


 제 돈으로 제 깜냥껏 즐기는 나들이가 아니었던 탓에, 제가 가고픈 대로 다닐 수 없었지만, 넉 밤 가운데 꼭 두 시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말미를 얻었고, 이 두 시간 동안 저는 ‘더 많은 헌책방’을 다니는 데에 쓰기보다는 ‘일본 여느 살림집이 있는 골목 안쪽은 어떠한 모습일까’가 궁금해서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을 부지런히 쏘다녔습니다. 나리타공항에서 내려 도쿄로 들어가는 전철길에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여느 살림집 모습이 살갑다고 느껴 ‘일만 아니라면 예쁜 마을에서 내려 한참 동안 그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쿄 도심지에서 어느 만큼 벗어난 여느 살림집 있는 골목을 거닐 때에도 ‘일본에서는 이런 골목을 잘 간수하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도쿄에서 책꾸러미를 이고 지고 끌고 하며 다시 전철을 타고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길에서도, 창밖을 내다보며 ‘일본이라는 나라 여느 삶자리가 이러하다면, 한국보다는 차라리 일본에서 살면 훨씬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 여느 삶자리를 지킬 수 있으니, 이처럼 사람들 여느 시골마을을 깨끗하게 간수할 수 있으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퍽 괜찮다 못해 훌륭한 나라가 아닌가 하고 느꼈습니다. 일본도 틀림없이 재개발을 하기는 하겠지만 우리 나라처럼 마구 밀어붙이지는 않겠구나 싶었고, 한 집에서 쉰 해 백 해 이백 해를 뿌리내리며 살아갈 수 없는 한국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 일본에는 걷기 좋은 거리가 널려 있고, 그 거리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일본은 숲의 나라다. 그래서 숲은 일본을 잘 표현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이 숲의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한 대표적인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8년 작품 〈이웃집의 토토로〉는 ‘숲’의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다 ..  (42, 131쪽)


 흔히 일본을 두고 ‘역사가 짧은 나라’라 하고, 우리 나라를 놓고 ‘역사가 긴 나라’라 합니다. 그러면, 일본은 어느 대목에서 역사가 짧고, 우리는 어느 대목에서 역사가 길까요. 역사가 짧은 일본이 제 나라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삶터를 보듬는 매무새하고, 역사가 길다는 한국이 제 땅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삶터를 보듬는 매무새는 어떠할까요? 일본은 ‘역사가 짧은’ 모습 그대로 어설프고 어줍잖게 살고 있습니까? 한국은 ‘역사가 긴’ 모습 그대로 훌륭하고 거룩하게 살고 있습니까?

 일본 나들이를 하고 난 다음 헌책방에서 다시 만난 책마을 어르신들은 이런 말씀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일본은 저희들 짧고 모자란 역사라 할지라도 하나하나 알뜰히 모시고 사랑하고 가꾸면서 살아왔기에, 그 흐름이 한 세대 두 세대 꾸준히 거치면서 나날이 발돋움할 수 있었고, 한국은 스스로 역사가 길다는 생각에만 빠진 채 제대로 우리 삶과 문화를 돌보지 않고 우쭐거리기만 하느라고 제 모습도 못 보고 다른 이 모습도 못 본다”고.

 어르신들 말씀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어르신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와 문화 어느 구석에도 제대로 갈무리된 자료나 책이 몹시 드뭅니다. 나라나 지역정부에서 애써 갈무리하는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거의 없습니다. 부천에 만화박물관이라 할 만한 곳이 하나 열렸지만 그뿐입니다. 이 나라에 손꼽히는 만화쟁이가 한둘이 아닌데, 만화박물관이 고작 하나로 되겠습니까. 소설박물관이나 시박물관이나 동화박물관이나 사진박물관도 매한가지입니다. 기차박물관 전철박물관 버스박물관 전화박물관 골목길박물관 아파트박물관 논밭박물관 고기잡이박물관 광산박물관 동굴박물관 오름박물관 들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으며, 우람한 건물로 짓는 박물관이 아닌 온나라 곳곳에 조촐하게 가꾸는 ‘지역박물관’이 서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 박물관이나 전시관 하면 크고 좋은 것을 떠올리는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 ‘테즈카 오사무 박물관’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테즈카 오사무 박물관’은 작고 특성화된 박물관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다 ..  (119쪽)


 그러고 보면, 독립기념관이라는 우람한 건물은 있되,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 옛집이 제대로 간수된 일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독립운동과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당신 삶을 고이 일구어 온 사람들 삶터를 고이 간직하거나 아끼는 일 또한 거의 못 봅니다. 굳이 관광지나 관광자원으로 삼는 개발이나 공원이나 박물관 따위가 아닌,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쉬고 머리를 가다듬고 몸을 갈고닦으며 서로 어깨동무하는 가운데 어우러지는 마을쉼터를 마련하고, 마을 문화를 보듬을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되어서 더 값이 있거나 오래되었으니 얼른 헐어 버릴 뭔가가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온 흐름이 무엇이고 오래도록 지킬 수 있던 손길은 또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눈길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한테 하나도 없는 대목은 이런 눈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지난날에도 우리한테 하나도 없던 대목은 이와 같은 눈길과 손길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앞날에도 이러한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은 좀처럼 퍼지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 이제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낡은 거리가 구라요시의 매력이다. 일본인들도 이 거리를 보러 구라요시를 찾는다 … 만화 속 주인공처럼 과거의 한때로 돌아간 듯한 아키가와라 마을은 기차역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 쇠락한 마을을 만화와 결합해 추억의 장소로 다시 포장했고, 관광객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마을 중앙에는 마을 전체를 안내하는 안내판과 아직도 사용중인 주물로 만든 우체통이 놓여 있다. 에도 시대 커다란 창고였던 집들은 전통 인형을 팔거나 잡화를 팔고 있고, 카페나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  (312, 315쪽)


 책은 그 나라 삶터 그대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프랑스책이든 영국책이든 미국책이든 일본책이든 훌륭하다고 하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수수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동네 터전이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둘레에서 늘 보고 부대끼며 배우는 모든 모습들이 훌륭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이 훌륭함과 아름다움을 곱다시 받아먹으면서 뒷날 훌륭한 책 하나 빚어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 창작책이 드물고 온통 번역책투성이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자리를 ‘훌륭한 수수함’이나 ‘아름다운 수수함’을 내치거나 내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나처럼 서양바라기로 흐르는 가운데 서양집을 짓고 서양옷을 입으며 서양밥을 먹습니다. 서양노래를 즐기고 서양말로 생각을 펼치고 서양학교로 가서 배우고 돌아옵니다. 이런 우리들한테서 창작책이 나오기는 힘들 뿐더러, 숱한 창작책들마저 ‘나라밖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머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펼쳐내지 못합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이야기를 엮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도 아니며, ‘우리 것이 나쁜 것이여’도 아닙니다. 우리 것은 우리 삶일 뿐입니다. 우리 삶이 고스란히 우리 책으로 묶일 뿐입니다. 우리 삶은 고스란히 우리 만화가 되고 우리 노래가 되며 우리 영화가 되다가 우리 연극이 될 뿐입니다. 






 (2)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어떤 책일까


 만화평론을 하고 대학교에서 만화창작 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박인하 님 새로운 책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를 읽습니다. 박인하 님은 당신 일터인 대학교에서 ‘안식연구년’을 맞이하여 일본으로 식구들이 다 함께 건너가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느긋하게 연구와 창작을 즐기면서 당신 스스로 배우고 느낀 이야기를 뽑아낸 첫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여기 등장하는 풍경들도 일본적인데,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일본 작가들은 만화에 나오는 공간을 현실에서 가장 적절한 공간을 찾아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  (41쪽)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책이름 그대로 ‘만화가 넘치는 나라’인 ‘일본을 여행하고 다닌 이야기’를 담습니다. 더욱이 만화를 퍽 좋아하고 만화이야기를 즐겨서 쓰는 분이 부대낀 삶자락을 담습니다.

 그런데, 책을 처음 펼치고 덮을 때까지, 이 책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로 박인하 님이 우리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지를 좀처럼 알아채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난 일본에 와서 이런저런 곳을 둘러보았다’고 하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아니면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에 다 나와 있는 ‘일본 지역 정보’를 알뜰히 그러모아서 보여주고 싶으신지, 또는 ‘한국사람들한테 두루 익숙하다기보다 박인하 님 당신한테 익숙하거나 살갑다 느낀 일본 만화가 어느 곳에서 태어났는가를 몸소 느껴 보려고 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어 보고 싶으신지 알쏭달쏭합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으며 그것도 있을 텐데, 글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어수선합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적어도, 책이름 그대로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쯤 이름을 붙이려 했다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구태여 이 책을 들추어보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을 만한 이야기를 어설프고 지루하게 늘어놓는 틀거리에서는 벗어났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박인하 님 취향이 아닌 만화라 할지라도 ‘만화공화국 일본’ 모습을 보여준다 할 만한 작품이 무엇이며 이러한 작품은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한국에 꽤 많이 알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해서 소개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앞으로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2권이나 3권이 나올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여러 권으로 ‘일본만화와 일본 문화와 일본 삶터’를 다루려 했다면 이번 책 같은 맛보기 짜임새로는 모자라며, 한 권으로 끝내려 한 책이었다 하면 너무 가볍고 어지럽습니다. 그리고, 겉훑기로 그치고 맙니다. 아무개 작품으로 무엇이 있고 줄거리는 어찌어찌 하다는 이야기는, 구태여 이 책에서 다루어 주지 않아도 ‘이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라면 으레 알고 있을 법하지 않겠습니까. 또, 만화 줄거리와 만화쟁이 작품 소개에 그렇게 자리를 많이 내주면서, 정작 그 만화쟁이 삶과 생각과 자취, 또 그 만화쟁이가 터를 내린 고향 삶터 ‘여느 사람 삶자락과 목소리와 숨결’ 이야기가 어떠한가를 살피는 데에는 너무도 적은 자리만 들이고 말았구나 싶습니다.


.. 아무튼 일본의 역사만화에는 일본의 역사가 있다. 그것도 대단히 매력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  (67쪽)


 만화평론을 하는 분이 내놓는 일본여행기라 한다면, 대학교수로서 만화창작에 뜻을 둔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 제자들 앞에서 내놓을 ‘일본만화는 어떤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하는 강의록이라 한다면, ‘일본땅을 밟지 않고 한국땅에 옮겨진 일본번역만화를 한국땅에서 읽으면서도 다 알 수 있고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애써 일본땅을 안식연구년 월급을 받으면서 지내는 가운데’ 쓰신다면, 시간이며 품이며 돈이며, 더욱이 종이며 책이며 아까운 노릇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차라리 더 가볍게 나아가든지, 좀더 무게를 다잡고 엮어내든지, 아니면 깊이 파고들면서 살펴보든지, 또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쟁이를 추려서 한결 너르고 샅샅이 돌아보든지 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 미즈키 시게루는 돗토리 출신 만화가로, 〈게게게의 기타로〉라는 요괴만화를 그려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적 작가다. 그런데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이 문을 열고 나자, 낡고 쇠락한 상점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후 돗토리는 돗토리 출신 만화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명탐정 코난〉의 인기 작가 아오야마 고쇼의 박물관과 〈아버지〉, 〈열네 살〉의 작가주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 작품의 배경 등을 관광 상품으로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  (300쪽)


 새삼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를 읽는 동안, 일본 만화쟁이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덧붙여, 한국 만화쟁이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기 힘들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흐름은 달라지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신나게 붓끝을 놀리는 만화쟁이는 꾸준하게 일본을 사랑하겠구나 싶고(군국주의로 치닫거나 생태환경 이야기에 등돌리는 일본 정부를 때때로 나무라기도 하면서), 한국에서 태어나 고달프게 붓끝을 휘두르는 만화쟁이는 꾸준하게 한국을 서글퍼하거나 안타까이 여기겠구나 싶습니다.

 하기는, 만화쟁이만 그러하겠습니까. 글쟁이는 어떻고 사진쟁이는 어떻습니까. 책쟁이는 어떻고 연극쟁이는 어떻겠습니까. 농사꾼은, 노동자는, 애 엄마와 애 아빠는 어떠하겠습니까. (4342.8.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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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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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밥상
박연 글.그림 / 얘기구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농사짓는 만화쟁이가 차린 ‘엄마 손맛 밥상’ 이야기
 [살가운 만화 48] 박연, 《엄마의 밥상》



- 책이름 : 엄마의 밥상
- 글ㆍ그림 : 박연
- 펴낸곳 : 얘기구름 (2008.8.5.)
- 책값 : 9800원


 (1) 집밥과 바깥밥, 도시락과 손맛


 일본만화 《아빠는 요리사》는 어느새 낱권책으로 100권을 넘겼습니다. 밥 이야기를 다룬 다른 만화 《맛의 달인》 또한 100권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와 같은 만화책을 보면 일본은 참 대단하구나 하고 느끼는데, 이런저런 밥 이야기 만화 가운데 널리 사랑받는 《미스터 초밥왕》이라든지, 또는 마실거리 만화 《신의 물방울》이라든지, 또는 《라면 요리왕》이나 《따끈따끈 베이커리》 같은 만화책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남자가 주인공이며 요리사이거나 장인입니다. 포장마차나 선술집 아지매나 할매를 빼놓고, 여자가 ‘밥하는 일’을 맡는 때는 퍽 드뭅니다.

 그러고 보면, 만화책에서뿐 아니라 우리 둘레에서도 웬만한 ‘고급요리집 요리사’는 으레 남자입니다. 회집에서 물고기 비늘과 살점을 가르는 사람 또한 거의 남자입니다. 집안에서 집밥을 하는 사람은 으레 여자인 가운데, 집밖에서 바깥밥을 하는 사람은 으레 남자라고 할까요.


.. “정말 너무해!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끌고 오질 않나? 살찐다고 과자랑 음료수도 못 먹게 하고! 반찬은 맨날 풀만 준다니까! 지난번에는 준비도 없이 끌려왔다가 과자가 먹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엄마 몰래 준비한 비상식량인데 이것마저 못 먹게 하시려는 거야. 너두 먹어.” “아, 아니, 괜찮아.” “살찔까 봐 그러지? 나도 잘 알아.” “아, 아냐, 그게.” “깡마른 애들이 더 무섭다니까. 나 혼자 다 먹고 살찔 테니 걱정 마.” “난 먹으면 안 돼. 과자에 알레르기가 있거든.”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과자 알레르기라니, 그런 게 어딨냐?” “진짜야.” “됐네!” “알았어. 그럼 딱 한 개만 먹을게.” ..  (23∼24쪽)


 몇 해 앞서 《빈민의 식탁》이라는 일본만화를 보며 참으로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만화감도 재미있고 이야기 짜임새도 재미있으며 마무리도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5권으로 끝나서 아쉬웠는데, 이 만화책 또한, 집에서 ‘가난한 식구들 밥차림’을 하는 사람은 아빠(남자)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삶이 그때부터 오늘까지 열 몇 해째 고이 이어집니다.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아기와 씨름하느라 고단해도, 잠들기 앞서 누런쌀과 여러 잡곡을 씻고 일어서 불려 놓아야 하고, 아침이 되면 언제나처럼 냄비나 뚝배기에다가 밥을 안쳐야 합니다. 그나마 하루에 한 번 밥을 하고, 따로 여러 가지 반찬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밥을 먹으니 일손은 적다 할 텐데, 그렇다 할지라도 집안일은 밥하기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에 날마다 만만하지 않은 일손에 치이고 시달립니다.

 꼭 이런 탓은 아니지만, 이렇게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어 온 삶이다 보니까, 집 바깥에서 돈을 치르고 사먹는 날이든 누군가 밥을 사 주는 날이든,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제 앞에 놓인 밥그릇을 깨끗이 안 비울 수 없습니다. 밥알 하나 반찬 한 점에 얼마나 많은 품과 땀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또렷이 알기 때문에, 언제나 고맙게 받아먹습니다.

 아기한테 밥을 먹이다 보면 아기는 밥을 안 먹겠다며 고개를 홱 젓거나 손으로 숟가락을 쳐서 온 방바닥을 밥풀투성이로 만들곤 하는데, 옆지기와 저는 이 밥풀을 주섬주섬 주워서 우리 입에 넣습니다. 오래도록 밴 버릇이라고도 할 테지만,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밥을 남기거나 버리거나 하지 못합니다.


.. “엄마, 저 누나야! 저 누나가 우리한테 과자 줬어!” “헉! 안 돼!” “저 누나 때문에 우리가 아픈 거야!” ‘저, 저 녀석 자기 입으로 맹세해 놓고 이제 와서 배신을 때리다니!’ … “잘 한다∼ 과자 가방 메고 도망칠 때부터 사고칠 줄 알았어.” “히잉,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말야.” “가공 음식이나 과자, 음료수 종류가 얼마나 몸에 나쁜지 뉴스 보면서도 몰랐어?” “너도 생각이 있는 애라면 이번엔 느낀 점이 많을 테지?” “사람도 자연의 일부란다. 그러니 자연에서 나는 신선한 것들을 먹어야 건강한 거야. 엄마 아빠가 힘들여서 주말농장을 찾아오는 이유도, 도시에 길들여진 네게 자연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고 싶어서란다. 여름아, 사방을 둘러보렴. 눈길 닿는 곳마다 생명의 기운들이 가득하지 않니? 우리 앞으로 저 자연과 많이 친해지자꾸나.” ..  (33∼35쪽)


 엊그제 동네 이웃집에서 큼직한 북어 대가리 하나를 얻었습니다. 어른 주먹 둘보다 큼직한 대가리로, 끓는 물에 한참 우린 다음 감자와 양파를 넣고 더 끓여 감자국을 했습니다. 소금과 된장으로 간을 맞춘 감자국은 국 가운데 가장 손이 덜 가고 쉽게 끓이는 국이라 할 만한데, 어릴 때에 집에서 감자국을 퍽 자주 먹었다고 떠올립니다. 제가 입이 짧아 자주 해 주셨는지, 살림이 팍팍해 다른 국거리를 장만하기 어려워 자주 해 주셨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참 푹 삶아 감자가 흐물흐물해지며 풀어지던 감자국 맛은 다른 어느 고기국이나 고기 반찬보다 제 혀에 오래오래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입맛이 없을 때 무슨무슨 맛난 밥을 찾아서 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입맛이 없은 적도 없지만, 입안이 텁텁하거나 힘들다고 느끼면 으레 감자국을 끓입니다. 감자만 넣든 감자와 양파를 넣든.

 이 감자국은 저도 먹고 옆지기도 먹고 아기도 먹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기는 이 감자국을 틈틈이 먹겠지요. 나중에 아기가 자라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된다면, 그때 우리 아이한테 감자국은 어떤 맛으로 남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냥 잊혀질는지, 아이도 무언가 이야기 하나 남은 국거리로 남을는지.


.. “세상에, 분꽃 좀 봐!” “예쁘죠? 여긴 제가 가꾸는 작은 꽃밭이에요. 그런데 분꽃은 항상 저녁에 피어요? 환한 낮에 피면 훨씬 예쁠 텐데.” “그러게. 어릴 때 고향집에서 보고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아주 잊고 살았던 꽃이야. 네 할머니가 분꽃을 좋아하셔서 마당 한켠에는 꼭 분꽃을 심으셨단다.” “헤헤, 할머니도 나처럼 꽃을 좋아하셨네요.” “저녁 무렵 꽃잎이 열리면 은은한 분꽃 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어, 향기가 나는 줄은 몰랐어요.” ..  (143쪽)


 폭식증이 있는 옆지기는 속이 허전할 때면 감자 두 알쯤 강판에 갈아 감자지짐이를 합니다. 감자지짐이를 할 때면 가끔 “또 감자지짐이인데 질리지 않아요?” 하고 물어 옵니다. “난 감자지짐이만 날마다 먹어도 좋아.”

 고등학교를 다니던 1991∼93년 세 해에 걸쳐, 제 도시락은 꼭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1991년에는 김밥. 1992년과 1993년은 볶음밥. 어머니는 아버지와 형과 저, 이렇게 세 사람 도시락을 날마다 싸야 했는데, 형과 저는 밤 열 시까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 얽매여 지내는 중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도시락을 둘씩 싸야 했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도시락 다섯 통을 싸야 한 셈인데, 이렇게 도시락을 싸자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밥하고 반찬을 해도 빠듯합니다. 더구나 형이든 저이든 아버지이든 열한 시는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때에도 또 밥이나 다른 먹을거리를 차려 주셨으니, 날마다 고된 나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고되게 보내던 어느 날이었을 텐데, 어머니는 “도시락 반찬 하기 너무 힘들다.” 하고 한 마디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반찬하는 고단함을 덜려면 어떡해야 할까’ 하는 걱정과 근심이 이어졌습니다. “그럼 날마다 똑같은 밥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날마다 반찬을 새로 안 해도 되는 도시락이면서, 날마다 가장 빠르고 손쉽게 싸는 도시락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김밥 싸기입니다. 그래서 한 해 동안 김밥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외려 김밥 싸기가 더 번거로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밥속 여러 날 치를 미리 만들어 놓고 둘둘 싸면 되니까 일손을 어느 만큼 줄일 수 있기는 했을 테지만, 더 손이 가야 하는 도시락이었겠지요. 김치와 밥만 싸면 되는 도시락이라면 아무 어려움이 없을 텐데, 제가 입이 짧아 김치를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에, 어머니로서는 걱정이 크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반찬을 생각하기보다 김밥을 쌀 때가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해를 김밥 도시락으로만 들고 다니다가, 이듬해와 다음해에는 볶음밥으로 바꿉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 해 반 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 ‘김치 못 먹던 버릇’을 고쳤습니다. 군대 김치는 집에서 먹듯 매운김치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어렴풋이 느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고추가루가 범벅이 된 김치는 거의 삭여내지 못했습니다. 고추가루 기운을 물에 헹구어 내면 어느 만큼 삭여냈고, 흰김치는 때때로 먹곤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하셨겠지만, 모든 사람이 ‘빨간김치’를 잘 먹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고추장에는 설탕을 타니, 단맛 때문에라도 먹는다지만, 맵기만 한 고추나 고추가루가 몸에 안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 양구 읍내 밥집에서 먹던 나물 반찬 때문에, 제 몸에 맞는 먹을거리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저한테는 절인 김치가 아닌 ‘날것대로 먹는 푸성귀’나 ‘살짝 데친 나물’이 가장 몸에 잘 받는 먹을거리였습니다. 저는 찬국수(냉면)는 입에 대지도 못하고 콩국수 또한 조금만 먹는데, 차고 시큼한 국물은 제 몸에 안 받습니다. 뜨겁고 부드러운 국물만 제 몸에 받습니다. 김치찌개는 못 먹고 된장찌개나 청국장이나 우거지국은 잘 받습니다. 어릴 때부터 먹을거리를 놓고 하도 탈이 잦았기에, 탈이 나면서 조금씩 제 몸을 알아갔는데, 누군가 찬국수를 사 준다면서 억지로 시켜 제 앞에 차려 놓아 주면, 애써 시켜 주었기 때문에 안 먹을 수도 없어 몇 젓가락이라도 뜨는데, 이렇게 몇 젓가락이라도 뜨면 으레 한 주 내내 배앓이를 하며 밥을 못 먹습니다.

 옆지기는 저하고 거꾸로입니다. 옆지기는 매운김치도 잘 먹고 찬국수는 아주 좋아합니다. 국물 있는 국과 쌀밥이 잘 안 받습니다. 이런 엄마 아빠한테서 새 목숨을 받은 아이는 나중에 어떤 몸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엄마 밥상대로 차려 주어야 할는지, 아빠 밥상대로 차려 주어야 할는지, 아이는 아이대로 다른 밥상을 차려야 할는지 차근차근 지켜보아야 합니다.


.. “뭔 청승이여, 밥숟갈 뜨다 말고?” “아주머니 청국장에서 고향 냄새가 나서요. 이렇게 진하고 깊은 맛이 나는 청국장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청국장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어려운 거라고.” “아유,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도시 사람들은 이런 냄새 자체를 싫어하거든요. 청국장이 몸에 좋다고 하면서도 그 냄새는 싫어해요. 청국장 한 번 띄우려면 냄새 때문에 눈치가 보이거든요.” “하긴, 배때기가 불러서 그런가. 내 새끼들도 냄새 난다고 안 가져가더만.” “요즘은 냄새 안 나는 청국장도 나온다지만, 아, 냄새가 없으면 제맛도 안 나요. 한번은 몰래 청국장 띄우는데 딸애가 교복에서 이상한 쉰내가 난다고, 냄새가 지워질 때까지 학교에 안 가겠다면서 얼마나 울어대던지.” ..  (166∼167쪽)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어릴 때부터 제 어머니한테서 받아 온 밥상과, 혼인한 다음에 남편한테서 받은 밥상을 받으면서 저 스스로 제 몸에 맞는 밥이 무엇인지를 차츰차츰 깨달아 옵니다. 저는 저대로 제 어릴 때부터 어머니한테서 받은 밥상하고, 혼인한 다음 옆지기한테서 받은 밥상에 따라 제 몸에 어떤 먹을거리가 알맞는가를 하나하나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옆지기 밥차림이 더 맛있다거나, 제 밥차림이 더 맛있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사랑과 믿음을 담아 기쁨과 즐거움으로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밥차림이 되고자 합니다.

 ‘엄마 손맛 = 고향맛’인 듯 여겨 버릇하는 사회 흐름이며, 이러한 사회 흐름이 문화라고 하는 우리 삶터입니다. 겉으로는 일자리에 높낮이나 계급이 없다 하지만, 어느 일자리이든 벌이가 다르고 대접이 다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버젓이 있고, 이주노동자 또한 숱하게 있습니다. 제아무리 남녀평등 여남평등 들먹이더라도, 집밥이든 집살림이든 여자한테 주어진 몫이라 여기는 한편, 아예 ‘여자(아줌마) 가정부’를 돈을 주고 쓰는 일도 흔합니다. 이리 되든 저리 되든, 한 사람으로서 밥을 하고 살림을 꾸리는 흐름과 문화는 거의 뿌리내리지 못하는 가운데 생각조차 되지 않습니다.

 자유가 무엇이고 평등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버스와 택시와 크레인을 여기사가 다루어야 평등이 되는지, 남간호사가 있어야 평등이 되는지, 일이름 앞에 ‘남-’이나 ‘여-’를 붙이지 않아야 평등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생각하는 자유와 평등이라 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제 앞가림을 저 스스로 하는 자유와 평등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제 앞가림을 저 스스로 하는 첫길은 바로 밥차림입니다. 다음은 옷차림입니다. 다름은 집차림이고, 집살림입니다. 제 밥을 제 손으로 차릴 줄 모르고, 제 옷을 제 손으로 손질하고 빨 줄 모르며, 제 집 치우기와 꾸미기를 제 손으로 할 줄 모른다면, 어떠한 제도와 이론과 학문으로 평등이나 자유를 외친들 모두 덧없는 지식조각으로 그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한테는 ‘엄마 손맛’도 ‘아빠 손맛’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보여줄 수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 식구 손맛’이나 ‘사람을 살리는 밥 한 그릇 손맛’만 보여줄 뿐입니다.


 (2) 《엄마의 밥상》이라는 만화책


 만화쟁이 박연 님은 1980년부터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1982년부터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85년에 다시 서울로 와서 만화를 다부지게 그려 보자고 마음먹었다지만, 서울은 느긋하게 지내기 어려우며 천천히 둘러보며 걸어다닐 길이 너무 없다고 느끼며, 1987년에 다시 시골 농사꾼 삶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나라에 ‘농사를 지으며 만화를 그린다’든지, ‘만화를 그리며 농사를 짓는다’든지 하는 분이 몇쯤 될까 궁금한데, 박연 님은 퍽 예전부터, 그러니까 만화를 처음 그렸을 무렵부터 ‘농사꾼이며 만화쟁이’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화쟁이이면서 농사꾼’인 셈이었습니다.


.. “근데 넌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었어?” “사진 찍고 있었어. 꽃 사진 찍는 게 취미야.” “꽃? 무슨 꽃?” “저기 봐. 하얀 민들레야. 신기하지?” “에이, 민들레가 뭐가 신기해. 흔한 거잖아.” “모르시는 말씀. 하얀 민들레는 우리 나라 토종 꽃이야. 우리가 흔히 보는 노란 민들레는 서양 꽃이고 …….” ..  (25쪽)


 박연 님이 처음 그린 작품이라든지 나중 그린 작품이라든지, 박연 님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헤아릴 만한 작품은 따로 없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에 내놓은 《들꽃 이야기 1》(허브)에 당신 삶을 소롯이 담아냈습니다. 그런 다음 세 해가 지난 2008년에 내놓은 《엄마의 밥상》에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하고도 함께 나누려는’ 몸짓을 부드러이 선보입니다.

 안타깝게도 《들꽃 이야기 1》만 나오고 2번이나 3번은 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1번마저도 출판사에서 더 찍어내지 않습니다. 지난 2008년에 펴낸 《엄마의 밥상》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말농장 일구는 삶’를 줄거리로 담아내는데, 이 만화는 한 권으로 끝내는 작품이 아니라 《엄마의 밥상》이 1권이 되어 앞으로 2권이며 3권이며 나와야 할 작품이건만, 이참에도 뒤엣권이 나올 수 있는지 없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농사짓는 만화쟁이 박연 님이 아무리 살갑고 따뜻하고 재미나게 《들꽃 이야기 1》하고 《엄마의 밥상》을 그려냈다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들은 이 살가움과 따뜻함과 재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받아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엄마이든 아빠이든 어버이 된 사람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려 준 밥상에 담긴 맛과 멋을 아이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구나 아이한테 차려 주는 밥상에 제대로 사랑을 못 담고 있는 오늘날에는, 아무래도 《들꽃 이야기 1》하고 《엄마의 밥상》은 퍽 어려운(?) 작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우와 그럼 쟤(오리)들이 농사꾼이라는 얘기네.” “맞아, 쟤들이 사람 대신 여름 내내 벌레랑 잡초들을 잡아 주니까.” “야, 정말 신기하다.” “서울 촌놈에겐 신기하겠지!” “뭐, 서울 촌놈?” ..  (66∼67쪽)


 뭐랄까. 모두들 ‘서울 촌놈’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꽃내음 하나 맡을 줄 모르게 되었잖습니까. 장미 냄새는 맡을 줄 안다지만, 꽃다지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서울내기 코가 있겠습니까. 튤립 냄새는 맡을 줄 알아도, 냉이꽃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서울내기 코가 있을까요. 백합 냄새나 수선화 냄새를 맡는다 하여도, 오이꽃과 도라지꽃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서울내기 코는 얼마나 될까요.

 그나마 호박꽃은 보기는 보았을지 몰라도, 무꽃이나 감자꽃이나 고구마꽃이나 파꽃이나 배추꽃을 본 서울내기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른이든 아이이든. 지식인이든 노동자이든. 부엌데기로 지내는 아줌마이든 회사원으로 지내는 아저씨이든.


.. “난 울 엄마가 해 주는 거 맛없어.” “?” “밖에서 사먹는 게 제일 맛있어.” “그거야 미남이 엄마는 바빠서 신경을 많이 못 쓰니까 그렇지.” “맞아, 맞아.” “헹! 일요일에도 귀찮다고 시켜먹는걸.” “살림하랴, 직장 다니랴, 너무 힘드니까 좀 쉬고 싶은 거지. 그래도 네겐 항상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신다구. 그러니까 이모가 부탁받고 대신 해 주지 않니.”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 나도 우리 엄마의 손맛을 느껴 보고 싶다구요.” ..  (174∼175쪽)


 아침마다 언제나처럼 지난 밤에 나온 기저귀 빨래를 하며 열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빨래를 않고 있습니다. 아기하고 옆지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을 때, 아빠 된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리며 밀린 글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깨어나면 글쓰기고 책읽기고 할 수 없습니다. 얼른 글쓰기를 얼마쯤 마치고 아침밥을 안쳐야 하고, 그런 다음 기저귀며 여러 옷가지를 빨아야 하며, 마루바닥까지 훔쳐 놓아야 합니다.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숱한 일감인데, 이 일감을 기계한테 맡긴다면, 그러니까 빨래기계한테 맡기고, 밥기계한테 맡기고, 청소기계한테 맡기고, 냉장기계를 두면 일손이 줄어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집안일을 맡는 일손은 그냥 일손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집안일 맡는 일손은 살림하는 일손입니다. 살림이란 ‘삶’입니다. 살림꾼이란 ‘삶꾼’입니다. 내 목숨을 간수하는 일이 삶이고 살림입니다. 나한테 한 번 주어진 삶을 더 알차고 사랑스레 붙잡는 일이 바로 살림입니다. 집살림이란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해야 할 지겨운 일거리나 짐덩이가 아니라, 날마다 똑같이 맞아들이는 고마운 ‘목숨잇기’입니다.

 날마다 똑같이 숨을 쉬고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서, 날마다 똑같이 일을 하고 놀이를 즐기고 아이를 어릅니다. 어느 하나 이어지지 않은 고리가 없고,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집안일을 하다가 왼손을 좀 크게 다쳐 두 달 남짓 손을 제대로 못 쓰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손빨래를 그치거나 남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밥하기를 다른 어느 누가 우리 집에 와 주어서 해 줄 수 없으며, 바깥밥을 사먹을 형편 또한 아닙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참고 견디면서 하루하루 내 온 땀을 들여 사랑이 밴 옷가지를 아이한테 내주고 믿음이 스민 밥그릇을 아이한테 내밉니다.

 우리 살림을 꾸리는 곳은 비록 도시이지만, 우리 살림을 이루는 무엇이든 시골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저와 옆지기 손품을 들여 서로서로 나누고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낮에는 갓난쟁이한테 기저귀를 안 채우는데, 마루바닥과 부엌 곳곳에 오줌을 싼 다음, 이 녀석이 엎드려서 오줌을 손바닥으로 휘젓습니다. 물장난을 치는가 싶기도 하고, 가만히 보면 지 엄마와 아빠가 걸레질을 하며 오줌을 닦아내는 모습하고 닮았습니다. 오늘은 한번 아기 손에 행주를 쥐어 줘 볼까 합니다.


.. 아기 피부같이 부드러운 흙속에선 봄이면 수많은 생명이 깨어나 기지개를 켠답니다. 꼬물거리는 작은 벌레, 딱딱한 씨앗을 뚫고 힘차게 자라나는 새싹, 그리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짐승들까지. 봄의 밭에는 넘치는 생명이 가득하지요 ..  (40쪽)


 만화책 《엄마의 밥상》은, 《행복한 밥상》과 《소박한 밥상》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아직 뒷소식은 없습니다. 농사짓겠다고 도시를 등지는 사람이 제법 늘고, 주말농장 하는 분 또한 꾸준히 늘지만, 《엄마의 밥상》을 품에 안으면서 ‘나 스스로 내 발을 흙에 디디고 내 손에 호미와 낫을 들고 풀을 다스리려 하는 까닭은, 바로 이 흙이 우리 모두를 낳았으며 내가 오늘을 살게 하는 사랑터’이기 때문임을 깨닫는 사람까지는 좀처럼 늘지 못해서인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농사짓는 만화쟁이 박연 님 다음 작품을 몇 해 사이에 구경하기는 힘들 듯합니다. 그러나, 《엄마의 밥상》 하나는 튼튼하게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둘째 아이(책)도 태어나고 셋째 아이(책)도 태어난다면 더 반가울 테지만, 아이 하나로도 얼마든지 기쁘고 반갑고 고맙습니다. 곰곰이 삭이고 찬찬히 되삭이고 꾸준히 거듭 삭이면서 이 하나를 사랑해 주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기다려야지요. 둘째와 셋째를.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를. 나아가 여섯째와 일곱째를. (4342.7.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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