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1 - 대답 없는 너
토베 케이코 지음, 주정은 옮김 / 자음과모음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아이는 우리한테 맑은 빛입니다
 [살가운 만화 55] 토베 케이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 책이름 :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1∼12)
- 글ㆍ그림 : 토베 케이코
- 펴낸곳 : 자음과모음 (2003∼2008)
- 책값 : 한 권에 8000원씩



 (1) 어른과 어버이


 볕이 들다가 말다가 하던 일요일 낮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다닌 골목마실 가운데 동네 아이를 가장 많이 마주한 하루였습니다. 아이는 이웃동네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그냥 그곳에 눌러붙으며 오래오래 놀고 싶은 눈치입니다. 그러나 아빠는 이 골목 저 골목 두루 누비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빠로서는 퍽 ‘오래’ 한 곳에 멈추어 동네 아이랑 섞인다 할지라도 아이한테는 그리 ‘오래’가 되지 못합니다. 적어도 한 시간쯤은 놀아야 논다고 할 만할 테니까요.

 여러 동네를 여러 시간에 걸쳐 두루 다닌 사람이 보기로는 이 골목 저 골목마다 아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골목마다 제법 많은 아이들이 서로 복닥이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저희들 집이 깃든 골목 언저리에서만 맴돌 뿐, 조금 더 나아가 이웃동네 아이들하고 어울리지 못합니다.

 동네 모습에 따라 아이들 놀이가 다릅니다. 동네에서 어버이가 아이를 보살피는 매무새에 따라 아이들 눈빛과 기운이 다릅니다. 아랫도리를 벗고 맨발로 골목에 서서 텃밭 가장자리에 골라진 돌을 헌옷 모으는 통에 던져 넣는 아이는 집에서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골이 났기 때문일까요. 이윽고 애 엄마가 동네 텃밭 위쪽 계단 타고 꽤 올라가는 기스락집 난간에서 아이를 찾더니 소리소리 지르며 나무랍니다. “너 맴매해야겠어!”

 행정구역으로는 아랫도리 벗고 골 부리는 아이가 사는 집하고 같은 동네인 금곡동 다른 쪽에서는 다 다른 집에 사는 세 아이가 이 집으로 저 집으로 기웃기웃하면서 동네 개하고 놀고 길에서 뛰고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놉니다. 한 아이가 사는 골목집 앞에서 빨래 널린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자니, 이 집 애 엄마가 어느새 다가와서 “여기에서 뭘 찍을 게 있어요? 빨래요? 저거 그냥 던져 널은 건데.” 하며 웃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올려다보니 빨래가 꽤 구겨져 있습니다. 아이 보랴 뭐 하랴 바쁘다 보니까 제대로 털지 못하고 부랴부랴 널기만 하셨군요.


..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 알 수 있어요.” “네? 선택하는 사람의 기분이라뇨?” “전에 제가 저지른 실수인데요. 그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시키기 위해 더 싫어하는 것을 섞어 놓고, 둘 중의 하나를 고르게 한 적이 있어요. 본인에게는 뭘 골라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선택을 하는 즐거움 따윈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잘못을 곧 깨닫고 더 이상 강요하진 않았지만 두고두고 후회가 되네요. 선택을 통해 본인의 의지를 끌어내 볼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그 선택이란 것이 결국 제 의지만을 강요하는 수단이 돼 버린 거였어요.” ..  (6권 151쪽)


 일요일을 맞이했기 때문인지, 골목 한켠에서 끌신 차림으로 슬슬 거닐며 아이랑 놀아 주는 애 아빠를 드문드문 만납니다. 집안에서 아이맡에 앉거나 누워 아이하고 놀고 있는 애 아빠를 하나둘 마주합니다. 일요일이기에 아이하고 놀아 주는 애 아빠일는지, 여느 날에도 아이랑 신나게 놀아 주는 애 아빠일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여느 날에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애 아빠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누리가 제아무리 남녀평등이 어느 만큼 이루어지고 있다 할지라도, 혼인을 한 두 사람이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할 때에는 거의 어김없이 엄마 쪽이 바깥일을 멈추거나 그만둔 다음 아이를 보기 마련이니까요. 어쩌면 두 분 모두 바깥일을 하며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기거나 어린이집에 맡길는지 모릅니다.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바깥일을 그만둔다든지, 또는 두 쪽 모두 바깥일을 접는다든지 하는 사람이란 도시에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니면,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복닥이는 새 삶을 꾸려야 한다고 느끼며 언제나 아이 곁에서 지낼 수 있는 새로운 바깥일을 찾거나 꿈꾸는 사람을 볼 길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당신들 스스로 당신들이 당신 아이처럼 어릴 무렵에 당신 어버이가 당신들을 집에 달랑 남겨 놓고 하루 내내 바깥일을 한다며 나가 있으면 얼마나 싫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심심했는가를 금세 잊고는, 당신들 또한 당신들 어버이가 했던 잘못과 슬픔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 어버이와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슬픔을 되풀이하는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 ‘안달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 보자.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을 가르쳐 준 건 히카루, 바로 너란다.’ ..  (5권 74쪽)


 아이를 키우는 삶이란 참으로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란 더없이 고단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나날이란 몹시 힘겨우며 벅찹니다. 온 하루를 아이하고 붙어 지내는 가운데 밥하고 빨래하고 집 치우고 하노라면 하루가 아주 짧을 뿐 아니라 오늘이고 어제이고 글피이고를 가늠하지 못합니다. 어느새 새벽이고 아침이며 낮이다가는 저녁과 밤입니다. 아이랑 부대끼면서 애 엄마나 애 아빠가 즐기고 싶은 책이라든지 영화라든지 무어라든지 느긋하게 즐길 수 없습니다. 기운이 다 빠져 책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텔레비전을 켠다든지 자리에 드러눕는다든지 합니다. 아이가 골을 부릴 때에 차분하게 마주하면서 따스한 말씨를 건네고 토닥토닥 보듬으면서 골을 풀어 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이를 먹고 혼인을 하여 아이를 낳았다뿐이지, 혼인을 했거나 사랑놀이를 즐기거나 아이를 낳았다고 ‘어른’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버이’란 이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른답게 굴어야 어른이요 어버이다이 살아야 어버이입니다. 밥그릇 숫자로 어른이 될 수 없고, 덩치가 크고 돈을 번다고 어버이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직하면서 튼튼하고 슬기로운 넋을 건사하는 가운데 맑고 밝은 얼을 나눌 줄 알 때라야 비로소 어른입니다. 사랑스러우면서 넉넉하고 고운 마음을 지키는 가운데 싱그럽고 다부진 몸을 다스릴 줄 알 때라야 바야흐로 어버이입니다. 제 슬기와 깜냥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 어른이고, 제 피와 살을 스스럼없이 깎아 나누는 사람이 어버이입니다. 전두환 같은 분들은 나이를 아무리 많이 잡수어도 어른이라 할 수 없고, 아이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손찌검을 할 뿐 아니라 신나게 놀아 주는 너른 품이 없는 분들은 아이를 아무리 여럿 낳았어도 어버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이 세상에는 히카루한테 보여주기 싫은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쓸데없는 것들은 잊고 살고 그러면 좋을 텐데. 지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와 사라지는 저 모래처럼.’ ..  (7권 142∼143쪽)


 아이 앞에서 좋은 모습 거룩한 마음밭 사랑스러운 몸짓 훌륭한 삶 올바른 말을 보이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따로 아이 앞에서 좋은 모습으로 그치지 말고 어른 스스로 좋은 모습을 아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 앞이기 때문에 거룩한 마음밭이 아니라, 아이가 없던 지난날부터 스스로 거룩한 마음밭이 되도록 일구어야 합니다. 아이 앞이라 사랑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 언제나 스스로 사랑스러운 몸짓을 북돋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 앞일 때에만 훌륭한 삶인 척하는 사람이 아니요, 언제 어디에서나 훌륭한 삶을 믿고 꿈꾸며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 앞에서만 올바른 말을 가리거나 쓰는 겉치레가 아닌, 어른 앞에서이든 어른인 동무들 앞에서든 늘 올바른 말을 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무엇 한 가지 가르치기 앞서 어른 스스로 먼저 배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몸에 나쁠 먹을거리를 차리지 않겠다면 어른부터 제 몸에 나쁠 먹을거리를 손사래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물 맑고 바람 맑고 햇볕 고운 터전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어른부터 물과 바람과 햇볕을 어지럽히는 물건을 쓰지 않을 뿐더러 우리 삶터를 맑고 곱게 돌보는 데에 이바지할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이 책(자폐증에 대해서)은 내가 좀 빌려 가마.” “아, 그건.” “청소하다 보니 나오더구나. 근데 내용이 어려워서 읽어 봐도 잘 모를 거 같구나.” “저도 그랬어요. 그래도 천천히 읽어 보세요, 어머니. 그리고 다시 한 번 있는 그대로 우리 히카루를 봐 주세요.” ..  (1권 103쪽)


 아이는 저를 키우는 어른이나 어버이를 바라보며 자랍니다. 아이는 저를 키우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얼마나 스스로 담금질을 하며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눈여겨보며 자랍니다. 못난 어른이거나 몹쓸 어버이한테서 뜻밖에 착하며 참된 아이가 자랄 때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참된 어른으로서 참된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하고, 착한 어른으로서 착한 아이를 돌볼 줄 아는 어버이로 살 노릇입니다.

 내 모습과 내 삶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배우는 아이인데,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내 눈길과 내 손길을 낱낱이 살펴보며 받아들이는 아이인데, 아이와 함께 어떻게 지내야 하겠습니다. 내 말투와 내 목소리를 고이 새겨듣는 아이인데, 아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벗을 사귀어야 하겠습니까.
 







 (2) 만화책 《히카루와 함께》


 한국판으로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는 이름이 붙으며 옮겨진 만화책 《히카루와 함께(빛과 함께)》를 그린 토베 케이코 님은 2010년 1월 28일에 쉰셋이라는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연속극으로 만들기까지 했다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입니다. 가만 보면, 일본에서는 훌륭한 만화 하나가 태어난 다음, 이 만화를 바탕으로 연속극이나 영화를 찍는 일이 꽤 흔합니다. 만화를 연속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한다기보다, 훌륭한 만화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연속극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한다고 해야 옳구나 싶습니다.

 이와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만화가 연속극이나 영화라는 새옷을 입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예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는 어린이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문학을 연속극이나 영화라는 새옷을 입힌 적이 몇 차례나 있었을까요. 흥행을 노리는 상업영화 아닌 아름다움을 나누려는 문화와 예술로 다시 태어나도록 일구는 손길과 몸짓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관객 몇 십만을 끌어들일 꿈을 안는 ‘어른만 보는 영화’를 넘어 관객이 얼마 들어오느냐 아니냐에 앞서 ‘사랑과 믿음과 아름다움을 두루 펼치면서 기쁘게 맞이할 영화’를 꿈꾸는 예술인 영화인 작가 문화인이란 분은 몇이나 있을까요.


.. “모두 평등하게 대하고 히카루만 특별대우를 하라고? 그럴 수야 있나요. 학생들 개성이 그렇게 다른데. 특별대우를 할 거면 모두 특별대우를 해야죠.” … “집 근처에 괜찮은 유치원은 없니?” “전에 히카루에게 집단 생활을 시켜 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까운 유치원을 전부 다 둘러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받아주지 않았고, 받아주는 유치원도 자폐 아동을 그다지 잘 돌봐 주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 뒤로 별로 변한 것도 없어 보이고.” “그야 히카루를 기준으로 했을 때 그런 것 아니냐? 카논에게는 그런 곳이 좋을 수도 있어.” “과연 그럴까요? 아이들 여럿이서 섞여 노는 중에 그런 식으로 한 아이를 팽개채 두는 곳은 카논에게 있어서도 바람직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요. 자기들과는 다른 타입의 인간을 그런 식으로 몰아내는 집단. 저는 너무 무서워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 카논을 맡기고 싶진 않아요.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설령 선생님이 우리 카논을 예뻐 하신다 해도 저는 싫어요. 복지 센터, 보육원에 초등학교, 그렇게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깨달았어요. 히카루를 소중하게 대해 주시는 보육사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소중하게 대해 주신다는 사실을요. 저는 히카루나 카논 모두 어떻게 하면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 속에서 안심하고 키우고 싶어요, 어머니.” ..  (5권 117, 212∼214쪽)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자폐를 안고 태어난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 열두 권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거듭 읽다 보면, 주인공은 ‘빛(일본말로 ‘히카루’)돌이’인 아이라기보다 자폐 아이를 낳아 키우며 새로운 삶을 배우며 또다른 길을 찾는 한편 비로소 어른다움이 무르익고 아름다움을 사랑할 줄 아는 어버이가 되는 어머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장애인을 장애인 아닌 걸림돌로 여기는 사람은 비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이 누릴 장애인 권리를 짓밟는 사람은 바로 비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을 장애인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껴안지 않는 사람은 다름아닌 비장애인입니다.

 장애인 스스로 장애인 삶을 더 제대로 살피고 더 올바로 깨달아야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비장애인들 스스로 비장애인이란 어떤 사람이요, 비장애인과 언제 어디에서나 이웃하고 있는 장애인이란 어떤 사람이며 삶인지를 깨닫고 느끼고 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장애인인 사람이 말썽을 일으키거나 바보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자꾸자꾸 ‘장애인 인권 차별’이 생겨납니다. 권력을 움켜쥔 이들이 말썽을 일으키거나 바보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끝없이 갖가지 사건과 사고가 터집니다. 더 배운 사람과 더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만드는 입시지옥과 교육 문제입니다. 더 잘나고 더 이름나고 더 돈있는 사람들이 우리 삶터를 더 엉터리로 만들거나 더 뒤죽박죽으로 흩뜨립니다.


.. “학대는 가족도 하는 걸요. 저도 히카루 어렸을 때 학대 직전까지 간 적 있었어요. 몸을 가누지 못해 자식한테 학대를 받는 노인도 있을 거 아니에요. 단순히 시설이니까, 가족이니까 하는 것만으로는 그 속사정을 모르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을 수도 없고, 정신적으로는 한계가 왔는데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친다면, 그런데 보는 사람은 없고, 아니 설사 누가 본다 해도 체벌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라면. 저도 히카루를 때릴 때는 항상 아무도 없을 때였어요. 밖에서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누르며 숨기죠. 안 보는 데서 약한 생명을 괴롭히며 비명을 지른 셈이에요. 그 상태 그대로 갔다면 어땠을지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 혼자 악전고투하는 엄마라도 안 때릴 사람은 안 때려요. 한심하게도 난 그렇게 강한 엄마가 못 됐던 거예요. 그래서 더욱 따뜻한 시선이나 도움이 고맙게 느껴졌고, 덕분에 이렇게 좋아졌잖아요.” ..  (8권 180∼182쪽)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비장애인인 사람들한테 읽힐 길잡이책이라 할 만한 이야기책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분들한테는 성경책이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 한다면, 한 사람을 한 사람 그대로 사랑하고자 하는 분들한테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는 만화책이 더없이 아름다울 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만화책 열두 권에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지키는 길과 사람이 사람다움을 지키지 못하는 길을 ‘좋으니 나쁘니 하는 금긋기’로 따지지 않으면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아이가 태어난 일이 기쁨이요 즐거움이지, ‘장애 없는’ 아이가 태어났거나 ‘장애 있는’ 아이가 태어났대서 기쁨이거나 즐거움이 아닙니다. 장애 없는 아이가 태어나서 고마울 수 없습니다. 장애 있는 아이가 태어나서 슬플 수 없습니다. 장애 있는 아이가 태어났기에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장애 있는 아이라든지 장애 없는 아이라든지가 아니라 ‘우리한테 빛과 같은 목숨’이 곱다시 찾아왔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어린 넋입니다.

 대학교마다 사회복지학과가 있고 육아교육과가 있으며 또 무슨무슨 교육을 베푼다든지 보건과 복지 따위를 다루는 학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학과마다 숱한 교재와 교과서가 있으며, 복지사 자격증을 딴다든지 교사 자격증을 딴다든지 하는 사람은 수십만에 이릅니다. 그러면 이들 자격증을 딴 사람들은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거나 아이를 아이 그대로 맞아들이는 아름다운 넋일는지요? 이 사람들한테 지식을 베푸는 교재와 교과서는 가장 아름다운 책일는지요? 사람이 사람이 될 밑바탕 슬기와 삶을 담고 있는 책일는지요?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나 장애 인권 다루는 학과’에 다니는 학생들한테 교재와 다를 바 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책을 보면 ‘참 많이 가르쳐 주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하나에서 가르치는 이야기는 이 책이 대단하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책을 그려낸 분이 당신 둘레 삶을 찬찬히 곱씹고 곰삭이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릴 수 있었고, 이렇게 그려냈기에 소담스러운 삶자락을 나눌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소담스러운 삶자락은 우리 스스로 우리 둘레 삶을 찬찬히 헤아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누구나 언제라도 익힐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둘레에 흔하고 너른 삶자락인데, 우리들은 이러한 흔하고 너른 삶자락을 여느 때에 살피지 않기에 가장 깊고 큰 아름다움을 이렇게 만화책 하나에서 새삼스럽게 느끼거나 배웁니다.


.. “너 자꾸 말 안 들을래?” (따귀를 짜악) “아아, 내가 무슨 짓을.” “아예 애를 더 울리고 있군. 당신 자식이잖아. 좀 조용히 시켜.” “그러는 당신이 좀 달래 봐요.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애한테 뭘 어떻게 하라고요. 당신 자식이기도 하잖아요. 엄마라고 해서 전부 나한테 떠넘기지 말아요! 히카루가 자폐증이 된 건 히카루 탓도, 제 탓도 아니라고요. 그저, 어쩌다 우연히 겹쳐서 그렇게 된 것뿐인데. 당신은 히카루가 부끄럽죠? 그러니까 숨기지 못해 안달이지요. 아버님 기일 때도 당신한테 망신을 줬다며 화만 냈어! 그게 무슨 가족이에요. 가족이라면 서로 도와야 하지 않나요? 당신이 아버지라면 우리를 감싸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나도 지긋지긋해. 그동안 나라고 편했을 것 같아? 여긴 내 집이야. 불만 있으면 당신이 나가.” “뭐라고요?” “나가라고. 매일 밤 파김치가 돼서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데! 나도 편하게 쉬고 싶다고!” “하아, 그러시군요. 히카루, 옷 입자. 밖은 추워. 당신과는 이제 끝이야. 어디 영원히, 혼자 조용히 살아 봐요!” ..  (1권 72∼75쪽)


 일본은 만화가 넘실거리는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에 옮겨지는 만화 가짓수만 보아도 ‘일본에는 만화쟁이들만 있나?’ 싶을 만큼 만화가 넘실거립니다. 그러나 일본은 만화가 넘실거린다기보다 ‘만화라고 하는 예술 갈래 하나’로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멋과 맛을 잘 안다고 해야 알맞다고 봅니다. 그냥저냥 그리는 만화가 아닙니다. 만화 하나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를 다룬다고 할 때에는 이 이야기 하나를 아주 깊이 파헤치고 널리 보듬으면서 다룹니다. 이 이야기 하나에 얽힌 수많은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헤치고, 이 이야기 하나가 우리 삶하고 어떻게 얼마나 이어져 있는가를 밝힙니다.

 훌륭한 만화는 지식을 늘어놓는 작품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만화는 눈물이나 웃음을 억지로 쥐어짜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알며 제대로 살아야 하는데, 제대로 알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살지 않으니 몇 가지 아주 큰 대목에서만 지식조각을 조곤조곤 풀어놓습니다. 사람들이 웃음과 눈물을 뚱딴지 같은 딴 나라에서만 찾고 있으니, 수수한 웃음과 투박한 눈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샘솟는가를 알려줍니다.


.. “히카루는 이미 취학 상담 요양학교로 가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이 학교의 무궁화교실에 다니게 하고 싶어요. 요양학교에도 가 봤습니다. 우리 애한테 그 학교가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힘들게 우리 히카루를 이해해 준 보육원 친구들과 헤어지게 돼요. 교장 선생님, 아마 저는 히카루보다 먼저 죽게 될 겁니다. 남편 역시 그렇겠죠. 저희가 죽더라도 우리 아들이 이 동네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애를 갖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우리도 맡고 싶습니다. 하지만 입학서류는 제대로 받겠습니다. 그 취학 상담하는 직원에게 계속 저희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세요. 하실 수 있겠지요, 어머니?” ..  (1권 245, 246쪽)


 함께 살아갈 터전이니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사람이니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장애인이니 비장애인이니 하는 금긋기란 비장애인이 놓은 금입니다. 장애인 스스로 장애인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고 비장애인이란 이름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모두 비장애인들이 저희 마음대로 지껄이는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에 나오는 자폐 아이는 ‘장애인’이나 ‘장애 어린이’가 아닙니다. 일본 이름으로는 ‘히카루’이고, 우리 이름으로 옮겨적으면 ‘빛돌이’나 ‘빛누리’나 ‘빛나라’입니다.

 이리하여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자폐 어린이를 막대접할 뿐 아니라 장애인 인권과 교육을 내팽개치는 일본 사회를 넌지시 꼬집는다든지 이런 사회에서 기운차게 살아가는 한 식구 수수한 삶을 보여주는 만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올바른 삶을 제대로 몰랐던 바보스러운 어른들이 빛과 같이 아름다운 목숨 하나를 처음 만나면서 바야흐로 고운 삶과 사랑스러운 넋을 아끼고 즐길 줄 알아 가는 수수한 만화라 할 수 있습니다.


 (3) 몇 가지 말마디 더 들여다보기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꽤 긴 작품입니다. 모두 열두 권에 이르기도 하지만 권마다 250쪽 안팎이 되니까, 쪽수로 치면 자그마치 3000쪽이 웃도는 긴 만화인 셈입니다. 이 만화는 1권부터 12권까지 내처 읽어내며 차근차근 자라고 눈을 뜨는 사람들 매무새를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다 읽은 다음에는 사이사이 한 권씩 따로 끄집어내어 읽으며 그때그때 다 다르게 펼쳐지는 삶에 어떠한 아름다움과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에 이르기까지 군더더기란 없는 가운데, 곰곰이 되씹을 만한 이야기가 넘칩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 말마디를 더 옮겨적어 봅니다. 아주 마땅하고 아주 쉬우며 아주 수수한 이야기야말로 우리한테 가장 맛나고 가장 맑으며 가장 빛나는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3.5.31.달.ㅎㄲㅅㄱ)


- ‘엄마는 너희들이 그렇게 웃는 것만 봐도 너무 행복해.’ (6권 235쪽)

- “저, 가끔 애를 때리기도 했어요. 그래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도 않고, 매일 저렇게 우는 소리를 듣고 살자니, 나까지 미칠 것만 같아서. 애가 얼마나 아팠을까요. 어른 손으로 저렇게 작은 애를. 애한테 너무 미안해요.” “때리는 네 마음도 아팠잖니. 때려 놓고도 많이 후회했을 거 아냐.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렴.” “엄마.” ‘바보같이. 내 이럴 줄 알았지. 혼자서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 (1권 77∼78쪽)

- ‘저 아이 혼자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색깔의 모자를 씌워 놓고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혼자 방치해 두고 있다. 저 아이가 우리 히카루로 보여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곳에는 절대 맡길 수 없어! 분명 다른 어딘가에 자폐 아동을 잘 맡아 줄 만한 유치원이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다닐 수 있는 그런 유치원은 없었다. 이렇게 우리처럼 좌절을 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동 천 명당 한두 명이라는 자폐 아동. 그런데 그 아이들을 받아 주는 곳은 왜 이리 적은 건지. 센터만 해도 자리가 나길 반 년이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수십 명 있다고 한다. 대체 왜?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해? 취학하기 전 중요한 1년. 우리 히카루한테도 단체 생활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다 자기가 갈 곳을 찾아 떠났는데 아기들만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1권 144∼145쪽)

- “그런데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행동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그걸 전혀 모르는 거예요. 그런 장애를 가진 아이입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 “난 처음 봤어. 자폐증 걸린 애. 그런 생난리도 없더라. 천만다행이야. 우리 애가 정상인 게.” “정말 가엾더라.” “그렇지만도 않지 뭐. 누가 알아? 저러니까 남보다 쉽게 입학할 수 있었는지.” ‘저렇게 말을 막 하다니.’ “아, 히카루 엄마. 정말 힘들겠어요. 힘내세요. 우린 아까 일 전혀 신경 안 쓰거든요.” ‘알아. 하나같이 다들 나쁜 뜻은 없는 거. 그저 저 사람들한테는 남의 일일 뿐, 동정을 하면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야.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만났잖아. 속을 홀딱 뒤집어 놓는 말을 하는 사람이나 착한 척하며 사람 우습게 보는 사람들!’ (1권 160∼161쪽)

- “저(히카루)는 이담에 커서 밝고 씩씩하게 일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1권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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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 바닷마을 다이어리 1 바닷마을 다이어리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사랑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살가운 만화 54] 요시다 아키미, ‘바닷마을 다이어리’ 1ㆍ2



- 책이름 :
 바닷마을 다이어리 1 -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바닷마을 다이어리 2 - 한낮에 뜬 달
- 글ㆍ그림 : 요시다 아키미
- 옮긴이 : 조은하(1권), 이정원(2권)
- 펴낸곳 : 애니북스 (2009.5.13./2009.12.23.)
- 책값 : 8000원씩



 (1) 엄마다움, 아빠다움, 아이다움


 지난 2008년 8월 15일 밤, 한여름이었음에도 한밤에 세차게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온도가 뚝 떨어졌습니다. 이튿날 8월 16일 새벽 다섯 시에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한여름에 아이를 낳기 때문에 더위로 애먹을까 걱정을 했지 날이 추워 오들오들 떨며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도 몸이 안 좋던 옆지기는 아이를 낳으면서 몸이 더 나빠졌고,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되어도 몸이 나아질 낌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제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꾸려 영등포역으로 간 다음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갔습니다. 온 동네가 재개발로 들쑤석거리는 인천에서는 도무지 깃들일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버거워 멀리멀리 시골마을을 알아보려고 경주로 가는 길에 대구에서 한 번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을 나선 날부터 갑작스레 눈이 오고 추위가 닥칩니다. 아이한테 아주 젖을 끊고 밥만 먹이고 있는 지 얼추 보름이 되자 옆지기는 엊그제부터 달거리를 다시 합니다. 사람들은 젖을 뗀 아이가 애를 먹겠다고 근심을 하지만, 처음부터 몸이 아픈 채로 아이를 낳은 옆지기 또한 애를 먹으면서 힘들 줄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겨우 짬을 내어 시골마을을 돌아다녀 보고자 했지만, 다시금 몸이 몹시 나빠진 옆지기와 함께 움직일 수 없기에 어제 아침에 부랴부랴 다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옆지기는 새벽 다섯 시까지 잠이 들지 못하다가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는 저녁 아홉 시 무렵 고맙게 일찍 잠들어 주었으나 새벽 네 시 이십 분부터 깨어 도무지 다시 잠들 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 칭얼 저리 낑낑 요리 버둥 조리 꿍얼 하면서 뒤척이고 울고 투정을 부립니다. 힘들 때에는 새근새근 잠들어 주면 더없이 좋을 텐데, 새근새근 잠들고 나면 고단함이 조금은 가실 텐데, 아무래도 힘든 사람보고 푹 자라고 하는 말은 입발린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힘든 사람은 잠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면서 더 힘든 나날이 팍팍하게 이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눈곱만큼도 슬프지 않다니 당황스럽다. 부모님은 내가 일곱 살 때 이혼했다. 할머니 얘기로는 아버지 빚과 여자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했다. 이혼하고 2년 뒤엔 엄마가 재혼한다며 집을 나가 버렸다. 그날 이후 언니와 나, 내 동생은 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부모님과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이젠 할머니마저도 돌아가셨고, 낡은 집엔 우리 세 자매만 남았다.’ … “작은언니. 생판 모르는 아저씨가 누워 있어.” ‘눈물이 안 나와요, 아버지.’ ..  (1권 14∼15, 35쪽)


 다가오는 토요일은 처남이 태어난 날입니다. 옆지기한테는 동생인 처남은 중학교 1학년입니다. 옆지기는 저한테 당신 동생 태어난 날 이야기를 하면서 동생 보러 찾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산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그곳에 어찌저찌 찾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있는 모텔에서 자야겠지?” 하고 말을 잇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만만치 않은 살림을 고단하게 꾸린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옆지기 부모님 살림을 돌아본다면 우리와 견줄 수 없이 고단하고 벅찹니다. 그래도 우리 세 식구 지내는 집은 겨울에 춥지 않았고 물을 마음껏 쓰며 코앞에 저잣거리와 생협이 있습니다. 때때로 잊어서 그렇지, 우리 조그마한 살림집은 퍽 좋은 보금자리입니다. 그만큼 달삯이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옆지기 식구들은 물이 안 나오는 컨테이너집에서 어떻게 지내실까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덩그러니 커다란 전원주택에서 무엇을 하면서 하루하루 지내시고 있을까요. 집이 없다고 걱정만 한가득이지는 않을 터이고, 집이 크다고 시름 하나 없다고 할 수 없을 터입니다만, 값싼 집도 비싼 집도 없이 누구한테나 살가운 보금자리가 있을 수 있는 우리 삶터가 되기는 왜 이리 어려운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우리네 살림집이 좋은 보금자리로서가 아니라 돈값으로 얼마짜리 부동산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식구들이 오순도순 지내는 사랑을 꽃피우는 둥지이면서, 이웃과 동무 누구나 스스럼없이 찾아와 밥 한 그릇 나누고 잠자리 며칠 나눌 수 있는 넉넉한 사랑방이기도 한 살림집은 언제부터 자취를 감추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참 그렇지. 스즈가 하면 어때요? 친딸이잖아요.” “그러면 되겠구나. 발인할 때는 인사만 해도 되니까.” “그건 안 됩니다. ” “그래도 스즈가 참 야무진 애라서.” “그래요. 스즈는 영리한 애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이건 어른들이 할 일입니다. 이건 부인 되시는 분이 해야 할 몫이에요. 요코 씨. 어른이 해야 할 일을 아이한테 떠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어린애가 아이답지 않은 것만큼 슬픈 게 또 어디 있겠어요.” ..  (1권 50∼51쪽)


 새벽 여섯 시 반, 아이는 드디어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두 시간 남짓 칭얼 낑낑 응애 끅끅 하면서 보냈습니다. 이제 한두 시간쯤 달게 잠이 들었다가는 다시금 벌떡 깨어나 놀겠지요. 아빠는 그때까지 이 일 저 일 부지런히 해야 하고, 이렇게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아이를 부대끼고 아침에 아이한테 밥을 해 먹이고 어제 하루 쌓인 빨래를 어그적어그적 하면서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감기고 하다 보면 낮나절에는 그예 온몸 구석구석 쑤시고 결리지 않은 데가 없으면서 방바닥에 자빠질 겝니다. 아니, 나흘째 집 청소를 못했으나 오늘은 집 청소까지 말끔하게 하고 나서 자빠져야겠습니다. 아직 끌르지 못한 여행가방 보따리를 풀고, 다 마른 빨래를 개며, 아픈 옆지기를 토닥이다 보면 어느 결에 낮 두어 시쯤 될 터이고, 이무렵이면 아이는 낮잠을 잘 무렵이라 벌게진 눈으로 또 칭얼대고 낑낑댈 테군요.


..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느낌이네.” ‘토모아키가 한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의외로 당연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  (1권 135쪽)


 겨우 잠이 든 두 사람을 머리맡에서 바라봅니다. 아프고 힘든 두 사람이 덜 아프고 덜 힘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으나, 아프면 아픈 대로 살고 힘들면 힘든 대로 지내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들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 어떤 마음과 느낌이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형이나 나는 얼마나 찡얼거리거나 낑낑대었을까 궁금합니다. 어머니한테 여쭈어 보면 “그 옛날 일을 어떻게 기억하냐?” 하면서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알까요? 아이돌보기는 오로지 어머니 혼자 하셨는데, 아버지는 찡얼거리거나 낑낑대는 당신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셨을까요? 가뜩이나 새벽 일찍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러 달려나가야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는 하루하루인 아버지한테는 당신 아이가 당신 삶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내 아버지가 당신 아이를 바라보거나 헤아렸던 느낌을 곱씹으며,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거나 헤아리는지를 돌아봅니다. 내가 우리 아이한테 짜증을 부리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짜증이 모두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지 않았나 떠올리며 섬찟합니다. 내가 우리 아이한테 사랑스러운 매무새로 어르고 달래며 안고 놀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사랑스러운 매무새란 우리 어버이가 저한테 베푼 세상이 고이 이어진 셈인가 싶어 놀랍습니다.

 제 삶자락은 제 나름대로 꾸리는 삶자락이지만 이 구석 저 구석에는 내 어버이 삶자락이 켜켜이 쌓여 있을 테지요. 제 삶결은 제 깜냥껏 가꾸며 일군다지만 이 모습 저 모습에는 내 어버이와 내 살붙이와 내 이웃한테서 받은 모든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고이 스며 있을 테지요.


.. ‘타다는 우리가 선물한 미끄럼 방지용 고무가 붙은 장갑을 끼고 병원 현관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하면서 “사실은 다리를 자르고 나서 몇 번이고 죽고 싶었어”라고 말했다. 아사노가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도 그래?”라고 묻자, 타다는 “이젠 그런 생각 안 해”라며 웃었다.’ ..  (1권 187쪽)


 저는 누군가한테 아이였으며 누군가한테 어버이이고, 우리 아이 또한 누군가한테 아이이지만 앞으로 누군가한테 어버이가 될 고운 목숨입니다.








 (2) 만화책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야기


 만화책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과 《한낮에 뜬 달》을 읽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큰이름으로 묶이는 만화책으로, 이 두 권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3권 4권으로 죽 이어질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 카마쿠라 작은 바닷마을에서 세 자매와 어린 ‘배다른 동생’이 함께 복닥이는 조그마한 삶자락을 그려낸 만화입니다. 우리로 치면 안면쯤 될까요. 아니면 옥구나 돌산이나 감포쯤 될까요. 작다고 하지만 병원이 있으니 강릉이나 울진이나 목포쯤이라고 해야 할까요. 바다와 함께 숲이 있고 논밭이 있으며 마을 크기처럼 작은 도심지가 있으며 어린이 축구단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가득 채우는 연속극처럼 크고 굵직하며 으리으리한 이야기란 하나 없는 자그마한 마을 자그마한 사람 이야기를 살포시 담은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고 《한낮에 뜬 달》입니다. 그런데 크고 굵직하며 으리으리한 이야기이든, 자그맣고 자그마한 이야기이든,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며 사람과 사람이 복닥이는 이야기입니다.


.. “난 그 집에서 무서운 걸 수도 없이 봤어. 아빠랑 엄마가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 할머니 장례식 날,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화장하는 모습, 그리고 이와사키와 엄마가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 병원에서 깨어나 처음 본 것도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이었어. 내가 한 짓은 결국 아빠의 외박과 정원에 놓인 화분 수만 늘렸지.” ..  (2권 46∼47쪽)


 큰도시에서도 사람 사이에 사랑이 꽃핍니다. 작은마을에서도 사람 사이에 생채기가 생깁니다. 어디에든 믿음이 있고 눈물과 웃음이 함께 있습니다. 어느 곳에든 아픔이 있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나란히 있습니다. 넉넉한 살림에 걱정없어 보이는 느긋한 사람들이 있고, 쪼들리는 살림에 걱정 많아 보이는 고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넉넉한 살림이라지만 마음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며, 괴로운 살림이라지만 마음은 괴롭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화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하고 《한낮에 뜬 달》에 나오는 세 자매와 어린 동생 넷이 꾸리고 있는 집에서 세 자매는 모두 ‘어른’이지만 어릴 때부터 어린이다움을 잃고 자라 어른이 된 아직 ‘어린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세 자매와 함께 살아가는 배다른 동생은 ‘어린이’이지만 세 자매와 마찬가지로 어린 날부터 어린이다움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생채기를 받았으나 생채기를 받을 무렵 이 생채기가 생채기임을 깨닫기 어려운 나이였다고 할까요. 아니, 너무도 큰 생채기였기 때문에 차마 생채기라고는 여기기 힘들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어린이다운 어린 나날을 보내지 못한 네 사람을 낳아서 길렀다고 하는 어버이들 또한 당신들이 어린이였을 무렵에는 당신들이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서 저질렀던 잘못과 마찬가지로 당신들 어버이가 당신들한테 생채기를 남겼을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사랑을 나눌 줄 모르는 법이지는 않습니다. 어버이한테서 사랑스러운 손길과 품을 느껴 보지 못했다고 내 아이한테까지 사랑스러운 손길과 품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네 사람을 낳아 키운(만화 줄거리로 따지고 보면 ‘키우’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버지 하나와 세 어머니 되는 분은 늘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합니다. 어버이 되는 당신들한테만 즐거운 삶을 찾아서 아이들을 버렸고, 아이들이 어찌저찌 지내는가에는 눈길이든 마음길이든 쏟지 않습니다. 아니, 당신들 마음으로는 생각하고 그리워 했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당신들이 낳았던 아이들이 살갗으로 느끼거나 목소리로 듣거나 눈으로 보거나 곁에서 부대끼도록 해 주는 사랑은 아무것이 없었습니다.


.. ‘유야는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구! 대체 뭘 노력하라는 거야. 너희들한테 그런 말 듣고 있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계속 노력하고 있다구! 나쁜 뜻은 없다고? 그래서? 나쁜 뜻만 없으면 그렇게 막 떠들어도 돼?’ … “쉽게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진짜 짜증 나!” “그렇지? 어쩐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 자기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로 그거야!” ‘유야랑 스즈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소중한 걸 잃어 본 두 사람만이 아는 무언가가, 두 사람이라면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바로 알 수 있는 무언가가.’ ..  (2권 113, 128∼129쪽)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고 우리 어머니를 헤아려 봅니다. 갓 대학교에 들어간 해에는 학교에서만 노느라 집에서 부모님 얼굴을 본 횟수도 적었으나 얼굴을 보았어도 이야기 몇 마디 나누어 본 일이 드뭅니다. 이듬해에는 군대에 갔고 곧바로 대학교를 때려치운 다음 부모님 집을 떠나 혼자서 살았기에 명절에나 얼굴을 뵙고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밤 열 시까지 붙잡히는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 시달려야 했기에 중고등학생 때에 아버지 어머니하고 어울리던 겨를이란 여섯 해 동안 며칠 안 된다고 할 만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하고 어울리던 나날이라면 국민학생일 때하고 아주 꼬맹이였을 때인데, 이때에 아버지는 인천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경기도권 국민학교 교사로 일할 무렵이라 하루 내내 어머니하고 어울리던 일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담배와 신문 사 오라는 심부름하고, 형과 제가 다투었을 때(늘 제가 형한테 얻어맞았지만) 몽둥이를 들고 두들겨패던 일 아니고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아버지 다리와 등허리 주무르도록 한 일하고.

 어머니하고는 하루 내내 함께 지냈으나 어머니는 말수가 몹시 적었고, 집 안팎에서 부업을 하느라 바빠 거의 언제나 어머니 곁에서 부업을 도왔습니다. 신문배달은 어머니가 집 바깥에서 하던 부업이라 어머니 일을 거들며 저절로 익혔고, 뒷날 제금나서 서울에서 혼자 살 때에 신문사지국으로 들어가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바느질을 하든 우산을 꿰매든 옆에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도맡으면서 일감을 받아 오고 다 마친 일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걸레질하기나 빨래하기나 밥하기를 따로 가르쳐 주신 적은 없지만, 하루 내내 집에서 들여다보고 쳐다보고 곁에 앉아 있으면서 어깨너머로 바라본 대로 제 몸에 차근차근 배어들고 스며들었습니다. 뭐랄까, 늘 바쁜 어머니 곁에서 자잘한 집일을 함께 배우고 거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쉴 겨를이 없던 어머니 손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손을 덥석 잡으며 “어머니 손은 쉬지 않나요?” 하고 여쭈던 일이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의외로 순식간이거든요. 애들은 순식간에 커 버리잖아요.” ‘보호자로서 당연한 거겠지. 그런 건 생각도 안 해 봤어. 나 보호자였구나.’ … “그래도, 야마가타에 있을 때가 훨씬 쓸쓸했어요. 지금은 전혀 쓸쓸하지 않아요. 여학생 기숙사에 막내로 들어온 기분이에요.” ..  (2권 149, 168쪽)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을 보면, 세 자매와 함께 살아가는 어린 동생(중학생)이 다시 축구부원이 되어 또래 동무와 어울리면서 “아니. 우린 아빠는 같은데 엄마가 달라. 그래서 그동안 따로따로 살았어. 이번 여름에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난 엄마도 이미 예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언니들이 같이 살자고 했어(157쪽).” 하는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없이 여느 낯빛으로 들려줍니다. 마음앓이를 숱하게 겪은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다움을 잃었으나 그만큼 씩씩하고 다부지며 튼튼한 한 사람으로 여물어 갑니다. 《한낮에 뜬 달》을 보면, 세 자매에서 맏언니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세 자매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가 아주 오랜만에 불쑥 찾아왔을 때에 함께 할머니 성묘를 하고 나서 기차역에서 배웅을 하며 홀로 ‘내가 엄마를 찾아가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엄마가 다시 카마쿠라를 찾아오는 것도 먼 훗날의 일이겠지 …… 그래, 뭐 이젠 됐어 …… 서로 건강하게 지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하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다움을 진작 잃고 홀로 씩씩하고 튼튼해야 했던 맏언니는 어느새 곧고 다부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만, 당신 마음을 너무 바짝 죄느라 이제껏 놓치고 있던 너그러움을 조용히 되찾으면서 한 사람이 고운 목숨으로 살아고자 할 때에 함께 건사해야 할 마음밭이란 무엇인가를 살며시 느낍니다.

 고단하고 힘에 겨우며 쓸쓸한 삶을 꾸려야 했던 사람들은 고단함을 느끼며 깊은생각을 기울이고 깊은생각을 돌보며 깊은생각을 간직합니다. 그러나 고단하고 힘에 겨우며 쓸쓸한 사람만 깊은생각을 보듬지 않습니다. 홀가분하고 기쁘며 아름다운 삶을 꾸리는 사람도 얼마든지 깊은생각을 보듬을 수 있어요.

 다만, 스스로는 깊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나중이 되어 돌아보면 깊다고 여겼던 생각이 얼마나 얕거나 어설펐는가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아니, 얕고 어설픈 생각이었음을 못 느끼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힘에 겨운 삶이기 때문에 깊은생각을 아예 접어 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홀가분하고 기쁘며 아름다운 삶이기 때문에 내 사랑과 믿음을 한껏 널리 나누고 싶어서 깊은생각을 다스리는 사람이 있어요.
 







 (3) 좋은 사랑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이 아이는 이 여름에 여기서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을까.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아버지를 줄곧 혼자 감당해 왔을 것이다.’ … ‘하지만 난 안 된다는 거잖아. 저 친구가 떠안고 있는 무거운 짐은 내가 들어 줄 수 없나 보다.’ ..  (1권 64, 128∼129쪽)


 같은 깊은생각일지라도 곱고 맑은 깊은생각이 있습니다. 같은 깊은생각이지만 어둡고 케케묵은 깊은생각이 있습니다. 같은 목숨일지라도 곱고 맑은 목숨이 있고, 같은 목숨인데 어둡고 케케묵은 목숨이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내려받고 선물받은 우리 한삶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우리는 한 번 누리고 조용히 떠나 보낼 우리 한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눈물로 보내는 한삶일는지요. 웃음이 넘치는 한삶일는지요. 주름살 가득한 한삶일는지요. 꾸덕살로 지새우는 한삶일는지요. 사랑과 평화로 둘러싸인 한삶일는지요. 미움과 시샘이 흘러넘치는 한삶일는지요. 눈물이라면 나 혼자 흘리는 눈물일는지요 어깨동무하며 흘리는 눈물일는지요. 웃음이라면 나 혼자 키득거리는 웃음일는지요 서로서로 두 손 맞잡으며 활짝 펼치는 웃음일는지요.

 바닷마을 작은 사람들 삶무늬를 수수하게 보여주는 만화책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랑 《한낮에 뜬 달》에서는 어디에든 어떻게든 서려 있는 눈물과 웃음이 어떻게 얽히면서 피어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눈물이 어떠한 눈물꽃으로 피어나고 웃음이 어떤 모습 웃음꽃으로 피어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제아무리 큰 아픔일지라도 눈물꽃이란 아름다운 눈물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제아무리 해맑은 기쁨일지라도 허전하거나 속없는 웃음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감싸안거나 붙잡고 있는 눈물꽃과 웃음꽃이란 어떤 무늬요 어떤 결이요 어떤 모양인가요.


.. ‘어쩐지 말도 안 되는 변명처럼 들렸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어느새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다.’ … ‘우리 엄마지만, 그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딸이었어.’ ..  (2권 180, 188쪽)


 아픔을 먹고 자랐기에 한결 씩씩하며 사랑스러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픔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결 어둡고 아픈 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쁨을 먹고 자라면서 한결 따숩고 넉넉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쁨을 먹고 자랐으나 한결 답답하고 멍청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삶이란 모르는 법입니다. 삶이란 모르면서 새롭게 꾸리는 법입니다. 삶이란 누구나 다르면서 다 다른 빛깔로 여물어 가는 법입니다. 작은 사람들은 작은 사람들대로 제길을 걸으면서 제 빛깔을 찾아갑니다. 누구 뒤를 좇는 법이 없고, 누구 시늉을 내는 법이 없으며, 누구 콧김에 휘둘리는 법이 없습니다. 작니 크니 하는 삶이 아닌, 작니 크니 하는 사람이 아닌, 오롯하며 옹근 한 사람이요 오롯하며 옹근 한 갈래 삶입니다. 좋은 사랑이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엄마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어도 어느새 새롭고 싱그러운 엄마다움이 내 마음속에 움트곤 합니다. 아빠다움을 물려받지 못하고 컸어도 어느 결에 우람하고 산뜻한 아빠다움이 내 마음밭에 자라곤 합니다. 아이다움을 빛내지 못하고 지냈어도 어느 무렵부터 착하고 거룩한 아이다움이 내 마음바탕을 이루곤 합니다. 만화책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며 《한낮에 뜬 달》이며는, 삶을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자리를 조촐하게 건드립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3권이며 4권이며, 또는 3권으로 끝나든 10권까지 이어지든, 어떠한 실타래를 솔솔 풀어나갈는지 손꼽아 기다립니다. (4343.3.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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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꽃 1
시무라 타카코 지음, 오주원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고운 삶
 [살가운 만화 53] 시무라 타카코, 《푸른 꽃 (1)》



- 책이름 : 푸른 꽃 (1)
- 글ㆍ그림 : 시무라 타카코
- 옮긴이 : 오주원
- 펴낸곳 : 중앙북스 (2009.12.23.)
- 책값 : 7800원



 (1) 다짐


.. “미안해. 말 안 해서.” ..  (41쪽)


 《섹시 가이 (1∼7)》(세주문화,2000∼2003)와 《방랑 소년 (1∼8. 앞으로 더 나옴)》(학산문화사,2007∼2010)이 나라안에 옮겨진 일본 만화쟁이 시무라 다카코 님 《푸른 꽃》 1권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는 3권까지도 나와 있고 만화영화로도 나오고 있으나, 아직 우리 나라에는 1권만 나와 있습니다. 《방랑 소년》은 새로운 권이 옮겨질 때마다 띠종이에 새 말이 하나씩 붙는데, “우리들의 비밀”과 “우리들의 꿈”에 이어 8권째에는 “우리들의 결단”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방랑 소년》은 이야기가 마무리된 다음에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고자 하는데, 8권째에 이르러 ‘힘들게 헤매던 아이들’이 굳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방랑 소년》에서 주인공인 여자아이는 중학생 2학년이 된 때에 남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또다른 주인공인 남자아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단짝동무였던 여자아이가 남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온 모습을 보고 여러 날 마음앓이를 한 끝에 여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기로 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 정체성이 흔들리는’ 삶이라 하겠지요. 그러나 여느 사람들이란 누구를 가리킬는지 궁금합니다. 이 아이들 눈길에서는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걷고 싶은’ 삶입니다. 이 아이들 또한 여느 아이요 여느 사람이며 여느 길을 걷는 고운 목숨입니다. 다만, 이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걷고 싶기 때문에 갈팡질팡합니다. ‘여느’라는 이름을 앞에 내거는 어른이나 동무들은 하나같이 겉보기로만 ‘여느’이지, 알고 보면 틀에 박히거나 판에 박힌 제도권만을 쑤셔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이에는 무얼 하고 저 나이에는 무얼 하며, 이때에는 무슨 옷을 입고 저 자리에는 무슨 일을 하며 …… 하면서 모든 자리 모든 때에 맞추어진 틀이 있습니다. 이 틀을 따라야 ‘여느’ 삶이라 하고, 이 틀을 따르지 않으면 ‘미친’이나 ‘얼빠진’이나 ‘바보스런’이 되고 맙니다. 좋아하는 야구단이 있어야 하고, 체육 시간에는 다 같이 뜀박질을 해야 하며, 학교에서는 공부에만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여느’가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렇게 꾸리는 삶이 ‘여느’라 할 수 있을까요.

 만화책 《방랑 소년》 8권은 주인공인 남자아이가 여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을 때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으나, 스스로 누구임을 밝히자 학교가 온통 뒤집어지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여자아이가 남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을 때에는 거의 아무런 말썽이 되지 않았으나, 남자아이가 여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니 더없이 크게 말썽이 됩니다. 그래도 일본이니까 여자아이가 남자 교복을 입어도 그렁저렁 지나가지, 우리 나라였다면 똑같이 뒤집어졌겠지요.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남자아이가 여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면 아홉 시 새소식에서도 다루고 기자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법석을 이루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흑……, 으…….” “또 뭔가 생각이 났구나? 울음 뚝! 밤엔 자는 거야! 알았어?” “응……. 옛날에도 이렇게 너한테 자주 혼났지.” “너네 할머니만 할까?” “그러고 보니 생각났는데 대단했지.” “난 옆집 애였는데 맞았다니까!” “그 할머니도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  (66쪽)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남자가 머리를 ‘단발머리’만큼이나마 기르는 일은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사이야 다들 흔히 머리를 기르곤 합니다만, 우리 나라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머리카락을 아예 안 깎으며 살던 겨레였으며, 고작 백 해 앞서는 누구나 이렇게 살았습니다. 남자가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한다는 사회문화는 일제강점기에 스며들었고 군사독재정권이 정부권력을 붙잡았을 때 뿌리내렸습니다. 반드시 독재정권과 ‘머리길이’ 이야기를 맞댈 수 없습니다만, 사회와 문화와 제도와 법이 차갑게 틀어막힌 나라에서는 ‘머리길이를 짧게’ 하려고 안달입니다.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머리를 자연스럽게 자라나지 못하도록 다스리고, 사람마다 다 다른 머리결을 다 다른 모양새로 손질해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억누릅니다. 운동선수라 하여 머리를 다 짧게 쳐야 하지 않고, 운동선수로 뛰면서도 긴머리를 휘날릴 수 있습니다. 물에서 헤엄을 칠 때에 ‘전신수영복’을 입을 수 있고 ‘아주 짧은 헤엄옷’을 입거나 아예 알몸일 수 있습니다. 달리기 선수도 저마다 입고픈 옷을 입기 나름이고, 달리면서 흩날리는 머리결 느낌을 좋아할 수 있으며, 흐르는 땀을 머리띠로 막을 수 있는 한편, 박박 민 머리에 와닿는 바람 느낌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머리카락 길이를 우격다짐으로 틀에 박아 버립니다. 초등학생은 어떠하고 중학생은 어떠하며 고등학생은 어떠하도록. 대학교에서조차 교수에 따라 학생들 머리길이를 놓고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곤 합니다. 요즈음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한데, 1994∼1998년에 대학교에 한동안 머물고 있을 무렵 저는 ‘남학생 주제에 머리가 길다고 학점이 깎이기’ 일쑤였습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딱히 눈총을 안 받지만 2000년대를 넘어서는 때까지 고향동네 인천에서든 서울로 마실을 나올 때이든 ‘저 남자는 뭔데 머리를 길러? 미쳤나 봐?’ 하는 수군거림을 뒤에서 숱하게 들었습니다. 길 가던 할배나 전철길 할배 가운데에는 저를 붙잡고 머리를 깎으라는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대로 놔 두고 고무줄로 한 번 묶어 주었을 뿐인데에도.

 하리수 님이야 성을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지만, 성을 바꾸는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이 치마를 입고 다닌다면 틀림없이 경찰이 달려와 붙잡아 가지 않으랴 싶습니다. 영어로 ‘커밍아웃’이라는 일을 하든 스스로 ‘성 정체성 밝히기’를 하든 ‘남자가 남자 사랑하기’나 ‘여자가 여자 사랑하기’를 하든, 둘레에 있는 사람들은 등을 돌리거나 손사래를 치거나 손가락질을 하리라 봅니다.

 우리한테는 꿈 같은 소리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는데, 삶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든 만화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이든, 《방랑 소년》 두 주인공은 8권에서 굳게 다짐을 하고 저희들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자 합니다. 《푸른 꽃》에서는 8권까지 안 가고 바로 1권부터 주인공이 ‘나(여자)는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끼며 이러한 마음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습니다.
 







 (2) 사랑


.. “확실히 나무 쪽이 정취가 있지.” “후지가야(고등학교) 멋있던데요.” “그야말로 도서관이라는 느낌이랄까.” “아키라가 그 학교를 고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아, 아키라는 그때 있던 제 …….” “후지가야에는 ‘도서관의 그대’라는 게 있었는데.” “머, 멋있네요.” “물론 선생님은 장난으로 그렇게 부른 거였지만, 그걸 몰래 들은 학생이 있어서 소문이 났지. 그것뿐이야. …… 왜 울어?”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딱 붙지 마세요.” “그럼 심호흡해.” “하아아아.” ‘철제 책장에 둘러싸인 도서실이 나와 선배가 처음으로 키스한 곳.’ ..  (114∼116쪽)


 사랑은 어떻게 느끼는 마음일까요. 사랑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마음일까요. 사랑은 누구한테 느끼고 누구한테서 배울까요. 사랑은 어떻게 드러내거나 나타내면서 손길을 내밀까요.

 어버이 된 사람들은 아이들이 느끼며 맺으려고 하는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이들이 느끼며 맺으려고 하는 사랑이 철없어 보이는 짓이라 느끼기에 뜯어말려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예전에 다 겪은 어른들인 까닭에 아이들은 당신들처럼 잘못되거나 어수룩하거나 못난 길을 다시 안 밟기를 바라며 ‘한 번에 척 하고 멋진 사랑을 이루’라고 다그칠 수 있을까요. 사랑이란 누구나 맨 처음 붙잡는 사람하고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더없이 흔히 쓰는 말마디 ‘사랑’은, 흔하고 또 흔하고 다시금 흔하게 쓰더라도 조금도 닳거나 낡지 않습니다. 오히려 쓰면 쓸수록 더욱 빛나고 고운 결로 살며시 내려앉으며 우리들 삶에 스며들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설프게 외치는 사랑이든, 겉발림으로 들먹이는 사랑이든, 참다이 어루만지는 사랑이든, 기쁘게 나누는 사랑이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고자 할 때에는 맑음과 밝음이 알맞게 어우러진다고 느낍니다.


.. “괜찮은데, 그 머리. 잘 어울려.” “선배.” “응?” “저, 선배랑 같이 등교하는 거 그만둘래요.” “뭐, 그래도 괜찮긴 한데. 아! 아키라 때문이구나! 아키라한테 혼났어?” “아키라는 그런 애 아니에요.” “정리하자면 아키라와 먼저 약속했는데 나랑 마주친 거구나.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래,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지.” “죄송해요.” “등교는 아키라한테 양보할게. 하교는 나를 위해 남겨 놔. 내일부터라도 좋으니까.” “선배.” “여자애는 참 손이 많이 간다니까.” ..  (126∼128쪽)


 만화책 《푸른 꽃》에 나오는 아이들은 고등학생 나이로 사랑을 느끼고 말하고 아파하며 기뻐합니다. 이 나라에서 고등학생이라면 중학생 때보다 한결 모질고 끔찍하게 대입 시험에 매달리며 세상하고는 담을 쌓을 뿐 아니라 옆에 앉은 동무를 쳐다보아서도 안 되는 듯 내몰리는 가녀린 아이들입니다.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 다음에 비로소 집인 아이들이나, 집에서 식구들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동무들하고 속을 터놓는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습니다. 동아리에 들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요. 동아리에 들어간들 꿈을 키울 수 있을까요. 모든 꿈이든 뜻이든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는 듯이 짜여 있는 이 나라입니다. 옌예인이 되고자 하여도 대학 졸업장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고 싶어도 대학 졸업장이며, 농구를 하거나 야구를 하거나 축구를 하거나 할지라도 대학 졸업장입니다. 농사를 짓는다든지 공장에서 기계를 다룬다든지 버스나 택시를 몬다든지 빵을 굽는다든지 물고기 살을 가른다든지 떡을 찐다든지 할 때에도 대학 졸업장이 먼저입니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도 대학 졸업장입니다.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어도 대학 졸업장입니다. 신문사에 들어가고 싶은데 대학 졸업장이 없을 수 없겠지요. 법관이 되거나 판사가 되고자 한다면 아주 마땅하게도 대학 졸업장입니다. 일터에서 함께 지내면서 차근차근 배우고 몸과 머리 모두 다스리는 삶이란 아예 막혀 있습니다. 늘 졸업장을 먼저 내밀어야 합니다. 늘 사람이 아닌 서류를 봅니다. 늘 겉모습과 겉차림을 살핍니다. 늘 속마음이나 속뜻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만화책 《푸른 꽃》에 나오는 아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건 3학년이건 스스로 꿈꾸고 바라는 길을 깊이 돌아봅니다. 연극부에 몸을 담든 도서관에서 책을 살피든,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스스로 책장을 넘기며 스스로 생각하여 말을 꺼냅니다. 스스로 꾸리는 삶이니까요. 스스로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 전철역에 가고 전철을 타며 학교에 간 다음 스스로 귀를 기울여 수업을 듣는 삶이니까요. 스스로 찾아서 듣고 익히는 하루하루이니, 사랑을 느낄 때에도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에 따라 느낍니다. 스스로 꾸리는 삶이니, 사랑을 나누고자 할 때에도 스스로 바라는 마음결에 따라 움직입니다. 엄마한테 얘기하고 입맞춰야겠습니까. 아빠한테 말하고 손을 잡아야겠습니까.

 내 힘으로 붙잡습니다. 내 넋으로 곱씹습니다. 내 말로 나타냅니다. 내 몸으로 어루만집니다. 내 눈으로 바라봅니다.

 사랑이란 바로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닌 내 힘과 넋과 말과 몸과 눈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찾아왔구나’ 하고 느끼는 따스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이란 다름아닌 나 스스로 깨달으면서 ‘이런 마음이 내 속에 있었구나’ 하고 기뻐하는 넉넉함이 아니랴 싶습니다.
 







 (3) 한 사람이 되어 걷는 길


..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가? 내 사고방식이 너무 단순한 건가?’ …… “이쿠미, 있잖아.” “응.”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면 어떡할 거야?” “저, 정말?” “만약의 이야기라니까.” “아! 그래서 코우 오빠랑 안 만나는구나.” “만ㆍ약ㆍ에! 그리고 코우 오빠 문제는 이거랑 별개의 문제고!” “아, 그래? 만약이란 말이지.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면 어떡할래?” “응? 으응, 응원?” “고마워. 그럼 그게 최선이 아닐까?” “음.” ..  (144∼146쪽)


 만화책 《푸른 꽃》을 이루는 주인공 둘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둘은 어릴 적 단짝동무입니다. 서로 열 해 만에 만났는데, 단짝동무 하나가 다른 단짝동무한테 ‘여자 선배를 좋아한다’고 털어놓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단짝동무는 어떡해야 좋을까를 한참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풀이법을 찾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나란히 앉는 옆 동무한테 물어 봅니다. 스스로 풀이법을 찾지 못하기에 옆 동무한테 도움을 바랍니다. 옆 동무 또한 마땅한 풀이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풀이법이 없으면 없는 대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이란 늘 뾰족하고 또렷한 풀이법이 있지는 않으니까요. 다가오는 대로 부딪히면서 딱지가 나고, 밀려오는 대로 부대끼면서 새살이 돋으니까요.

 마땅한 노릇이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이든 우정이라는 이름이든 믿음이라는 이름이든, 늘 반갑고 기쁘고 고마운 일만 생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슬프고 괴롭고 어려운 일이 함께 생깁니다. 반가울 때에는 반가운 대로 받아들이고 슬플 때에는 슬픈 대로 받아들이면서 단단해집니다. 기쁠 때에는 기쁜 대로 껴안고 괴로울 때에는 괴로운 대로 껴안으면서 부드러워집니다. 고마울 때에는 고마운 대로 함께하고 어려울 때에는 어려운 대로 함께하면서 아름다워집니다.


.. “아침에 날 바람 맞혔더라.” “아! 그게! 그건 그 …….” “나, 어떡해야 돼?” “……” “응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 “……” “음, 그냥 그대로?” “아! 그대로!” ..  (152∼153쪽)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대끼고 부딪히면서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아파하면서 자라고, 괴로워하면서 큽니다. 아파하면서 단맛과 함께 쓴맛이 있음을 느끼고, 단맛만 있지 않고 쓴맛이 있어서 좋은 사랑이요 삶이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쓴맛이 있어 단맛이 좋음을 느끼고, 단맛이 있어 쓴맛이 닥칠 줄을 내다봅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누구나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기까지 아이인 때를 거쳤고, 우리 또한 오늘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때와 곳에서 스스로 길을 찾느라 헤매고 떠돌고 갈팡질팡하면서 내 길을 붙잡았습니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옷을 걸치고 있지만, 속내는 예전과 다름없이 아이인지 모릅니다. 우리보다 나이든 어른 또한 웃어른이라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이인지 모릅니다. 웃어른이라고 더 세상을 부대끼거나 겪으며 단맛 쓴맛을 고루 안다고 하기 힘듭니다. 아이라고 덜 세상을 부대꼈거나 겪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이이든 어른이든 똑같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부대끼거나 겪습니다. 똑같은 사람으로서 사랑을 만나고 어루만집니다. 똑같은 사람으로서 손을 내밀고 맞잡으며 쓰다듬습니다.


.. “후미, 아까부터 얼굴이 빨개.” “진짜? 그렇게 빨개?” “혹시 야한 생각하고 있었던 거 아냐?” “아냐!” “농담이야. 얼굴 빨간 건 진짜야.” …… 너무나도 작은 그 꽃은 너무나도 작아서 바로 곁에 있지만 알지 못하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그런 꽃 ..  (186∼187쪽)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운 삶이지만은 않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고운 삶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든, 서로를 달뜨게 하며 기쁘게 하는 마음결이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일 때일 테니까요.

 만화책 《푸른 꽃》은 내가 한 사람으로서 다른 한 사람한테서 아름답고 보드라운 넋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삭트는 푸르고 풋풋한 고등학생 아이들 삶을 그려냅니다. 이러한 사랑과 믿음과 어울림은 이 만화에서 드러나듯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고운 삶’으로 보여질 수 있고, 또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습니다.

 호미를 쥐고 밭뙈기를 일구는 땀방울에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고운 삶’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흘리는 땀방울에서 이 마음자락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을 조용히 헤아리면서 내 손길이 새롭게 탈 좋은 책 하나 찾는 땀방울에서 이 마음밭이 샘솟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으며, 사랑이란 우리 마음속 깊은 자리이든 얕은 자리이든 노상 머물고 있는 가운데, 사랑이란 우리 터전과 자연과 뭇목숨 어느 한켠에 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러한 사랑을 느끼느냐요, 언제 어떻게 이와 같은 사랑한테 손을 내밀며 뜨거워지느냐입니다. (4343.2.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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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커 토우마 1 - 안개 속
가나리 요자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 도시에는 어떤 ‘숲 발자국’이 있을까
 [살가운 만화 52] 노마 로쿠, 《토우마》 1∼3권



- 책이름 : 토우마 1∼3
- 그림 : 노마 로쿠
- 글 : 카나리 요자부로
- 옮긴이 : 김은명
- 펴낸곳 : 서울문화사 (2009)
- 책값 : 한 권에 4200원씩


 (1) 오늘


 며칠 동안 뭇사람들하고 골목마실을 했습니다. 골목마실이란 다름아닌 ‘내가 살아가는 이 동네에 어떤 이웃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느끼거나 만나려고 천천히 걸어다니는 일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어슬렁 달릴 수 있으나 두 다리로 더욱 슬금슬금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골목 한켠에서 오래도록 둘러볼 수 있고, 동네이웃하고 만나는 자리에서는 한참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떠나면서 나라밖 사람하고 부대끼며 더 너른 세상을 만나고 배우듯, 골목마실을 할 때에도 내 삶터 가까이나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롭게 부대끼면서 더 너른 세상을 만나고 배웁니다.

 저는 늘 다니는 골목마실이기에 어디에 무엇이 있고 철과 때와 날씨에 따라서 골목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새삼스럽지 않다 할 만한 모습이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두 새삼스럽습니다. 어릴 적 태어나서 살던 골목을 만나든, 여태까지 한 번도 겪거나 본 적이 없는 골목을 거닐든,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손자국과 발자국을 만납니다.

 오래된 문패를 쓰다듬고, 굵직하게 박혀 있는 나무전봇대를 어루만집니다. 오래된 골목동네에는 으레 나무전봇대가 남아 있습니다. 시멘트전봇대를 박으러 시설이나 차를 몰고 들어올 수 없어 이대로 잘 살아남아 있곤 합니다. 해마다 찾아오는지는 알 길이 없는 제비집을 올려다보고, 이제는 거의 안 쓰는 예전 유리문을 들여다봅니다. 올록볼록 무늬가 새겨진 유리문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마련한 유리문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유리문에 붙인 판박이가 스무 해나 서른 해, 때로는 마흔 해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을 보기도 합니다.

 토박이가 없다는 인천이라 하지만, 외려 이제는 토박이가 많은 인천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웬만한 도시이든 시골이든 이렇게 세월 손때가 구석구석 남은 살림집과 골목집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쉰 살 먹은 살림집들로 온 골목이 가득가득한 동네가 우리 나라에 몇 곳이나 남아 있겠습니까. 부산쯤? 목포쯤?


.. “젠장, 이틀 동안이나 아무런 단서를 못 잡았잖아.” “당연하죠, 형사님. 이렇게 넓은 산에서 겨우 한 사람을 찾는 거니까요. 자연을 너무 쉽게 보면 안 됩니다.” … “내가 무섭지 않았나요?” “예.” “!!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나요?” “발자국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진짜 당신은 자연을 사랑하는 착한 마음의 주인입니다.” … “영우라는 동물은 멋지게 왼발, 오른발을 나란히 걷거든. 그래서 발자국이 이렇게 한 줄로 난 거란다. 그래서 발자국이 이렇게 한 줄로 난 거란다. 어때 재미있지? 이 여우는 이쪽에서 이쪽을 보면서 걸어왔어. 신중하게 주위를 신경쓰면서, 아주 천천히 걸어왔어.” … “아무 소리가 없다. 너무 조용해서 귀가 아프다! 내 청력 때문인가?” “숲도 살아 있습니다.” ..  (1권 6쪽, 31, 50, 71쪽)


 추운 겨울날 온몸이 얼어붙으며 골목마실을 하다가 문득문득, ‘두껍게 껴입는 옷과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면 겨울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95%쯤 되는 정보를 눈으로 받아들이거나 느낀다고 하는데, 눈을 감고 코나 살갗이나 귀로 느낄 수 있는 겨울 살림살이와 매무새는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휘휘 둘러볼 때에, 골목동네라는 곳에서든 아파트숲이라는 곳에서든 얼마나 겨울다움을 남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흙 한 줌 느긋하게 길바닥에 엎어질 수 없는 도시입니다. 골목길이라고 해서 흙길이 아닙니다. 골목사람이 흙을 짊어지고 와서 조촐하게 골목밭을 일구고 골목꽃그릇을 가꾸니 흙내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있을 뿐입니다. 흙내음을 싣고 흐르는 바람결이 없고, 꽃내음을 담아 오가는 바람물결이 없습니다.

 흙이 없으니 지렁이가 없습니다. 풍뎅이도 없습니다. 나비도 없고 벌도 없습니다. 골목밭을 알뜰살뜰 일구는 동네 외딴 구석에서는 가끔가끔 벌나비를 만나지만, 도심지에서 벌나비를 만날 길이란 없습니다. 벌나비뿐 아니라 잠자리도 없고 사마귀와 메뚜기도 없습니다. 소금쟁이와 물방개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우렁이나 조개를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인천 앞바다 드넓은 갯벌은 국제공항 닦는다며 모조리 덮고 메우는 바람에, 또 예부터 항구를 넓히고 공장을 세우며 아파트를 박는다면서 하나하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한강을 타고 흘러드는 쓰레기물에다가 인천 앞바다를 빙 둘러 세운 숱한 중화학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물이 겹치며 갯벌이 죄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참말로 이런 도심지 골목길에서 느끼는 봄이란, 여름이란, 가을이란, 겨울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이런 도심지 골목길에서 우리 삶을 이루는 자연을 어느 만큼 맛보거나 느낀다고 할 수 있을까요.

 뭉게구름 없고 무지개 없는 이 땅인데. 소나기 없고 눈부시게 맑은 햇살 사라진 이 땅인데. 살랑바람도 꽃바람도 죽어 버린 이 땅인데. 이 땅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목숨붙이가 되어 서로 부대끼면서 복닥복닥하고 있는가요.


.. “도시의 규칙은 너무 복잡하죠. 때로는 단순한 규칙 따윈 보이지 않게 되죠. 일어서지 못할 정도까지 걷고 난 후에는,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쉬면 됩니다.” … “하지만 생물은 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 활동하기 위해서, 더 생산해 내기 위해서. 그 사실은 오늘 숲에서 배웠습니다. 전 이제 수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를 해고하신다고 해도!” … “정말 찾을 수 없게 되는 건 그렇게 말하고 포기할 때입니다.” …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약자는 항상 강자의 그림자에 겁을 먹으며 살아가야 해. 하지만 그런 약자도, 가끔 목숨을 걸고 강자에게 도전할 때가 있단다. 자신이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 승산이 없는 상대라 해도 말야! 넌 제비꽃을 피해서 걷는, 마음씨 착한 사람이더구나.” ..  (1권 74, 78, 125, 156∼157쪽)


 골목마실을 함께하는 분들하고 동네 만두집에 들어갑니다. 지난날 오성극장이 있을 때에 극장 앞에서 만두를 굽거나 쪄서 팔던 길가 만두집입니다. 따뜻하게 구운 만두를 씹어먹는데, 만두집 라디오에서 ‘연봉 100억이 넘는 사람 …… 연봉 1억이 넘는 사람 ……’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식이 흘러나옵니다. 라디오이든 방송이든, 또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온누리에 퍼지는 소식은 하나같이 돈하고 얽혀 있습니다. 이 땅 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소식과 정보는 온통 돈과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돈을 다루기만 합니다.

 돈이 아닌 삶을 다루는 소식과 정보는 참으로 드뭅니다. 돈이 아닌 사랑을 나누는 소식과 정보는 더없이 드뭅니다. 지식과 학식을 뽐내는 책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책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돈맛과 돈바람이 아닌 따순바람과 너른바람을 고이 담고 있는 책을 찾아 읽기도 어렵습니다. 나날이 수없이 쏟아지는 책인데, 이 책들 가운데 바람내음과 구름내음과 비내음과 눈내음과 바다내음과 땅내음을 고이 싣고 있는 책은 손가락 몇 개로 꼽아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는 이는 책을 읽는 이대로, 책 아닌 인터넷이나 방송에 기대는 이는 이들대로, 머리속을 꽉꽉 채우는 지식보따리만 큽니다. 사람다움과 목숨다움을 살리는 이야기는 거의 눈꼽만하다 싶을 만큼 초라하게 내동댕이치고 있습니다.


.. “이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니까요.” … “큰소리나 메일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단다. 상대의 호흡, 체온의 온기, 심장의 박동.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건 말과 문자만이 아니란다.” ..  (1권 166, 211∼212쪽)


 오늘을 살아간다지만, 도무지 오늘 무얼 하며 살아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알 길이 없는 주제에 날마다 길을 나섭니다. 골목길을 나서고, 책길을 찾습니다.
 





 (2) 어제


 오늘은 사진기를 들고 골목길을 누빕니다. 오늘은 아기를 한손에 안은 몸으로 사진기를 목에 걸고 골목길을 누빕니다.

 어제는 자전거 짐바구니와 짐받이에 신문을 가득 싣고 골목길을 누볐습니다. 외딴 골목이나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서는 들머리나 어귀에 자전거를 세우고 겨드랑이에 신문뭉치를 낀 다음 후다닥 달리며 신문을 돌렸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실장갑 하나를 낀 채 신문딸배(신문배달)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형과 동생은 모두 오토바이를 탔지만 저는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면서도 오토바이 딸배보다 먼저 일을 마쳤고, 맨 먼저 일을 마치고 지국으로 돌아와서 형들하고 함께 먹을 아침을 차렸습니다.

 왼손으로는 무거운 자전거를 붙잡으며 달립니다. 짐바구니에는 쉰 부, 짐받이에는 백칠십 부를 실은 자전거입니다. 제가 돌린 ㅎ신문은 그나마 신문 두께가 얇았고, 다른 이들이 돌린 신문은 두께도 두껍고 부피도 많았습니다. ㄷ신문 딸배 아저씨는 단단하고 굶은 쇳가락을 용접해서 짐바구니를 둘 달고도 짐받이에는 머리 높이까지 올라오도록 신문을 싣고 달리곤 했습니다. 이웃 우유딸배 아주머니는 우유상자를 일곱 개 자전거에 붙이며 골목을 누볐습니다.

 신문딸배들은 누구나 왼손으로 손잡이를 버티고, 오른손으로는 바구니에서 신문 한 부를 슥 꺼냅니다. 이윽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놀려 신문을 꿴 다음 오른허벅지에 탁 치며 반으로 접고, 다시금 엄지와 검지를 놀려 신문을 꿰어 오른허벅지에 또 한 번 탁 치며 다시 반으로 접습니다. 그러고는 손아귀로 슥 움켜쥐고 손목힘으로 휙 날리면 골목집 대문 안쪽으로 종이비행기처럼 시잉 날아가서 골목집 신발 놓는 섬돌에 톡 하고 떨어집니다.

 골목집은 집 모양이 모두 다른 까닭에, 어느 집은 이렇게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탄 채로 ‘한손 접기(한손으로 신문을 그 자리에서 접기)’를 하며 넣지만, 대문에 걸치는 집이 있고 우유주머니에 넣는 집이 있으며 창문을 살짝 열고 끼워 놓는 집이 있습니다. 2층에 사는 분이라면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어깨와 팔뚝힘을 써서 휘익 하고 던져 넣고 지나갑니다. 자전거를 멈추고 신문을 넣으면 그만큼 시간을 잃기 때문에, 웬만하면 자전거에 탄 채로 한손으로 휙휙 넣고 다른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나중에 신문딸배 일이 익숙해진 뒤에 3층집에 신문을 넣을 때에도 자전거에 탄 채로 가끔 해 보았는데, 3층집까지 자전거에 탄 채로 넣자면 여느 내기로는 퍽 힘듭니다. 저도 두 번 가운데 한 번은 실패해서, 엉뚱한 데에 떨어진 신문을 다시 주워 넣느라 시간을 더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좀더 익숙한 사람들은 4층집뿐 아니라 5층집까지 신문을 잘 접어서 던져 넣습니다. 접는 매무새가 여느 종이접기하고는 많이 다른데, 제대로 접지 않으면 잘 날아가지 않을 뿐더러, 갓 나온 신문이 구겨집니다. 날아갈 때에도 잘 날아가고, 독자네 문에 톡 부딪히며 바닥에 착 펼쳐질 때에 구김살이 사라지도록 옳게 접을 줄 알자면 신문딸배 다섯 해는 되어야 합니다.


.. “자신이 유괴되면서도 범인인 엄마의 마음을 배려했었으니까요. 그래요, 언제나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건 어른이고, 어린이는 그런 어른을 보면서 어른 이상으로 잘 자라는 겁니다.” … “왜 이렇게 모두들 열심히 수색하는 거죠?” “누구라도 한 번쯤은 미아가 된 경험이 있겠죠? 어디로 가야 할지 불안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섭고, 누구라도 그런 힘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빨리 구해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아이는 숲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2권 54, 151쪽)


 신문딸배를 하는 동안 저도 모르게 날씨읽기를 배웠습니다. 신문딸배들은 날씨읽기를 방송이나 신문에 기대지 않습니다. 그냥 길을 가면서 느끼고, 집안에서도 밥을 먹으며 느낍니다. 빨래를 하고 널면서 느끼고, 신문값 걷으러 다닐 때에 느낍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고, 밤골목에 가만히 서서 밤바람을 살갗으로 맞으면서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유딸배한테는 비가 오더라도 우유가 젖어서 못 쓸 일이 없지만, 신문딸배한테는 비가 와 신문이 조금이라도 젖으면 죄다 못 씁니다. 여느 비 안 오는 날에도 뜻하지 않게 젖을 수 있고 찢어질 수 있습니다. 골목집에서 기르는 개가 쉬를 눈다든지 물어뜯을 수 있으니까요. 잠자리에 들기 앞서 이튿날 비가 올는지 안 올는지를 가늠하고, 비가 오면 언제쯤 얼마나 올까를 헤아립니다. 신문을 돌릴 무렵에 비가 올 때하고 신문을 다 돌리고 나서 비가 올 때에는 신문돌리기가 다릅니다. 비가 쏟아질 때와 질금질금 흩뿌릴 때에도 신문돌리기가 다릅니다. 신문딸배가 먹고사는 일인 사람은 날씨방송이나 날씨기사가 아닌 내 몸과 느낌으로 날씨를 알아채야 합니다.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느끼며 바람과 햇살에 실린 물기가 어떠한가를 느껴야 합니다.


.. “너무 피곤해요. 당신 질문에 대답하는 게 힘들 정도로.” “숲속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을 찾는 일은 그 정도의 중노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아를 찾아도 표정을 지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마 당신을 찾아 주셨던 분들도 똑같지 않았을까요? 어둡고 넓은 숲속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돌아다니면서 몇 시간씩이나 사람을 찾아 헤맨다는 건 우리처럼 매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로도 힘든 작업인데, 갑자기 불려나온 익숙치 않은 자원봉사자들이면 더더욱 그렇죠.” ..  (2권 158쪽)


 신문딸배로 먹고살던 지난날은 벌이가 영 시원찮을 뿐더러, 신문값 떼어먹고 내빼는 사람들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러나, 도심지에 살면서도 도시에서 어떻게 자연을 느끼는가를 배웠습니다.

 도심지에서도 자연을 느끼며 살아가는 길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문을 다 돌리고 나서 아파트 난간에 기대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든지, 달동네 오르막에서 홀로 자전거에 기댄 채 새벽 햇살을 느낀다든지 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술이 얹혀 꺽꺽대는 사람들까지 모두 잠든 깊은 새벽에 조용히 홀로 일어나 내 자전거 페달 소리와 골목길을 내닫는 발자국 소리를 가만가만 울리는 하루하루는 기뻤습니다. 언제나 잠들어 있는 도시 골목길에서, 늘 맑게 깨어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갓 찍어 잉크냄새 짙은 신문이 내 몸과 옷과 손에 짙게 배어드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3) 글피


 아기는 힘을 알맞게 맞추며 손놀림을 하기에 아직 이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잎사귀가 아야 해. 잎사귀는 살그머니 대면서 귀여워 해야지.” 하고 넌지시 일러 주면, 아기는 이 말귀를 잘 알아들으면서 꽃잎사귀를 살그머니 쓰다듬거나 아주 천천히 손끝으로 톡 갖다 댑니다.

 그런데 갓난쟁이가 아닌 다 큰 어른들은 “그렇게 마구 다루면 어떡해?” 하고 일러 주어도 한귀로 흘리거나 “내 맘이야!” 하면서 나무를 차고 밟고 꽃잎사귀를 후두둑 잡아당겨 뜯습니다. 갓난쟁이들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 삶터 목숨붙이들을 고이 아끼고 돌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곧잘 알아듣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연 삶터에서 태어난 또다른 목숨붙이이고 푸나무와 우리는 동무요 이웃이라고 일러 주면 잘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머리통 굵은 우리 어른들은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알아들을 마음조차 없습니다. 흔히 일컫는 대로 우리 어른들은 돈한테 노예가 되어 끄달리고 휩쓸린 채 살아갑니다.


.. “거리에서의 난 너무나 무력하다. 범인의 낌새도 알아차릴 수 없는 상태다. 도시는 내가 살아가는 숲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연은 전부 아스팔트로 덮혀져 발자국도 남지 않는다. 이곳에 트래커인 내가 있을 곳은 없는가?” ..  (3권 68쪽)


 만화책 《토우마》 1권, 2권, 3권을 읽습니다. 《토우마》는 꼭 세 권으로 마무리된 짧은만화입니다. ‘토우마’는 《토우마》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이 토우마는 숲에서 사람들한테 숲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나들이길을 알려주는 길동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우마라는 사람은 ‘발자국사람(발자국을 좇으면서 정보를 얻는 사람. 영어로 하면 트래커)’입니다. 발자국사람이기 때문에 발자국을 살피면서 이 발자국을 남긴 목숨(사람과 사람 아닌 뭇목숨)들이 어디로 걸어가는지, 걸으면서 어떤 마음인지, 언제 걸어서 지나갔는지를 읽어냅니다.

 토우마는 처음부터 숲길동무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이었습니다. 경찰 가운데 발자국으로 범인을 찾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경찰로 당신 삶을 꾸리면서 오래오래 당신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경찰일을 하면서 겪은 큰 아픔 하나를 씻어내고자 숲으로 찾아들었습니다. 숲은 토우마 마음에 남겨진 생채기를 고이 얼싸안으며 쓰다듬었고, 토우마는 당신을 살려주고 보듬은 숲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주면서 숲사랑이 바로 내 삶을 사랑하는 길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숲을 찾아온 사람들’은 토우마가 들려주거나 보여주려고 하는 숲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니,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느끼지 못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숲사랑을 느끼려 하지 않으니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저 어쩌다 찾아온 숲이요, 공원이라고 마련한 숲이니 숲인가 보다 할 뿐입니다. 도시에서는 술이며 담배며 자가용이며 노래방이며 오락기이며 파친코이며 갖가지 재미난 놀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나는데, 굳이 다리 아프게 숲을 거닐 까닭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세상은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이름과 더 큰 권력을 좇으면서 달려가는데, 숲속에서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는 일이 무어 그리 대수이느냐고 합니다.


.. “그보다도 과장님! 보셨어요? E포인트 지점요!” “어?” “역시 산위는 아래와 계절이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벚꽃이 지금도 활짝 피어 있어 너무 멋져요. 못 보셨으면 꼭 한 번.” “필요없어.” ..  (3권 113쪽)


 만화책 《토우마》를 보려면 내 삶이 어디에서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고픈 마음이 있는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나부터 우리 식구와 동무와 이웃들하고 오순도순 어우러지고픈 뜻이 있는가를 곱씹어야 합니다. 내 주머니에 담기는 기쁨을 찾으려는 삶인지, 내 손과 발을 힘껏 움직여 나와 이웃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울 길을 찾으려는 삶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발자국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다루는 지식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거나 잊은 자연을 찾자는 가르침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고단한 물질문명 현대 사회를 비판한다는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가슴으로 느낄 만화요, 가슴으로 받아들일 만화이며, 가슴으로 살아낼 이야기를 함께 찾자는 만화입니다.


.. “네? 감사장요? 수사에 협력해 줘서 표창한다고요. 저어, 어느 오오카미 토우마 씨에게 전화 거신 건가요? 우리 사무실의 오오카미 토우마는 자연을 사랑하는, 표창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그런 가이드입니다.” ..  (3권 182쪽)


 만화책을 덮으며 돌아봅니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우리 터전은 어떠한 삶터인가 하고.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면, 우리 아이는 이 터전을 어떻게 일구거나 보듬으면서 살아갈까 하고.

 우리 아이가 살아갈 우리 나라 터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만한 터전인지 궁금합니다. 사람하고 다른 뭇목숨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다 함께 흐뭇할 만한 우리 나라 터전일는지 궁금합니다. (4343.1.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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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세트 - 전5권 (일반판)
데즈카 오사무 글 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전쟁으로 모두 빼앗겨도 다시 사랑을 꿈꾸는 사람
 [살가운 만화 51] 데즈카 오사무, 《아돌프에게 고한다 1∼5》



- 책이름 : 아돌프에게 고한다
- 글ㆍ그림 : 데즈카 오사무
- 옮긴이 : 장성주
- 펴낸곳 : 세미콜론 (2009.9.28.)
- 책값 : 한 권에 9000원씩



 (1) 명품이 떠도는 나라에서


 요즈음, 그러니까 2010년을 코앞에 둔 요 몇 해 사이에 새로 문을 연 가게가 많은 골목을 거닐 때에는 ‘걷는 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1990년대부터 문을 연 가게가 많은 골목을 거닐 때에도 ‘걷는 맛’은 잘 못 느낍니다. 1980년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간 가게가 깃든 골목에서는 어느 만큼 ‘걷는 맛’을 느낍니다. 1970년대나 1960년대에 이루어진 가게와 집이 깃든 골목에서는 발걸음을 아주 늦추면서 ‘걷는 맛’을 그지없이 느낍니다.

 1950년대나 이에 앞선 일제강점기부터 이루어진 골목을 거닐 때에는 오래도록 한 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 ‘걷는 맛’이 아닌 ‘사는 맛’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들 땀내음과 손자국이 깊이 배인 터전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고작 쉰 해나 서른 해밖에 안 된 길과 집을 만나면서도 가슴이 뿌듯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나무를 바라볼 때에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키가 자란 나무를 보면 가슴이 뿌듯한데, 우리는 숱한 전쟁과 식민지와 봉건제도 탓에 백 해뿐 아니라 즈믄 해나 두 즈믄 해를 살아낸 나무를 껴안기 몹시 힘듭니다. 기껏 만난다고 해 보아야 천연기념물이라 하여 줄기를 만질 수 없는 나무뿐입니다. 온몸으로 껴안고 온마음으로 받아들일 오래된 나무가 없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요, 온삶이 깊이 뿌리내린 오래된 동네가 없는 이 나라 한국입니다.


..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은 비천한 민족이라며 박해당한다던데, 일본도 똑같아요. 전 일본인이 되려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싸워야 해, 아돌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단다. 울상 짓고 멈춰 있으면 안 돼. 차별과 탄압에 맞서서 싸워야 해.” ..  (1권 146쪽)


 제가 태어나고 어린 나날을 보냈으며 오늘 하루도 옆지기와 아이하고 살림을 꾸리는 인천이라는 곳은 ‘명품도시’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품도시’라는 이름은 인천만 내걸고 있지 않더군요. 창원, 구미, 아산, 수원도 내거는 한편, 서울 서초구와 새만금명품복합도시까지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는 구청임에도 스스로 명품도시라고 내세우는 모습이 남다르다고까지 할 텐데, 그만큼 쓸 돈과 쓰는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나라 곳곳에서 내세우고 있는 명품도시란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어떠한 곳을 두고 명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도시는 명품이 되어야 할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어떠한 도시가 되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가운데 명품이라는 이름이 붙는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에서 명품이라고 내거는 곳치고 예부터 이어온 문화나 역사나 예술이 조금이라도 깃들어 있는 곳은 없다 할 만합니다. 아니,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높직한 주상복합 아파트나 건물을 올려세우는 도심지가 있는 곳이 명품도시인 듯 여깁니다. 돈으로 올려세우면 명품이 이루어진다고 여기며, 돈을 발라 놓으면 명품도시가 이룩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가꾸는 명품이란 없다고 여기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일구는 명품도시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명품’이라고 할 때에는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살아숨쉬는 아름다움이 아닌 돈을 많이 들인 값어치에 치우쳐 있으니, ‘도시를 가리켜 명품이라 하는 자리’에서도 똑같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다부진 속알을 살피지 않는 우리 삶인데, 공무원과 개발업자들이 겉치레로 명품을 외치는 일은 나올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 “여긴 부랑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오래 계실 필요 없습니다.” “잠깐 멈춰요. 좀 걷고 싶은데, 안 될까요?” “무슨 말씀을, 여긴 극히 위험한 곳입니다! 부랑자들이 우글거립니다!” ..  (2권 116쪽)


 그렇지만 나라밖 마실을 나가는 사람들은 유럽땅을 비행기로 밟으면서 ‘역사 깊은 모습’에 입을 쩍 벌립니다. ‘역사 깊은 골목’과 ‘역사 깊은 집’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합니다. 수없이 사진으로 찍고 글을 쓰며 서로서로 느낌을 나눕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어느 도시이건 시골이건 이 땅에 걸맞게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데에는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는 이들이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ㅅㄱㅇ대학을 나왔다손치더라도 옳은 길을 가지 못한다고 나무라는 우리 스스로, 수수하고 투박할지라도 옳은 길을 가고자 힘을 모두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 땅 모습을 사진으로 꾸밈없이 담지 않으며, 우리 스스로 이 땅 삶과 사람을 꾸밈없이 글로 담아내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외치지만 우리 스스로 작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쓴느 작은 사람으로는, 아니 굳이 많이 쓰고 자시고 할 까닭 없이 알맞게 벌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는 사람으로는 살아내지 못합니다.


.. “팔레스타인 아이들도 그 정도로 철저하게 교육하면 좋겠어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한 명도 남김없이 쫓아내려면, 아이들한테도 유대인을 죽이는 것 정도는 가르쳐야 해요.” “흥, 그런 식으로 교육했으니까 나처럼 형편없는 살인자가 나온 거야!” “당신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죠? 그놈들은 냉혹하게 부녀자들을 살해했어요, 수백 명이나. 유대인을 죽이는 건 올바른 일이에요.” ..  (5권 220쪽)
 





 (2) 경쟁이 떠도는 나라에서


 두 살이 된 아기는 곧 세 살이 됩니다. 세 살이 되면 네 살이 다가오고 머잖아 다섯 살이 될 테며, 여섯 살과 일곱 살도 금세 찾아오리라 봅니다. 벌써부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다음을 걱정할 일은 없다 할 만하지만, 걱정할 일은 없어도 생각할 일은 많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우리 식구는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을 생각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맞힐 텐데 어떡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에 앞서 제도권학교를 보내느냐 마느냐를 생각해야 하며, 아이한테 어떤 말을 가르쳐야 하는지와 아이한테 영어를 언제 어느 만큼 가르칠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 또래는 죄 학원에 가고 없을 텐데 또래를 어떻게 사귀거나 어울리도록 할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대안학교에 넣을 생각이라면, 마땅하고 알맞춤한 대안학교가 있는 동네로 우리 살림을 아예 옮겨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해야 합니다.


.. “잘 들어라, 아돌프. 히틀러 소년단에선 유대인이 세상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 쓰레기인지 낱낱이 가르쳐 준단다.” “우리들의 우정을 갈라 놓지 마세요, 제발!” “……” “교장 선생님, 아돌프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아돌프 아버지는 이미 저 아이의 아돌프 히틀러 슐레 입학 수속을 끝냈습니다. 일단 입학하고 나면 유대인 친구 같은 건 금방 잊어버릴 겁니다.” ..  (1권 204∼205쪽)


 나중에 아이 스스로 바란다면 제도권학교라도 얼마든지 보낼 생각입니다. 아이 스스로 아무런 학교를 바라지 않는다면 아무런 학교로도 보내지 않을 생각이며, 다만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한번 겪어 보도록 한 다음 그만두더라도 그만두라고 할 생각입니다.

 대안학교라 할지라도 경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제도권학교라 할지라도 경쟁이 조금이라도 없으면 한번 보낼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나 옆지기가 나온 예전 학교를 비롯하여 앞으로 우리 아이가 다닐 학교라 한다면 ‘배우는 곳’, 이른바 ‘배움터’여야지, 싸우는 곳인 ‘싸움터’나 ‘겨룸터’가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이야기는 서로 겨루라는 지식이 아닌 서로 도우라는 앎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깨동무를 하라는 배움터여야지, 나 홀로 잘되거나 이름을 높이라는 겨룸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왼손은 죽을 때까지 마음대로 못 쓴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럼, 앞으로도 쭉 전쟁터에 안 나가도 되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미에코 씨1 손을 못 쓴다는데 기뻐하란 말입니까?” “죄송해요. 그치만 전쟁터에 끌려가면 왼손이 아니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목숨을 건진 셈이잖아요. 도게 씨, 아버지처럼 덧없이 목숨을 버리시면 안돼요.” ..  (3권 75쪽)


 그러나 우리 세 식구 살아가는 오늘 하루에도 숱한 겨룸과 다툼이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집에서 서로 복닥복닥 지내고 있으니 바깥일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다 할 만하지만, 오늘도 새벽부터 지옥철은 끝없는 사람물결로 악다구니판이 이루어졌을 테며, 서울을 한복판에 놓고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여느 노동자는 여느 노동자대로 온몸이 지치도록 시달리고 있겠지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시험점수로 시달리며, 대입 턱걸이인지 미끄러짐인지를 놓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테고, 새로 입시지옥에 뛰어들 아이들은 다가올 겨울방학이 방학 같을 수 없습니다.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닌, 더 돈을 버는 삶을 바라고 있거든요. 더 사랑스러운 삶이 아닌, 더 이름값을 높이는 삶을 바라고 있거든요. 더 빛나는 삶이 아닌 더 큰 힘(권력)을 바라고 있거든요.


.. “애국심이 왜 싫어요?” “아니, 그건 오로지 전쟁을 위해서 이용당하는 개념에 불과해. 일본인이 함부로 떠드는 ‘야마토다마시’란 말을 듣고 만주인들이 얼마나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난 몇 번이나 목격했어. 남들한테 경멸당하고 미움받는 애국심 따윈 질색이야!” ..  (4권 44쪽)


 곰곰이 따지면, 명품이 있기에 다툼이 있고, 다툼이 있기에 전쟁이 터집니다. 전쟁을 부르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치고박고 겨루면서 제 밥그릇을 더 키우려는 움직임이 있고, 제 밥그릇을 더 키우려는 곳 어디에서나 명품 가꾸기에 얼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우리가 자가용을 버릴 수 있는 삶을 꾸려야 이라크파병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 스스로 자가용을 버릴 수 있는 삶이란 내 몫이 적거나 거의 없어도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내 앞가림에 앞서 어깨동무를 생각하는 삶이며, 나 혼자 잘 되자는 삶이 아니라 다 함께 잘 되자는 삶입니다. 석유뿐 아니라 전기를 덜 써야 하는 삶이라기보다 석유를 비롯한 지구자원을 쓰기는 쓰되 알맞게 쓸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이고, 자가용을 아예 안 타야 한다는 소리라기보다 자가용을 타려면 타되 알맞게만 타고 넘치게 타거나 쓸데없이 타지 않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뽐내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처음부터 대학교 졸업장을 바라지 않으면서 내 마음밭을 가꾸려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내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다른 이 터전인 골목동네를 밀어붙이지 말며, 내 일자리가 정규직이기를 바라면서 다른 이들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에 얽매인 채 고달프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목숨을 받아먹으며 내 목숨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이 땀방울이 있기에 내 삶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연 터전이 있기에 이곳에서 먹을거리 입을거리 쓸거리를 고맙게 얻습니다.
 





 (3) ‘데즈카 오사무’가 남긴 만화


 만화책 《아돌프에게 고한다》 다섯 권을 읽었습니다. 한 권에 9000원짜리로 나온 판이기에 다섯 권이면 퍽 비싸다 할 값입니다. 그러나 데즈카 오사무 님이 이 만화책에 담은 넋과 뜻이 있기에 사만오천 원이라는 책값을 기쁘게 치르며 장만합니다. 또한, 인터넷책방에서 십 퍼센트 눅은 값으로 장만하지 않고 동네책방에서 온돈을 다 치르고 장만합니다.


.. “하지만 당신은 변했어요.” “변하다니, 어떻게?” “나치당에 들어간 다음부터 예전하고는 달라졌어요.” ..  (1권 211쪽)


 1989년에 세상을 떠나기 앞서 몇몇 작품은 미처 마무리를 짓지 못하였다고 하는 데즈카 오사무 님입니다. 그래서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당신이 당신 손으로 마무리를 지은 마지막 작품이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루어 낸 목소리라 할 만합니다. 이 작품으로 만화상을 받을 때는 1986년이고 이무렵 당신은 쉰일곱 나이입니다. 1928년에 태어나 갓 철이 들 무렵 일본이 일으킨 숱한 전쟁을 몸소 지켜보거나 겪었으며, 그 뒤로 일본이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을 떨칠 때에도 부지런히 만화를 그렸습니다.


.. “기죽지 마라, 당연한 거야. 나도 내가 처음으로 죽인 시체를 보고 토했단다. 지난번 전쟁 때, 난 지원병으로 전선에 나갔지. 열여덟 살 때였어. 그러고는 곧바로 프랑스 병사를 죽였단다. 태연하게 적을 죽일 수 있게 되기까지 1년도 안 걸렸어. 너도 곧 익숙해질 거다.” ..  (3권 148∼149쪽)


 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를 읽으며 ‘나는 이런 생채기가 늘 되풀이되기 때문에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고 ‘내 둘레 젊은 넋이 이런 생채기에 휘둘리기 쉬운 이 나라 흐름이기 때문에 군대에 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군대란 사람이 사람을 죽이도록 가르치는 곳이거든요. 아니, 군대란 사람이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도록 내모는 곳이거든요. 아니, 군대란 계급 높은 이들이 어디에선가 무전으로 명령을 내리면 내 목숨을 걸고 다른 이 목숨을 빼앗든지 내 목숨을 내버리도록 짓밟는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군대란 곳은 남을 죽이고 나도 죽는 곳입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죽이고 다른 이 마음을 죽이는 곳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어버이와 식구와 동무 모두 슬퍼할 텐데, 다른 이가 죽을 때에도 다른 이 어버이와 식구와 동무 모두 슬퍼합니다. 그러나 군대라는 곳에서는 어느 누가 죽어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 마디를 외칩니다. ‘나라사랑’.


.. “이 집이고 저 집이고 온 나라 사람들이 전쟁통에 소중한 걸 잃어버렸어요. 그런데도 무언가를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가죠. 인간이란 참 멋져요.” ..  (5권 201쪽)


 이제 와 돌아보면, 군대에 끌려가서 강원도 양구 민통선 안쪽에서 이태 넘게 지내야 했을 때 ‘왜 나는 아무개처럼 총을 안 들겠다고 다짐하지 못했을까’ 싶습니다. 군대에서 지내는 세월보다 조금 더 오래 영창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세월이 더 아깝다고 느꼈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만큼 내 마음은 더러워지고 나빠졌으니까요. 거꾸로 보면 여러모로 배우기도 많이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에서 군대를 겪어냈기에 군대에서 얼마나 많은 젊고 푸른 넋이 주눅들고 짓밟히는지를 지켜보았습니다. 나중에는 누구나 그동안 받은 만큼 ‘고참’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새내기를 주눅들게 하고 짓밟는지 느꼈습니다. 이뿐 아니라, 군대를 마친 뒤에는 사회에서 선후배 사이를 깍듯이 지킵니다. 내 밑사람한테는 빈틈없이 반말이요 주먹이 오가고, 내 웃사람한테는 어김없이 높임말이요 굽신굽신입니다. 더욱이, 입시지옥뿐 아니라 취업지옥인 이 나라에서 내 이웃이건 동무이건 더 밟고 더 높이 올라서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야 맙니다. 아니, 아주 마땅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눔이란 처음부터 없습니다. 사랑이란 처음부터 깃들지 못합니다. 믿음이란 처음부터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군대란 평화를 지키는 모둠이 아니라, 평화를 꺾는 모둠입니다. 다른 이한테서 무언가 빼앗을 건덕지가 있기에 무기를 갖추어 으르렁거리는 모둠입니다. 군대에 끌려가거나 스스로 들어가거나 이곳에서는 바보가 되고야 마는데, 우리는 스스로 바보가 된 줄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또한, 군대를 떠나고 난 다음에도 우리 마음이 어떻게 바보가 되고 우리 몸이 얼마나 바보스럽게 바뀌었는지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군대를 겪었어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 드물게 있습니다. 이 같은 군대를 겪었기에 더욱 아름답게 살자고 다짐하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꽃보다 아름다울 수 없고 꽃처럼 아름답고자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만, 이 못난 사람으로서 못난쟁이한테도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이 아예 없지는 않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어요.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마무리지은 데즈카 오사무 님이 5권이 끝날 무렵 넌지시 들려주는 말마디, “인간이란 참 멋져요.”처럼 우리 사람들은 참으로 멋없고 못난 길로만 빠져들거나 굴러떨어지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조그맣게 다시 키우기에 “멋져요”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삶자락이지만 믿음을 자그맣게 새로이 가꿉니다. 멀디먼 길이지만 사랑할 노릇이요, 아득하디아득한 길이지만 믿을 노릇입니다. 사람은 참 멋지다고. 전쟁통에 모두 잃거나 빼앗겼어도 다시금 사랑하고 믿는 목숨붙이가 바로 사람이라고. (4342.1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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