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에게 고한다 세트 - 전5권 (일반판)
데즈카 오사무 글 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전쟁으로 모두 빼앗겨도 다시 사랑을 꿈꾸는 사람
 [살가운 만화 51] 데즈카 오사무, 《아돌프에게 고한다 1∼5》



- 책이름 : 아돌프에게 고한다
- 글ㆍ그림 : 데즈카 오사무
- 옮긴이 : 장성주
- 펴낸곳 : 세미콜론 (2009.9.28.)
- 책값 : 한 권에 9000원씩



 (1) 명품이 떠도는 나라에서


 요즈음, 그러니까 2010년을 코앞에 둔 요 몇 해 사이에 새로 문을 연 가게가 많은 골목을 거닐 때에는 ‘걷는 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1990년대부터 문을 연 가게가 많은 골목을 거닐 때에도 ‘걷는 맛’은 잘 못 느낍니다. 1980년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간 가게가 깃든 골목에서는 어느 만큼 ‘걷는 맛’을 느낍니다. 1970년대나 1960년대에 이루어진 가게와 집이 깃든 골목에서는 발걸음을 아주 늦추면서 ‘걷는 맛’을 그지없이 느낍니다.

 1950년대나 이에 앞선 일제강점기부터 이루어진 골목을 거닐 때에는 오래도록 한 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 ‘걷는 맛’이 아닌 ‘사는 맛’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들 땀내음과 손자국이 깊이 배인 터전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고작 쉰 해나 서른 해밖에 안 된 길과 집을 만나면서도 가슴이 뿌듯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나무를 바라볼 때에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키가 자란 나무를 보면 가슴이 뿌듯한데, 우리는 숱한 전쟁과 식민지와 봉건제도 탓에 백 해뿐 아니라 즈믄 해나 두 즈믄 해를 살아낸 나무를 껴안기 몹시 힘듭니다. 기껏 만난다고 해 보아야 천연기념물이라 하여 줄기를 만질 수 없는 나무뿐입니다. 온몸으로 껴안고 온마음으로 받아들일 오래된 나무가 없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요, 온삶이 깊이 뿌리내린 오래된 동네가 없는 이 나라 한국입니다.


..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은 비천한 민족이라며 박해당한다던데, 일본도 똑같아요. 전 일본인이 되려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싸워야 해, 아돌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단다. 울상 짓고 멈춰 있으면 안 돼. 차별과 탄압에 맞서서 싸워야 해.” ..  (1권 146쪽)


 제가 태어나고 어린 나날을 보냈으며 오늘 하루도 옆지기와 아이하고 살림을 꾸리는 인천이라는 곳은 ‘명품도시’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품도시’라는 이름은 인천만 내걸고 있지 않더군요. 창원, 구미, 아산, 수원도 내거는 한편, 서울 서초구와 새만금명품복합도시까지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는 구청임에도 스스로 명품도시라고 내세우는 모습이 남다르다고까지 할 텐데, 그만큼 쓸 돈과 쓰는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나라 곳곳에서 내세우고 있는 명품도시란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어떠한 곳을 두고 명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도시는 명품이 되어야 할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어떠한 도시가 되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가운데 명품이라는 이름이 붙는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에서 명품이라고 내거는 곳치고 예부터 이어온 문화나 역사나 예술이 조금이라도 깃들어 있는 곳은 없다 할 만합니다. 아니,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높직한 주상복합 아파트나 건물을 올려세우는 도심지가 있는 곳이 명품도시인 듯 여깁니다. 돈으로 올려세우면 명품이 이루어진다고 여기며, 돈을 발라 놓으면 명품도시가 이룩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가꾸는 명품이란 없다고 여기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일구는 명품도시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명품’이라고 할 때에는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살아숨쉬는 아름다움이 아닌 돈을 많이 들인 값어치에 치우쳐 있으니, ‘도시를 가리켜 명품이라 하는 자리’에서도 똑같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다부진 속알을 살피지 않는 우리 삶인데, 공무원과 개발업자들이 겉치레로 명품을 외치는 일은 나올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 “여긴 부랑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오래 계실 필요 없습니다.” “잠깐 멈춰요. 좀 걷고 싶은데, 안 될까요?” “무슨 말씀을, 여긴 극히 위험한 곳입니다! 부랑자들이 우글거립니다!” ..  (2권 116쪽)


 그렇지만 나라밖 마실을 나가는 사람들은 유럽땅을 비행기로 밟으면서 ‘역사 깊은 모습’에 입을 쩍 벌립니다. ‘역사 깊은 골목’과 ‘역사 깊은 집’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합니다. 수없이 사진으로 찍고 글을 쓰며 서로서로 느낌을 나눕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어느 도시이건 시골이건 이 땅에 걸맞게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데에는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는 이들이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ㅅㄱㅇ대학을 나왔다손치더라도 옳은 길을 가지 못한다고 나무라는 우리 스스로, 수수하고 투박할지라도 옳은 길을 가고자 힘을 모두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 땅 모습을 사진으로 꾸밈없이 담지 않으며, 우리 스스로 이 땅 삶과 사람을 꾸밈없이 글로 담아내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외치지만 우리 스스로 작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쓴느 작은 사람으로는, 아니 굳이 많이 쓰고 자시고 할 까닭 없이 알맞게 벌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는 사람으로는 살아내지 못합니다.


.. “팔레스타인 아이들도 그 정도로 철저하게 교육하면 좋겠어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한 명도 남김없이 쫓아내려면, 아이들한테도 유대인을 죽이는 것 정도는 가르쳐야 해요.” “흥, 그런 식으로 교육했으니까 나처럼 형편없는 살인자가 나온 거야!” “당신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죠? 그놈들은 냉혹하게 부녀자들을 살해했어요, 수백 명이나. 유대인을 죽이는 건 올바른 일이에요.” ..  (5권 220쪽)
 





 (2) 경쟁이 떠도는 나라에서


 두 살이 된 아기는 곧 세 살이 됩니다. 세 살이 되면 네 살이 다가오고 머잖아 다섯 살이 될 테며, 여섯 살과 일곱 살도 금세 찾아오리라 봅니다. 벌써부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다음을 걱정할 일은 없다 할 만하지만, 걱정할 일은 없어도 생각할 일은 많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우리 식구는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을 생각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맞힐 텐데 어떡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에 앞서 제도권학교를 보내느냐 마느냐를 생각해야 하며, 아이한테 어떤 말을 가르쳐야 하는지와 아이한테 영어를 언제 어느 만큼 가르칠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 또래는 죄 학원에 가고 없을 텐데 또래를 어떻게 사귀거나 어울리도록 할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대안학교에 넣을 생각이라면, 마땅하고 알맞춤한 대안학교가 있는 동네로 우리 살림을 아예 옮겨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해야 합니다.


.. “잘 들어라, 아돌프. 히틀러 소년단에선 유대인이 세상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 쓰레기인지 낱낱이 가르쳐 준단다.” “우리들의 우정을 갈라 놓지 마세요, 제발!” “……” “교장 선생님, 아돌프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아돌프 아버지는 이미 저 아이의 아돌프 히틀러 슐레 입학 수속을 끝냈습니다. 일단 입학하고 나면 유대인 친구 같은 건 금방 잊어버릴 겁니다.” ..  (1권 204∼205쪽)


 나중에 아이 스스로 바란다면 제도권학교라도 얼마든지 보낼 생각입니다. 아이 스스로 아무런 학교를 바라지 않는다면 아무런 학교로도 보내지 않을 생각이며, 다만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한번 겪어 보도록 한 다음 그만두더라도 그만두라고 할 생각입니다.

 대안학교라 할지라도 경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제도권학교라 할지라도 경쟁이 조금이라도 없으면 한번 보낼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나 옆지기가 나온 예전 학교를 비롯하여 앞으로 우리 아이가 다닐 학교라 한다면 ‘배우는 곳’, 이른바 ‘배움터’여야지, 싸우는 곳인 ‘싸움터’나 ‘겨룸터’가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이야기는 서로 겨루라는 지식이 아닌 서로 도우라는 앎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깨동무를 하라는 배움터여야지, 나 홀로 잘되거나 이름을 높이라는 겨룸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왼손은 죽을 때까지 마음대로 못 쓴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럼, 앞으로도 쭉 전쟁터에 안 나가도 되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미에코 씨1 손을 못 쓴다는데 기뻐하란 말입니까?” “죄송해요. 그치만 전쟁터에 끌려가면 왼손이 아니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목숨을 건진 셈이잖아요. 도게 씨, 아버지처럼 덧없이 목숨을 버리시면 안돼요.” ..  (3권 75쪽)


 그러나 우리 세 식구 살아가는 오늘 하루에도 숱한 겨룸과 다툼이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집에서 서로 복닥복닥 지내고 있으니 바깥일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다 할 만하지만, 오늘도 새벽부터 지옥철은 끝없는 사람물결로 악다구니판이 이루어졌을 테며, 서울을 한복판에 놓고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여느 노동자는 여느 노동자대로 온몸이 지치도록 시달리고 있겠지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시험점수로 시달리며, 대입 턱걸이인지 미끄러짐인지를 놓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테고, 새로 입시지옥에 뛰어들 아이들은 다가올 겨울방학이 방학 같을 수 없습니다.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닌, 더 돈을 버는 삶을 바라고 있거든요. 더 사랑스러운 삶이 아닌, 더 이름값을 높이는 삶을 바라고 있거든요. 더 빛나는 삶이 아닌 더 큰 힘(권력)을 바라고 있거든요.


.. “애국심이 왜 싫어요?” “아니, 그건 오로지 전쟁을 위해서 이용당하는 개념에 불과해. 일본인이 함부로 떠드는 ‘야마토다마시’란 말을 듣고 만주인들이 얼마나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난 몇 번이나 목격했어. 남들한테 경멸당하고 미움받는 애국심 따윈 질색이야!” ..  (4권 44쪽)


 곰곰이 따지면, 명품이 있기에 다툼이 있고, 다툼이 있기에 전쟁이 터집니다. 전쟁을 부르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치고박고 겨루면서 제 밥그릇을 더 키우려는 움직임이 있고, 제 밥그릇을 더 키우려는 곳 어디에서나 명품 가꾸기에 얼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우리가 자가용을 버릴 수 있는 삶을 꾸려야 이라크파병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 스스로 자가용을 버릴 수 있는 삶이란 내 몫이 적거나 거의 없어도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내 앞가림에 앞서 어깨동무를 생각하는 삶이며, 나 혼자 잘 되자는 삶이 아니라 다 함께 잘 되자는 삶입니다. 석유뿐 아니라 전기를 덜 써야 하는 삶이라기보다 석유를 비롯한 지구자원을 쓰기는 쓰되 알맞게 쓸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이고, 자가용을 아예 안 타야 한다는 소리라기보다 자가용을 타려면 타되 알맞게만 타고 넘치게 타거나 쓸데없이 타지 않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뽐내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처음부터 대학교 졸업장을 바라지 않으면서 내 마음밭을 가꾸려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내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다른 이 터전인 골목동네를 밀어붙이지 말며, 내 일자리가 정규직이기를 바라면서 다른 이들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에 얽매인 채 고달프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목숨을 받아먹으며 내 목숨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이 땀방울이 있기에 내 삶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연 터전이 있기에 이곳에서 먹을거리 입을거리 쓸거리를 고맙게 얻습니다.
 





 (3) ‘데즈카 오사무’가 남긴 만화


 만화책 《아돌프에게 고한다》 다섯 권을 읽었습니다. 한 권에 9000원짜리로 나온 판이기에 다섯 권이면 퍽 비싸다 할 값입니다. 그러나 데즈카 오사무 님이 이 만화책에 담은 넋과 뜻이 있기에 사만오천 원이라는 책값을 기쁘게 치르며 장만합니다. 또한, 인터넷책방에서 십 퍼센트 눅은 값으로 장만하지 않고 동네책방에서 온돈을 다 치르고 장만합니다.


.. “하지만 당신은 변했어요.” “변하다니, 어떻게?” “나치당에 들어간 다음부터 예전하고는 달라졌어요.” ..  (1권 211쪽)


 1989년에 세상을 떠나기 앞서 몇몇 작품은 미처 마무리를 짓지 못하였다고 하는 데즈카 오사무 님입니다. 그래서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당신이 당신 손으로 마무리를 지은 마지막 작품이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루어 낸 목소리라 할 만합니다. 이 작품으로 만화상을 받을 때는 1986년이고 이무렵 당신은 쉰일곱 나이입니다. 1928년에 태어나 갓 철이 들 무렵 일본이 일으킨 숱한 전쟁을 몸소 지켜보거나 겪었으며, 그 뒤로 일본이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을 떨칠 때에도 부지런히 만화를 그렸습니다.


.. “기죽지 마라, 당연한 거야. 나도 내가 처음으로 죽인 시체를 보고 토했단다. 지난번 전쟁 때, 난 지원병으로 전선에 나갔지. 열여덟 살 때였어. 그러고는 곧바로 프랑스 병사를 죽였단다. 태연하게 적을 죽일 수 있게 되기까지 1년도 안 걸렸어. 너도 곧 익숙해질 거다.” ..  (3권 148∼149쪽)


 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를 읽으며 ‘나는 이런 생채기가 늘 되풀이되기 때문에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고 ‘내 둘레 젊은 넋이 이런 생채기에 휘둘리기 쉬운 이 나라 흐름이기 때문에 군대에 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군대란 사람이 사람을 죽이도록 가르치는 곳이거든요. 아니, 군대란 사람이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도록 내모는 곳이거든요. 아니, 군대란 계급 높은 이들이 어디에선가 무전으로 명령을 내리면 내 목숨을 걸고 다른 이 목숨을 빼앗든지 내 목숨을 내버리도록 짓밟는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군대란 곳은 남을 죽이고 나도 죽는 곳입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죽이고 다른 이 마음을 죽이는 곳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어버이와 식구와 동무 모두 슬퍼할 텐데, 다른 이가 죽을 때에도 다른 이 어버이와 식구와 동무 모두 슬퍼합니다. 그러나 군대라는 곳에서는 어느 누가 죽어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 마디를 외칩니다. ‘나라사랑’.


.. “이 집이고 저 집이고 온 나라 사람들이 전쟁통에 소중한 걸 잃어버렸어요. 그런데도 무언가를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가죠. 인간이란 참 멋져요.” ..  (5권 201쪽)


 이제 와 돌아보면, 군대에 끌려가서 강원도 양구 민통선 안쪽에서 이태 넘게 지내야 했을 때 ‘왜 나는 아무개처럼 총을 안 들겠다고 다짐하지 못했을까’ 싶습니다. 군대에서 지내는 세월보다 조금 더 오래 영창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세월이 더 아깝다고 느꼈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만큼 내 마음은 더러워지고 나빠졌으니까요. 거꾸로 보면 여러모로 배우기도 많이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에서 군대를 겪어냈기에 군대에서 얼마나 많은 젊고 푸른 넋이 주눅들고 짓밟히는지를 지켜보았습니다. 나중에는 누구나 그동안 받은 만큼 ‘고참’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새내기를 주눅들게 하고 짓밟는지 느꼈습니다. 이뿐 아니라, 군대를 마친 뒤에는 사회에서 선후배 사이를 깍듯이 지킵니다. 내 밑사람한테는 빈틈없이 반말이요 주먹이 오가고, 내 웃사람한테는 어김없이 높임말이요 굽신굽신입니다. 더욱이, 입시지옥뿐 아니라 취업지옥인 이 나라에서 내 이웃이건 동무이건 더 밟고 더 높이 올라서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야 맙니다. 아니, 아주 마땅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눔이란 처음부터 없습니다. 사랑이란 처음부터 깃들지 못합니다. 믿음이란 처음부터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군대란 평화를 지키는 모둠이 아니라, 평화를 꺾는 모둠입니다. 다른 이한테서 무언가 빼앗을 건덕지가 있기에 무기를 갖추어 으르렁거리는 모둠입니다. 군대에 끌려가거나 스스로 들어가거나 이곳에서는 바보가 되고야 마는데, 우리는 스스로 바보가 된 줄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또한, 군대를 떠나고 난 다음에도 우리 마음이 어떻게 바보가 되고 우리 몸이 얼마나 바보스럽게 바뀌었는지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군대를 겪었어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 드물게 있습니다. 이 같은 군대를 겪었기에 더욱 아름답게 살자고 다짐하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꽃보다 아름다울 수 없고 꽃처럼 아름답고자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만, 이 못난 사람으로서 못난쟁이한테도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이 아예 없지는 않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어요.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마무리지은 데즈카 오사무 님이 5권이 끝날 무렵 넌지시 들려주는 말마디, “인간이란 참 멋져요.”처럼 우리 사람들은 참으로 멋없고 못난 길로만 빠져들거나 굴러떨어지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조그맣게 다시 키우기에 “멋져요”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삶자락이지만 믿음을 자그맣게 새로이 가꿉니다. 멀디먼 길이지만 사랑할 노릇이요, 아득하디아득한 길이지만 믿을 노릇입니다. 사람은 참 멋지다고. 전쟁통에 모두 잃거나 빼앗겼어도 다시금 사랑하고 믿는 목숨붙이가 바로 사람이라고. (4342.12.16.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대로 간다 - 땡전 뉴스에서 경포대까지 시사만화가 이홍우의 네 컷 만화인생
이홍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풍자’와 ‘비아냥’ 사이에서 오락가락 시사만평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8] 이홍우, 《나대로 간다》



 〈동아일보〉에서 “국장급 편집위원”으로 있던 만화쟁이가 한 분 있습니다. 이분은 1980년 11월 12일부터 2007년 12월 26일까지 ‘나대로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스물일곱 해에 걸쳐 8568번이나 네 칸 만화를 그려 왔습니다. 몇 해를 더 그렸으면 서른 해를 채우고 1만 번째 만화까지 빛을 보면서, 김성환 님 ‘고바우 영감’에 못지않는 시사만화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 텐데, 9000번째 만화를 코앞에 두고 신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며 2008년 1월, ‘한나라당 부산 진갑’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당신한테는 안타깝게도 공천심사에서 떨어집니다. 그러고 나서 상명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 1988년 KBS TV에서 방영된 〈광주는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5ㆍ18 민주화운동을 말하지 못할 때 〈전남일보〉 시사만화 ‘미나리 여사’에서만 광주 상황을 은유적으로 그렸다”고 소개하며 방송 화면에 광주 상황을 그린 만화를 한동안 비춰 준 적이 있다. 〈전남일보〉 시절 5ㆍ18 민주화운동을 멀리서 지켜보았던 나는 보도가 통제되는 가운데 간접적으로라도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당시 ‘미나리 여사’를 그릴 때마다 고민도 많이 했다 … 기분 좋게 시작한 ‘나대로 선생’과 노 대통령(노무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졌다. 시사만화가가 항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풍자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무척이나 못 견뎌 하는 정치인이 종종 있다. 최근 들어 시사만화의 풍자에 가장 못 견뎌 하는 정치인이 노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 한때 권력의 칼날을 맘껏 휘두르던 그(1985년 문화공보부 장관 이원홍)가 “정부(노무현 정부)를 더 비판하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권력의 패러독스를 느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내 손 안의 권력과 남의 손에 든 권력은 다른 모양이다 …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 게 좁은 대한민국 사회다. 그러다 보면 철천지 원수가 아닌 이상 어느 자리에서든 얼굴 볼 일이 없겠는가. 그런데 노 정권(노무현) 사람들은 ‘코드’가 다른 사람들과는 밥 한 그릇도 같이 먹지 않는 유별난 사람들인 모양이다. 이제는 만나자고 해도 내가 안 만날 것 같다. 나도 이제 느즈막히 코드나 찾아볼까? ..  (64, 113, 146, 160쪽)


 흔히 ‘조중동’으로 일컫는 신문에서 스물일곱 해에 걸쳐 만화를 그린 분 이름은 이홍우입니다. 신문에 만화를 그린 분으로는 드물게 낱권책을 여럿 펴냈습니다. 1979년에 《미스 앵두》, 1987년에 《오리발》, 1995년에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 1996년에 《재롱이 만화일기》를 내놓았습니다. 이홍우 님은 만화이름 그대로 “나대로 간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2004년부터 신문읽기를 끊었기에,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이분 만화며 다른 분 만화이며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잘 모릅니다. 2004년 겨울에 〈한겨레〉 ‘미주알’을 그리던 김을호 님이 붓을 꺾은 뒤로는 〈한겨레〉마저 볼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만, 둘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와 지난날 ‘나대로 선생’이며 ‘왈순 아지매’며 ‘야로씨’며가 어떤 눈높이에서 어떤 목소리로 우리 삶과 사람을 읽어내어 그림으로 담아냈는가를 돌아볼 때에는 여러모로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시사만화는 틀림없이 ‘세상일’을 다루는 만화입니다. 어느 만화가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신문에 싣는 시사만화는 더더욱 ‘풍자’를 하면서 재미를 잃지 않도록 그립니다. 한자말 ‘풍자(諷刺)’ 뜻을 살피면, “(1)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2)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인데, 말풀이가 처음부터 이러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풍자’는 세상 잘잘못을 슬그머니 다른 이야기에 빗대어 까밝히면서 속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도록 하는 말마디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비웃다’ 말풀이는 “어떤 사람이 보여주는 몸짓을 터무니없거나 어처구니없다고 여겨 얕잡거나 업신여기다”이거든요. 우리가 풍자를 한다고 할 때에는 맞은편을 얕잡거나 업신여기는 매무새가 아니라, 잘잘못을 밝히면서도 슬쩍슬쩍 눙치거나 꾸지라다가도 따뜻하게 감싸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거든요.


.. 매일 검열과의 싸움이었다. 어떤 날은 만화를 하루에 일곱 번 그린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시절이다. 그러나 검열을 뚫고 할 말은 해야 했다 … (이회창 총재가 묻기를) “매일 매일 시사만화를 그려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시사만화 소재를 어떻게 찾으십니까?” 평이한 질문이었으나 다들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일순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내가 농담 삼아 한마디 툭 던졌다.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 그(이회창 총재)를 미리 만나 봤더라면 실제로 둥근 안경을 세모로 그리면서까지 날카로운 캐리커처로 묘사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전 총재는 정치적인 이미지 차원에서 손해를 많이 본 정치인이다 ..  (75, 116∼117쪽)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돌아가는 엊저녁과 다시 일을 하러 서울로 길을 나서는 오늘 아침에 이홍우 님 다섯 번째 책 《나대로 간다》를 읽습니다. 앞서 나온 《미스 앵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해 읽지 못했으나 《오리발》과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는 일찌감치 읽었습니다. 이 만화 두 가지를 읽을 때에는 나라안 10대 중앙일간지를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기사와 만평을 샅샅이 견주어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무렵에 ‘나대로 선생’을 들여다보던 저는, ‘이분이 스스로는 풍자를 하는 시사만화를 그린다고 말씀하실는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풍자가 아닌 비아냥에 지나지 않는 총질로 사람들 가슴에 구멍을 뚫는 짓’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있기에, 이홍우 님으로서는 보수 쪽에 한 발을 디디고 있었다 말할는지 모르지만, 보수이든 수구이든 오른쪽이든, 또 진보이든 개혁이든 왼쪽이든, 지켜야 할 대목은 지켜야 합니다. 사람된 매무새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갈고닦아야 할 길은 갈고닦아야 합니다. 섬겨야 할 어른은 섬기고, 받들어야 할 넋은 받들며, 고개숙여야 할 곳에서는 고개숙여야 합니다.

 꼭 ‘조중동’이라고 묶는 세 신문사라서가 아니라, 세 신문사에 글을 쓰고 사진을 담고 그림을 그려 넣는 분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삶터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우리 삶자리에서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며 붙잡아야 할 길은 어디에 있다고 헤아리시는지 궁금하며, 우리 삶자락을 어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리 마음밭을 어떻게 일구어야 기쁘고 반갑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검열을 뚫고 할 말’은 무엇이었으며, 검열을 없애려고 보여준 움직임은 무엇이었고, 검열에 스러지는 이웃과 동무를 어느 만큼 느끼는 삶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하고 1980년대 〈동아일보〉랑 1990∼2000년대 〈동아일보〉는 서로 얼마나 닮거나 다를까요. 만화쟁이 이홍우 님이 스물일곱 해라는 기나긴 동안 〈동아일보〉에서 보여주고 들려준 ‘나대로 선생’ 말마디와 생각마디는 우리 이웃과 터전을 어느 만큼 비추거나 담아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공천심사부터 떨어졌기에 더 할 말이 없고 아쉬움도 클 텐데, 공천에 붙고 국회의원까지 되었다면, 당신이 걷는 길은 지난날과 또 얼마나 크게 달라졌을까요.


.. 1972년 6월 19일에 실린 그(윤영옥, ‘까투리 여사’)의 만화가 정부 권장으로 비닐하우스 작물을 재배한 농민들이 과잉생산과 판매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을 풍자했는데,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을 비판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결국 그는 펜을 놓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의 만화 ‘까투리 여사’ 역시 연재가 중단되었다. 이른바 “서울신문 필화 사건”으로 한동안 지방신문 등에 만화를 그리던 윤 화백은 국립도서관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아 한국시사만화계의 소중한 자료인 《한국시사만화사》를 펴내기도 했다 ..  (217쪽)


 1986년 3월 24일치에 그린 ‘나대로 선생’ 때문에 하루 동안 끌려가 몇 대 얻어맞고 나왔다는 이야기(78∼79쪽)는 있지만,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움켜쥔 전두환 정권 첫무렵에 어떤 그림과 이야기로 그 어둡던 나날을 그려내고 있었는가를 밝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라 낮은자리 사람들이 눌리다 눌리다 못해 들고 일어나면서 군사독재 정권이 흔들리던 무렵부터 조금씩 ‘전두환 비판’을 그리기는 했다지만, 군사독재 정권이 단단하던 무렵에는 ‘나대로 선생’이 얼마나 ‘나대로’라고 하는 길을 걸었는지는 239쪽짜리 책에 한 줄조차 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난날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이회창 씨 앞에서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하며 읊던 말마디처럼, 지난 열 해에 걸쳐 집권여당만 신나게 ‘조지는’ 만화를 그리면서, 당신한테 ‘아무런 아이디어가 안 떠올랐’음을 이 책으로 낱낱이 보여주는 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 겉장에 굵직하게 찍혀 있는 “땡전 뉴스에서 경포대까지 시사만화가 이홍우의 네 칸 만화 인생”이라는 말마디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경제 포기 대통령 노무현 조지기’만 가득 담긴 책에, 이홍우 님 만화쟁이 삶과 발자국이란 무엇이었는지 읽어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노무현 옛 대통령이 잘못한 일은 어김없이 있었고, 안타깝다고 여길 일 또한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 《나대로 간다》는 ‘아무개 조지기’를 하겠다는 책은 아니지 않았던가요? 어릴 때부터 온삶을 ‘만화에 미쳐’서, 부산에서 중학생이던 때에 공납금 두 달치를 몰래 모아서 집을 뛰쳐나온 까까머리가 만화쟁이가 되려고 바득바득 땅을 기면서 애쓰던 삶과 꿈을 보여주려고 했던 책이 아니었는가요? 좁다란 골방에서 아내와 힘겹게 살아내던 일이며, 열세 해 만에 어렵사리 아이를 얻은 기쁨이며, 만화 외길에 큰뜻을 품은 김성환 님 같은 어르신들 ‘세상에 잘 안 알려진 아름다운 이야기’며를 담아내고자 했던 책이 아니었는지요?


.. (‘사자에 상’을 그린) 하세가와 여사의 만화는 가정의 일상성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통합하는 힘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만화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의 시대 변화까지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233쪽)


 책 끝에 나라 안팎 시사만화(또는 신문만화)를 그린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면서, 일본사람 하세가와 마치코 님 만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가를 몇 쪽에 걸쳐서 들려줍니다. 아직 이분 만화가 한국말로 옮겨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헌책방에서 이분 만화책을 몇 권 사들여 틈틈이 꺼내어 다시 읽곤 합니다. 글은 못 읽어도 그림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가를 헤아릴 수 있고, 그림만 보아도 눈물겹고 웃음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홍우 님도 이야기하지만, “가정의 일상성”으로 “일본 사회를 통합”한 만화 ‘사자에 상’이요, “시대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으로 “일본의 시대 변화”까지 읽도록 해 줍니다.

 자, 그러면 이홍우 님 ‘나대로 선생’은 어떤 만화로 자리매김을 할까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에 걸쳐,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은 우리 만화와 문화와 삶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저 ‘스물일곱 해 동안 팔천 번 넘게 그린 기록이 남는’ 이름 하나 아로새길는지요? 이 만화마다 어떠한 깊은 이야기나 뜻이나 생각이 간직되어 있었다는 눈물이나 웃음을 새겨 줄 수 있는지요? 참말 이홍우 님 당신은 당신 네 칸 만화가 ‘풍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한 번도 ‘비아냥’이나 ‘비웃음’이나 ‘비꼬기’나 ‘비틀기’ 언저리에서 맴돌았다고는 느끼지 않으십니까? (4342.10.15.나무.ㅎㄲㅅㄱ)


 ┌ 《나대로 간다》(동아일보사,2007)
 ├ 이홍우 씀
 └ 책값 : 12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소복이 지음 / 새만화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뜻이란
 [살가운 만화 50] 소복이,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 책이름 :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 글ㆍ그림 : 소복이
- 펴낸곳 : 새만화책 (2009.7.25.)
- 책값 : 8000원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에서 살아가는 여섯 사람 이야기를 만화로 담은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는 아주 조그마한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섯 사람 이상범 님(48), 경아 씨(38), 은동원 씨(36), 함은희 씨(37), 인섭이(20), 지희(12)는 남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네에서 저마다 제 삶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는 여느 사람들입니다. 이 만화책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에서 상범, 경아, 동원, 은희, 인섭, 지희 같은 이름을 따로 붙이지 않더라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는, 이 같은 이름으로 우리 땅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당신 이름을 세상에 내놓거나 드높이지 않으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160쪽짜리 자그마한 만화책은, 그린이가 만화를 다 그릴 무렵, 매화동 마을회관에서 조촐하게 만화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만화에 나온 사람과 동네사람들이 모인 따뜻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책 사이사이에는 그린이가 만난 여섯 사람이 손수 그린 그림 한두 장을 살짝살짝 곁들여 놓았습니다. 그린이가 사는 곳에서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으로 가자면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한다는데, 매화동은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이면서, 집값 싼 곳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고, 시골스러움과 어수선하지 않음에 끌려 찾아온 사람들이 있으며, 예부터 농사짓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함께 어우러진 곳이라고 합니다.


.. “뭐, 정신을 차려도 삶 자체가 변해야 되잖아요. 극단을 접거나, 혹은 대박을 터뜨리는 작품을 하거나. 그런데 여기서 공연을 해도 사람들은 공연 보러 서울로 가요. 못 믿는 거죠.” ..  (37쪽)
 





 오늘은 새벽 네 시 반에 잠에서 깼습니다. 아기가 그무렵에 깨었기 때문입니다. 잘 자다가 갑자기 깬 아기는 끙끙거리고, 아기 엄마가 기저귀에 손을 넣어 보더니 “똥 쌌네.” 한 마디. 뜨이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아기를 안고 씻는방으로 가서 기저귀를 벗기고 밑을 씻깁니다. 곧바로 똥기저귀를 빱니다. 일어난 김에 아기 엄마와 아빠는 모기를 대여섯 마리쯤 잡고 불을 끕니다. 아기는 이십 분쯤 더 칭얼거리며 엄마아빠 배며 등이며 올라타고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빠는 곧바로 일어날까 했지만, 몸이 무거워 더 잠들기로 하고 다섯 시 오십 분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안칩니다. 머리를 감고 셈틀을 켭니다. 그런데 모니터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엊저녁, 아기가 모니터에 대고 오줌을 갈겼는데, 그 탓에 모니터 전원단추가 맛이 간 듯합니다. 그제는 셈틀 자판에 똥을 갈기는 바람에 자판이 맛이 갔습니다. 지난달에는 엄마아빠 손전화를 입에 넣고 빠는 바람에 엄마아빠 손전화가 모조리 맛이 가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기 엄마가 쓰는 노트북을 켜고 글 몇 조각을 쓰는데, 예전에 아기가 쥐어뜯은 자판 몇 군데가 잘 눌리지 않습니다. 히유.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아기한테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섭니다. 오늘은 일곱 시 이십이 분에 나섭니다. 늦어도 이십 분 안쪽에 길을 나서야 전철역에 알맞게 닿는데, 전철역까지 가는 길에 사진 몇 장 찍는다며 이 분쯤 어기적거립니다. 전철역에 닿고 보니, 삼십삼 분에 들어왔어야 할 급행전철이 삼 분 늦어졌다고 합니다. 아침에 좀더 바지런히 길을 나서고 골목 사진 찍는다며 깨작거리지 않았어도 때맞추는 전철은 못 탔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제때 안 들어온 전철 때문에 전철역에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히유. 오늘도 첫 역인 이곳에서 자리잡고 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50살에 자살할 거예요.” “그때 너무 잘 살고 있으면요?” “그럼 그냥 오래 살구요.” “하하.” “저는 집에 있는 게 고통스러워요. 저는 막내인데, 사랑받는 막내는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내 밥은 내가 차려 먹었어요. 엄마가 차려 주면 이상해요. 엄마는 내가 밥 먹기 전에 이 닦는 걸 극도로 싫어하셨어요. 손으로 칫솔을 만져 보고 검사까지 했다니까요. 원래 제 꿈은 만화가예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힘들겠다 싶어서 포기했어요.” “그럼 지금의 꿈은 뭐예요?” “성공이요. 목표를 달성해서 행복하게 미소짓는! 세계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고등학교 때는 개근상 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성공하는 게 목표예요.” ..  (51∼53쪽)
 





 전철에 타면서 자리는 꿈조차 꾸지 않고 바퀴걸상이나 자전거를 놓는 자리 안쪽에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펼칩니다. 이 다음으로 서는 주안역부터 퍽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몰려 탑니다. 이이들도 아침 전철이 늦어지는 바람에 줄이 더 길어졌으니까요. 이리하여 부평역에서 사람들이 탈 때에는 서서 가는 사람은 옴쭉달싹 못할 만큼 꽉 끼게 되고, 끄트머리에서 책을 펼치던 저는 창문 쪽으로 몸이 눌립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송내며 부천이며 역곡이며 더 타려는 기나긴 줄은 지치지 않고 더 몰려들고, 먼저 들어와서 눌렸든 늦게 들어와서 누르든 서로서로 숨을 쉬기 어렵습니다. 전철기사는 여러 차례 안내방송을 하면서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었으나 시원하지 않을 듯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문득 1994년 봄이 떠오릅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가끔 책방 마실(교보문고나 헌책방)을 하러 서울에 전철을 타러 왔고, 국민학생 때에는 집에 자가용이 없어 전철을 타고 작은아버지 댁에 찾아갔는데, 이때에는 선풍기만 있거나 선풍기조차 없는 전철칸이 그렇게까지 덥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마, 출퇴근 지옥철을 탈 일이 없이 전철을 타서 그랬을 텐데(이무렵에는 다들 창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1994년 봄에 인천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 처음으로 ‘지옥철’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인천 끄트머리부터 구로역 둘레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이 전철을 탈밖에 없으나, 그사이에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타기만 해야 합니다. 또한, 서울과 가까운 곳이라 해서 서울로 수월히 갈 수 있지 않고, 외려 탈 자리가 없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하는 판이니, 벌써 꽉 들어찬 전철이라 하여도 우격다짐으로 밀면서 타려고 합니다. 서로서로 괴로운 노릇이지요. 그때, 1994년에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에는 선풍기만 있었습니다(수원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도 매한가지). 게다가 선풍기는 안 돌아가기 일쑤였고, 그나마 돌아가는 선풍기라 하여도 한 칸에 두어 대가 달랑 달려 있었습니다.


.. ‘요즘 나는 매일 바란다. 오늘 밤 꿈에서 엄마를 만나기를. 몇 년 전,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못 봤다. 우리 엄마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견디고 사셨을까?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엄마를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나보다 더 열심히 사셨는데 말이다.’ ..  (67∼68쪽)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여의도를 지나면 전철은 홀가분하다고 느낄 만큼 사람이 줄어듭니다. 서울에서 움직이든 서울 바깥에서 서울로 들어오든, 저마다 제 갈 곳을 찾아서 사람 물결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겠습니다. 오늘은 800쪽이 조금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조금 읽다가 《씨앗은 힘이 세다》라는 책을 살짝 펼쳤습니다. 고흐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두툼한 책은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디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씨앗은 힘이 세다》는 2006년에 처음 장만해 놓고 한참 읽다가 줄거리가 조금 지루해졌을 때 덮어놓고는 이태 넘게 다시 펼치지 않다가 이즈음 마저 읽으려고 집어들고 있습니다. 서대문역에서 내리기 앞서 “소비자들이 때깔이나 크기로만 농산물을 선택한다면 이 땅의 농부들은 농약을 안 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비자의 의식도 함께 바뀌어야 하겠지요(199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익히 들어 왔는데, 오늘은 새삼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곡식이나 열매를 사먹는 도시사람들이 ‘굵직굵직하고 빛깔 고우며 벌레먹은 곳 없는 말끔한 녀석’을 찾는다면, 어느 농사꾼이건 농약과 비료를 듬뿍듬뿍 안 칠 수 없습니다. 포도며 능금이며 배며 복숭아며 수박이며 갖은 농약과 비료에 범벅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도시사람들은 뻔히 농약과 비료를 많이 친 줄 알면서 이런 열매를 사다 먹습니다.

 알 수 없는 우리 씀씀이요 삶이 아닌가 싶으나, 밀고 밀리는 사람 물결에서 벗어나서 아침햇살 받고 한글학회까지 거니는 동안 곱씹어 보니, 《씨앗은 힘이 세다》를 쓴 농사꾼이 외친 이 말마디는 바로, ‘오늘날 우리들은 온통 껍데기로 겉치레를 하는 데에 매여 있다’는 소리로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책이란 알맹이(줄거리)를 살피고 사서 읽어야 합니다. 껍데기가 곱거나 멋스럽다고 사서 읽습니까. 꽂아 놓기에 보기 좋다고 사들이는 책입니까. 뭐, 누군가는 틀림없이 ‘꽂아 놓으려고 책을 사들일’ 수 있고, 이렇게 하는 일은 그이 권리입니다. 다만, 책은 꽂아 놓으려고 만드는 종이뭉치가 아닙니다. 읽으려고 만드는 종이뭉치입니다.

 곡식이나 열매는 먹으려고 일굽니다. 보기 좋으라고 일구지 않습니다. 배속에 들어와서 우리 몸에 새힘을 불어넣도록 하려고 일굽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은 어떠한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요. 우리 스스로 내 모습을 어떻게 차리고 있지요? 우리 스스로 내 이웃하고 마주하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마주하는지요? 우리들 옷차림은 얼마나 내 몸을 사랑하고 아끼는 옷차림입니까? 우리들 집치레나 몸치레는 얼마나 내 삶터를 사랑하며 돌보는 집치레이거나 몸치레인가요? 우리는 왜 일을 하지요? 우리는 왜 사랑을 하지요? 우리는 왜 아이를 낳아 기르지요? 우리는 왜 밥을 먹지요? 우리는 왜 돈을 벌지요? 우리가 아무개 정치꾼한테 표를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무개 정치꾼이 죽은 일에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숙이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 “부모님은 수원에 사시구요. 여기도 곧 정리할 거예요. 귀농할 거거든요.” “왜요?” “농촌은 뿌리고 도시는 꽃이라고 하는데, 음, 썩은 꽃이죠. 도시는 죽이는 일만 해요. 지구라는 별에서 제대로 살려면 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혼자 가면 외롭지 않겠어요?” “술 안 드시죠? 술 마시면 외로운 것도 몰라요. 하하!” “농사일이 힘들 텐데요.” “일하는 게 즐거워야 해요. 농업이 아니라 농사가 되어야지요. 팔아먹을 거 생각하면 고되져요. 나는 행복하려고 가는 거예요.” ..  (127∼128쪽)
 





 그제 일터로 오는 길에 만화책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를 다 읽어 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일터 책상에 그대로 두고 나왔습니다. 어제와 오늘, 다 읽어 낸 만화책을 다시 더듬어 보면서, 이 만화는 우리한테 무슨 말을 걸고 싶어 하는가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그나마 저는 집이 아닌 일터에 있기 때문에 이 만화책을 생각할 겨를을 얻었습니다. 집에서 옆지기하고 아기를 돌보고 있었다면, 아기를 보고 놀고 씨름하느라 온 기운이 다 빠져서 책이고 뭐고 거들떠보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로 전철을 타고 와서 돈을 얼마쯤 버는 일을 한답시고 아기를 옆지기한테 통째로 맡겨 놓으면서 저는 제 깜냥껏 제 일을 한다고 하는데, 이 일이란 얼마나 저와 옆지기와 아기한테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글을 쓰고 책을 쓰며 이것저것 곁일을 거들면서 가까스로 버는 돈으로 도서관 달삯을 대고 집삯을 또 어찌어찌 대며 우리 살림을 이렁저렁 꾸릴 때하고 견주면, 어느 회사 한 곳에 엉덩이를 지긋이 눌러붙이면서 일할 때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해서 버는 돈으로 우리 세 식구는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답게 우리 삶을 가꿀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을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보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한테 목숨 하나 내려주고 이 땅으로 보내준 ‘너른 자연’은 무슨 마음을 먹고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 목숨 하나 붙잡으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굽어살피고 있을 하늘나라 넋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오로지 내 밥그릇만 챙기면 된다고 하는 이 터전인데, 너른 자연이든 하늘나라 님이든 따지기 앞서, 우리한테 목숨을 선사한 우리 어버이는 무슨 사랑과 믿음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어버이한테,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를 그린 만화쟁이 소복이 님 어버이한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여섯 사람네 어버이한테, 당신들이 살아온 뜻과 보람은 무엇이었으며, 당신 아이들한테 보여주거나 나누려고 하던 뜻과 보람은 무엇이었을까요. (4342.8.21.쇠.ㅎㄲㅅㄱ)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09-08-2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림체가 일반일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군요.요즘은 암만 알맹이가 좋아도 포장이 나쁘면 사지 않은 시대이니까요.

숲노래 2009-08-23 08:21   좋아요 0 | URL
'일반인'이란 누구일까요?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그림체'란 무엇일까요?

책은, 편견으로 보는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책일 뿐입니다.
편견에 맞추어 주면 더 훌륭할는지 모르나,
그저 유행으로 그칠 뿐입니다.

카스피 2009-08-2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말씀 마따나 책은 편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하지만 암만 좋은 책도 독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쉬이 읽혀 질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관주성경(아주 고풍스러운 20~30년대 문체의 성경인데 제목이 이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네요)을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는다면 아마 반도 이해하지 못할것입니다.
솔직히 좋은 내용의 책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려고 한다면 그에 걸맞는 포장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은숲’에서 농사지으며 만화그리는 아가씨
 [살가운 만화 49]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1권



- 책이름 : 리틀 포레스트 (1)
- 글ㆍ그림 : 이가라시 다이스케
- 옮긴이 : 김희정
- 펴낸곳 : 세미콜론 (2008.10.13.)
- 책값 : 8000원



 (1) 도시 삶터에서 자연이란 어디에?


 꼭 지난주부터 동네 골목길에서 ‘빨간고추 말리기’를 봅니다. 처음에는 어느 한 동네 골목길에서만 ‘고추 말리기’를 하는가 생각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휘휘 이웃 동네를 다니다 보니, 온 골목동네가 고추를 말리려고 부산합니다. 꼭 지난주에는 한두 집 드문드문이었고, 어제오늘은 제법 늘었는데 마침 엊저녁부터 빗줄기가 뿌리는 바람에 오늘은 길가에 고추를 널어 놓은 집이 퍽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빗줄기가 뿌리더라도 비닐을 쳐서 고추는 길가에 그대로 두는 집이 제법 있습니다.

 이렇게 고추 말리는 철이 다가오면, 골목마다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하게 하려’고 굵은 나무토막을 먼저 길가에 척척 깔아 놓습니다. ‘이 자리에는 고추를 널어야 하니까 차 대지 마쇼!’ 하고 밝히는 뜻인데, 여느 때에는 아무 거리낌없이 차를 대놓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차를 대놓을 수 없으니 못마땅해 하거나 짜증이 나겠구나 싶습니다. 고추를 말려 놓는 집에서 모는 자동차라면 다른 데에 대놓을 테지만, 다른 집에서 대놓던 차라면 고추를 내놓는 집은 ‘이제 며칠 동안이나마 우리 집 앞에 멋대로 차를 못 대놓겠지’ 하고 싱긋 웃을 테고, 제 집 앞이 아니면서 아랑곳않고 차를 대놓던 집에서는 ‘뭐야, 이건?’ 하며 이맛살을 찌푸릴 테지요.


.. 다시 수유의 계절이 되었다. 많은 열매가 떨어져서 썩어간다. 떨어진 건 모두 쓸모가 없을까? 잼이나 만들어 보자 … “뱀밥은 역시 잡초야. 쇠뜨기가 무성해지면 베어도 베어도 없어지지 않고 말야. 뿌리는 잘아서 뽑아내기도 힘들고.” “뭐, 그건 그렇지만, 뱀밥이 자라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온 건 인간이잖아. 숲을 개방해서 말야. 옛날에, 죠몬시대에 말야, 뱀밥이 자라는 곳은 얼마 안 돼서 잡초가 아니라 귀중한 산채였을지도 모르지. 봄을 알리는 중대한 산의 은혜로. 분명히 태고적 인간은 뱀밥을 소중하게 여겼는지도 몰라.” ..  (8∼9, 74∼75쪽)
 



 고추를 말리는 철에는 골목동네마다 길바닥이 빨갛게 물들지만, 아파트도 곳곳이 빨갛게 물듭니다. 예전부터 고추를 말려서 쓰던 할매가 함께 살아가는 집에서는 아파트로 삶터를 옮겼어도 어김없이 ‘어디라도 빈 자리를 찾아내어’ 고추를 널어 놓습니다. 지난날에는 아파트 꽃밭에 장독을 심기까지 했고, 오늘날에는 그나마 고추 널기라도 한다고 할까요.

 제 어릴 적 일을 떠올려 보면, 제가 일곱 살 무렵부터 열일곱 살까지 살던 5층짜리 아파트에서는 ‘자가용 있는 집’이 드물어서, 아파트 주차장은 거의 모두 ‘고추 말리는 터’가 되었고, 여느 길바닥에도 고추를 촘촘히 깔아 놓아, 차는 고작 한 대만 외길로 다닐 만큼만 남겨 두곤 했습니다. 5층짜리 아파트 옥상은 집집마다 자리를 잡아 놓고는 가득가득 고추를 널어 놓곤 했는데, 헬리콥터라도 타고 내려다보았다면 그야말로 남다르고 빛고운 모습이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옹진군 장봉섬 옹암분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 분교 사택 옥상이며 학교 운동장이며 온통 고추를 널어 놓던 일이 떠오릅니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따로 안 살았지만, 어머니가 으레 고추를 널어 말린 다음 집에서 손수 고추장을 담갔습니다. 이웃집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어느 집이든 ‘고추장은 마땅히 사다 먹지 않고 집에서 빚어 먹는다’는 흐름이었습니다.


.. 푹 삶아진 잼은 투명감이 없는 탁하고 진한 핑크색. ‘타는 게 무서워서 너무 많이 젓다 보면 잼이 탁해진다’고 엄마가 말했었다. 망설이다가 너무 많이 저었나.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집중해. 다치기 쉬우니까.’ “지금, 이게 내 마음의 색깔인가?” … 벼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벼 수확도 비가 내리는 추운 날 짬을 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분주하게 일했다. ‘올해의 찹쌀농사의 성과가 지금……’ ..  (11, 42쪽)


 날씨는 한여름에 접어들어 푹푹 찝니다. 흙을 밟을 수는 없어도 골목집들은 어김없이 스티로폼 꽃그릇을 키우거나 ‘철거되어 빈 집터에 있던 돌을 치우고’ 동네텃밭을 일구어 조그맣게 농사를 짓곤 합니다. 작디작은 땅뙈기마다 오이며 가지며 박이며 쑥갓이며 마늘이며 파며 배추며 상추며 고추며 도라지며 깨며 심는데, 꽤 느즈막하게 오이와 호박을 심어, 이제서야 꽃을 피우는 집이 있습니다. 어쩌면, 꽤 느즈막하게 심었다기보다, 일찍 심어 일찍 한 번 거둔 다음 두 번째로 심어 새로 거두려고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비가 살짝 흩뿌리다가 개다가 하는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숭의4동과 도화1동 둘레를 죽 돌아보는데, 도원역과 제물포역 사잇길 건너편 안쪽인 숭의4동에 있는 꽤 많은 골목집에서 포도넝쿨을 키우는 모습을 봅니다. 어느새 짙은 빛깔로 익어 가는 포도송이가 있고, 아직 덜 익은 포도송이가 있습니다. 보름쯤 앞서는 신흥동1가 긴 담벼락을 타고 자라는 포도넝쿨을 보았는데, 이곳도 머잖아 바다를 닮은 쪽빛으로 송이송이 알알이 영글겠구나 싶습니다. 슬쩍 한 알 따먹을까 하다가 사진만 여러 장 찍고 돌아섭니다.


.. 하츠미는 밀가루에 물을 넣고 귓불 정도로 말랑하게 반죽해서 2시간 이상 재워 둔다. 그것을 손으로 잡고 얇게 늘려서 찢어 국물에 넣고 끓인다. 충분히 재워 두지 않으면 쫀득하지가 않다. 그래서 눈을 치우기 전에 만들어 놨다가, 눈을 다 치우고 배가 고파졌을 때 먹는 게 제일 맛있다 … 서리 맞은 시금치는 감칠맛이 확 늘어나서 더 맛있다 ..  (25, 158쪽)


 이제 우리 집 아기는 아장걸음을 곧잘 걸어, 신을 신기면 혼자서 신나게 이리 뒤뚱 저리 뒤뚱 걷습니다. 비알이 진 길에서는 자꾸 넘어지지만 판판한 골목에서는 웃는 입을 헤 벌린 채 나비춤을 추듯 걷습니다.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가면 마주 걸어오던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웃음으로 인사하면서 길을 내어줍니다. 몸소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지내온 분들이기 때문일까요.

 며칠 앞서 아기가 첫발을 내딛고 나서, 옆지기는 푸념을 했습니다. “아기가 첫발을 떼었는데, 첫발을 뗀 길이 아스팔트야!”

 옆지기가 말하기 앞서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 아스팔트입니다. 또는 시멘트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 제아무리 싱그럽고 아리따운 골목길마실을 즐길 수 있다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도시라서 흙길이 아닌 시멘트길이거나 아스팔트길입니다. 아기는 제 첫발을 뗀 기쁨을 ‘제대로 된 땅’이 아닌 ‘껍데기 씌운 땅’을 밟으면서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런 아스팔트 길맛을 땅맛인 듯 잘못 알게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흙땅이 아닌 시멘트땅과 아스팔트땅을 밟습니다. 시골에서도 논밭일을 할 때를 빼고는 으레 시멘트땅을 밟기 마련입니다. 온나라 거의 모든 시골길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덮여 있으니까요. 옛날 같은 고샅길이란 없다시피 하고, 아련한 논두렁길 또한 없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 저녁식사도 준비되어 있고, 집에서는 피곤하다고 말해도 되겠죠. 빨래가 쌓여 있으면 잔소리도 하고 말예요. 하지만 난 아무리 피곤해도 전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돈을 버는 것도 집안일도 분담해 줄 사람은 없으니까. 여기서 돈을 벌고 있는 동안 집안일은 손도 못 대요. 한 가지씩밖에 못하죠. 눈을 치우고 있을 때, 장작 패는 게 끝나는 일은 절대 없어요. 난 혼자니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가족에게 시키는 주제에 바쁜 척 대단한 척하지 마요. 난 뭐든 혼자서 다하니까. 가족에게 어리광 부리는 당신들이 내 고통을 알 리가 없지. 일을 분담해서 해 줄 가족이 없는 게 얼마나 ……, 난, 엄마에게 정말, 가족, 이었을까 ..  (62∼63쪽)


 엊저녁 옆지기가 푸념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한 가운데, 낮나절에 홀로 자전거를 몰며 골목마실을 하며 밤나무를 보고 모과나무를 보고 호두나무를 보고 대추나무를 보며 감나무에다가 포도나무 들을 실컷 보았습니다. 제 사진기에는 이 온갖 열매나무들 자취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들은 하나같이 ‘골목집 담벼락 안쪽 마당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길가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길가엔 흙이 없으니까요. 숭의3동과 송림2동에는 꽤 큰 고무다라이통에서 자라는 대추나무가 있기도 한데, 이런 데에 대추나무를 심어서 가꾸니 놀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서글픕니다.

 나무는 마땅히 너른 흙을 제 어머니밭으로 삼아 뿌리를 내려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그 나무 한 그루만이 아니라 동무나무도 옆에서 자라고, 엄마나무나 아빠나무도 둘레에서 함께 자라야 할 테니까요. 키가 15미터쯤 넘는 버드나무가 고작 너비 0.5미터도 안 되는 흙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키가 20미터를 훌쩍 넘는 은행나무 또한 고작 0.5미터쯤 될까 말까 한 ‘살짝 구멍난’ 아스팔트길 가운데에서 줄기를 올리고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말라죽지 않을 만큼 흙을 얻고, 겨우 숨을 틔울 만큼 땅을 얻은 셈이라고 할까요. 모조리 사람들한테 제자리를 빼앗기고 가까스로 고만큼 살아남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골목길이나 찻길가에서 자라는 나무들 삶하고, 우리네 여느 사람들 삶은 매한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나무가 나무다움을 살뜰히 간직하면서 살아가기 어려운 터전이듯이, 사람이 사람다움을 알뜰히 추스르면서 살아가기 어려운 터전이 아니랴 싶습니다. 우리들은 틀림없이 온갖 물질문명을 누리거나 즐기고는 있는데, 날마다 어마어마한 먹을거리에 둘러싸인 채 배고픔이나 배곯음을 잊거나 모르는 채 살아가고는 있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들 누구나 ‘목숨붙이’임을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자연을 잊으면 사람 또한 잊고, 자연을 잃으면 사람 또한 잃는다고 느낍니다. 자연을 버리는 터전에서는 사람 또한 버리고, 자연을 내치는 삶터에서는 사람 또한 버린다고 느낍니다. 국민소득이니 경제발전지수니, 또 무슨무슨 국제행사이니 빌딩 높이이니 아파트 평수이니 연봉이니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이니 하는 말마디와 숫자놀음은 어디에나 흘러넘치는데, 정작 사람들 목소리와 숨결과 살내음과 땀방울과 손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2) ‘작은숲’에서 농사짓는 아가씨가 그린 만화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를 봅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제 2권까지 옮겨진 작품입니다. 그린이는 일본 어느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도시로 나와 만화를 그리다가 마음에 생채기를 받고는 ‘내빼듯이’ 고향인 시골마을로 돌아와서 혼자 숨어 지내듯이 농사짓고 살면서 다시 만화를 그리는 아가씨입니다. 우리 말로 옮기자면 “작은 숲”이 될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는 책이름 그대로, 그린이 스스로 ‘작은’ 사람이요, 그린이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시골 또한 ‘작은’ 땅이요, 이곳에서 웅크리듯 묻혀 지내는 당신 삶 또한 ‘작은’ 살림이며, 지구라고 하는 커다란 자연과 견주면 아주 ‘작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살아갑니다.


.. 보름달이 뜬 밤. 대낮처럼 밝다 … ‘코모리’는 토호쿠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상점 같은 건 없어서 간단한 물건을 사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 중심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농협의 작은 슈퍼나 상점이 몇 채.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라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느 정도 걸릴지……. 겨울에는 눈 때문에 걸어가야 합니다. 천천히 도보로 가면 1시간 반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 마을의 대형슈퍼로 가는 모양입니다. 내가 거기에 가려면 한나절이 걸립니다 ..  (50, 13쪽)


 그린이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은 “작은 숲”에서 살면서 ‘어릴 적 어머니가 당신한테 해 주던 밥’을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시골살이에서 ‘먹는 이야기’밖에 없으랴 싶을 만큼 ‘어머니 손맛과 입맛’을 곱씹습니다. 다른 이야기라든지 다른 삶이라든지 다른 삶자락도 있을 텐데, 무엇보다도 ‘손수 키우고 손수 거두며 손수 빚는 밥’ 이야기가 그득합니다.

 그린이가 따로 ‘먹는 일을 좋아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다가는, 어릴 적 엄마한테 안겨서 젖을 물던 느낌을 잊지 않는 어른이 적잖이 있음을 떠올려 보면, ‘이제는 곁에 없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데에 ‘어머니 손맛과 입맛’을 되새기는 일만큼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일도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차근차근 그린이 지난 삶을 되짚고 톺아보는 동안, 그린이가 도시살이에서 받은 생채기를 하나둘 씻을 수 있을 테며, 생채기를 하나둘 씻는 가운데 ‘내빼서 숨어든 시골’이 아닌 ‘좋아서 다시 찾아온 고향’ 이야기로 새로 태어날 수 있겠지요.


.. 나한테 ‘우스터소스’는 집에서 만드는 소스였다. 그래서 학생 때 가게에서 팔고 있는 ‘우스터소스’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었다 … 씻고 잘라서 볶다가 간을 하고 그릇에 담는다. 순서는 엄마랑 똑같은 게 분명한데, 씹는 감촉이 다르다. 뜯는 시기를 놓쳐서 너무 많이 자란 푸성귀라도 엄마가 볶으면 맛있었다. 내가 볶으면 ..  (18, 155∼156쪽)


 이제 곧 2권을 넘길 차례인데, 우리한테도 《리틀 포레스트》처럼 제 삶과 삶터를 단단하고도 따뜻하게 붙잡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만화로 엮어내는 만화쟁이가 하나둘 태어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느낍니다. 벌써 스무 해쯤 앞서부터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만화를 그리는 박연 님은 《들꽃 이야기》와 《엄마의 밥상》을 그려내기도 했는데, 농사일이 너무 바쁘고 힘든 탓인지, 아니면 농사일이 훨씬 재미있어서 만화그리기는 조금 멀리하는 탓인지, 더 많은 작품이 못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만화쟁이를 돌아보면, 하나같이 도시에서 살아가며 도시 삶만을 만화로 담아냅니다. 하기는. 어느 누구라도 제가 살아가는 곳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가운데 담아낼 테니까요. 더구나, 이런 만화를 보고 저런 만화를 펼치는 저 또한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부터 스스로 시골살림을 꾸리지 않으면서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 살내음 나는 만화’를 바란다면 꿈 같은 노릇입니다.

 다만, 꼭 농사짓는 만화쟁이가 농사짓는 시골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어 내놓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도시살림 꾸리는 만화쟁이 스스로 ‘머리만 굴려 어설피 지어낸 이야기로 그려내는’ 만화를 뛰어넘으면서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사람과 동네를 받아들이고 느낀 이야기를 펼쳐내는’ 만화로 거듭날 수 있으면 더없이 반갑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참되게 살고, 스스로 즐겁게 살며,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가운데, 이와 같은 우리 삶을 만화이든 사진이든 글이든 알차게 꽃피울 수 있으면 둘도 없이 훌륭하면서 싱그럽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아로새겨지리라 믿습니다. (4342.8.7.쇠.ㅎㄲㅅㄱ)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09-08-0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만화가 우리에겐 음란하고 폭력적이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서정적인 만화를 그리시는 분도 계시네요.
 
만화 공화국 일본여행기 -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일본컬처트래블
박인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만화쟁이가 일본을 사랑하는 까닭은
 [잠깐 읽기 50] 박인하,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 책이름 :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 글 : 박인하
- 펴낸곳 : 랜덤하우스 (2009.7.10.)
- 책값 : 13800원



 (1) 일본책과 한국책


 헌책방에서 만난 책마을 어르신들은 퍽 예전부터 으레 “자네, 일본 간다에 가 보았나? 일본 간다에 가 보면 책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거야.” 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일본 나들이를 할 만한 비행기삯이나 방삯이 없습니다. “네, 나중에 돈이 되면 가 볼게요. 그리고 굳이 일본까지 가 보지 않아도 우리 나라에서도 책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틀림없이 일본은 우리와 견주어 책 문화가 크게 발돋움했고, 일본 헌책방 문화 또한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훌륭합니다. 이러저러한 모습은 몸소 겪으면서도 알 수 있겠지만, 굳이 몸소 겪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제 깜냥껏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리라 생각하면서 조용히 나라안 헌책방 마실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여름에 일본 나들이를 한 번 했습니다. 그무렵 몸담고 있던 출판사에서 ‘자료를 사서 들고 올 짐꾼’으로 저를 곁다리 삼아 일본에 보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넉 밤을 지내고 돌아오는데, 그 넉 밤 동안 ‘일본 간다에 가 보지 않고 헌책방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던 책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살갗으로 느꼈습니다. 간다 헌책방거리를 여러 날 돌아보면서 ‘책을 보는 눈’ 또한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 일본에 처음 도착해서 느낀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거리가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과 닮아서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몇 번 방문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일본 도시의 거리는 한국과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많이 다르다. 특유의 작은 이층집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거리와 골목, 외관이 잘 정돈된 상가, 아케이드 지붕 아래 늘어선 건물들, 길게 형성된 지하상가까지 일본의 가장 일상적인 풍경들은 사실 우리에게 낯선 모습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에 도착하면 이 일본적인 거리 풍경을 보고 ‘낯익다’고 느낀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일본의 거리와 집을 끊임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  (38쪽)


 제 돈으로 제 깜냥껏 즐기는 나들이가 아니었던 탓에, 제가 가고픈 대로 다닐 수 없었지만, 넉 밤 가운데 꼭 두 시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말미를 얻었고, 이 두 시간 동안 저는 ‘더 많은 헌책방’을 다니는 데에 쓰기보다는 ‘일본 여느 살림집이 있는 골목 안쪽은 어떠한 모습일까’가 궁금해서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을 부지런히 쏘다녔습니다. 나리타공항에서 내려 도쿄로 들어가는 전철길에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여느 살림집 모습이 살갑다고 느껴 ‘일만 아니라면 예쁜 마을에서 내려 한참 동안 그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쿄 도심지에서 어느 만큼 벗어난 여느 살림집 있는 골목을 거닐 때에도 ‘일본에서는 이런 골목을 잘 간수하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도쿄에서 책꾸러미를 이고 지고 끌고 하며 다시 전철을 타고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길에서도, 창밖을 내다보며 ‘일본이라는 나라 여느 삶자리가 이러하다면, 한국보다는 차라리 일본에서 살면 훨씬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 여느 삶자리를 지킬 수 있으니, 이처럼 사람들 여느 시골마을을 깨끗하게 간수할 수 있으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퍽 괜찮다 못해 훌륭한 나라가 아닌가 하고 느꼈습니다. 일본도 틀림없이 재개발을 하기는 하겠지만 우리 나라처럼 마구 밀어붙이지는 않겠구나 싶었고, 한 집에서 쉰 해 백 해 이백 해를 뿌리내리며 살아갈 수 없는 한국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 일본에는 걷기 좋은 거리가 널려 있고, 그 거리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일본은 숲의 나라다. 그래서 숲은 일본을 잘 표현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이 숲의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한 대표적인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8년 작품 〈이웃집의 토토로〉는 ‘숲’의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다 ..  (42, 131쪽)


 흔히 일본을 두고 ‘역사가 짧은 나라’라 하고, 우리 나라를 놓고 ‘역사가 긴 나라’라 합니다. 그러면, 일본은 어느 대목에서 역사가 짧고, 우리는 어느 대목에서 역사가 길까요. 역사가 짧은 일본이 제 나라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삶터를 보듬는 매무새하고, 역사가 길다는 한국이 제 땅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삶터를 보듬는 매무새는 어떠할까요? 일본은 ‘역사가 짧은’ 모습 그대로 어설프고 어줍잖게 살고 있습니까? 한국은 ‘역사가 긴’ 모습 그대로 훌륭하고 거룩하게 살고 있습니까?

 일본 나들이를 하고 난 다음 헌책방에서 다시 만난 책마을 어르신들은 이런 말씀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일본은 저희들 짧고 모자란 역사라 할지라도 하나하나 알뜰히 모시고 사랑하고 가꾸면서 살아왔기에, 그 흐름이 한 세대 두 세대 꾸준히 거치면서 나날이 발돋움할 수 있었고, 한국은 스스로 역사가 길다는 생각에만 빠진 채 제대로 우리 삶과 문화를 돌보지 않고 우쭐거리기만 하느라고 제 모습도 못 보고 다른 이 모습도 못 본다”고.

 어르신들 말씀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어르신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와 문화 어느 구석에도 제대로 갈무리된 자료나 책이 몹시 드뭅니다. 나라나 지역정부에서 애써 갈무리하는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거의 없습니다. 부천에 만화박물관이라 할 만한 곳이 하나 열렸지만 그뿐입니다. 이 나라에 손꼽히는 만화쟁이가 한둘이 아닌데, 만화박물관이 고작 하나로 되겠습니까. 소설박물관이나 시박물관이나 동화박물관이나 사진박물관도 매한가지입니다. 기차박물관 전철박물관 버스박물관 전화박물관 골목길박물관 아파트박물관 논밭박물관 고기잡이박물관 광산박물관 동굴박물관 오름박물관 들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으며, 우람한 건물로 짓는 박물관이 아닌 온나라 곳곳에 조촐하게 가꾸는 ‘지역박물관’이 서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 박물관이나 전시관 하면 크고 좋은 것을 떠올리는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 ‘테즈카 오사무 박물관’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테즈카 오사무 박물관’은 작고 특성화된 박물관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다 ..  (119쪽)


 그러고 보면, 독립기념관이라는 우람한 건물은 있되,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 옛집이 제대로 간수된 일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독립운동과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당신 삶을 고이 일구어 온 사람들 삶터를 고이 간직하거나 아끼는 일 또한 거의 못 봅니다. 굳이 관광지나 관광자원으로 삼는 개발이나 공원이나 박물관 따위가 아닌,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쉬고 머리를 가다듬고 몸을 갈고닦으며 서로 어깨동무하는 가운데 어우러지는 마을쉼터를 마련하고, 마을 문화를 보듬을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되어서 더 값이 있거나 오래되었으니 얼른 헐어 버릴 뭔가가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온 흐름이 무엇이고 오래도록 지킬 수 있던 손길은 또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눈길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한테 하나도 없는 대목은 이런 눈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지난날에도 우리한테 하나도 없던 대목은 이와 같은 눈길과 손길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앞날에도 이러한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은 좀처럼 퍼지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 이제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낡은 거리가 구라요시의 매력이다. 일본인들도 이 거리를 보러 구라요시를 찾는다 … 만화 속 주인공처럼 과거의 한때로 돌아간 듯한 아키가와라 마을은 기차역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 쇠락한 마을을 만화와 결합해 추억의 장소로 다시 포장했고, 관광객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마을 중앙에는 마을 전체를 안내하는 안내판과 아직도 사용중인 주물로 만든 우체통이 놓여 있다. 에도 시대 커다란 창고였던 집들은 전통 인형을 팔거나 잡화를 팔고 있고, 카페나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  (312, 315쪽)


 책은 그 나라 삶터 그대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프랑스책이든 영국책이든 미국책이든 일본책이든 훌륭하다고 하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수수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동네 터전이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둘레에서 늘 보고 부대끼며 배우는 모든 모습들이 훌륭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이 훌륭함과 아름다움을 곱다시 받아먹으면서 뒷날 훌륭한 책 하나 빚어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 창작책이 드물고 온통 번역책투성이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자리를 ‘훌륭한 수수함’이나 ‘아름다운 수수함’을 내치거나 내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나처럼 서양바라기로 흐르는 가운데 서양집을 짓고 서양옷을 입으며 서양밥을 먹습니다. 서양노래를 즐기고 서양말로 생각을 펼치고 서양학교로 가서 배우고 돌아옵니다. 이런 우리들한테서 창작책이 나오기는 힘들 뿐더러, 숱한 창작책들마저 ‘나라밖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머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펼쳐내지 못합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이야기를 엮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도 아니며, ‘우리 것이 나쁜 것이여’도 아닙니다. 우리 것은 우리 삶일 뿐입니다. 우리 삶이 고스란히 우리 책으로 묶일 뿐입니다. 우리 삶은 고스란히 우리 만화가 되고 우리 노래가 되며 우리 영화가 되다가 우리 연극이 될 뿐입니다. 






 (2)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어떤 책일까


 만화평론을 하고 대학교에서 만화창작 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박인하 님 새로운 책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를 읽습니다. 박인하 님은 당신 일터인 대학교에서 ‘안식연구년’을 맞이하여 일본으로 식구들이 다 함께 건너가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느긋하게 연구와 창작을 즐기면서 당신 스스로 배우고 느낀 이야기를 뽑아낸 첫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여기 등장하는 풍경들도 일본적인데,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일본 작가들은 만화에 나오는 공간을 현실에서 가장 적절한 공간을 찾아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  (41쪽)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는 책이름 그대로 ‘만화가 넘치는 나라’인 ‘일본을 여행하고 다닌 이야기’를 담습니다. 더욱이 만화를 퍽 좋아하고 만화이야기를 즐겨서 쓰는 분이 부대낀 삶자락을 담습니다.

 그런데, 책을 처음 펼치고 덮을 때까지, 이 책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로 박인하 님이 우리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지를 좀처럼 알아채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난 일본에 와서 이런저런 곳을 둘러보았다’고 하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아니면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에 다 나와 있는 ‘일본 지역 정보’를 알뜰히 그러모아서 보여주고 싶으신지, 또는 ‘한국사람들한테 두루 익숙하다기보다 박인하 님 당신한테 익숙하거나 살갑다 느낀 일본 만화가 어느 곳에서 태어났는가를 몸소 느껴 보려고 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어 보고 싶으신지 알쏭달쏭합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으며 그것도 있을 텐데, 글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어수선합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적어도, 책이름 그대로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쯤 이름을 붙이려 했다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구태여 이 책을 들추어보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을 만한 이야기를 어설프고 지루하게 늘어놓는 틀거리에서는 벗어났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박인하 님 취향이 아닌 만화라 할지라도 ‘만화공화국 일본’ 모습을 보여준다 할 만한 작품이 무엇이며 이러한 작품은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한국에 꽤 많이 알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해서 소개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앞으로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2권이나 3권이 나올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여러 권으로 ‘일본만화와 일본 문화와 일본 삶터’를 다루려 했다면 이번 책 같은 맛보기 짜임새로는 모자라며, 한 권으로 끝내려 한 책이었다 하면 너무 가볍고 어지럽습니다. 그리고, 겉훑기로 그치고 맙니다. 아무개 작품으로 무엇이 있고 줄거리는 어찌어찌 하다는 이야기는, 구태여 이 책에서 다루어 주지 않아도 ‘이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라면 으레 알고 있을 법하지 않겠습니까. 또, 만화 줄거리와 만화쟁이 작품 소개에 그렇게 자리를 많이 내주면서, 정작 그 만화쟁이 삶과 생각과 자취, 또 그 만화쟁이가 터를 내린 고향 삶터 ‘여느 사람 삶자락과 목소리와 숨결’ 이야기가 어떠한가를 살피는 데에는 너무도 적은 자리만 들이고 말았구나 싶습니다.


.. 아무튼 일본의 역사만화에는 일본의 역사가 있다. 그것도 대단히 매력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  (67쪽)


 만화평론을 하는 분이 내놓는 일본여행기라 한다면, 대학교수로서 만화창작에 뜻을 둔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 제자들 앞에서 내놓을 ‘일본만화는 어떤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하는 강의록이라 한다면, ‘일본땅을 밟지 않고 한국땅에 옮겨진 일본번역만화를 한국땅에서 읽으면서도 다 알 수 있고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애써 일본땅을 안식연구년 월급을 받으면서 지내는 가운데’ 쓰신다면, 시간이며 품이며 돈이며, 더욱이 종이며 책이며 아까운 노릇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차라리 더 가볍게 나아가든지, 좀더 무게를 다잡고 엮어내든지, 아니면 깊이 파고들면서 살펴보든지, 또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쟁이를 추려서 한결 너르고 샅샅이 돌아보든지 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 미즈키 시게루는 돗토리 출신 만화가로, 〈게게게의 기타로〉라는 요괴만화를 그려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적 작가다. 그런데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이 문을 열고 나자, 낡고 쇠락한 상점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후 돗토리는 돗토리 출신 만화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명탐정 코난〉의 인기 작가 아오야마 고쇼의 박물관과 〈아버지〉, 〈열네 살〉의 작가주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 작품의 배경 등을 관광 상품으로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  (300쪽)


 새삼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를 읽는 동안, 일본 만화쟁이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덧붙여, 한국 만화쟁이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기 힘들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흐름은 달라지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신나게 붓끝을 놀리는 만화쟁이는 꾸준하게 일본을 사랑하겠구나 싶고(군국주의로 치닫거나 생태환경 이야기에 등돌리는 일본 정부를 때때로 나무라기도 하면서), 한국에서 태어나 고달프게 붓끝을 휘두르는 만화쟁이는 꾸준하게 한국을 서글퍼하거나 안타까이 여기겠구나 싶습니다.

 하기는, 만화쟁이만 그러하겠습니까. 글쟁이는 어떻고 사진쟁이는 어떻습니까. 책쟁이는 어떻고 연극쟁이는 어떻겠습니까. 농사꾼은, 노동자는, 애 엄마와 애 아빠는 어떠하겠습니까. (4342.8.4.불.ㅎㄲㅅㄱ)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9-30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