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 바닷마을 다이어리 3 바닷마을 다이어리 3
요시다 아키미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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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하게 살면서 곱고 착한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18] 요시다 아키미,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이브의 잠》이나 《바나나 피쉬》나 《러버스 키스》라는 만화책을 그렸다는 요시다 아키미 님이 새롭게 그리는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가운데 3권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보다. 이분 다른 만화책도 보고 싶은데 만화책방에 갈 때마다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는 잊고 만다. 아직 다른 만화책들은 판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내가 더 까먹지 않는다면 즐겁게 장만해서 읽을 수 있겠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요시다 아키미 님이 새롭게 그리는 책에 붙인 큰이름인데, 일본글로는 ‘海街diary’로 적는다. 그러면 이 이름을 한글로 옮길 때에는 ‘바닷마을 일기’나 ‘바닷마을 이야기’나 ‘바닷마을 편지’쯤으로 옮겨야 알맞은데, 엉뚱하게 ‘다이어리’라 적고 만다(이 나라 만화책 출판사 편집자 마음씀이 아쉽다). 일본사람은 워낙 영어를 일본말인 듯 여기며 함부로 자주 쓰지 않는가. 그러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 또한 영어를 참 쉽게 쓴다. “열린 마음”이나 “너른 마음”이라 말할 줄 아는 오늘날 한국사람은 퍽 드물다. 으레 “오픈 마인드”를 주워섬긴다. 몇 해 앞서부터 시월 끝무렵에 한국방송국(KBS 아닌)에서 벌이는 책잔치 이름은 “책잔치”가 아닌 “북쇼”이다.

 만화쟁이 요시다 아키미 님은 ‘바닷마을 일기’를 어느덧 세 권째 그린다. 첫째 권은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2009.5.)이고, 둘째 권은 《한낮에 뜬 달》(2009.12.)이며, 셋째 권은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2010.10.)이다. 앞으로 몇 권까지 더 그릴는지 모른다만, ‘바닷마을 일기’는 일본에서 ‘카마쿠라’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복닥이는 삶을 담아낸다. 언뜻 보기에 아무 이야기가 없을 듯하다 여길 수 있고, 썩 재미난 일이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참 작은 시골마을(또는 작디작은 도시이거나 시골 읍내쯤) 사람들 여느 삶을 수수하게 보여준다. 우리로 치면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신니면 산골마을 이야기라 할 만하고, 전라도 고흥군 풍양면 바닷마을 이야기라 할 만하다. 이 작디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이 하루하루 벌이는 자그마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바닷마을 일기’이다.

 일본 만화라서 자잘한 대목을 잘 들여다보며 알뜰살뜰 만화 하나로 엮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한국 만화라서 자잘한 대목은 들여다볼 생각 없이 더 잘 팔리거나 더 눈길을 끌거나 더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에 휩쓸린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삶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내 집에 텔레비전을 안 들여놓고 내 살붙이와 동무랑 오순도순 지내는 맛을 안다면, 살붙이와 동무랑 복닥이며 하루를 빠르게 보내는 삶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눈물과 웃음이 있는가를 깨닫는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거룩하거나 놀랍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품는 짝사랑 하나로도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가슴에 차츰차츰 커 가는 또다른 사랑과 믿음 또한 그지없이 깊은 이야기로 여미기 마련이다. 어른들이 나누는 사랑은 어떠할까. 어른들이 하루하루 꾸리는 삶은 어떠한가.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배우거나 놀거나 일하거나 어울리는 삶은 어떠하겠는가.

 날마다 일기를 꼬박꼬박 적어 보는 사람은 알 테지. 한 해 삼백예순닷새 일기 가운데 똑같이 적바림하는 일기란 나오지 않는다. 날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할지라도 날마다 똑같은 낱말과 말투로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글자수로 적바림하는 일이란 없다. 나 스스로 똑같다 잘못 생각할 뿐, 어느 하루조차 똑같을 수 없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한달지라도 날마다 날씨가 다르며,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이 다를 뿐 아니라,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라든지 보내는 겨를은 다르다. 햇살이 드리울 때하고 비가 쏟아부을 때가 다르다. 옷장에서 꺼내어 입는 옷이 다르다. 빨래를 할 때에 드는 품이 다르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다르며, 텔레비전 구경을 좋아한다면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이야기 또한 다르다.

 바닷마을 일기 셋째 권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가득 채우며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같은 말마디를 하나하나 되씹어 본다.


- “어쩔 수 없지. 그런 부분까지 다 좋아했던 걸 테니까.” (19쪽)
- ‘길지 않았지만 친구들도 생겼었고, 산도 강도 깨끗하고, 마을도 사람들도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 오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 따윈 바라지 않았다.’ (24∼25쪽)
- ‘유아, 눈치 채고 있었구나. 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유야. 나서서 허드렛일도 챙기고, 혼자서 잠자코 재활 연습을 하고. 강하구나. 게다가 자상하기까지 하다. 뭐니,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50∼51쪽)
-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는 건데 그럼 안 되니?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병 때문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75쪽)
- “응. 곱게 유카타도 차려입었어.” “유카타라.” “그에 비하면 우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고.” “어쩔 수 없잖아. 우리 집 배는 고기잡이 배니까 차려입으면 불편하다고. 슈퍼 비닐봉지나 들고 있고. 딱 아줌마네.” “하지만 과자가 없으면 아쉬우니까.” “피부도 까맣고.” “어쩔 수 없잖아. 밖에서 뛰는 축구부니까.” (86쪽)
- ‘지금쯤 유아도 어딘가에서 이 불꽃을 보고 있을까? 그 아이와 함께. 유아의 다리에 대해 알면서도 사귀는 걸 테니 분명 좋은 아이겠지. 유야의 다정함과 배려는 다른 모두에게도 평등하게 향해 있던 거구나.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더. 유아는 잘못한 게 없어. 내가 멋대로 착각했을 뿐. 하지만 그 아이를 향한 유아의 마음은 역시 조금은 특별한 거겠지?’ (94∼95쪽)



 만화책을 보면서 잘 그린 그림이라서 집어드는 일은 거의 없다. 더없이 멋진 그림이구나 싶어 집어드는 만화책이란 아예 없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림책을 볼 때에는 참 잘 그렸구나 싶은 책을 사들 때가 있기도 하다만, 그림만 잘 되어 있을 때에는 몇 번 넘기기 힘들다. 솜씨만 빼어난 그림이라면 벽에 걸어 놓고 오래오래 두고두고 바라보기 어려우니까. 내 마음을 건드리는 만화나 그림이어야 즐겁게 넘기고 다시 넘기며 우리 딸아이한테까지 물려줄 만하니까. 내 삶을 밝히거나 빛내는 고운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거나 그림책일 때에 비로소 기쁘게 장만하여 우리 집 책꽂이에 예쁘게 꽂아 놓으니까.

 요시다 아키미 님 만화를 보면서 이분 만화결이 빈틈이 없다거나 예쁘장하다거나 맛깔스럽다거나 하고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결인지 아닌지조차 느끼지 않는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든 《한낮에 뜬 달》이든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이든 수수하게 붙인 책이름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시사람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시골사람 자잘한 이야기로 스며들어 엮은 줄거리가 내 마음을 얼싸안는다. 작은 사람들 작은 이야기를 살가이 보듬는 만화쟁이 마음씨를 느끼며 고맙다고 느낀다.

 따지고 보면, 만화결이 훌륭하다고 이 만화책을 사지 않듯이 글솜씨가 빼어난 작품이라 해서 이 글책(문학책이든 인문책이든 예술을 다루는 책이든)을 사지는 않는다. 토박이말을 잘 살린 작품이라 해서 뛰어나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운 문학이 될까? 현대문학에서 손꼽힌다 하는 작품이라 하여 멋지거나 재미나거나 고운 문학이 될까? 노벨문학상을 탄다 한들, 이상문학상을 탄다 한들, 아쿠타가와상을 탄다 한들 무엇이 다르려나. 훌륭하기에 상을 받는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상을 받은 작품이 내가 읽어서까지 빛깔 곱거나 아리따운 삶으로 녹아드는 이야기이지는 않다. 나는 내 마음을 따스하고 넉넉하게 일구는 데에 길동무가 될 좋은 이야기 담은 책 하나를 만날 수 있으면 흐뭇하다.

 조용하거나 한갓지다 느낄 수 있고, 들뜨거나 두근거린다 느낄 수 있는, 차분하면서 따사로운 말마디를 거듭거듭 되뇌어 본다.


- ‘산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몰라.’ (104쪽)
- “유야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안 순간, 실은 나 조금 안심했어. 혹시 유야랑 스즈가 사귀게 되어서 그런 두 사람을 계속 곁에서 봐야 한다면, 나 분명 속상해서, 속상해서 …….” (107쪽)
- ‘어쩐지 이상하다. 1년 전에 만약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언니와 ‘자매’가 되는 일은 없었겠지. 마찬가지로 요시노 언니나 치카 언니와도 ‘자매’가 될 수 없었을 거다. 옥토퍼스(축구단)의 친구들도 감독님도 만날 수 없었다. 만약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야마가타의 작은 온천 마을에서 또다른 ‘가족’과 지금도 살고 있었겠지. 진학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이 달콤한 간식도 먹거나 …….’ (128∼129쪽)
- ‘그때 언니는 잠자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봈다. 딱히 슬퍼하거나 하지 않은 채, 그렇지만 무언가 알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133쪽)
- “그리고 그 ‘정말 소중한 것’은 누가 봐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74쪽)
- “사과하시더라구. 지금껏 못난 딸이 붙들고 있어서 미안했다고.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어. 날 원망할 때가 훨씬 편했어. 부부는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그분들은 나처럼 도망칠 수도 없을 테니까.” (179쪽)
- ‘마음의 병을 앓는 아내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앙금처럼 쌓여 앞으로도 절대 지워지지 않겠지. 나는 그걸 계속 지켜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게도 그의 아내에게도 불만을 쌓아 가는 나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났다. 그래도 행복했던 그 시간들. 그건 대체 뭐였던 걸까?’ (183∼184쪽)


 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 고운 문학이란 무엇인가. 맑은 문학이나 밝은 문학, 또는 기쁜 문학이나 예쁜 문학이란 어떤 모습이려나. 참된 문학이나 착한 문학을 생각해 볼 수 없나. 내 좋은 삶을 꿈꾸며 좋은 문학을 찾거나 즐기면 어떠하려나. 내 고운 삶을 일구려는 매무새로 고운 작품 하나 어깨동무한다면 내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 착한 넋 착한 이 착한 말 착한 꿈 착한 삶으로 이어지는 착한 만화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보낸다면 내 몸은 어떻게 달라질까.

 제법 사랑받으며 읽히는 만화 ‘바닷마을 일기’일 테지만 아주 널리 알려지지는 못하리라 본다. 꽤 두루 팔리기도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바닷마을 일기’를 그린 요시다 아키미 님은 당신이 그리는 이 만화를 100만 사람이나 1000만 사람이 읽고 가슴 뭉클히 받아들여 주리라 바라지 않겠지. 10만이 아닌 1만 사람일 뿐이더라도, 1만조차 아닌 1천 사람이나 1백 사람일지라도, 가슴으로 따뜻하게 껴안아 줄 고운 벗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그린이가 먼저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면서, 읽는이 또한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곱고 맑은 온누리에서 즐거이 어깨동무할 보금자리를 바라 마지 않겠느냐 싶다. (4343.10.16.흙.ㅎㄲㅅㄱ)


―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요시다 아키미 글·그림,이정원 옮김,애니북스,2010.10.2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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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의 아이 4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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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한 만화에는 대단한 이름이 안 붙는다
 [만화책 즐겨읽기 4] 이가라시 다이스케, 《해수의 아이 (1∼4)》



 2008년 8월에 1권과 2권이 나온 뒤, 2009년 9월에 3권이 나오고, 2010년 9월에 이르러 비로소 4권이 나온 《해수의 아이》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해수의 아이》를 그린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은 《리틀 포레스트》라는 만화를 함께 그렸습니다. 저는 《리틀 포레스트》를 읽고 나서 《해수의 아이》를 읽었고, 집식구가 이이 만화책은 모두 훑고 싶다 해서 《마녀 (1∼2)》(2007)와 《영혼》(2008)을 장만하여 함께 읽었습니다.

 올해에 넷째 권이 나온 《해수의 아이》를 펴낸 출판사에서는 “장대한 스케일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로 이루어진 만화라 말하고, “이야기의 완성도와 대중성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넷째 권이라 말합니다.

 출판사에서 누리책방에 보도자료를 띄운 그대로 《해수의 아이》는 틀림없이 큰 판을 짜서 뒷이야기를 궁금해 하도록 이끌어 가는 작품입니다. 이야기가 한결 빈틈없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곳곳을 가다듬으며 비로소 무언가를 밝히며 끝맺겠구나 싶습니다.

 처음 《해수의 아이》 1권을 집었을 때부터 두 해가 지나 4권을 집은 엊그제까지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 다른 만화에서도 얼핏 느끼지만, 무엇보다 《해수의 아이》를 보면서 이 만화에서는 ‘만화 그림’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만화 《해수의 아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바닷물 안팎 이야기를 그리면서 ‘사진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립’니다. 네모난 틀에 나오는 그림결과 짜임새는 으레 ‘사진기로 들여다본 모습’입니다.

 어떠한 만화책이든 뒷그림을 그릴 때에는 사진을 찍어서 그린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하염없이 서서 밑그림을 그린 뒤에 펜으로 마무리하자면 힘드니까요. 사진을 찍어 놓고 일터로 돌아와서 뒷그림을 그리며, 이러한 뒷그림은 흔히 다른 이한테 도움을 받아 그립니다. 널리 알려진 만화 《요츠바랑!》을 잘 살피면, 이 만화에 나오는 뒷그림이나 무대나 자전거 그림 들은 ‘만화로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사진을 만화로 옮긴 그림’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요츠바랑!》 1권부터 9권까지 보는 내내 ‘처음부터 만화로 여기어 만화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다음 만화로 옮긴 그림’이었기 때문에 못마땅하다거나 거리끼는구나 하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요츠바랑!》에서는 이러한 그림결이 만화 이야기에 살며시 잘 녹아듭니다. 이와 달리 《해수의 아이》에서는 ‘사진 틀거리에 맞춘 그림’이 작품에 썩 녹아들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사진에서 옮겨 그린 그림이면서 ‘구도가 깨진’ 그림이 있는가 하면 ‘조화가 어긋난’ 그림이 자주 보입니다. 흔한 말로 ‘데생 연습이 모자란’ 셈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일부러 ‘못 그리는 그림’으로 만화를 그리는 분이 있습니다만, 그림이 좀 어설프더라도 이야기를 슬기로우며 알차고 재미나게 이어가면 ‘어설픈 그림’이 외려 힘이 되거나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만화 《해수의 아이》에 고래가 자주 나옵니다. 고래를 이야기하기로는 소설 《모비딕》이 으뜸이라 할 만합니다. 얼마 앞서 소설 《모비딕》을 새롭게 다시 읽은 적 있는데, 《모비딕》을 읽는 동안 《해수의 아이》가 떠올라 이 만화를 겹쳐 읽고 보니(《모비딕》 새 번역은 2010년 1월에 나왔습니다. 새 번역을 읽으며 《해수의 아이》 1∼3권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은 ‘만화책에서 고래 발자국을 바탕으로 바다와 우주와 사람과 어머니와 자연과 목숨과 사랑과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 하나 그리고팠구나 하고 느낍니다.

 누구나 그리고픈 만화를 그려야 합니다. 어느 때에 이르러 나 스스로 그리고픈 만화를 그릴 수 있고, 부딪히고 싶을 때에 부딪히며 그릴 수 있습니다. 한창 무르익은 다음에만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가 지나야만 제대로 무르익는 만화쟁이로 우뚝 서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그리는 내 만화가 나로서는 가장 무르익을 때 그리는 만화로 여길 수 있어요.

 이제 5권이 나올 《해수의 아이》는 5권으로 끝을 맺을는지, 6권이나 7권으로 이어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어떻게든 끝을 내겠지요. 그런데 작품 하나를 끝맺으면서 읽는이한테 말고 그린이 스스로 무엇을 깨닫거나 보거나 헤아릴는지 모르겠습니다. 만화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읽거나 보는 사람 가슴을 뭉클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바야흐로 ‘작품’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만, ‘읽거나 보는 사람에 앞서 그리는(또는 쓰거나 찍는) 사람부터 당신 스스로 당신 가슴이 뭉클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사람들 앞에 ‘작품’이라고 밝히며 내놓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한테 《해수의 아이》는 어떤 만화일는지요?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한테 이 만화는 ‘작품’으로 꼽을 만한지요?

 굳이 출판사 보도자료에 적힌 몇 마디를 들었습니다만, 만화 《해수의 아이》는 가없이 크고 넓은 우주와 자연과 바다와 어머니와 삶과 사랑과 목숨 들을 골고루 뒤섞어 알뜰히 보여주고자 힘씁니다. 그러면 묻고 싶습니다. ‘우주’라는 낱말을 꺼내야 우주를 이야기할 수 있나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듯 집에서 손수 굽는 빵 하나와 빚는 양념 하나에 얼마든지 너르고 깊은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어, 이 양념은 어릴 적에 어머니하고 …….’라 읊으며 무언가 깨닫는 사이 저절로 어머니 이야기를 너르고 깊이 다룹니다. 생각없이 숲길이나 시골길을 거니는데 ‘사각’ 소리를 내는 가랑잎을 밟은 그때에 나 스스로도 모르게 자연을 밝힌 셈입니다. 힘든 나날이라 도쿄를 떠나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가 지내며 마주하는 사람들하고 시나브로 사랑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섣불리 내세운다고 제대로 내세워지지 않는 삶입니다. 대학교 철학과를 다녀야만 철학을 하지 않습니다. 철학교수여야 생각이 깊거나 너르겠습니까. 데생 솜씨가 온누리에서 첫손을 꼽아야 그림을 가장 잘 그리거나 만화가 가장 아름답다 하겠습니까. 가장 비싼 장비를 써야 사진을 가장 잘 찍지 않는 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은 비싼 장비를 쓰고파 하는 마음앓이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더 비싸거나 더 크거나 더 빠른 차를 장만해야 서울이나 부산 같은 도시에서 출퇴근을 더 느긋하며 즐거이 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러나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두 다리로 출퇴근할 줄 모를 뿐더러 자전거로 출퇴근할 줄조차 모릅니다. 길이 막혀 길에서 기름을 쏟아부으며 버리는 돈뿐 아니라 애먼 시간을 헤아리면서, 아침에 삼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일찍 나서며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가면 내 삶과 삶터가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살필 겨를이 없는 한국사람이고 서울사람(도시사람)입니다.

 《해수의 아이》 5권이 나오면 곧바로 장만할 생각입니다. 6권이나 7권까지 나오더라도 기쁘게 장만하겠지요. 그러나 1권을 집었을 때부터 4권까지 오는 동안 ‘만화를 읽는 즐거움’과 ‘작품 하나 만나는 재미’가 자꾸 옅어집니다.

 긴 작품을 그리고 싶으면 참말 길게 바라보며 길게 그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짧은 작품이라 해서 빼어난 작품이 아닐 수 없을 뿐더러, 짧게 끝맺는 작품을 하나둘 꾸준히 내놓다 보면, 바로 이 ‘짧은 작품이 끈처럼 하나로 이어지며 또다른 긴 작품’ 하나로 새삼스레 태어나거나 거듭나는 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애써 힘겹게 너무 ‘커다란’ 말과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풀숲에 깃든 수많은 들풀 가운데 한 포기만 바라보아도 얼마든지 목숨 하나와 자연 사슬을 밝힐 수 있으니까요. 수십억에 이르는 사람이 바글거리는 지구인데, 사람 이야기 하나 못 다루겠습니까. 좋은 끈은 가까이에 있어요. 바다는 늘 우리 곁에 있으나 우리 스스로 참다이 느끼려 하지 못하니 못 느낄 뿐이랍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이 흘리는 땀방울이 고요하게 묻어나 촉촉해지는 작품 하나를 다시금 만나고 싶습니다. 팔에서 힘을 빼셔요. 머리에서 생각을 지우셔요. 마음에서 아쉬움을 터셔요. (4343.10.11.불.ㅎㄲㅅㄱ)


― 해수의 아이 (1∼4) 

 (이가라시 다이스케 글·그림,김완 옮김,애니북스,2008∼2010/95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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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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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사랑하며 만화를 그리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3] 이와오카 히사에, 《고양이 동네》



 고양이를 다루는 만화가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글책이나 그림책 또한 차츰 늡니다. 예부터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늘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부쩍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집고양이 얘기이든 골목고양이 삶이든, 이렇게 이래저래 다루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펼치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낸 이들은 참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며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고 있는가. 그저 유행처럼 그리지는 않는가. 집에 고양이 한 마리쯤 으레 키우고 있으니 손쉽게 고양이 이야기를 그리지는 않을까.

 나와 가까운 자리에 있기에 고양이 만화를 그린다면, 나와 ‘똑같이 가까운 자리에 있는’ 다른 삶을 얼마나 잘 들여다보며 만화로 담아내는지 궁금합니다. 연필 한 자루 이야기이든, 걸상 하나 이야기이든, 책 한 권 이야기이든, 신 한 켤레 이야기이든, 우산 하나 이야기이든 얼마든지 그릴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살피며 그림이나 만화로 담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책 《고양이 동네》를 펼칩니다. 1994년부터 즐겨찾는 만화가게 한켠에 ‘고양이 이야기를 다룬 만화’가 잔뜩 쌓여 있는데, 이 가운데 이 녀석을 눈여겨보고 골랐습니다. 왜 이다지도 고양이 만화가 쏟아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썩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달지라도 이렇게 지나치게 고양이 만화에만 쏠리는 모습은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


- “와, 이 아이예요?” “네, 마지막 한 마리예요. 괜찮으세요?” “네. 열심히 키울게요.” “열심히는 안 해도 되니까, 많이 귀여워 해 주세요.” “네.”  (165쪽)
- “있잖아, 아빠, 오늘 타이츠가 …….” “그랬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잘못이니까. 새 옷 사 달라고 그랬어.” “리쿠, 요즘 엄마가 새 옷 입은 거 본 적 있니?” “응?” “엄마는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지 않니?” “그런가?”  (123쪽)



 고양이 만화이기에 으레 몇 권쯤 더 이어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 《고양이 동네》는 꼭 1권으로 끝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낱권책 하나 부피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2권이 없으니 아쉽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2권이 없기에 오래도록 더 뭉클함이 남을 수 있구나.’ 하고 함께 느낍니다. 애써 새 줄거리를 짜 넣어 2권까지 그리지 않더라도 1권 하나로 얼마든지 그린이가 하고픈 얘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새로운 줄거리야 얼마든지 짜 넣을 수 있을 테지만 자칫 늘어질 수 있어요.


- “리쿠는 잘 있니?” “아, 응. 이제 5학년이라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해.” “어머, 기특해라.” “이대로 리쿠도 타이츠도 점점 어른이 되어 가겠지.” “벌써부터 쓸쓸해 하지 마.” “쓸쓸해 한 거 아니거든!” “그러셔?” “괜찮아. 둘 다 자립해도. 나도 어른인걸. 안 놀아 줘도 괜찮아.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쓸쓸해 하는 거 맞구먼.”  (67쪽)
- “응? 타이츠? 밤에 보는 넌 아이돌만큼이나 귀엽구나. 혹시 엄마 기다린 거니?” (60쪽)


 두 달쯤 앞서 《고양이 동네》를 읽었습니다. 다 읽은 다음 책상맡에 그대로 두었더니 엊그제 옆지기가 읽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오늘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만화책이 보여 다시 꺼내어 주루룩 넘깁니다. 주루룩 넘기다가 내키는 자리에 멈추어 이 자리부터 천천히 새롭게 읽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좋고, 뒤에서 앞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한 번 다 읽은 책은 두 번째 다시 읽을 때부터 마음껏 마음 가는 대로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 “네가 창가에서 자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돼.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런 생각이 들겠지. 할 일도 많은데. 가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고 말야. 리쿠 아빠도, 리쿠도 많이 사랑해. 하지만 조금 지친 걸까. 응? 타이츠.” (23쪽)


 앞에서 차근차근 읽던 맨 처음에는 이 만화 《고양이 동네》가 그예 고양이 만화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뒤부터 앞으로 되넘기며 읽다 보니, 책이름만 “고양이 동네”일 뿐, 어쩌면 그린이는 “고양이 동네”라기보다 “엄마 동네”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양이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 삶과 모습과 말이 나오지만, 가장 자주 가장 속깊이 나오는 말은 바로 ‘고양이를 맡아 기르고 챙기며 보살피는 엄마’한테서 나옵니다.

 《고양이 동네》에 나오는 고양이 ‘타이츠’는 ‘엄마 곁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보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고양이 타이츠는 가장 느긋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엄마는 고양이 타이츠한테 늘 말을 겁니다. 고양이 타이츠는 사람 말을 할 수 없으니 가만히 듣는데, 못 알아들어 가만히 있는다 여길 수 있고, 엄마가 들려주는 말을 마음으로 새긴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 또한 ‘고양이가 내 푸념을 들어 준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집식구와 매한가지로 고양이 타이츠한테 말을 겁니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말을 거는 엄마가 이 만화 《고양이 동네》를 이어가는 고갱이일 수 있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펼칩니다. 그래, 이름은 “고양이 동네”이지만, 이 고양이 동네를 오롯이 그리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 한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담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에 머물며 동네를 지키는’ 사람은 아빠도 아이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남녀평등이니 무어니 떠들어도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일본 또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바깥일을 합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여자들은 집에 머물며 애를 돌보고 살림을 꾸립니다. 남녀가 함께 집일을 하며 함께 집에서 지내는 가운데 함께 동네를 들여다보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동네를 깨끔하게 가꾸거나 정갈하게 돌보는 몫은 온통 여자한테 주어집니다.

 엄마는 아빠를 일터로 보내고 아이를 학교로 보냅니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이불을 말린 다음 가게로 가서 저녁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마른 빨래를 걷어 옷장에 넣고 ‘어제와는 다른 저녁거리’를 생각하다 보면 금세 하루 해가 저뭅니다. 참말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23쪽)” 하는 생각이 절로 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숨을 짓는 엄마 옆에 고양이 타이츠가 다가와 살며시 앉습니다. 고양이 타이츠가 엄마 곁에 앉아 동네를 함께 바라봅니다.

 
- “어머, 타이츠도 왔니? 응? 저리 가. 타이츠. ……. 엄마가 졌다.” ‘숨쉬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기뻐.’  (170∼171쪽)


 고양이랑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 이야기를 살가이 풀어내는 작품을 보면 늘 반갑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내었기에 반갑기도 하지만, ‘살가이 풀어내는 그린이 마음결’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곁에서 노상 같이 살아가는 누군가를 살가이 보듬으며 이야기 하나 엮는 일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든 사진을 찍든, 내 곁 살가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거나 껴안으며 알뜰살뜰 담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가까이 있으나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는지, 가까이 있어 흔하고 쉬우니까 아예 젖혀 놓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받으니 사랑이라고 안 느끼는 어머니 사랑일 수 있겠지요. 한결같이 누리니까 믿음이라 깨닫지 못하는 어버이 믿음일 수 있을 테지요.

 만화책 《고양이 동네》는 ‘숨쉬고 있으니 기쁘다’고 말하는 엄마 삶을 잘 담아 주어 좋습니다. ‘옆에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고이 실어 주어 좋습니다. ‘애쓰기보다 사랑해 주자’고 말하는 엄마 손길을 느끼도록 해 주어 좋습니다. (4343.10.6.물.ㅎㄲㅅㄱ)


― 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7.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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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숲의 아카리 1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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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름다운 만화를 만나고 싶어
 [만화책 즐겨읽기 2]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1∼5)》


 일본 만화는 일본사람 삶과 문화를 담습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한국 만화는 한국사람 삶과 문화를 담을 테지요. 그러면 일본 만화가 담는 일본사람 삶과 문화란 어떤 모습일까요. 한국 만화가 담는 한국사람 삶과 문화는 또 어떠한 모습인가요.

 한국 만화를 보면서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잦습니다. 만화를 그린 분이 답답해서라기보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살아가야 하는 터전이 더없이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제도권 울타리에 갇힌 학교요,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왔다 할 때에도 제도권 테두리에 막힌 사회입니다. 하나도 홀가분하지 않은 한국 배움터이고 삶터입니다. 조금도 너그럽지 않은 한국 배움마당이요 삶마당입니다. 이런 가운데 나오는 한국 만화란 홀가분함이나 슬기로움이나 생각날개하고는 동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삶터부터 홀가분하지 못하도록 얽어매고 슬기로움을 뽐내지 못하도록 짓누르며 생각날개를 활짝 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스스럼없이 즐거울 삶일 때라야 스스럼없이 내 하루를 즐기는 만화를 그립니다. 거리낌없이 나누는 삶일 때라야 거리낌없이 사랑을 나누는 만화를 그립니다. 좋은 만화 하나라 한다면 그린이부터 좋은 삶을 좋은 넋으로 일굴 때에 태어납니다. 아름다운 만화 하나라 한다면 만화쟁이부터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넋으로 아낄 때에 샘솟습니다.

 한국땅에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숫자를 헤아린다면, 돈벌이나 다른 여러 가지를 살피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내 삶을 곱게 일구어 곱게 그리는 고운 만화 하나 내놓을 수 있습니다. 만화잡지에서 안 실어 주든, 만화책 전문 출판사에서 안 내어 주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습니다. 만화쟁이 스스로 즐겁게 그리며 두고두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만화를 실어 주는 자리가 없다면 밥벌이가 안 될 테고, 만화를 보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야기 한 자락을 오래오래 잇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목숨을 잇고, 좋은 읽는이 한 사람 있어야 만화를 그리는 기운을 얻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모두를 바랄 수 없어요. 다섯 해 배를 곯든 열 해 쪼들리며 살아가든 나부터 좋아하며 즐기는 만화를 사랑하여 그리는 흐름을 지키면 됩니다. 가난하다고 그림을 더 잘 그리지는 않고, 살림이 가멸다고 만화를 한결 부드러이 그리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그림 한 장 만화 한 칸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 그림이나 만화를 들여다보는 사람하고 마음을 맞춥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고이 다스리는 일을 먼저 할 노릇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맑으며 밝게 다독이는 일을 노상 이어야 할 노릇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똑같습니다. 애써 쓴 글을 실어 줄 자리가 있다면 참 좋겠지요. 힘써 찍은 사진을 보여줄 자리가 있다면 아주 기쁘겠지요. 그런데 제아무리 잘 쓴 훌륭한 글이라 할지라도 선뜻 실어 주거나 책으로 엮어 주는 일은 드뭅니다. 그지없이 잘 찍은 거룩한 사진이라 하더라도 냉큼 사진잔치를 마련해 주거나 책으로 묶어 주는 일은 거의 없어요.

 굳이 배곯이 길을 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러 밥굶는 길을 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배를 곯아도 좋고, 다른 밥벌이 일을 해도 좋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든 맨 먼저 할 일이란 글을 하든 사진을 하든 만화를 하든, ‘쟁이 한 사람’이 되어 살아갈 마음바탕을 닦고 삶바탕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요. 이 다음에 ‘작품’입니다.

 일본 만화 《서점 숲의 아카리》를 읽습니다. 4권째 나오고서야 비로소 이 만화가 우리 말로 옮겨지는 줄 깨닫습니다. 이제 한창 자라나는 아이와 복닥이는 삶을 꾸리자니 만화가게 마실이 퍽 버겁니다. 여느 책방 마실 또한 꽤 힘듭니다. 오래도록 제때 찾아가지 못합니다. 제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만화책이 4권까지 나올 무렵에야 겨우 한 번 찾아가는군요.

 책을 펼칩니다. 제가 썩 안 좋아하는 그림결입니다. 그러나 내가 안 좋아하든 좋아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그림결이 다르고, 저마다 좋아하는 그림결이 다르니까요. 군데군데 좀 어설픈 그림결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책을 말하는’ 만화라는 대목이 반갑고, ‘책방을 다루는’ 만화라는 대목이 더욱 고맙습니다. “아카리 씨도 본점으로 온 지 반년이 됐군요. 슬슬 주문 같은 것도 해 보는 게 어때요? 주의할 점은, 본인이 좋아하는 책과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은 다르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책이 팔리면 물론 기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경우는 드물어요(1권 123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쩌면, 《서점 숲의 아카리》에서 다루는 ‘책’들은 만화쟁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일 수 있지만, 썩 안 좋아하는 책일 수 있으며, 잘 모르는 책일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서점 숲의 아카리》 같은 만화를 보면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 책마을 모습을 톺아볼 수 있다고 느끼지만, 다른 분들은 그냥저냥 재미로 읽는다거나 심심풀이로 보는 만화일 수 있어요.

 2권으로 접어듭니다. 2권에서는 낱권 하나 통째로 ‘작은 책방’ 이야기를 다룹니다. 만화책 주인공은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 일꾼이라 여길 만한데, 이 ‘큰 책방’ 일꾼이 동네에서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동네사람하고 어깨동무해 오던 ‘작은 책방’을 사귀면서 책이라는 읽을거리란 어떠한가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1947년에 상가로 출발했으니 올해로 꼭 60년이 되나? 이 서점은 상가의 일부입니다. 대형서점은 전국의 고객을 대상으로 코너를 꾸미지요. 하지만 우리는, 반경 500m 안에서 걸어서 찾아와 주는 고객을 소중히 여기며 서점을 꾸려 왔어요(2권 18쪽).” 같은 이야기를 작은 책방 할배한테서 들으며 ‘책방에서 일하는 매무새’를 곰곰이 되씹습니다. 옷깃을 여민다고 할까요.

 책을 살짝 덮고 우리네 오늘 모습을 헤아립니다. 우리네 오늘 모습을 헤아려 보면, 큰 책방 일꾼이나 사장님은 작은 책방 일꾼이나 사장님을 살피지 않습니다. 작은 책방이 작은 동네에서 작은 크기로 오래도록 책삶을 이어오는 흐름을 살피지 않습니다. 작은 책방이 동네방네 한두 군데씩은 꼭 있던 지난날 책삶을 살피지 않습니다. 큰 책방은 큰 책방답게 더 많은 매출과 더 많은 이익을 살핍니다. 큰 책방은 온나라 곳곳에 새끼가게를 열 생각에 빠져 있지, 온나라 곳곳에 깃든 자그마한 책방들이 온나라 곳곳에서 그동안 무엇을 하고 어떤 노릇을 했으며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3권째에 이르니 어린이책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래, 어린이책을 다루어야 비로소 책을 다루는 이야기가 될 테지. 어린이책을 옳게 말하지 못한다면 책이 무엇인가를 말하지 못하는 셈이지. 그린이 이소야 유키 님은 책방 일꾼들 목소리를 빌어, “오야마 씨, 그림책은 다른 매장과 다르게 오래된 것일수록 잘 팔리잖아요. 소설은 하드커버가 나오고 문고판이 나오고 장정이 바뀌는 등,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하지만, 그림책은 옛날 그대로예요(3권 35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린이책 가운데 그림책은 아직까지 이 나라에서는 ‘어린 애들이나 읽는’ 책쯤으로 여겨 버릇합니다. 그러나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덴마크이든 이탈리아이든 중국이든, 어린이책 가운데 그림책만큼은 겉그림이나 알맹이나 짜임새 어느 하나 건드리지 않습니다. 처음 내놓은 그대로 아이들 앞에 선보입니다. 겉그림이든 속그림이든 매만지지 않습니다. 속종이는 새로 꾸며 볼 수 있겠지요. 겉그림 한켠에 무슨무슨 말을 붙이거나 겉그림 뒤쪽에 무슨무슨 추천글을 더 적어 넣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림책처럼 ‘첫 모습 그대로 쉰 해이고 백 해이고 고스란히 똑같이 만들어’ 나누는 책이란 없습니다.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는 책과 책방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마, 책이랑 책방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라면 지겹다거나 따분하다고 느낄 사람이 적잖이 있으리라 봅니다. 책을 좀 읽었다는 분들은 ‘뭐야, 뻔히 다 아는 얘기이잖아.’ 하며 흔하거나 너절한 책으로 여길 수 있겠지요.

 틀림없이 책과 책방을 다루는 《서점 숲의 아카리》인데, 무대와 줄거리가 책이랑 책방이지, 책 하나로 얽히고 설키는 사람 이야기가 한복판에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믿음과 사랑이 이 만화에서 한가운데를 차지합니다. 책이란 무엇이고 책방이란 어떤 곳인가를 밝히는 학술책이 아니라, 책 하나를 아끼는 사람 삶을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책사랑과 책방사랑을 외치는 광고지가 아니라, 책을 품에 안은 책방이 어떻게 따스하며 넉넉한가를 느낀 그대로 들려주는 만화책입니다.

 앞으로 몇 권까지 나올는지 궁금합니다. 짧게 끝맺는다면 참 아쉬울 텐데, 적어도 10권쯤은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린이 힘이 닿는다면 20권이나 30권쯤은 그린 다음 마무리를 지으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한국땅에서 한국 삶터를 돌아보며 한국책을 살피는 마음결로 한국사람 사랑과 믿음을 고이 담는 한국 만화 한 가지 태어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4343.10.6.물.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1∼5) 

 (이소야 유키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42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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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9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0-10-09 11:32   좋아요 0 | URL
다음에 만화가게에 들르면 <너에게 닿기를>을 찾아볼게요.
고맙습니다~~~ ^^
 
두루미 아빠 - 상
츠치다 세이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즐겁게 살고 싶어 만화책 즐겨읽기
 [만화책 즐겨읽기 1] 츠치다 세이키, 《두루미 아빠 (상·하)》



 만화를 그리면서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바탕 그림이 잘 안 된’ 작품을 보자면 슬픕니다. 그러나 그림이 잘 안 되었어도 줄거리가 좋거나 작품을 통으로 살필 때에 아름다우면 ‘그림이 엉성궂어도 기쁘게’ 읽습니다. 이를테면 사진찍기를 할 때에 초점이 살짝 안 맞는다든지 흔들린다든지 빛이 어긋났다든지 하여도 가슴을 뛰도록 하거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는 작품이 있어요. 글에서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렸어도 아름다운 작품이 있습니다. 글쓰기를 하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맞출 줄 알아야 하지만, 이보다는 글 한 줄에 내 사랑과 믿음을 얼마나 제대로 참다이 알뜰살뜰 담을 수 있느냐가 훨씬 큽니다. 이리하여 만화책을 들여다보며 바탕 그림이 좀 어설프더라도 그리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바탕 그림까지 빈틈이 없다면 매우 훌륭할 테지요. 매우 훌륭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어딘가 좀 어수룩하면 어수룩한 대로 반갑고, 어딘가 살짝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기쁩니다. 그림 하나하나를 찬찬히 읽고, 말마디 하나하나를 곰곰이 되씹을 수 있으면 나한테는 더없이 좋은 만화책입니다.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짤막하게 나온 《두루미 아빠》를 보았습니다. 새책으로 나왔을 때에는 알아보지 못했고, 판이 끊기고 나서 예닐곱 해가 지난 뒤에야 헌책방에서 겨우 알아보았습니다. 흔히 알 만한 이야기감을 다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고, 그림결 또한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벌써 봤어. 이 세상이 얼마나 눈부신지. 누구보다도 많이(상권 152∼153쪽).” 같은 말마디 하나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합니다. 어쩌면 이런 말마디 하나를 읽고자 만화책을 뒤지고 사진책을 넘기며 글책을 훑는달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꾸리는 여느 삶을 더 사랑하고 싶어 이와 같은 말마디를 찾는달 수 있어요. 하루하루 참 고달프고 벅차며 힘들구나 하고 느끼니, 이 고달픔을 씻고 이 벅참을 털며 이 힘듦을 덜고자 내 마음을 건드리며 달래는 만화책 하나 좋은 사랑으로 껴안는달 수 있습니다.

 “너희들! 요코를 괴롭히면 알지? 아줌마가 너희 엄마를 때려 줄 거야(하권 44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며 새삼스레 기운을 얻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라서 다른 아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를 감싸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저희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 삶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아름다움을 사랑하면서 따스하고 넉넉히 살아가면 아이들로서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가운데 따스함과 넉넉함을 나눌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돈벌레이거나 당신 쇠밥그릇에 매여 있으면 아이들 또한 돈바라기에다가 저희 밥그릇 챙기기에만 푹 빠집니다. 따돌림이든 돌림뱅이이든 왕따이든 어른이 만들어 아이들한테 물려주지 아이들 스스로 만들지 않아요. 흔히 청소년범죄라 합니다만, 청소년범죄가 일어난다면 청소년을 소년원에 보낼 일이 아니라, 이 청소년을 낳아 기른 어버이와 이웃 어른과 학교 교사를 감옥에 처넣어야 합니다.

 “나 말야, 열심히 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 열심히 하면 언젠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아무리 열심해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을 줄 몰랐어(하권 126∼127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며 곰곰이 되씹습니다. 즐거움(행복)이란 열매만이 아니며 열매가 즐거움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즐거움이란 내가 흘리는 땀방울입니다. 하루하루 흘린 땀이 즐거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려내고 말아야 즐거움이 아닙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렸든 상주까지만 갔든 문경새재를 못 넘든 괴산 즈음에서 멈추었든 즐거움입니다. 한 번 두 번 백 번 천 번 만 번 페달을 밟으며 달린 길이 모조리 즐거움이에요. 아무리 땀을 흘려도 이루지 못하는 일이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이루지 못해서 슬픈 일이란 없습니다. 외려 이루지 못하면서 기쁘며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꼭 이루어야만 내 꿈이 빛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꿈은 내 삶이요, 내 삶이란 내 땀이며, 내 땀이란 내 빛입니다.

 만화책 《두루미 아빠》 첫머리(상권 9쪽)를 보면 주인공 남녀가 혼인을 하겠다며 여자 쪽 어버이를 찾아온 이야기가 나옵니다(남자 쪽한테는 어버이가 없습니다). 여자 쪽 어버이 두 분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중에 나누는 얘기가, “이즈미 걘, 무슨 생각이야? 내가 가지고 온 혼담은 줄줄이 깨 버리더니 저런 녀석을. 순전히 건달이잖아! 일류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어떻게 저런 거하고 알게 된 거야?” “그 회사 청소원이래요.”입니다. 주인공 여자 쪽 아버지는 당신 딸하고 거의 말을 섞지 않았음을 한 마디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주인공 여자 쪽 어머니는 당신 딸하고 드문드문 말을 섞었음을 살짝 엿봅니다. 그러나 주인공 여자 쪽 어버이 두 분 모두 당신 딸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해 보지 못했음을 느낍니다. 꼭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으레 일어나는 이야기이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자주 있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요. 이 글을 쓰는 저랑 함께 살아 주는 한 사람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며 맞아들였을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최종규라고 하는 사람은 ‘다달이 넉넉히 돈이 들어오는’ 일자리가 마땅히 없으면서 책만 잔뜩 사들일 뿐 아니라, 글쓰기와 사진찍기에 파묻힌 사람이니까요. 갖춰 입는 옷이란 언제나 변변하지 않을 뿐더러,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지 않으며 거울조차 안 보며 살아가니까요.

 저는 저하고 함께 살아 주는 사람이 참 고마우며 놀랍고 대단하며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매가 고마우며 곱고, 사람을 맞아들이는 마음그릇이 놀라우며 따스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몸짓이 대단하며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틀림없이 내 마음은 이와 같이 느낍니다. 다만, 몸이 벅차고 힘들어 노상 갤갤거립니다. 엊저녁에도 몸이 하도 고단해 아이한테 윽박지르기나 하고 한결 따스하며 넉넉한 아버지 품이 못 되었습니다. 아버지로서 아버지다운 삶을 제대로 꾸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 집식구가 만화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처럼 “주이치 있잖아, 몸이 왠지 가벼워. 볼래? 자! 날개가 생긴 것 같아. 나, 날고 있어. 주이치 즐거워. 이렇게 즐거워(하권 160∼161쪽).” 하고 말하며 몸에 깃든 생채기 때문에 숨을 거둘 무렵에야 바야흐로 아버지로서 아버지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을는지 모릅니다.

 새벽녘 희뿌윰히 밝아 오는 새날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옆방에서 아이가 잠꼬대로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문득 엊저녁에 쌀을 씻어 불렸던가 하고 생각하다가, 엊저녁에 밥을 새로 해서 아침까지 먹을 수 있다고 떠올립니다. 아침에 밥을 먹기 앞서 콩부터 씻어 불려야겠고, 아침에는 어제 먹고 남은 새우국에 국수와 미역을 넣어 끓이면 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3.9.30.나무.ㅎㄲㅅㄱ)


― 두루미 아빠 (상·하) (츠치다 세이키 글·그림,김현정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3/38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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