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사중주, 주경철 외 3인, 박영사, 2004
몽롱 : 선생님은 책을 읽는 동안 정말로 행복하세요?
느티나무 :
행복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인 옴니부스 레쿠이엠 쿠아에시비, 에트 누스쿠암 인베니 니시 인 앙굴로 쿰 리브로. In omnibus requiem puo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 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토마스 아 켐피스의 이 명언은 '장미의 이름'에 나와서 더 유명해진 말이지. 인용하는 김에 한번만 더 남의 말을 인용해 보겠네. 1904년에 카프카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지.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 읽는 수고를 하는가? 자네가 말하는 것처럼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까? 천만에. 우리에게 책이 전혀 없다 해도 아마 그 만큼은 행복할 수 있을지 몰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들은 우리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단 말이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마치 우리 자신보다도 더 사랑했던 이의 죽음처럼, 아니면 자살처럼, 혹은 인간 존재와는 아득히 먼 숲 속에 버림받았다는 기분 마냥 더 없이 고통스러운 불운으로 와 닿은 책들일세.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알겠니?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은 책! 우리에게 자잘한 행복감을 주기보다는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책... 하늘에 저렇게 별이 가득한 이 아름다운 여름밤을 같이할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그런 책 몇 권을 알고 있지 않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쓸쓸할까......
(5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