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심상이최고야 > 29일간의 국토 종주. 그 글을 읽고 나를 돌아본다.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가능할까?

   책 표지엔 통나무 위에 걸터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어떤 여자가 보인다. 옆에는 꽤 두툼한 배낭이 놓여 있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럽다고 본인을 소개했는데 그런 사람이 걸어서, 혼자서, 땅끝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꽤 무거워 보이는 그 배낭을 매고 여행 할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았다.

   속 표지의 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점퍼와 배낭을 멘 여자가 자욱한 안개 숲 속에서 너무나도 틔없이 밝게 웃고 있다. 뭐가 그리 좋은걸까? 무엇이 그토록 환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걸까? 이토록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게 하는 그 비법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1장. 길, 나의 위대한 학교-땅 끝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29일간의 찬란한 국토 종주기>

   혼자서! 무슨 재미로! 무엇을 목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지루한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참 '별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짧은 생각은 첫 장 그녀의 독백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남의 땅을 떠돌기 전에, 꼭 한번, 우리땅 끝에서 끝까지, 내 발로 걷고 싶었다. 걷는 동안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내가 떠나고자 하는 길이 도피가 아닌지 다시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언제나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칠때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깊게 채워 돌아오던 내 모습도 그리웠다'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신의 삶을 시간과 거리를 두고 성찰하려는 모습에 내 삶은 어떠한가? 반문하게 되었다.

   그녀가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생각들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그녀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금 내게 행복의 의미는 내가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게 아닐까? 넘어져 무릎 깨지고, 코피도 흘리면서 다시 일어나 걷는 법을 기어이 배우고야 마는 어린 아이처럼, 세파에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세상과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나를 보는것.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내가 성장을 계속하리라고 믿는 것, 그리고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책장을 넘길 수록 김남희씨가 참 예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못 마시는 커피지만 할머니가 내어 오시기에 마실수 있고, 비가 내려 걷기 힘들지만 가뭄끝에 내린 단비를 반기는 농부들 생각에 더 많이 내리길 바라며, 오히려 그 빗속을 걸으며 '봄비'에서 '무시로'까지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때때로 보드라운 흙길을 보면 신발과 양말 과감히 벗어 던지고 맨발로 즐길 줄 아는 여유와 낭만이 있는 예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성격이라 글에 거짓이 없는것도 좋았다. 본인이 쓰는 글이 인터넷에 개재되기 때문에 느끼는 여러 스트레스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와 소박함!  버스를 타고 기여이 원래 여행 출발점으로 가서 도보여행을 행하는 정직함과 스스로에 대한 당당함! 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그녀의 솔직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걸으면서 만나는 풍경들. 사람들. 그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도보여행의 매력은 거기에 있나보다. 그런데 여행을 간다고 해서, 국토 종주를 한다고 해서, 보다 나아진 자신의 모습과 반드시 마주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열린 마음, 낯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따듯한 마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현상들을 보고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자세가 있을 때 여행을 통한 '새로운 모습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이 여름 방학 끝 무렵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에 무릎을 쳐야 했다. 좀 더 빨리 나왔더라면 국토 종주는 아니더래도 배낭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워 한 번 도전해 볼 마음이라도 먹었을텐데.... 무지 아쉬웠다. 하지만 책 중간 뒷 부분에 실려있는 가을 여행 코스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울진 금강소나무숲에서부터 송광사 굴목이재까지.... 너무나 가고 싶은 아름다운 여행 코스이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손 잡고 나들이 하면 좋을것 같다.

   몸과 마음.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의 여행기를 통해 나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럽기야 그지 없지만 용기 내어 배낭을 함 꾸려봐야 겠다.

   문득 그녀의 꿈이 생각난다. 어느 농민회에서 이루어진 토론을 들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큰 꿈을 가져본다고 그녀가 이야기 했는데 그 꿈이 이뤄질 듯 싶다. 그녀 덕분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배낭 여행 할 수 있다.'는 희망! '나의 땀과 눈물로 얼룩진 여행기를 읽어 보고 싶다'는 희망!

   p.s.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진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작은 사진을 크게 확대했더니 희미해진 사진이 두어장 보인다. 원본 사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4-10-1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세 번의 도보여행 경험이 있다. 처음엔 부산에서 해남의 땅끝까지, 두번째는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세 번째는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였다. 지금도 이 글을 읽으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돌이켜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인데... 다시 한 번 그 시간들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다. (이 리뷰는 알라딘의 이달의 리뷰(9월)입니다.)
 

- 이 글은 우리 학교에서 기간제 선생님으로 계셨던 OOO 선생님께 드린 메일입니다. 메일함을 정리하면서 지우려다 보니, 그 글마저 지우면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마저 지워질까봐 알리딘으로 옮겨와 남겨 둡니다.

 

   정말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사람이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더군다나 같이 보면서 일하는 일이 보통 연이 아닌데 말씀이지요. 더불어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방금 공부방에서 다녀와 하루를 이제 정리하려고 합니다. 변명 같지만 학교 상황이 이렇게 어이 없는-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경우가 반복되지 않았다면 동료 교사들간의 서먹함도 훨씬 덜 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저의 유쾌하고 신나는 학교생활을 좀 더 많이 보실 수 있었을텐데, 계시는 동안 즐겁게 지내다 가실 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마음 속에 큰 짐을 지고 사신다는 거 알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꼭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사람'은 모두 선생님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마음이 굳다면 꼭 발령을 받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더불어 크려고 노력하는 일이 무척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처럼 서로가 꽉 막힌 관계로 살아갈 때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당부처럼 늘 아이들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는 '교사'로 살아가도록 더 분발하겠습니다.

   편견 없이 넉넉한 마음으로 성원 보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생각나실 때 한 번, 안부 전해주세요.

   "하느님께서는 저희를 시험에 들게 하시고, 저희들 눈물 짓게 하시지만, 오늘 우리가 흘리는 그 눈물로 우리들의 영혼은 조금 더 맑아지고, 우리 생각은 조금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드립니다.

 

2004년 7월 10일, 느티나무 올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김원일, 문학과지성사, 1996

 

아우라지로 가는 길 1

   "시우야, 넌 무슨 생각을 하니?"

   미미가 두 다리를 싸안는다. 세운 무릎에 턱을 고이고 있다.

   "무슨 생각? 아버지."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며?"

   "돌아가셨어. 말은 해. 볼 수는 없어"

   아버지는 나무관에 담겨졌다.마을 사람들이 관 뚜껑에 못질을 했다. 그 관을 뒷동산에 묻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객으로 왔다. "정선군내 진짜 선생님들은 다 모였군" 하고 누군가 말했다. 여량중학교 졸업생, 재학생들도 많이 왔다. "싸리골 생기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어"하고 한서방이 말했다. 윤이장이 아버지 관 위에 첫 삽질로 흙을 부었다. 여량중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선생님!"하며 소리쳐 울었다. 학생 몇이 구덩이 속에 뛰어들었다. 관을 싸안고 통곡을 했다. 정선군 해직 교사 복직 대책위원장이 학생들을 구덩이에서 나오게 했다. 여러 사람들이 삽질로 구덩이를 메웠다. 흙을 다져 밟았다. 젊은 선생님들이 한목소리로 '전교조 투쟁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캄캄한 어둠을 깨고 지옥 같은 폭력을 깨고

   참교육 민주주의의 전교조 깃발 높이 올렸다.

   아 아 전교조여 우리의 참사랑이여

   이 땅에 참교육 쟁취하는 날까지 아 투쟁하리라...

   학생들과 젊은 선생들은 무덤을 둥그렇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만약 눈을 뜬다면, 관을 열지 못할 터였다.

-134쪽

 

아우라지로 가는 길 2

   아버지 무덤에는 뗏장이 푸르다. 깎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자랐다. 할머니는 이제 엉금엉금 기어 아버지 묘로 오른다. 할머니의 한쪽 고무신이 벗겨진다.할머니는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른다. 나는 할머니의 고무신을 들고 뒤따른다. 후박나무를 잡고 할머니가 무릎걸음을 멈춘다. 짱구가 검은 돌 앞에 선다. 그가 돌에 씌어진 글자를 읽는다.

   참사람 참스승 마인표선생님,

   우리는 스승님을 마음에 묻습니다.

   "시우 아버지가 훌륭한 교사였나봐" 짱구형이 예리에게 말한다.

   "그런 것 같아. 제자들이 묘비까지 세워줬으니." 예리가 대답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4-09-17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 속에서는 여량중학교 생물선생님이다. 아내는 딸을 데리고 가출을 했고, 아들 시우는 자폐증이 있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해직된 후 시우에게 자연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시우는 유괴를 당하여 험한 세상 속에 던져지는데... 2권 부분은 드디어 시우가 아우라지로 다시 돌아와서 성묘하러 갔을 때, 같이 간 깡패들의 반응이다.

연우주 2004-09-1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소설이 있었군요...

2004-09-19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4-09-1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저 이야기가 전체 소설의 중심은 아닌데요... 소설 자체는 단문 형식으로 빠르게 전개되니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재미도 있구요. 저는 특히, 저 부분에서 마음이 찡하더군요.
속삭여주신 님, 기회가 되면 빌려드리지요. ^^
 

두아미쉬-수쿠아미쉬 족(族)의 추장 시애틀, 1856년

   워싱턴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내 왔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불친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대를 들고 와서 우리의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들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곳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 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 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안개가 달아나듯이 홍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는 한 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그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는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 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독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에 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홍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음으로 공기는 홍인(紅人)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 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 주는 온갖 생명과 영기(靈氣)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 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이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 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소중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혀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 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쳐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 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 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그대들이 마련해 준 곳으로 가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는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날들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은 날이 남아 있지도 않다.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언젠가 이 땅에 살았거나 숲 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에 그 누구도 살아 남아서 한때 그대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무덤을 슬퍼해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 간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곳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홍인(紅人)에게나 백인에게나 똑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은 이 땅에 보내 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홍인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 준 하느님에 의해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물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 차고 무르익은 언덕이 말하는 쇠줄(電話線)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덤불이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홍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이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 고동을 사랑하듯이 그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콩 2004-09-1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너무 좋네요. 그 인디안들은 지금 모두 어디 있을까요? 감사히 퍼갑니다. ^^ 아 참! 근데 이 글 어떤 책에 나오나요?

느티나무 2004-09-1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글, 정말 유명한 글인데요... 아마도 출처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시애틀 추장/류시화), 정신세계사, 1993 일 것 같습니다. 90% 정도 확실합니다.

해콩 2004-09-1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끔찔끔 여기저기서 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긴 전문은 처음. 샘은 어디서 전문 구하셨는지? 저처럼 직접 워드작업? (전 좀 무식한 구석이 있어서 왠만한건 직접 친답니다. 사실 그게 빠르기도 하구요) 저 책은 꼭 사봐야겠어요.
 

폴라 언더우드 지음, 홍길동 옮김, 그물코, 2002

   누군가가 말했다.

   "자 형제자매들이여. 기나긴 여행길에 걸어온 우리들, 오랫동안 추구했던 목적지에 이른 우리들, 그토록 원하던 장소에 선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리라.!"

   그러자 동족들은 발견하는 것보다 목적을 갖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루어진 목적은 그 건너편에 잇는 새로운 목적을 보여줄 뿐인지도 모른다며. 그리고 그것은 슬핀 일이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임을 깨달았다.

   한 노파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목적에서 위안을 찾는 부족이 된 것 같아.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겨울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상황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부족이 되었어. 아이들의 아이들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부족이 된 거지. 그렇다면 이제 그런 길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거대한 바다의 해변을 돌아다니며 우리의 영혼이 좀더 평안해지는 장소를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큰 파도로부터 무사히 벗어나 큰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장소를......"

   그러자 모두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곧 이어 위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200-2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