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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푸른숲, 2002

   우리가 지식인을 존경하는 것은 그들이 대중들의 삶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공동체에서 지식인 대중에 관심을 가지면 그들의 일상적 삶을 관찰하게 된다. 그들의 삶이 어떤지 관심조차 없다가,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것을 잣대로 예를 들고 의견을 개진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관심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다. 마음이 없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

   관심(關心)이 있어야 관찰(觀察)이 따라온다. 즉 '마음을 열어두고 있어야' '성실하게 살펴보게' 된다. 이럴 때, 관찰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성실한 관찰은 반드시 사고를 자극한다. 즉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 예리한 철학자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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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조선 선조 10년(1577)

   사람의 얼굴은 추한 것을 곱게 바꿀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세게 바꿀 수 없으며, 키는 작은 것을 크게 바꿀 수 없으니, 이것은 이미 정해진 분수이므로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심지(心地)만은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어두운 것을 어질게 바꿀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이란 것이 매우 심령스러워서 타고난 것에만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지혜로움보다 훌륭한 것이 없고 어짐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괴로워서 어질고 지혜롭게 되지 못하고 하늘이 내려 준 본성을 손상하랴. 사람이 이 뜻을 유지하고 굳게 물러서지 않으면 어진 이가 될 수 있다.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하면서도 곧 노력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 하나 실은 배움에 향하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  뜻을 학문에 두었다면, 인(仁)함이 나에게 있으므로 하려고 하면 될  것인데, 왜 남에게 구하며 왜 뒷날로 미루랴. 뜻을 세움이 귀하다는 것은 곧 공부를 시작하여 생각이 물러서지 않는 까닭인데, 만일 뜻이 정성스럽지 못하여 하는 것 없이 날만 보낸다면 종신(終身)토록 어찌 성취되는 것이 있으랴.

 

   이 글은 요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참고서의 읽기 지문이다.(수업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재수'가 걸리기도 한다.) 옛날에도 친구가 건네 준 아주 얇은 책자로 '격몽요결'을 읽은 적은 있지만,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이렇게 머리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나 보다.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나는 학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날마다 마음밭을 갈면 하늘이 내려준 본바탕인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 기록해 둔다.

  한 움큼 손에 쥐었던 모래가 빠져나가듯, 스스륵, 연휴가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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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월간 말, 2003

   "반대자에게는 감동을 주는 겸허한 삶으로, 불의한 자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정의로운 삶으로, 무관심한 이에게는 자극을 주는 투신의 삶으로, 무엇보다도 약자의 벗이 되고 친구가 되는, 예수님과 같은 실천적 삶을 다짐하며, 모든 법과 규정을 능가하는, 사람의 아들이며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고 확인한 인간이 우뚝 선 삶, 인간이 중심이 된 친교 공동체를 지향하고 고백한다"

   '인간의 확인이 참된 신앙'인 명제 앞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분명하다. 자, 이제 우리 무엇을 할 것인가. 분명하지 않은가.

-226쪽, 종교 읽기 | 민중 속으로 중에서

 

   큰따옴표 속에 있는 저 말씀은 함세웅신부님의 말씀이다. 말씀 하나하나의 삶이 凡人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겁고 두려운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겸허한 삶, 정의로운 삶, 투신의 삶이란 과연 무엇일지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미처 생각도 못한 문제이다. 다행히도 人福은 있어서 내 주변에는 자기 삶을 기꺼이 던져 무관심한 나에게 항상 자극을 주는 몇 사람이 있다. 그 분들의 삶이야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책은 왜 읽는가? 바르게 생각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러면, 바른 생각은 왜 하는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 아닌가? 제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다시, 너는 왜 책을 읽는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섣달 그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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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01-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섣달 그믐 밤에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늘 진지하고자 하는 느티나무님의 사색이 물씬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우뚝 선 삶'을 지향하는 신부님 말씀에 공감입니다. 제대로 사는 삶이란 그런 삶이겠지요? 방향은 그러한대, 구체적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어떻게 열려야 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산다는 것! 새해를 여는 아침에 곰곰히 생각해 볼 좋은 숙제네요.
 

하이타니 겐지로/오석윤(옮김), 양철북, 2003

   '태양의 아이'는 후짱이라는 한 소녀가 오늘날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성실하게 찾아내고, 그로 인한 괴로움에 고민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늠름하게 성장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됨의 괴로움을 진실로 고민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5쪽, 한국어판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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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1-2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제가 책을 읽다가 꼭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을 옮길 예정입니다. 단순히 글만 옮겨두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절에서 받은 느낌, 생각 등도 덧붙여 쓰겠습니다. 결국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기억일까요? 아니면 기록일까요?

느티나무 2004-01-2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의 아이' 서문을 읽고 든 제 느낌을 쓰려고 하는데, 알라딘의 '수정'하기가 문제가 있네요.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 시간이 날 때 이 구절에서 받은 제 느낌을 짧게 나마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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