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심상이최고야 > 진실에 대한 신념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이념을 둘러싼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살아가야 한다면, 어떤 삶을 마주했을까? 그 후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 가령, 6.25 전쟁,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 3.15 부정선거, 4.19혁명, 5.16 쿠데타, 군사 유신 독재 체제시절, 12.12 쿠데타,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 그 격동의 시기를 내가 살아나가야 한다면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어떤 이념을 선택했으며, 군사 독재 시절의 모진 탄압속에서 과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로 표현하고 행동했을지 막연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 쉽게 생각을 접기엔 꽤 진지한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그런데 상상이 아니라 그 시절을 몸소 겪은이가 있다.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리는 '리영희'가 바로 그다.
'리영희'.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뇌리에 지진이 날 만큼 혁명적이었다던 '전환 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들어본적도 없고,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이런 책을 접해본 경험이 없다. 다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이 90년대에 출판되었다는것 정도 알고 있다. 그를 처음 뵙게 된 것은 지난주 강연때였다. 1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다. 강연은 고은 시인이 지은 '리영희'라는 시를 함께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칠십을 훌쩍넘은 나이지만 새삼 놀라운 것은 그의 살아있는 눈빛과 예리한 통찰력이었다. '또렷하고 생생한 눈빛'. 최근들어 그렇게 눈빛이 또렷한 사람은 본적이 없는것 같다. 강연의 내용은 북한과 미국, 이라크 파병에 관한 선생님의 입장이었다. 늦은시간까지 이어진 강연이었지만 모두 너무 진지하게 세시간이 넘는 강연을 들었다. 늘 궁금했던것들. 한번쯤은 고민해봤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엔 그냥 답답하기만 하고 너무나 막연한 그런 문제들, 가령 50년이 단절된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서로를 너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미국과의 종속관계는 어떻해 근절할 수 있는지?, 그리고 최근들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세력간의 갈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들에 대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강연을 듣고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강준만 교수님의 글은 수많은 인용으로도 유명한데, 리영희라는 인간의 삶을 1940년대부터 2000년대 지금까지 시대순으로 그가 쓴 책들과 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접목시켜 잘 제시해 주었다.
강준만은 그를 가르켜 투명한 '인간 창'이라고 했다. 그의 그런 표현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1965년 베트남 파병때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이야기 한 언론인은 오직 리영희 한명뿐이다. 아홉번 연행에, 다섯번 구치소 수감, 두번의 기자직 해직과 두번의 교수직 해직.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섰다. 현실의 온갖 어려움 속에서 진실을 선택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진실을 알리는데 대쪽같은 신념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집에 걸려있다는 '휘호'가 생각난다. "눈길을 걸을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존경할 만한 분을 만나게 되고 그의 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오늘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