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02-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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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 잎의 혀로

,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600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 줄기의 슬픔으로

,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 송이의 말로

, 좋은 말을 꽃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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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조금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참 좋은 말을 많이 듣고 자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새학기 3주차,

새로운 학생들, 새로운 동료들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옆 사람에게 건낼, 참 좋은 말,을 한번 생각해 보시는 이번 주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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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01-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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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둘러앉는 일

다함께 둘러앉을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혁신과 행복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수업도 둘러앉아 모둠수업

회의야 말할 것도 없는 원탁회의

민주주의란 알고 보니 둘러앉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텃밭에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웠고

밥집 술집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논쟁하고 고민했습니다

교사들 둘러앉은 자리 기승전결은 언제나 아이들

엎드린 아이 홀로인 아이 외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시키지 않을까

 

시고 떫은 날들도 많았으나

어김없이 수요일은 돌아오고

둘러앉았으므로

서로의 눈빛 읽고 마음 열어 갑니다

홀로 꿈꾸고

오래 좌절해본 사람은 압니다

무엇도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

낮과 밤처럼 달라 보이는 너와 나도

함께 이어져 있음을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음을

백짓장도 맞들면 낫고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니

혁신학교는 둘러앉아 행복을 배웁니다

둘러앉은 가장자리 밝고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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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미 선생님의 시집, 봄꿈에 나오는 시 둘러앉는 일의 부분입니다.

지난 2월의 새학년 준비 모임에 이어 지난 주의 개학까지,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우리 학교다운 첫출발을 했습니다.

우리 학교답다... 라는 말은 여러 함의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우리 학교다움은

모든 교직원들이

학생들과 동료 교직원들을 맞이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올해 갑자기 벌어진 특별한 일이 아니라,

저 시에 나오는 것처럼 몇 년 전부터 둘러앉아 일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발전해 온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둘러앉지 않으면,

나 혼자 파편으로 발버둥 치노라면,

때로는 지치고, 삶이 너무 팍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둘러앉아

행복을 배우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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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를 반복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넋(영혼)을 개선하고 향상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신과 의사 김영우는 이렇게 말한다. '전생 퇴행 최면으로 환자를 치료할 때, 저 세상에 존재한느 우리의 스승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생하는 목적이 '영혼의 성장'이라고 환자에게 말한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넋은 숨 끊어진 몸에서 빠져 나온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를 느낀다.

   저 세상으로 가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함께 지내던 넋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들과 한 무리를 이룬다. 이 때 서로 엄청난 반가움을 느낀다.

  넋들의 무리를 이끄는 것이 담임 스승이다. 이 외에도 여러 스승이 넋들을 가르친다. 스승들의 성격은 이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하다. 스승들의 공통점은 너그러움, 기다림, 사랑이다.

   저 세상에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한다. 태어날 나라, 놓아줄 부모, 다닐 학교, 일할 직업을 스승과 함께 선택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대의 인생을 한탄하지 말라, 그대의 인생은 그대의 영혼 성장에 가장 도움이 되도록 그대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대의 지위가 낮은 것은, 전생에 지위가 높았기 때문이고, 그대가 돈이 많은 것은, 전생에 가난했기 때문이다. 여러 다른 인생을 살아 보아야 영혼이 성장한다.

   그대의 영혼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의 몸과 결합하는 것이 환생이다. 환생을 반복하는 것이 윤회이다.

   전생 퇴행 최면 치료 방법이 발달하고, 의학의 발달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람들의 수가 늘면서, 이들의 보고에 따라, 저승 환생, 윤회에 관한 정보가 늘고 있다. 이러한 정보는 기존 종교가 말하는 것보다 자세하고 명확하다. 기존 종교가 말하는 저 세상은 천생 퇴행 최면 환자가 죽었다가 깨어난 환자들의 보고와 일치하지 않는다.

   저 세상에는 죄에 대한 무서운 처벌이 없다. 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저 세상에 가서 회상할 때 엄청난 부끄러움을 느낀다. 치옥은 이렇게 뼈저리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험일 뿐이다. 저 세상은 평화, 너그러움, 사랑만이 있으며, 고통과 처벌과 미움이 없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도 날마다 많은 것을 부지런히 배우고,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래 살라고 기를 쓰지도 말라. 그러나 자살하지도 말라. 저 세상의 스승은 자살하고 오는 제자의 넋을 만날 때 엄청난 슬픔을 느낀다. 스승이 슬퍼하는 것을 보는 것은 엄청나게 괴롭다. 이 괴로움이 바로 지옥이다.

   괴로울 때 명상하라. 코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마음을 모르라. 숨결 따위 나의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바람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의 부분이다.

   내가 날마다 먹은 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생각하라. 싹트고 자라는 잎과 줄기에 내리는 햇빛과 안개와 비를 생각하라. 벼를 거두고 탈곡하고 운반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라.

   그대는 땅에 있는 모든 것과 함께 지구의 부분이고, 지구는 태양계의 부분이고, 태양계는 우주의 부분이다. 우주는 거룩하다. 우주의 부분도 거욱하다. 그대도 우주의 부분이니 거룩하다. 그대가 미워하는 사람들도 거룩하다. 날마다 그대의 발에 밣히는 흙도, 풀도, 벌레도 거룩하다. 거룩한 모든 것이 평화롭기를 기도하라.

   숨을 들이쉬며 마음 속으로 하나라고 말하고, 내쉬며 하나라고 말하라. 다시 들이쉬며 둘이라고 말하고, 내쉬며 둘이라고 말하라. 이렇게 열까지 세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라. 이렇게 다시 하나에서 열까지 되풀이하라. 그리고 그치고 싶을 때 그만하라. 이렇게 하기를 하루에 두 번 또는 세 번 하라. 더 하고 싶으면 더 하라.

   마음에 숨을 모을 때에는 생각을 멈추라. 과거도 생각하지 말고 미래도 생각하지 말라. 생각이 떠오르면 사라지게 놓아주고 따라가지 말라. 숨에 마음 모으기를 끝낼 때 이렇게 기도하라.

 

나타나서 달라지다가 사라지는 모든 것이 평안하기를

나타나서 달라지다가 사라지는 모든 이가 평안하기를

절합니다.

거룩한 것에 절합니다.

거룩한 이에게 절합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거룩한 것에 절합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거룩한 이에게 절합니다.

 

주의 : 그대는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확신하는 광신도가 되지 말라. 천 년, 만 년, 억 년이  지나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 그런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래서 윤회는 끝나지 않고, 우리는 영원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남의 존경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 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되, 함부로 존경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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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무엇인가-부석(浮石)에서 내면으로의 여행

 

 

   어느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고 노래한 적이 있지만, 나는 늘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그 기차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디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까, 를 생각한다. 사는 게 힘들고 막막할 때, 그래서 눈물이 터져 나올 때, 나를 태우고 떠난 기차가 닿을 곳으로 어디가 좋을까를 생각해 본다. 지금껏 내가 다녀 온 여러 곳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워지고, 다시 떠오르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점점 한 곳의 이미지가 선명해진다. 그것이 바로 내륙 깊숙한 소백산 한 자락에 자리 잡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부석사다. 그렇다, 나는 살다가 눈물이 나면 이제 부석사로 가겠다.

 

   부석으로 가는 길에는 삶에 대한 치열한 열정을 보여주는 자연이 있고, 부석사 앞에서 그 절처럼 곱게 늙어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살고 있다. 또 부석사 무량수전에 올라서서는 사는 게 막막해도 막막함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듯 기막힌 반전이 펼쳐지고, 마당 한 곳에는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하는 집념의 증거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 누구든 부석사에 닿으면 어느새 눈물은 마르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을 되뇌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스산한 찬바람이 불어온다면 주저 없이 부석사에 다녀오기를……. 

 

   가을, 부석으로 가는 길은 온통 사과 천지다.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봐도 선명한 핏방울 같은 사과를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사과나무들. 나무는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제 몸으로 빨아들인 물과 빛과 바람을 오직, 제 몸에 달릴 사과를 더 크게, 더 붉게 키우기 위해서만 사용한 것 같다. 지금, 사과나무에서는 사과 말고 다른 군더더기란 찾아볼 수 없다. 왜소한 사과나무는 비틀린 자세로, 축 처진 구부정한 어깨로, 그것이 마치 숙명인 것처럼,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사과나무를 보며 생겨난 엉성한 상념에 사로잡혀 구불구불한 길을 내처 달리다보면 제법 멀찍이 물러나 있던 소백산 자락의 산들이 어느새 성큼 길옆으로 다가와 선다. 딱 어릴 때 친구들과 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술래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앞을 보고 달리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보면 어느 새 산이 나를 점점 둘러싸고 있다. 이제 더는 빠져 나갈 길이 없다는 듯이 산들은 좁다란 고갯길 하나만 남겨놓고 내가 지나온 길을 덮어버린다. 길은 오직 부석으로 가는 길,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길의 끄트머리에 절집, 부석(浮石)이 있다.

 

   우선 여기도 버스 종점 앞은 여느 절집처럼 좀 낡은, 대개는 늙수그레한 가게 주인을 닮아 쇄락한 가게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부석사로 오르는 가게 조금 위쪽 길옆으로는 앞의 가게들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지켰을 좌판들이 옹색하게 펼쳐져 있다. 산에서 뜯은 산나물과 여기선 흔하디흔한 사과 몇 알을 놓고 할매들은 절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무뚝뚝하고 투박한 경상도 할매들의 꾸미지 않은 성정(性情) 그대로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장사꾼의 사근사근함보다 오히려 그런 할매들의 모습이 더 정겹고 편하다. 아울러 저 할매들의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 덕분에 세상의 누구는 먹고, 입고, 공부하고, 또, 어른이 됐을 테니 장성한 자식들의 어머니인, 저 할매들을 보면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에만 헌신하는 사과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석으로 가는 길옆은 붉은 등이 달렸지만, 부석사 입구는 이제 노란 카펫이 깔렸다. 일주문부터 금강문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은 황금 비단길이다. 이 비단길을 가볍게 밟으면 어느 순간 부석사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부석사는 산자락 아래 지어진 절이라 건물이 들어설 평평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단의 축대를 쌓아 올렸는데, 부석사로 들어가는 길은 그 축대를 차례차례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이 길은 가팔라서 온 신경을 걷는데 집중해야 하는 길도 아니고, 평탄해서 방심하고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길도 아니다. 적당히 긴장하면서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걸어야 하는 길이다. 여행이란 바로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적당히 긴장하면서 낯선 상황을 두루 살피는 일! 어쩌면 여행은 호기심과 피곤함이 공존하는 일과라고 말해도 좋을 듯싶다.

 

   그러다 마침내 그 축대 위 맨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세 번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이 세 번의 감탄사 중 먼저 첫 번째는 무량수전 앞마당을 볼 때 나온다. 밑에서부터 조금씩 오르막길을 올라와 이제는 가파른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올라선 곳에서 뜻밖에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놀라움에서 나오는 감탄사이다. 점점 좁은 골목을 지나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하고 돌아섰는데 갑자기 앞이 뻥 뚫린 광장으로 빠져나왔을 때의 시원함과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무량수전 앞마당이 바로 그런 느낌이다.

 

   둘째는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감탄사이다. 앞마당에서 무량수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건물 구조의 완벽한 비례와 균형감, 소박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것만을 갖춘 장식, 겉에서 볼 때보다 더 웅장한 내부, 날아갈 듯 부드러운 추녀와 지붕…… 사실, 이 모든 걸 따로따로 살피지 않아도, 미술이나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그냥 척 보면 아름다운 건축물임을 안다. 사실, 미인은 그냥 척 보면 아는 것 아닌가?

 

   무량수전을 보고 있으면 ‘날아갈 듯 부드러운 추녀는 결코 굽은 나무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한평생 곧은 나무들의 자태라야 가장 부드럽게 앉을 수 있다’, 던 눈 밝은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곧은 나무라야 부드럽게 앉을 수 있다는 말 앞에 나 자신을 살펴보면 늘 부끄러울 따름이다.

 

   세 번째 감탄사는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로 걸어올라 온 길로 몸을 돌리거나,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면 터져 나온다. 그리 높이 올라온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서 있는 곳 앞에는 내 눈에 걸리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발을 디딘 곳이 높은 절벽 위인 듯 오직 저 멀리 태백산맥의 산줄기들만이 장쾌하게 뻗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기막힌 반전이 숨어 있다. 점점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서야 너른 마당이 나오고, 곧은 나무라야 날아갈 듯 부드러운 집을 만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일망무제의 상쾌함을 맛볼 수 있다. 나 혼자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다 보니 어쩐지 이 부석사가 눈물의 강을 건너야 웃음의 바다에도 닿을 수 있다는 우리 삶의 한 모습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부석사 무량수전 한쪽 모퉁이에는 이 절집의 이름이 된 부석(浮石)이라는 돌이 있다. 말 그대로 ‘떠 있는 돌’인데, 기록에 의하면 이 돌 아래로 실을 넣어 당기면 실이 거침없이 돌 아래로 드나든다고 한다. 이 부석은 선묘라는 중국 여자가 변한 것인데, 신라의 승려인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가 의상대사의 설법을 전할 곳으로 이곳 부석사를 선택하자 이미 이곳에 있던 사교(邪敎)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떠있는 돌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선묘라는 아가씨의 마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정념? 집념? 집착? 신념?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나는 무량수전 뒷마당에서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놀랍고, 무섭고, 대단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한다. 한 사람의 마음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저 육중한 돌을 공중에 띄우고 있지 않은가? 부석, 앞에 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돌을 공중에 띄우려고 하는가?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이 질문을 담고 나는 절을 천천히 내려선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결국 눈물이 나서 떠나려던 여행은 어딘가로 떠나는 게 아닌 듯 같다. 여행이란 바빠서, 혹은 게을러서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또, 일상에 치여서 마주하지 못했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여행이 점점 힘들어 진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나는 이 여행을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여행의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인간다움에 대한 포기일 테니까 말이다.

 

2013.01.08. 느티나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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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원이라는 사람


강 회장이 구속되기 전의 일이다. 내가 물어보았다.

“강 회장은 리스트 없어요?”

“내가 돈 준 사람은 다 백수들입니다. 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돈을 왜 주었어요?”

“사고 치지 말라고 준 거지요. 그 사람들 대통령 주변에서 일하다가 놀고 있는데 먹고살 것 없으면 사고 치기 쉽잖아요. 사고 치지 말고 뭐라도 해보라고 도와준 거지요.”

 

할 말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나의 수족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와서 백수가 되었는데, 나는 아무 대책도 세워 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보기가 딱했던 모양이다. 강 회장이 나서서 그 사람들을 도왔다.

 

그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변변히 한 일도 없는데 다시 조사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데 강 회장이 계속한다.

 

“지난 5년 동안 저는 사업을 한 치도 늘리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해보자는 사람이야 오죽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렇게 하면 내가 대통령님 주변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일체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강 회장이 입버릇처럼 해오던 이야기다.

 

“회사일은 괜찮겠어요?”

“아무 일도 없어요. 지난번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 직원들에게 모든 일을 법대로 하라고 지시했어요. 수시로 지시했어요. 그리고 모든 일을 변호사와 회계사의 자문을 받아서 처리했어요. 그리고 세무조사도 다 받았어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다시 덜컥 구속이 되어버렸다.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게 사업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떻든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강 회장이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였다.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후원금은 얼마까지 낼 수 있지요?” 전화로 물었다.

“1년에 5천만 원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온 사람이 강 회장이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곱만큼도 신세 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첫 마디를 이렇게 사람 기죽이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눈치 안 보고 생각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장수천 사업에 발이 빠져서 돈을 둘러대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자연 강 회장에게 자주 손을 벌렸다. 당시 안희정 씨가 그 심부름을 하면서 타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정치인이 정치나 하지 왜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구박의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직접 타박하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2000년 부산 선거에서 떨어졌고, 2002년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장수천 빚 때문에 파산 직전에 가 있었다.

 

강 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다.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 아예 그럴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퇴임이 다가오자 강 회장은 퇴임 후 사업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강 회장의 생각에는 노무현이 중심에 있었고, 나의 생각에는 생태 마을이 중심에 있었다. 결국 생태마을 쪽을 먼저 하고 재단은 퇴임 후에 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그렇게 해서 주식회사 봉하가 생겼다.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가 생각한 것은 공익적인 사업이었다.

 

70억이라고 하니 참 크게 보인다. 그런데 강 회장의 구상은 그보다 더 크다. “미국의 클린턴 재단은 몇억 달러나 모았잖아요. 우리는 그 10분의 1이라도 해야지요.” 이것이 강 회장의 배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 꼭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강 회장 혼자서 부담을 해야 할 형편이다.

 

강 회장은 퇴임 후에 바로 재단을 설립하자고 주장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좀 천천히 하자고 했다. 강 회장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미안하고 모양도 좋지 않으니 출연할 사람들을 좀 더 모아서 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퇴임 후 바로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각종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고,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되니 아무 일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모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재단은 표류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사업하는 사람들은 오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사업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디 취직이라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봉하에 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봉하에 강 회장은 매주 하루씩 다녀갔다.

그런 강 회장이 구속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제발 제때에 늦지 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17일


면목없는 사람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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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2-08-0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에 대한 다른 일화나 이야기들은 많지만-주로 좋은 쪽으로- 그런 건 다 모르겠고, 어쨌든 대통령님이 직접 쓰신 글이니 이건 믿어야겠다. 두 분 그곳에서도 좋은 인연 맺으시길... 요즘도 아무데서나 눈물이 난다. 대통령님 얘기만 나오면 말이다.

2012-08-08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9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1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1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