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읽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엘봄, 세종서적)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

 첫 번째 화요일

  • 내가 고통을 당하고 보니, 이전보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거야.
  •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사랑이야 말로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다.

두 번째 화요일

  • 필요하면 한바탕 시원하게 울지. 하지만 그 다음에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네.
  • 하루에 자기 연민을 느끼는 시간을 두면 얼마나 유용할까. 몇 분만 눈물을 흘리고 그날의 나머지는 즐겁게 산다면.

세 번째 화요일

  • 신비롭게도 죽음에 당면해서 생각이 투명해지는 것.

네 번째 화요일

  • 모두들 죽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어.
  • 죽음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접근해 보자구. 죽으리란 걸 안다면, 언제든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둘 수 있네. 그게 더 나아. 그렇게 되면, 사는 동안 자기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살 수 있거든.
  •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니까.
  • 나무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람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알아차린다네. 그것은 시간이 창틀을 지나치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하지. 내 시간이 거의 끝났음을 알기에, 처음으로 자연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에 마음이 끌린다네.

다섯 번째 화요일

  •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위대한 시인 오든이 말했듯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네.
  •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여섯 번째 화요일

  • 세상 것에 매달리지 말아라,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 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네. 고통이 뭔지 알게 되지. 사랑이 뭔지 알게 되네. 슬픔이 뭔지 알게 되네. 그럼 그때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들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 감정을 풀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충분히 느껴라.
  •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일곱 번째 화요일

  •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그 시절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네.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받던 그 시절로 말일세.
  • (나이 드는 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구.

여덟 번째 화요일

  • 물질이 사랑이나 용서, 다정함, 동료애 같은 것을 대신할 수 없는데....
  • (만족은)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
  • 존경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받기 시작하는 거야.
  •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라구.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이 생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풂으로써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들에 압도당할 거야.

아홉 번째 화요일

  • 사랑이란 우리가 이 세상을 뜬 후에도 그대로 살아있는 법이지.
  •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
  •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애쓰네.

열 번째 화요일

  •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규칙은 있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그들 사이에 닥칠지도 모른다.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가 서로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야.

열한 번째 화요일

  • 대개 사람들은 위협당할 때 형편없어지네. 그런데 우리 문화가 사람을 위협하거든.
  • 사람은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 자기만 생각하기 시작하네. 돈을 신처럼 여기기 시작하는 거야.
  •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 자기가 사는 곳에서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야지.
  • 아이 때와 죽어갈 때 외에도, 즉 그 중간 시기에도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하네.

열두 번째 화요일

  •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 화해하게. 자기 자신과 주위의 모두와...

열세 번째 화요일

  • 죽어간다는 생각과 화해하는 것.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죽어가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마침내 진짜 어려운 것을 할 수 있겠지.
  • - 살아가는 것과 화해하는 것.
  •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 자기 상황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황에도 마음을 쓸 때 바로 그게 진정한 사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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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은 미디어다.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의 '언론학'이다. 술판에서 헛수작하는 이들이라면 새겨야 할 경구다. 더 이상 낭패당하지 않으려고 술을 끊었을 때다. 백기완 선생이 벼락처럼 꾸짖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 사람아! 상상력이 없어져!"

   두 분과 독자들께 결례를 무릅쓰고 술타령을 술술 푸는 까닭은 물론 있다. 386 젊은 벗들과 여남은 차례 술멍석을 편 변명이다. 기존 정치권에 수혈된 386들을 바라보는 386 여론이 궁금했다. 독특한 미디어 탓일까. 다소 격앙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아름다운 386은 따로 있다고. 그래서 순진하게 물었다. 아름다운 386을 대표할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젖은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후배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대표는 없어요."

   그랬다. 바로 그가 아름다운 386이었다. 그는, 아니 그들은, 자신들의 세대를 대표한다는 후보들이 선거공간에서 아무런 진보적 의제도 쟁점화하지 못한 현실을 부끄러워했다. 수구정객과 수구언론의 색깔공세 때문일까. 실제로 386들은 깨끗한 정치만 상표처럼 내건다. 정작 천박한 정치수준을 한 단계 높일 정책적 차별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그런 기대 자체가 턱없는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386의 '독설'을 들어보자.

   "그들은 과거만을 팔고 있다. 아니 이미 다른 386들을 착취하고 있다. 보라. 전대협 의장 명함을 내세우는데 그들 중에 누가 당시 밤새웨 함께 고민했던 학우들에게 의견을 구했는가. 의장으로 추대하며 민중의 아픔을 대변하라고 그들을 위해 밤새워 불지폈던 이들에게 오늘 그들은 누구인가."

   또 다른 386도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학생운동을 망친 자들이다. 운동의 관료화가 오늘의 학생운동 침체를 불렀다. 학생운동을 망쳐놓고 이제 보수, 게다가 수구정당까지 들어간다?"

   "조직선을 타고 들어간 후보가 있는가. 모두 당선 가능성을 따라가지 않았는가. 지역과 색깔이라는 봉건적 잣대가 지배하는 정치를 참으로 개혁하겠다면 민주당 후보로 영남에 나서가나 민주노동당에 합류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은 당선만을 좇아 지역구를 선택했다. 그 점에서 오히려 노무현이 더 개혁적이다. 김상현이 구시대 정치인이라고? 그도 30대엔 그러진 않았다. 그 시절 그는 목까지 흙에 파묻히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386들이 40. 50대가 되었을 때 무엇을 할지 눈에 보인다."

   물론 386세대의 국회진출은 16대 총선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을 비롯해 줄지어 기존 정당의 문을 두들겼다. 한 386은 사실 그들은 '얼굴미담'이었다고 회고했다. 하기야 그들이 얼굴마담이었다면, 다시 대중 정치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니다. 과거와 달리 그들의 뒤엔 아무도 없다. 과연 그들은 오늘 누구를 대변하는가. 기존 정치권 진입 또한 힘을 모아 갔는가. 아니다. 개별적 순주에서였다. 갈라진 그들이 총선 뒤에 하나가 될 수 있을까도 회의적이다. 심지어 그들은 기존 여야 정당의 얼굴마담으로 나서기도 했다. 1980년대 그들을 학생운동의 얼굴로 내세운 이들은 지금도 흔들림 없이 민주와 통일의 길을 걷고 있다. 다만 신문과 방송이 그들을 비켜가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출마한 마당에 그들의 당선이 정치개혁을 앞당기지 않겠는가"라며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장담할 수 없단다. 술은 과연 미디어인가. 당선이 꼭 당위만은 아니라는 그도 한잔을 더 비운 뒤 마음을 비웠다. "떨어지면 더 추하지 않은가요? 아무래도 낫기야 낫겠죠."
   출마한 386들에게 권한다. 선거공간에서 과연 오늘의 모습이 최선인가 성찰할 때다. 그들이 왜 선거에 나왔는가를 적잖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한다. 수많은 386들이 삶의 현장 곳곳에서 깨끗한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아름다운 벗들의 여론에 귀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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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5-04-05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정치를 할 일은 없겠지만 인터넷에서 이 글을 읽다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옮겨둔다. 최근의 소위 386 세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손석춘씨의 통찰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에두아르도 갈레이노 지음, 조숙영 옮김, 르네상스, 2004


어느 가족 이야기


   니콜라스 에스코바르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가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자택에서 매우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니콜라스는 TV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여섯 살 꼬마였다. 이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니콜라스는 이렇게 물었다. "이모는 누가 죽였어?"


-124쪽



가난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낭비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조용하게 살 수도 없고, 조용함을 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나는 법을 잊어버린 암탉의 날개처럼 걷는 법을 잊어버린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쓰레기를 먹으며 마치 음식이라도 되는 양 돈을 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마치 공기라도 되는 양 10원 한 장 내지 않고 똥을 먹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텔레비전 채널 두 개를 놓고 하나를 택할 자유외에는 아무런 자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기계와 함께 열정적이고 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항상 다수지만 항상 외로운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265쪽



농담이야 2


   모스크바를 빠져나오던 차 한 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잔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운전자는 이렇게 신음했다.


" 내 메르세데스...... 내 메르세데스......"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선생...... 차가 무슨 소용이요? 팔 하나를 잃어버린 걸 모르시겠소?"


팔이 잘려 나간 자리를 쳐다보며, 그는 이렇게 흐느꼈다.


"내 롤렉스...... 내 롤렉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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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원담, '살아간다는 것' 해설

   중국의 문호 노신은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제자이자 연인 허광평에게 이런 편지를 적어 보낸 적이 있다.


   인생이라는 장도에는 큰 난관이 두 개 있다.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가 그것이다. 갈림길에서는 묵적 선생도 통곡하다 돌아갔다고 하지만, 나는 울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우선 갈림길 앞에 앉아 쉬거나 한숨 자고  괜찮을 만한 한 길을 택해 계속 걸어갈 것이다. 가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면 음식물을 달라 해서 허기를 달래되, 길을 묻지는 않으련다. 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호랑이라도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놈이 배고픔을 참다못해 제 갈 길을 가면 그때 내려올 것이고, 끝내 가지 않는다면 나무 위에서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혁대로 몸을 꽁꽁 묶어두고 시체마저도 놈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놈에게 잡아먹히긴 먹히되, 놈을 한입 물어뜯어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으로 완적 선생도 대성통곡을 하고 돌아갔다는 막다른 길에서는 갈림길에서처럼 성큼 걸어갈 것이고, 가시밭길이 가로막는다 해도 여전히 걸어갈 것이다. 다만 온통 가시밭뿐이어서 결코 갈 수 없는 길은 분명 한 번도 맞닥뜨려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본래 막다른 궁지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다행히도 그런 지경에 데이지 않았거나.


   갈림길과 막다른 길. 노신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지경을 이 두 개의 난관으로 집약하였다. 특히 막다른 길에 대해 온통 가시밭길뿐이어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그런 간 데 없는 지경은 한 번도 닥쳐본 적이 없노라고.


295-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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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푸른 숲, 1992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 아니며, 고소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고상함을 드러내보여야 한다. 여기에서 말한 고상함이란 그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고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의 초연, 선과 악에 대한 동일시이며, 동정의 눈으로 세계를 대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심정 속에서  나는 미국 민가 <톰 아저씨>를 들었다. 노래 속의 그 늙은 흑인 노예는 일생 동안 고난을 겪었고, 가족은 모두 그보다 먼저 가버렸다. 하지만 그는 의연한 태도로 세계를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원한서린 말 한마디 없다. 이 노래는 나의 심금을 울렸고, 나는 이러한 소설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바로 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사람이 고난을 감수하는 능력과 세계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써나갔다. 글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내 스스로 고상한 작품을 써나갔다고 생각한다.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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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11-10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정의파들의 위선

사람은 생존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목적은 진화를 위해서다.

괴로움을 견디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목적은 장래의 모든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전투도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목적은 개혁을 위해서다.

남의 자살을 비난하는 자는 비난을 가하는 한편 사람을 자살로 내모는 환경에 도전하여 공격을 가해야한다.

암흑의 중심 세력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화살 하나 날리지 않으면서 약자에게만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자가 있다. 그가 아무리 정의파라고 하더라도,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고, 나는 정말 참을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살인방조자들이라고.

 

루쉰 [희망은 길이다-루쉰 아포리즘], 이욱연 편역, 이철수 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