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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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어느 토요일 이른 오후, 한남자가 위스키를 사러 가기위해 스포츠카에 올라 탄다..

메인 주 크로스비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올리브 키터리지와 마주 치는 니 차라리 한 시간 걸리는 포틀랜드로 갈 것이다.

그 여자, 남편과 사별한 키 크고 덩치 큰 이상한 여자


포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세우고 물가를 따라 걸었다.

6월중순 하늘은 푸르고 갈매기는 부두 위를 날아다녔다.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잭 케니슨, 인생의 많은 시간을 키 크고 잘생긴 배짱 없는 남자로 하버드 캠퍼스를 누볐다.

박사학위를 두개나 가진 잭 케니슨,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죽은 아내 벳시를 떠올렸고 동성애자인 딸에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큰소리로 울부짓고 싶었다.


전립선 수술 휴우증으로 패드를 차고 있는 것보다 더 불편한 감정이 작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갈매기를 올려다 보며 생각했다. 나는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이제 잭은 이상할 정도로 솔직한 여자 올리브 키터리지에게로 마음이 흘러 갔다. 

몇 번 저녁을 먹으로 갔고 딱 한번 콘서트를 보러 갔다. 

음, 그녀와 키스 하는 순간 따개비가 잔뜩 들러붙은 늙은 고래와 키스 하는 것 같았다.

뉴욕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랑 사이가 좋지 않은 여자 

만화경 속 여러 색깔 들이 교차하는 것처럼 그의 눈앞에 헤엄쳐 다니는 자신의 삶 지나간 삶과 현재의 삶을 생각 했다.


'당신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잭 케니슨.'


그래, 올리브 키터리지


잭은 종이를 꺼내 펜을 들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혹 당신이 전화해주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나를 보러 와 줄수 있다면 아주 기쁠 거에요.'

잭은 편지에 서명을 한뒤 봉투에 집어넣었다. 

침을 묻혀 봉인하지 않은 채 보낼지 말지는 내일 아침에 결정 할 것이다.


손목에 죽은 남편 헨리의 시계를 차고 다니는 여자 ,올리브 키터리지


 6월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재킷을 입고 있다.

올리브는 눈 앞에 펼쳐진 만을 혼자서 바라보고 있다. 

햇살은 물 위로 영롱한 빛을 튕겨냈고 작은 섬의 나무들은 차렷 자세로 서있다음식을 씹는 작은 소리가 들렸고 깊은 외로움이 그녀를 공격했다. 

이 모든것이 잭 케니슨 때문이었다.

이번 봄에 몇 주 동안 만난 끔직 하게 늙고 돈 많고 허세 심한 남자.

그가 좋았다. 

그의 옆에 누워 그의 가슴 팍에 머리를 대고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때면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는 남편과 사별한 멍청한 여자들보다 올리브를 더 좋아 하고 있다.


아니, 올리브는  항상 남자가 좋았다. 아들을 다섯명 정도 낳고 싶었다.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에도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 남자와 기나긴 결혼생활은 마치 세월에 흔적으로 할퀴고 간 기나긴 돌담 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 이끼로 덮인 움푹 패여 버린 빈자리에 꽃이 피키는 커녕 휘몰아치는 얼음 바람이 몰아치는 것과 같다. 


' 당신이 좋아요. 올리브'


올리브 키터리지는 잭에 죽은 아내가 사 놓은 새칫솔을 썼다.


잭과 올리브가 함께 산지 오년째 

잭은 일흔 아홉. 올리브는 일흔 여덟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서로를 꼭 끌어 안고 잠을 잤다.

잭은 자신에 인생이 이런 여자와 이런 식으로 마지막 나날을 보내게 될 거 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따금씩 어둠 속에서 잭은 죽은 아내의 존재를 느꼈다.

올리브와 함께 사는 시간이 마치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느낌이였다.

도로에 그어진 흰색 선 말고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고 강을 따라 달리면서도 옆 좌석에 앉아 온갖 불평 불만 불안을 쉼 없이 지껄이는 이 여자 올리브가 자신에 아내라는 사실, 함께한 시간이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함께 한 날은 저물었다. 

끝났다. 사라졌다.


찬란한 가을,  잎은 나무에 매달려 그 색깔이 연중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태양이 날마다 그 모든 것에 햇빛을 비춰주었다. 세상은 반짝 거렸고 노란색과 빨간색 오렌지색 연분홍색이 만으로 뻗은 길을 올리브는 차를 타고 지나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 앞문에서 숲이 보였다 .매일 아침 문을 열 때 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첫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 현관 벽장에 잭의 코트와 스웨터가 그대로 있다.

첫 남편 헨리가 죽자마자 그가 입던 옷은 재빨리 없애버렸다. 

요양원으로 들어 갔을 때는 그가 입고 신었던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옷장을 문을 열면 잭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 나온다.

잭이 잠을 자다 죽었을 때. 공포가 큰 바다처럼 덮쳐서 하루하루 겁에 질려 지냈다.

돌아와 돌아와 잭, 두사람이 함께한 8년에 세월,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기이하게도 올리브는 자신에 진짜 남편을 잭으로 생각하고 있다.

분명 헨리가 첫번째 남편이지만 잭은 진짜 남편이었다.


다시, 6월이 찾아왔다.

추도식이 열리는 날 기저귀 팬티를 입고 왔다,

올리브는 두 명의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난 후 자신도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끝이 다가 왔다.

기저귀 팬티를 입은 채 의자 위에서 엉덩이를 조금 옮겨 앉았다.

헨리를 생각했다 젊은 날 그에 눈에 깃들어 있던 다정한 눈빛, 잭에 영리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들 크리스토퍼 

생각해보면 그녀는 운이 좋았다 

두남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스스로를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 자기 자신 이었다는것을 


다시 봄이 찾아 왔다.

올리브는 타자기에 이런저런 기억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들 크리스토퍼는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올리브는 타자기를 치면서 행복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종이가 쌓여가는 것도 좋았다.

어떤 날은 자신이 쓴 것을 다시 읽었고 어떤 날은 읽지 않았다. 종이는 서서히 쌓여갔다.


헨리는 신을 믿었다. 


올리브는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았고 시선을 내려 장미 꽃을 바라보았다.

심은지 딱 한해 지났을 뿐인데도 그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피어난 꽃 뒤로 또 한 봉오리가 막 피어나고 있다. 새로 맺은 싱싱한 봉오리 모습

올리브는 뒤로 기대 앉아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래, 그날이 올 것이다.


안경을 쓰고 타자기에 새 종이를 끼웠다.

자판을 톡톡 쳐서 한 문장을 타자 했다.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가지도 알지 못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은 뭘하는지 모른채 스스로에 삶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조차 찾아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세상에 평범한 인생은 없다.

헨리 키터리지,잭 케니슨 그리고 올리브 키터리지에 인생 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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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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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예술을 예술 자체로 경험해야 함을 강조한 미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수필가, 극작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사회운동가  20세기 문단에서 가장 찬양받았던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도대체 수전 손택은 어떤 삶을 살았던 인간 이였을까?

10대 시절 1947년 11월초 며칠밤에 걸쳐 읽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흥분에 차올라서 숨조차 쉴수 없었다. 

손택의 아버지도 '마의 산'에 주인공이 앓았던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천식을 앓았던 시기에 자신도 비슷한 증상을 겪었었다.

이책을 읽고 애처로울 정도로 영적인 경험을 겪은 손택은  친구와 장난삼아 전화번호부를 샅샅이 뒤져서 '마의 산'을 쓴 위대한 작가 토마스 만'의 연락처를 찾아낸다.

당시 열네살짜리 수전 손택을 만난 토마스 만은 수전 손택이 숭배하는 프란츠 카프카,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헤밍웨이에 작품은 통독한적 있는지 물었다.

자신이 숭배했던 우상은 그가 남긴 문학적 삶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전 손택

남편과 이혼한 후 알콜에 의존한 채 어린 딸을 방치해버린 어머니, 홀로 온전히 몰입하게 만든 책, 사상, 사유

'출신과 거리 두기를 좋아합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좋아요.!'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롤모델을 찾아야 했던 수전 손택, 오로지 문학 만이 그녀에 삶에 빛과 방향이 되어주었다.


수전 손택은 1962년 당대 유명 시사지 '파르티잔 리뷰'에 '캠프에 관한 단상'이란 글을 발표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손택은 프랑스 사상가 롤랑 바르트, 노벨문학상 수장작가 엘리아스 카네티 등과도 교류했고, 라이오넬 트릴링에서부터 폴 바울즈, 재스퍼 존스에서 조셉 브로드스키, 피터 브룩에서 조셉 콘래드까지, 각계각층의 작가, 예술인, 지식인들과 광범위하게 어울렸다. 

 

손택은 '해석에 반대 한다'‘사진에 관하여’ 같은 에세이로 명성을 얻었지만, 패션지 ‘보그’에 모델로 등장할정도로 스타성이 대단해서 출판사는 책 뒤표지에 유려한 추천사 대신 손택의 사진이 실렸다.


손택은 인권과 사회 문제에도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며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지금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는 기고를 통해 미국의 은폐된 역사와 베트남 전쟁의 허위,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을 폭로했다.

 내전이 한창이던 유고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고 9·11테러 직후엔 미국 부시 정부의 전쟁 선동을 비판해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유방암 투병 과정에서는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써서 ‘환자들을 위한 운동가’가 됐다. 

손택은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을 활용해 비평가로서, 정치적 급진주의자로서, 실천하는 문학가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한 '최후의 지식인'으로 불리우기도 하지만 자신의 저서들을 끊임없이 읽고 또 읽어서 시대와 상황에 맞춰 스스로에 모습을 재창조해나가며 '비범한 인간' 스스로가 설정한 '이상적인 인간'으로 거듭 태어났다.


항상 열렬히 배우는 학생이였던 손택은 엄청난 명성과 성공으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여행할 수 있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만날 수 있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 베트남과 중국을 넘나들며 세상 전체, 인생 전체를 하나의 글쓰기.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나갔다.


-모든 기억은 개별적이며, 재현 할수 없다. 기억은 개인과 함께 죽는다. 집단 기억이라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일종의 규정이다. 즉, 이것이 중요하다는것, 그리고 이것이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그 이야기를 고착시키는 사진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문학이 세상을 구원할수 있다고 믿었던 '수전 손택' 


'도스토 에프스키, 톨스토이.투르게네프,체호프'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더좋은 작품을 쓸수 있는 '내'가 되었을것이다. 아니 그시기에 나는 다시 태어나야한다.


 손택은 삶의 마지막 몇주를 반 의식불명 상태로 보내며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타인의 고통'을 마지막으로 아홉 권의 에세이집, 네 권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단편집,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 시나리오 두 편과 희곡 한 편.32개국어로 번역 출간된 이 작품들, 완성하지 못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남긴채 손택은 암 투병 끝에 2004년 생을 마감한다.

사경을 헤매다 잠시 졸았던 순간에도 “작업하는 중”이었다고 말한 수전 손택

그녀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는 이런 말을 남긴다.


'어머니는 아파하거나 괴로워하시지 않고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셨다.'

2020년 정체불명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전세계 ,치료제 없이 마스크와 손 소독제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든 사람은 건강한 자의 왕국과 환자의 왕국, 이 두왕국의 시민권을 갖

고 태어난다.!'


진정한 지식인은  자신의 겪고 경험한 과거로 부터 망명해서 전세계를 유랑하는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

20세기 마지막 지식인, 수전 손택의 삶,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How Susan Sontag Taught Me to Think - The New York Times

What Susan Sontag S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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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0-10-15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같이 수전 손택 성함은 많이 들어봤지만 잘 모르는 독자에게 유용한 책 같네요. 여러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보니 잘 모르는 저같은 입장에선 여기저기 많이 언급되고 유명해서 궁금은 한데 도대체 이 분의 전공이 무엇이고 뭐하셨던 분인지 종잡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하구요. 저같은 문외한 쫄보에게 도움이 되는 책 같습니다.

scott 2020-10-15 23:47   좋아요 1 | URL
저도 수전 손택에 방대한 에세이 방만한 지식은 잘 몰라요.
여기저기 기고한 에세이를 읽고 감탄했어도 두어권을 제외하고 손택의 글을 통독한적이 없고 어떤 부분 사상은 동의 하지 않아서 파고든적도 없고 인생의 작가로 올려둔적도 없는데 코로나 시국에 집콕시간이 늘다보니 수전손택의 인생도 파고들었네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 sns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활동했던 사상가여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는데 아쉽게도 이책에는 그녀에 유년시절부분은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네요.
캐모마일님 쫄보 아니여유 ㅎㅎ

초딩 2020-10-31 1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이 칼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어요 :-)
사진 좋아해서 사진 책임줄 알고 사진에 관하여 읽고 완전 빠졌었어요 ㅎㅎ

scott 2020-10-31 20:15   좋아요 1 | URL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세상을 향해 해야 할말이 있는 지성인이 였죠.
‘사진에 대하여‘ 저도 사진첩인줄 알았어요. ㅎㅎ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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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사는 가족이 생전 제사를 거부했던 여성의 10주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이를 위해 별세 10주기를 맞은 '심시선 여사'가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로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들면서  이가족에 대서사극이 시작된다.

심시선은 미술가이자 작가이면서 시대를 앞서간 여성 두번에 결혼을 통해 구성된 남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그녀를 위해 '특별한 제사'를 준비한다.


 진행자- 심시선씨, 유일하게 제사 문화에 강경한 반대 발언을 하고 계신데요. 본인 사후에도 그럼 제사를 거부하실 건가요?

심시선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김행래 -바깥 물 좀 드셨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전통문화를 그리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안 돼요.
심시선-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놨습니다.
진행자- 아, 따님에게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행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을 통해 인간이 특별할 것 없는 존재로서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부장제 방식을 따라 제사상을 준비하는 대신 심시선과 연결된 가장 의미 있는 순간 또는 물건을 수집해 한 자리에서 나눈다.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훨씬 낫지.'

심시선부터 이어진 여성 삼대의 삶을 시대상과 엮어 펼쳐 보이면서 기존 전통과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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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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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작'음복'이 수록된 강화길 작가에 두번째 단편집'화이트 호스'에는 전세대에 걸친 여자들에 모순적인 삶에 슬픔, 비극, 부조리를 담고 있다.

첫장에 시작을 장식한 '음복'은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으로 결혼후 시댁 제사에 처음 참석한 며느리에 시선으로 시댁 가족 구성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한 가족의 갈등의 내력과 이력을 기민하게 관찰한 후 어떤 욕망과 권력이 시댁가족 안에 움틀고 있는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묵인하고 굴복해야하는 억압된 권력관계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은밀하게 공유되고 있는 유대관계를 스릴러 기법으로 보여준다.

두번째 단편 '가원佳園'은  손녀의 시선으로 가족에 뒤틀린 형상을 추적해나간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할머니를 찾기 위해 폐허가 된 옛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 손녀는 망령처럼 되살아난 지난 기억 속에서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여준 할아버지와 자신을 혹독하게 성장시킨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조부모의 모습에 감춰진 진심을 깨닫게 된 손녀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될까?

이어지는 단편 '손'은 딸을 키우는 어머니에 시선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외 근무를 신청한 남편 대신 아이를 돌봐줄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지방의 농촌으로 이사하지만 그녀에 편집증적인 모습은 가정에 울타리를 넘어 마을 전체로 소문이 쫙 퍼져나간다.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방해하는 년”인 악귀 ‘손’에 관한 미신을 동력으로 유지되는 폐쇄적인 마을에서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어머니 과연 자신에 딸을 지킬수 있을까?

-순간 묘하게 섬뜩했다. 분명 내 딸의 목소리였지만, 마치 누군가의 말을 대신 하고 있는 듯했다. 한동안 그 기분이 가시지 않았고, 솔직히 좀 두려웠다. 아이를 이렇게 키우는 것이 옳은 걸까.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은 저 먼 곳에서 혼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세번째 작품 '서우'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실종된 동네에서  귀갓길에 여성 운전사의 택시를 탄 한 여성이 차 안에서 맞닥뜨리는 혼란과 공포를 보여주면서  사회에서 항상 희생되는 존재는 여자라는 편견을 서서히 뒤엎으며 농밀한 스릴을 안겨준다.

네번째 작품 '오물자의 출현' 소설가 지망생이자 여성 연예인이었던 ‘김미진’의 죽음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들에 시선과  분석, 지인들의 증언, 김미진의 유고를 통해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허황된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 '화이트 호스White Horse' 이 단편의 제목은 G. K. 체스터턴의 시집에 등장하는 시어이자, 밥 딜런과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신의 음악에서 차용된 단어로 한여성이 '유령의 집'에 갇혀 있어 밖으로 탈출해야 하는 선배 작가 '이선아'에 마지막 고택에 입주 하는 '나'에 시선속에 작가에 모습을 투영 시킨다.

선배 작가' 이선아'에 마지막 행적이 남아 있는 고택에 입주한 '나'는어린 소녀의 죽음과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려 있는  이 집에 대한 소문만으로 남겨진 것들에 무언가를 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배 작가 '이선아'에 집에는 남겨진 물건 대부분은 추리소설들 뿐이다.

'체스터턴은 평생 자신을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사람들은 그를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작가로 기억한다.' 선배 작가 '이선아'가 밑줄 그어놓은 문장과 그옆에 메모한 단어' 화이트 호스'를 단서로 책과 논문을 뒤지고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돌아다니고 수천곡의 영어노래를 찾아 들으며 내가 머무는 고택은 이곳 관리인도 인지 하지 못하는 온갖소음,웃음소리,노랫소리,쾅쾅 두드리는 소리,바닥이 흔들리는 집이 무너지는 듯한 이명, 돌아온다네 돌아온다네 화이트 호스'를 알아차리는 자신에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카밀라' 최초의 여성 흡혈귀가 등장하는 소설인 셰리든 르 파누의 고전소설 '카밀라'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이 단편은 브람 스토커에 '드라큘라'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 그늘에 가려진 카밀라' 드러나지 못한 채 뒤틀린 유대로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여자들에 모습을 투영시킨다.


스릴러 기법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폭력의 문제를 절묘하게 포착한 작가 강화길  세상을 자신만에 의미로 다시 시작하려는 여자들,이세상 누군가는 영원히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지독할 정도로 단단한 언어로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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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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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단편문학에 읽는 맛을 느끼게 한 심리스릴러 기법이 돋보이는 대상작 '음복'

시댁에서 첫제사를 지내는 저녁식사자리 특별한 사건도 없고 중요한 인물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눈길 말끝마다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다.


결혼후 첫제사였다.

나와 달리 남편은 속 편해 보였다.


돌봄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여자들 이여자들을 위해 해주는것이 전혀 없는 남편들 이들을 둘러싼 토마토 고기찜이 시뻘건 색을 드러내며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고모가 그집의 악역이였다.

'그런데 애는 안 낳아?'

'네?'

'아기 말이야, 아기, 안 낳아?'

바로 그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이구나. 다른 식구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인간. 미움 받을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못돼처먹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싫은 사람.

그래, 바로 그녀였다.


금방이라도 끓어올라 누군가에 무릎을 덮쳐 버릴것 같은 토마토 고기찜 


그음식,제수,제찬,제물. 새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뼈가 붙은 큼지막한 고깃덩어리 제사상 한가운데 그요리가 놓여 있었다. 

그걸 왜 그때야 발견했을까?


지난날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이 집안 남자들 태어날때부터 권력을 쥐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자신들에 지위를 넘보지 못할 것이라는 가부장제도 안에 들어온 여자들 

시어머니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내게 미소를 지었다. 몇 분 후에 나는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정우는 다 모르게 해줘.' 시어머니가 그의 등에서 손을 내렸다. 나는 섬찟 놀라 그 자리에 섰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의 얼굴에서 걱정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았다. 서서히, 고요하게, 모든 그늘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을.


작가에 시선은 시기와 질투로 똘똘 뭉친 여자들 내면에 서로에 대한 동경과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다는것을 은밀하게 보여준다.


네가 나를 이해해줘야지.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줘.


남편은 복을 누리는것 같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토마토 고기찜을 앞접시 한가운데 가득 퍼담았다. 그리고 큰고깃덩어리를 손으로 집어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붉은 양념이 그의 입가에서 접시로 뚝떨어졌다. 언제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더니

사실 네가 좋아하는거였구나 


어둠속에서 나는 대답했다.

'걔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남자들을 향한 사랑과 증오 미움들 다음 세대 여자들에게 대물림 하게 된다는 사실을 집요한 시선과 간결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부디 너를 위해 이것만큼은 내가 진짜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 그래서 나는 그날 대답했던 거야. 이것이 너의 드라마, 복(福)이 되길 바라며.


'음복'이라는 작품을 한번 두번 세번 읽을때마다 주요 인물들에 새로운 모습과 이면들이 새롭게 보일 정도로 작가에 구성과 문장력이 탄탄하다.

이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인 강화길 '음복'을 시작으로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김봉곤 '그런 생활',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김초엽 '인지 공간', 장류진 '연수', 장희원 '우리의 환대'가 실렸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 필력 그중에서도  단편소설들이 읽는 흡인력뿐만 아니라 단편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서 다음작품을 고대해본다.


*이책에 정가는 12000원이지만 1년동안  독자들을 위해 보급 가격 4950원에 판매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여기에 실린 뛰어난 단편 작가들에 맛깔스러운 문장력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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